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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세상에 안전한 '고수익' 투자는 없다
세상은 변한다. 범죄 트렌드도 그렇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주거 침입·강도 등 강력범죄가 기승을 부렸지만, 현대에는 피싱·연애 사기 범죄(로맨스스캠)·투자리딩방 사기 등 단어만 들으면 무슨 사기인지 모르는 신종 사기 범죄가 들끓고 있다. 바야흐로 사기 범죄의 시대다.이 같은 흐름은 경찰청의 최근 통계자료를 봐도 알 수 있다. 2012년 강도 범죄 발생 건수는 약 2천500건이었지만, 2022년에는 약 500건으로 줄었다. 반면, 사기 범죄는 2012년 23만건에서 2022년 32만건으로 늘어났다.사기 범죄가 늘어난 이유로 사회환경의 변화가 꼽힌다. 과거에는 보안이 허술하고 그저 담벼락만 넘으면 침입할 수 있는 단독주택에 주로 사람들이 살았다. 하지만 2021년 기준 아파트 거주 가구 비율은 51.9%로 절반을 넘는다. 또 사회 인프라 확충으로 CCTV가 없는 곳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보안이 강화되었고 과학수사의 발전으로 DNA를 비롯해 범인의 다양한 흔적들이 범죄 의지를 꺾는 데 힘을 실어주고 있다.이제 강도 범죄는 범죄자로서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범죄가 됐다. 반면, 신종 사기 범죄는 초기유형인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부터 시작해 파밍, 스미싱, 메모리 해킹 등 다양한 사이버 사기 범죄를 낳고 있다. 이런 신종 사기 범죄들의 공통점은 수천만 건을 시도해서 한 건이라도 걸리면 이득을 얻는 확률 게임이라는 점이다. 최근 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신종 사기 범죄 중 하나는 투자리딩방 사기이다. 리딩이란 읽어준다는 의미와 리드한다는 두 가지 의미로 함축되어 있다. 전화, 문자메시지, SNS 등을 이용해서 접근해 '급등관련주 안내' '수익률 200% 보장' 등 귀가 솔깃해지는 문구들로 사람들을 현혹한 뒤 투자금을 편취해 잠적하는 게 주요 수법이다.피해 금액도 덩달아 커지는 양상이다. 2020년 추정 피해 금액은 204억원이었지만,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피해액이 1천200억원에 육박했다. 종목 추천이나 매수 의견을 넘어 몇 시 몇 분에 어느 종목을 사라고 하는 때도 있는데, 사실상의 주가조작을 행하는 것이다. 이 또한 통정매매로 처벌 대상이 된다.리딩방 수법은 나날이 진화하고 있다. SNS를 통해 유명인을 사칭한 광고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 광고 속 링크를 클릭하면 텔레그램과 네이버 밴드 등에 개설된 '투자 리딩방'으로 들어가게 된다. 여기서 가짜 투자 정보를 제공하고 입금을 요청하는 '피싱' 수법이다. 정부 기관을 사칭해 리딩방 피해를 보상해 주겠다며 접근해 2차 투자를 권유하는 사기 수법 또한 성행하고 있다.윤희근 경찰청장은 지난 2월 민생을 위협하는 신종 사기 범죄를 뿌리 뽑겠다며 국민 체감 약속 4호로 선정했고, 기존의 악성 사기 대책을 한층 고도화하여 10대 악성 사기 척결 대상을 재편했다. 또한 경찰청 국수부장이 주재하는 전담반을 운영함과 동시에 사기 범죄 데이터를 분석하여 신종 사기 수법이 추가 확인되는 경우 대국민 예·경보를 발령할 예정이다.처벌 법률 또한 보완된다. 지난 1월 수익 보장과 같은 내용으로 현혹하여 리딩방을 운영할 경우 최대 징역 3년이 가능한 '불법리딩방 차단법' 법률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원금, 고수익 투자 부자 권유 문구를 주의해야 하며 투자리딩방 일시불 및 현금결제는 지양해야 한다. 손쉽게 돈을 버는 방법이 있다면 남에게 가르쳐 줄 리 없다는 당연한 이치를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오성준 (대구남부경찰서 경무과 행정관)오성준 (대구남부경찰서 경무과 행정관)
[기고] 관행적인 도로 점거 집회 지양해야
지난 1일 공평로에서 민주노총 대구본부가 주관하는 노동절 집회가 개최됐다.8천명이 5개 전 차로 점용을 신고했으나, 경찰은 대중교통 등 시민의 통행권 확보를 위해 1개 차로를 제외한 나머지 4개 차로만 집회 장소로 사용하도록 제한을 통보했다. 또 통행로와 참가자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질서유지선(펜스) 설정을 고지했다.이러한 경찰의 조치로 무대설치 등 집회준비를 하는 6시간 동안에도 시민들은 1개 차로는 정상적으로 통행할 수 있었으며, 특히 동인네거리에서 교동네거리를 거쳐 시청 방향으로 좌회전을 하는 차량에 큰 도움이 됐다. 집회시위의 자유와 통행권이 조화롭게 공존했던 것이다 하지만 주최 측은 집회를 시작하기 직전, 참가자들을 선동하여 질서유지선 훼손과 통행로 불법 점거를 실시하고, 소음기준을 초과하는 등 시민들에게 큰 불편을 줬다. 그러면서 집회·시위는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이고, 전 차로 점용 신고를 했기 때문에 정당하다고 주장한다.