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대결] 원챈스·엔들리스 러브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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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3-14   |  발행일 2014-03-14 제42면   |  수정 2014-03-14

원챈스 (장르:드라마 등급:12세 이상가)
“꿈은 만들어 가는 것” 폴 포츠의 인생역전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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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9일 첫 방송된 영국 ITV의 신인발굴 프로그램 ‘브리튼스 갓 탤런트’. 경직된 표정으로 무대 위로 걸어 나오는 한 남자가 카메라에 포착된다. 볼품없는 외모와 자신감 없어 보이는 모습에 관객은 물론, 심사위원마저 심드렁한 표정을 짓게 만든다. 하지만 그가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의 ‘공주는 잠 못 이루고(Nessun Dorma)’를 부르기 시작하자 분위기는 급반전된다. 노래가 끝나자마자 관객들은 기립박수로 새로운 스타 탄생을 알렸고, 독설가로 유명한 심사위원 사이먼 코웰은 “당신은 우리가 찾아낸 최고의 보석”이라는 찬사를 보낸다. 이날 방송은 유튜브를 통해 1억6천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휴대폰 판매원에서 세계인이 사랑하는 오페라 가수로 인생역전을 이뤄낸 폴 포츠는 그렇게 전 세계인의 마음을 훔쳤다.

‘원챈스’는 오페라 가수가 되고 싶었던 폴 포츠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는다. 서른여섯살이 되도록 포기하지 않았던 그의 노래에 대한 열정이다. 영화는 영국 남부 웨일즈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폴 포츠(제임스 코든)의 어린시절로 시작한다. 교회 성가대에서 특출난 노래 실력을 보여준 폴이지만 못생긴 데다 잘난 척 한다는 이유로 늘 친구 하나 없이 외톨이로 지내왔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친구의 휴대폰 매장에서 일을 하게 된 폴은 우연한 기회에 이탈리아 베니스의 음악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는 행운을 얻게 된다. 그리고 그가 가장 존경하는 루치아노 파바로티 앞에서 노래하는 일생일대의 행운까지 얻는다. 하지만 그는 그 기회를 제대로 잡지 못했다. 너무 긴장해서 음정이 불안한 그에게 파바로티는 “그런 배포도 없다면 오페라 가수가 될 수 없다”며 뼈아픈 말을 한다.

언제나 자신감이 문제였다. 폴은 늘 스스로에 대해 완전한 믿음을 갖지 못했다. 그가 살고 있는 작은 마을은 물론, 세상마저 자신의 노래에 관심이 없다고 생각해왔다. 폴에게 자신감을 불어 넣어준 건 아내 줄스(알렉산드라 로치)다. ‘꿈은 찾는 게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말이 있듯, 그녀는 폴과 함께 그의 꿈을 현실로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 이 과정은 시종 밝고 유쾌하다. 인생역전 드라마가 쉽게 이뤄지는 것은 아니지만, 누구든 노력하면 충분히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보편적 메시지와 주제를 견지하며 줄곧 강한 에너지와 긍정의 힘으로 전달한다. 어린 시절 왕따, 고막파열, 교통사고, 종양 등 수많은 고통을 감내해왔던 폴 역시 오페라 가수가 되겠다는 꿈은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노래, 아픔, 사랑, 웃음이 가득한 드라마가 바로 오페라였고, 그게 바로 그의 삶이었으니까.

실존 인물을 영화로 만드는 건 양날의 검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 긍정적인 메시지가 더 크게 작용한 이유는 인생역전의 주인공이 바로 우리와 같은 보통사람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폴은 “평생 내 자신을 하찮은 존재라고 생각했지만, 단 한 번의 기회로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고 현재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앞날은 아무도 모르니 절대 포기하지 말고 다가오는 기회는 놓치지 말라는 애정어린 충고다. 그에게 그 기회가 된 건 ‘브리튼스 갓 탤런트’다.

폴은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결국 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한 그의 이야기에 ‘브리튼즈 갓 탤런트’의 심사위원이자 세계적인 음반기획자 사이먼 코웰까지 제작자로 참여하게 만들었다. 그는 “폴 포츠를 만난 순간 정말 영화 같은 삶이라고 생각했고 많은 이가 그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감과 희망을 찾길 바란다”고 말했다. 연출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데이빗 프랭클 감독이 맡았다. 극 중에 삽입된 오페라 아리아는 모두 ‘원챈스’를 위해 새로 녹음한 폴 포츠의 실제 가창곡이다.


