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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성] 화목 보일러
젊은 소방관 두 명의 아까운 목숨을 앗아갔던 문경 신기공단의 화재는 공장 내 전기튀김기의 온도제어기 작동 불량으로 드러났다. 소방청은 또 사고 발생 이틀 전 공장 관계자가 화재 수신기 경종을 강제 정지시킨 탓에 불이 크게 확산한 뒤에 119에 신고해 늑장 대응 했다고 조사 결과를 밝혔다. 안이한 태도가 참사를 일으킨 인재였다는 결론이다.얼마 전 문경의 한 농가에서 화목보일러 취급 부주의로 추정되는 불이나 주택이 모두 탔다. 이날 문경의 다른 지역에서는 봄철 산불 예방을 위한 선제 조치로 산림과 인접한 화목보일러 사용 40여 가구에 대한 안전점검과 주민 계도를 했다. 화목보일러가 연료비가 싼 대신 취급을 소홀히 할 때 화재 위험을 안고 있어서 주의를 촉구하기 위해 당국이 나선 것이다.최근 3년간 전국에서 발생한 화목보일러 화재는 1천200건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화재 위험성이 크다는 방증이다. 화목보일러는 연료비 등의 이유로 기름이나 가스보일러 사용을 꺼리는 농가에서 주로 설치해 사용한다. 장작을 사지 않더라도 가까운 산에서 연료를 조달할 수 있어 선호하는 농가가 많다. 하지만 관리 부실로 불이 날 위험을 늘 안고 있다. 장작 등의 땔감을 보일러와 가까이 두거나 타고난 재를 대충 살펴보고 산기슭이나 농지 주변에 버렸다가 산불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특히 봄철에는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마음도 해이해지기 쉬워 화목보일러 사고가 빈발한다. 공장 화재든 화목보일러 화재든 소중한 인명과 재산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준다. 또 방심과 관리 소홀에서 비롯된 인재라는 점도 같다. 남정현 중부지역본부 부장
[하프타임] 잡아놓은 물고기에 먹이를 주지 않는다
선거에서 특정 정당이나 특정인에 대한 지지가 불 보듯 뻔하게 진행되고, 결과도 이미 예측된다면 지역의 발전과 개인의 삶엔 하등의 도움이 되질 않는다. 아마 이는 인지상정일 것이다. 오는 4·10 총선에선 유권자들이 후보자들을 좀 더 경쟁토록 해 끝까지 선택의 기준을 냉정하고 날카롭게 설정해 놓았으면 하는 바람이다.정당이나 후보자의 야망을 이루어주는 유권자가 아니라, 유권자의 희망을 대리할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잡아놓은 물고기에 먹이를 주지 않는다'라는 말을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유권자들이 이미 정해진 정당이나 정해진 후보에게 '묻지마식 지지'를 해온 것에 대한 정치적 풍자이고 반성이다.선거철 TK 지역의 공천과정을 살펴보면 가장 큰 특징이 대폭적인 물갈이를 해왔다는 점이다. 보수 정당이 그동안 물갈이의 지표를 높이기 위해 활용해 온 지역이다.공천도 항상 막바지에 결정해 왔다. 정치권의 각종 구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러 가지 변수를 고려, 끝까지 이런저런 '말 놓기'를 계속하다가 결정하기 일쑤였다.의아한 건 그렇게 내린 결정에 대한 저항도 그다지 크지 않았다는 것이다. 선거철마다 TK가 잡아놓은 물고기로 전락해버린 이유가 아닌가 싶다. 사실 공천은 지역 주민이 원하는 방향대로 흘러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정치권에서 이 같은 바람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TK에선 보수와 진보 정당 간 경쟁이 사실 기울어진 운동장과 같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점도 지역 주민들의 뜻이라면 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정당이나 후보자 선택은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되는 정당이나 사람을 기준으로 선택하면 된다. 문중 따라가기, 당에 대한 충성도 등으로 이뤄진 평가나 선택은 경계해야 한다.'묻지마식 지지'는 정당이나 후보자들을 불편하고 안일하게 만드는 일일뿐만 아니라 주권자로서 우리의 권리도 제약당하고 왜곡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정당 내에서 경쟁을 좀 치열하게 하고 유권자들이 날카로운 분석과 기준을 갖고 선별한다면, 유권자인 우리에게도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선거국면에선 정당 간 경쟁, 그게 불가능하다면 정당 내 경쟁을 치열하게 거치도록 해 그 선택을 유권자들이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선거다.힘들 때일수록 원칙을 지키고 정체성의 정치를 유지한다면 지금 실패에도 불구하고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사회사상가 '장 자크 루소'는 "우리는 투표장에 들어가서만 주인이고, 투표장 문을 나서는 순간 다시 노예 상태로 돌아가고 만다"라는 말을 했다.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를 지적한 것이다. 일부에선 민주주의 제도보다 더 좋은 제도가 아직 없어 한계가 있는 줄 알면서도 민주주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선거운동 기간만큼이라도 유권자인 우리가 주인의식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주변이나 남들이 하자는 대로 따라가는 것은 자신의 주권을 포기하는 어리석은 행동이다. 오는 4·10 총선에서는 좀 더 경계심을 갖고, 정말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정당이나 후보자가 누구인지를 스스로 판단했으면 한다.피재윤 경북본사피재윤 경북본사
