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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성] 선한 기부
기부(寄附·donation)는 자선사업이나 공공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돈·물품·재능 등을 대가 없이 제공하는 행위를 말한다.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어 가려는 인간의 행위 중 상당히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일로 여겨진다. 흔히 '착한 부자'는 드물다고 하지만, 그래도 상대적으로 정신적·물질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동참한다. 특히 대중의 인기를 먹고사는 연예인들 가운데 유난히 기부를 많이 하는 스타들이 제법 있다. 그들의 기부는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선순환 효과를 불러오기도 한다.연예인 기부천사의 원조 격인 원로가수 하춘화의 기부액은 데뷔 이후 50년이 넘은 지금까지 200억원을 웃도는 것으로 알려진다. 가수 김장훈, 농구스타 출신 방송인 서장훈, 가수 겸 배우인 장나라 등도 100억원이 넘고, '가왕' 조용필과 방송인 유재석, 션·정혜영 부부, 아이유, 김연아 등도 총 50억원 이상의 기부를 꾸준히 실천 중인 연예인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일부는 팬들까지 합세, 의미와 가치를 돋보이게 만들기도 한다.이런 가운데 행정안전부가 오는 7월부터 백화점·마트 상품권이나 네이버 등 각종 온라인 포인트의 기부를 가능토록 하는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기부금품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기부금품의 범위 확대와 새로운 거래 유형 추가를 통해 기부 활성화를 도모한다는 취지다. 스마트폰이나 각종 전자기기가 활성화되기 이전에 제정된 관련법에 시대 흐름이 대폭 반영된 만큼 기부행위는 보다 자유롭고 편리해질 전망이다. 장준영 논설위원
[이재윤 칼럼] 洪 시장·李 도지사 초청 홈커밍 데이는 어떤가
며칠 전 '대구 파워풀 페스티벌' 행사장을 둘러보다 이해리 시인의 '꽃이 진다'는 전시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내 삶이/꽃인 줄 모르고/꽃 찾아 떠돌다/돌아 오니/꽃이 진다". 페스티벌 슬로건 '아름다운 도약 비상하는 대구'는 내 삶 가까이 있는 꽃을 발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22대 국회는 대구경북에 도전과 기회를 동시에 안긴다. 보수의 성지는 '국회 소수당'이 지친 몸을 의탁하는 도피성처럼, 고립된 섬처럼 외면받고 이지메 당하는 중이다. 여소야대 지형으로만 보면 분명 위기다. 이게 다는 아니다. 호남 중심 거대 야당의 당 대표(이재명)와 원내대표(박찬대) 모두 TK 출신이다. 처음 있는 일이다. 무엇보다 여당 원내대표가 TK 출신(추경호·달성)인 게 든든하다. 전임자에 이어 대구 출신이 연달아 바통을 건네받은 건 드문 일이다. 이뿐만 아니다. 개혁신당은 당선인 3명 모두 TK 연고자다. 이준석 대표는 어머니가 상주, 아버지가 칠곡 출신이다. 이주영, 천하람 당선인 고향은 대구다. 조국혁신당 비례 1번 박은정(원화여고 졸), 김준형·차규근(이상 달성고 졸) 당선인도 마찬가지다. TK 친화적 인물들이 정치권 주요 포스트를 두루 차지하고 있다. 국무총리, 여당 당 대표까지 TK 인사들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정치도 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 인적 자산의 과(寡)·다(多)는 정치력의 명료한 척도다. 고립된 섬은 결코 외딴섬이 아니었다.TK 유력자들이 즐비하면 뭐 하나.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이전에도 당 대표, 원내대표, 장·차관이 숱했지만, TK 네트워크는 단단하지 못했고, 역동성은 부실했고, 성과는 미약했다. 내 안의 꽃부터 발견하는 게 시작이다. TK 친화적 인사들은 김춘수의 '꽃'과 다르지 않다.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던 것이 그의 이름을 부르고 자신의 뿌리를 알리면 우리에게로 다가와 꽃이 된다. 지금은 모래알이다. 이들을 얼키설키 연결하고 겹치며 맞물린 관계로 격자형 네트워크를 엮어야 한다. 지역 당정협의회를 활성화하고, 대구시·경북도가 공조의 힘을 발휘해야 한다. 호남의 니즈(Needs)와 결합해 훌륭한 솔루션으로 작동해온 '달빛동맹', 박찬대 원내대표가 늘 자랑스럽게 여기는 '민주당 안동·예천 지역위원회' 같은 사례를 여럿 생성하는 것도 필수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처음으로 오늘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한다. '달빛 동맹'을 더 공고히 하는 행보다. 홍 시장과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정례적으로 입법부와 여·야 수뇌부를 초청, 근사한 '홈커밍 데이' 자리를 만드는 건 어떤가. 위상을 드높이고 품격을 고양하며 소통의 통로를 만드는 데 제격이다. 홈시크를 달래며 노스탤지어를 북돋우고 애향심을 고취한다면 그것으로 족하다.홍 시장이 대구지역 당선인들을 호텔로 초청, 식사를 대접했다. 그러면서 "여소야대의 어려운 상황에도 당선인과 힘을 모아 극세척도(克世拓道)의 자세로 한반도 3대 도시 영광을 되찾도록 하겠다"고 했다. 이날 모임이 '의기투합'으로 평가된 건 좋은 조짐이다. 시장-의원 관계가 꽤 소원했었다. '무늬만 국회의원인 무능한 사람'이란 폄훼가 적잖았다. 22대 국회 TK 진용이 일신(一新)했다. 6선 1명을 비롯해 4선 2명, 3선 6명이 배출됐다. 초·재선만 소복하던 과거와는 다른 위용이다. 이들의 손에 입법과 예산, 정책 입안의 솔루션이 다 있다.논설위원논설위원
