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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성] 애플, 사과
인류 역사의 한 켠엔 사과가 있었다. 제1의 사과는 아담과 이브의 금단의 열매, 2의 사과는 뉴턴에게 만유인력의 영감을 준 사과다. 폴 세잔이 그린 정물화 속의 사과는 인류 제3의 사과 반열에 올랐다. 제4의 사과는? 빅테크 기업 애플이란다. 사과를 한 입 베어 문 듯한 로고는 괜한 궁금증을 자아낸다. 아이팟·아이폰·아이패드 등 i시리즈 네이밍도 남달랐다. i에는 인터넷(internet), 알림(inform), 영감(inspire)의 의미가 내재돼 있다고 한다. 애플은 지난해 세계 최초로 시가총액 3조달러(약 4천조원)를 돌파했다. 은유적 표현의 예를 들 때 자주 소환하는 문구가 있다. 조어(造語)의 달인 셰익스피어의 'The world is your oyster(세상에 못 할 게 없다)'와 'The apple of my eye(눈에 넣어도 안 아프다)'다. 한국의 사과가 딱 그렇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만큼 귀하디 귀한 사과가 됐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사과는 빅테크 애플이고 두 번째가 한국산 사과라는 말이 냉소적으로만 들리지 않는다. 천하의 애플도 AI 물결에 올라타지 못하면서 몇 달 새 시가총액 400조원이 증발했다. 지난 1월엔 시총 1위 자리를 마이크로소프트(MS)에 넘겨줬다. 한데 국산 사과 값은 요지부동. 도무지 추세적 하락 낌새가 없다. 게다가 기후변화로 재배면적이 줄고 착과율이 떨어지는 모양이다. 수확량 감소가 상수(常數)라는 의미다. '합리적'인 가격에 사과를 먹을 날이 오기나 할까. 박규완 논설위원
[조진범의 시선] '욕 하면서도 봐야 하니' 막장 총선
정치가 막장이다. 증오와 혐오가 일상화됐다. 감정의 극한 대결이다. 이성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는다. 총선에서 보다 극명해졌다. 내전 양상이다. '민주주의 축제'는커녕 전쟁이다. 서로 죽일 듯이 싸운다. 말을 칼 삼아 서로를 찌른다. 정책이나 공약 경쟁은 뒷전이다. '범죄자 심판론'과 '정권 심판론'을 어떻게 포장할 것인지에만 골몰한다. 이따금 '민생'이라는 말도 한다. 마치 사족을 붙이듯이. 각주를 달듯이. '이런 것도 있으니 참고하세요' 하는 정도다. 유권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자극적 언어에 적극 반응한다. 특정 정당의 지지층은 더하다. 막말에 '중독'된 듯한 모습이다. 막장 정치, 막장 총선을 즐기고(?) 있구나라는 생각도 든다. 한때 안방극장을 휩쓸었던 막장 연속극이 떠오른다. '욕하면서도 본다'는 게 막장 드라마다. 중독성이 아주 강하다. "정치 개같이 하는 사람"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발언이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를 비판하면서 나왔다. 이 대표의 형수 욕설 논란과 관련해선 "쓰레기 같은 말" "쓰레기 같은 욕설"이라고 했다. 이 대표의 말도 혐오로 가득하다. 서울 동작구을에 출마한 국민의힘 나경원 후보를 향해 "나베"라고 했다. '나베'는 나 후보와 고(故)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를 짜깁기한 말이다. 일본말로 냄비를 뜻하는데, 여성 혐오 표현이다. 윤석열 정부에 대해선 "의붓아버지, 매만 때리고 사랑 없는 계모 같다"고 했다. 여야 대표가 이 지경이다. 막말이 춤출 수밖에 없다. 막장 드라마는 비현실적이다. 보통의 삶에서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이 다반사로 발생한다. '얼굴에 점 하나 찍었다고 아내를 몰라보는 남편'(아내의 유혹)처럼 기막힌 일이 벌어진다. 총선이 막장이라는 증거는 널려 있다. 당장 막장 드라마의 단골 소재인 '복수'가 등장한다. 복수의 화신은 조국 대표다. 조 대표는 자녀 입시 비리와 감찰 무마 혐의로 2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조 대표의 부인은 징역을 살았고, 딸은 의전원 입학이 취소됐다. 조 대표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은 "온 가족이 도륙을 당했는데, 갚아 줘야지"라고 말한다. 조국혁신당의 기세도 심상찮다. 조 대표의 등장은 아이러니하다. 문재인 정부 당시 대한민국을 두 쪽으로 가른 '조국 사태'가 윤석열 대통령을 불러냈고, 윤 대통령 집권 2년 만에 다시 조 대표가 나왔다. '복수혈전'인 셈이다. 막장 드라마의 흥행 공식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총선 등판도 정상적이지 않다. '잊히겠다'는 약속을 내팽개쳤다. '모두의 대통령'이길 스스로 포기했다. 뒤늦게 출생의 비밀을 알았다는 듯 선거판에 뛰어들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신중한 행보가 다행스럽다. 박 전 대통령이 '보수의 상징'으로 머무르길 바라지 않는다. 진영에 상관없이 '대한민국의 어른'으로 남았으면 한다. 그나저나 막장 총선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 무조건 용서하고 화해하는 막장 드라마의 공식을 따를까. 그럴 것 같지 않다. 선거 결과와 관계없이 막장 정치는 사라지지 않을 듯하다. 야권이 승리한다면, '정치적 방어막'을 두른 자들이 설칠 것이다. 여권이 이겨도 일방주의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사실 막장 총선에 대통령의 책임이 크다. 공정과 상식의 가치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했다. 김건희 여사 문제나 이종섭 전 호주대사의 임명은 '내로남불'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이따위' 저질 정치가 한국 정치의 현실이다.편집국 부국장 편집국 부국장