집회 신고만으로 전 차로의 점용권한을 무조건적으로 가질 수 있는 것일까. 집회 참가 인원이 많으니 전 차로를 점용하겠다고 신고를 하고, 실제 참가하는 인원이 그 절반도 안 된다면 그 도로를 이용하지 못한 시민들의 불편은 어떻게 해야 할까.과거 군사독재와 권위주의 정부에 대한 저항의 수단으로써 시민들은 거리로 뛰쳐 나왔으며, 오늘의 민주화를 이룩했다. 이로 인해 아직까지도 전 차로 점거로 인한 교통방해와 소음은 무조건 감수해야 한다는 인식이 남아 있다. 하지만 도로는 기본적으로 특정 집단, 단체의 것이 아닌, 차량 소통을 위한 시민 모두의 공간이다. 집회의 자유 못지않게 제삼자의 기본권(통행권, 평온권 등) 역시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으며 주요 도로의 경우 대중교통 등 최소한의 통행권은 보호받아야 한다. 헌법은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신고제)하면서도 국가안보나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해서는 법률로써 제한하도록 하고 있다. 집시법 제12조에서는 주요 도로에서의 집회 시위에 대하여 차량 소통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제한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집회 장소인 공평로는 집시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주요 도로이기 때문에 제한의 대상이 된다. 다른 지역에서도 주요 도로에서 개최된 노동절 집회는 모두 일부 차로에서만 개최되었다. 그러나 이번 대구의 경우, 실제로는 신고인원의 절반인 3천~4천명만이 참가하여 집회 공간이 충분하였음에도 나머지 한 개의 시민 통행로마저 불법 점거한 것은 아직도 약자라는 인식하에 다른 시민의 기본권은 전혀 개의치 않는 관례화 된 특권의식 때문이다. 만약 경찰의 제한 통고를 수긍하지 못한다면 법원을 통한 구제 절차를 신청했어야 한다.경찰은 질서유지선을 훼손하여 통행로를 점거하고, 소음기준을 위반한 이번 불법행위에 대해 엄정한 조치를 할 예정이다. 불법, 뗏법이 일상화될 경우 우리 사회질서는 혼란을 거듭하고 국민의 불편은 극에 달할 것이다. 이번 조치를 통해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받고 싶다면 통행과 일상 평온 등 다른 기본권 보장에도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이홍수 (대구경찰청 경비경호계장)
[기고] 성과 나타난 자치경찰, 앞으로의 과제
대구시는 2021년 5월20일 자치경찰위원회 출범과 함께 자치경찰제를 시범 실시하고, 그해 7월1일부터 공식적으로 시작했다. 경찰 창설 이후 76년 만에 시행된 자치경찰 제도이다. 원래 의도했던 국가경찰과 분리되어 적절한 책임과 권한을 가진 자치경찰이 아닌 '자치경찰관'이 없는 자치경찰제, 국가경찰관이 수행하는 자치경찰 사무로 출범하였다.여러 가지 한계가 있는 제도 속에서도 지난 3년간 대구형 자치경찰은 시민안전을 위한 많은 성과를 냈다. 대구 자치경찰위원회는 대구형 스마트 셉테드(CPTED, 환경설계를 통한 범죄예방) 사업 등을 중심으로 대구경찰청, 대구교육청, 대구테크노파크와 대구도시공사 등과 함께 다양한 시민안전 프로그램들을 수행해 왔다. 이러한 노력들에 힘입어 대구시 자치경찰위원회가 경찰청과 <재>과학치안진흥센터가 주관하는 '2023 자치경찰 수요기반 지역문제 해결 R&D 사업'에 최종 선정되었다. 5년간 32억원의 예산이 지원되는 이 사업은 경찰 분야에서는 최고의 야심 찬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자치경찰의 주요한 목적인 시민안전을 위해서는 CCTV, 첨단 AI, 드론 등 첨단 과학치안이 중요하다. 이 사업은 야간에 여성이나 청소년들의 귀갓길 최단 거리 안심 루트를 알려주고, 위험한 구간에는 드론이 띄워 안내해 주는 디지털 순찰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과학치안 R&D 사업을 성공적으로 정착시켜 진정으로 '시민이 안전한 대구' '과학치안 대구'로 자리매김해야 한다.또 자치경찰제의 주요 임무 중의 하나가 사회적 약자 보호이다. 특히 성폭력이나 가정폭력, 아동학대, 스토킹 등으로부터 피해자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해바라기센터는 성폭력·가정폭력·스토킹 피해자 등에 대하여 365일 24시간 상담, 의료, 법률, 수사 지원 등을 원스톱으로 제공해 피해자가 위기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2차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관이다. 현재 대구 해바라기센터 방문객 수는 전국 최고 수준이고, 그 수요는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동폭력과 성폭력 등 피해자들에게 한 장소에서 원스톱 지원이 장기적으로 가능한 '통합형' 해바라기센터의 설립이 중요하다. 현재 대구시에는 통합형 해바라기센터가 없다. 