INDIE “상업자본에 의해 공장서 찍어낸 듯한 음악은 안 한다, 왜 우린 뮤지션이니까”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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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09-27   |  발행일 2013-09-27 제33면   |  수정 2013-09-27
주류음악으로부터 자주독립 선언한 대구의 ‘인디’…
‘인디=홍대’라는 고정관념과 싸우며 다양성·실험으로
클럽·거리 공연… 그 현장을 가다
20130927
지역에서 활동하는 인디밴드 레드데이(3인조 여성 록밴드)와 플라스틱키즈 멤버가 함께 대명동 인디클럽 헤비에서 공연 직전 인디세상을 외치며 한 쪽 눈을 가리고 있다. 모든 걸 다 보지 않고 볼 것만 보겠다는 상징적 제스처로 보인다.

◆ 전인권…대구서 물 먹다

1970년대 어느 날.

당시 음악계엔 ‘자객(刺客)’ 같은 가수였던 전인권. 그가 통기타를 매고 대구로 왔다. 록그룹 ‘들국화’를 결성하기 전 솔로시절이다. 당시 ‘대구의 세시봉’으로 불렸던 중구 교동시장 옆 ‘해바라기’ 클럽에서 오디션을 봤다. 하지만 퇴짜 맞았다. 그가 노래를 너무 못 부른다고 여겨 사장이 물 먹인 것이다.

80년대 초 대구는 전국 최고의 대중음악 인프라를 가졌다. 나이트클럽·회관·디스코장·주점·카바레·음악다방·음악감상실·라이브클럽이 A부터 Z까지 포진해 있었다. 지역 뮤지션에겐 천국의 도시였다. 좀 부풀려 말하면 한 집 건너 한 집이 음악 관련 업소였다. 단군 이래 최고의 호경기를 누렸다. 당시 잘나가는 악사는 몇 달 월급으로 서민아파트 한 채를 구입할 수 있을 만큼 고소득자였다.

70~80년대.

‘록밴드 권하는 사회’였다. 스쿨밴드가 없으면 찌질한 고교로 평가절하됐다. 대학도 마찬가지. 대학 대표 캠퍼스 밴드는 대학가요제를 겨냥했다. 단과대 전속 밴드는 축제장을 주름잡았다. 영남대의 대표 밴드 ‘에코스(ECHOS)’와 경북대 공대의 ‘일렉스(ELECS)’, 계명대의 ‘비사(飛獅)’ 멤버는 시내 업소 스카우트 1순위였다. 여러 업소로부터 러브콜을 받아 ‘알바공연’으로 학자금을 벌기도 했다.

하지만 이 흐름은 딱 80년대까지였다. 90년대 초중반 대한민국 음악은 대격변기에 돌입한다.
 

◆ INDIE  INVASION

92년 국내 음악계에 쓰나미급 뮤지션이 등장한다.

‘난 알아요’란 핵폭탄을 품은 ‘서태지와 아이들(서태지·양현석·이주노)’이다. ‘문화대통령’으로 불렸던 서태지는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사이를 아득하게 멀어지게 만들었다.

96년 5월 서울 홍대 앞 거리에서 전대미문의 UFO 같은 공연이 터진다. ‘한국 인디밴드의 출발’로 불리는 크라잉넛과 옐로우 치킨의 합동작당이었던 ‘스트리트 펑크쇼’였다. 이날 두 팀에겐 무대 위아래 경계가 없었다. 무대에 올라온 관객이 관객을 향해 다이빙을 하고, 밴드도 연주를 하다 말고 무대 밑으로 몸을 날렸다.

벌건 대낮에 물을 뿌려대고 서로 뒤엉켜 ‘슬램’을 벌였다. 이들이 생각하는 무대는 달랐다. 객석의 관객도 함께 공연을 한다고 봤다. 누군 공연하고 누군 감상해야 한다는 기존 공연문화를 거부한 것. ‘모두 공연자’라고 본 것이 인디의 생각이었다. 음악계는 이날의 행위를 ‘국내 기성음악에 대한 조롱과 항거’란 뜻으로 ‘INDIE INVASION(인디뮤지션의 침공)’이라 부른다. 이건 비틀스가 1963년 ‘I wanna hold your hand’를 들고 미국을 방문한 것을 ‘British Invasion(영국 브리티시 록뮤직의 미국 시장 진출)’으로 명명한 것과 비견된다. 급기야 EBS도 인디뮤직 활성화를 위해 ‘공감’이라는 프로를 만든다. 공감은 ‘이달의 루키’라는 인디뮤직 발굴 프로까지 만들어준다.

