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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되돌릴 수 없는 의대 증원, 언제까지 의사들만 따로 놀 것인가
이르면 이번 주에 각 의대 증원 규모가 정해지고, 이를 반영한 2025학년도 대학입학전형 시행계획도 확정될 전망이다. 각 대학의 모집 요강이 발표되면 내년도 의대 증원은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 된다. 대학의 이 같은 움직임은 '정부의 의대 증원 및 배분 처분을 멈춰달라'며 의대생과 교수·전공의 등이 보건복지부 및 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낸 집행정지 신청을 각하·기각한 서울고법 행정7부의 지난 16일 판결에 기인한 것이다. 의료계는 서울고법 판결문에 적시된 내용을 진중하게 생각해 보길 바란다. 판결문은 "의대생의 학습권 침해 등 회복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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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전국구 된 대구은행, 종국적 목표는 '밸류업'
대구경북을 대표해 온 지방은행인 DGB대구은행이 마침내 전국구 은행인 시중은행으로 전환됐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6일 정례회를 통해 대구은행의 시중은행 영업인가를 최종 의결했다. 이로써 시중은행은 현재 6개에서 7개로 늘어났다. 1967년 대구 상공인들의 뜻을 모아 국내 최초의 지방은행으로 출범한 대구은행의 야심 찬 걸음이 시작된 셈이다. 무엇보다 지방은행이 시중은행으로 전환된 첫 케이스여서 한국 금융업의 새 역사를 썼다는 평가와 함께 모든 자원이 수도권으로 빨리는 대한민국 현실을 새삼 반추하는 '사건'이기도 하다. 축하를 받기에..
[사설] 들개가 되는 반려견, 물건 쓰다가 버리듯 해서야
반려동물 양육 인구 1천500만명 시대다. 이들 가구가 느는 만큼 버려지는 동물도 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한 해 전국에서 유기되는 반려동물은 13만 마리가량이다. 이 가운데 반려견이 70%를 웃돈다. 유기견의 경우 지난해 대구지역에서 구조·포획을 위해 출동한 경우가 1천400건으로 전년 대비 24.1% 늘었다. 처음 키울 때야 가족처럼 여기고 애정을 쏟는다. 하지만 나중엔 질병과 비용 부담을 이유로 원거리 관광지 등에 버리는 경우가 많다. 주인이 장기간 집을 비운 사이 외부로 나가 길을 잃고 유기견 신세가 되기도 한다...
이슈칼럼영남일보 오피니언 리더들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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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청년세대에 외면당한 국민의힘, 이대로는 미래 없다
집권여당이 총선에서 참패한 원인은 복합적이다. 이종섭 대사·황상무 전 수석 논란, 의정(醫政) 갈등, 윤석열 대통령의 대파 발언 등 용산발 악재가 '정권 심판론'의 빌미가 됐다. 국민의힘 역시 자충수를 많이 뒀다. 현역 교체율이 35%에 그칠 만큼 공천 혁신을 이뤄내지 못한 데다 선거전 막판에 '이(재명)·조(국)심판론'을 앞세운 것도 역효과만 냈다. 이 탓에 중도층 확장에 실패했고, 특히 청년세대로부터 외면당하는 결과로 이어졌다.이번 총선 전체 유권자의 3분의 1은 2030 청년층 유권자였다. 이들은 좌우 정치이념에 치우치지 않는 부동층 특성이 뚜렷하다. 확고하게 지지하는 정당이나 후보 없이 선거마다 선택을 달리한다. 이른바 '스윙보터'다. 당초 국민의힘은 청년 표심을 기대했다. 지난 대선에서 윤 대통령을 압도적으로 지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선 완전히 달랐다. 특히 2030 남성이 지지를 철회한 게 국민의힘 입장에선 뼈아프다. 실제로 총선 출구조사 결과를 보면 여당 비례 위성정당을 찍은 2030 남성 유권자는 30%에 불과했다. 청년층 상당수가 여당에 실망해 이준석 대표의 개혁신당 등으로 돌아선 것이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기존 4050 지지에 더해 2030 여성 등 미래 표심까지 얻었다. 여당이 그나마 개헌 저지선을 지킨 건 콘크리트 지지층인 6070세대 덕분이다. 하지만 세월이 갈수록 이들의 투표 비중은 급속도로 줄어들게 된다. 이대로라면 국민의힘 미래는 없다. 더 이상 쪼그라들지 않으려면 근본적인 변화와 쇄신이 있어야 한다. 청년세대를 끌어안을 수 있는 공감과 소통의 정치가 필요하다. 마지막 기회라는 각오로 청년 정치인 등용과 청년정책 발굴에 매진해야 한다.