그래서 대구시 여성가족과, 대구경찰청 여성청소년과, 대구 자치경찰위원회가 협업하여 위기 여성과 아동을 돕기 위한 통합형 해바라기센터 설립에 최고의 역량을 투입했다. 국립대학병원을 대상으로 다방면으로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이유는 병원이 의사 인력 부족, 공간 부족과 수익성의 문제 등으로 난색을 표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해바라기센터와 같은 공익사업을 하는 의료기관에 대해서는 인력과 예산 지원은 물론이고, 각종 병원평가에서도 지역사회 기여와 같은 평가항목에 대한 가점을 확대해야 한다. 그래야 억울하게 범죄피해를 당한 여성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한 통합형 해바라기센터를 대학병원에 유치할 수 있다. 5월20일 출범하는 2기 자치경찰위원회에서 꼭 유치하길 간곡히 기대한다.아울러 현장에서 근무하는 경찰의 해외연수 프로그램을 만들었으면 한다. 예를 들어, 미국이나 유럽, 일본 등에 현장 경찰관들을 파견하여 현장 연수 프로그램으로 진행했으면 한다. 미국의 NYPD(뉴욕경찰), 영국이나 독일의 선진 경찰 시스템도 직접 보고 왔으면 좋겠다. 국가경찰이나 다른 시·도 자치경찰위원회는 일부 시행하고 있다. 또 현재 대구시청 공무원들이 파견되어 있는 국가에 대구시 자치경찰을 주재관으로 근무하게 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끝으로, 사회적 약자 보호, 교통안전과 생활안전 같은 자치경찰 업무는 국가경찰보다 자치경찰이 더 잘할 수 있다. 왜냐하면 주민자치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는 예산과 인력, 시설 측면에서 인프라가 튼튼하고, 여기에 경찰행정이 합쳐지니까 상승효과가 배가되는 것이다. 앞으로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을 이원화해서 자치경찰을 활성화해야 한다. 그 첫 번째 단계로 국가경찰 소속인 파출소와 지구대를 자치경찰 소속으로 환원해야 한다. 각자 더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박동균(대구시 자치경찰위 상임위원)박동균(대구시 자치경찰위 상임위원)
[기고] 청소년 사이버도박 근절, 함께 관심을
최근 청소년의 온라인 접속 시간이 길어지면서 SNS나 불법 OTT 등을 통한 광고에 현혹돼 도박사이트에 접속하는 청소년이 증가하고 있다.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의하면 최근 5년간 도박 중독으로 진료받은 청소년은 2.5배 증가했고, 여성가족부의 2023년 청소년 사이버도박 문제 진단조사 결과 전국 중·고 1학년 학생의 3.3%가 도박문제 위험군으로 분류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경찰에서는 지난 2월7일 국민의 평온한 일상 지키기를 목표로 국민체감약속 5호인 '도박범죄 척결'을 집중 추진과제로 선정하고, 청소년을 유혹하는 사이버도박 및 이를 광고하는 매체에 대한 특별단속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청소년들은 도박행위를 불법이라고 인식하지 않고 친구들과 일시적인 게임이나 놀이의 일종이라고 생각하고 접근했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도박에 중독된다. 이후에는 도박자금 마련을 위해 고금리의 사채를 쓰거나 사기·절도·갈취 등 2차 범죄의 유혹에 빠지는 등 각종 사회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혹시나 △자녀의 휴대폰에서 불법도박이 의심되는 게임이 발견되는 경우 △용돈 한도액을 초과해서 친구나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선물을 하는 경우 △사주지 않은 고가의 물품을 소지하는 경우 △스포츠경기 결과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우 △집안에 보관 중이던 현금이나 물건이 없어지거나 본인의 물건을 잃어버렸다거나 팔았다는 경우 등엔 자녀가 도박에 중독된 것은 아닌지 의심해야 한다. 그러한 경우 문제 해결을 위해 전문기관이나 경찰에 적극적인 도움 요청이 필요하다.경찰은 사이버도박 단속 과정에서 재범 또는 상습범인 경우, 도박사이트 운영, 도박행위자 모집 등 사안이 중한 경우 형사입건을 해 강력처벌한다. 또 도박금액 500만원 미만의 경미한 초범인 경우에는 자체 선도심사위원회를 통한 훈방 또는 즉결심판 청구의 절차를 거쳐 최대한 형사입건을 지양하고 전문 상담기관과 연계해 치유와 재발방지 노력을 하고 있다.가정과 학교에서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도박 중독의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는다면 예방부터 치유까지의 과정을 무료로 지원해 주는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1336)에 상담 요청을 하거나 해당 사이트 '넷라인'에서 예방·치유 관련 정보와 다양한 상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경찰민원콜센터(182)를 통해 시경찰청 사이버도박수사팀이나 주거지 관할 경찰서 학교전담경찰관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다.도박은 개인의 노력만으로 중독에서 벗어나기 매우 어렵다. 혹시 우리 아이에게 도박중독 의심 증상이 발견되면 초기에 전문기관의 상담과 치료 등 도움을 받도록 하자. 소중한 우리 아이들이 사이버도박으로부터 보호될 수 있도록 가정·학교·공공기관 등 사회 구성원 모두의 관심과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심인보 (대구시경찰청 사이버수사과 경감)심인보 (대구시경찰청 사이버수사과 경감)