[자유성] 선거판 피싱
보이스피싱 범죄가 갈수록 기승을 부린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한 달 동안에만 보이스피싱 피해액이 560여억 원이나 됐다. 같은 해 1월(257억원)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했다. 발생 건수는 1천813건으로, 관련 통계 집계 이래 최대치다. 올해 들어서도 보이스피싱 피해 사례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선뜻 이해가 안 되는 측면이 있다. 보이스피싱이 출현한 지는 꽤 오래됐다. 웬만한 사람은 범죄 수법을 잘 알 법도 하다. 실제로 인터넷이나 유튜브에 널린 게 보이스피싱 대처법이다. 또 경찰도 전담반을 꾸려 보이스피싱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날로 진화하는 보이스피싱이 한 수 위인 듯하다.보이스피싱의 둔갑술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목소리를 통한 사칭 사기만이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요즘은 문자나 카카오톡을 이용한 스미싱 범죄가 더욱 활개를 친다. 카드 발급, 택배 배송, 교통위반 과태료 통지서 따위를 확인하라며 피해자를 낚는다. 가족이나 친구, 지인을 사칭한 청첩장, 부고장을 보내는 것도 주된 수법이다. 무심코 클릭했다간 개인정보가 털리고 범죄의 먹잇감이 된다. 이외에도 SNS를 통한 유명인 사칭 투자 사기, 로맨스 스캠 등 별의별 피싱 범죄가 난무한다. 선거판에선 표를 노린 거짓 공약이 쏟아지기 마련이다. 이번 총선에선 정도가 더 심하다. 피싱 사기와 크게 다를 게 없다. 당장 사람들의 돈을 털어가지는 않지만 사회에 미치는 해악은 결코 적지 않다. 유권자가 깨어 있는 수밖에 없다. 허황된 거짓말에 속아 주권을 사기당하는 일은 없어야겠다. 허석윤 논설위원
[월요칼럼] 51.7㎝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할까, 말까. 흔히 민주주의의 꽃이 선거라는데 이번 꽃은 정말 지지리도 못생겼다. 정치 후진국인 우리나라에서 그 꽃이 예뻐 보였던 기억도 없지만, 제22대 총선은 선거제도와 구도 자체에 심한 회의감까지 들게 만든다. 지역구 의원을 뽑는데 지역 현안은 겉돌고 존재감도 별로 없다. 천체물리에 등장해야 어색하지 않은 '위성'이 정당과 결합해 표를 달라고 떼를 쓴다. 법을 주무르는 국회의원들이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으니 닥치고 따르라'는 겁박과 다름없다. 후보자의 능력과 포부는 뒷전으로 밀려난 지 오래다. 미래보다는 현재와 과거에 포위된 정치판은 수십 년째 견고하다. 자기 눈에 있는 대들보는 애써 감춘 채, 남 눈의 티끌만 찾아내서 갈라치기를 하는 정치가 그렇다.선거제도는 갈수록 난해하다. '정치공학' '선거공학'이란 신조어가 낯설지 않을 정도다. 비례 위성정당은 뭔가. 외형은 거대정당들이 유불리를 철저하고 치밀하게 따진 끝에 나온 결과물이다. 속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호위무사' 기능에 충실할 것 같은 인물들로 채워질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하다. 위성정당은 의원들을 빌려주는 윤리적 문제를 비롯, 거액의 국가 보조금과 그들만의 대표성 등으로 인해 부정적 이미지가 크다. 역대 최장인 비례대표 투표용지 길이 51.7㎝가 유권자들의 착잡하고 못마땅한 심경을 상징하는 듯하다. 특히 총선을 앞두고 급조된 정당을 바라보는 시각도 귀태(鬼胎)와 구원(救援) 사이일 정도로 극명하게 엇갈리면서 분열의 또 다른 기폭제가 될 조짐이 일고 있다.기본으로 돌아가 보자. 총선은 지역과 국가발전을 위해 헌신할 의지와 자신이 있는 후보자를 선택하는 일이다. 자기 분수와 능력을 알고 체면이 있는 사람이 후보로 나서는 게 당연하지만 현실은 항상 이론을 비웃는다. 능력 있고 사람이 참하다 해도 절대 권력을 가진 지도자의 구미에 맞지 않거나 색깔이 일치하지 않으면 거의 꽝이다. 경상도에서는 흔히 쓰는 말이지만, 1992년 발생한 초원복국 사건을 계기로 지금껏 회자되는 레전드가 있다. '우리가 남이가.' 혈연·학연·지연을 아우르는 이 문구는 정치적으로 악용되면서 정치판 자체를 수렁으로 몰고 가는 데 일조했다. 굳이 분칠을 하자면 단합과 화합이고, 빨강 파랑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정치인들이 필요할 때마다 아주 유용하게 써먹는 카드이기도 하다.지난 5~6일 실시된 사전투표가 역대 총선 최고치를 찍은 가운데 본투표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국민들은 병역·입시 비리에 연루됐거나 지저분한 구설에 오르내리는 사람들을 병적으로 싫어한다. 소중하고 유의미한 집단지성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정서도 팬덤정치 앞에서는 맥을 못 춘다. 체면도 없고 부끄러움도 없다. '우리가 남이가'의 확장판이다. 재판 중이거나 심지어 수감 중인 정치인이 보란 듯이 복수·탄핵·혐오·학살 등 막말을 쏟아내며 지지를 호소하는 상황을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누가 보면 오랑캐와 왜구에 맞섰던 의병이고, 독립운동하다가 핍박받은 애국지사인 줄 착각하겠다. 예로부터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랬다. 망국적인 양극단의 정치가 득세하면서 나라 걱정은 중도층만 한다는 이야기가 확 와닿는다. 좋든 싫든 끓어오르는 분노를 표현하는 방법은 현실적으로 투표밖에 없다. 장준영 논설위원장준영 논설위원
