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달 착륙 5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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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7-24 07:54  |  수정 2019-07-24 07:54  |  발행일 2019-07-24 제23면
[문화산책] 달 착륙 50주년

1969년 아폴로 11호에서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이 최초로 달을 밟은 역사적 순간부터 반세기가 지났다. 인류는 1969년에서 1972년까지 3년여 동안 아폴로 11·12·14·15·16·17호로 6차례 달을 밟았으며 이후 발자취가 끊어진 상태다. 모 탤런트가 아폴로 우주선 이름을 따 작명한 일화가 전해질 정도로 국내에서도 화제였고 현재도 음모론자들은 NASA가 영화 감독을 고용해 달 착륙을 조작했다는 설을 끈덕지게 제기할 정도다.

당시 우주탐험 열풍은 미국과 소련 양대 진영의 체제 우위를 선전하는 무대였다.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가 미국 상공을 통과할 때마다 비웃음 소리가 난다는 조크는 그저 농담이 아니라 인공위성을 올릴 만큼 진보된 로켓 기술은 곧바로 위성 대신 핵탄두를 탑재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전용 가능하다는 공포의 발로였다. 구소련은 뒤이어 스푸트니크 2호로 우주견 ‘라이카’를 올려 보냈고, 유인 우주선 보스토크 발사에 성공한다. 유리 가가린이 그 주인공이다.

미국은 발끈한다. 케네디 대통령은 국가 역량을 총동원해 인간을 달에 보낸다는 아폴로 계획을 1960년대 초 발표한다. 비록 그는 결실을 보지 못했지만 초강대국의 총력전은 결국 연설을 현실로 만든다. 그러나 이후로 현재까지 유인 달 탐험은 중단 상태이며 국제 우주정거장 운영이나 초강대국 위상을 획득하려는 중국이 선저우 계획을 운영하는 데 그치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주탐험은 강대국들의 국위 과시가 원동력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우주탐험은 어릴 적 꿈을 과학자로 적어내던 아이들에겐 미래에 대한 낙관과 진보의 상징이기도 했다. 최초로 달을 밟았던 닐 암스트롱에 대한 다양한 조명으로 호평 받은 ‘퍼스트맨’이나, 클린트 이스트우드 외 노장들의 인생 연기가 어우러졌던 ‘스페이스 카우보이’, 달을 밟지 못했지만 생환 드라마로 감동을 줬던 ‘아폴로 13호’, 구소련 붕괴 후 미아가 된 우주비행사 구출담 ‘세르지오 앤 세르게이’까지 우주탐험 비화들의 영화는 흥미와 감동을 준다.

배경이 어쨌건 유리 가가린의 “지구는 푸르렀습니다”와 닐 암스트롱의 “한 명의 인간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커다란 도약이다”라는 발언은 인류 전체의 기억으로 남았으니.

짧은 이익을 위해 정략과 암투가 판치는 세태에 지칠 때 잠시 어릴 적 우주를 꿈꾸던 동심을 되살려보자. 최초의 공상과학 영화는 1902년 멜리에스의 ‘달세계 여행’이다. 꿈의 구현이란 점에서 영화와 우주탐험은 닮아 있기도 하다.

김상목 (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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