[기고] 낯선 경험에 깃든 뿌듯한 희망
봄이 여름과 가을을 거쳐 겨울로 흐르듯 인간은 탄생과 동시에 소멸을 향해 나아간다. 나이 듦을 외면하거나 죽음을 거부하고 싶지만, 결국은 '불굴의 패배'에 직면한다. 이미 종착지가 정해진 운명! 어찌 살아야 후회와 미련을 조금이나마 덜 남길까? 그건 삶을 풍요롭고 다채롭게 사는 것이다. 끝 모를 호기심으로 매 순간 재미를 찾고 의미를 느끼면서 말이다.삶은 우연의 연속! 우연은 언제나 뜻밖에 찾아오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스물두 번째 국회의원 선거관리를 위해 유관기관 참여가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공문에서. 거주지와 가까운 투표소에 근무하는 건 매력이지만 열네 시간 근무와 최저임금을 살짝 웃도는 적은 수당은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흔쾌히 도전했고 낯선 시선으로 즐겁게 근무했다. 퇴직이 일 년 남짓 남았으니 다시는 오지 않을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며. 긴장과 바쁨의 열네 시간! 업무 배정과 교육을 거쳐 공정하고 투명한 투표 관리를 위해 엄숙하게 선서했다. 새벽 여섯 시부터 끊임없이 몰아치는 선거인의 행렬로 잠시 숨 고를 틈조차 없었다. 차분하게 차례를 지키고 타인을 배려하는 정중한 태도에서 교양과 품격을 갖춘 선진 시민이라는 뿌듯함이 절로 묻어났다. 신원을 확인하고 투표용지에 기표한 후 투표함에 넣는 모든 절차는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나아갔다. 맡은 업무는 인물과 정당을 선택하는 두 장의 투표용지에 투표관리관의 직인을 날인하고 일련번호를 절취하여 순서대로 배부하는 것!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듯 지극히 단순한 일을 무려 1천500번가량 반복했다. 젊은 날에 삶의 방향을 잃고 표류하느라 작업장에서 꼬박 한 달을 보내야만 했던 기억이 아련하게 떠올랐고, 온실같이 평온한 지금의 삶에 무한 감사를 느꼈다.무심하게 스치듯 지나치는 게 아니라 손닿는 거리에서 1천명 이상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지구인이 제각각이듯 투표장을 찾는 선거인의 행태 또한 사뭇 달랐다. 그 모든 걸 온전히 지켜봤으니 멋진 경험을 했다. 여명이 밝아 오기 전부터 대기하거나 마감 1분 전에 헐레벌떡 뛰어오거나, 잔뜩 굳은 얼굴에 한 손으로 용지를 받거나, 공손하게 두 손으로 받으며 "감사합니다"라며 격려하거나. 제각각 다른 표정과 자세였지만 어느 누구도 질서를 흩트리거나 평온을 깨지 않았다. 이제 날 선 공방은 끝났다. 승패는 명확히 갈렸다. 승자는 득의양양하게 환호를 내지른다. 패자는 거대한 민심의 물결에 하염없이 고개 숙인다. 모든 끝은 아쉽다. 그러나 완전히 끝난 건 아니다. 선거는 또다시 있고 결과는 언제든지 달라진다. 그러니 진정한 승리는 유권자의 몫이다. "투표는 탄환보다 강하다(The ballot is stronger than the bullet)"는 링컨 대통령의 말처럼.처음 해 본 사회참여! 비록 낯설고 힘들었지만 소중한 경험이었다. 앞으로 맞닥뜨릴 새털처럼 많은 날들을 무엇으로 채워갈지 그 실마리를 찾은 기분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미래는 더욱 빛날 것임을 직접 확인했다. 휠체어를 타고 투표권을 행사한 아흔 살 할머니의 밝은 모습에서, 기표소에 같이 들어가자는 어머니의 손짓에도 적당한 거리를 둔 채 차분하게 기다리던 초등학생의 준법정신에서.이재수 (국민연금공단 서대구 지사장)이재수 (국민연금공단 서대구 지사장)
[기고] '해오름동맹' 상생 협력…지방시대의 성공 모델