[미디어 핫 토픽] 원영적 사고
"완전 러키비키잖아."'원영적 사고'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최근 인터넷상에서 유행하고 있는 밈(meme) 중 하나다. 이는 걸그룹 아이브(IVE)의 멤버인 장원영의 엄청나게 긍정적인 사고방식에서 비롯됐다. 그의 입버릇 중에는 "역시 행운의 여신은 나의 편이야"라는 말이 있다.몇 년 전 유행했던 밈인 '오히려 좋아'와 비슷한 느낌으로 쓰이는데, 단순히 유행어의 수준을 넘어 실생활에서 원영적 사고로 마인드-셋(mind-set·마음가짐)을 다지는 사람들이 늘어나며 사회적 선순환의 효과를 보이고 있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대부분의 밈과는 달리 희화화나 조롱·혐오의 의미 없이 '선한 영향력'을 줘서 더 좋다는 평도 있다.상황을 명확하게 인지·파악하고 부정적인 요소들조차 긍정적인 결과에 이르도록 해주는 원동력쯤으로 삼으며, 부정적인 상황을 회피하거나 왜곡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해로운 긍정성(toxic positivity)'과는 차이가 있다. 해로운 긍정성이란, 오로지 긍정적인 것에만 초점을 두고 부정적인 감정을 유발하는 것은 뭐든지 거부하고 회피하려는 성향을 말한다.기자는 "우울과 긍정은 옮는다"라는 말을 믿는 사람으로, 이런 대중적 흐름이 반갑다. 실제로 한 심리 전문가는 "긍정적인 감정도 전염성을 가진다. 다른 사람의 긍정적인 모습을 보며 나도 기분이 좋아질 수 있다"며 "나쁜 행동만 모방하는 게 아니라 긍정적인 것에도 모방이 생긴다"고 설명했다.얼마 전 기자가 쓴 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확인한 적이 있다. 생각보다 익명이란 방패 뒤에 숨어서 악플을 아무렇지 않게 남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또 직접 겪어보니 생각보다 의연히 대처하기 힘들었다. 또한 나와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악플을 받고, 일거수일투족을 평가받는 아이돌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이 연약해 보이는 소년·소녀들에게 경외감마저 들었다.긍정심리학에서는 자신이 느끼는 행복감과 안녕감이 결국 행복 수치를 높아지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은 타인의 기준이 아니라 내가 생각하는 행복이 무엇인지가 중요한 것이다.때로는 어딘가에 부딪혀 어찌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느낄 때가 있을 것이다. 그때는 나만의 대피소에 찾아가 시간을 보내며 스트레스를 잠시 잊고 다시 일어날 힘을 재충전해야 한다. 취미 생활이나 아이돌, 반려동물처럼 '스트레스가 없는 무해함'을 가진 나만의 '무해한 지대'를 만들어 스스로에게 위로를 건네보자. 장윤아기자 baneulha@yeongnam.com
[하프타임] 안동, K-festival 대표도시 도약
여러 사람이 모여 격식을 차려 즐기는 큰 잔치를 가리켜 축제(祝祭)라고 한다.본래 종교적 제사 행위나 지역의 전설, 미신적 풍습에 기원한 집단 행사가 계승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기원은 대체로 고대 사회에서 절기별로 변하는 자연이나 농경과 추수를 기념하는 것에서 시작했는데, 이 같은 축제가 현대에선 그 지역의 관광산업을 이끄는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 되고 있다.잘 만들어진 축제는 관광객의 기억에 남아 그 지역을 다시 방문하게끔 만들기 때문이다. 경북 안동시가 1년 사계절 내내 축제의 도시로 꾸미려는 이유이기도 하다.안동시는 매년 1천만명의 관광객이 찾는 고장으로 만들기 위해 그 지역에 가야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축제를 기획하고 있다.예로부터 사유와 성찰을 중심으로 하는 정신문화와 재미, 감동을 주는 놀이문화가 발달한 곳이 바로 안동이다.민선 8기 들어 지역의 전통적인 콘텐츠와 계절에 따른 특성을 중심으로 축제가 끊이지 않는 활기 넘치는 안동을 만들기 위해 봄에는 민속축제, 여름에는 안동 수(水)페스타, 가을에는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겨울에는 암산얼음축제를 기획했다.'차전장군노국공주축제'는 역동적인 대동놀이 차전놀이와 노국공주의 설화가 깃든 놋다리밟기를 콘텐츠로 한 민속축제다. 올해는 색동놀이를 주제로 기획한 테마파크형 축제를 선보여 봄나들이에 나선 관객의 눈길을 끌었다.물의 도시 안동의 특징을 활용한 '수(水)페스타'는 낙동 강변에 위치한 어린이 물놀이장과 연계해 대형 물놀이장·단체 물총 싸움·EDM 파티 등 한여름 시민과 관광객의 더위를 날려버릴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하회별신굿탈놀이를 축제로 승화한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은 유희자와 관객이 탈과 탈춤으로 만나는 모두가 신명 나는 축제다. 안동의 가장 대표적인 축제로, 해외공연단의 수준 높은 공연과 퍼레이드·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으로 꾸며진다. 올해는 지역민이 주체가 되는 프로그램으로 글로벌 축제라는 명성에 걸맞은 축제로 거듭날 예정이어서 기대가 가장 큰 축제이기도 하다.