[미디어 핫 토픽] '반추하는 아름다움'의 미학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국민 애송시로 유명한 나태주의 '풀꽃'이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오래 보아야 사랑스러움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예술 작품을 오래 반추할 시간이 없다. 예민한 사회에서 사람들은 바쁘고 날카롭다. 내 일상을 안온하게 지키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지친다. 이런 상황에서 작품에 숨겨진 속뜻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사유하는 건 피로도만 높일 뿐이다.시간이 흐르며 사람들은 '빠르게 더 빠르게'를 외친다. 이런 모습을 두고 인터넷 세상 속에서는 국제 전화의 한국 국가번호에 빗대어 '+82(빨리)의 민족'이라고 자조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인스타그램 릴스나 틱톡과 같은 짧은 형태의 영상 콘텐츠인 '쇼트폼'의 시대가 도래한 현대사회는 짧고 자극적인 것만을 찾게 한다. 길어야 10분 이내인 영상에 익숙해지고, 집중력도 함께 짧아진다. 또 도파민 분비를 폭발하게 하는 '고자극 콘텐츠'는 소비·감상하는 사람이 생각하는 것을 싫어하게 만든다. 결국 악순환의 반복이다.예술 작품의 속뜻과 작가의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은 사람들은 결국 겉모습과 기술적인 부분만 보고 판단한다. 잭슨 폴록의 'No. 5'나 마르셀 뒤샹의 '샘'을 보고 "저 정도는 나도 하겠다. 예술 하기 쉽네"라는 말을 하는 것은 작품을 곱씹어 보지 않고 눈에 보이는 대로만 받아들인 결과일 것이다.통계청의 '문화예술 시설 수'와 '문화예술 및 스포츠 관람 횟수' 조사에 따르면, 유튜브와 같은 플랫폼이 성행하기 시작한 2017년 이후로 시설 수는 '상향곡선', 관람 횟수는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예술 작품의 접근성은 보다 좋아지고 있지만, 사람들이 미술관이나 공연장보다는 방 안에서 소비할 수 있는 콘텐츠를 더 선호하게 됐다고 해석할 수 있겠다.자극적이고 단순한, 짧은 콘텐츠는 소비자로 하여금 '일차원적 쾌락'에 머물게 한다. 이러한 쾌락에 대한 욕구는 자연스러운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 지나치게 매몰되면 이성보다는 본능에 지배받는 삶을 살게 된다. 사유하고 성취하는 등 성취감과 사회적 인정에서 오는 고차원적인 수준의 쾌락은 더 깊고 지속적인 만족감을 제공한다.뇌는 새로운 생각을 할 때마다 새로운 뇌 신경 체계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생각하기가 '습관화'돼 있지 않다면 생각하는 것 그 자체가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성숙한 인격체가 되기 위해서 '생각하는 훈련'을 할 필요가 있다. 장윤아기자 baneulha@yeongnam.com
[이재윤 칼럼] 투표율 50·70%가 만드는 전혀 다른 세상
#'D-30 다섯 장면'의 결말=4주 전 'D-30 다섯 장면'이란 글에서 투표일 30일 전 주목할 다섯 장면을 소개했다. 결말은 이렇다. 당시 민주당 공천 잡음에 힘 잃은 '정권 심판론'(1장면)은 완벽히 부활했다. 스스로 걸어 나와 정권 심판론에 불붙인 건 대통령이다. 이종섭·황상무 악재에도 마이웨이를 고집한 게 역전의 빌미를 줬다. 사퇴로 봉합을 시도했지만 제궤의혈(堤潰蟻穴), 개미굴이 둑을 무너뜨린 뒤였다. '민주당 분열'(2장면)이 대형 악재가 되리란 예상은 진보의 기우로 끝났다. 이낙연도, 조응천·김영주도 위협적 존재가 되지 못했다. '조국 신당'(3장면)은 최대 돌발 변수가 됐다. 윤석열도 이재명도 싫어 망설이던 유권자들이 목을 적실 시원한 우물이 돼 부동층을 가두고 있다. 피의자 조국의 부활은 양가적(兩價的)이지만, 그가 지지율을 다 까먹던 민주당에 기사회생의 일등 공신이 된 건 전적으로 '세렌디피티(serendipity·뜻밖의 행운)'의 요행이다. '조국 현상'은 조국의 공(功)이기보다 윤 정부에 대한 응축된 실망과 분노의 결과다.한때 국정 지지율 도약의 제1 지렛대였던 '의대 증원'(4장면)은 '의·정 갈등'으로 프레임 전환돼 여당에 부메랑 되어 돌아왔다. 대통령의 느닷없는 대국민 담화는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보수 일각에서 '존재하는지조차 애매한 중도층'(5장면)이라 폄훼한 건 완전 오판이다. 여론조사에서 4%포인트 내 접전지가 전국 16곳(조선일보), 박빙 경합지가 49(민주당)~55곳(국민의힘)이나 된다. 4년 전에도 5% 내 승패가 난 게 40곳, 10% 내로 넓히면 79곳이었다. 야당에 경도된 중도층의 존재를 부인하고 싶겠지만, 살얼음판의 캐스팅보터는 늘 그들이었다.#D-5 마지막 변수=모든 변수가 소진된 지금, 남은 건 '투표율'이다. '반드시 투표'(77.7%), '가급적 투표'(17.3%·미디어토마토·4월2일 발표)를 합쳐 무려 95%가 투표 의향을 가졌다는 건 현실적이진 않다. 다만 그 열기만큼은 심상찮다. 가장 높았던 21대 투표율(66.2%)은 깨질까. 