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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성] 노인과 폐지
출근 시간에 길거리와 상가 주변에서 폐지를 줍는 어르신을 자주 볼 수 있다. 고령의 어르신이 손수레나 자전거를 끌면서 폐지를 줍는 모습을 바라볼 때마다 가슴 한 곳이 먹먹해진다. 우리나라에서 폐지를 팔아 생활하는 노인의 평균 연세는 어느 정도일까.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발표한 '2023년 폐지 수집 노인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에서 폐지를 수집하는 노인은 4만2천여 명으로 평균 연세는 76세다. 폐지를 수집하는 이유는 생계비 마련(54.8%), 용돈을 벌기 위해(29.3%), 기타(15.9%)이다. 1주일에 6일간 하루 5.4시간 주운 폐지로 버는 수입은 월 15만9천원이었다. 이를 시간당 소득으로 환산하면 지난해 최저 시급 9천620원의 13%인 1천226원이다. 120세 시대의 도래를 예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직장인 대부분은 60세 전후로 은퇴한다. 숫자에 불과하다는 나이 탓에 직장에서 쫓겨나지만 몇십 년을 더 사는 동안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수십 년간 쌓은 경험, 지식, 전문성을 활용하지 못한 채 노년을 보낸다. 노인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할 가장 큰 이유다. 어렵게 새로운 일자리를 찾은 노인은 외로움이나 우울증이 사라져 건강까지 되찾는다고 한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여생을 보내는 것이 마지막 소원이라고 한결같이 말한다. 국가나 지자체가 폐지 줍는 노인을 방치하는 것은 국가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불행한 일이다. 폐지 줍는 일도 노동의 한 부분이겠지만, 왠지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생계를 위해 그런 노동에 투입되는 것이 안쓰럽다는 생각이 든다. 백종현 중부지역본부 부장
[영남타워] 셋째 낳으면 4억5천만원?
대한민국이 소멸 위기다. 올해 2월 태어난 출생아 수는 1만9천362명. 통계를 조사한 이래 2월 기준 처음으로 2만명 아래로 떨어졌다. 2067년쯤이면 대한민국 인구가 지금보다 1천500만명이 줄어 3천500만명 수준이 될 것이란 암울한 전망도 나왔다. 이런 감소세는 중세 유럽을 휩쓸었던 '흑사병' 사태 때보다 더 심각하다는 견해도 있다. 인구절벽은 더 이상 '위기'가 아닌 '현실'이 됐다. 정부는 재난과도 같은 저출생을 극복하기 위해 지난 18년 동안 380조원을 쏟아부었다. 2017년 이후 지난 5년간 저출생 대응 예산은 24조1천150억원에서 51조7천억원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저출생 예산은 지난해에만 48조2천억원이 편성됐다. 하지만 2012년 48만명대였던 출생아 수는 2022년 24만9천명으로 반 토막 났다. 그 많은 예산을 다 어디다 썼는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 해도 할 말이 없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달 아이 낳는 국민에게 자녀 1인당 현금 1억원을 지급하는 방안에 대한 대국민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60% 이상이 긍정적으로 응답했다. 지난해 태어난 신생아 수는 23만명이다. 아이 한 명당 1억원을 줄 경우 연간 23조원이 필요하다. 작년 저출생 예산의 절반 수준이다. 지난 2월 아이 낳은 직원에게 자녀 1인당 1억원을 지급하기로 한 부영그룹이 쏘아 올린 출산 장려책이 이제 정부 정책으로 채택될 날도 멀지 않았다. 예전 '공중부양'한다던 한 대선 후보의 황당한 공약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셈이다.'1억 지원' 정책을 도입하면 현재 저출생 예산을 대대적으로 손봐야 한다. 어린이집, 대학등록금 지원, 내 집 마련 저리 융자 등의 지원책이 사라질 수 있다. 그래도 1억 지원책에 한 표를 주고 싶다. 지금까지 해왔던 별의별 정책들이 아무 소용 없었기 때문이다. 백약이 무효인 정책을 무작정 고집할 게 아니라 새로운 시도를 해봄 직하다. 해보고 정 안되면 다시 정책을 수정할 수도 있다.1억 지원책의 핵심은 '한꺼번에'다. '찔끔찔끔' 표시 나지 않은 지원이 아니라 목돈을 손에 쥐여 주는 데 있다. 아이를 낳는 순간 현금 1억원이 통장에 꼽힌다면 받아들이는 체감온도가 다를 수 있다. 목돈이 필요해 출산에 나서는 젊은이도 나올 것이다.여기에 '1억 +알파'를 제안한다. 첫째 아이 '1억원'에 이어 둘째 '1억5천만원', 셋째는 '2억원'을 주는 방안이다. 아이 셋 낳으면 '4억5천만원'이 생긴다. 귀가 솔깃할 수밖에 없다. 둘째까지 낳은 부부가 한 명만 더 낳으면 2억원을 만질 수 있다. 십중팔구는 셋째에 도전할 것이다. 주위의 젊은 친구들에게 이 방안을 말했더니 100% 아이를 낳겠다고 했다. 문제는 예산이라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쓰고 있는 연간 50조원이면 가능하리라 본다. 지금껏 간접 지원으로 헛심만 쓴 50조원을 직접 지원으로 돌리자는 얘기다. 셋째까지 낳는 일이 비일비재해지면 60조, 70조라도 투자한들 대수겠는가. 지금 우리에게 '국가 소멸'을 막는 일보다 더 중한 게 있나.물론 한꺼번에 출산 장려금을 주면 부작용이 따를 것이다. 부작용 없는 정책이 어디 있나. 이를 최소화하는 제도적 장치 마련도 필요하다. '아이 낳는 사람이 애국자'라는 광고 카피까지 등장한 시대다. 지금은 좌고우면할 때가 아니다. 초저출생 '극복'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고 봐야 한다. 진식 사회부장진식 사회부장
