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 전북 무주 내도리 앞섬마을…육지 속 섬마을서 만날 '봄꽃'은 약속을 잊은 듯…

  •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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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4-05 07:57  |  수정 2024-04-05 07:58  |  발행일 2024-04-05 제15면
금강이 휘돌며 만든 강변 복숭아밭
벚꽃 진 후 피어나는 복사꽃·홍도화
앞섬다리 주변 밤하늘 반딧불이 명소
벼랑을 쪼아 낸 '학교 길' 질마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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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섬다리 주변은 밤하늘을 수놓는 반딧불이를 감격적으로 만날 수 있는 명소다. 그 강변에 너른 꽃밭이 있고 철 따라 꽃들이 무더기로 핀다. 봄꽃을 보겠다고 왔지만 마음만 급한 탓에 한 송이도 피지 않았다.

복사꽃을 보겠다고 앞섬으로 왔다. 마음만 급한 탓에 꽃은 한 송이도 피지 않았다. 구미와 김천을 지나는 동안 벚꽃은 8할 정도의 개화를 보여 주었다. 그러나 추풍령을 넘으면서 기대는 흔들리기 시작했고 스산한 영동 땅을 가로지르며 무주로 들어서자 마음은 잔잔해졌다. 무주읍의 벚꽃은 6할 정도 피었다. 잠두마을의 잠두길 산벚은 조금의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부남면 굴암리의 벚꽃길은 4할 정도 환했다. 벚꽃이 져야 복사꽃이 핀다.

◆무주읍 내도리 앞섬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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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이 휘돌며 만들어 놓은 앞섬마을의 강변 땅이 모두 복숭아밭이다. 주민의 9할이 복숭아를 키운다고 한다.

무주읍으로 향하는 압치재를 저 앞에 두고 내도로로 들어선다. 내도리(內島里)로의 진입이다. 내도리는 육지 속의 섬이라는 뜻이다. 진정 섬을 만나려면 얼마나 가야 하나. 한동안은 참으로 좁장한 산길이다. 연두로 물든 수목들과 부지런히 일구어 놓은 밭뙈기들의 너수룩한 모습에 신산한 마음이 빵긋해진다. 작은 방죽이 있다는 방죽안(지내)마을 버스정류장을 지나 산속 깊이 자리한다는 산의마을 표석을 지난다. 내도초등학교와 학교 앞 삼거리의 내동슈퍼 사이를 통과하며 문 닫은 지 오래되어 속절없이 낡아가고 있는 둘의 얼굴을 본다. 고요하고 아기자기한 내동마을을 지나 제법 긴 길을 서서히 내려가면 뒷섬마을이다. 마을 앞으로 드디어 금강이 나타난다. 후도교를 건너면 앞섬마을이다. 뒷섬은 후도(後島), 앞섬은 전도(前島) 마을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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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섬과 뒷섬을 잇는 후도교를 건너 오른쪽으로 내려서면 강변을 따라 '학교 가는 길'이 이어진다. 길섶에 자줏빛 광대나물 꽃이 무리 지어 피어나 있다.

앞섬마을 뒤편의 소나무 동산을 스친다. 수려한 소나무들과 함께 깨끗한 무덤 몇 기가 양지에 누워있다. 앞섬 체험센터를 지나고 복숭아집하장을 지나면 금강을 가로지르는 앞섬다리에 닿는다. 강 저편에 무주의 진산인 향로산(香爐山)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다. 다리 건너 향로봉 서남자락의 수리재를 넘으면 바로 무주 읍내다. 앞섬다리 끝자락에 마을 표지석이 있다. 그 위로 마을 전체를 담은 커다란 사진이 빛바랜 채 걸려 있다. 사진은 금강이 마을을 크게 감싸고 돌아나가는 전형적인 물돌이 지형을 보여준다. 육지속의 섬이 맞다. 금강이 휘돌며 만들어 놓은 강변 땅이 모두 복숭아밭이다. 주민의 9할이 복숭아를 키운다고 한다. 마을 안에는 '홍도화 가로수 길'도 조성되어 있다. 마을 특산품인 복숭아를 널리 알리기 위해 붉은 겹꽃이 화려한 홍도나무를 심어 놓았다. 복사꽃도 홍도화도 벚꽃이 져야 피어난다.

마을 표지석 맞은편 배 모양의 조형물에 시인 모윤숙의 시가 새겨져 있다. '세찬 물결 달려와/ 그 귀한 목숨을 삼켜 갔으니/ 엄마 엄마 숨차게 허덕이다가/ 애처롭게 사라져간 넋들이여…' 앞섬다리가 생기기 전 앞섬의 아이들은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 읍내 학교로 갔다. 1976년 6월8일 갑자기 폭우가 내렸고, 수업을 마친 아이들이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던 중 불어난 강물에 배가 뒤집혔다. 이 사고로 18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후 대통령의 명으로 건설된 다리가 앞섬다리다. 곁에는 '수난한 곳'이라는 비석과 1963년 개봉된 신상옥 감독의 영화 '쌀'의 촬영지라는 한국영상자료원의 현장비가 있다. 신영균, 최은희, 허장강, 김희갑 등 개성파 배우들이 출연한 작품이다. 금산 방우리의 실제 이야기를 담은 영화로 촬영의 대부분은 내도리에서 이뤄졌다고 한다.

◆반딧불이 노는 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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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마바위. 학부모들이 정과 망치로 벼랑을 쪼아 낸 '학교 길'이다. 뒷섬마을과 산의, 내동마을 등의 학생들이 이 길을 걸어 학교에 갔다.