경북 포항시는 2016년부터 역사적·문화적 동질성은 물론 지리적·산업적 연관성이 높은 신라문화권의 울산, 경주와 '해오름동맹'을 맺고 상생협력 공동사업을 추진하고 있다.2016년 울산~포항 간 고속도로의 개통으로 30분대 생활권으로 거듭난 세 도시가 동해안 광역 경제권으로 지방소멸 위기를 극복하고 지역 경쟁력을 높이고자 시작한 해오름동맹은 해마다 2차례의 정기회의를 열고 공동협력사업을 발굴·추진해 왔다. 국가첨단전략산업 유치, APEC국제회의 경주 유치 등 각 지역 발전을 위해 함께 노력하고, 지난해에는 관광실무협의체인 해오름동맹 관광실무협의회에서 세 곳의 관광명소를 함께 소개하는 뮤직비디오를 제작해 SNS를 통해 공동홍보에 나서기도 했다.2024년 해오름동맹은 협력 분야를 더욱 넓혀 경제와 신산업 R&D, 교통, 도시 인프라, 문화·관광, 해양·물류, 방재·안전 등 다양한 방면에서의 동맹을 강화하기로 했다. 해오름 2차전지 글로벌 메카 조성, 해오름 글로벌 수소메가시티 조성, 국도3호선 도로 개량 및 확장, 해오름 관광 브랜드 개발 및 마케팅, 재난안전 공동연구 발굴단 조직 및 운영 등 신규사업을 추진하고, 오는 7월 해오름 동맹사무국을 출범해 본격적인 해오름동맹시대를 열어갈 전망이다.특히 지난해 7월 포항과 울산이 국가첨단전략산업 2차전지 분야에서 동시에 특화단지 지정을 받으며 '전기차 산업 네트워크'라는 새로운 성장동력 추진에도 힘을 모아나갈 계획이다. 포항은 양·음극재, 전구체 등 소재를, 울산은 최종 완성된 배터리로 완성된 전기차를 생산하고, 경주는 완성 전기차의 세부적 부품을 담당하며 보완적 산업생태계를 조성해 나갈 것이다.지방이 주도하는 모델로서 발전하고 있는 '해오름동맹'이 광역과 기초단체의 경계를 허물고 하나의 생활권을 만들어 인구 유출과 지방소멸을 막고, 주력사업들의 협력관계를 더욱 공고히 다지며 실질적인 지역발전과 국가 경쟁력 제고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해오름동맹의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이다.하지만 상생협력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풀어야 할 과제도 있다. 먼저 해오름동맹을 통한 구체적인 비전과 발전전략을 수립해 시민들의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그리고 실질적인 사업을 집행하고 재원을 확보할 수 있는 특별지방자치단체를 설립하거나 중앙권한을 지방정부가 이양받는 특례를 반영한 특별법안 제정에도 힘을 모아야 한다. 포항시의회는 앞으로 세 도시의 연계협력 기반 구축과 특별법 제정 등 해오름동맹이 지역균형발전과 지방시대의 성공모델이 될 수 있도록 의회 차원의 노력과 지원에 최선을 다해 나갈 것이다. 해오름동맹이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지방시대를 선도하고 대한민국의 성장거점으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해 본다. 백인규 (포항시의회 의장)백인규 (포항시의회 의장)
[기고]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의 실천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부와 권력은 그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수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로마 공화정 시대 집정관이나 원로원 의원 등 고위 공직자들은 반드시 군복무 경력을 가져야 했고, 전쟁 등 국가 위난 시에 누구보다 앞장서 로마를 지키기 위해 전투에 참가했다. 군인은 로마시민으로부터 존경을 받고 군은 신뢰를 받았다. 이러한 전통이 바탕이 되어 도시국가 로마는 카르타고와의 포에니 전쟁을 승리로 이끌며 대제국 로마를 건설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삼국시대에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있었다. 특히 귀족 자제인 신라의 화랑은 수십 명 내지는 수천 명의 낭도를 이끌고 전투에 참가함으로써 삼국을 통일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러나 고려,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유교와 주자학의 영향으로 상무정신은 사라지고 문약해졌다. 조선은 양반 자제의 국방의 의무를 면제해주고 양반은 납세의 의무를 지지 않았다. 조선시대 양반은 부와 권력은 독점하면서 그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는 회피한 것이다. 이런 관계로 조선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국가 위난에 스스로 대처할 수 없었고 삼전도의 치욕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은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으로 새롭게 개혁되지 못하였고 민중은 도탄에 빠졌으며 급기야 일제의 침략으로 나라를 빼앗기게 되었다. 광복 후 북한의 대대적인 남침으로 국군은 낙동강 방어선을 마지노선으로 인민군의 침략을 죽음으로 막아내야 했다.6·25전쟁에서 대한민국이 그나마 한반도 남쪽이라도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미국을 비롯한 유엔군의 참전 덕분이었을까? 아니다. 비록 유엔군이 참전했다고 하더라도 대한민국을 지키려는 피끓는 젊은 국군장교들의 수많은 희생과 농민들이 주축이 된 국군병사들, 그리고 공산국가 북한의 압제를 피하여 월남한 피란민들의 수없는 피흘림이 없었다면 가능할 수 없었을 것이다.특히 육군사관학교의 전신인 경비사관학교 출신 장교들은 제1기부터 제10기까지 소대장 등으로 참전하여 임관자의 30%에 해당하는 1천500여 명이 전사함으로써 피로써 대한민국을 지켰다. 