오늘, 내일의 사전투표율이 30%(21대 26.7%)를 넘기면 70% 초반도 넘볼 수 있다고 한다. '샤이 보수'가 많은 건 위기에 처한 보수의 기회 요인이다. '간절함'이 승패를 가른다.민주당이 승리한 2004년(투표율 60.6%·152석), 2016년(58.0%·123석), 2020년(66.2%·180석) 모두 60% 안팎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보수 정당이 이긴 2008년(46.1%·153석), 2012년(54.2%·152석)은 50% 안팎에 머물렀다. 민주당은 매직넘버를 '65%'로 잡았다. '투표율이 63∼65% 나오면 정권 심판론이 힘을 받고, 53% 안팎에 그치면 여당 의석이 늘어날 것'(이강윤 전 KSOI 소장)이라 한다. '투표율 68% 넘으면 여당 100석 아래로 떨어진다'(김준일 시사평론가)는 근거가 궁금한 논평도 등장한다. 반론이 만만찮다. 마음 못 정한 유보층 비율의 경우 교차투표에 익숙한 2030이 다른 연령층보다 2~5배 많다. 여당이 만회할 유일한 변수는 '60대 이상의 아주 높은 투표율이다.'(김진·보수 패널) 2030 유권자를 합친 것보다 60대 이상 유권자 수가 더 많아진 첫 선거. 단순 투표율보다 세대별 투표율에 더 주목할 이유다.논설위원논설위원
[자유성] 식목일의 재해석
오늘(5일)은 제79회 식목일. 올해도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나무 심지 않는 식목일을 보낸다. 지구 온난화로 식목일에 나무 심기에는 기온이 너무 높아, 대구를 비롯한 대부분 지역에서는 이미 3월에 나무 심는 행사를 가졌다. '식목일을 변경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복되는 질문이 나오는 배경이다. 1946년 제정된 식목일은 일제 침탈로 황폐화된 우리나라 산림을 다시 가꾸려는 목적이 분명했다. 게다가 4월5일은 조선 시대 성종이 직접 논을 경작한 날이어서 역사적 의미도 있다. 날씨 또한 1946년 4월 초는 묘목 심기에 적합했다. 그래서 2006년 기념일로 변경되기 전까지는 공휴일로 지정돼, 나무 심기가 전 국민적인 행사로 치러졌다. 하지만 지구온난화가 진행되면서 4월5일은 더 이상 나무 심기에 적합하지 않은 날이 됐다. 2~3월이 묘목 시장의 성수기가 된 지 오래다. 자연스럽게 식목일을 변경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UN이 정한 '세계 산림의 날'인 3월21일이 대안으로 거론됐다. 3월21일을 '온난화 식목일'로 지정해 행사를 갖는 환경단체도 있다. 식목일을 3월21일로 변경하자는 산림기본법 일부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돼 있으나, 법안 소위에 상정되지는 못했다.식목일 변경만큼 의미 있는 주장은 식목일의 의미를 현실에 맞게 재해석하는 것이다. 황폐화된 산림을 복구하려는 식목일의 당초 목적은 이미 달성됐다. 나무는 탄소를 줄여 지구 온도를 낮추는 기능을 한다. 탄소 중립 실현과 지구 온난화 방지에 중요한 방책이 나무 심기다. 식목일은 나무심기로 기후 변화에 잘 대응하고 있는지 되돌아보는 날이기도 하다. 김진욱 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진부한 클리셰는 이제 그만
#1 김난도 서울대 교수 등이 매년 출간하는 소비 트렌드 전망서 '트렌드 코리아'는 이미 스테디셀러다. 지난해 10월 나온 16번째 책 '트렌드 코리아 2024'의 첫 번째 트렌드는 '분초사회'. 시간의 효용성을 극대화하는 세태를 투영했다. 빠른 재생 속도로 영상을 보는 것도 분초사회의 단면일 것이다. 두 번째 트렌드 '육각형 인간'은 완벽한 인간을 말한다. 꽤 논쟁적이다. 예컨대 '육각형 아이돌'이라면 노래·춤·외모는 물론 학벌·집안·성격까지 좋다는 식이다. 세 번째 트렌드는 '호모 프롬프트'. AI 시대에도 인간의 역할과 능력이 필수적이라는 저자의 시각이 깔려 있다. 트렌드에 뒤처진 곳이 정치 분야다. 표심 구애작전도 변죽만 울린다. 진부한 클리셰를 반복한다. 트렌드를 읽지 못하는 까닭이다. 이를테면 감세 포퓰리즘 따위다. 여당은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주식양도세 대주주 기준 완화, 부가가치세 간이과세자 확대 등 일련의 감세 공약을 줄기차게 제시했다. 하지만 민심은 요지부동. 좀처럼 판세 반전의 동력을 마련하지 못한다. 베네수엘라식 선심 정책이 더는 먹히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그렇다면 전략을 바꿔야 한다. 누구도 예상치 못하는 이슈를 던져야 여론이 요동친다. '김건희 여사 특검법' 수용 같은 파격 제안이 민심 포획의 한 방법이다. 트렌드 불감증이 민주당이라고 다르랴. 중국에도 대만에도 "셰셰" 하라고? 이재명 대표는 중국의 갑질 행태와 우리 국민의 반중정서를 정녕 모르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칠십 평생 이렇게 무능한 정부는 처음 본다"며 윤석열 정부를 겨냥했다는데 문재인 재임 5년 동안 나랏빚이 400조원 늘었고 부동산이 폭등하지 않았나. "정치를 개같이" "나베는 밟아야" 아류의 거친 언설 역시 정치를 저급하게 할 뿐이다. 미셸 오바마 여사의 경구가 문득 떠오른다. "When they go low, we go high"(그들이 저열하게 가도 우리는 품위 있게). #2 처칠은 "민주주의는 다른 제도에 비해 덜 나쁠 뿐이지 아주 나쁜 제도"라고 비판했고, 루소는 저서 '사회계약론'에서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질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의정치는 직접민주주의가 불가능한 현실에서 차선의 대안임에 틀림없다. 대의민주주의의 꽃이 선거다. 선거(選擧)는 글자 그대로 고르는 일이다. 