[동대구로에서] 공립 반려동물 테마파크, 지역 발전 새로운 길 연다
소중한 존재와의 이별은 누구에게나 큰 슬픔이다. 사람뿐 아니라 가족 또는 친구처럼 지내던 반려동물을 떠나보내는 일도 마찬가지다. 반려동물이 숨지면 슬픔을 비롯해 상실감, 괴로움 등이 온몸을 억누른다. 이를 '펫로스 증후군'이라 한다. 대구경북 반려동물은 73만 마리로, 해마다 증가 추세다. 그만큼 처리해야 할 사체도 많다. 자녀처럼 키우던 반려동물이 '무지개다리'를 건너면 어떻게 할까. 현행법상 동물 사체는 '폐기물'로 분류된다. 집에서 숨지면 '생활폐기물'로 분류돼 종량제 봉투에 넣어 버려야 한다. 동물병원에서 숨진 경우 '의료폐기물'로 분류돼 일회용 의료도구와 다른 동물들과 함께 소각된다. 다만 가족과도 같은 반려동물을 '쓰레기' 취급해 버리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반려인이 대다수다. 남은 방안은 반려동물 장묘업체를 찾아 장례를 치르는 것뿐이다. 하지만 장례를 치르는 것이 녹록지 않다. 반려동물 수와 비교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경북은 5곳 있지만, 대구는 단 한 곳도 없다. 다수 사업자가 법정 소송까지 불사하며 대구지역 건립을 추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지역 주민들이 '혐오 시설'로 인식하는 탓이다. 얼마 전 대구 달성군 주민이 개최한 '동물화장장 건립 반대추진위원회 발대식 및 주민설명회'를 다녀왔다. 당연히 이 자리에 모인 주민은 동물화장장 건립을 반대했다. 하지만 지역사회에선 찬성 의견도 상당하다. 주민이 반대하는 현풍읍 성하리 동물화장장 건립 예정지로 발길을 돌렸다. 주변엔 임야, 공장뿐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민가는 다소 멀었고, 건축 규모도 생각보다 적었다. 하지만 조상 대대로 터를 잡고 살아온 원주민이 많은 지역 특성상 설득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사실상 승산이 없다. 만약 이곳에 민간이 동물화장장 건립에 성공한다면 대구와 인근의 반려동물 사체는 몰린다. 그러면 업주는 상당한 수익을 올린다. 이미 사업 승인을 득했기 때문에 지역 환원 사업도 형식적 수준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지자체에서 공립 장묘 시설을 건립하면 어떻게 될까. 사실 달성군은 지난해 현풍읍 자모리 인근 옛 달성위생사업소 1만4천134㎡ 터에 사업비 70억원을 들여 화장 시설이 포함된 반려동물 테마파크를 만들려고 했다. 대구에선 이만한 입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최적지였다. 하지만 일부 주민 반대로 보류됐다. 달성군이 이곳에 반려동물 놀이 시설뿐 아니라 동물 화장시설, 장례시설, 추모공원을 건립해 운영했다면 이 일대는 상전벽해를 기대할 수 있다. 달성군은 건립에 따른 인센티브 일환으로 지역 현안 예산을 전폭적으로 쓸 명분도 생긴다. 건립 이후에는 이곳을 오가는 시민들로 인해 지역 문화관광산업과 경제가 크게 살아날 게 분명하다. 반려동물 테마파크 운영에 따른 수익은 지역 정주 여건 개선에 지속해서 쓸 가능성이 농후하다. 결국 주민은 삶의 질 향상은 물론 재산까지 늘어나는 셈이다. 전북 임실군은 오수면에 반려동물 안식처·장례식장·화장장 등을 갖춘 '오수 펫 추모공원'을 설립해 운영 중이다. 경기 이천시는 최근 화장시설 설치 후보지를 공모했다. 그 결과 3개 마을과 민간업체 1곳 등 4곳이 신청하며 유치전을 벌이는 분위기다. 사업을 신청한 주민들은 개발 행위로 편리하고 쾌적한 지역 사회로 거듭나길 희망하고 있다. 대구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변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지역주민들은 공립 장묘시설 건립에 대승적 관점에서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 그게 지역이 살길이다.강승규 사회부 차장강승규 사회부 차장
[하프타임] 예술인·시민이 모두 행복한 거리 공연
인디(Indie). 어떠한 자본의 지원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음반이나 영화를 제작하는 것으로, 인디펜던트(Independent)의 약자다. 그렇기에 인디 음악은 진보 진영의 전유물로 여겨져 왔다.그러던 중 올해 대구에선 보수 정치인으로 분류되는 인물이 인디 밴드 공연을 활성화하겠다고 해 눈길을 끌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난달 12일 산하기관장 회의에서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인디밴드가 대구는 서울 다음으로 많다고 알고 있다. 신천 수변 무대에 인디밴드 공연을 활성화해 젊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드는 핫플레이스가 될 수 있도록 상시 개방하라"고 지시했다.홍 시장이 언급한 이 통계는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가 운영하는 씬디라운지가 발표한 '한국 인디 뮤지션의 현황 보고서'에 나온 것이다. 물론 통계만 보고 대구 인디 뮤지션의 활동이 지방에선 가장 활발하다고 단정 짓긴 어려울 수 있다. 밴드의 경우, 결성과 해체, 활동 중단을 반복하기 때문에 통계로 이들의 활동을 파악하는 건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 밴드 음악이 가장 활성화됐던 시기인 2000년대 초중반에 비하면 현재 젊은 사람들에게 록보다는 힙합이 인기가 더 있을지도 모르겠다.하지만 대구에 클럽 헤비, 락왕 등 라이브 공연장이 운영 중이고, 다양한 장르의 인디 뮤지션이 활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거리 공연을 시 정책 차원에서 마련하는 것은 어색하진 않다. 대구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도 존재감을 각인시킨 지역 인디 뮤지션도 적지 않다. 