이들이 보여준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은 우리 국민들 마음속에 길이 간직되어 이어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6·25전쟁 후 우리는 되도록 자식들을 군에 보내지 않기 위하여 온갖 병역비리를 저질렀다. 부와 권력을 가진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먼저 자신의 자식들을 군에 보내지 않기 위해 온갖 부정을 일삼았다. 지난 제20대 대통령선거 거대 양당 후보 모두 군복무를 면제받았고, 제22대 총선 지역구 후보 가운데 16.5%가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이상한 나라가 되었다.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위험한 상황에서 자식들을 군에 보내기 어려웠던 점도 있었을 것이고 후진적인 병영문화도 한몫을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떤 이유에서든 사회지도층의 자제들이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사회적으로 출세하여 부와 권력을 누린다는 것은 정의와 공정에 반하는 일이다. 따라서 앞으로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사람은 최소한 장차관급 이상의 고위공직자는 될 수 없도록 하는 고위공직자법을 제정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고위공직자법을 제정함으로써 사회지도층 자제들부터 솔선하여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도록 하는 것이 공정하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길일 것이다. 박헌경 (변호사)박헌경 (변호사)
[기고] TK 신공항, 항공 강국의 새 희망
필자가 30년 이상 외교관으로 일하며 느낀 것 중의 하나는 단수가 아닌 복수가 되어야 진정한 국가의 힘이 된다는 점이다. 워싱턴 등의 외교가에 유난히 뛰어난 외교관이 더러 있었는데, 그들이 활동하다 떠난 뒤 그 나라의 외교활동 수준이 낮아지면 그것이 단순히 개인의 우수성으로 여겨진다. 반대로 떠난 뒤에도 비슷한 수준의 활동이 이어지면, 개인이 아닌 국가의 외교능력으로 인식되고 관성을 받아서 뉴노멀로 정착되는 경우가 많다.최근 대구경북신공항(이하 TK 신공항) 건설이 활발히 추진되는 것을 보며, TK 신공항이 우리나라 공항의 탁월함을 단수가 아닌 복수로 만들어 진정한 항공 강국으로 이끌어 가리라는 기대를 갖게 된다.인천공항은 양적으로만이 아니라 질적으로도 세계 최우수 공항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데, 금년에 여객수송 1억명 이상, 화물수송 600만t 이상의 능력을 갖추어 세계 3대 공항으로 발돋움할 계획이다. 그러나 단수에서 오는 아쉬움이 있다. 최근 세계가 빈번한 재난과 테러, 급격한 기술변화를 겪으면서 선진사회의 척도로 취약점 대응능력과 회복력을 중요시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복수의 국제공항(장거리)은 인천공항 집중 체제의 약점을 보완하는 역할도 할 것이다. 2023년 우리나라 수출입에서 항공화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금액 기준 30%에 달했고, 대부분 반도체, 바이오 등 고부가가치 첨단산업 제품으로 우리 경제와 무역에서 중요성이 높아지는 품목들이다.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화물이 95% 이상 인천공항을 통해서만 처리되고 있다. 지금은 문제없이 운영될지라도 향후 북한의 도발, 테러, 재난, 기상이변 등으로 수도권지역 항공물류에 문제가 생기는 상황이 발생하면 어떻게 될까? 가까운 아시아 지역은 다른 공항으로 대체될 수 있다 하더라도 미주, 유럽 등 장거리 노선은 큰 차질을 빚고 취약성을 노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TK신공항은 우리나라 항공 물류가 가진 취약점에 대비하고 회복력을 높여줄 수 있는 역할을 함으로써 항공강국으로서의 우리의 위상을 확고히 하는 두 겹줄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보다 규모가 작은 국가인 UAE, 스위스가 장거리 취항(활주로 3.5㎞ 이상)이 가능한 공항을 복수로 가지고 있는 점도 시사점을 준다.한편 인천공항의 항공물류 독점은 첨단산업의 수도권 집중화를 초래해 지역균형개발에 역행한다는 지적도 제기돼 왔다. 생산 기업 입장에서 신속하고 효율적인 수출입을 위해 항공 물류가 원활한 수도권 지역을 선호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TK신공항이 건설되어 남부에 새로운 항공물류 거점을 제공함으로써 첨단산업의 지방 입지를 유도한다면 지역균형개발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아울러 대구지역은 오랜 교통 중심지로서 경상, 충청지역을 1시간 내로 연결하며 달빛철도가 완공되면 호남지역까지 1시간대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최적의 입지를 제공한다.TK 신공항이 평시에는 인천공항과 더불어 항공강국 대한민국의 굳건한 두 겹줄의 역할을 하는 동시에 중남부권 첨단산업 유치를 가능케 해 지역균형 발전에도 공헌하고, 유사시에는 인천공항으로 집중된 항공물류의 취약성을 보완하여 대한민국 항공물류의 안보를 지키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리라 기대해 본다. 정해관 (대구시 국제관계대사)정해관 (대구시 국제관계대사)