[자유성] 조용한 퇴사
'평생직장'이라는 말이 갈수록 낯설어지고 있다. 웬만하면 뼈를 묻겠다는 각오로 직장생활을 시작한 세대도 있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자신의 능력치를 끌어올린 뒤, 보다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회사를 찾아 떠나는 경우가 흔해졌다. 봉급생활자가 이직을 생각하고 실천하는 원인은 다양하다.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 가운데 연봉과 복지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애사심과 충성심은 안정성과 연봉에서 나온다는 말이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불문율처럼 여겨진다.직장인 절반 이상이 현재 몸담고 있는 회사를 떠날 마음이 있다는 조사결과가 눈길을 끈다. 아직 퇴사를 하지는 않았지만, 최소한의 업무만 수행하면서 이른바 '조용한 퇴사'를 준비 중이라는 이야기다. 인크루트가 지난달 직장인 1천9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용한 퇴사'에 대한 인식조사에서 허리에 해당하는 8~10년차 직장인 57.4%를 비롯, 전체 응답자의 51.7%(매우 그렇다 12.7%, 대체로 그렇다 39%)가 '그런 상태'라고 답했다.특히 응답자의 65% 이상이 동료의 '조용한 퇴사'를 긍정적으로 이해하면서 응원하는 분위기인 것으로 나타나 주목을 받았다. 자신의 가치를 높인 다음, 현재보다 나은 대우를 받겠다는 의지와 노력은 당연히 존중받아야 한다. 일련의 노력들이 선순환되면 개인과 회사의 긍정적 경쟁을 촉발시키면서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개인에 대한 평판이 평생 따라다니는 만큼 옮길 때 옮기더라도 재직하는 날까지 최선을 다하는 자세도 필요해 보인다. 장준영 논설위원
[사설] 비서실 및 내각 인적 쇄신, 의석수·득표수 모두 감안하라
윤석열 대통령이 국정운영 방향 쇄신을 위해 비서실 및 내각에 대한 인사를 단행할 방침이다. 4·10 총선에서 윤석열 정권 심판론을 내세운 민주당 등 범야권이 192석으로, 108석을 얻은 국민의힘을 압도했으니 국정 쇄신은 민심을 따르는 것이다. 국정 쇄신의 시작은 비서실장을 비롯한 수석 비서관 그리고 총리 등 몇몇 장관을 교체하는 것이다. 이번 주 중으로 비서실장부터 임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인사는 윤 대통령의 국정 쇄신에 대한 의지와 방향을 담는 것이어서 인사 대상자에 대한 검증과 여론 동향을 살피며 신중을 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적 쇄신 때 의석수로 확인된 민심을 반영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득표수로 보여준 민심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254개 지역구에서 민주당이 얻은 득표수는 1천475만8천83표로 전체 투표수의 50.5%다. 국민의힘이 얻은 득표수는 1천317만9천769표로 45.1%다. 민주당은 득표율에서 국민의힘에 5.4%포인트 이겼는데, 의석수는 1.8배(+71석)나 많다. 소선거구제의 승자독식 방식 때문이다. 그 결과 수많은 국민의힘 후보 지지표는 사표(死票)가 됐다. 인적 쇄신 과정에서 이들 보수 유권자의 표심까지 무시돼선 안 된다. 보수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험지에 출마해 낙선한 인사를 비서실 및 내각 개편 때 원천배제하는 식의 인적 쇄신은 곤란하다는 의미다. 야권 역시 득표수의 의미까지 훼손시키면서 보수진영을 대표하는 인사의 임명을 무조건 반대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의 법률거부권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200석 이상을 주지 않는 민심은 야당에게도 협치 명령을 내린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월요칼럼] 선거는 다시 돌아온다