인디뮤직은 ‘인디펜던트 음악(Independent Music)’의 줄임말. 상업적인 거대자본과 유통 시스템으로부터 독립하려는 게 인디뮤직이다. 열악하지만 골방에서 자작음반을 만들어 직접 홍보하고 거리에서 공연하며 자기 음반을 팔겠다는 계산이다.

최근 국내 최강의 인디밴드 중 하나로 불리는 ‘옐로우 몬스터즈’의 가사가 인디정신이 뭔지를 알려준다.

‘아이돌 먹으러 아이돌 키워/ 소나 돼지보다 맛있어/ 기막힌 건 이제 시작이야/ 밴드들도 PD에게 몸 팔아/ PR 잘해야만 넌 탑밴드/ 개처럼 살아도/ 늑대 행세를 해/ 허세에 취한 너 오디션 스타/ TV 노리개(I Don’t Wanna Be With You)’

이들은 심사위원 앞에서 떠는 록밴드를 보면서 ‘한국 록문화는 다 죽었다’고 슬퍼한다.

 

◆ DAEGU & INDIE & BUSKER

2000년대 후반 서울 홍대 앞 거리에서 태동한 인디뮤지션이 있다.

바로 ‘버스커(BUSKER)’. 버스커는 유럽이 종주국인데 행인을 상대로 공연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자립형 거리의 악사’를 뜻한다. 이들의 유전자도 인디스럽다. 이들은 롤랜드에서 제작한 40만원대 소형 스피커인 ‘스트리트 큐브’를 애용한다. 어쿠스틱 통기타와 아프리카 타악기인 젬베도 즐긴다.

국내의 대표적 버스커는 2011년 슈퍼스타K3 우승자인 버스커버스커. 이들이 국내발 버스킹 신드롬에 불을 댕겼다. 이들의 ‘벚꽃엔딩’과 ‘여수 밤바다’는 음원차트에도 올랐다. 버스커버스커에 이어 대구에서 ‘해령(海靈)’이란 록밴드로 활동했던 권정열과 윤철중이 만든 ‘십센치(10㎝)’도 버스커버스커처럼 홍대 앞 놀이터에서 버스킹을 시작했다. 이들은 지난 2월 버스커로는 처음으로 서울 올림픽대공원 체조경기장에서 단독공연을 갖기도 했다. 이 밖에 캐비넷싱얼롱즈, 일단은 준석이, 좋아서하는밴드 등도 폭넓은 지지자를 가진 홍대파 버스커.

대구의 경우 ‘마쌀리나’는 지역 대표급 버스커로 활동 중이다. 이들이 있게 한 할배급 골수 뮤지션은 누굴까.

밴드로는 단연 14년 경력의 ‘아프리카(AFRICA)’가 꼽힌다. 지역은 물론 전국 TOP밴드 대열에 드는 저력 있는 팀이다. 록밴드 ‘8·15’도 있었지만 서울로 올라간 뒤 해체됐다.

‘대구의 엄인호’로 불리는 리대희씨는 30년 이상 블루스 한 종목만 붙들고 있다. 거지블루스와 장구블루스, DMZ블루스 등 블루스 시리즈 앨범으로 주목받고 있다. 가락 스튜디오 대표인 이동우씨(53)도 지역 인디뮤직 산파 역이다.

한때 ‘민중음악가’로 불리다가 안치환처럼 박차고 나가 요즘 김광석 뮤지컬 ‘바람이 불어오는 곳’의 주연배우로 급부상한 박창근씨(41)도 동대구역광장, 2·28공원 등에서 4대강 반대 등 사회적 이슈를 내세우며 정치색 깊은 거리공연을 했다. 또한 인디밴드를 위한 ‘대구 팝액트’를 기획한 도노반(본명 송재돈)과 여가수 임정득씨도 인디파 뮤지션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제 대구의 대표적 인디뮤지션과 그들을 품고 있는 인디클럽의 면면을 찾아간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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