겨울이 가진 천혜의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열리는 안동 암산얼음축제는 영남권 최대 겨울 축제로 남후면 암산유원지에서 개최되는데, 주민주도형 축제로 얼음 썰매·빙어낚시·빙벽 포토존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선보인다.안동시는 민선 8기 시작과 함께 축제와 원도심 활성화를 연결하려는 지속적인 노력을 이어오고 있다. 첫해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부터 축제 장소를 옛 안동역으로 옮겨 원도심 시장의 활성화를 도모해 관광객과 주민, 그리고 지역 상인들로부터 큰 찬사를 받았다.2023년에는 옛 안동역과 탈춤공원을 아우르는 축제장으로 확대하고 두 공간을 잇는 보행로를 만들어 옛 안동역이 단절의 장소에서 시민 소통의 공간으로 거듭나는 데 큰 역할을 했는데, 축제의 성공과 원도심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해 많은 고민을 이어온 결과라는 평가를 받았다.안동은 세계문화유산과 무형유산·기록유산 등 유네스코 세계유산 3대 종목을 모두 보유하고 있다. 2020년 관광거점 도시와 2023년 대한민국 문화도시에 선정될 만큼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보유한 곳이다.전통적인 콘텐츠를 단순히 따오는 것에서 벗어나, 현대적인 관점으로 재해석해 '지역이 만들고 세계가 즐기는' 축제로 꾸며진다면 머잖아 실질적인 1천만 관광객 시대가 활짝 열릴 것이라 기대한다.피재윤 경북본사피재윤 경북본사
[영남타워] 경북도 '저출생과 전쟁'에 대한민국 명운 걸렸다
"경북은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늘 중심에 서 있었습니다. 화랑정신으로 최초의 통일국가를 이루고 선비정신과 호국정신으로 나라를 지켰습니다. 또 새마을 운동으로 나라를 잘살게 만들었습니다."이철우 경북도지사가 지난 13일 '경북도 저출생 극복 실행계획'을 발표하며 "경북은 지방소멸 위기의 최전선에서 저출생의 심각성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하지만 역사적 위기 때마다 구국에 앞장섰던 정신으로 '저출생과 전쟁'을 치르고 있다"며 이같이 강조했다.이 도지사는 지난 1월 신년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저출생 대책 외 다른 업무는 모두 서면으로 대체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면서 "저출생에 모든 것을 걸자"고 전 직원들과 다짐하며, 끝장토론 끝에 '저출생과 전쟁'을 선포했다. 선포식에는 주형환 대통령직속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장이 직접 참석하기도 했다.이후 도청 내 저출생과전쟁본부를 설치하고, 본격적인 전쟁 준비에 돌입했다.경북뿐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고민인 저출생 해소를 위해 이 도지사는 정부와도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저출생 대응 총괄 부처 신설과 규제개선 등을 연이어 건의했다.윤석열 대통령도 바로 응답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9일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는 저출산 고령화 대응 부처인 '저출생대응기획부'(가칭)를 부총리가 이끄는 조직으로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나흘 뒤 수석비서관회의에서는 '저출생 수석실' 설치를 준비하라고 지시했다.저출생 극복에 380조원이나 되는 막대한 국가 예산을 투입하고도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곤두박질치며 급기야 지난해 평균 0.72명, 4분기에는 0.65명까지 내려가는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다. 세계 최저 수준이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합계 출산율 1.0명 이하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우리 사회를 유지하려면 연간 60만~70만명의 아이가 새로 태어나야 하지만 현시점의 출생 인구가 20만명 정도밖에 되지 않아 과거와 비교하면 해마다 40만명씩 사라지는 형국이다.이 도지사는 "어떤 전쟁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 사라지지 않았다. 저출생으로 인한 인구감소와 고령화는 가장 무서운 재앙"이라며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임계점을 넘어 더 이상의 기회조차 없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그렇다.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 그 절박함을 경북도가 인식하고 전쟁에 나선 것이다.'저출생'은 그동안 우리가 마주했던 그 어떤 적들보다도 거대하고 강력한 상대다. 하지만 우리는 이보다 더 큰 위기도 함께 이겨내며 기회의 발판으로 삼았다.이 도지사는 "세상에서 가장 먼저 사라지는 나라가 될 것이라는 전 세계의 우려를 기우로 만들어 대한민국이 다시 한번 인류사에 자랑스러운 역사를 만들 수 있도록 저출생과의 전쟁에 힘을 모아 달라"고 간절히 호소했다.전국 인구소멸지역 89곳(시·군·구) 중 전남과 함께 16곳으로 가장 많은 경북에서 저출생과 전쟁이 시작됐다. 무모한 싸움이 될 수도 있지만 누군가는 시작해야 할 싸움이다. 이왕 시작한 전쟁, 반드시 승리로 이끌어 대한민국의 위기를 이번에도 경북이 구해내길 기대해 본다.임성수 경북본사 부장임성수 경북본사 부장
[박규완 칼럼] 여소야대의 카오스