벚꽃엔딩. 필 땐 모른다. 지고 나면 밀려오는 처연함을. 몰락의 그림자 길게 드리운 아스팔트 바닥 위로 선혈처럼 꽃잎이 찍혀 있다. 여당의 충격적인, 하지만 예고된 패배다. 일련의 사태에 대한 국민정서를 정확하게 읽어 내지 못했고, 뒤늦게 알아차리고도 외면한 결과다. 대저 총선이란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임에도 여당은 오히려 '야당 심판'을 외치는 기이함을 보였다. 집권당으로서 정책 비전을 제시하는 대신 정치적 카운터파트를 악마화하며 범죄자로 몰아가는 데 올인했다. 자기편에는 관대한, 정권의 이상한 공정(公正)은 불신을 불렀고, 민생을 제대로 살피지 않은 데 대해선 분노가 일었다. 결국 중도층이 떠나갔다. 지난 몇 달을 복기해 보면 보수를 망친 주범으로 보수 논객과 언론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2월 각종 여론조사 결과에 대한 '고의적인 오독'은 치명적이었다. 당시 국민의힘 경선 기간이라 상당수 여론조사가 보수 과표집 현상을 보였다. 이런 경우 중도층의 지지율을 살펴야 함에도 보수진영의 패널과 유튜버, 언론은 이를 무시하고 여당의 압승을 노래했다. 이로 인해 '용산'은 오만해졌으며 상식 밖의 조처들이 취해졌다. 중도층의 지지율만이라도 제대로 알리고 경고음을 울렸더라면 선거전략을 바꿀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지지층엔 결집을, 상대진영엔 투표 포기를 노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여론조사에 나타난 중도층의 정권심판 구도에는 변함이 없었다. 자고로 군주와 신하 간 역학관계가 한쪽으로 쏠리면 나타나는 현상이 있다. 먼저 신하의 입김이 강해 나라에 재앙을 초래하는 경우다. 제왕학의 명저 한비자(韓非子)에는 군주를 망하게 하는 '나쁜 신하'의 여덟 가지 수법, 즉 '팔간(八姦)'을 소개하고 있다. 뇌물로 부인·측근·친인척의 환심을 산 후 그들로 하여금 군주에게 청탁하도록 유도하는 것, 유창한 말재주로 군주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 강국에 복종하도록 하는 것, 화려한 궁전과 감상품에 마음을 뺏기도록 하는 것 등이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묘한 기시감이 든다. 또 다른 유형은 '페르시안 메신저 증후군'이다. 이는 신하보다 군주의 입김이 센 경우다. 고대 페르시아에서는 단지 패전 소식을 전했다는 이유만으로 전령들이 처형당했다. 이런 일이 자꾸 반복되면서 나중에는 그 누구도 나쁜 소식을 전하려 하지 않았다. 이런 군주 밑에서 누가 충성스러운 고언을 할 수 있겠나. 신하는 사실을 알리기보다 입을 아예 다물거나 군주가 들어 좋아할 말만 하게 된다. 지난해 엑스포 유치전에서 '29대 119'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 들기 직전까지도 '49대 51'로 추격 중이라는 보고가 올라갔다 하니 고대 페르시아만의 얘기는 아닌 듯하다. 집권 2년도 안 된 윤석열 정부가 레임덕을 넘어 데드 덕의 위기에 몰린 데는 경청과 고언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 줌도 안 되는 권력에 집착하면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빠져든다. 남은 3년 누군가는 입을 닫고 귀를 열어야 하며 또 누군가는 귀에 거슬리는 충언을 해야 한다. 국정 쇄신이랍시고 특별할 것도 없다. 그저 여야 협치에 나서 정치를 복원하고 민생을 돌보면 된다. 지지자들도 달라져야 한다. 어떤 이는 나라 팔아먹어도 지지하겠다 한다. 지역주의에 기반한 이 소름 끼치는 맹목적 지지가 실은 보수를 망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국가와 국민에 앞서는 이념은 없다. 꽃은 다시 피고 선거는 또 한다.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는 이미 정해져 있다. 변종현 경북본사 본부장변종현 경북본사 본부장
[윤성은의 천일영화] 연상호 감독의 K-크리처 시리즈 '기생수: 더 그레이'
