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벌 1마리 對 꿀벌 3천마리의 死鬪…그 속엔 과학의 비밀 숨어있다

  • 박진관
  • |
  • 입력 2012-09-14   |  발행일 2012-09-14 제36면   |  수정 2012-09-14
■ 벌초·성묘 ‘말벌 경계령’…녀석들이 궁금하다
20120914
최문보 박사가 지난 10일 영남대 연구실에서 말벌집을 들어 보이고 있다.

올 벌집제거 출동 건수
대구 4023건 2년새 3배↑
녹지 늘며 먹이증가 탓
경북도 8457회나 출동

포악·호전적…진동 민감
침 찔렀다 뺐다 반복공격
독성 강해…소방복도 뚫어
곰과 악연 탓 유전적으로
사람 머리털 공격 습성

표적 ‘꿀벌집’ 발견하면
페로몬으로 표시해둔 뒤
무리 지어 꿀벌 사냥
일당백 아니라 ‘일당천’
유해곤충 지정 목소리

꿀벌 방어전략도 눈길
수천마리가 말벌 둘러싸
65℃ 열 방출 데워 죽여

20120914
장수말벌 한 마리가 꿀벌 무리와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다.
추석을 앞두고 벌초를 하다 말벌에 쏘여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나는 등 말벌경계령이 내려졌다.

말벌이 위험한 곤충이란 사실은 동서고금의 진리다. 이집트의 파라오 메네스가 말벌에 쏘여 죽었다는 기록이 파피루스에 전해온다. 미국에선 해마다 50명, 일본에선 20명 이상이 벌에 쏘여 죽는다는 통계가 있다. 한국에서도 벌에 의한 사망사고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특히 2~3년 사이 벌에 의한 사고가 급격히 늘고 있다.

경북소방본부에 따르면 도내 벌집제거 출동처리횟수가 2010년 4천908건, 2011년 7천150건, 올해는 8월까지 8천457건으로 2년새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도심인 대구도 무려 3배 가까이 증가했다. 대구소방본부의 벌집신고 출동처리횟수는 2010년 1천395건, 2011년 2천465건, 올해는 8월까지 4천23건에 달했다. 신고가 들어온 벌의 종류는 대개 말벌이고, 시기는 7~9월에 집중된다. 도심에 말벌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이유는 뭘까.

최문보 박사(영남대 생명과학과)는 “도심이 확장되면서 숲이 줄어든 대신 도심에 녹지공간이 늘어나고 매미 등 먹이가 풍부해졌기 때문일 거다”라고 추측했다.

말벌의 ‘말’은 ‘크다’란 뜻의 접두어다. 국내 말벌은 약 30종이며 미분류된 것을 포함하면 50종이 넘는다. 말벌은 크게 말벌(대), 쌍살벌(중), 땅벌(소)로 나뉜다.

최 박사는 “이중 도심에서 주로 발견되는 말벌은 털보말벌, 등검은말벌, 좀말벌, 왕바다리(쌍살벌 중 가장 큼) 등”이라고 밝혔다.

말벌은 곤충의 제왕이다. 특히 대추벌이라고 불리는 장수말벌은 4.5㎝ 정도로 말벌 중에서도 가장 크다. 영어로 ‘Asian Giant Hornet’ 즉 ‘아시아의 거대 말벌’이란 뜻으로 한국·일본·중국 등지에서 서식한다. 장수말벌은 밀림의 사자처럼 천적이 없다. 풍뎅이·잠자리·매미·사마귀 등 자신의 몸보다 훨씬 큰 곤충까지 손쉽게 사냥한다.

벌 전문가 안상규씨(안상규벌꿀 대표)는 “말벌은 주로 참나무 등 수액·과즙·꽃가루를 빨아먹거나 유기체의 체액을 섭취한다. 당을 좋아해 등산객이 먹다 남긴 탄산음료나 유산균 음료의 캔이나 병 속으로 잘 들어간다. 이를 모르고 마시다 목에 쏘여 사망한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말벌의 성충은 곤충을 죽여 경단을 만든 후 애벌레에게 먹인다. 포악하고 호전적이며 일반 벌을 초토화시키지만 꿀을 생산하지는 않는다. 말벌이 사는 집은 다양하다.

최 박사는 “말벌은 민가 지붕이나 처마, 나무줄기 등에 집을 짓기도 하지만 땅 구멍이나 주춧돌, 축대 구멍에 집을 만들기도 한다. 장수말벌과 땅벌(일명 땡비)은 땅속에 집을 짓기 때문에 도심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지만 털보말벌, 왕바다리 같은 말벌은 주택의 처마나 나뭇가지에 짓는다”고 말했다.