[기고] 충분한 휴식으로 봄철 졸음운전 예방을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본격적인 행락철을 맞아 고속도로 나들이 차량도 증가하고 있다. 봄철 졸음운전에 대한 경계가 필요한 때다.지난 5년간 한국도로공사 대구경북본부의 관할 지역 교통사고 사망자는 96명이다. 이 중 졸음, 주시태만으로 인한 사망자는 71명(연평균 14명)으로 전체 사망자의 74%를 차지하고 있다. 졸음운전은 돌발상황에 운전자의 의지에 따라 제동하지 못하고 고스란히 충격을 받는 점에서 다른 어떤 사고보다 그 결과가 치명적이라 볼 수 있다. 더욱이 4월은 따뜻한 봄기운과 큰 일교차로 졸음운전 사고가 매우 많은 시기여서 운전자들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봄철 졸음운전을 예방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휴식이다. 고속도로를 2시간 이상 운전하는 경우 최소 15분 이상 휴식을 취해야 한다. 피로가 느껴지거나 긴장감이 풀린다고 생각할 때는 주저 없이 휴게소나 졸음쉼터에서 반드시 휴식을 취하도록 한다. 한국도로공사는 운전자들의 자발적 휴식 참여와 졸음운전 예방을 위해 전국 고속도로 이용자를 대상으로 '땡큐'(졸음 땡! 휴식 큐!) 포인트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최초 주행 60분 후 휴게소나 졸음쉼터에서 휴식을 취하면 포인트가 적립된다. 이 포인트로 커피쿠폰 등을 구매할 수 있다. 가입방법은 모바일에서 '위드라이브' 앱을 다운 받은 뒤 휴식참여에 대한 동의를 완료하면 된다. 졸음사고를 줄이고 상품도 받는 1석 2조 방법이니 많은 이용 바란다.도로공사 대구경북본부는 추풍령, 김천, 칠곡, 성주 등 지역 14개소에 화물차 운전자들의 휴식을 위한 'ex화물차라운지'를 운영하고 있다. 샤워시설과 수면시설도 구비돼 있으니 일반차량 운전자도 필요하면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다.또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전국 졸음쉼터, 주유소, ex화물차라운지에서 '졸음 확! 깨는 얼음생수'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고객들은 캠페인 진행 시 누구나 무료로 얼음 생수를 받을 수 있으니 충분한 휴식과 함께 졸음 운전사고 예방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한국도로공사는 도로를 개량하고 안전시설물을 확충하며 운전자의 안전의식 제고를 통해 교통사고 예방에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다.그러나 사고예방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운전자의 성숙한 교통 안전의식이다. 졸음운전은 언제 어디서든 예고 없이 찾아올 수 있다.항상 경각심을 갖고 잠깐의 휴식이 나와 타인의 생명을 보호해 준다는 점을 반드시 명심하자.배병훈(한국도로공사 대구경북본부장)배병훈(한국도로공사 대구경북본부장)
[기고] 장애인의 날을 맞이하며
매년 4월20일은 '장애인(障碍人)의 날'이다. 장애인의 날은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약자로 인식되는 장애인의 지위를 향상하고 사기 진작을 위해 정한 기념일이다. 아마 대부분의 비장애인들은 장애인의 날이 있는지도 모를 것이다. 장애인이란 일반적으로 몸이나 마음에 장애나 결함이 있어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제약을 받는 사람을 말한다. '장애'는 진화하는 개념이며, 손상을 가진 사람과 태도적, 환경적 장벽 사이의 상호작용에서 유래한다. 그리고 장애 개념은 시대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으며 나라마다 장애의 범위가 다르다. 우리나라의 장애인 인구는 현재 약 260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약 5%에 해당하며 6가구당 1가구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장애유형은 15개로 분류된다. 지체장애, 뇌병변장애, 청각장애, 언어장애, 안면장애, 신장장애, 간장애, 호흡기장애, 장루·요루장애, 뇌전증장애, 지적장애, 자폐성장애, 정신장애 등이 있다. 장애는 한 개인이 갖고 있는 수많은 특성 중 하나이다. 동일한 장애유형이라고 해도 사례별로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도움을 줄 때는 먼저 상대방의 의사를 확인해야 한다. 