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응상의 ‘천 개의 도시 천 개의 이야기’] 중국 쿤밍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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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3-02   |  발행일 2018-03-02 제37면   |  수정 2018-06-15
온화한 꽃의 도시…村마다 생활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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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통사 팔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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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남민족촌 다이족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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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롱먼석굴의 입구 달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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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움이 느껴지는 취호공원.

“중국은 왜 안 예쁠까? 사진으로 보면 정말 예쁘던데.” 쿤밍 시내에 들어서면서 집사람이 뜬금없이 이런 넋두리를 한다. 그러곤 쿤밍국제공항 라운지 한가운데를 장식하고 있는 플라스틱 조화를 예로 들며, 시내도 다르지 않다고 푸념이다. 고도성장의 그늘이리라. 가령 뉴욕 뺨치는 초고층 건물과 최신식 시설이 번듯하지만 조금만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허름한 공동주택에 칸막이 없는 화장실이 버젓하다. 마치 웃자라서 바지와 소매가 짧아진 아이 같다고나 할까. 해발 1천891m에 자리 잡은 상춘(常春) 도시 쿤밍은 다르지 않을까? 원래 다양한 민족이 살았던 역외의 지역이니까. 쿤밍의 역사를 조금 알고 있는 나로서는 중국의 여느 도시와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이곳을 찾았다.

쿤밍은 인구 667만 명(2015년 기준)의 대도시로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 등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윈난(雲南)성의 성소재지다. 또 중국 서남부 윈구이(雲貴) 고원의 산에 둘러싸여 있는 고원도시로, 제일 높은 궁왕산(拱王山)은 해발 4천248m에 이른다. 아열대 지역에 속해 있기 때문에 혹서나 혹한 없이 사계절 내내 봄처럼 온화하여 춘성(春城), 또는 ‘꽃의 도시’로 불린다. 그래도 쿤밍의 가장 큰 특징은 다민족 도시라는 점이다. 상주인구 통계를 보면 한족이 87%나 되지만 이 지역은 오랫동안 여러 민족이 공존했던 곳이며, 이것이 나의 기대감을 높인 배경이다.

다민족 공존…고원의 산에 둘러싸여
고층건물 뒤로 골목 들어서면 진면목
외곽 운남민족촌 25개 소수민족 체험
복장·음식 등 생활 자체로서 즐길거리

아찔한 롱먼석굴 가는 길 경치에 탄사
1671년 평서왕이 애첩위해 지은 태화궁
대가의 정원 같은 가장 오래된 원통사
사찰 나와 걸으면 취호공원 낭만 물씬


쿤밍의 중심가 진마비지팡(金馬碧鷄坊) 근처에 여장을 풀고, 거리 구경을 나섰다. 진마비지팡은 쿤밍 중심축에 자리한 싼스제(三市街)와 진비루(金碧路)가 교차하는 입구에 있다. 높이 12m에 폭 18m 규모의 쌍둥이 패방(牌坊)은 명나라 선덕 연간에 건설되었으므로 4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곳에 자주 출몰했다는 전설 속의 금빛 찬란한 말 ‘금마’와 ‘푸른 닭’으로 오인한 봉황을 기려 세운 이 두 패방은 진마산(金馬山)에 가까운 동쪽의 것이 진마팡(金馬坊)이며, 비지산(碧鷄山)에 가까운 서쪽의 것이 비지팡(碧鷄坊)이다. 이 두 곳과 북쪽의 중아이팡(忠愛坊)을 합치면 ‘品’자 모양이므로 ‘품자삼방(品字三坊)’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고층 건물과 큰 도로 틈새에 있지만 이 세 패방은 단연 쿤밍 중심가의 랜드마크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중국의 도시는 골목길로 들어서야 진면목이 보인다. 중아이팡을 지나 고층 건물들 사이로 빠져 들어가니 화조시장(花鳥市場)이 나타났다. ‘꽃과 새를 파는 시장’이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이곳에는 눈길을 끄는 다양한 물건들이 있다. 귀뚜라미 같은 애완용 곤충에서 생전 처음 보는 이상한 생김새의 물고기까지 한참 동안 발길을 붙잡는다. 건물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렇게 현대와 과거와 공존한다. 다양한 길거리 음식과 열대 과일도 입을 즐겁게 한다. 게다가 제법 돈 쓸 맛이 나는 저렴한 가격이다.