한국 오리지널 시리즈물, '기생수: 더 그레이'가 다시 한번 넷플릭스 비영어권 글로벌 순위 1위에 올랐다. 연상호 감독은 '부산행'(2016)으로 K-좀비물의 부흥을 알렸고,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기에 공개된 '지옥'(2021)까지 세계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오징어 게임'(2021) 이후 K-콘텐츠 신드롬을 이어가는데 큰 몫을 해왔다. 그사이에 개봉한 '염력'(2017)과 OTT 오리지널 영화, '정이'(2022), '기생수: 더 그레이'에 이르기까지 그의 실사 작품들은 모두 비현실적인 캐릭터 및 사건들을 다룬다는 공통점이 있으며, 모두 '판타지'라는 광범위한 단어 안에 포함시킬 수 있다. 그러나 세부 장르는 좀비물, 초능력물, SF 등으로 제각각인데, '기생수: 더 그레이'는 좀비물과는 또 다른 크리처물로 분류해 볼 수 있다. 크리처물에는 사람을 죽이거나 위협하는 괴물이 등장하기 때문에 호러물의 한 장르로 분류되기도 하고, 스릴러적 요소도 많이 가미되는 것이 특징이다. 그간 K-크리처물은 여타의 재난 영화들과 맥을 같이해 왔는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과 유사한 스릴을 선사함은 물론, 재난 상황에서 인간의 이기심을 날것 그대로 드러내는 날카로움도 들어있고, 한때 인간이었던 존재에 대한 애잔함이나 허무함까지 남긴다. 연상호 감독의 이번 시리즈 또한 그러한 특징들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기생수: 더 그레이'는 인간이 인간의 몸속에 기생해야만 살 수 있는 정체불명의 생명체에 대항해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로, 연상호 감독의 새로운 장르적 시도와 성취를 확인할 수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이제는 고전(古典)이라 불릴만한 인기 일본 만화 '기생수'를 원작으로 하고 있음에도 '인간의 몸을 숙주로 삼는 생물'이 있다는 기본 설정 외에 캐릭터 및 서사를 대부분 변형시켰다는 점이다. 주인공 '수인'(전소니)의 몸에 침투한 기생생물은 수인의 뇌를 반만 잠식하는 바람에 하루에 15분 정도만 괴물('기생수')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변종이 된다. 그래서 수인은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처럼 두 개의 인격으로 존재하게 되는데, 이런 특수성 때문에 수인을 같은 동족이라며 포섭하려는 기생수들과 기생수들을 박멸하려는 특수 전담반 '더 그레이'팀 모두의 표적이 된다. 원작의 주인공 '신이치'는 한쪽 팔만을 잠식한 기생수와 계속 소통하며 위기를 극복하지만, 수인은 해리성 장애처럼 자신 안에 있는 '하이디'와 동시에 깨어 있을 수 없기에 제 3자가 그들 사이의 소통을 담당해야 한다는 큰 차이가 있다. 우연히 그 역할을 담당하게 된 '강우'(구교환)는 수인과 도움을 주고받으며 우정을 쌓아나간다. 그들의 최종 목표는 시장의 뇌를 노리는 기생수 집단을 처치하는 것이다. 이처럼 '기생수: 더 그레이'는 변주된 세팅에 흥미로운 전사(前史)를 가진 캐릭터들이 더해져 새로운 이야기로 다시 태어났으며, 연상호 감독의 뛰어난 대중적 감수성으로 완성되었다. 심형래 감독의 '디 워'(2007) 흥행이 증명하듯 한국의 영상 기술이 일천하던 시절에는 CG만 매끄러워도 관객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었지만, 이미 세계 정상급의 영상 기술을 가진 현재에는 신선하고 짜임새 있는 내러티브가 인기의 정확한 바로미터가 되고 있으며, '기생수: 더 그레이'는 그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콘텐츠의 휘발성이 강한 시대에 보다 롱런하기를 빌며, K-크리처물의 진화와 연상호 감독의 다음 도전도 기대해 본다.영화평론가윤성은 영화평론가
[경제와 세상] 동굴의 환영
칠흑 같은 지하 동굴 속에 죄수들이 갇혀 있다. 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팔다리가 묶이고 목조차 족쇄가 채워져 움직이지 못하고 그저 동굴 벽만 보고 살고 있다. 죄수들의 등 뒤에는 횃불이 타고 있고, 그 사이에서 사람들은 인형극 놀이를 한다. 나무로 만든 동물과 사람을 가지고 꼭두각시놀이를 하는 것이다. 죄수들은 횃불에 의해 동굴 벽에 투영되는 자신들과 인형들의 그림자를 볼 뿐, 인형들과 이들을 움직이고 대사를 읊는 사람들의 실제 모습은 볼 수도 없고 본적도 없다. 죄수들에게 그림자는 실재이고 들리는 대사는 그림자의 대화로 인식한다. 그림자라는 인식은 아예 없는 것이다. 