혼돈으로 통용되는 카오스(chaos)는 그리스인들의 우주개벽설에 기원한다. '입을 벌리다(chainein)'는 뜻의 동사가 명사화해 '캄캄한 공간'을 의미하게 됐다. 우주 탄생 이전의 무질서하고 원시적인 상태를 일컫는다. 즉 '태초의 혼돈'이다. 불규칙하고 예측 불가능한 상황도 카오스로 표현한다. 그런가 하면, 러시아 대문호 도스토옙스키는 자전적 소설 '죽음의 집의 기록'에서 인간에 내재된 야만성을 '인간 심연의 선과 악의 카오스'로 묘사했다. 4·10 총선은 야권에 192석의 의회권력을 안겼다. 집권 후반기 여소야대는 권력 중심축의 이동을 의미하며 정치판의 카오스를 예고한다. 총선 후 상징적 장면 하나. 윤석열 대통령이 범죄자, 피의자로 멸칭하던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영수회담을 제안했다. 정치권에선 권력의 역학구도가 반전됐다는 시그널로 해석하기도 한다. '여의도 대통령'이란 조어는 순식간에 관용어로 굳어질 기세다. 그렇다고 윤 대통령이 근본적으로 달라질까. 5·9 기자회견에 답이 있다. "제가 부족했다"며 연신 몸을 낮췄지만 정책기조 전환이나 국정쇄신 의지를 밝히진 않았다. 채 상병 특검법, 김건희 여사 특검법엔 거부권을 행사할 뜻을 분명히 했다. 김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에 대해선 "문재인 정부서 2년 반 동안 치열하게 수사했다"는 일방적이고 진부한 클리셰로 눙쳤다. 당시 검찰총장이 윤 대통령이었고, 단 한 번의 압수수색도 없었으며, 김 여사는 대선 전 검찰의 소환 요구에 불응했다. 여소야대의 카오스는 채 상병 특검법 재의결 과정에서 분출될 전망이다. 국민의힘 113석 중 15명이 이탈하면 대통령의 거부권은 무력화된다. 불출마·낙선·낙천 의원 58명의 의중(意中)이 변수다. 안전핀이 8석에 불과한 22대 국회는 더 아슬아슬하다. 함성득-임혁백 비선 가동을 대통령 권력 누수에 따른 위기관리로 보기도 한다. 모종의 딜을 위한 '밀당 라인'이라는 시각이다. 한국일보에 보도된 함성득 경기대 교수의 전언이 사실이라면 향후 정국은 '불규칙하고 예측 불가능한 상황'으로 빠져들 게 분명하다. 검찰의 김건희 여사 수사와 소환 방침이 특검 회피용 '약속 대련'이 아니라면 이 또한 집권 후반기 여소야대의 카오스다. 수사를 마냥 뭉개려면 직무유기 부담을 떠안아야 할 터. 감사원 역시 직권남용 위험을 감수하며 정권 초기처럼 좌충우돌할 리 없다. 그 연장선상에서 민정수석 부활이 사정기관에 대한 그립을 쥐려는 포석이란 지적이 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 13일 검찰 인사에서 김 여사 수사 지휘라인이 전원 교체됐다. 22대 국회의 김건희 여사 특검법 통과 여부는 카오스 현상의 분수령이 될 것이다. MBC 사장 임면권을 가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들의 임기가 끝나는 8월도 변수다. KBS와 YTN을 장악한 윤 정권이 MBC도 꿇릴 수 있을까. 야권은 재입법을 예고한 방송3법으로 이를 막을 수 있을까. 행정권력과 입법권력의 충돌은 어떻게 귀결될까. 고작 50쪽의 김건희 여사 석사 논문 표절 심사를 2년간 질질 끌어온 숙명여대의 끈기(?)도 대단하다. 이번엔 결론 낼 수 있을까. 여론의 향배도 무시할 수 없다. 윤 대통령 지지율은 24%, 취임 2주년 역대 대통령 최저치다(한국갤럽). 채 상병·김 여사 특검법엔 국민 60% 이상이 찬성한다. 특검을 "정치 행위"로 치부하는 대통령실과 여당의 주장이 생경한 이유다.논설위원 논설위원
[자유성] 스님 짚신
충남 예산의 '의좋은 형제마을'은 초등 교과서에 실렸던 형제의 이야기가 내려오는 마을로 알려졌다. 두 형제가 서로를 걱정해 추수한 볏단을 밤새 나르며 우애를 확인했다는 이야기로 이 마을은 이 주제를 모티브로 슬로시티를 추구했고 제법 성공한 농촌이 됐다. 이 마을의 특징 중 하나가 짚공예다. 짚공예 지도사 자격증 발급기관으로 인정받을 만큼 이 분야에서는 권위를 가지고 있다.십몇 년 전만 해도 전국 곳곳에 짚공예를 전승한 마을이나 어르신들이 존재했지만, 지금은 드물다. 고령화로 전승자가 귀한 까닭이다. 의좋은 형제마을에는 짚공예를 체험하는 곳과 작품을 전시한 달팽이미술관이 있다. 슬로시티 사무국장의 안내로 둘러보던 중 여러 종류의 짚신 전시품 가운데 가장 성기고 거칠게 생긴 작품을 들고 누가 신는 짚신인지 맞혀보라고 했다. 스님 짚신이라며 성기게 만든 이유는 작은 생명체가 발에 밟히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육바라기 짚신이라고도 하며 부모를 여읜 상주들이 신던 거친 짚신과 비슷하다.조선시대판 '사랑과 영혼'이라는 별칭을 얻은 안동 '원이 엄마'의 머리카락으로 삼은 미투리는 짚신 가운데 명품으로 꼽히는 신발이다. 미투리는 삼베나 모시 등의 마로 만든 것으로 일반 짚신보다 정교한 고급품이다. 원이 엄마의 미투리는 여기에 자신의 머리카락까지 섞어 사랑하는 마음을 더해 심금을 울렸다. 어제가 부처님 오신 날이었다. 대한불교조계종 종정은 "사람 몸을 받아서 태어난 것 자체가 금수저"라며 "허송세월하지 말고 남을 비난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보라"고 당부했다. 스님 짚신처럼 자비로운 마음으로 세상을 대하라는 뜻도 담긴 것 같다. 남정현 중부지역본부 부장
[영남시론] 칠곡 매원마을 단상