사르트르는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다"란 명언을 남겼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란 뜻이다. 민주주의 또한 선택으로 점철(點綴)된다. 이번엔 총선이다. 4년을 좌우할 선택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여론조사에 따르면 후보 선택의 고려 사항으로 인물·능력, 정책·공약, 소속정당이 각각 29% 안팎으로 엇비슷했다. 하지만 대구경북과 호남은 '정당을 우선한다'는 응답 비율이 높았다. 정당 우선? 진부한 클리셰다. 정당 깃발만 보면 편법대출로 부동산 시장을 교란한 양문석 후보, 김준혁 같은 막말 후보를 걸러내지 못한다. 현실에 안주하는 '비만 고양이' 정치인의 관성을 끊어낼 수 없다. 정치권의 과이불개(過而不改·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음) 행태도 바루지 못한다. '선택의 기술'이 필요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고 했다. 그 '정치적'에 내재된 함의 중 하나는 '지혜로운 선택'일 게다.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적' 은유에 부합하는 선택을 할 수 있을까.논설위원논설위원
[자유성] 독이 든 성배
예수가 최후의 만찬 때 사용했다는 포도주잔을 '성배(聖杯)'라고 한다. 성배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수난이 임박했음을 뜻한다고 한다. '독이 든 성배'라는 말도 그런 이유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흔히 축구 감독직(職)을 '독이 든 성배'라고 부른다. 축구 감독이 얼핏 대단한 자리로 보여도 쓰디쓴 대가가 따른다는 얘기다. '파리 목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옷 안주머니에 늘 사표를 넣고 경기에 임하는 감독도 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개막을 10개월 앞둔 시점이었다. 요하네스 본프레레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경질됐다. 이를 꼬집어 독일 월드컵 주최 측이 '독이 든 성배'라고 했다. 이후 한국 축구 대표팀 감독은 '독이 든 성배'의 대명사로 통했다. 역대 한국 축구 대표팀 감독 중에선 거스 히딩크·파울루 벤투 등 성공한 이도 없지 않다. 하지만 대부분은 불명예 퇴진을 피하지 못했다. 지난 2월 물러난 위르겐 클린스만은 '역대 최악의 감독'으로 평가됐다. 그저 사람 좋다는 소리만 들었을 뿐이다. 박항서 감독에 이어 베트남 축구를 이끈 필리프 트루시에 감독도 최근 짐을 쌌다.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인도네시아에 거듭 패한 뒤 다이렉트 경질됐다. 대한민국 여야 정당의 수장(首長)도 '독이 든 성배'로 부를 만하다. 선거 결과에 자신들의 정치적 명운이 걸렸기 때문이다. 총선을 눈앞에 둔 가운데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입이 갈수록 거칠어지고 있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의 심정일 게다. 오는 10일 밤 누가 독배를 들고, 누가 축배를 들지 지켜볼 일이다. 이창호 논설위원
[영남시론] 개딸도 싫고 용산도 싫다면
4·10 총선이 가까워지면서 조급해진 모양이다. 정치권의 언사가 갈수록 거칠어지고 있다. '2찍' '탄핵' '개 같이 정치' '쓰레기 같은 말'. 낯 뜨거운 발언이 거리낌 없이 쏟아진다. 이런 혐오와 증오의 발언에 강성 지지층은 오히려 환호한다. 국민을 분열시키는 팬덤 정치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정치인들이 다투어 '사이다 발언'과 지키지도 못할 공약을 쏟아내는 이유다. 이들에게 중도 확장을 통한 외연 확대라는 정치의 목표는 애당초 관심 밖이다. 새로운 인물도 새로운 비전도 없이 강성 지지층만 바라보는 갈라치기 정치로 일주일 뒤 선거에서 이길 수 있을까.사실 중도층은 모호해 보이기는 하다. 구체적으로 그들은 누구인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집단인지 분명하지 않다. 그래서 혹자는 "선거와 전쟁에 중도와 산토끼는 없다. 집토끼들 간의 싸움이고 집토끼들이 실망해 투표장에 안 나오면 진다"는 주장을 한다. 더 나아가 "중도는 실체가 없는 허상이고 중도층을 공략해야 선거에서 이긴다는 말도 맞지 않는다"고 한다. 모든 쟁점 사안에 대해 정확히 중간 지점을 추구하는 일은 비현실적이다. 중도란 모든 이슈에 보통이라는 정확히 중간값의 응답을 보일 것이라 생각하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다. 어떤 이슈에는 찬성하고 다른 이슈에는 반대 응답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모든 이슈에 일관된 성향을 보이는 중도층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도 없다. 부자 감세는 반대하지만, 국가의 시장 규제는 찬성할 수 있고 낙태는 허용해야 하지만, 여성가족부는 폐지해야 한다는 태도를 보일 수 있다. '윤석열'이 싫다고 '이재명'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정치와 선거에서 이런 중도의 힘은 세다. 거대 양당 체제가 굳건하고 정치 양극화가 극심한 한국 정치에서는 더욱 더 그렇다. 정의하기 어렵고 모호하나 분명히 존재하는 중도층의 움직임에 따라 선거 판세가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실리적으로 지지를 바꿔가며 투표하는 유권자들에 의해 선거 결과는 달라졌다. 