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우석의 電影雜感 (전영잡감) 2.0] 용산참사 다룬 ‘두 개의 문’ 스핀오프 ‘공동정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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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2-02   |  발행일 2018-02-02 제43면   |  수정 2018-02-02
그날 살아남은 이들의 엇갈린 기억을 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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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정범’의 스틸컷과 포스터(작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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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20일을 잊을 수 없다. 용산4구역 철거현장 화재 사건, 또는 용산 참사로 불리는 사건이 발생한 그날. 아마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와 함께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또 아파하는 사건이 아닐까. 서울 용산구 한강로 2가에 위치한 남일당 건물 옥상에서 점거농성을 벌이던 세입자와 전국철거민연합회 회원들, 경찰, 용역 직원들 간의 충돌이 벌어지는 가운데 발생한 화재로 세입자 2명, 전철련 회원 2명, 경찰특공대 1명이 사망하고, 23명이 부상(경찰 16명, 농성자 7명)을 입었다. 사고 당시의 폭력 문제, 용역 직원, 안전 대책, 과잉 진압 여부 등에 대한 논란과 함께 검찰의 수사가 이어졌고, 이후 수사 결과, 홍보 지침, 왜곡 시도 등에 대한 논란은 사건 발생 9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진행 중이다.

2012년 6월21일 처음 공개된 장편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은 당시 용산 참사를 다룬 첫 극장 개봉작이었다. 용산참사로 시작해 5·18 광주민주항쟁, 6월 항쟁 같은 대한민국 역사의 중요한 순간들을 사적인 기억으로 담아 낸 문정현 감독이 ‘용산’(2010),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던 철거민 3명의 삶을 통해 국가 폭력의 과정을 생생히 담아낸 김청승 감독의 ‘마이 스윗 홈: 국가는 폭력이다’(2010), 용산참사의 기억을 가슴에 묻고 여전히 남일당 건물을 지키는 23명의 371일을 기록한 ‘23X371일: 용산 남일당 이야기’(2010), 사건 이후 355일간의 투쟁을 기록한 장호경 감독의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끝나지 않은 이야기’(2009) 같은 용산 참사 다큐멘터리들이 연이어 제작되었지만 극장에 정식으로 걸린 영화는 ‘두 개의 문’이 처음이라 진상 규명에 대한 목소리를 다시 높이는데 큰 기여를 할 작품으로 기대를 모았다.


2009년 1월20일 같고도 다른 그날 얘기
2012년 첫 공개된 장편 다큐 ‘두 개의 문’
경찰 특공대원의 시선으로 사건 재구성
용산 참사를 다룬 최초의 극장 개봉작

다큐멘터리로는 이례적 속편 ‘공동정범’
생존 철거민들의 참사 이후 시간에 주목
“나 때문에 모두가 죽었을까” 아픈 자문
개인 삶에 파고든 국가폭력 흔적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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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문’ 포스터.

용산 참사를 다룬 일련의 작품들이 사건이 발생하게 된 경위를 추적하거나 철거민의 투쟁과정을 담는데 급급했다면 ‘두 개의 문’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는 작품이다. 바로 당시 진압작전에 참여했던 경찰 특공대원의 시선으로 사건을 재구성한 것이다. 현장을 지켰던 카메라(컬러TV, 사자후TV, 채증동영상, CCTV)에 담긴 영상들은 농성 시작부터 진압까지의 25시간을 관객들이 거의 실시간으로 체험하게 한다. 그에 더해 2010년 8월부터 진행된 법정 재판 과정을 충실히 담아내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이분법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용산참사를 바라보게 했다. “망루 구조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없다” “시위대가 휘발유나 시너 같은 인화물질을 소지하고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만약 내가 팀장쯤 되고 경력도 오래 되었다면 진압작전을 보류했을 거라고 생각한다”라는 경찰 특공대원의 생생한 증언은 그들 역시 국가 공권력의 피해자임을 드러내며 무려 3천쪽의 수사기록, 채증 영상의 일부를 공개하지 않은 채 진행된 재판 과정은 국가 공권력이 실제 어떻게 행해지는지를 명백하게 보여준다. 마치 극영화처럼 포스터에서 경찰 특공대원으로 분한 웹툰 ‘송곳’의 작가 최규석도 기억에 남았다.

지난 1월25일 6년 만에 다시 찾아온 ‘공동정범’은 ‘두 개의 문’의 스핀 오프라고 한다. 스핀 오프는 기존의 영화에서 등장인물이나 설정을 가져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을 말한다. 다큐멘터리로는 이례적으로 속편이 제작된 것이다. 제8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첫 공개되면서 최우수다큐멘터리상과 관객상을 받는 것을 시작으로 제42회 서울독립영화제 우수작품상, 독불장군상 동시 수상, 제5회 무주산골영화제 무주관객상, 제4회 춘천다큐멘터리상 장편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개봉 전부터 평단과 관객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아왔다. 전작 ‘두 개의 문’이 경찰 특공대원의 진술, 수사기록, 법정 재판기록, 채증 영상 같은 다양한 자료들을 통해 용산참사의 진실을 재구성하는 작품이었다면 후속작 ‘공동정범’은 지금껏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참사 이후의 시간에 주목한다. 바로 망루에서 함께 살아남은 이들의 엇갈린 기억을 쫓으며 개인의 삶에 파고든 국가폭력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아낸 것이다. 같은 상처를 안고 있는 이들이 서로를 원망하면서 비수 같은 말을 쏟아내다 결국 자신마저 의심하고 자책하게 되는 장면들은 용산 참사와 전작을 기억하는 관객들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킨다.

‘두 개의 문’과 ‘공동정범’을 만든 제작사 연분홍치마는 사실 다큐멘터리 전문 제작 집단은 아니었다. 2004년 출범 당시에는 여성주의 세미나 그룹이었다. 여성주의와 페미니즘, 섹슈얼리티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모여 세미나를 열거나 영화와 관련된 사회 전반 이슈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나누었다. 그러다 이론도 중요하지만 현장에서 활동해보자는 문제의식의 출발이 기지촌 성매매 여성과 포주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첫 다큐멘터리 ‘마마상’(2005)이었다. ‘두 개의 문’과 ‘공동정범’을 배급한 시네마달도 꼭 기억해두고 싶다. 세월호 참사를 다룬 ‘업사이드 다운’(2012)과 ‘다이빙벨’(2014)을 연이어 개봉하며 블랙리스트에 올라 폐업 위기를 맞았던 독립영화 전문 제작·배급사로 지난해 5월 열린 제14회 서울환경영화제에서 ‘블랙리스트 어워드’를 수상했다.

지난해 12월29일 용산 참사 사건 철거민 가운데 현재 재판을 받는 1명을 제외한 25명이 특별 사면되었다. 신은 진실을 알지만 끝까지 기다리신다고 말한 이가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였던가. “나 때문에 모두가 죽었을까?”라고 자문하며 그날 죽은 동료들을 버리고 나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9년이 지난 지금도 고통 받는 이들의 상처가 아물 날이 올는지. ‘두 개의 문’은 우리를 모두 용산 참사의 ‘목격자’로 만들었다. ‘공동정범’은 우리를 모두 용산 참사의 ‘공동정범’으로 만들 것이다. 침묵하고 있다면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밖에 되지 않을 테니까. 자,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할까.

독립영화감독, 물레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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