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좁은 공간서 숨막힌 생활…자폐증 걸린 거구의 코끼리 부부공

  • 신인철
  • |
  • 입력 2015-06-09   |  발행일 2015-06-09 제6면   |  수정 2015-06-09
(끊임없이 끝과 끝 오가는 정형행동)
동물 복지 사각지대 달성공원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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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공원 동물원에서 국제적 멸종위기종인 독수리를 한 관람객이 지켜보고 있다. <영남일보DB>


달성공원 동물원의 마스코트이자, 안방마님인 암컷 코끼리 호순이에게는 소원 한가지가 있다. 마음껏 뛰어 보는 것이다. 1969년에 태어나 올해 마흔여섯살이 된 호순이는 지금껏 단 한 번도 제대로 달리기를 해 본 적이 없다. 호순이와 마흔한살 신랑 복동이가 함께 사는 우리가 고작 33㎡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달리기는커녕, 몇 발자국만 떼면 만나게 되는 3m 깊이의 낭떠러지가 걸음을 멈추게 한다. 이 때문일까. 호순이와 복동이는 수년째 전시관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끊임없이 오가는 것만 반복하는 독특한 행동을 하고 있다. 일종의 정형행동(stereotype behaviour·사람에게는 자폐증에 해당)이다. 노후된 달성공원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에게서는 흔한 일이다.

독수리·흰꼬리수리·말똥가리
기준의 절반수준 면적서 사육

초원이 적합한 멸종위기 과나코
풀 한포기 없는 흙바닥서 서식

1970년 개원후 리모델링 안해
전국 공립동물원 중 최악 시설

◆달성공원의 아픈 동물들

달성공원 동물원에는 벵갈호랑이와 타조 등 88종의 포유류와 조류가 있다. 이들 동물 상당수가 좁거나 서식환경에 적합하지 않은 환경 속에 살고 있다는 것. 야생동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 명시하고 있는 기본적인 사육시설 설치 기준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국제적 멸종위기종인 에조불곰은 사육기준 면적이 36㎡지만 실제 우리 크기는 32㎡밖에 되지 않는다. 독수리, 흰꼬리수리, 말똥가리 역시 각각 사육기준 면적이 7.5㎡, 6㎡, 6㎡이지만 실제는 절반 수준인 4㎡, 4㎡, 2㎡밖에 되지 않는다.

망토개코원숭이와 코요테, 말레이곰, 늑대 등도 좁은 공간에서 생활하기는 마찬가지다. 게다가 바닥과 벽면은 콘크리트이거나 철창과 같은 인공물로 이뤄져 있다.

국제적 멸종위기종인 과나코의 우리 바닥은 딱딱한 흙바닥이 있을 뿐 풀 한 포기도 보이지 않았다. 이는 다른 동물들의 경우도 비슷하다. 옆 우리의 꽃사슴, 라마, 얼룩말을 소개하는 안내문에는 ‘서식지는 초원 또는 초원지대’라고 명시돼 있지만 정작 우리 안에서 풀 한 포기 찾아볼 수 없다.

동물은 먹이를 숨기고, 배설물을 묻고, 뒹굴고, 벌레를 쫓고, 파내서 집을 만드는 등 다양한 이유에서 흙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곳에는 관리의 효율성을 위해 풀도 나무도 없이 콘크리트나 단단히 다져진 흙바닥이 대부분이다.

국제적 멸종위기종인 독수리 우리에서 가장 활발한 조류는 주변에서 날아온 참새와 까치다. 참새들이 우리 중앙을 차지한 반면 독수리 두 마리는 우리 구석에서 멍하니 허공만 응시하고 있다. 독수리 역시 서식지가 암사라고 돼 있었지만 바위는 물론 바위 모형조차 찾아볼 수 없다.

이렇듯 서식 환경이 열악하다 보니, 정형행동을 하는 동물도 적지 않다.

산림지대에 산다는 늑대도 좁은 우리 앞뒤를 반복해서 이동하고 있다. 바로 옆 우리의 아프리카포큐파인 4마리는 죽은 듯 누워 있다. 서식지는 동굴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코요테 3마리는 멍하니 한 쪽을 응시하거나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반복해서 오가기만 한다. 50여마리의 새들이 지저귀는 물새장에 있는 재두루미, 캐나다기러기, 거위, 청둥오리 등 다양한 새들 가운데 날기를 시도하는 새는 한마리도 없었다.

28세 노처녀 암컷 침팬지 ‘알렉스’는 외로움에 찌들어 항상 눈가가 촉촉하다. 12년째 짝을 찾지 못해 독수공방중이니, 충분히 이해가 된다. 인간과 비슷한 공동체 생활을 하는 침팬치에게 독수공방은 심각한 정신적 충격을 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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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길 먼 동물 복지

영국에서는 2000년 현대동물원 운영지침을 만들고 동물원 동물복지의 5가지를 기본 원칙으로 세워 놓고 있다. 그 중 적당한 환경 제공의 원칙에는 ‘악천후로부터 피할 수 있는 은신처 제공, 땅을 파는 습성이 있는 동물에게는 땅을 팔 수 있도록 하고, 오르기를 좋아하는 동물에게는 3차원적인 환경을 제공하는 등 생물학적 요구에 맞는 충분한 환경을 제공해줘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국내에는 동물복지에 대한 어떠한 기준도 마련돼 있지 않다. 자연스러운 활동이 가능하지 않은 좁은 공간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바닥과 벽면의 재질이 인조라는 점, 호기심이 많은 동물에게 무료함을 달랠 만한 시설물들이 전무한 점 등도 문제로 꼽힌다. 종에 맞는 사육환경의 조성과 유지·관리, 동물행동 풍부화 프로그램의 부재, 동물 공연 등 오락성 프로그램 운영 등의 문제도 심각하다.

전시 환경이 열악하고 동물의 본래 생태적·환경적 측면이 고려되지 않은 곳에서 살고 있는 이곳 달성공원의 동물들은 주변을 탐색하고 야생동물 고유의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혀하지 않는 실정이다.

한 동물 보호가는 “달성공원 동물들의 정형행동은 다년간 걸친 단순 습관일 수도 있겠지만 정형행동 자체가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 이상 행동일 수 있다”며 “좁고 서식지와 맞지 않은 공간이 주는 스트레스성 정형행동이 공격성으로 분출될 가능성도 높다”고 우려했다.

삼림지대에 서식한다는 너구리 우리는 딱딱한 시멘트 바닥 위에 고무판을 놓아 만들었다. 야행성 동물로 낮에는 자신이 파서 만든 굴 속에서 낮잠을 자는 습성이 있는 너구리의 특성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탓에 시멘트 바닥을 덮은 고무판에는 군데군데 너구리가 파먹은 흔적들이 큰 구멍으로 남아있었다.

‘동물을 위한 행동’ 전채은 대표는 “달성공원 동물원은 1970년 개원한 이래 한 번도 리모델링이 되지 않아 70년대식 건물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며 “우리 상태와 환경은 전국 6개 공립동물원 중 가장 나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서용열 달성공원 동물원 사육팀장은 “일부에서 달성공원 동물원에 대해 제기하는 시설 노후화나 동물우리 협소 문제와 관련해 현실적인 제약은 있겠지만 동물의 청결한 생활환경과 건강 등을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다”며 “동물보호단체에서 우려하는 사항 중 하나인 좁은 우리로 인한 동물의 정형행동 등 스트레스는 동물별로 차이가 있는 상황이기에 단정지어서 이야기하기 어렵다”고 해명했다.

신인철기자 runchu@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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