[이재윤 칼럼] TK, 또 잡은 물고기 신세인가
#초장 끗발 파장 맷감= 공식 선거기간 개시(28일)도 전에 대구경북은 조기 개점휴업에 들어갔다. 본선 같은 공천 싸움이 끝난 탓이다. 수도권·PK·충청권에선 하루가 다르게 지지율이 출렁이는데, TK 25개 선거구 중 한두 곳 빼곤 다 '빼박'이니 흥행 실패를 피할 수 없다.국민의힘의 TK 공천을 평한다면 '초장 끗발 파장 맷감'이다. 지역구 국회의원 25명 중 9명이 탈락했다. 교체율 36%, 역대 최소 폭이다. 직전 총선 교체율 64%에 크게 밑돈다. 경선 16곳 중 12곳에서 현역이 이겼다. 현역 불패 공식이 깨진 건 단 4곳. 뚜껑 열기 전엔 '역대급 교체' 공포감이 팽배했다. '90% 물갈이설'까지 돌았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특이 상황'을 만든 제1 원인은 '김건희 특검법'이다. 현역 의원을 최대한 추슬러 표 단속할 필요가 있었을 터이다. 10명 중 3, 4명꼴 생존이 힘든 대구경북에서 재공천이란 좁은 문을 대거 통과한 TK 의원들은 김건희 여사에게 엎드려 절이라도 해야 한다. 대구의 3선 이상 중진, 경북의 재선 의원 모두 생존했다. 다 '영부인 덕'이다. 대통령실 출신 중 경선을 거쳐 공천장을 거머쥔 후보는 단 1명. 그게 '김건희 특검법' 때문인 건 역설적이다. 물갈이 갈증이 있었지만 '조용한 공천'은 대체로 후한 평가는 받았다. 뒤가 말썽이었다. 막판 내리꽂다시피 한 3, 4개 선거구의 물갈이는 특검법 부결 후 '국민추천 프로젝트'란 그럴싸한 이름으로 단행됐다. 뒷간 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달랐던 걸까. 명칭의 모호함 속에 공관위 측근, 서울 TK 내리꽂기 꼼수가 숨어 있었다. 목적한 바를 다 이룬 후의 일탈이 비겁했다.#공천 끝, 총선 파장= 선거는 정점을 향해 치닫는데, 대구경북은 파장 분위기다. 선거 사이클의 괴이한 불일치는 TK의 고질적 핸디캡이다. 신줏단지 모시듯 매번 '묻지마 투표'로 지역민 무시 공천을 자초했으니 누굴 탓하겠는가. 물갈이가 문제? 실은 어장의 난부(爛腐)가 심각하다. 자업자득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 없다. 자부심 가득했던 '보수의 심장'은 그걸 교묘히 부추기는 이들에 의해 '보수의 섬'으로 고립 중이다. '컬러풀(colorful)'도, '파워풀(powerful)'도 가슴만 뛰게 할 뿐 한갓 신기루. "무슨 공당의 공천이 호떡 뒤집기 판인가"(홍준표 대구시장)라고 힐책해도 모두 데면데면하고 처연한 척이다.#TK 공약 실종= 열기가 식은 곳, 잡은 물고기만 득실대는 곳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TK 공약 실종'이 반복되는 이유다. 이번도 같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어제 대구와 경산을 찾았지만, 특별한 정책이나 공약을 내놨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대구에서 "저의 정치적 출생지"라 추켜세웠던 게 새해 벽두, 두 달이 훌쩍 넘었다. '심장'이고 '텃밭'보다 '격전지'가 더 중했을 터이다. 홍 시장의 일침에는 불편한 심기가 읽힌다. "중요 국가정책 발표는 하나도 없고 새털처럼 가볍게 처신하면서 매일 하는 쇼는 셀카 찍는 일뿐이니 그리해서 선거 되겠나."연애 시절 달달했던 남녀가 결혼 후 왜 싸우고 냉랭해지겠나? 독점 때문이다. 경쟁이 사라진 거다. 격전지 수도권, 부산에선 선심 공약이 쏟아지는데, 역대급 조용한 텃밭 본선에선 공약이 사라졌다. 정치적 독점의 폐해다. 텃밭이라 지나쳐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역차별당해서도 안 된다. 논설위원이재윤 (논설위원)
[영남타워] 고교 시절의 그 서점과 재수 시절의 제일서적
경남 거창에서 고교 시절을 보냈다. 이웃한 합천에서 자란 필자에게는 첫 객지 생활이었다. 모든 게 낯설었다. 마음 둘 곳이 없었다. 가파른 길 위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애써 숨이 찰 때까지 뛰어 보기도 했지만 그뿐이었다. 학교를 마치면 하숙집에서 나오질 않았다. 그때 처음 '고독'과 '외로움'을 알게 됐다. 그나마 유일한 즐거움은 서점에서 죽치고 놀기였다. 학생들이 많은 도시라 수험서가 책꽂이를 가득 채웠지만, 구석 자리에는 문학 서적도 간간이 들어왔다. 유난히 소설을 좋아했던 필자는 시간이 날 때마다 서점으로 향했다. 플라스틱 간이 의자에 걸터앉아 읽고 또 읽었다. 마음에 드는 문장이 나올 때면 준비한 메모지에 옮겨 적었다. 그 메모지가 한 권의 책이 되기도 했다. 습한 종이 냄새가 무척이나 좋았다. 후각이 나를 상기시켰다. 서걱거리며 넘어가는 책 소리는 설레게 했다. 청각이 나를 상기시켰다. 서점 주인 아저씨는 그런 필자를 내쫓지 않았다. 읽기만 하고 사지는 않는 '진상 고객'인데도 말이다.(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주인아저씨는 필자가 '합천 촌놈'이라는 것을 친구들을 통해 알았다고 한다.) 졸업 후 대구에서 재수를 시작했다. 모든 게 낯선 객지 생활이었다. 하루하루가 덜컥거렸다. 하숙집 가까운 곳에 '제일서적'이 있었다. 파란색 간판이 마음에 들었다. 공부하기 싫은 날이면 학원 대신 제일서적을 찾았다. 1층 입구에 들어설 때마다 새 책 냄새가 후각을 상기시켰다. 