펑크 밴드 드링킹소년소녀합창단은 지역 인디 뮤지션으로는 최초로 지난 2월부터 한 달여간 북미 순회공연을 하기도 했다. 또 최근 달서아트센터, 아양아트센터, 어울아트센터 등 지역 공연장에서 인디 뮤지션이 참여하는 축제도 꾸준히 열리고 있다.최근 신천 수변무대에선 매주 토요일 오후 7시 대구시립예술단의 공연도 활발하다. 매주 각기 다른 대구시립예술단 단체가 참여한다. 교향악단, 합창단, 국악단, 무용단, 극단, 소년소녀합창단으로 구성된 예술단 특성상 클래식·연극·국악·무용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시민들이 접할 수 있다. 공연을 준비하는 이들로선 다소 수고로움이 있긴 하지만, 풀 편성 오케스트라 등 단원 전체가 참여하는 공연은 신천을 산책하던 시민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기도 했다. 동성로 28아트스퀘어에서도 대구시립예술단 공연, 청년 예술인이 참여하는 버스킹도 진행되고 있다.최근 대구에서 이어지고 있는 거리 공연은 밋밋하기만 한 도시 풍경에 새로운 색채를 더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물론 대구에서 거리 공연이 처음 이뤄지는 건 아니다. 하지만 숙련된 예술가들이 중심이 되는 시립예술단의 공연은 시민들에게는 몰랐던 예술 장르를 접하고, 더 알아가게 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실내 공연장에서 공연도 매우 즐겁지만, 무대와 멀리 떨어진 객석이 아닌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 보는 공연은 더욱더 생생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다만 우려되는 점도 있다. 단체장의 지시로 시작된 만큼 '보여주기식' '생색내기식'의 공연으로 그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실적 위주로 공연을 해나가다 보면 예술인을 존중하지 않는 상황이나 과거 논란이 된 '노 개런티(무보수)'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공연 전·후 미비한 점을 파악해 보완하고, 공연의 주인공이 행정보다는 예술인이라는 점을 잊지 않는다면 예술인과 시민 모두 행복한 공연이 되지 않을까.최미애 문화부 선임기자최미애 문화부 선임기자
[자유성] 현재=선물
영어에는 다의어가 꽤 많다. 한 단어에 두 가지 이상의 다른 의미가 담겨 있어 영어 공부할 때 헷갈리는 부분이기도 하다. 'present'도 그중 하나다. 'pre(앞에)'와 'sent(존재하는)'의 합성어로 '현재'와 '선물'을 뜻한다. 우리가 존재하는 현재, 다시 말해 삶 자체가 선물이란 의미다. 라틴어에서 유래된 이 단어에는 뛰어난 통찰력이 담겨 있다. 사실 이 세상에서 스스로 노력해서 태어난 사람은 없다. 우리의 생명은 공짜로 받은 선물과 같다. 삶이 축복이라고 하는 이유다.현재의 다른 이름은 '지금'이다. 삶은 언제나 지금이다. 고금의 성현들은 시간은 환상이라고 가르친다. 과거와 미래는 생각 안에서만 있으며, 실제 존재하는 건 지금, 이 순간뿐이라는 것이다. 지금은 찰나 간에 생멸하는 '영원한 순간'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과거의 기억, 미래의 상상도 지금의 순간에서만 나타날 수 있다. 지금을 벗어난 존재는 있을 수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을 자각하지 못한다. 근본적으로 그렇게 세팅돼 있는 것처럼 보인다. 주어진 현재를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면서 소중함을 잊고 산다. 현재를 진정한 선물로 느끼는 사람은 드물다. 과거와 미래의 중간다리 정도로 여긴다. 그래서 오롯이 현재에 머물지 못한다. 무의식적으로 외부 대상을 좇거나 생각, 감정에 끌려다니느라 바쁘다. 사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게 현대인의 가장 흔한 병이다. 심해지면 중독과 강박증이 된다. 지금 살아있음을 생생하게 느끼지 못하는 게 불행이다. 현재로부터의 도피를 멈춰야 한다. 허석윤 논설위원
[월요칼럼] 국민은 늘 옳은가
한국인의 의식수준은 세계에서 어느 정도일까. 이를 파악할 만한 공인된 지표는 없다. UN이 각 나라의 행복지수는 만들었지만 의식지수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물론 이유가 있다. 의식(意識)이란 말 자체가 너무 포괄적, 다의적이다. 챗GPT에게 '인간 의식'이 뭔지 물어봤다. △주관적 경험 △자기 인식 능력 △사회적 인식 3가지 의미를 포함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 중 사회적 인식으로서의 의식은 개인적·집단적 정서나 사상을 나타낸다는 의미다. 시민의식이나 특권의식 같은 표현으로 자주 쓰인다. 하지만 이 정도 개념만으로는 의식 전반을 논하기는 부족하다. 인간이 영적 존재라는 걸 인정한다면 의식의 본질은 '영성'이라고 봐야 한다. 인간 공통의 영성을 바탕으로 의식수준 척도를 만든 사람이 있다. 정신과 의사이자 현대의 영적 지도자인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다. 호킨스 박사는 인간의 영적 발전 수준을 단계별로 구분한 '의식지도'를 개발했다. 상상만으로 대충 만든 게 아니다. 다양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20년간 수백만 번의 임상 시험을 거쳤다고 한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이유다. 의식지도는 인간 의식 척도를 0에서 1천(룩스) 사이로 규정한다. 0은 죽음과 같은 상태다. 1천은 부처나 예수처럼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궁극의 경지다. 의식의 부정성과 긍정성을 가르는 기준은 200이다. 호킨스 박사에 따르면 전체 인류의 의식 수준은 1999년에 207이었다. 그러면 한국인은? 