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정의 소소한 패션 히스토리] 검은색(Black), 심플&시크…여성복에 파고든 블랙의 美

  • 한희정 계명대 패션디자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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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4-05 07:46  |  수정 2024-04-05 07:47  |  발행일 2024-04-05 제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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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발표된 샤넬의 리틀 블랙 드레스.<출처: FIT Museum>
1926년 코코 샤넬 '리틀 블랙 드레스'
남성복에 쓰이던 검정 여성복에 도입
우아함·세련미 대표 아이템으로 등극

美블랙팬서당, 유니폼에 검은색 차용
흑인차별에 저항 강인한 이미지 강조
다양한 매력 가진 블랙 대중 사랑받아


가장 어두운 색인 검은색은 패션에서 가장 세련되고 우아한 이미지를 담고 있어 미적인 효과뿐 아니라 시각적으로 오염이 잘 보이지 않고 무난하게 입을 수 있는 실용적 이유로 대중적으로 선택이 많이 되는 색이다. 검은색은 다양한 문화와 맥락, 분야에 걸쳐 죽음과 애도, 권위와 권력, 우아함과 세련미, 격식과 진지함, 신비로움, 반항과 반란, 어두움과 두려움, 미니멀리즘(Minimalism) 등 다양한 의미와 상징성을 나타내며, 가장 밝은색인 흰색과 함께 대비되는 의미로 선과 악, 계몽기와 암흑기 등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특히 현대 패션에서 검은색은 강인한 이미지와 다소 반항적인 느낌 그리고 고급스러움을 표현하는 데 다수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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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팬서당의 검정 의복. 흑인 인권운동가 휴이 뉴턴의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 법원 앞. <스미소니언 국립 아프리카계 미국인 역사 및 문화박물관 소장품>
고대 이집트, 로마 시대에는 검은색 옷이 매우 드물었다. 깊고 어두운 검은색을 만드는 염색 방법의 수준이 높지 않았고 왕족과 귀족이 권력과 권위, 사치스러운 이미지를 위해 소수 착용하는 정도였다. 고대 이집트에서 검은색은 죽음과 부활의 신이자 다산, 농업, 부활, 생명과 초목의 신인 오시리스(Osiris)를 나타내는 색으로 죽음, 밤, 인내, 부활을 상징했다. 이 시기 검은색이 죽음의 색인 동시에 생명을 의미했던 것은 매년 나일강 범람으로 남겨져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검은색의 흙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중세, 르네상스, 바로크 시대를 거치면서 검은색은 우아함과 격식의 의미로 벨벳, 실크와 같은 고급 직물에 적용되었고 레이스, 보석, 자수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상류층의 패션에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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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 검은 드레스를 입은 빅토리아 여왕. <출처: eternalgoddess.co.kr>
현대 사회에서 검은색은 대표적으로 죽음과 그에 대한 애도를 상징하여 장례 의복으로 거의 규정화되었다. 지금처럼 보편화되지는 않았으나 검은색 옷으로 고인을 애도한 사례를 보면 고대 로마에서 고인이 된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존경심을 표시하고 애도하기 위해 검은색 가운 형태의 토가(toga)를 입었고,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여왕은 1861년 남편인 앨버트 왕자가 사망한 후 남은 생애 동안 검은색 드레스를 착용하여 그 죽음을 애도했다고 한다.

검은색 정장은 현재 남·여성복 모두에서 가장 기본적인 차림 중 하나이다. 왕족과 귀족의 시대였던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 시대의 남성복은 밝은색과 레이스·보석 등 여성복 못지않게 화려함을 나타낸 것을 볼 수 있다. 1789년 프랑스 혁명 무렵부터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귀족의 밝은색 의복에 반발하여 어두운 색의 남성복이 대두되었고. 19세기를 거쳐 검은색 등 어두운 색의 정장은 더욱 널리 인기를 끌게 되었다.

그 후 검은색은 1926년 코코 샤넬이 발표한 '리틀 블랙 드레스(little black dress)'가 대중화되면서 여성복에서도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는 단순하지만 우아한 이미지가 있으며, 일상적 생활이나 차려입어야 하는 여러 행사 등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입을 수 있어 꼭 가져야 하는 필수품이 되었다. 이에는 20세기 초 꼭 신체를 조이는 불편한 의복에서 여성을 해방시키면서 현대적 아름다움으로 유지하려는 샤넬의 가치관이 담겨 있는 것으로, 단순하지만 멋있는 검은색의 남성복 정장 개념을 여성복에 적용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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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정 (계명대 패션디자인과 교수)
1926년 패션잡지 보그(Vogue)는 리틀 블랙 드레스를 '샤넬의 포드(Ford)'라 언급하여 계층에 상관없이 이 스타일을 편하게 입을 수 있음을 나타냈다. 드레스가 일상복에서 훨씬 더 흔하였고 화려한 장식과 색상의 패션이 유행했던 당시 샤넬이 발표한 리틀 블랙 드레스는 새로운 패션의 지평이었다. 이는 이후 20세기 모더니즘이 확산되면서 시대적 감성에 맞게 응용되어 많은 여성들에게 사랑을 받았고, 현대적 미니멀리즘의 대표색인 검은색은 단순하면서 세련되고 아름다운 색으로 패션계에서 사랑받고 있다.

20세기 검은색 패션이 나타내는 대표적 상징성은 반항과 저항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1966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서 설립된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권력 정치 조직인 검은 표범당, 즉 블랙 팬서당(Black Panther Party)은 검은색 베레모, 선글라스, 가죽 재킷을 혁명의 의미로 착용하였다. 이들은 전략적, 상징적 유니폼으로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을 가볍지 않고 존엄성으로 대해주기를 원하여 강하고 단정한 스타일로 유니폼을 구성하였다. 당시 사회문화적으로 만연했던 흑인차별에 저항하고 도전하는 이념으로 평등에 대한 열망 또한 반영되어 흑인들의 힘과 자부심에 대한 믿음 또한 포함하였다.

블랙 팬서당의 단정한 검은색 패션과 달리 찢어지고 날카로운 장식의 검은색 가죽 재킷은 1980년대 펑크 패션의 대표적 품목이었다. 또한 블랙 블록(Black bloc)이라 하여 80년대 낙태 제한, 원자력 발전, 불법 거주자 퇴거에 반대하는 시위나 무정부주의 반세계화 운동 등의 시위에서 검은색의 옷, 마스크, 스카프 등으로 얼굴을 가려 시위 참가자의 신원을 감추고 식별을 어렵게 하는 목적으로 착용하는 전략이 있었다.

색상도 채도도 없는 검은색은 다른 화려한 색보다 강한 이미지를 발현하며, 현대미와 전통미, 고급스러움과 반항, 권위와 자유로움, 어두우면서도 가장 화려함을 함께 나타내고 있다. 이렇듯 단조롭게 보이지만 전혀 상반된 이미지를 내포하며 소재 사용이나 의류에 따라 다양하게 연출할 수 있는 검은색은 마치 무지개와 같은 매력을 가진 색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계명대 패션디자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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