그 냄새가 은은한 비누 향처럼 밀려왔다.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은 담백한 향, 그 향기를 즐기며 서점 이곳저곳을 어슬렁거렸다. 난초처럼 갈래갈래 퍼져나가는 서점의 내부는 깊고 넓은 바다처럼 보였다. 읽고 또 읽었다. 기초나 개론 수준의 딱지를 떼고 깊이 있는 주제의 책으로 넘어갈 때면 으쓱해하기도 했다. 참고서 살 돈으로 좋아하는 소설 한 권을 들고나올 때면 마음 한편이 가벼워졌다.(여태 어머니는 이 사실을 모르신다.) 고교 시절 거창의 그 서점은 문을 닫았다. 제일서적도 마찬가지다. 서점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가 2년마다 발간하는 '2024 한국서점편람'에 따르면 지난해 대구 군위군과 경북 청송·봉화·울릉군에는 서점이 한 곳도 없는 '서점소멸지역'으로 분류됐다. 서점이 하나뿐인 '소멸 위험지역'은 전국 25곳 가운데 경북이 4곳(고령, 성주, 영양, 의성)이나 됐다. 가슴 아픈 일이다. '소멸'이라는 단어가 마치 '멸종'처럼 읽혀 편치 않다. 다행히 의미 있는 움직임이 대구에서 일어나고 있다. 디자인·출판·기획 전문회사인 '밝은사람들'이 대구와 경북 '서점소멸지역'에 서점을 차릴 수 있도록 원스톱 지원에 나선다고 한다. 이 회사는 올해 설립 25주년을 맞았다. 최근 출판·마케팅 및 공간디자인 전문가로 구성된 전담 TF팀을 꾸리고 군위·청송·봉화·울릉군에 서점 창업을 돕기로 했다. 예비창업자가 서점을 열 점포를 확정하면 현지답사에 나선다. 이후 실내외 공간디자인부터 도서 공급, 홍보, 마케팅 등 운영 전반을 무료로 컨설팅한다. 서점 창업 후 북 토크, 출판기념회 등의 행사도 할 수 있게 돕는다. 현재 청송에서 서점을 운영하려는 예비창업자와 협의 중이라고 한다. 매번 강조하지만 서점(책방)은 단순히 책을 파는 공간이 아니다. 고교 시절의 그 서점과 재수 시절의 제일서적처럼…. 밝은 사람들이 일으킨 잔물결이 거센 파도가 되길 바란다. 백승운 문화부장 백승운 문화부장
[박규완 칼럼] 중도의 실종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조국혁신당이 떡하니 제3지대에 똬리를 틀 줄이야. 비례대표 정당 지지율이 26.8%를 찍으면서 18%의 민주연합을 앞섰다(리얼미터 여론조사). 이 정도면 '지지율 깡패'다. 조국혁신당의 득세는 종전의 총선 방정식과는 사뭇 궤가 다르다. 대개는 중도 성향 정당이 제3지대를 평정했다. 2016년 총선에서 3지대를 섭렵하며 원내 3당으로 우뚝 선 국민의당이 대표적이다. 안철수 당시 국민의당 대표는 '극중'이란 말을 즐겨 사용했다. 조국혁신당은 튄다. 강성 정당에다 좌편향 색채가 짙다. 당 강령을 봐도 비례대표 후보 면면을 봐도 그렇다. 1호 공약이 '한동훈 특검법 발의'다. 조국혁신당의 돌풍에 눌렸을까. 개혁신당과 새로운미래는 줄곧 '약풍 모드'다.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의 진단대로 "지역구에서 제3세력을 이끌 주체가 없다".제3지대뿐 아니다. 거대 양당의 공천 지도도 강성 일변도다. '친윤불패' '친명 프리미엄' '이재명 방탄' 같은 조어는 주류의 압도적 승리를 웅변한다. 국민의힘 핵심 친윤 의원들이 단수공천 됐고, 나경원 전 의원의 당 대표 출마를 주저앉혔던 '연판장 초선' 대부분도 당의 천거를 받았다. 민주당은 '개딸'의 지지를 업은 친명 후보의 기세에 비명 현역 의원이 줄줄이 나가떨어졌다. 대장동 '법률 호위무사'들이 대거 공천장을 손에 쥐었다. 면접에서 탈락한 김동아 변호사를 구제하는 과정은 블랙 코미디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불량품으로 비하한 친명 양문석 후보도 살아남았다. 정봉주 후보가 '목발 경품' 막말로 아웃된 서울 강북을에선 결국 비명 박용진 후보가 탈락했다. 이재명 대표는 친명엔 "표현의 자유"라며 감쌌고 비명은 노골적으로 비토했다.다양성 상실도 나쁜 그림이다. 254개 지역구 공천을 확정한 국민의힘 후보의 평균 연령 58.1세. 10명 중 8명이 5060이다. 여성 비율은 12%에 불과하다. 비례대표 명단을 두곤 호남·청년 홀대 논란이 불거졌다.양당은 공천 과정에서 당의 정체성과 정책 방향성을 정립하지 못했다. 감동과 쇄신도 없었다. 대통령과 당 대표에 대한 충성도, 선명성이 후보 낙점의 결정적 동인이 되곤 했다. 정작 가산점을 받아야 할 중도적이고 합리적인 후보는 배제됐다. 김세연·표창원을 닮은 후보를 기대했건만, 시스템 공천을 빙자했지만 시스템의 알고리즘은 공정하지 않았다. 국민의힘과 민주당 다 공천을 통해 강성 정당을 예약했다. 22대 국회의 험로를 예고하는 대목이다. 강 대 강 여야 대치정국이 이어지며 극단의 정치가 펼쳐진다는 의미다. 팬덤 직거래 정치가 기승을 부리고 실사구시 정책의 추동력이 약화한다는 뜻이다.'골디락스'는 인플레이션 뇌관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잠재성장률에 육박하는 성장이 상당 기간 이어지는 경제 국면을 말한다. 정치도 골디락스 상황이 이상적이다. 협상과 대화의 정치, 연중 일하는 국회, 정당의 중도 외연 확장, 중산·서민층에 소구력 높은 정책 입안 등이 골디락스의 필요조건이다. 한데 여야의 공천과 정책은 '중용(中庸)의 철학'을 투영하지 못했다. 제3지대도 강성 정당이 지배하고 거대 양당마저 강성으로 물드는 중이다. 이러면 "'개딸'도 싫고 '용산'도 싫다"는 중도·무당층이 갈 곳이 없다. 4·10 총선 또한 '묻지마 선거' '운칠기삼 선거'가 될 개연성이 농후하다. 한국 정치의 난삽한 현주소다. 논설위원논설위원
천리포수목원