그러다 한 죄수가 탈출하여 동굴 밖으로 나가면 평생 처음 경험하는 눈부신 햇살 때문에 한참을 헤매다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는 자연과 사람들의 모습에 몹시 당황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동굴 속에서 봤던 그림자들의 진짜 모습이라고 아무리 일러줘도 그 사실을 거부하고 오히려 그것들이 환영이라고 우긴다.이 이야기는 플라톤의 '국가론'에 담긴 유명한 동굴 우화다. 동굴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고 죄수는 바로 우리 자신이다. 우리는 보이는 세계의 이미지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한다. 진실을 아무리 알려주어도 알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이를 인지심리학에서는 '확증편향'이라고 부른다. 사실 여부를 떠나 자신의 판단에 부합하는 정보만 수용하고 그 판단과 반대되는 의견들은 의도적으로 무시해버리는 현상이다. 개미 투자자 김씨는 A 기업의 주가가 오를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이 기업에 몰빵 투자를 했다면, 신제품 출시나 해외 수주 같은 이 기업의 호재에만 귀를 기울이고, 취약한 재무구조나 경쟁기업의 약진 같은 불리한 정보는 배척하거나 사소한 요인으로 애써 무시해 버린다. 갭 투자에 의해 다주택을 보유한 사람은 우리나라 부동산 가격은 장기적으로 언제나 우상향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고, 무주택자들은 현재 집값에는 과거 일본처럼 거품이 잔뜩 끼어있다고 판단을 하고 있다. 그래서 다주택자들은 건축자잿값 인상과 부동산 불경기에 따른 재개발·재건축 부진, 이어지는 주택 공급부족 현상에 주목한다. 반면 무주택자들은 미분양 아파트 양산과 저출산율, MZ세대에서 속출하는 주포자(주택 구입 자포자기) 기사에 몰입한다.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세계와 함께 사이버세계 역시 또 다른 동굴이다. 유튜브에서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 관련 영상을 검색하여 보고 나면 내재된 필터버블 알고리듬에 의해 내 입맛에 맞는 내용으로 도배된 또 다른 영상을 보게 된다.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설계된 알고리듬이지만 역설적으로 구독자의 확증편향성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입맛에 맞는 주장을 선택할 수 있는 SNS와 OTT 플랫폼도 우리가 살고 있는 동굴의 일부이고, 이들은 모두 과잉·과격·과몰입을 부르는 알고리듬을 장착하고 있다. 요즘 선거철에 정치인과 정치 유튜버들이 뻔한 가짜뉴스와 거짓말을 마구 해댈 수 있는 것은 이에 환호하는 대중이 있기 때문이다, 확증편향에 기대 정치인들은 강성 팬을 얻고 유튜버들은 돈을 번다. 여기에 우리 사회를 이어주고 지탱하는 도덕과 윤리는 설 자리가 없다. TV 화면에 비치는 정치토론은 공정성을 내걸지만 사실 여부와 관계없는 확증편향 간의 싸움이라는 것이 전북대 강준만 교수의 말이다.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를 보수와 진보 간 이념적 견해차도 아니고 미래 비전과도 관계없는 감정적으로 극단적인 대립상태로 몰아가고 있다. 한국사회및성격심리학회는 올해 두드러진 심리현상으로 확증편향을 꼽았다.권 업 객원논설위원권 업 객원논설위원
[미디어 핫 토픽] '플리츠' 주름의 아름다움
일본의 디자이너인 이세이 미야케는 1971년 뉴욕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론칭, 1973년 파리 패션위크에서 쇼를 선보였다. 미야케는 1988년부터 의류의 주름을 연구했다. 옷감을 재단하고 옷의 형태를 잡아 재봉한 후 주름을 넣어 '가먼트 플리팅(garment pleating)'이라는 기술로 '플리츠(PLEATS)' 라인을 선보였다. 이를 바탕으로 여성복 '플리츠 플리세'를, 남성복 라인으로 '옴므 플리세'도 내놓았다. 플리츠 라인은 가벼우면서도 실용적이다. 입는 이의 몸집에 따라 주름이 더 펴지거나 접혀 독특한 모양을 만들어 낸다. 이 주름은 '구김'이 아니다. 종이를 안과 밖으로 반복해서 가로로 또는 세로로 접는 모양이다. 