5월이 '장미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우리네 토종 들장미는 찔레꽃이다. 4월 온 산을 붉게 물들이는 진달래와 산철쭉에 이어 5~6월엔 하얀 찔레꽃을 지천에서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 나라 내 고향~"으로 시작되는 옛 가요 백난아의 '찔레꽃'은 붉은색이다. 1941년 이 곡을 북간도에서 만들 때 한반도 남쪽에 붉은 찔레꽃이 어느 정도 많았는지는 모르지만, 실제 찔레꽃은 붉은색이 매우 드물다. 그런데 붉은 찔레꽃을 감상하기에 가장 좋은 곳이 있다. 바로 칠곡군 왜관읍 매원마을에 있는 전통가옥 지경당(止敬堂) 담장이다. 담 넘어 흐드러지게 핀 붉은 찔레를 보러 지난해 전국에서 2천여 명이 몰려왔다고 한다.경부고속도로 왜관 IC에서 승용차로 3분 정도만 가면 닿는 매원마을은 풍수지리적으로 매화낙지(梅花落地)와 고을의 원(院)이 합친 이름이다. 매화의 한복판 수술 셈인 이 마을은 안동 하회, 경주 양동마을과 더불어 조선말 경북의 3대 반촌(班村)으로 불렸다. 광주(廣州)이씨 집성촌인 이곳은 지난해가 입향조 석담 이윤우가 들어온 지 딱 400년이었다. 300~400여 호를 자랑하던 고택은 6·25전쟁 때 인민군 3사단 사령부였다는 이유로 미군의 폭격에 의해 대부분 불타 사라지고 60여 호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석담의 후손 중 26명이 대과에 급제해 장원방(壯元坊)으로 불린 이 마을에선 일제항쟁기 의열단원인 이수택을 비롯해 파리장서와 관련한 이이익과 이수일, 이수목·이두석 부자, 이달영, 이수각, 이석, 이항진 등 9명이나 되는 동족 독립유공자가 배출됐다. 낙동강 북쪽 안동 고성이씨 임청각과 의성김씨 내앞마을에서 숱한 독립운동가가 나왔다면, 낙동강 중류 지역은 성주 성산이씨 한개마을과 함께 매원마을이 대표적인 항일명문가다.입향 400년이 되던 작년 6월15일 매원마을에서 경사가 겹쳤다. 바로 전국 최초로 마을 전체가 국가지정·등록문화재가 된 것이다. 재화적 성격이 강한 문화재(財)란 명칭이 오는 17일부터 문화유산으로 바뀌고 문화재청이 국가유산청으로 되면서 매원마을은 이제 국가등록문화유산이 된다. 하지만 보다 상위의 개념인 국가민속문화마을이 되기는 쉽지 않다. 민속마을로 지정되면 국비가 70%까지 증액되고, 종합정비계획과 규제에 따른 보수·정비사업이 강력히 추진된다. 현재 국가등록문화유산(960개) 중 유일한 마을 단위가 매원이지만, 국가민속문화마을(제주 성읍·강원 고성 왕곡·충남 아산 외암·경북 안동 하회·경주 양동·성주 한개·영주 무섬·영덕 괴시마을)엔 미치지 못한다. 그 이유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2013년)에 등재된 하회·양동마을과 달리 6·25전쟁 후 이곳엔 70여 년간 개량 기와집, 슬레이트집과 양옥 등 현대식 건물이 우후죽순 들어섰기 때문이다. 현재 마을 앞쪽엔 고택이 여럿 남아있지만 뒤쪽으론 컨테이너집과 폐가, 빌라, 짝퉁 기와집 등이 섞여 있어 볼썽사납다.일각에선 민속마을이 되려면 주민과의 갈등을 피할 수 없으니 영주 선비촌처럼 매원마을 인근에 숙박 등의 체험을 할 수 있는 한옥 마을을 새로 조성하자는 주장과 함께 힘이 들더라도 옛 명성을 되찾을 수 있도록 원형을 복원해 민속마을로 가자는 두 의견이 있다. 어떻게 하든 간에 칠곡군과 경북도가 주민과 함께 지혜를 모아 보물 같은 이 마을을 잘 살려 전통과 관광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박진관 중부지역본부장박진관 중부지역본부장
[자유성] 다릅나무
나무의 줄기나 굵은 가지의 단면을 보면 가운데 쪽은 짙은 색을 띠고 그 주변은 비교적 옅은 색을 띤다. 짙은 색을 한 중심부는 심재(心材), 옅은 색 부분을 변재(邊材)라 한다. 심재는 죽은 조직으로 기름·송진·타닌·페놀 등의 물질이 축적돼 있으며 살아 있는 변재는 수분이 통과하고 탄수화물을 저장한다. 색의 농담은 나무마다 다른데 다릅나무는 심재와 변재의 차이가 뚜렷하다. 색이 달라서 다릅나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설의 근거다. 이름의 유래를 나무의 내부가 아닌 수피에서 찾기도 한다. 다릅나무는 웬만큼 자라면 수피가 세로로 갈라져 얇은 종잇장처럼 말린다. 느릅나무를 닮았는데 껍질이 불에 달아 말린 것처럼 보인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물론 다릅나무는 콩과 식물이며 느릅나뭇과의 느릅나무와는 완전히 다르다. 같은 콩과인 아까시나무와 가깝다. 수피가 다르고 가시도 없으나 잎이 비슷하고 열매는 콩꼬투리 모양으로 같은 형태다. 다릅나무는 아까시나무처럼 꿀을 얻기 위해 대규모로 식재하기도 하지만 우리 생활 주변이나 야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는 아니다. 깊은 산속 골짜기나 기슭, 해발 100~1천800m 고지의 우거진 숲속, 너덜바위 지역에 주로 서식한다.며칠 전 노악산 아래 남장사(상주시 남장동) 입구에서 이 나무를 보았다. 야생의 다릅나무는 오랜만인지라 반가운 마음에 사진을 찍고 살펴보았다. 수고 6~7m쯤으로 보이는 그 나무는 주변의 높이 자란 소나무·참나무에 눌려서인지 생육상태가 영 시원치 않았다. 석가탄신일을 맞이하여 그 나무에도 부처님의 은덕이 미치길 빌어본다. 이하수 중부지역본부 부장·나무의사
[자유성] 폐지 줍는 노인
지난해 12월 통계청의 ‘장래 인구추계(2022~2072년)’를 살펴보면 올해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1천만명을 넘어서고, 내년에는 노인 인구가 20% 이상이라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 출생아가 가장 많았다는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에 태어난 700만명 중 1959년생이 노인 대열에 합류하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가 한국노인인력개발원에 의뢰해 지난해 폐지 수집 노인 1천3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평균 연령은 76세였다. 성별로는 남성(57.7%)이 여성(42.3%)보다 많다. 홀몸 어르신은 36.4%였다. 폐지를 줍는 노인의 시간당 소득은 1천226원으로 최저 임금의 12.7% 수준으로 어르신 가난 문제를 보여주는 단면에 불과하다. 지난해 OECD가 공개한 ‘한눈에 보는 연금 2023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인구의 소득 빈곤율은 무려 40.4%로 1위다. OECD 회원국 평균(14.2%)보다 3배 가까이 높다. 고령일수록 빈곤율이 높아져 70대 중반 이상 2명 중 1명은 빈곤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20.2%)과 미국(22.8%)은 우리나라의 절반 수준이다. 아이슬란드(3.1%), 노르웨이(3.8%), 덴마크(4.3%), 프랑스(4.4%) 등 유럽국가의 노인 빈곤율은 매우 낮다.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은 3대 노인 고통(빈곤·질병·고독)의 영향으로 노인 자살률을 1위로 끌어올렸다. 빈곤의 늪에 빠진 노인층이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하루 평균 5.4시간 주운 폐지를 팔아 월 15만9천원을 버는 노인 문제를 되짚어봐야 할 때다. 백종현 중부지역본부 부장