목련(木蓮)은 나무에 피는 연꽃이라는 뜻이다. 목련과에 속하는 식물은 100여 종에 이른다.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것은 목련과 함박꽃나무다. 주변에 흔히 보이는 흰색의 목련은 대개 중국 원산의 백목련이다. 우리 고유의 목련은 한라산 개미목에 자생하며 꽃잎이 6장으로 백목련에 비해 폭이 좁고, 만개하면 기부에 붉은 색을 띤 꽃잎이 활짝 열린다. 백목련 역시 6장의 꽃잎으로 이뤄져 있으나 꽃잎처럼 탈바꿈한 꽃받침 3장이 가세, 9장으로 보인다. 꽃잎이 순백인 데다, 폭이 넓고 다 피어도 완전히 벌어지지 않아 신비감을 자아낸다.보라색 꽃을 피우는 목련은 자목련이라 부르는데, 꽃잎 바깥 쪽은 자주색이면서 안쪽은 흰색이다. 일본 원산의 일본목련은 잎이 긴 타원형으로 길이가 20~40cm에 이르며 꽃의 지름이 15cm 정도로 커서 난대 수종임을 금방 알아 볼 수 있다. 필자는 11년 전 경북 상주시 천봉산에서 일본목련나무를 처음 보았다. 정원수로 심은 나무에서 씨가 운반돼 야생에서 자라게 된 것으로 추정됐는데, 요즘에는 이 산의 남쪽 사면에 꽤 번져있다.목련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면 충남 태안군의 '천리포 수목원'을 빼 놓을 수 없다. 1946년 한국에 연합군 중위로 온 미국인 칼 페리스 밀러(Carl Ferris Miller)는 천리포에 수목원을 조성하고 지구상의 거의 모든 목련 종을 구해다 심었다. 이 수목원이 오는 29일부터 24일간 목련축제를 연다. 그동안 일반인에게 공개하지 않은 산정목련원에서 가드너의 해설을 들으며 걷는 프로그램도 있단다. 목련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회다. 이하수 중부지역본부 부장·나무의사
[동대구로에서] 국가대표 이강인에 기대한다
포털 검색창에 '하극상'을 입력했더니 한 축구선수의 기사가 쏟아진다. 불과, 카타르 아시안컵 4강전 직전까지 '슛돌이'란 애칭으로 압도적 사랑을 받던 이강인 이야기다. 격세지감이 있다. 황선홍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은 대표팀 명단에 이강인을 포함시켰다. 임시감독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으리라 짐작이 된다. 실력으로 보자면 이강인의 국가대표 발탁은 당연하다. 대신, 황 감독은 '실력으로 속죄하라'는 미션을 내렸다. 축구팬들의 공분을 의식해서일까. "운동장에서 일어난 건 운동장에서 풀어야 한다"고도 에둘러 설득했다. 하지만 이강인 사태는 운동장에서 벌어진 일이 아닌 만큼 운동장에서 풀어내긴 어려울 것이다. 물리적 충돌은 4강전 전날, 선수들이 저녁식사를 하던 식당에서 발생했다. 국가대표 이강인은 아홉 살 많은 주장에 대들었다. 맞짱을 떴다. '국대'라는 로열티가 그렇게 가벼운 일이었나. 화가 안 풀렸는지 경기에서 패스를 주지 않는 대담함까지 연출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11명이 유기체가 돼 움직여야 하는 축구에서 이는 퇴출의 명분으로 모자람이 없다는 게 상식이다. 축구팬들은 그가 일으킨 하극상에 상처를 받았다. 국가대표라는 무게를 우습게 본 젊은 선수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강인은 손흥민 주장과 맞짱을 떴지만,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고군분투하는 수많은 주장들을 발끈하게 만들었다. 후배들에게 때때로 상처받는 어른들의 마음마저 건드렸다면 과한 해석일까. 실력자의 인성, 태도, 예의는 이토록 중요한 것이다. 어쨌거나 그 상처는 아직 봉합되지 않았다. '현역 최고 야구 스타' 오타니 쇼헤이. 그가 최근 메이저리그 월드투어 서울시리즈 개막전을 위해 입국하자 야구팬들이 난리가 났다. 일거수일투족이 화제의 중심이다. 그는 10년 연봉 7억달러(약 9천324억원)의 미국 프로 스포츠 역대 최고 대우를 받는 선수다. 100년 넘게 프로에서는 불가능한 것으로 보였던 '투타겸업'을 이룬 주인공이다. 겸업의 경지는 완벽에 가깝다. 2018년 메이저리그에 진출, 신인왕을 차지했다. 3년 뒤, MVP까지 거머쥐었다. 오타니는 모나지 않은 인성으로 팬들의 사랑을 더욱 끌어들인다. 일본에서는 한때 이른바 '오타니 계획표'가 유행한 적이 있다. 다음은 그가 계획표에 적은 문구들. 쓰레기 줍기, 인사하기, 물건을 소중하게 쓰기, 심판을 대하는 태도…. 그는 "누군가가 버린 운을 줍는다는 생각으로 구장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는다"고도 했다. 야구 기술에만 천착할 줄 알았던 슈퍼스타는 인간성을 저버리지 않기 위해 내면까지 챙겼다. K리그에서 활약 중인 울산 주민규 선수는 이번에 33세라는 역대 가장 많은 나이에 처음으로 국가대표팀에 뽑혔다. 국내 최고의 공격수로 활약하며 숱하게 물망에 올랐지만 번번이 외면받은 끝에 승선했다. "그동안 상처도 많이 받았다"고 담담히 고백한 주민규는 "막내란 생각으로 '머리 박고' 열심히, 진짜 간절하게 할 생각"이라고 다짐했다. 이 한마디에 많은 팬들의 가슴이 뭉클했으리라. 국가대표는 그런 '간절한'자리여야 한다. 당연한 자리가 돼선 안 된다. 이번 논란으로 스물세 살 이강인도 많은 것을 느꼈을 것이다. 이강인 국가대표의 간절한 모습을 기대한다. 이효설 체육팀장이효설 체육팀장
[자유성] 구미형 인구정책