전도마을회관 바로 옆길로 빠져나가면 '앞섬강변길'이다. 강변 둑길을 따라가면 수력발전소의 낮은 보쯤부터 금산 방우리다. 여기서부터 거의 벼룻길이라 할 수 있는 좁은 도로가 마을까지 이어진다. 천천히 눈도 깜빡이지 말고 달려야 하는 길이다. 숨을 쉬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것은 곡류하는 강변을 따라 늘어선 기암절벽의 산과 시퍼런 강물과 무심한 하늘뿐이다.

방우리에서 앞섬다리로 이어지는 금강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어름치의 서식지로 유명하다. 그리고 반딧불이 명멸하며 밤하늘을 수놓는 장면을 감격적으로 만날 수 있는 명소다. 사실 무주에서 반딧불은 어디서나 볼 수 있다. 구천동 계곡에서도, 반디 랜드가 있는 남대천에서도, 칠연계곡 아래에도 반딧불이가 출몰한다. 이 중에서 가장 많은 반딧불이를 볼 수 있는 곳이 내도리 앞섬다리 부근이라 한다.

앞섬 강변에 아주 너른 꽃밭이 있다. '무주 아일랜드 생태 테마파크'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꽃 모양으로 구획을 나눈 꽃밭은 봄부터 가을까지 온갖 꽃이 핀다. 샤스타데이지, 펜스테몬, 꽃범의 꼬리, 부채붓꽃, 아스타, 수국, 에키네시아로즈, 청화쑥부쟁이, 핑키윙키 등 22가지 꽃들이 식재되어 있다. 여름이면 늪지에 노랑어리연이 피어난다. 가을이면 목교 주변 수로 가에 차새풀과 구절초, 수크령, 가는 억새, 꿩의 깃 햇살 등이 피어난다. 지금, 맞은편 산자락에 진분홍 진달래가 파르르 빛을 낸다.

◆질마바위와 '맘 새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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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섬마을 소나무 동산. 수려한 소나무들과 함께 깨끗한 무덤 몇 기가 양지에 누워있고 아래로 복숭아밭이 넓게 펼쳐진다.

앞섬과 뒷섬을 잇는 후도교를 건너 오른쪽으로 내려서면 강변을 따라 좁은 길이 이어진다. 길섶에 자줏빛 광대나물 꽃이 무리 지어 피어나 있다. 다른 꽃들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자신들이 피지 않으면 안 될 곳을 골라 피어난다는 광대나물 꽃, 이곳은 선택받은 봄맞이의 땅이다. 벼랑에는 아주 드문드문 산벚이 피었다. 그 투명한 분홍 너머로 벼랑의 바위 사이에 맞춤으로 놓인 꿀통들을 본다. 산벚과 꿀통의 관계는 분명 긴요한 듯한데, 벌이 보이지 않는 봄이다.

후도교에서 300m쯤 떨어진 곳에 질마바위가 있다. 성곽의 문처럼 생긴 거대한 바위다. 바위 문은 정과 망치로 벼랑을 쪼아 낸 '학교 길'이다. 1970년대 초반 새마을사업이 한창일 때, 자식들이 강을 건너지 않고 안전하게 무주읍내의 학교로 갈 수 있도록 부모들이 직접 만들었다. 뒷섬마을과 산의, 내동마을 등의 학생들이 이 길을 걸어 학교에 갔다. 산의에서는 새벽밥을 먹고 나서야 등교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부모들은 읍내 장터에 내다 팔 곡식을 등에 지고 이 길을 걸었다. 강변 길 끝 읍내로 이어지는 고갯길은 너무도 힘들었다고 한다. 노고가 한눈에 보인다. 바위 아래에 작은 비석이 있는데 '1971. 5. 20'이라 새겨져 있다. 뒷섬에서 앞섬으로, 다시 무주읍으로, 두 번이나 나룻배를 타야 했던 아이들은 이날부터 걸어서 등교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 이 길은 금강 '맘 새김 길' 중 2코스인 '학교 가는 길'이다. 이 길을 걸어서 학교에 다닌 아이들은 이제 60-70대 노인이 되었을 것이다. 학교 가는 길에 제비꽃 한 포기, 민들레와 봄맞이꽃이 흔하다. 저것은 쑥인가. 어릴 적에는 냉이며 쑥을 캐러 무시로 다녔건만 왜 이제는 쑥을 알아보지 못할까. 신발주머니 달랑이며 학교 가던 하많은 아침들도 아득하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 Tip

경부고속도로 서울방향으로 가다 황간IC에서 내린다. 황간삼거리에서 9시 영동 방향으로 가다 마산삼거리에서 좌회전해 마산교차로에서 오른쪽 대전, 영동방향 4번 국도에 오른다. 계속 직진하다 영동교차로에서 장수, 무주방향 19번 도로를 타고 직진한다. 봉소교차로에서 오른쪽 내도리, 압치 방면으로 빠져나가 압치버스정류장 앞에서 우회전해 내도로를 타고 가면 된다. 산의마을, 내도초등학교, 내동마을, 뒷섬마을 지나 후도교를 건너면 앞섬마을이다. 내도로는 앞섬마을을 관통해 앞섬다리를 건너 북고사 가는 길 초입에서 끝난다. 학교 가는 길은 후도교에서 질마바위, 북고사, 무주고등학교까지 약 3㎞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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