최근 세 번의 선거(한국리서치 설문조사)에서 정치 참여에 적극적인 중도층 3명 중 1명(34%)은 한 번 이상 투표 정당(후보)을 바꿨다. 정치 이해 수준과 관심이 높은 중도층이 존재하고, 특정 정당을 강하게 지지하지 않는 중도층의 성향이 '스윙보터'라는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도 전체 유권자 중 부동층 유권자는 600만명을 넘을 것(리서치앤리서치 설문조사)으로 분석됐다.여야 모두 30~40%의 지지층만 결집해선 선거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더군다나 5% 미만의 격차로 승부가 갈리는 격전지가 수두룩하다. 갈 곳을 정하지 못한 중도층을 잡겠다면 혐오와 증오의 언사를 쏟아낼 게 아니라 정책과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개인의 이익과 목표가 엇갈릴 때, 갈등과 대립이 불거질 때, 정치는 타협과 협의로 길을 내야 한다. 어렵고 힘들지만 그렇게 외연을 확장해야 한다. 혐오와 증오에 기대어 선거에서 이긴다고 한들 '개딸'과 '태극기 부대'에 휘둘리는 정치가 내 삶에 도움이 될 리 만무하다. 그러므로 '개딸'도 '용산'도 싫다며 투표하지 않는다면 내 삶도 우리 정치도 바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중도'의 선택과 실천만 남았다. 이은경 한국스토리텔링 연구원장이은경 한국스토리텔링 연구원장
[하프타임] 진정한 지방시대 여는 모범 답안 되길
수도권 집중화로 지방소멸이 가속화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청년 인구 유출로 지방은 삼중고를 겪고 있다.4·10 총선을 앞두고 후보자마다 '지방시대 구현'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저마다 기업 유치와 투자 활성화의 공약을 쏟아내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윤석열 정부의 국정 목표 중 하나인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열기 위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어쩌면 해답은 간단하다. 좋은 일자리와 안정된 정주 여건을 바탕으로 결혼과 출산의 선순환 구조를 갖추면 된다. 교육과 의료, 문화서비스, 교통 등의 여건도 필수적이다.지방의 경우 수도권보다 여러 환경이 비슷하거나 능가해야 하는 조건이 붙는다.경북 제1 도시 포항의 경우, 국내 최고 이공계특성화대학 포스텍이 있다. 학생들은 세계 최고의 인재들이지만, 졸업 후 지역에 남아 있는 학생들은 거의 없다.평소 알고 지내던 한 포스텍 졸업생은 포항을 떠난다고 했다. 그는 포항에는 쇼핑, 서점 등 생활 인프라가 매우 취약하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대부분 졸업생도 양질의 일자리와 정주 여건이 좋은 서울이나 외국으로 향한다고 했다.전국의 지자체가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기업 유치를 희망하면서도 세제 혜택 등 유인책 마련에는 소극적이다. 기업도 수도권보다 인재를 구하기 어려운 지방으로 이전할 이유가 전혀 없어 보인다.설령, 기업을 유치해도 지속적인 지원·관리 한계에 부닥친다. 산업도시로 명성을 떨친 구미. 2019년부터 주요 기업들이 국내 타 도시나 해외로 떠나기 시작했다. 구미 경제에 크게 이바지한 삼성전자 네트워크 사업부는 수원으로 생산 공장을 옮겼다. 연구소와 개발, 생산시설 집중이라는 이유였다. 구미시민들의 몸부림에도 기업은 떠났다.기업은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냉정한 집단이다.어느 지자체 할 것 없이 "살고 싶은 도시를 만들겠다"고 외친다. 정작, '살기 좋은 도시'라고 느끼는 시민들은 전국에 몇 곳이나 되겠나.더 많은 국비 확보로 쾌적하고 기업하기 좋은 도시 구축 등이 지방을 살리는 길이다. 여기에다 지역 기업과의 상생 협업 관계를 바탕으로 사회환원사업을 지속해서 끌어내는 것도 지자체의 능력이다. 기업의 투자와 사회 환원이 없다면 지역 발전은 더딜 수밖에 없다.그나마 포항은 포스코라는 대기업이 있어 형편이 나은 편이다. 관광명소가 된 스페이스 워크, 포항제철소 경관 조명 설치 등 무수히 많은 투자로 사회 환원 사업을 펼쳐오고 있다.다만, 지난 몇 년간 포스코홀딩스 본사 및 미래기술연구원 분원 입지 등의 문제로 포항 지역과의 관계가 잠시 소원했지만, 장인화 회장이 취임하면서 관계 회복의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장인화 회장은 지난달 취임식 직후 이강덕 포항시장과 저녁 만찬을 함께하며 '포스코의 고향' 포항의 미래 세대를 위한 역할과 행정적 지원에 대해 크게 공감했다고 한다. 포스코와 포항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포스코가 포항을 세계 최고의 철강 도시로 만들었다면, 이제 포항은 2차전지 도시, 수소 도시로 또 다른 비상(飛上)을 꿈꾸고 있다. 포항시·기업·시민이 합심해 노력하면 그 꿈은 얼마든지 이룰 수 있다. 포항이 진정한 지방시대를 여는 '모범 답안'이 되길 기대한다.김기태 동부지역본부 차장김기태 동부지역본부 차장
[동대구로에서] 현실 같은 영화, 영화 같은 현실