경북도가 ‘초저출생과의 전쟁’을 선포한 가운데 ‘구미형 인구정책'이 눈길을 끌고 있다. 2004년까지 평균 연령 30세로 전국에서 가장 젊은 도시를 자랑하던 구미시는 2014년 35.1세로 올라간 뒤 지난달 말 평균 연령은 41.36세가 됐다. 구미시 합계출산율은 2019년 0.98에서 지난해 0.71까지 떨어졌다. 낮은 출산율은 인구 감소를 부추겨 불과 수년 만에 구미시 인구는 1만여 명이나 줄었다.‘구미형 인구정책’은 이런 난관을 뚫기 위해 채택됐다. 최종 목표는 ‘아이를 낳고 키우기 좋은 도시 만들기’이다. 주요 정책은 △365소아청소년진료센터 △구미형 신생아집중치료센터 △24시 마을 돌봄터 △야간 연장 어린이집 △저출산 대책 전담반(T/F) 운영이다. 신혼부부가 출산과 육아 문제로 불이익을 받거나 고통받는 일은 더는 없도록 하겠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 가운데 지난해 1월 개원한 경북 중·서부권 최초의 365소아청소년진료센터는 구미시와 인근 4~5개 시·군에서 연간 환자 9천17명이 찾아 현재 필수의료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비교적 성공한 사례다.오래전 혹독한 저출산을 경험한 독일은 보육 시설 확충과 전일제 학교 운영으로 육아 문제를 해결했다. 사정이 비슷한 스웨덴은 ‘아빠 육아 휴직 할당제’를 신설해 최대 480일간 부모 휴가를 사용하도록 강제했다. 과감한 육아 정책을 도입한 두 나라의 현재 출산율은 1.5∼1.8명으로 반등했다. 저출산 극복으로 인구 감소에서 탈출하려는 ‘구미형 인구정책’이 이들 국가처럼 성공할 수 있을까. 장담할 수 없다 해도 가야 할 길이란 점은 분명해 보인다. 백종현 중부지역본부 부장
[영남시론] 저출생과의 전쟁
얼마 전 대구 동구혁신도시 한 대형카페에서 잊혀 가던 기억을 되살리는 꽤 유쾌한 광경을 목격했다. 내가 앉은 자리 좌우와 뒤에 어린 자녀를 데리고 와서 차와 빵을 즐기는 젊은 부부들이 있었다. 식당, 카페 등 공공장소에서 어린아이를 본 경험이 얼마 만인지 몰랐다. 우는 아이의 목소리는 물론 옆에서 빵을 먹여주는 엄마, 이를 맛있게 받아먹는 아이의 모습도 보기 좋았다. 이 풍경을 대구 전역, 나아가 대한민국 곳곳에서 다시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최근 부영그룹이 2021년 이후 태어난 직원 자녀에게 현금 1억원을 지급하는 파격적인 출산장려책을 내놓아 눈길을 끌었다. 심각한 저출산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1억원의 출산장려금을 지급하는 사례는 기업으로서는 최초다. 정치권도 총선을 앞두고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 공약을 경쟁하듯 내놨다. 유급 배우자 출산휴가(아빠휴가) 1개월 의무화, 육아휴직 급여 상한선 상향, 초등 3년까지 유급 자녀돌봄휴가 신설, 모든 신혼부부에게 가구당 10년 만기 1억원 대출 및 출생 자녀 수에 따라 원리금 차등 감면 등을 공약했다.저출산 문제가 오죽 심각하면 이럴까 싶다. 우리나라의 지난해 출생아 수는 전년보다 무려 7.69%나 감소해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72명에 불과한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역대 최저라는 기록을 계속 갈아치운다는 게 더 큰 문제다. 국가 소멸 시계가 점점 더 빨라지는 것이다.인구가 줄면 국가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현재의 인구소멸 추세를 방치할 경우 2070년에는 전체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46.4%가 65세를 넘길 것이란 충격적인 전망도 있다. 이에 부영그룹의 출산장려금 1억원 지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고액이기도 하지만 민간기업이 저출산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 실질적 제도를 제시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이 같은 기업형 출산장려책이 다른 기업들로 확산되기를 바란다.최근 정부에서 도입하기로 한 초등학생 방과후 학교와 돌봄교실을 통합한 늘봄학교에 대한 기대도 크다. 지난해 시범 도입한 데 이어 이달부터 2천개 초등학교에서 실시한 뒤 2학기부터 전국 6천여 개 모든 초등학교로 확대한다. 특히 맞벌이 부부의 경우 학교가 유치원·어린이집보다 일찍 끝나기 때문에 부부 중 누구 한 명이 퇴근할 때까지 말 그대로 '학원 뺑뺑이'를 시켜야 한다. 이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에다 사교육비도 큰 문제다. 이는 청년세대가 출산을 주저하게 만드는 주요 요인이기도 하다. 늘봄학교는 시행 초기라 여러 가지 보완점이 대두되지만 이를 잘 수정해 나가서 학부모의 기대를 충족하길 바란다.저출생 고령화가 심각한 경북도에서도 '저출생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저출생 대책 마련을 위한 '끝장 토론'을 벌이는 등 정책 마련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싸고 좋은 주거안정정책 △결혼에 대한 메가톤급 지원정책 △아이돌봄 시범타운 조성 등 실효성 있는 10개 과제를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앞으로 이의 성과에 따라 인구 소멸 초읽기에 들어간 경북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정부는 지난 15년간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정책 예산으로 380조원을 투입했지만 나아질 기미를 보이기는커녕 출산율은 점점 빠르게 떨어지고 있다. 국가소멸론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정부는 물론 기업, 국민도 인구를 늘리기 위해서는 뭐든 해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의 희망찬 웃음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김수영 편집국 부국장김수영 편집국 부국장
[자유성] 프리터族
