戰場 같은 주방 배곯는 음식의 마술사…“손님 삼시세끼 챙기는 게 행복”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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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1-12   |  발행일 2018-01-12 제34면   |  수정 2018-01-12
■ 셰프 전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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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사는 매력적인 직업이지만 육체적 노동 또한 만만찮다. 투철한 직업의식이 깔려 있어야 요리사로서 성공할 수 있다. <아소다이닝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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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를 만들고 있는 요리사의 손길. <아소다이닝 제공>

‘인간은 일할 때 가장 아름답다’ ‘노동은 신성하다’ 등의 표현은 산업사회의 노동관을 나타낸 말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요즘처럼 현재 삶의 행복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에게는 약간은 구시대적인 말이란 생각도 들 것이다. 하지만 기자의 눈에는 여전히 일하는 사람의 모습이 가장 아름답고 그들의 노동은 무엇보다 값진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퓨전일식레스토랑 ‘아소다이닝’(053-217-1002)의 오너셰프 이수길씨(36)를 보면서 다시 확인하게 됐다. 육체적 노동이 따를 수밖에 없는 요리를 무엇보다 즐겁게 하는 사람, 자신이 만들어준 요리를 손님들이 맛있게 먹을 때 무엇보다 행복하다는 사람, 그래서 그의 모습이 아름답게 다가오는지 모르겠다.

그를 처음 봤을 때 셰프란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다. 깔끔한 생김새에 차분하면서도 자신에 찬 목소리와 조리있는 말투가 세련된 감각의 직장인을 연상시켰다. 요리에 대한 확신에 찬 신념과 앞으로의 계획까지 들으니 그의 식당이 문전성시인 이유를 조금은 알 듯도 했다.

어릴 적부터 요리 즐기고 관련 대학 전공
日조리사학교 이어 몇 년 식당 실무 체득
2015년 대구서 퓨전일식레스토랑 오픈
서너달 만에 지역 핫플레이스로 급부상
작년 5월 인근에 돈가스전문점도 오픈

다른 사람의 식사를 위해 일하다보니
자신은 주방에 서서 대충 때우기 예사
화려함 뒤 장시간 육체노동 현실 여전


2015년 5월 문을 연 아소다이닝은 오픈한 뒤 서너 달도 되지 않아 입소문을 타고 지역의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평일은 3~4일 전, 금요일과 토요일은 1~2주 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자리를 잡지 못할 정도다. 이런 여세를 몰아 지난 5월에는 아소다이닝 인근에 돈가스전문점 ‘기리’(053-752-6002)도 개업했다.

그는 이 같은 성공의 이유에 대해 “운이 좋아서”라고 겸손해했다. 그 당시 일식레스토랑 붐이 일었는데 이런 흐름을 잘 탔기 때문이란 것이다. 거기다 주방 등에서 자신을 도와주는 후배들이 일을 잘해주었기 때문이라는 말도 곁들였다. 역시 성공한 리더의 모습이었다.

마침 취재를 간 날 저녁 영업을 위해 준비하는 후배 최동현씨(31), 현지훈씨(27)가 있었는데 그는 “아소다이닝 주방은 혼자만의 힘으로는 굴러가지 않는다”며 이들과의 호흡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강조했다.

이 셰프는 현재 직원 7명과 아소다이닝을 이끌고 있다. 주방은 4명, 홀은 3명이 맡고 있다. 일하는 이들 모두가 행복할 때 좋은 요리가 탄생한다는 생각을 가진 그는 좋은 직장 분위기 만들기에 힘을 쏟고 있다. 직원들과 대화를 통해 새로운 요리를 개발하고 좀 더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안도 모색한다. 노동 강도는 강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단다. 그는 정신적 노동보다는 육체적 노동이 더 좋다는 말로 요리사의 내밀한 고통은 큰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그의 옆에서 열심히 회를 뜨고 있던 요리경력 4년차의 최동현씨도 이 셰프의 말을 거들었다. 그는 “요리사라는 직업이 겉보기에는 화려하지만 전쟁터와 같은 주방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전투사라 할 수 있다. 주방은 칼·불·기름 등이 뒤범벅이 되어 위험하고 시간을 다투는 일도 많다”며 “요리하는 것 자체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면 금세 지쳐버릴 것”이라고 했다.

◆요리사라는 직업 힘들어

이 셰프는 가족의 따스한 배려와 지지가 있어서 요리사라는 직업에 만족하지만 이 직업이 TV 등 언론에서 비쳐지는 것처럼 멋지고 화려한 것만은 아니다.

이 셰프는 일본 쓰지조리사전문학교에서 2년간 공부한 뒤 서울에서 3년 정도 식당일을 배웠다. 1년 반 정도 학교 선배의 일식당에서 일한 것을 비롯해 식당 오픈하는 일을 도와주는 등 식당 경영을 위한 실무를 차곡차곡 익혀나갔다. 이런 탄탄한 실무가 바탕이 돼 있었기 때문에 아소다이닝은 순항을 이어갔으나 말하지 못하는 어려움도 많았다.