[취재수첩] '예천활축제'에 대한 단상
최근 몇 해 직장인과 주부들 사이에서 '미니멀리즘 게임(minimalism game)'이라는 새로운 트렌드가 부상했다. 이 게임은 매월 1일 한 개, 2일 두 개, 30일 서른 개와 같이 날짜에 비례해 소유한 물건을 정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참여자들은 자신이 처분한 물건들의 사진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유하며, 한 달 동안 총 465개의 물건을 정리하면 승리한 것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현상은 현대적 소비 패턴에 대한 반성에서 기인한다. 사람들이 일터에서 번 돈으로 물품을 구입하고 소유함으로써 만족감을 얻었지만, 점차 이러한 생활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minsgame(미니멀리즘 게임)' 해시태그를 단 수많은 SNS 게시물이 화제가 되면서 참여 인원이 급증했다는 보도는 이 트렌드의 인기를 입증한다. 반면, '미니멀리즘 게임'의 실천사례로 꼽히는 지자체 축제가 있다. '2024 예천활축제'이다. 예천 한천체육공원에서 열린 축제는 활의 고장 예천을 상징하고 한국 전통 문화를 계승하려는 목적 아래 기획됐다. 행사는 체험형 축제로 주요 타켓을 어린이와 청소년에 맞췄다. 활쏘기와 활 서바이벌, 필드아처리, 직업체험, 열기구·보트체험 등으로 관광객을 유인했다. 그러나 축제에 대한 반응은 싸늘했다. 어린이날 행사를 축제장이 아닌 군청 마당에서 진행하면서 축제장 이용객이 급감하는 현상까지 발생했다. 여기에 운영의 미숙함과 때 이른 더위, 갑작스런 비와 강풍 등으로 인해 매점 운영 중단과 가림막 시설 부재 등 조직위원회의 운영 부실도 드러났다. 축제가 끝났지만 예천군은 유료 입장객수와 방문객수를 발표하지 않음으로써 내부적 문제를 시인하는 모습이다. 미니멀리즘은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비판과 자성에서 출발 되었다는 분석이 많다. 하지만 축제는 많은 관광객들이 지역을 찾아 지역경제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지자체가 없는 '예산'을 짜내면서 추진하고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지자체는 미니멀리즘의 반대로 어떻게든 축제를 키우려고 한다. 축제에 사용된 지자체의 예산과 축제장 방문객의 지출이 경제의 다른 부문을 자극하고 경제적 이익의 파급효과를 창출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창출된 수입은 지역 사회의 인프라와 지역사회개발에 재투자돼 경제 성장을 촉진한다. 경제학에서는 '승수효과'라고 한다. 앞으로 예천활축제는 미니멀리즘이 아닌 승수효과를 생각했으면 한다. <경북본사 장석원 기자>
[자유성] 인연과 악연
유비는 47세에 이르도록 변변한 영지도 없는 떠돌이 신세였다. 하지만 반전이 일어난다. 유비가 유표에 의탁해 있을 때 신야에 있는 사마휘를 찾아간 것이다. 사마휘는 제갈량이나 방통 중 한 사람만 얻어도 왕업(王業)을 이루리라고 예언했다. 유비는 삼고초려 끝에 제갈량을 책사로 들인다. 그때 제갈량의 나이 26세. 유비와 사마휘의 만남이 인연의 시작이었다면 '천하삼분지계'를 제언한 제갈량과의 조우(遭遇)는 인연의 화룡점정이라 할 만하다. 새파란 군사(軍師)에 대한 장수들의 시선은 뜨악했지만 제갈량은 박망파 전투에서 금방 진가를 증명한다. "매복과 갈대밭 화공작전으로 유비의 3천 군사가 조조의 10만 대군을 물리쳤다."(삼국지 연의). 적벽대전의 서막이었다. 승부는 박빙일수록 더 드라마틱하고 심장이 쫄깃해진다. 0.73%포인트 차로 당락이 갈린 20대 대선이 그랬다. 윤석열 후보는 2030 남성의 표심을 업었고 청년층 지지를 추동한 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였다. 하지만 윤 대통령 및 친윤 그룹과 이준석은 삐거덕거렸다. "저XX" "이준석의 허리를 꺾어 버려야" 막말까지 나돌았다. 젊은 당 대표는 그렇게 내쳐졌다. 그리고 4·10 총선. 2030의 여당 이탈 현상이 명징했다. 국회 입성에 성공한 이준석은 "개혁신당은 선명한 반윤"이라며 강력한 '외부 총질'을 예고했다. 수필가 피천득은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인연인 줄 알지 못하고, 현명한 사람은 옷자락만 스쳐도 인연을 살릴 줄 안다'고 했다. 최악의 서사는 인연이 악연으로 바뀌는 것 아닐까. 박규완 논설위원
[월요칼럼] 이제 더 이상 낭만 政客(정객)은 없는가