일본의 버블경제가 붕괴되기 시작한 건 1990년대 초반부터였다. 장기간 이어진 극심한 불황에 고용시장도 유례없는 '빙하기'를 맞았다. 정규직 취업문은 그야말로 바늘구멍이었다. 그즈음부터 직장 없이 아르바이트로만 생계를 해결하는 일본 청년들이 급증했다. 그들은 '프리터족(族)'으로 불렸다. 자유를 뜻하는 영어 '프리(free)'와 노동자라는 뜻의 '아르바이터(arbeiter)'를 합성한 신조어다. 단지 아르바이트뿐만 아니라 계약사원, 파트타이머 등도 프리터족에 속한다. 근래 들어 일본 경제가 회복돼 고용시장이 좋아졌음에도 프리터족은 되레 증가 추세다. 자발적으로 비정규직을 택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게 그 이유다. 돈을 덜 벌더라도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것이다.프리터족은 우리나라에서도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국내 파트타임 근로자(주 30시간 미만 근로) 수는 2019년 52만명에서 4년 만에 10만명 이상 늘었다. 특히 15~29세 청년 취업자 25%가 단기 아르바이트이며, 이 중 절반은 학업을 마친 상태였다. 이처럼 파트타임 근로가 확산된 건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는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고용시장이 더욱 악화된 탓이다. 둘째는 청년들의 가치관이 돈보다 삶의 만족을 원하는 방향으로 변한 것이다.자발적 프리터족은 "한 번뿐인 인생 즐겁게 살자"는 '욜로(You Only Live Once)'족과 결이 비슷하다. 이런 삶의 방식은 당장은 좋을지 몰라도 미래가 불확실할 수밖에 없다. 100세 시대의 고령기 빈곤과 고립은 개인을 넘어 사회적 문제가 될 수 있다. 허석윤 논설위원
[박재열의 외신 톺아보기] 가자지구의 아실 가족
가자지구의 전쟁은 이제 여섯 달째 접어들었다. 식량은 전적으로 외부에서 들여와야 하는데 수송제한 때문에 반입이 거의 중단되었다가 지난 토요일 겨우 200t이 선박으로 운송되었다. 가자지구 북부 주민은 대부분 굶고 있다. 벌써 20여 명이 생명을 잃었다. 베이트라히아란 도시에 살고 있는 '아실' 가족은 아버지, 어머니, 아실, 남동생 등 4명으로 어떤 원조 식량도 받은 적이 없다. 살 수 있는 제일 싼 식량이 사료용 보릿가루이며 그것도 1파운드에 4.44달러로 올랐다. 이 가족은 '쿠베이자'라는 아욱 비슷한 구황식물의 잎을 삶아 그것으로 주린 배를 채운다. 먹을 것이 생기면 꼭 저녁에 먹는다. 배가 덜 고파야 잠이 오기 때문이다. 아실의 기록이다.2월28일 쿠베이자 한 솥. 2월29일 쿠베이자 한 솥. 3월1일 아버지가 장마당에서 쌀을 조금 구했다. 쌀죽에 버섯 통조림을 곁들였더니 꼭 닭고기 맛이다. 2일 쿠베이자 한 솥. 다섯 시간 헤맨 끝에 밀가루를 구해 피타 빵을 구워 먹었다. 예금은 푹푹 줄어들지만 이런 날은 축젯날이다. 3일 쿠베이자 한 솥. 4일 남동생이 무료급식소에 2시간 기다려 쌀죽 한 사발을 타왔다. 나는 비상식량인 대추야자 다섯 개를 먹고 인스턴트커피 한 잔을 타 마셨다. 전쟁 전 대학생 때 마시던 것. 5일 아버지와 남동생이 몇 시간 걸어서 숙모에게서 렌즈콩을 조금 얻어 왔다. 저녁에 그것과 아껴두었던 대추야자를 마지막으로 먹었다. 이제 장마당이나 무료급식소에 나갈 힘도 없다. 무료급식소에도 이제 음식이 없다. 6일 음식을 못 구해 차만 마셨다. 7일 무료급식소에서 당근 죽을 타와 나눠 먹었다. 경북대 명예교수·시인박재열 경북대 명예교수·시인
[박재일 칼럼] 부자들이 내는 의료보험
미국 등지의 교포들이 한국을 방문해 병원을 찾는다는 건 이제 더 이상 뉴스가 아니다. 그만큼 흔해졌다. 이유는 의료보험 적용을 불문하고 기본적으로 병원비가 싸기 때문이다. 몇 달씩 묵으면서 친지도 만나고 성형이나 임플란트 같은 의료서비스를 받는다. 비행기 표가 빠진다는 소리도 있다. 중국 동포나 외국인 근로자는 취업하면 한국의 의료보험 혜택까지 받는다. 그들은 첨단 시설에 손재주 좋은 한국 의사들, 값싼 비용에 놀란다.미국의 경우 과중한 의료비 탓에 중산층이 파산한다는 게 사회적 문제가 됐다. 암 수술에 몇십만 달러, 억대의 치료비가 소요돼 파산 중산층이 연 50만 가구를 넘었다는 통계도 있다. 물론 한국의 중산층도 의료비로 파산하는 경우가 OECD 기준으로 보면 그에 못지않다는 수치도 있지만, 총체적 경험으로 보면 한국의 의료 시스템이 눈부시다는 점에는 누구나 동의한다. 미국은 '오바마 케어'에도 불구하고, 의료비를 대략 사보험에 의존한다. 좋은 직장에 다니면 회사가 비싼 보험료를 대 주지만 막상 아프면 실직하고, 정작 필요한 그 순간에는 스스로 보험료를 내야 하니까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온다. 돈을 아끼려고 보험을 들지 않은 상황에서 만일 중병에 걸린다면 수억 원의 병원비가 청구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한국의 의료보험 제도는 빛을 발한다.언젠가 산책하다 대구은행 네거리에서 병원 수를 헤아려 봤는데 수십 개가 넘어 카운팅을 포기했다. 우린 대도시의 경우 웬만한 빌딩마다 병원이 없는 곳이 없다. 어떤 곳은 종합병원처럼 건물 전체가 의료화됐다. 응급실 뺑뺑이 논란도 있지만 밀집한 병원 탓에 다른 나라에 비해 병원 드나들기가 쉽다. 흔한 감기에 걸려 병원에 가면 몇천 원을 내면 되고, 약국도 마찬가지다. 선진국 어딜 가도 이런 시스템은 잘 보지 못한다. 그 배경에는 사회주의에 가까운 한국의 의료보험 제도가 있다.잘 인식하고 있지 못하지만, 한국인은 부자들 덕에 의료비를 대폭 경감받는다. 매달 내는 건강보험료는 기본적으로 수입의 7.09%인데 이게 뒷문이 거의 열려 있다. 보통의 월급쟁이라면 회사 부담 절반을 제외하고 월 10만~30만원 정도에 그치지만 부자들은 다르다. 