마거릿 애트우드 원작 소설을 드라마화한 '시녀이야기'를 우연히 봤다. 근본주의자들이 권력을 잡은 머지않은 미래. 인류는 전쟁과 공해, 각종 질환으로 출생률이 급감한다. 인류는 종말에 대한 두려움에 빠져들고, 여성들을 가임 여부에 따라 계급을 나눈다. 이 중 '시녀' 계급은 임신 가능한 여성들로 아이를 낳는 데만 집중한다. '인류 멸종'이라는 절망적 미래관은 2006년 개봉한 '칠드런 오브 맨'이라는 영화에서 더욱 적나라하게 표현된다. 절망적인 세상을 그린 디스토피아물로 저출산을 넘어 '무출산'이라는 처참한 인류의 모습을 담고 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어린아이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한다. 18년째 아이를 낳은 여성이 없기 때문이다. 더 이상 아기가 태어나지 않는 미증유의 재난을 맞이한 인류는 파멸을 향해 나아간다. 문제는 현실세상과 영화 속 배경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영화의 배경이 된 영국처럼 한국은 지난 20년간 저출생 문제와 싸워왔다. 2005년부터 저출산고령화사회 기본법을 발족시키고, 2006년부터 280조원을 투입했지만 출산율은 오히려 급속 하락했다.2020년에는 세계 최초로 출산율 0.8명대에 진입했다. 그로부터 2년 만에 0.7명대로 떨어진 출산율은 다시 2년 만인 2023년 말에는 0.6명대로 추락했다. 지난해 태어난 신생아 수는 23만명으로 불과 1년 새 거의 2만명이 감소했다. '칠드런 오브 맨'처럼 아기 울음소리를 듣지 못하는 현실과 오래지 않아 마주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해 온다. 실제로 최근 충북 진천군의 한 마을에서 3년 만에 아기 돌잔치가 열리자 동네 주민들은 물론 국무총리까지 참석해 축하할 만큼 저출생의 문제는 심각하다. 저출생은 지역은 물론 나라의 존립을 위협한다. 경제 생산인력보다 수요인력이 많아지면서 나라와 지역의 성장동력이 꺼지고 있다.지금까지 봐왔듯 현금지원과 같은 일차원적 정책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결혼과 출산 의욕을 떨어뜨리는 사회의 구조적 문제 해결 대신 아이 낳으면 돈 준다는 식의 세금 만능주의로는 '아이 낳고 싶은 나라'를 만들 수 없다.전문가들은 출산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변수로 일자리와 주거 안정, 육아환경을 꼽고 있다. 좋은 일자리를 구할 수 있고 좋은 공교육에 아이를 맡길 수 있다면 출산율은 자연스레 높아진다는 것이다. 저출생에 따른 인구 감소 상황을 전쟁으로 보는 곳도 있다. 경북도다. '저출생'과 전쟁을 선포했다. 육아를 개인이 아닌 지역사회의 역할로 규정했다. 부모에 대한 지원을 늘리고, 육아 및 공교육 인프라에 투자하고, 노동시간을 줄이고 있다. 또 주거보조를 확대하고, 가족지원 예산을 늘리고, 차별적 관행 철폐에 나서고 있다. 결혼과 거주, 육아까지도 지역이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 준다는 것이다.그만큼 절실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영화 속 영국의 정치와 경제, 종교적 모습은 섬뜩할 정도로 현실과 닮았다. 이대로 가다간 '현실 같은 영화'가 아닌 '영화 같은 현실'이라는 파국을 맞을지 모른다. 참고로 '칠드런 오브 맨' 영화의 시대적 설정은 2027년이다. 불과 2년 뒤다. 고민보다는 행동해야 할 때다.홍석천 경북부장홍석천 경북부장
[자유성] 공공예식장
경제적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이거나 개성 있는 결혼식 또는 스몰웨딩을 원하는 예비 부부들로부터 한때 관심을 끌었던 공공예식장의 인기가 많이 시들해졌다. 기대했던 것만큼 경제적이지 못한 데다, 이런저런 불편이 주된 이유로 꼽힌다. 예식비용이 일반 예식장에 비해 조금 저렴하거나 엇비슷한 데다, 웨딩 전문업체를 끼지 않으면 웨딩플랜·음향·식사 등 신경 써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취지는 물론, 운영의 묘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는 이유다.공공예식장 활용은 정부 차원에서 독려했다. 여성가족부는 2016년 11월 서울·부산·대구 등지의 전국 15개소를 '대한민국 작은결혼식 으뜸명소'로 선정, 발표하면서 분위기를 조성했다. 취지가 좋아서 반짝 주목을 받기는 했으나 지금은 15개소 중 절반 정도가 식장 운영을 하지 않고 있다. 또 기능은 유지하고 있어도 실제 예식이나 문의는 급감했을 정도로 존재감이 없다. 극히 일부에서 다양한 혜택 제공 등을 통해 장려하고 있지만 대부분 지자체는 별다른 관심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저출산이 국가 차원의 현안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가운데 예비 부부의 결혼식 부담을 완화하는 것도 하나의 의미 있는 정책이 될 수 있다. 가정을 꾸리려는 의지가 명확한 예비 부부가 공공예식장을 활용할 경우, 이들에 대한 적절한 지원은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해도 별다른 성과가 없는 다른 정책보다 효율성이 클 듯싶다. '탄생 응원 서울 프로젝트' 등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는 일부 지자체의 노력이 부럽고 돋보이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장준영 논설위원
[자유성] 벚꽃 없는 벚꽃축제