놀랍게도 310이다. 인류 평균보다 100이나 높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호킨스 박사가 추켜세운 한국인의 의식수준에 대해서는 예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다. 이를 다시 소환한 것은 새삼 자부심을 느껴보자는 게 아니다. 이번 총선이 남긴 의문 때문이다. 한국인의 의식수준이 높은 게 맞다면 정치의식 역시 그래야 한다. 하지만 우리 정치가 나아지기는커녕 퇴행하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야당 압승의 총선 결과만 놓고 말하는 건 아니다. 정부와 여당이 국민에게 밉보였으면 선거에서 지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야권은 국회 의석의 3분의 2 가까이를 가져갈 정도로 그리 잘했을까. 물론 득표율 5.4% 차이에 의석수 차가 71석이나 됐다는 점에서 야당의 절대 승리는 아니다. 하지만 정치만큼 결과가 중요한 게임은 없다. 승자독식의 소선구제가 낳은 모순이긴 하지만 어쨌든 국민은 야권에 더 많은 힘을 실어줬다. 그동안 윤석열 정부와 여당은 무능한 모습을 보였고 적지 않은 잘못을 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도덕성으로 따지면 야당이 누굴 심판한다는 게 가당찮다. 지금까지 민주당의 정치 행태는 어떠했나. 증오와 분열, 위선의 정치 아니었던가. '청담동 술자리' 거짓말로 온 나라를 뒤흔든 것도 모자라 코인 투기, 방탄 국회, 입법 폭주, 사법 방해로 많은 이들의 속을 뒤집었다. 이번 총선에선 더했다. 범죄 피의자까지 가세해 정권 심판을 외쳤고 부동산 투기, 저질 막말 후보도 선거판을 누볐다. 그야말로 내로남불의 전형이지만 그들 대부분은 금배지를 달게 됐다. 진영논리에 갇혀 야당 후보라는 이유만으로 최소한의 도덕성조차 따지지 않는 게 정상일까. 국민이 늘 옳다지만 꼭 그런 건 아니다. 과거 독일 국민도 히틀러를 열렬히 지지했다. 그때처럼 교활한 정치권력에 가스라이팅 당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한국인의 의식수준 정도라면 당연한 얘기다. 허석윤 논설위원 허석윤 논설위원
[자유성] 영주비전경제연구원
현 대한민국 사회를 특징짓는 단어들은 제법 많다. 4차산업혁명·인공지능(AI)·인구절벽·지방소멸이 대표적이다. 이들 단어로만 대한민국이 처해 있는 상황을 설명할 수 있다. 인공지능이 일상화된 4차산업혁명 시대에 살고 있지만, 저출산에 따른 인구절벽의 상황을 맞고 있으며 중앙 집중으로 인해 지방은 소멸위기에 처해 있다. 이 때문에 정부는 인공지능기술 개발· 출산 장려·지방소멸 방지에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인구가 적은 지방 소도시 차원에서 4차산업혁명 시대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면서, 사람이 모여들게 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여간 어렵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경북 영주에서 4차산업혁명 시대에 지속 가능한 지방 성장의 새로운 해법을 모색하기 위한 민간단체가 최근 출범해 눈길을 끈다. 삼성전자 상무 출신의 전창록 전 경북경제진흥원장이 설립한 영주비전경제연구원이 그것이다. 초연결사회·디지털 노마드(첨단 디지털 장비를 몸에 갖추고 사는 21세기형 인간) 시대에 정주인구 중심에서 관계인구·교류인구로 인구정책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는 요즘 상황에 맞춰 새로운 정책 발굴을 목적으로 한다. 영주에서 출범했지만 성공 경험을 전국으로 확산시켜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실현하겠다는 목표도 눈에 들어온다. 영주비전경제연구원은 분기별로 포럼을 개최한다는 방침에 따라 지난달 6일 영주시민회관에서 '청년이 꿈꾸는 영주'라는 주제로 첫 번째 포럼을 개최했다. 매달 뉴스 레터를 발행하고, 2주에 한 번 열린시민대학도 운영할 예정이다. 대한민국의 집단지성을 모으기 위해 영주에 한정하지 않고 전국적으로 회원을 모집 중이다. 김진욱 논설위원
[취재수첩] 칠곡형 맹모삼천지교
교육과 지역발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상호보완적인 요소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교육 시스템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은 필수 불가결하며, 지역경제에 큰 영향을 주는 인적 자원의 양적·질적 측면에서도 그만큼 중요하다. 우수한 교육 인프라와 교사진이 확보될 때 미래 청년들은 지역을 떠나지 않고 남아 활동할 가능성이 높다. 지방 중소도시 인구 유출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이 교육과 일자리다. 경북 칠곡군은 민선 8기 출범 후 인구 유출을 막고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교육에 집중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이러한 행보가 조금씩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분위기다. 칠곡군 지천면 신동중학교는 전교생이 17명인 소규모 중학교다. 신동중은 올해부터 경북에서는 처음으로 교과 중심 중점 중학교로 운영되고 있다. 방과 후 하루 평균 3시간씩 영어와 수학, 정보를 중점적으로 지도하고 플루트와 목공 등 특기·적성 교육도 한다. 지난해 상반기 입학생이 없어 비상이 걸린 이 학교는 하반기에 교과 중심 중점 중학교로 확정되자 올해 외지 학생까지 포함해 9명이나 들어왔다. 칠곡군이 교과 중심 중점 학교를 선도적으로 추진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칠곡군 왜관읍 순심여고는 올해 대입 수시에 서울대 4명과 의예과 5명의 합격자를 배출했다. 