월 최대 보험료 상한선은 848만원, 그러니까 이 금액이 될 때까지는 7.09%를 뗀다. 월 1억2천만원을 버는 사람들이다. 연간 1억원 가까이 건강보험료를 납부한다.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이 그렇다고 보면 된다. 평등주의 요소가 강한 이 정책을 박정희 정부 시절부터 시작해 보수정권이 구축했다는 점은 한편 숙연하다. 아마 지금 이걸 도입한다면 나라가 완전 쑥대밭이 될 것이다. 부자들은 최상의 대우를 약속하는 보험회사로 달려갈 게다. 한국 의료보험의 저력을 생각하면 의사 수 늘리기로 정부와 의사집단이 팽팽히 대치하는 현 상황은 어쩌면 사소한 논쟁이다. 영화 기생충의 '부자들은 착하다'는 대사가 한때 회자됐다. 돈이 있으니 예의와 염치가 생기고 한편 착하다는 논리다. 분명한 것은 그들이 착한 것을 떠나 좋은 제도, 좋은 복지는 우리가 앞뒤 생각 없이 떠들기만 하면 거저 생기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도로와 고속철을 깔고, 기초연금에 복지관과 도서관을 운영하고, 교사와 군인 월급을 주는 이 모든 것은 누군가의 부담이 있어야 가능하다. 어떤 철모르는 정치인들은 종종 그 돈이 마치 화수분처럼 쏟아지듯 '퍼주기'를 떠들어댄다. 인간 사회가 복지국가를 구현하길 원한다면, 그건 부자들에게 존경은 몰라도 존중해야 할 시대가 점점 다가온다는 뜻도 된다.논설실장논설실장
[하프타임] 공사비 증가와 아파트 매수
올해 대구 부동산 시장 경기는 작년만큼 힘겨울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부동산 시장 풍경도 한쪽에선 할인분양이, 다른 쪽에선 입주나 신규 분양 등 각양각색의 모습이 상존하고 있다. 말 그대로 '혼돈의 시장'이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기자가 만난 복수의 지역 부동산 관계자들은 "사실 자금 여력이 되는 수요자라면 현 상황이 아파트 매수 적기로 판단된다"며 "마피(마이너스피)나 할인해서 파는 단지의 경우 매수해야 하는 시점이다. 입주 아파트를 노려라"고 했다. 건설사·금융기관·시행사들은 어렵지만 매수자에게는 집 사기 좋은 시절이라는 것이 부연 설명으로 따라붙기도 했다. 이들이 이렇게 말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공사원가 상승'이다. 아파트 공급 원가 상승으로 앞으로는 현재의 마피나 할인분양 가격에 신규 아파트를 매입하기 어렵다는 것. 실제로 최근 입주하는 아파트는 3~4년 전 분양가의 사업장으로, 당시에는 공사비가 현재보다 크게 낮았다. 대구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원재잿값·인건비 등 공사비가 2021년 하반기에 비해 약 35% 상승했다. 그 여파로 전국적으로 정비사업 현장에서 공사비로 적잖이 갈등을 빚는 단지들이 증가하고 있다. 건설 원자재와 인건비 등이 오른 데다 중대재해처벌법 영향으로 안전요소가 부쩍 강화되면서 공사비가 크게 상승했다. 시공사들은 예전에 계약했던 공사비로는 도저히 공사를 진행할 수 없다며 공사 중단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대구에서도 이전에 평당 공사비 400만원대에 계약했던 사업장에서 공사비 분쟁이 발생하고 있다. 요즘은 사정이 더 악화됐다. 공사비가 평당 600만원 중·후반대까지 치솟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앞으로는 신축 아파트에 대해 엄격한 층간소음 기준이 적용되고, 부실공사에 대한 관리 감독도 까다로워져 향후 공사기간이 더 길어질 수 있다. 이는 공사비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개연성이 높다. 신축 아파트 공사 원가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땅값이 낮아질 가능성이 적고 인건비도 내릴 가능성이 희박하다. 이에 향후 신축 아파트 가격이 상승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하에 입주 아파트나 분양권에 관심을 나타내는 수요자들이 늘고 있다. 물론 공사비 상승은 실수요자에게는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고물가·고금리 등으로 국민들의 살림살이는 팍팍해지고 아파트값이 내렸다고는 하지만 이미 큰 폭의 상승 이후의 하락이다. 상당수 수요자들에게 아파트 가격은 여전히 높은 벽이다. 게다가 대구는 고용 여건이 좋지 않아 매수력이 있는 수요도 제한적이다. 이에 더해 부동산 시장은 대출 금리와 정부 정책,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 등 변수들이 다양하다. 선택의 기로에 선 매수자들의 고민은 크다. 특히 이전 집값 급상승기에 이른바 '벼락 거지'가 된 듯한 느낌을 받았던 실수요자들은 좋은 매수 기회를 놓칠까 봐 전전긍긍한다. 또 한편으론 고금리 장기화 국면에서 대출 이자를 갚느라 삶의 질이 추락할까 봐 걱정하며 매수를 저울질하기도 한다. 어차피 매수 결정은 매수자의 몫이다. 이래저래 머리가 복잡한 형편이지만 그럴수록 신중하게 잘 판단할 필요가 있다.박주희 정경부 차장 박주희 정경부 차장
[자유성] 1억원