196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정치사의 주류는 단연 '3김'(金)이었다. 서슬 시퍼렇던 군사정권 시절부터 민주화 시대에 이어 국민의 정부에 이르는 동안 김영삼·김대중·김종필 등 거물 정치인 3명의 존재감과 발자취는 매우 컸다. 육사를 졸업하고 초대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JP와는 달리 YS와 DJ는 민주화 투사 출신으로 약간 결이 달랐다. 닮은 듯 다른 부분이 많았던 이들 둘은 14대 대통령과 15대 대통령을 차례로 역임하면서 정객(政客)의 대미를 장식했다. 젊은 시절부터 정치를 시작했고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소통과 타협을 비롯, 협치·양보·배려 등의 가치를 익히고 실천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 정치의 기틀을 다졌고 산업화·민주화에 기여했다는 긍정적인 부분과 함께 지역감정·보스정치로 망국적인 편가르기 문화의 원죄를 지었다는 부정적인 면까지 공과(功過)에 대한 논란은 여전하다. 그러나 납치·단식·감금 등 살벌하고 치열했던 세월에 부대끼면서도 이런저런 일화와 야사가 전해지고 있음은 싸울 때 싸우더라도 여유와 낭만을 잃지 않았다는 방증이다.사전은 정객을 '직업적으로 정치 활동을 하는 사람'으로 풀이한다. 요즘 흔히 말하는 팬덤 정치에 기반한 정치꾼들과는 뉘앙스가 전혀 다르다. 무엇보다 소신과 철학, 의지와 비전이 있다. 권력을 잡아 뜻을 펼치겠다는 궁극의 목표는 유사하나, 기본적으로 양심과 체면, 도덕과 윤리를 기반으로 국가와 국민을 항상 염두에 둔다. 비겁하지도, 졸렬하지도 않으며 천박한 두 얼굴의 '내로남불'도 없다. 이리저리 치이면서 차근차근 스텝을 밟아온 내공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그래서 당당하다.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온 '듣보잡'과는 질적 차이가 확연하다. 사리사욕에 젖어 권력을 탐하고픈 인성·함량 미달의 인물이 정치를 하게 되면 국민들에겐 재앙이고 역사에는 죄를 짓는 일일 것이다. 정객의 품위는 정치꾼들이 죽었다 깨어나도 얻을 수도, 가질 수도 없는 어나더 레벨이다. '정치DNA'가 다르다는 해석이 가능해진다.꽤 오랜 시간이 흘러 다소 미화된 부분이 없진 않겠으나, 돌이켜보면 그 시절 정치는 간결하고 담백했다. 뭣 때문에 원수처럼 싸우는지 도통 이해하기 어려운 요즘 정치판과는 달랐다. 밀고 당기고 주고받을 줄 아는, 사람 사는 세상의 한 범주였다. 당연히 나름의 룰이 있었고 넘지 말아야 할 선도 존재했다. 꼼수도, 막말도, 혹세무민도 지금처럼 흔하지 않았다. 대들보가 낀 제 눈으로 남의 티끌을 찾아 선동하는 위선적인 정치꾼들이 발붙이기 힘든 구조였다. 유감스럽게도, '3김 시대' 이후부터 근본 없는 정치꾼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듯 유난을 떨고 득세하고 있다. 어쩌면 '3김 시대'의 폐해 가운데 하나로 거론되는 보스정치가 오히려 더 나쁜 쪽으로 활성화되지 않았나 싶을 정도다. 올곧은 지도자의 강한 리더십이라면 오히려 장점이다. 그러나 국가나 국민을 위해야 할 정치인의 충성맹세가 보스를 향한다면 배지를 달고 있어도 그냥 행동대원에 불과하다. 선명성 경쟁에만 매몰된 행동대원들을 합리적으로 통제하고 설득시키며 타협과 상생을 실천할 수 있어야 진정한 지도자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 정치적 여유와 낭만은 그 과정에서 생겨난다. 그래야 새로운 정객의 탄생도 기대할 수 있다.장준영 논설위원장준영 논설위원
[박재일 칼럼] 국민연금 개혁, 차라리 AI에게 물어볼까
국민연금 개혁이 노무현 정부 이후 20여 년간 '미루기 정책 타령'이 되고 있다. 이게 그렇게도 어려운 문제인가 하는 의문이 엄습한다. 국회에는 '국민연금개혁특위'란 게 설치돼 있다. 지난 7일 주호영 특위 위원장(대구 수성구갑)은 기자회견에서 "오는 29일 종료되는 21대 국회에서는 특위를 더 이상 가동할 수 없게 됐다. 22대 새 국회에서 다시 논의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여야가 현행 9% 보험료율을 13%로 올리는 데는 찬성했으나, 받는 연금인 소득대체율(쉽게 말해 평생 받은 평균임금 대비율)을 현행 42.5%(2028년까지 40% 인하 예정)에서 '43% 혹은 45%'로 올리는 안을 놓고 팽팽히 맞서 결론에 이르지 못했다고 했다. 불과 2% 차이였다. 앞서 국회 특위는 시민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하고 합숙 워크숍까지 거친 뒤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놓고 투표를 진행해 2개의 최종안을 도출한 바 있다.주 위원장 발표 이틀 뒤 윤석열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국민연금 개혁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역대 정부가 연금 개혁을 방치했지만 우리는 6천 페이지에 이르는 충분한 자료를 제출했다. 국회는 검토하고 선택만 하면 되도록 했다." 심오한 연구 끝에 선택지를 제시했는데, 국회가 결정하지 못했다는 뜻으로 들렸다.더 거슬러 가보자. 지난해 10월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민연금 개혁안을 내놨다. 구체적 개혁 수치를 생략해 '맹탕 개혁안'이란 맹비난을 받았다. 국회와 함께 사회적 논의를 거친다고 했는데, 속마음은 정부는 결정하지 못하겠으니 국회가 알아서 하라는 하나 마나 한 개혁안에 다름없었다. 문재인 정부가 보험료율을 올리는 인기 없는 정책을 피하려고 '4지 선다형 안'을 펼친 것보다 더 못하다는 비아냥이 나왔다. 물론 문 정부는 국민연금 개혁을 뭉개고 없던 일로 했다.필자는 지역 국민연금 자문위원이다. 몇 차례 회의에 참석하면서 연금의 역사나 기금 운영의 정보를 좀 더 접하게 됐다. 이 기회에 정리하면 첫째, 국민연금은 엄청 좋은 제도이다. 보험회사가 유혹하는 사연금과는 비교불가 우위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1천조원이 넘는 적립기금은 당분간 늘어나겠지만 2055년 전후로 소진이 예측된다. 