말벌은 남향이나 전망이 탁 트인 곳을 좋아하기 때문에 산소주변에 많이 산다. 산소주변 단소나 비석, 석축에 구멍이 많아 집을 만들기 용이하기 때문이다. 재료는 나무껍질이나 종이 등을 이용하며 집 구조는 아파트처럼 층을 지어 만든다. 집 크기는 다양하다.

안 대표는 “둘레 120㎝의 타원형 바구니같이 생긴 대형 말벌집을 목격하기도 했는데, 이런 집에는 보통 1만마리 이상 서식한다”고 밝혔다.

꿀벌은 4~5월, 말벌은 7~9월에 번식이 가장 왕성하다. 말벌이 꿀벌을 공격하는 이유는 뭘까. 안 대표는 꿀벌이 집단적으로 모여 있기 때문에 먹이를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점을 든다. 말벌이 꿀벌의 집을 공격할 때 한 두 마리가 복부에서 페로몬을 방출, 벌집 입구에 바른다. 이는 일종의 표식행위로 이 냄새를 맡은 동료들이 무리지어 나타난다.

말벌의 침은 신경을 마비시키는 치명적인 독성을 지녔다. 뱀에 물려 죽는 것보다 벌에 쏘여 죽는 경우가 더 흔할 만큼 위험하다. 꿀벌은 침을 쏜 동시에 내장이 빠져나가 죽는 반면, 말벌의 침은 주사바늘처럼 찔렀다 뺐다를 반복할 수 있다. 보통 말벌 1마리당 꿀벌 1천마리 이상을 대적할 수 있다. 말벌이 꿀벌을 공격하면 꿀벌은 결사적으로 저항한다. 둘 다 개체의 생명보다 집단의 안위가 우선인 초개체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말벌의 급소는 배와 가슴 사이의 기문이다. 이곳에 쏘이면 말벌도 꼼짝 못하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보통 꿀벌 2천~3천마리가 말벌을 둘러싸 핸드볼크기만 하게 한 다음 65℃나 되는 열을 방출해 말벌을 데워 죽인다. 이를 히팅볼(Heating Ball)이라하는데, 동시에 말벌 가까이에 붙어있는 꿀벌도 대거 희생당한다. 안 대표는 이것을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 표현했다.

안 대표는 “말벌의 독성은 꿀벌보다 20배 정도 강하며, 침도 소방복을 뚫을 수 있을 만큼 단단하다. 꿀벌에 쏘이면 30초 정도 따끔거리지만 말벌에 쏘이면 1주일 정도 붓고 쑤시는데 쏘인 부분에는 반드시 흉터가 남는다”고 혀를 내둘렀다.

그는 몇년전 소방복을 입고 실험하다 말벌에 쏘인 적이 있다. 벌침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기도폐쇄로 인한 호흡곤란이나 쇼크로 사망할 수 있어 특히 위험하다. 벌에 쏘일 경우 찬물로 씻고 얼음찜질을 해 부기를 가라앉힌 다음, 병원으로 빨리 이송해야 한다. 병원이송 도중 기도가 막힐 수 있으므로 인공호흡을 하거나 볼펜 같은 기구를 써 기도를 뚫어야 한다. 또 벌을 발견할 경우 수건이나 옷을 휘저으면서 대항하면 더 덤비기 때문에 일단 벌집을 피해 도망가서 낮은 지대를 찾아 고개를 숙이고 엎드려야 한다.

안 대표는 “말벌의 자기방어구역은 30m정도다. 보통 8m쯤 다가오면 정찰벌이 경계를 하고 5m가 되면 예민해진다. 3m쯤 되면 경보페로몬을 뿜고 출격한다”고 밝혔다.

말벌은 청각과 진동에 민감하다. 요즘은 주로 낫 대신 예초기로 벌초를 하는데 이는 벌을 흥분시켜 사람을 공격하는 단초를 제공한다. 또 뱀을 쫓는다고 지팡이나 막대기로 땅이나 풀숲을 후려치며 다녀선 안 된다.

최 박사는 “옛날부터 곰이 벌집을 자주 건드렸기 때문에 유전적으로 벌은 머리털을 주 공격대상으로 삼는다. 따라서 벌초나 성묘를 하러 갈 때 밑창이 있는 모자를 쓰면 좋다. 또 검은 옷을 입거나 지나친 화장을 하면 벌을 유인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가급적 이를 삼가야 한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안 대표는 “말벌은 먼저 해코지를 하지 않는 한 사람을 공격하진 않지만 양봉농가엔 치명적인 해충이다. 환경부가 까치를 유해조수로 지정했듯 말벌을 유해곤충으로 지정해 인위적으로라도 개체수를 줄여가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