연봉 1억원은 직장인들에게 꿈인 동시에 성공을 상징한다. 국세청에 따르면 2022년 억대 연봉자는 112만3천여 명으로, 이때부터 억대 연봉자 100만명 시대가 열렸다. 그래서 억대 연봉이 주는 감흥이 예전보다 떨어진 건 맞다. 하지만 1억원 연봉을 꿈꾸지도 못하는 중소기업 근로자들이 훨씬 더 많다. 지방자치단체 산하 기관장의 연봉이 대부분 1억원 안팎인 것을 감안하면 1억원은 여전히 매우 큰돈이다. 1억원이란 거액을 연봉으로 지급하는 게 아니라 아이를 출산했다고 지급하는 회사들이 나타나고 있는 게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강릉의 '썬크루즈 호텔&리조트'는 올해부터 직원이 첫째를 출산할 때 5천만원, 둘째 출산 때도 5천만원 등 총 1억원의 출산장려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지난 12일 이 회사는 최근 2년 내 자녀를 출산한 직원 2명에게 각각 5천만원을 전달했다. 앞서 부영그룹은 2021년 이후 출산한 임직원 자녀 70명에게 1억원씩 총 70억원의 출산장려금을 지급해 세간의 화제가 됐다. 부영그룹의 출산장려금 지급을 계기로 정부는 출산장려금을 받은 직원 및 기업의 세금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한 관련 법 개정에 들어갔다. 아이 둘을 낳으면 세금 부담을 줄여가면서 1억원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합계 출산율은 0.72명, 특히 작년 4분기의 합계출산율은 0.65명이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인구소멸 국가가 됐다. 인구소멸의 위기감 때문에 지방자치단체마다 출산장려금을 지원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1억원을 벌기 위해 좋은 직장에 다니는 것보다 아이를 낳는 게 더 빠른 시대에 사는 것 같아 씁쓸하다. 김진욱 논설위원
[월요칼럼] 손흥민의 리더십을 배워야 할 이들
마음이 쓰였었다. 이강인의 '하극상' 이후 손흥민이 몇 날 며칠 침묵한 걸 두고서다. 만감이 교차했으리라. 그도 사람인지라 괘씸한 마음이 들었을 게다. '내가 이러려고 주장을 했나'라는 자괴감도 없지 않았을 테고. 이 일로 온 나라가 들끓자 이강인은 손흥민을 찾아가 사과했다. 이강인의 사과는 마땅한 것이고, 정작 축구팬들에게 감동을 준 것은 손흥민의 사과였다. "내 행동도 충분히 질타받을 수 있는 행동이었다." "앞으로 더 지혜롭게 팀원들을 통솔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새까만 후배가 잘못을 깨달을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 준 배려심, 자기 잘못도 없지 않다는 겸손함. 손흥민표(標) 리더십의 전형(典型)이다. 손흥민의 리더십은 소속팀 토트넘에서도 한눈에 확인된다. 그는 결코 자신을 먼저 내세우지 않는다. 경기 최우수 선수에 오른 뒤엔 항상 동료에게 공을 돌린다. 부진하던 동료가 골을 넣으면 자기가 넣은 것보다 더 기뻐한다. 종료 휘슬이 울린 뒤엔 벤치 멤버까지 일일이 보듬어 주는 세심함도 잊지 않는다. 이 모두가 '나 혼자가 아닌 함께'라는 마인드다. 주장으로서의 '책임감'은 두말할 나위 없다. 위기 상황에서 팀을 구해내는 '클러치 플레이'는 손흥민표 리더십의 화룡점정이다. 이런 손흥민을 두고 현지 언론은 "뛰어난 공감 능력의 소유자"라며 "토트넘을 원팀으로 만드는 비결"이라고 했다. 그가 축구 선수로서뿐만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도 칭송받는 이유다. 근데 얼마 전 선거판에 뜬금없이 '손흥민'이 소환됐다. 정청래 민주당 최고위원이 이재명 대표를 손흥민에 비유한 것. "민주당은 김대중-노무현-문재인-이재명으로 계승됐다. 축구로 치면 차범근-황선홍-박지성-손흥민이다." 이 대표의 리더십을 손흥민과 동급으로 본다고? 정 최고위원, 말씀 잘하셨다. 4월 총선을 앞두고 그 누구보다도 리더십 논란을 일으킨 이가 누구인가. 다름 아닌 이 대표다. 민주당 공천 갈등이 '이재명 사당(私黨)'을 위한 예정된 수순임은 삼척동자도 안다. 체포동의안에 찬성한 이를 추려낸 듯한 보복성 컷오프, 이 대표 리더십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내편, 네편'의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당의 건승은 언감생심이다. 이 대표의 손바닥 뒤집듯 말 바꾸는 행태도 리더십 부재의 한 단면이다. "이재명=손흥민"은 염치없는 언사(言辭)다. 비유할 사람을 비유해야지.리더십을 논한 김에 하나 더. 홍원화 경북대 총장의 총선 비례대표 신청 논란이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문제가 불거지자 신청을 철회하고 총장직 임기 단축의 뜻도 나타냈지만 경북대 총장으로서의 리더십은 이미 산산조각 났다. 추락하는 경북대를 되살리려 동분서주해도 모자랄 판에 부적절한 처신으로 논란의 중심에 선 그에게 더 이상 기대할 바는 없다. 4년 전 홍 총장은 취임식에서 "학생들이 '찾아오고 싶은' 경북대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럼에도 해마다 자퇴생이 줄을 잇고 있다. '학교는 학생을 위해 존재한다'라는 신뢰를 심어 주지 못한 탓이리라. 결과적으로 그에게 경북대는 '수험생이 오고 싶으면 오든지' 정도의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 마음은 콩밭(국회의원)에 있었고, 총장직은 그 발판에 불과했다. 남세스럽기 짝이 없다. 학교 구성원은 물론, 믿고 자녀를 맡긴 학부모에게도 엎드려 사과해야 할 일이다. 대한민국 제1 야당 대표와 경북대 총장은 손흥민의 리더십을 되새겨 보길 바란다. 이창호 논설위원이창호 논설위원
의료대란으로 번진 의대 증원
[의대 증원 집행정지 각하·기각] 정부, 대학 "2025학년도부터 의대 증원 속도"
"20일까지 전공의 복귀해야"…전문의 취득 늦어질 가능성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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