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전신 마비 화가 이환상씨 (1) "손등으로 그린 그림, 내게 다시 자유 주네요"

  • 조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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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4-12 07:27  |  수정 2024-04-12 07:28  |  발행일 2024-04-12 제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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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환상 작가의 자화상. 침대에 앉아 손등에 펜을 고정시켜 그림을 그리는 모습.

인간이 느끼는 감정을 크게 네 가지로 나눈다면 희로애락(喜怒哀樂)이다. 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 이 중 무엇 하나라도 빠지면 인간은 완성되지 않는다. 좋은 감정도, 나쁜 감정도 모두 우리의 일부다. 이 감정들은 우리가 존재하는 한 항상 함께한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기쁨보단 슬픔이, 즐거움보단 노여움의 감정이 마음속에 오래 남는 법이다. 함부로 정의할 수 없는 안타까운 일들이 들이닥치면 우리는 큰 슬픔에 빠진다. 때론 그 슬픔과 고통, 절망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어두운 터널 속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어떤 말도 위로가 안 되는 일을 겪었을 때 느끼는 감정은 결코 간결하고 명쾌한 단어로 표현할 수 없다.

이처럼 우리는 누구나 한 번씩은 겪어본 감정, 슬픔에 대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인간이 배우기 가장 어려운 것 또한 슬픔이다. 왜일까. 자신의 슬픔에는 한없이 무너지는 인간이 타인의 고통에는 그토록 무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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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환상 작가의 갤럭시탭 그림 폴더. 300개가 넘는 그림이 들어 있다. 천윤자 시민기자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잘 우는 우리가, 소설 속 비극의 주인공에게 몰입하는 우리가, 자신에게 상처를 준 이들을 떠올리면서 복수를 기획하기도 하는 우리가 타인의 슬픔에는 무감각하다. 자신 말고 다른 세계에 들어가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외면하고 싶은 불편한 사실이지만 인간이 그렇다.

그래서 우리가 평생 동안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건 슬픔에 대한 공부다. 신형철 평론가는 자신의 산문집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서 "트라우마에 관한 한 우리는 주체가 아니라 대상에 불과하다. '나는 트라우마를…'이라는 문장은 애초에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오직 '트라우마는 나를…'이라고 겨우 쓸 수 있을 뿐이다"라고 썼다.

그러면서 말한다. "한 인간이 어떤 과거에 대해 '주체'가 아니라 '대상'이 되어버리는 이런 고통이 얼마나 참혹한 것인지 당사자가 아닌 이들은 짐작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이 공부하고 더 열심히 상상해야 하리라. 그러지 않으면 그들이 '대상으로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는다"고.

최근 재활요양병원에 입원 중인 한 작가를 만났다. 그는 어깨 아래 전신이 마비된 채 5년째 병상 생활을 하고 있다. 만나기 전부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괜한 질문으로 아픈 기억을 끄집어내는 건 아닐지, 내 시선이 과하게 동정 어린 시선으로 비치는 건 아닐지 등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 중에도 상처를 다시 쑤시는 것 같아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그의 그림에 신발과 발이 자주 등장하길래 그 이유를 물어봤다가 금방 후회했다. 조금만 생각했다면 답을 알 수 있었을 텐데.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슬픔을 공부한다. 이 공부는 어렵지만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가 한평생 해야 할 일일 것이다. 우리도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로부터 자유롭지 않기도 하니까.

이번 위클리포유에서는 병상에 누워 그림을 그리고 있는 작가 이야기를 전한다. 봄이 왔는데 병원에 있는 그의 세상이 너무 외롭고 차갑지 않았으면 한다. 슬픔에 대한 공부가 부족했던 나의 죄를 벌하며 그의 건강도 속히 회복되길 바라본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천윤자 시민기자 kscyj8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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