앞의 문장은 기자의 관찰대로 쓴 것이었는데, 찾아보니 실제로 미야케는 일본 전통 종이접기(origami)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곡선까지 만들어 내며 선에서 면으로, 면에서 또 다른 면으로 넓어진다. 또 다른 면은 한쪽에서 바라봤을 때고 사실은 모든 게 한 면이다. 미야케의 디자인은 '한 장의 천(a piece of cloth)'이라는 콘셉트를 이어오고 있다.스티브 잡스의 외형적 특징이랄까, 회색 뉴발란스 운동화와 리바이스 청바지 그리고 검은 터틀넥. 스티브 잡스의 검은 터틀넥이 플리츠 라인이다. 몇 해 전 여름에 유행해 많은 여성들이 '주름바지'를 입었다. 삼각형이 여러 개 짝을 지어 타일 모양을 만들어내는 그 가방, 바오바오(Baobao)도 미야케의 작품이다. 플리츠 형식으로 의류와 잡화를 생산하는 국내 브랜드도 많이 생겼다. 이렇게 미야케의 플리세는 말 그대로 '주름'의 골처럼 알게 모르게 스며들어 있다.1991년생인 기자는 주름에 대한 기억이랄까, 생각이 많지 않다. 그 시절치곤 나름 늦둥이여서 그런지 부모님의 이마와 눈가에 주름이 친구들 부모님의 주름보다 깊어 보였다. 그리고 지금 30대 중반에 가까워진 기자에게도 이마의 주름이 보이기 시작했다. 거울을 보면서 이 주름이 벌써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 부모님의 주름처럼 깊어질까, 생각한다. 미야케가 만든 옷의 주름에는 접힘과 펴짐 사이에 아름다움을 채워 넣었다. 옷 이야기 실컷 하다가 갑자기 부모님의 주름을 생각한다니, 주책인가 싶기도 하다.이제는 답을 주시지 못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그 주름에는 무엇이 담겼고 무엇이 쌓이고 있을까. 낳아주셨을 때의 부모님의 나이를 지나고 곧 지날 기자의 주름에는 무엇이 담길까. 이 글을 쓰면서도 고민과 생각의 한 줄이 주름으로 새겨졌을까. 그저 시간이 풍화(風化)한 흔적이 아니길 바란다. 박준상기자 junsang@yeongnam.com2022년 별세한 일본의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 뉴욕타임즈 캡처'옴므 플리세'의 가디건. 인터넷 캡처
[사설] 위기의 윤석열 정권, 겸허함과 진성성 담은 개혁이 탈출구
22대 총선은 집권 여당 국민의힘 참패로 끝났다. 여당의 패배이기도 하지만 한편 집권 3년 차에 접어든 윤석열 정부에 대한 국민적 비판이자 성적표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윤석열 대통령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란 질문이 남는다.'겸허한 국정운영'이 요구된다. 2년 전 윤석열 정권은 180석을 전후한 강력한 반대파 권력 환경을 안은 채 출범했다. 당시 여소야대는 윤 대통령이 물려 받은 것이지 자초한 것은 아니었다. 반면 야당의 패권적 입법부가 된 이번 22대 총선 결과는 재임 중 이뤄진 압도적 참패이고, 이는 상당 부분 윤 대통령의 책임과 결부돼 있다. 야권이 대통령 탄핵 가결 수준인 200석을 넘기지 못했다고 안도할 상황이 아니다. 겸허함은 대통령실과 내각의 정비가 우선 필요함을 전제한다. 대통령 수석비서관과 총리가 사의를 표명했다. 받아들이고 진용을 쇄신해야 한다.집권여당 국민의힘과 당정 소통도 더 절박하게 됐다. 국회의원 선거가 예정됐던 지금까지는 대통령의 권위와 통제가 먹혀들었겠지만, 이번에 당선된 의원들은 대통령 임기와 차기 대선을 넘어 2028년까지 국회를 구성한다.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이 조금이라도 이탈한다면 그야말로 식물정권에 몰릴 가능성이 있다. 그걸 원천 배제하려면 지혜로운 당정 소통이 불가피하다.야당과의 관계에도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야당이 통과시킨 법률안에 대해 9번이나 거부권을 발동했지만, 향후에는 그 빈도와 강도를 줄여야 한다. 물론 대통령의 국정운영 철학과 소신을 담은 개혁 과제를 포기하라는 말은 아니다. 기왕 칼을 뽑은 의료개혁에서부터 연금·교육·노동 개혁까지 종전과 다른 대(對)국민 설득 작업이 가미돼야 한다는 뜻이다. 전대미문의 위기를 기회로 포착할 줄 아는 국정운영 능력에 따라 윤석열 정권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달라질 것이다.
