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지진 대응 매뉴얼은 상당히 체계적이고 세분화돼 있다. 도쿄도는 지진 발생시 상황에 따른 대처법을 322쪽에 걸쳐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
일본은 지진 대응의 모범국으로 꼽힌다. 이른바 ‘불의 고리’로 통하는 환태평양 조산대에 속해 있어 그만큼 지진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 지진에 수없이 대처하며 쌓은 노하우를 통해 체계적인 대응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 결과 올해 4월 구마모토에서 규모 7.3의 강진이 발생했지만, 21년 전 고베 대지진(규모 6.9) 때보다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우선, 일본은 규모 4.0 이상의 지진이 발생하면 10초 이내에 이 사실을 전파하는 조기 경보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각 기관 등에 지진 발생 사실이 10초 안에 통보됨은 물론 휴대전화에서도 경보음이 울린다. 또 지진의 규모와 진앙지, 쓰나미 발생 여부 등의 각종 정보를 담은 문자메시지도 전송한다.
지진이 일어나면 P파와 S파 등 지진파가 발생한다. 진원에서 떨어진 지점의 지진계에는 P파가 먼저 도착하고, 5~20초 뒤 S파가 감지된다. 일본은 P파가 감지되면 그 즉시 지진 조기 경보 시스템을 발동해 지진 발생 사실을 신속하게 전파하는 것이다.
지진 멈추면 가스불·출구 확인
간이 랜턴·화장실 만드는 법 등
시간대별 생존법 상세히 설명
지진 10초 내 휴대전화 경보음
어릴적부터 대피요령 교육 반복
장소별 세분화…한글판도 있어
우리나라는 현재 기상청이 지진 발생 사실을 통보하면 국민안전처가 이를 취합해 최종적으로 재난문자를 발송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이 과정에서 몇 단계를 거치기 때문에 재난문자 발송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 기상청은 22일 재난문자 통보 체계를 개선해 2분 안팎에 문자를 받아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지만, 전문가들은 이마저도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공하성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P파가 S파보다 빠르게 도달하지만, 파괴력은 S파가 더 크다”며 “P파를 감지하자마자 S파가 도달하기 전에 지진 발생 사실을 알려야 국민이 최대한 발빠르게 대처해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일본의 지진 대응 매뉴얼도 상당히 체계적이고 세분화돼 있다. 일본 도쿄도의 지진 방재 매뉴얼인 ‘도쿄방재’는 무려 322쪽에 달한다. 이 책자는 △지진 발생 △발생 직후 △피난 △피난생활 △생활재건 등 시간대별 상황에 따라 지진 대처법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게다가 수돗물 보존방법과 신문지로 몸을 보온하는 법, 간이 랜턴·가스레인지·화장실 만드는 법, 적은 물로 청결 유지하는 법 등의 위기 대처법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한글판 책자도 마련돼 있다는 점이다.
책자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지진 발생 순간에는 적절한 판단이 어렵기 때문에 우선은 책상 밑으로 피하는 등 최우선으로 생명을 보호하고, 흔들림이 멈춘 뒤 출구를 확보한 다음 불씨 등을 확인하고 대피할 것을 안내하고 있다. 특히 자택은 물론이고 번화가, 학교, 역, 공항, 지하상가, 경기장, 열차 내, 자동차 내, 터널 안, 교량 위 등 장소별로도 대피 방법을 세분화했다.
번화가에서는 “낙하물로부터 몸을 보호하고 빌딩 붕괴에 주의하며 공원 등 안전한 장소로 이동하라”, 터널에서는 “천장이나 벽면 붕괴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전방에 출구가 보이면 저속으로 빠져나가고, 긴 터널인 경우 왼쪽에 차를 정차하고 키를 꽂아둔 채 비상구로 탈출하라”는 식이다. 시민들은 어렸을 적부터 각종 교육을 통해 이 같은 매뉴얼을 충분히 익히고 있다.
공하성 교수는 “지금까지는 큰 지진을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대응이 미숙할 수는 있지만, 지금부터는 달라져야 한다. 안전은 미리 준비할 때 지켜질 수 있다”며 “지진 경보 시스템을 개선하고, 체계적인 대응 매뉴얼을 마련해 시민들이 숙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광일기자 park85@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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