다음 날 쿤밍 외곽 디엔츠 가의 운남민족촌을 찾았다. 디엔츠는 쿤밍호로도 불리는 쿤밍의 대표 호수다. 이 호수를 끼고 89㎢의 부지에 25개 소수민족의 촌락을 한 곳에 모아 놓았다. 소수민족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쿤밍의 빼놓을 수 없는 여행지다. 지역이 넓어 동선을 잘 짜야 하는데, 정문에 들어서면 처음 만나는 다이족(泰族) 촌에서 시작하여 시계 방향으로 도는 것이 효과적이다. 입구에서 민속공연 시간표도 함께 나누어주므로 공연시간을 감안해서 관람속도를 조절하는 것도 요령이다.

각 촌마다 그 민족의 고유 생활상이나 문화를 보여주는 생활박물관 같다. 그곳에서 실제로 거주하며 관광객들을 상대로 공연을 하거나 특산물을 팔고 있다. 각 민족의 복장, 전시품, 공연, 먹거리 등 즐길거리가 풍성하다. 대리국(大理國)을 세웠던 바이족 촌의 다양한 대리석이나 지금도 사용되고 있는 세계 유일의 상형문자라는 나시족 동파문자(東巴文字) 등은 특히 눈길을 사로잡았다.

다음 목적지는 인근의 서산(西山)이다. 민족촌의 남문으로 나가면 서산 케이블카 탑승장 공짜 셔틀버스가 있다. 케이블카는 디엔츠 호수와 고속도로 위를 가로질러 한참을 갔다. 앞서 언급한 비지산이 서산의 다른 이름이다. 송나라 때 세워진 화정사(華亭寺)나 태화사(太華寺) 등 볼거리가 많지만 이곳의 명소는 단연 롱먼(龍門)석굴이다. 민족촌에서 체력을 소진해버린 나는 다시 롱먼석굴을 오르는 2인승 리프트를 탔다.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디엔츠의 아름다운 전경이 펼쳐지고, 멀리 쿤밍 시내의 마천루도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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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석굴은 세계문화유산에 이름이 올라있는 허난(河南)성 뤄양(洛陽)의 석굴과 이름만 같다. 그에 비하면 규모도 훨씬 작고 또 도교 유적이다. 그러나 서산 절벽을 깎아 만든 낭떠러지 길과 그 위에서 바라보는 디엔츠의 아름다운 경치는 장관이다. 삼청각(三淸閣)에서 자운동(慈雲洞)을 연결하는 이 길은 18세기 후반 석공 70여 명이 밧줄에 매달린 채 절벽을 깎아 72년 만에 완공했다고 한다. 리프트에서 내려 내리막길을 걸으니 한결 편안하고 여유가 생겼다. 조각 하나하나에 눈길을 주며 이 역사를 가능케 한 종교적 신념을 생각해본다. 도교가 종교냐 아니냐의 문제는 공허한 관념론이다. 이 장면을 마주하며 솟구치는 생각은 그저 종교는 어떤 이유로든 차별할 수 없고, 신앙의 가치는 동등하다는 것이다. 세계 여러 나라의 각기 다른 종교적 대역사를 볼 때마다 점점 굳어지는 생각이다.

다음 날 일정도 도교사원인 태화궁(太和宮)에서 시작했다. 태화궁은 쿤밍 시내에서 동쪽으로 4㎞ 떨어진 밍펑산(鳴鳳山)에 있으며, 명나라 때인 1602년에 창건되었다. 이곳은 약 250t의 동(銅)으로 만든 금전(金殿)이 유명하다. 후베이(湖北)성 우당산(武當山)의 태화궁을 본뜬 이 금전에는 도가의 상제인 진무신상이 봉안되어 있다. 이 외에 여러 종류의 차화(茶花)를 식재한 정원들 사이로 뇌신전(雷神殿), 삼풍전(三豊殿), 종루(鐘樓) 등이 있다.