전체 졸업생 149명 가운데 서울 주요 대학에 80여 명, 지역 거점 국립대에 60여 명이 합격했다. 역대 최대의 성과를 거뒀다. 지역 명문학교를 육성하기 위해 자치단체와 주민, 동문회 등이 교육 환경 개선에 함께 나선 덕분이다. 칠곡군은 지난해부터 미래교육지원센터를 설치해 지역 활동가들과 함께 학생들의 동아리활동과 진로·진학체험을 지원하고 있다. 또 장난감도서관에서 돌복과 돌상까지 대여 품목을 확대하는 등 영유아 돌봄과 교육지원도 강화했다. 지난달에는 왜관읍 순환버스를 도입해 학생들의 등하교 시간에 집중 배치하는 등 통학 불편도 개선했다. 대구 북구와의 학군 통합을 통해 도시 학생들을 유입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올해는 정부의 교육발전특구 1차 시범지역으로 선정돼 교육생태계 구축사업을 더욱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교육이 지역 정주의 핵심적인 요소로 작용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자치단체와 지역 공동체가 함께하는 '칠곡형 맹모삼천지교'. 지역 소멸 해소와 백년대계의 초석을 놓는 해법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마준영기자〈경북부〉마준영기자 (경북부)
[박재일 칼럼] 카카오의 탈(脫)권위
오랜만에 만난 아들한테 다니는 회사 분위기를 전해 듣다 웃었다. 대표이사 사장을 칭할 때 별칭 '구찌'로 통한다나. 기업문화를 혁신한다는 소리를 귀따갑게 듣긴 했지만, 이처럼 난감한 상황을 체감하지는 못했다. 아들 회사처럼 서울 테헤란로 벤처기업들은 외국어 별칭을 쓰는 것이 유행처럼 됐단다. 이유는 쉽게 추정된다. 한국 사회 특유의 장유유서(長幼有序)와 상하 직급에 따른 권위적 수직 명령체계가 창의적 기업문화에 역행한다는 판단이다. 이른바 수평적 문화를 구축하자는 의도다. 상사를 대할 때 딱딱한 직책을 붙이는 순간, 자율적 소통이 힘드니 별칭으로 동등하게 불러보자는 취지다. 직장과 일의 유쾌함을 더한다나.그러고 보니 히딩크의 전략이 생각난다. 히딩크 말마따나 "OO 형님, 이리 패스해 주십시오"라고 한다면 그게 격렬한 경기장에서 유용한 방식이 될까. 히딩크식 의사소통 개혁을 세세하게는 모르지만 하여간 그는 한국 국가대표팀의 지나친 서열 문화를 의아하게 여기고 이를 타개하려 했고, 결과적으로 성공했다. 결은 조금 다르지만 김대중 대통령도 비슷한 호칭 개혁을 한 인물이다. 기자들이 대통령을 어떻게 부르면 좋겠냐고 하니 한글 고유의 '님'을 붙여 '대통령님' 하면 좋지 않을까라고 답했다. 이전까지는 대통령 각하( 閣下)란 극존칭이 통용됐다.대한민국 네트워크 플랫폼의 대명사인 카카오는 조직 내 서양식 별칭 사용으로 유명하다. 창업자인 김범수는 '브라이언', 카카오 대표 정신아는 '시나'로, 카카오게임 한상우 대표는 '마이클'로 통한다. 물론 대외적으론 한글 이름으로 대변되지만, 사내에선 별칭이 대세란다. 이런 카카오가 결단을 내린 모양이다. '마이클' 한 대표가 최근 외국 이름 소통을 폐지하고, 한글 이름에 '님'을 붙이자고 했다. 앞서 김범수 창업자도 별칭 사용을 재검토하겠다고 했다. 카카오의 변신은 내부 조직이 어수선한 것과 연관돼 있어 보인다. 창업자가 계열사 주가 조작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고, 카카오 전 대표는 성과급을 놓고 600억원대 소송을 벌이고 있다. 이런저런 연유의 내부 폭로도 터져 나왔다. 기업 기강이 허물어진 시발중 하나로 외국어 별칭을 지목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사실 모든 조직은 일정 수준의 권위(Authority)를 먹고 존재한다. 권위는 기강을 세운다. 군대 같은 극도의 위계조직은 말할 것도 없고, 하다 못해 중구난방 계모임도 총무의 권위가 있어야 굴러간다. 없다면 곗돈조차 걷힐 리가 없다. 문제는 권위를 넘어 '권위주의' '장유유서'가 팽배한 한국사회의 관습이다. 예를 들면 검사 판사들의 기수문화는 특이하다. 회사도 몇 개월이라도 먼저 들어온 사람이 수십 년 뒤 퇴직할 때까지 앞서 직급을 단다. 능력과 창의는 승진의 변수에서 멀어져 왔다. '꼰대문화'를 지적하며 권위의 해체를 외치는 시도들이 끊임 없이 나온 배경이다.마키아벨리가 군주에게 이런 조언을 했다. "인자하고 착한 군주보다 무서운 군주가 낫다. 백성이 더 따를 것이다." 카카오가 무서운 내부 조직으로 변신하자는 의도는 아닐 것이다. 모든 게 지나치면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자성일 게다. 조직의 기강과 위계질서, 그리고 자율·창의적 소통의 접점은 어딜까. 그건 결국 지도자, CEO의 태도와 통찰에 달려 있는 문제인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이건 현직 대통령에게도 해당되는 사안일 거란 상념으로 뻗어나간다. 논설실장박재일 논설실장
[하프타임] 영남이 잘못이라는 '수도권 선민의식'
압도적인 국민의힘 지지의 대가는 '비난'이었다. 그것도 같은 당에서 말이다. 비판이나 비아냥도 아닌 완벽히 지역을 무시하는 말들로 상처를 줬다.인천 출신의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이 지난 18일 개최한 토론회에서 나온 말들은 영남을 향해 있었다. 윤 의원은 총선 참패의 구조적 원인에 대해 "'영남 중심당'의 한계"라고 지적했으며, 김재섭 당선자는 세미나 후 기자들과 만나 "영남 정서를 기준으로 수도권 선거를 치르기는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다. 해당 토론회에서 한 정치컨설팅 업체의 대표는 "이번 전당대회에는 영남 의원들 좀 안 나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후 22일 열린 두 번째 토론회서도 "영남이 보수를 지켜줘서 고맙게 생각한다"는 해명을 했지만 '영남으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이어졌다. 발제자로 나선 한 교수는 영남 보수당과 수도권 보수당 분리라는 극단적 가정까지 했다. 그러면서 공통적으로 영남이 당 지도부에 참여하지 않아야 한다는 '2선 후퇴론'을 폈다. 