셋째, 그래서 기금 소진 시기를 늦춰야 한다. 아니면 막대한 국가재정, 즉 세금이 필요하다. 넷째,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다는 한국의 인구감소는 연금에서도 미래세대 부담을 가중시킬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를 배려할 장치가 필요하다. 다섯째, 그래서 지금부터 보험료와 받는 연금의 수정이 필요하다.흔히 '정책결정'이란 용어를 많이 쓴다. 정책은 결정이 수반된다는 뜻이다. 결정 없는 정책은 무의미하다. 연금개혁은 복잡한 수학공식과 통계가 필요한 사안이지만, 크게 보면 이도 정책결정의 범주에 불과하다. 누군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그래서 공무원이 있고 정치인이 있다. 연금 개혁을 지켜보면서 이해 불가한 대목은 그 어떤 엘리트 공무원도 국회의원도 국민연금은 이렇게 가야 한다며 국민을 향해 절절히 호소하는 장면을 본 기억이 없다는 점이다. 모두가 '나는 마음이 약하다. 당신이 결정하라'고 속삭인다. 현대인은 '결정장애'를 겪는다고 한다. 정부 고위관료든, 국회의원이든 혹은 국민연금 관계자이든 "우리는 결정장애를 앓고 있다. 이해해 달라"며 되뇌인다면 차라리 고개를 끄덕일지 모르겠다. 그러면 모든 수치와 산식을 주입한 다음 AI가 결정하라는 방안도 있을 것이다. 물론 나라 녹봉은 AI에게 주기로 하고.논설실장
[하프타임] 아파트 하자 분쟁 두고만 볼 건가
최근 들어 전국적으로 입주를 앞둔 신축 아파트 곳곳에서 하자와 날림 공사가 속출하면서 입주예정자들의 불만이 폭증하고 있다. 얼마 전 전남 무안의 한 신축아파트는 외벽이 휘고 창틀과 바닥에 틈이 생기는 등 대규모 하자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입주를 코앞에 둔 대구의 아파트 단지에도 크고 작은 하자 민원이 끊이질 않고 있다. 특히 지난 3월 대구시 북구 힐스테이트 대구역 오페라(1천207세대)의 경우, 입주 예정자들이 강하게 반발했다. 벽에 금이 가고 천장에 물이 새는 등 '역대급 하자 투성이'여서다. 급기야 입주 예정자 300여명은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항의 집회까지 열었다. 다른 입주 예정 아파트들도 하자·날림 공사 민원이 적지 않다. 이처럼 최근 입주하는 단지들에 하자가 많은 이유는 아파트 공사가 지연되면서 마감 공사할 때 공정이 온통 뒤엉켰기 때문이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른 안전 강화, 근로기준법 등으로 절대적인 공사기간이 늘어났다. 이는 이들 아파트들이 착공되기 전에는 고려되지 않았다. 더욱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인력 수급,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레미콘 파동, 화물연대 파업 등이 누적됐다. 역대급으로 오른 원자잿값도 공기 지연을 불가피하게 만든 요인이다. 실제 2021년 이후 시멘트·철강재 등 자재가 상승폭은 최근 40여 년과 비교해도 가장 큰 폭으로 널뛰었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에 따르면 팬데믹 이후 건설 자재가는 3년간 35.6% 올랐으며, 건설공사비 지수는 26.1% 상승했다. 과거엔 하자 민원이 있어도 집값 상승기엔 애써 입주민들도 쉬쉬하는 분위기였다. 지금은 집값 조정기여서 더 민감하다. 입주예정자들 입장에선 재산상 손실이 발생하다 보니 속상한 상태에서 전 재산에 가까운 자금이 투입된 내 집이 제대로 공사가 안됐거나 하자가 있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면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는 게 인지상정이다. 프리미엄이 붙은 아파트의 경우, 하자가 없는 건 아니지만 민원 강도가 약하다. 반면, 하자 민원이 많은 단지는 입주대행사의 상담사들이 이직을 하는 경우가 잦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하자 보수 업무를 처리하는 하도급업체도 울상이다. 원자잿값 등 원가 상승으로 마진이 별로 없는 상태에서 민원은 잦고, 하자 처리도 해야 하는 상황이어서다. 따지고 보면 모두 각자 사정이 있는 셈이다. 물론 수긍이 가는 측면은 있지만 심각한 하자는 부끄러운 일이다. 시공사들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제대로 된 주택을 입주 예정자들에게 공급할 책임이 있다. 안타깝게도 지역 부동산업계는 입주 예정 아파트의 하자 민원이 내년까진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본다. 사실 건설사들이 이 같은 상황을 인지한 지는 벌써 1년이 넘었다. 한 건설사 임원은 "공기 지연은 모든 시공사에 공통적인 사항이라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협회 등의 차원에서 여론을 조성하고 대응했으면 이 같은 논란은 좀 더 줄었을 것이다.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지금이라도 건설사, 입주예정자, 협회, 행정기관 등이 총의를 모아 아파트 입주 관련 갈등을 줄일 수 있는 방안 마련이 절실하다.박주희 정경부 차장 박주희 정경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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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까지 전공의 복귀해야"…전문의 취득 늦어질 가능성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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