엔들리스 러브 (장르:로맨스 등급:15세 이상가)
그땐 그랬지, 첫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걸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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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드(가브리엘라 와일드)와 데이빗(알렉스 페티퍼)은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17세의 청춘이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의대진학을 앞둔 제이드는 아름다운 외모와 고운 심성까진 갖춘 그야말로 엄친딸. 하지만 그녀는 오빠의 죽음과 아버지의 엄격한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지금껏 외롭고 수동적인 삶을 살아왔다. 그런 그녀가 졸업식에서 우연히 눈빛이 마주친 데이빗에게 강한 끌림을 느낀다. 유일한 사랑, 그 하나만을 원했던 데이빗 역시 평소 마음에 두었던 제이드에게 미친 듯이 빠져든다.

1981년 동명의 영화를 리메이크한 ‘엔들리스 러브’는 인생에서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춘기 시절의 첫사랑을 얘기한다. 피할 수도, 피하고 싶지도 않은, 모든 걸 걸고 지켜야 할 크고 열정적인 사랑이다. 제이드와 데이빗은 그런 사랑을 시작했다. 모든 걸 다 갖춘 듯 보이지만 희로애락을 함께할 수 있는 친구의 빈 자리를 항상 느껴왔던 제이드는 운명처럼 다가온 데이빗과의 사랑을 꿈꾼다. 또 데이빗은 모든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자신을 선택한 그녀를 위해 아름답고 순수한 사랑을 보여주려 한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그리 녹록지 않다. 누구보다 딸에 대한 기대가 컸던 제이드의 아버지 휴(브루스 그린우드)는 두 사람에게 얘기치 못한 복병으로 등장한다. 자신의 뒤를 이어 의사 집안의 명맥을 이어갈 딸이 대학도 가지 않은 자동차 정비소 집 아들과 만난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 곧바로 그의 방해공작이 시작된다. 동시에 제이드와 데이빗에게는 시련과 갈등의 시작이다. 예나 지금이나 극적 긴장감을 위해 주인공들이 자라온 환경과 신분차이, 부모의 반대 등은 진정한 사랑을 완성해가기 위해 필연적으로 거쳐야 할 장애 요소로 작용해왔다. 휴 역시 데이빗의 폭력전과와 불우한 가정환경을 빌미로 그를 딸에게서 떼어놓으려 한다. 반면, 엄마 앤(조엘리 리차드슨)은 딸의 사랑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반대하는 남편 휴에 맞서 제이드의 사랑을 지지해주는 든든한 조력자로 위치한다.

23년이 흐른 사랑이야기를 21세기에 소환하면서 ‘엔들리스 러브’는 당시의 감성과 설정을 고스란히 영화의 자양분으로 삼았다. 하지만 고리타분하게 느껴지기보다는 사랑의 결실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감이 앞선다. 이 점이 21세기에 재탄생한 ‘엔들리스 러브’가 전해주는 가장 큰 매력이다. 데이빗과 제이드는 정해진 수순처럼 사랑에 빠지고 시련과 갈등을 겪으며 언제 그랬냐는 듯 이내 화해한다. 그리고 새로운 변화를 맞이한다. 샤나 페스트 감독은 이를 당당하게 사랑을 지켜내는 남자와 사랑의 아름다움에 매혹돼 자신 본연의 모습을 찾아가는 아름다운 여주인공의 모습으로 승화시켰다.

81년 브룩쉴즈와 마틴 휴이트가 ‘엔들리스 러브’로 당시 청춘의 아이콘으로 등장했다면, 21세기의 바통은 알렉스 페티퍼와 가브리엘라 와일드가 잇는다. 첫눈에 반한 두 남녀가 모든 것을 내던지고 서로에게 빠져드는 강렬함을 선사할 첫사랑의 주인공으로 두 사람의 캐스팅은 탁월했다. 특히 유명모델 출신답게 두 배우가 호흡을 맞춘 장면은 한 컷 한 컷이 화보를 연상케 할 정도로 아름답다. 감독은 젊음과 자유로움의 에너지를 주로 담아온 미국의 대표적 사진작가 라이언 맥긴리에게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했다. 그의 사진 속 청춘처럼 현대적인 러브스토리를 담고 싶었던 감독의 의도는 이처럼 젊고 아름다운 두 주인공을 통해 구체화될 수 있었다. 사랑의 감정이 너무 단편화되고 호흡이 짧아진 조건적인 만남으로 변해가고 있는 지금, ‘엔들리스 러브’는 순수해서 더 강렬했던 그 시대의 감성과 열정을 떠올리게 만든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아날로그적 향수다.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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