아소다이닝을 대표하는 인기요리가 무엇인지 궁금해 물으니 ‘옥돔구이’ ‘양갈비스테이크’라고 했다. 흔히 고객들이 식당을 찾으면 “이 집이나 저 집이나 별반 다를 게 없네. 메뉴가 다들 똑같아”라고 말하는데 요리사들의 말을 들으며 그럴 수밖에 없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전문적으로 요리를 배워서 식당을 처음 여는 이들은 다들 새로운 요리 개발에 도전한다. 그리고 실험적인 요리를 내놓는다. 많은 시행착오 끝에 내놓은 창작메뉴에 대한 요리사들의 기대는 크지만 결과는 거의 백전백패다.

“손님 중에 제대로 된 일본요리를 먹고 싶다는 분이 많습니다. 그래서 일본정통식으로 내놓으면 별맛이 없다며 싫어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실험적 요리도 내놓아 보지만 이에 대한 반응도 별반 없지요. 그래서 두 달 정도 메뉴판에 올렸다가 사장시킨 요리가 꽤나 많습니다. 손님들은 새로운 것을 찾으면서도 늘 먹는 요리, 익숙한 요리, 강한 느낌을 주는 요리를 좋아하는 약간은 이율배반적인 반응을 보이지요.”

육체적 고통이 큰 것도 감안을 해야 한다. 요리사를 하려는 많은 이들이 TV에서 나오는 흰 조리복 위에 타이를 매고 위생모를 쓴 멋진 셰프를 꿈꾸지만 이 자리에까지 오르려면 거쳐야 할 과정이 많다. 처음 요리사로 취업을 하면 소위 말하는 재료 손질과 설거지 등의 허드렛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3개월의 수습기간을 거치는데 여기서 중도탈락하는 이들이 많다. 자신이 꿈꾸던 요리사의 멋진 모습이 이 기간에 산산조각이 나는데다 육체적 노동 또한 엄청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소한 것부터 하나하나 배워서 주방의 모든 것을 익힌 뒤에야 진정한 요리사가 될 수 있다. 그 과정에 이르기까지 짧게는 몇년이 걸리기도 하지만 10년, 20년의 세월을 지낸 후에 거머쥘 수도 있다. 그리고 셰프가 되었다고 해도 그 육체적 노동은 끝나지 않는다.

이 셰프의 경우 평균 수면시간이 4~5시간이라고 한다. 물론 식당을 경영하기 때문에 요리하는 일 외에도 여러 가지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으니 잠자는 시간을 줄일 방법밖에 없었다.

손님들의 입맛을 충족시키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셰프의 식사는 과연 어떨까. 일반인들처럼 삼시세끼는 언감생심. 두 끼라도 제대로 할 수 있으면 감사할 일이다. 식사 시간도 들쭉날쭉하다. 이 셰프의 경우 밥을 제대로 먹는 것은 오후 3~4시쯤 먹는 아점식사. 아점은 아침과 점심식사를 겸하는데 식사시간을 보면 점저(점심과 저녁) 식사라 할만 하지만 밥먹는 순서상으로 보면 아점이라는 것이 이 셰프의 설명이다. 식당을 새벽 1시에 마치다보니 이것저것 정리하고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3~4시. 오전 11시쯤 눈을 떠서 식당에 나오면 오후 1~2시이고 이때부터 식사를 준비해 직원들과 먹는다.

저녁식사 시간은 밤 9시 전후. 저녁 손님들이 어느 정도 끝난 시간이 이때인데 밥상을 차려서 먹는 것은 생각지도 못할 일이다. 5~10분 주방에 서서 눈에 보이는 음식으로 대충 때운다.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많아

이 셰프의 사업모토는 ‘거짓없이 진실되게 요리하자’라고 한다. 요즘은 사람들의 입맛을 충족시켜주는 여러가지 식재료가 많아서 이런 것들을 이용하면 손쉽게 맛을 낼 수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맛과 함께 건강을 추구한다고 했다. 그래서 단무지, 각종 절임류 등 작은 먹거리까지 가급적 식당에서 직접 만들어 사용한다. 손이 많이 가고 힘들어도 좋은 요리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고집을 가지면서도 손님들의 입맛을 맞추려는 노력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이 셰프는 “요리사들이 흔히 갖는 잘못된 생각 중 하나는 손님들이 요리가 맛이 없다고 하면 이를 인정하지 않고 손님들의 입맛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며 “건강을 중심에 두면서 손님의 반응을 수용해 고객 입맛에 맞춰주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창업을 하기 위해 식당에서 일을 배우는 이들에게도 한 가지 팁을 주었다. “식당에서 일하면서 상식적으로 봤을 때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면 바로 나오는 것이 좋습니다. 배우려는 자세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많은 질문을 해도 즐겁게 대답해주는 식당에서 일을 하는 것이 좋지요. 대부분 그냥 하라고 지시하면 이를 따라만 하는데 왜 이렇게 요리해야 하는지 등을 끊임없이 물어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런 열정이 좋은 요리를 가능케 하지요.”

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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