지역구 90석 중 59석을 영남에서 당선시켰는데도 지역은 선거 패배의 책임이 있으니 물러나라는 식이다. 그럼 대체 대구·경북(TK)과 부산·울산·경남(PK)까지 영남이 이번 선거에서 무슨 잘못을 한 것일까?이들은 총선 패배의 원인에 대해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다. 이번 선거 패인은 명백히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과 지속된 당정 갈등이다. 한 여론조사에서는 10명 중 7명 정도는 국민의힘이 참패한 데 대해 '윤석열 대통령의 책임'이라는 응답이 나오기도 했다. 의대 정원을 둘러싼 의정갈등이나 고물가 등 정부의 실정도 분명 선거 패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심지어 선거를 이끈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을 비롯해 원희룡·나경원·안철수 공동선대위원장 모두 수도권 출신이거나 선거를 수도권에서 뛰지 않았나. 윤재옥 원내대표가 있다고 영남 탓이라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는다. 수도권의 영남 탓에는 '정치적' 의도가 깔렸다는 것을 잘 안다. '영남 탓'이 처음은 아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2016년 20대 총선부터 3번 연속으로 패했다. 그때마다 '영남 자민련'을 극복하겠다고 했다. 동시에 영남의 2선 후퇴론이 등장했다. 선거 패배 후 어김없이 비대위 구성 및 전당대회가 열렸기 때문이다. 당 지도부 구성에 TK가 아닌 수도권 인사가 필요하다고 나온 것이 영남 후퇴론이다. 지금의 영남 탓도 이 때문일 것이다.묻고 싶다. 영남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으면, 지지받는 이유를 더 깊게 고민하고 이를 수도권에 적용시켜야 정상이 아닐까. 그런데 대체 왜 압도적인 지지를 보낸 영남은 안된다는 식의 말이 쏟아지는가. 국민의힘 공천이 곧 당선이라 선거가 치열하지 않다는 비판은 이해한다. 그리고 수도권에 의석수가 많으니 전략적인 대처가 필요하다는 것도 동감한다. 하지만 영남 출신이 당의 전면에 나서면 안 되는 이유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당선이 쉽게 되다 보니 지역 정치인들은 부족하다는 것인가? 수도권에 전체 의석수가 많으니 아무리 영남에서 많이 당선돼도 수도권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것인가? 대체 수도권의 정서는 무엇인지 설명해달라. 무엇이 특별하고 어떻게 다르다는 말인가. 남은 선거들을 이기기 위해 영남이 희생해야 한다는 이유를 알려달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설명 없이는 '수도권은 영남 위에 있는 특별한 지역'이라는 선민의식이 깔렸다는 것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정재훈 서울본부 정치부 선임기자정재훈 서울본부 정치부 선임기자
[미디어 핫 토픽] 고통과 권태 사이의 진자운동
본인은 염세주의자를 싫어한다. '대안 없는 현실주의자는 염세주의자와 다르지 않다'를 좌우명으로 삼을 정도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배울 점은 분명히 존재한다. 철학가 쇼펜하우어는 '삶은 고통과 권태 사이의 진자운동'이라고 그의 저서인 인생론에서 말한 바 있다. 짧은 인생의 기억을 돌아보면 힘들었던 순간이 지나고 소소한 혹은 큰 '성취'를 두 손에 쥐었을 때, 핑 돌던 순도 100%의 흥분은 빠르게 희석됐다. 그다음부터는 허무와 권태의 시간이다. 쇼펜하우어는 또한 '이렇게 무상하게 재빨리 지나가 버리는 삶 속에는 고정된 것이 하나도 없다. 무한한 고통도 영원한 즐거움도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고통도 언젠가 끝나고 즐거움도 언젠가 끝이 난다. 무엇이든 보는 대로 인식되기 마련이다. 고통과 즐거움 사이의 공백을 권태가 아니라 '평화'로 받아들이는 훈련을 할 필요가 있다. 통계청 지표누리가 발표한 '국민 삶의 만족도' 그래프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삶에 대한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6.4점으로 2022년 6.5점에 비해 0.1점 감소하였다. 2013년부터 증가세를 보이고 있으나, 국제비교 결과를 보면 2019~2021년 한국은 5.94점으로 OECD 평균(6.71점)보다 0.77점 낮다. 완벽하고 행복해 보이는 사람도 이 허무와 권태의 늪에 빠지면 한없이 가라앉는다. 하지만 이 공백을 평화로 받아들이며 그 과정을 즐긴다면 순간은 행복이 된다. 이 과정까지 사고가 번지지 못하던 시절에는 '나는 왜 항상 힘들지 않으면 지겨운 순간만 있는 걸까. 왜 중간은 늘 이다지도 짧은 걸까'라며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또 새로운 고통의 영역의 발견이었다. 아마 나는 그동안 너무 고되지도 지겹지도 않은 삶의 어느 지점을 찾아 헤매며 적지 않은 시간을 흘려보낸지도 모르겠다. 결국 평화와 평온은 사고의 전환이자 관점의 변화에서 오는 것이었음을 모르는 채로. '결과보다는 과정에 중심을 두자.' 이제는 진부한 명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명언을 바탕으로 과정을 즐기는 법을 훈련해야 한다. 나는 나에게서 무던함과 인내심을 엿보고 싶다. 인생이라는 여행에서 고통의 숲을 지나는 무던함과 견고함, 권태의 늪을 건너는 인내심과 용기 말이다. 이런 결심 이후에도 미래의 어느 날에는 고통스럽거나 권태로운 마음들이 나를 괴롭힐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이제껏 버텨온 과거의 나와 더 성장해 있을 미래의 나를 믿으며 맞서면 된다. 나와 우리에겐 분명히 고통과 권태, 고통과 즐거움 그 사이 어딘가에 온전히 뿌리를 내릴 힘이 있기에. 진자에서 진자로. 진동이 전해지는 동안의 시간을, 권태이자 평화를 온전히 음미하도록 하자. 장윤아기자 baneulha@yeongnam.com그래픽=장윤아기자 baneulha@yeongnam.com
