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역사에서 가장 큰 피해자…그러나 철저히 지워지고 배제되다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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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8-29   |  발행일 2014-08-29 제34면   |  수정 2014-08-29
‘위민 인 워(Women In War)’ 9월12일∼10월19일·대구예술발전소
그녀의 깊은 주름 사이로 눈물과 고통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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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강제 위안부 할머니의 참혹한 일생을 박옥년 할머니의 저 주름살과 상갓집의 향불처럼 울먹이는 저 눈초리로 표현했다. 과연 꽃다운 순결을 짓밟았던 그날, 그 일본군이 저 표정을 봤다면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사진을 찍은 1996년 77세였던 박 할머니는 남태평양 라불섬 위안소에서 3년간 성노예 생활을 강요당한다. 종전 후 결혼 해 세 명의 자녀를 두었으나 남편은 그녀가 위안부였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이 사진을 촬영한 김영희씨는 대구 출신으로 초등학교 때 미국으로 건너가 일본의 만행을 서방 언론에 구체적으로 알렸다. 촬영 장소는 나눔의 집. <1996 Yunghi Kim/Contact Press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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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강순애 할머니가 자신의 잃어버린 삶에 대해 일언반구의 사과도 없는 일본 정부를 강하게 성토하면서 땅바닥에 퍼질러 앉아 두 주먹으로 가슴을 치며 통곡을 하고 있다. 1994년 8월31일 일본의 사진가 이토 다카시가 촬영했다.


2014 대구사진비엔날레의 주제는 ‘사진의 기억’.

국내외 31개국 정상급 작가 250여명이 참가한다. 이번 비엔날레 부대 전시 중 유독 관심을 끄는 게 있다. 바로 특별전 격인 ‘위민 인 워(WOMEN IN WAR)’. ‘전선 없는 전쟁터’라 불렸던 베트남전쟁부터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 소말리아, 르완다, 콩고 그리고 이라크, 구 유고슬라비아 영토, 인도와 파키스탄의 접경 카슈미르,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현재도 맹폭격이 자행되고 있는 이스라엘 가자지구에 이르기까지, 대륙·시대별로 우리 곁을 맴돌고 간 전쟁의 기억을 이미지화하고 있다. 한국뿐 아니라 일본, 중국, 일본, 대만 등 세계의 사진가들이 증언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진실은 아직 여느 사진전에서 전혀 다루지 않았다.

◆전시의 개요

전시장은 크게 두 구역으로 나눠진다.

그 하나는 11명의 국내외 여성사진가들이 재구성한 ‘전쟁의 기억’이다. 다른 하나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모습을 통해 미국, 대만, 일본, 중국, 한국의 사진가들이 펼쳐 보이는 ‘진실의 기억’이다.

작고한 알렉산드라 불라와 캐서린 리로이를 비롯해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중국, 대만, 한국 등 7개국 18명의 유명 사진가의 사진을 볼 수 있다. 이 중 12명이 여성사진가.

왜 여성인가?

전쟁은 폭력과 지배를 일삼는 남성성과 남성 이데올로기의 정점에 있는 것으로 인식됐다. 여성은 인류 전쟁사에 있어 가장 큰 피해자이지만 남성의 시각으로 기록된 전쟁의 역사에서 철저하게 지워지고 배제됐다. 그렇기에 여성의 눈으로 전쟁을 바라보면 전쟁의 역사로부터 여성이 어떻게 주변화 되어왔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전쟁의 기억 코너에는 더없이 인자하게 생긴 할머니가 처연히 총을 든 모습, 너무 처참해 지상에 공개하기 뭣한 부상당한 여성의 섬뜩한 상처, 비극적일 것만 같은 전장 한 편에서 풍선껌을 불며 아이와 장난치며 놀고 있는 미국 여군 등 평소 접하기 어려운 전쟁 속 다양한 일상의 실루엣을 감지할 수 있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코너

1991년 여름.

일본군의 위안부 할머니에 대한 만행이 공개된다. 김학순 할머니가 처음으로 종군 위안부의 진실을 세상에 드러낸다.

어릴 때부터 자수에 능했다는 심미자 할머니. 일본 지도를 벚꽃이 아닌 나팔꽃으로 수놓았다는 이유로 일본 형사에게 연행되어 전기고문을 받게 된다. 고문으로 정신을 잃은 그녀가 끌려간 곳은 후쿠오카의 육군부대. 그녀는 그곳에서 순결했던 젊음과 행복을 송두리째 빼앗긴 채 살아가야만 했다. 평양 시내를 흐르는 강변에 선 이경생 할머니. 12세 때 위안부로 끌려간 그녀는 16세에 원치 않은 임신을 했다. 하지만 조선여자의 아이는 필요 없다며 배를 찢어 태아를 꺼내 죽인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당했다. 가슴에 사무친 괴로운 과거로 인해 평생 고통 속에 신음하며 살아왔다.

한국에서조차 이렇다할 만한 연구서적이 나오지 않을 때인 90년대에 한국어판으로 위안부의 실체를 드러낸 일본 출신의 이토 다카시도 가해국 출신의 사진가란 회한을 이번 사진전을 통해 토로했다. 그는 일본의 만행을 용기 있게 밝힌 김학순 할머니를 처음 만난 이후 한국뿐만 아니라, 북한, 대만,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동아시아 전역의 약 90명의 피해 할머니를 취재했다. 그때 일본군의 만행 관련 증언은 한때 취재를 포기하게 할 정도로 너무나 충격적이었다고 그는 고백한다.

국내 위안부 할머니는 237명이 등록됐고 현재 55명이 생존해 있다. 대구에는 이용수 할머니 등 5명, 경북에는 1명이 생존해 있다. 대구에 본부를 두고 전국적으로 활동하는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대표 안이정선)은 오는 30일 약전골목 초입에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준공식을 갖는다.

대구사진비엔날레 www.daeguphoto.com, (053)655-4789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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