지금의 모습은 청나라 때인 1671년에 평서왕 오삼계가 자신의 애첩 진원원을 위해 중건한 것이라고 한다. 명말 청초의 역사적 혼란기에서 산해관(山海關)을 지키던 오삼계는 이자성의 난 때 자신의 애첩 진원원이 이자성의 수하에게 강탈당할 처지가 되자 명나라를 배신하고 산해관을 열어 청나라를 도왔다. 이러한 공로로 오삼계는 서쪽을 평정한 왕, 즉 평서왕으로 봉해졌고, 이곳에 애첩 진원원을 위해 태화궁을 지은 것이다. 그는 이곳에서 대단한 권세와 재부를 누리다 1678년 5월 황제를 자처하며 청나라에도 반기를 들었으나 5개월 만에 사망한다. 이 시기 금전의 진무신상에 자신의 얼굴을 넣었다고 전해진다. 여인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욕망은 사랑으로 미화되고 있지만 ‘황제’에서 ‘진무신’으로 이어지는 끝없는 욕망은 설명하기 어렵다. 아니, 그래서 인간인가 보다. 불과 5개월 뒤의 죽음도 보지 못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분홍빛 차화가 고개를 들고 웃고 있다.

태화궁의 여운을 뒤로하고 시내의 원통사(圓通寺)로 향했다. 원통사는 쿤밍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사찰이다. 765년 남조국 때 보타라사(補陀羅寺)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던 이 사찰은 1255년 몽골의 침입으로 소실되었다가 14세기 초에 지금의 이름으로 중건되었다. 지형 탓인지 앞이 높고 뒤가 낮은 독특한 구조에다 연못을 중심으로 한 좌우대칭의 아름다운 건물들로 인해 사찰이라기보다는 대가의 정원처럼 보인다. 연못 위의 팔각정을 필두로 원통보전(圓通寶殿)과 천왕전(天王殿)이 중심 건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원통보전 뒤편의 동불전은 1990년 태국 국왕이 선물한 동불상을 모시기 위해 태국 양식으로 지어져 이국적 색채를 더한다. 대승불교 사찰이지만 소승불교와 라마교도 혼재되어 있으며, 도가적 색채도 엿보인다. 중국의 사찰을 보면 보통 민간 종교까지 섞여있는 경우가 많은데, 도심의 사찰치고는 비교적 순수 불교적 색채를 많이 갖고 있는 것 같다. 종교를 용인하지 않는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만들어진 중국만의 종교문화가 아닌가 한다.

원통사를 나와 조금 걷다 보면 곧 큰 호수를 만난다. 바로 취호(翠湖)이다. 이곳은 쿤밍을 대표하는 시민 공원으로 늘 사람들로 붐빈다. 호수의 물빛과 연꽃잎, 버드나무, 대나무 등이 빚어내는 수취(水翠), 죽취(竹翠), 유취(柳翠)로 인해 이런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십자형의 공원 산책로는 호수를 다섯 곳으로 나누며 각각의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고 있다. 호심도(湖心島)의 호심정(湖心亭)과 관어루(觀魚樓)를 비롯하여 동남쪽의 수월헌(水月軒)과 금어도(金魚島), 동북쪽의 죽림도(竹林島)와 구룡지(九龍池), 서남쪽의 호로도(葫瀘島)와 구곡교(九曲橋), 서쪽의 해심정(海心亭) 등 이름만으로도 아름답고 낭만적인 곳들이 널려 있다.

취호공원을 가로질러 나오면 운남육군강무학교를 만난다. 이곳이 우리에게 특별한 것은 청산리 전투의 승장 이범석 장군과 항일무장투쟁을 이끈 최용건이 졸업한 학교이기 때문이다. 이 학교의 동급생이자 절친한 친구였던 두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독립운동을 했지만 광복과 동시에 남과 북으로 갈려 한 사람은 대한민국 초대 국방장관으로, 한 사람은 북한의 인민군 총사령관으로 적이 되었다. 같은 전시실에 걸려 있는 두 사람의 행적을 바라보는 우리의 감정은 복잡하다. 이들이 이곳에서 함께 수학했을 때가 지금으로부터 꼭 100년 전이다. 그렇게 여러 번 강산이 바뀌었지만 남과 북은 여전하다. 대구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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