[자유성] 소싸움
'과묵한 소도 성질부릴 때가 있다'라는 말이 있다. 행동이 느리고 온순해 보여도 화가 나면 무서워진다는 뜻이다. 이중섭의 그림 '싸우는 소'(1954년 작)는 있는 힘을 다해 맞서 싸우는 두 소의 격앙된 표정이 잘 표현돼 있다. 조선 태조실록에도 '태조가 함주(咸州)에 있을 때 큰 소가 서로 싸우는데, 여러 사람들이 이를 말렸으나 되지 않으므로 혹은 옷을 벗고 혹은 불을 태워서 소에게 던졌으나 그래도 저지되지 않았다'라고 전해진다. 소싸움은 황소 두 마리가 맞붙어 양보 없는 승부를 겨루는 시합이다.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법적으로 허용된 동물 격투기다. 우리나라에선 삼국시대 때 전쟁에서 이긴 뒤 마련된 축제에서 처음 등장했다는 설 등 다양한 주장이 있다. 일제강점기 때 명맥이 끊겼다가 1970년대 부활했다. 전용 경기장이 있는 경북 청도의 소싸움이 유명하다. 예로부터 청도에선 '정월 씨름, 팔월 소싸움'이라는 말이 널리 회자됐다. 최근 청도 소싸움 경기에 100차례 출전 기록을 달성한 싸움소가 나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문화재청은 최근 소싸움이 무형유산으로서 가치가 있는지 파악하기 위한 조사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민속놀이로 소싸움이 갖는 의미와 역사를 짚어보는 것은 물론 소싸움을 둘러싼 동물 학대 논란 등도 살펴본다. 앞서 소싸움은 국가무형문화재 신규 종목 지정을 위한 조사 대상에 포함됐으나 반대 여론에 부딪혀 보류됐다. 주관적 견해이지만 대한민국 소싸움은 적어도 스페인 투우처럼 잔인하지는 않다. 소를 일부러 죽이는 일은 없다는 얘기다. 역사성도 충분한 만큼 국가무형문화재가 될 자격이 있다고 여겨진다. 이창호 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선거의 공식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수학자 피타고라스가 정립한 '피타고라스의 정리'는 불변의 공식이다. 선거에도 거의 정형화된 공식이 있다. 이를테면 '중도층으로의 외연 확대'는 승리 방정식으로 통한다. 마크 트웨인이 말했던가. "역사는 그대로 반복되지 않지만 흐름은 반복된다"고. 선거 역시 일정한 패턴이 반복된다. 4·10 총선도 그 흐름을 비켜가지 않았다. # X맨 많으면 진다적을 이롭게 하는 사람을 일컫는 X맨은 SBS의 심리 추리 버라이어티 'X맨'에서 유래한 조어다. 지난 총선의 X맨은 누굴까. 국민의힘 지지율의 변곡점은 황상무 '회칼 테러' 겁박과 이종섭 호주대사 임명에 대한 여론의 반감이 불거지면서다. 거기에 '대파 875원' 소동까지 가세했다. 결정적 순간에 대통령실이 민감하고 불리한 이슈를 생산한 셈이다. "민주당 선대위원장은 윤석열이었다."(김경미 섀도우캐비닛 공동대표)방어기제는 작동하지 않았다. 이수정 전 국민의힘 후보는 허접한 논리로 대파 사태를 옹호하려다 외려 불씨를 확산했다. 선관위는 "대파 투표장 반입 금지" 결정을 내리며 '대파 모자'로 선거를 희화화한 야당 전략에 말려들었다. X맨들이 바통을 받아가며 불리한 이슈를 재점화했다. 정권심판론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대파 파동은 고물가와 연계되며 파괴력을 키웠다. 대파와 '런종섭' 사태로 국민의힘이 족히 20석은 날렸을 법하다. "대파 때문에 총선에서 대파 당할 것"이라던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의 힐난이 맞아떨어졌다. # 원심력 약하면 진다영남당·강남당·부자당·노인당으로 웅변되는 국민의힘의 구심력은 꽤 괜찮은 편이다. '개딸'과 4050, 호남이 받쳐주는 민주당 못잖다. 아킬레스건은 원심력이다. 수도권, 2030, 서민·중산층, 중도·무당층으로 뻗어 나갈 원심력이 부족했다.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의 한계도 원심력이다. 팬덤에겐 아이돌급 인기를 누리지만 외연 확대엔 의문부호가 붙는다. 콘크리트 지지층의 절대다수는 60대 이상이다. 국민의힘은 이준석을 쳐내고 안철수와 나경원을 무력화하고 유승민을 배제함으로써 우군의 영토를 좁혔다. 총선도 한동훈 원톱 체제였다. 지난해엔 친윤 당 대표 옹립을 위해 '당원 100% 룰'을 만들며 스스로 확장성을 차단했다. 총선 패배는 '친윤 순혈주의'에 집착한 폐쇄성의 후과일지 모른다. 국민의힘 낙선자 대회에서 쏟아진 성토에도 묘한 기류가 읽힌다. "용산과 단절하라." "당원 100% 룰을 고쳐라." 원심력을 강화하라는 주문으로 해석된다.# 선거는 상대평가다"목련꽃 피면 김포는 서울에 편입될 것".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공약은 달콤했으나 현실성이 없었다. 목련꽃은 벌써 졌건만 서울 편입은 더 가물가물해졌다. 괜히 야당에 공격의 빌미만 제공했다. '지르고 보는' 공약의 역설이다. 약체 민주당에 패배했다는 것도 뼈아픈 대목이다. 친명횡재 공천에다 궁중애로 전문가 김준혁 후보의 막말 시리즈, 양문석 후보의 사기 대출로 구설이 끊이지 않은 민주당에 졌다. 한동훈이 '범죄자 집단'으로 지칭한 사람들에 대패했다. 선거는 상대평가다. 유권자는 때론 차악을 선택한다. 국민의힘이 민주당보다 더 밉보였다는 방증이다. 패배 루틴을 혁파해야 차기 선거에라도 기회가 열린다.논설위원
[자유성] 소나무재선충병
