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차별에 맞서다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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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3-03   |  발행일 2017-03-03 제33면   |  수정 2017-03-03
■ 3·8 세계여성의 날 맞아
20170303

1908년 美 여성 노동자들이 궐기한 날
선거권·노동환경 개선 요구 시위 기념

韓 근대여성, 사회 곳곳 주체적 삶 개척
대구 여성들 교육·국채보상운동 활약


3월8일은 ‘세계여성의 날’이다. 세계여성의 날은 세계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해 1975년 UN에서 지정한 기념일이다. 세계여성의 날 제정은 1908년 열악한 작업장에서 화재로 불타 숨진 여성들을 기리며 미국 노동자들이 궐기한 날에서 시작됐다. 1908년 3월8일 미국의 여성노동자 1만5천여 명은 뉴욕의 루트커스 광장에 모여 선거권과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대대적인 시위를 벌였다.

그 당시 미국의 여성노동자들은 불결하고 먼지로 뒤덮인 작업현장에서 하루 12~14시간씩 고된 노동을 해야 했다. 남자만큼의 고된 노동을 하고 있지만 선거권과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는 여성노동자들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들은 굶지 않기 위해 일했으나 인간 이하의 삶을 강요받아왔다. 이런 와중에 작업장에서 화재로 힘겨운 삶을 살던 여성들이 숨진 것이다. 여성의 정당한 권리를 찾기 위한 시위는 결국 1910년 ‘의류노동자연합’이라는 조직을 탄생시켰다. 1911년에는 3월8일을 ‘세계 여성의 날’로 선정했으며 이후 이 날을 기념해 세계 곳곳에서 여성 관련 행사를 펼쳤다. 60여년 후 UN에서 매년 이날을 세계 여성의 날로 지정했으며 세계 각국에 여성권익에 대한 관심을 확산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해왔다.

그렇다면 이처럼 여성의 지위를 향상시키고 권익을 찾기 위한 여성들의 활동이 미국에서만 있었을까. 물론 아니다. 한국에서도 근대부터 여성들의 주체적 삶을 향한 몸짓은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당시 가부장적인 사고로 인해 여성교육이 활발하게 이뤄지지는 못했으나 대구에 온 선교사들이 여성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학교를 설립했으며 이것이 대구 여성교육의 시초가 됐다. 교육을 받은 여성들이 늘어나면서 여성들의 사회적 활동은 점점 활발해졌다.

교육분야에서의 여성활동도 두드러졌다. 대구 최초의 초등학교인 희도초등과 대남학교 유치원 설립에 앞장선 김울산, 한국인이 세운 최초의 유치원 격인 싯달유치원을 설립해 유아교육에 이바지한 이명득, 독립인재육성을 위해 전 재산을 희사해 김천고보를 설립한 육영사업가 최송설당, 기생이었으나 여성교육에 혼신의 힘을 쏟은 염농산 등은 지역의 근대교육 발전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사회운동에 있어서도 여성들의 움직임은 여러 곳에서 감지됐다. 일제강점기에 여성들은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1919년 3월8일 열린 대구 만세운동에 수많은 여성들이 참여했다. 또 일본이 식민지배를 강화하고 조선경제를 일본에 예속시키기 위해 차관을 들여오자 국채를 스스로의 힘으로 갚자는 국채보상운동이 대구에서 시작됐다. 이때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는 전국 최초로 여성조직을 만들어 국채보상운동에 여성들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항일독립운동가인 남자현·유인경·조성녀·현계옥·김락·김우락·허은, 3월8일 만세운동에 앞장섰다가 체포된 임봉선, 국채보상운동 남일동패물폐지부인회 리더였던 정경주 등은 다양한 방식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함으로써 남성 못지않게 강한 애국정신을 보여주었다.

문화예술분야에서도 기생을 중심으로 예술분야에서의 여성 활동이 점점 활발해졌으며 6·25전쟁 전후로 대구에 전국에서 피란민들이 몰리면서 문화예술이 지역에서 꽃피기 시작하자 여성들의 활동도 점점 활기를 띠었다. 조선 최초의 단발기생으로 영화배우로도 활약한 강향란, 경북출신 여기자 1호로 휴전협정을 취재한 유일한 종군여기자인 장덕조, 영남 최초의 여성성악가였던 추애경, 한국 최초의 여성감독인 박남옥, 대구 최초의 대중가수인 장옥조, 경북 첫 신춘문예 등단 작가인 백신애, 궁중무용과 민속무용의 맥을 이어온 정소산, 이호우의 동생으로 오누이 문인으로 많은 작품을 남긴 시조시인 이영도, 동편제 창법의 국보적 존재로 흥보가 명창인 박녹주, 국립전통예술학교를 세워 많은 국악인을 길러낸 국악발전의 어머니 박귀희 등이 그 당시 명성을 날렸다. 이외에 민간여류비행사 1호인 박경원, 경북 첫 개업여의사였던 김선인, 금녀의 영역에 도전해 대구여자경찰서 초대 서장을 지낸 정복향 등도 지역에서 여성들의 지위 향상에 뛰어난 업적을 남긴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재>대구여성가족재단은 ‘지역여성사 자원의 발굴 및 활용방안-근대기 여성인물 및 여성사료를 중심으로’라는 연구보고서에서 “대구 여성은 희생과 헌신을 하기도 했지만 사회가 필요로 할 때 적극적으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는 진취적인 개척자로서의 모습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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