[사설] 다시 의회 장악한 野, 권한 커진 만큼 국정 책임 나눠 가져야
22대 총선에서 범야권이 190석 넘게 차지하며 다시 의회를 장악했다. 역대급 야당 압승은 분노한 민심의 표출이다. 동시에 여야 간 극한 대립과 갈등이 불가피할 것이란 예측이 지배적이다. 더불어민주당이나 조국혁신당은 선거 내내 '윤석열 3년은 너무 길다'는 주장을 펼쳐왔다. 만약 거대 야당이 그런 '선거용 메시지'를 현실화하려 한다면 정국은 파국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건 야당에 표를 준 유권자도 원치 않는 일이다.4년 전 탄생했던 21대 '거야(巨野) 국회'의 성적표에 국민 시선이 곱지 않았음을 상기하길 바란다. 그런 국회 모습을 재현한다면 정부·여당을 향했던 분노가 야당에 부메랑 돼 돌아간다. 190석 범야권은 입법 주도권을 쥐고 예산안과 법안 처리를 쥐락펴락할 수 있다. 여기에다 개원하자마자 대통령 탄핵, 개헌 카드를 꺼내거나 '한동훈 특검법' '이종섭 특검법'을 내밀면 국회는 정쟁으로 요동칠 게 뻔하다. 김건희 여사 특검법, 이태원 참사 특별법, 노란봉투법 등의 재추진도 시한폭탄이다.권한이 커진 만큼 국정 책임도 커진다. 야당도 국정 운영의 한 축이라는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한다. 이재명 대표는 총선 승리 직후 "민주당에 민생을 책임지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라는 책임을 부과한 것"이라고 했지 않는가. 김부겸 상임 선대위원장도 "반대정당을 넘어서 책임 정당으로 해나가야 할 것"이라 했다. '반대만 하는 야당'이 아니라 '민생을 챙기는 대안 정당'이 190석을 손에 쥔 거대 야당이 서 있을 책임 있는 자리다. 민주당 압승은 스스로 잘해서가 아님을 누구보다 잘 알지 않은가. 오만과 독선에 빠져 폭주하면 민의는 국회 권력을 다시 회수한다.
[사설] TK 초선 의원들, 초심 잃지 않고 새바람 일으켜 달라
야권의 압승으로 끝난 제 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구경북(이하 TK)은 '보수의 심장'답게 국민의힘 후보 모두가 당선됐다. 이런 가운데 첫 '민의의 대변자'가 된 지역 초선 의원들이 향후 어떤 의정 활동을 펼쳐갈지 주목된다. TK에선 모두 8명의 지역구 초선 의원이 탄생했다. 이들은 당선 소감에서 한목소리로 "겸손한 자세로 지역구 주민을 섬기고 정치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국민의힘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TK 특유의 불문율 속에서 어렵지 않게 당선된 만큼 초심을 잃지 않고 지역과 국가를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 주길 바란다.특히 초선 의원 가운데 국민추천의 미명 아래 '낙하산 공천'을 받아 당선된 이들의 각오는 더욱 남달라야 할 것이다. 혹여 '내가 잘나서 당선됐다'고 여긴다면 난센스다. 후보자의 얼굴도 모른 채 그대들에게 표를 몰아준 유권자도 많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오로지 현 정부의 성공을 바라고 보수의 텃밭을 지키기 위해 한 표 한 표를 보탠 TK 유권자들의 속 깊은 뜻을 헤아려야 한다.그동안 TK 의원들은 다른 지역 의원에 비해 존재감이 약했다는 비판을 끊임없이 받았다. TK 초선들이 무겁게 새겨야 할 대목이다. 이번 TK 초선만이라도 거수기 노릇과 극한 대결 정치의 행동대(行動隊)가 돼선 안 된다. 특권적이고 폐쇄적인 정치 관행을 깨는 혁신의 일꾼이 되어 달라. 아울러 TK 발전을 위한 일이라면 여하한 고난과 수고도 마다하지 않길 바란다. 금배지만 달면 나랏일을 핑계로 '하늘처럼 받들겠다'던 지역 유권자에게 태무심한 의원도 많다. TK 초선들은 이런 구태를 절대로 따라 해선 안된다. TK 초선들의 당선을 축하하며 건투를 빈다.
의료대란으로 번진 의대 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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