대표적 침엽수인 소나무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 가운데 하나다. 좁은 의미로는 한국을 비롯, 동아시아와 러시아 동부에서 자생하는 적송을 가리킨다. 고문서나 고서화 등을 통해 역사에도 자주 등장하고 애국가에도 나올 정도로 친숙하며 지조와 의지를 상징하기도 한다. 거의 모든 지역에서 볼 수 있을 만큼 넓은 분포도를 자랑하지만 '소나무 에이즈'로 불리는 소나무재선충병이 수십 년째 숙지지 않으면서 국토 곳곳의 소나무가 신음하고 있다.재선충이 소나무를 갉아 먹으면 수분과 양분의 이동통로가 막히게 된다. 솔가지의 초록빛은 적갈색으로 변하며 보통 3개월 이내 시들고 말라 죽는다. 재선충이 부산에서 처음 발견된 1988년 이후 지금까지 크고 작은 확산세가 이어지면서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다. 2022년까지 잘려 나간 피해목이 1천500만 그루가 넘는다. 특히 지난 1월에는 재선충병 유행 극심단계인 대구·포항·밀양 등 6개 지역이 특별방제구역으로 지정돼 집중 관리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산림청은 그동안 소나무재선충병 생태특성 파악과 진단부터 방제기술 개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구를 진행했고 단계별로 유의미한 성과를 냈다. 실제로 피해지역 18개 시·군·구가 청정지역으로 전환되기도 했으나 기후변화와 잦은 산불 등으로 인한 확산을 잠재우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이에 따라 산림청은 소나무류의 밀도가 높고 매년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지역을 중심으로 수종전환을 본격 추진키로 방침을 정했다. 점차 사라지는 소나무가 아쉽고 안타깝긴 하지만 건강한 산림 조성이 우선일 수밖에 없다. 장준영 논설위원
[영남타워] 정호승문학관 개관 1년, 무엇이 달랐나
SNS에 올라 온 영상에 한동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반가운 이들이 보였다. 일흔을 훌쩍 넘긴 정호승 시인과 서른 중반의 고명재 시인, 두 시인이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정호승 시인은 부연할 필요가 없다. 고명재 시인도 덧붙일 필요가 없을 만큼 요즘 시단에서 주목받고 있다. 볼륨을 높이고 두 시인이 나누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정호승 시인의 작품을 주제로 두 사람의 질문과 답이 오갔다. 오가는 대화도 흥미로웠지만 원로시인과 젊은 시인이 나란히 앉은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다. 영상은 정호승문학관 개관 1주년 행사 중 하나로 마련된 북토크였다. 행사에 초대받았지만 일정이 겹쳐 참석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었는데, 영상으로나마 달랠 수 있었다.대구 수성구 범어천변에 정호승문학관이 문을 연 지 1년이 지났다. 문학관이 들어서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시작은 2016년 '수선화에게'를 새긴 범어천의 '정호승 시비'부터였다. 당시 일부에서는 '대구 출신도 아닌 시인의 시비가 말이 되느냐'며 비판을 쏟아냈다. 문학관 조성도 그 연장선에서 반대 의견이 만만치 않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무척 안타까웠다. '대구 사람이어야만 한다'는 폐쇄적인 사고가 불편했다. 그런 주장이 되레 대구를 스스로 고립시키는 듯했다.우여곡절 끝에 문을 연 정호승문학관은 외관부터 남달랐다. 외벽이 온통 진한 황톳빛이다. 멀리서 봐도 시선이 갈 만큼 인상적이다. 황톳빛 외벽은 범어천 둑 위로 흘러넘쳤던 황톳물 색깔을 상징화한 것이다. 대구에서 초중고를 보낸 정 시인은 둑 위로 넘치는 범어천 황톳물을 보며 자연을 배우고 인간을 이해했다고 한다. 시인의 꿈도 범어천에서 키웠다. '범어천이 내 시의 고향이자 내 문학의 모성적 원천'이었다고 시인 스스로 이야기하는 까닭이다.사견이지만, 정호승문학관 1년은 '문학관의 새로운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건물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죽어있는 문학관'과는 확연히 다르다. 한 달에 한번 마련된 독자와의 만남 시간에는 빈자리를 찾아 볼 수 없었다. 행사가 있을 때마다 매달 개근하는 독자도 여럿이었다. 무엇보다 개관 이후 정 시인은 부지런히 서울과 대구를 오갔다. 최근 문학관을 재정비할 때는 거의 매일 먼 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붙이고 땀을 뻘뻘 흘리며 전시장을 꾸미는 시인의 모습을 수시로 볼 수 있었다. 독자들은 특별한 날이 아닌 일상에서 시인을 만날 수 있었고 소통할 수 있었다. 생존 시인의 문학관이 왜 더 빛을 발할 수 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뿐만 아니다. '정호승'의 이름을 내건 문학관이지만 사실상 '독자와 대구시민의 문학관'인 점도 남다르다. 전국의 문학관 구성이 대부분 작가 위주이지만 정호승문학관은 독자와 시민 중심이다. 실제 지난 1년간 문학관에서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쉼 없이 열리면서 연일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국내 시인들의 시집이 전시된 1층 북카페에는 '마실 나오듯' 들른 주민들로 가득했다. 덩달아 정호승 시인의 시 제목을 딴 '낙타 커피'는 시그너처 메뉴가 됐다. 지하 다목적 공간에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강연과 콘서트 등이 수시로 열려 북적거렸다. 이 모든 것이 작가 스스로 권위를 내려 놓고 진심으로 소통하는 모습으로 보인다.정 시인 역시 지난해 필자와 만났을 때 "정호승문학관은 수성구민의 문학관이면서 대구시민의 문학관이 되길 원한다"고 밝혔다. 정호승문학관 1년, 그의 바람은 현실이 되고 있다. 백승운 문화부장백승운 문화부장
의료대란으로 번진 의대 증원
[의대 증원 집행정지 각하·기각] 정부, 대학 "2025학년도부터 의대 증원 속도"
"20일까지 전공의 복귀해야"…전문의 취득 늦어질 가능성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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