전국 각지에서 벚꽃 없는 벚꽃축제가 열렸다. 벚꽃은 활짝 피어 있는 기간이 짧은 데다, 근년 들어 그 시기가 들쭉날쭉하니 때를 맞추기가 쉽지 않다. 벚꽃은 주로 중부지역을 기준으로 4월 중순~5월 초순에 피었다. 지구온난화와 더불어 개화 시기가 점점 빨라지더니 지난해에는 3월 하순에 만개했다. 이 때문에 3월 말 이후에 열린 벚꽃 축제는 꽃이 대부분 지고 잎이 파릇파릇 돋아 오른 상태에서 치러졌다. 축제를 주최한 지자체에서는 지난해와 같은 실수를 피하려 올해는 축제 기간을 1주일 정도 앞당겼다. 야속하게도 올 봄에는 늦게까지 찬바람이 불고 비가 자주 온 탓인지 지난해 같으면 벚꽃이 피었다 질 시기인데도 이제서야 봉오리가 터지기 시작하고 있다.나무에 꽃이 피거나 낙엽이 지는 것은 밤낮의 길이와 일조량·기온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식물체 내의 광색소인 파이토크롬(phytochrome)은 밤낮의 길이를 정확히 감지하여 종자 발아나 개화 등 식물의 생리를 조절한다. 옥신과 지베렐린·사이토키닌 등 식물 호르몬도 꽃이 피는 시기와 피는 양, 성(性) 등을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이는 초본 식물에서 광범위하게 밝혀졌다. 그러나 목본 식물에서의 작용에 대한 연구는 미비한 편이다. 해의 길고 짧음이나 기온·일조량 등이 나무에서 꽃이 피는 시기를 어떻게 결정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는 것이다.지난해에 비해 올해 벚꽃이 늦게 폈다는데 대한 반론도 있다. 음력으로는 올해 벚꽃이 늦지 않다는 것이다. 지난해 대구와 경주의 벚꽃은 춘분(3월 21일)쯤에 만개했다. 음력으로 2월 30일이었다. 올해 음력 30일은 4월 8일이다. 이하수 중부지역본부 부장·나무의사
[박재일 칼럼] 한동훈이 말한 볼테르
개인적으로 신인이 커가는 것을 즐기는 취향이 있다. 특히 스포츠나 정치분야다. 박찬호나 손흥민도 그런 케이스다. 그들이 10대 때 저 친구들은 언젠가 큰일 치를 거라며 스포츠 단신 기사까지 챙겨봤다. 더불어민주당에는 조금 미안한 얘기지만 이번 4·10총선 전체를 놓고 '출중한 정치 신예'를 고르라면 아무래도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자 총괄선대위원장일 게다. 신인에 대한 호기심이 큰 나의 취향임을 양해했으면 한다.한동훈은 이미 법무부 장관 재직 시 국회 문답에서 보여준 특유의 화법과 언어들로 그가 일개 장관의 영역을 넘는 인물이란 걸 증명했다. 프로 정치세계에 입문한 지 3개월도 안 된 신인인데 등판하자마자 신인상은 물론이고, MVP라 할 차기 지도자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겨루는 수준이 됐다. 이재명이 누구인가. 지난 대선에서 0.7% 차이로 낙선한 대한민국 정치 넘버 2가 아닌가.한동훈의 빠른 말투에 난감해하는 이들도 있다. 그의 말은 사실 현란하다. 그래도 호불호를 떠나 기억할 어구들이 많다. '산업화의 밥을 먹고, 민주화의 시를 배우며 성장했다.' '누가 대구에 매몰되지 말라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대구는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의 기둥이다.' 전국 팔도를 돌며 이토록 각 지역을 열렬히 진단한 정치인은 별로 기억되지 않는다. 그가 연구대상인 점은 또 있다. 조금 어려운 주제를 던진다. '우리는 공공선을 생각한다. 동료시민에 대한 계산없는 선의를….' '수많은 이슈 모두에 중간 지점의 생각을 가진 사람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며칠 전 한 일간지에 실린 한동훈의 인터뷰는 더욱 생각에 잠길 만했다. 그는 철학자 볼테르를 인용했다. '상식(common sense)은 일반적(common)이지 않다'는 경구다. 난 볼테르를 잘 모르지만 그 인용은 지금 이 시점 대한민국의 고민을 다 털어놓은 듯하다. 내가 상식이라고 믿어도 대중은 상식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현실이다. 한동훈은 어쩌면 이재명 대표의 '중국에 그냥 셰셰(謝謝)하면 된다. 왜 집적거리나'는 발언을 염두에 뒀는지도 모르겠다. '이재명식 셰셰'라면 우리는 미국에도 그냥 '옛설(Yes sir) 생큐'라고 반복하면 된다. 외교를 조금이라도 아는 이들이라면 그게 자칫 나라 망조를 재촉하는 비상식임을 안다. 그런데도 유권자 반응은 심드렁하다. 오히려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 받고도 곧장 창당하고 국회의원을 예약한 이들에게 열광한다. 상식은 진정 일반적이지 않은가. 진중권 평론가가 라디오 생방송 도중 방송 못 하겠다며 항의했다. 내용인즉 한동훈의 '개 같은 정치' 발언을 주제로 올리자 '이걸 여기서 따지자고? 맨날 막말한 사람은 그냥 넘어가고 어쩌다 한번 한 발언만 꼭 집어 공격한다면 그건 옳지 않다'고 공박했다. 편파방송에 대한 울분이다.한동훈은 9회 말 투아웃에 등판한다고 스스로 규정했지만 알고 보니 그는 지금 선발투수이자 마무리 투수가 됐다. 정치 평론가들은 그 점이 국민의힘의 패배를 불러올지 모른다고 한다. 한동훈은 물론 지도자가 상식이라 고집할 때도 대중이 그렇지 않다면 대중이 옳을 때가 있다며 한발 물러섰다. 그렇다면 대중은 늘 상식적인가란 의문은 남는다. 만약 이번 선거에서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면 그 후과는 어떻게 될까.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는가란 의문이 엄습한다. 어느 쪽이 상식적인가? 난 한동훈이 굉장히 상식적 언어들을 구사한다고 느낀다. 논설실장박재일 논설실장
의료대란으로 번진 의대 증원
[의대 증원 집행정지 각하·기각] 정부, 대학 "2025학년도부터 의대 증원 속도"
"20일까지 전공의 복귀해야"…전문의 취득 늦어질 가능성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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