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국가재난과 지방자치

  • 구경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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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6-08 07:29  |  수정 2015-06-08 07:29  |  발행일 2015-06-08 제2면
9·11때 부시와 줄리아니를 보라
대통령-단체장 재난리더십 달라
갈등관계 보단 보완관계로 봐야

최근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서울지역의 한 의사가 1천500여명이 참여하는 집회에 참석했다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발표가 논란이 되고 있다.

청와대와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즉각 “사실이 아니다”며 반박했고, 일각에선 “공포감을 조장시켰다”며 박 시장을 비판했다.

지난 6일 이재명 성남시장이 메르스 1차 양성 판정을 받은 성남지역 의심환자의 개인정보를 SNS에 공개한 것도 마찬가지다. 불필요한 혼란이나 공포 확산을 막기 위해 병원과 지역 명칭을 비공개한다는 중앙정부의 방침과 배치됐다.

이번 사안을 두고 지방자치 전문가들은 지방자치와 국가행정의 차이점을 드러낸 것으로 본다. 2001년 9월11일 있었던 미국 뉴욕의 무역센터 쌍둥이 빌딩 테러 당시 뉴욕시장이었던 루돌프 줄리아니를 예로 든다.

쌍둥이 빌딩에 가해진 테러로 빌딩이 무너지면서 수천 명이 사망하거나 다쳤고 미국 전역이 공포에 휩싸였다. 부시 당시 대통령을 비롯한 참모들은 국가원수에 대한 보호 규정 때문에 멕시코만으로 긴급히 피신했다. 이때 나선 사람이 줄리아니 시장이다.

그는 사고 당일 현장을 직접 방문해 현장을 취재하던 기자를 붙잡고 “인근 지역에 사는 시민들은 되도록 북쪽으로 빨리 이동시키도록 해달라”고 호소했다. 줄리아니는 2~3시간마다 기자회견을 열며 뉴욕시민들과 실시간 소통해 사태 수습에 성공했다.

여기서 주목할 대목은 국가 전체 질서 유지를 중시하는 국가행정과 지역민의 안전을 우선시하는 지방행정 간 차이점이다.

국가 원수 보호 규정으로 부시 대통령이 멕시코만으로 대피한 것은 국가 존립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로 볼 수 있는 반면, 사고 현장에 직접 뛰어든 줄리아니 시장의 행동은 지역민의 일상을 책임져야 하는 지방행정의 특징에 충실했다고 볼 수 있다.

메르스 사태를 맞아 보건복지부를 비롯한 담당 부처가 “심각한 상황이 아니다”라며 진화에 나선 것은 공포감 확산을 막아 국가 질서를 유지하려는 국가행정 본연의 자세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반면 박 시장의 발언은 중앙정부가 재난에 신속히 대응하지 못하고 메르스 확산 관련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 불안해하는 시민들의 정서를 헤아린 행동이었다.

전문가들은 국가행정과 지방행정의 차이를 잘 묘사한 작품으로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을 들기도 한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민주화 시위가 한창이던 1980년대. 경찰력 대부분은 주민 안전과 직결되는 치안보다는 시위를 막는 데 동원돼 연쇄살인범을 놓치는 장면이 영화에 자주 나온다. 이는 우리나라가 국가경찰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다. 미국 등 지방자치가 발전한 선진국처럼 자치경찰제도를 취하고 있었다면, 시위를 막는 데 경찰력을 동원하고 싶다는 중앙정부의 요청이 있더라도 지자체장이 연쇄살인범을 잡아야 한다며 반대했을 수 있다.

메르스 우려가 점차 커지고 있다.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힘을 모아야 메르스를 이길 수 있다. 국가적 재난에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제 역할이 무엇인지 제대로 된 ‘통일 가이드라인’과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메르스 사태가 주는 교훈이다. 지금은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중구난방(衆口難防)이다.

구경모기자 chosim34@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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