만약 도움이 필요하다면 장애인 스스로가 상대에게 어떠한 도움이 필요한지 설명해 줄 것이다. 장애는 선천적장애와 후천적장애가 있는데, 전체 발생 원인의 73.5%가 후천적 요인에 의한 것으로 누구도 장애인이 될 가능성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제 더 이상 장애는 남의 일이 아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일상생활에서 경험하게 되는 다양한 일들을 장애인의 관점에서 인식하고 해석해 그 일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측하고 문제 상황을 해결하는 데 동참하겠다는 장애감수성이 필요한 시대라고 할 수 있다.필자도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에는 비장애인이었고 열심히 공부해 건축사시험에 합격했다. 성공한 건축사로서 주변에 부러울 것이 없었지만 어느 한순간에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3일 만에 깨어난 후 5급 장애인이 되었다. 몇 날 며칠을 좌절과 슬픔으로 보냈지만 사랑하는 가족과 대구한의대 김한식 교수님의 '장군 스피치' 덕분에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필자는 비록 5급 장애인이지만 그 누구보다도 당당하게 세상 속에서 봉사와 희생으로 장군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위기와 좌절을 경험하게 된다. 그 위기를 극복할 것인가 아니면 위기에 굴복할 것인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나에게 달려 있다. 이제 앞으로 필자에게 어떠한 위기가 찾아온다 해도 필자는 반드시 극복해나갈 것이다. 나는 장군이다. 그리고 반드시 장군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 손인호 (대구시장애인골프협회 회장)손인호 (대구시장애인골프협회 회장)
[기고] 내 마음의 동성로
"잊기에는 추억의 낙서가 너무 많아/ 제발 잊으라는 그 말 하지 말아요/ 마주 바라보는 눈빛 하나로/ 내일을 꿈꾸며 사랑을 나누던 곳/ 아아아 내 마음의 동성로"1996년 발표된 가수 설운도가 부른 '내 마음의 동성로'의 가사 일부이다. 이 노래는 우방그룹이 협찬해 만들었다는 점이 눈길을 끄는데 1990년대 대구 기업 트로이카 우방·청구·보성은 대구를 넘어 전국의 주택건설 시장을 호령하며 당시 대구 경제를 이끈 대구의 자랑이었다. 지금은 비록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이들 기업을 아직까지도 추억하는 대구 사람들이 많다. 6·25 전쟁 중 임시수도 시절에도, 경북의 중심도시였던 1960~70년대에도, 직할시로 승격한 1980년대에도, 광역시가 되고 3대 도시의 위상을 되찾으려는 지금까지도 대구의 중심은 누가 뭐래도 동성로이다. 대구 사람들에게 '시내에 나간다'는 말은 한곳을 지칭한다. 대구가 250만의 거대 도시로 성장하여 여러 개의 부도심이 생겨도 여전히 '시내에 간다'는 말은 동성로를 간다는 뜻이다. 그만큼 동성로는 대구의 심장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동성로를 비롯한 대구 원도심은 대구의 역사를 만든 사람들의 추억이 깃든 장소이다. 소설가 현진건은 계산 성당의 종소리를 들으며 글을 썼을 것이고, 시인 이상화는 계산동 고택과 동성로를 거닐며 시상을 떠올렸을 것 같고, 대구 최초 다방 '아루스'를 개업한 화가 이인성에게도 동성로는 영감을 주는 장소였으며 우리나라 최초 음악다방 녹향(향촌동)이 만들어낸 감성도 동성로의 화려한 문화를 꽃피우는 촉매제였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다. 3·1 운동의 함성과 염원이 아직까지도 느껴지는 만세길(동산동), 삼성상회를 창업한 호암 이병철의 피와 땀(인교동), 근대 개화기 대구와 함께한 선교사들의 헌신과 눈물(계산동)은 동성로를 비롯한 대구 원도심 지역의 정신적인 자양분이 되었을 것이다.이러한 의미에서 동성로 상권을 다시 살리고 원도심을 다시 활성화시키자는 움직임은 대구를 사랑했던 사람들에 대한 부채 의식을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다. 이런 점에서 대구의 심장인 동성로(CGV 대구한일~28아트스퀘어)에서 열리는 제6회 대구커피&베이커리 축제(4월23~24일)는 대구 시민들에게 큰 의미를 부여한다. 이번 축제의 기본 방향이 대구 시민들과 커피와 빵을 함께 먹고 추억의 시간을 갖는 것이라고 한다. 주제관과 홍보부스를 통해 커피와 빵의 역사를 만나고, 대구의 심장인 동성로 땅을 밟으며 대구를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와 향수를 만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큰 의미의 축제가 어디 있겠는가.다가오는 4월23~24일, 대구 동성로에 꼭 오시라! 커피 한잔, 빵 한 조각 나누며 동성로가 만든 대구의 '찐' 문화를 만나고 싶다면 말이다. 이상철 (대구시 위생정책과 주무관)이상철 (대구시 위생정책과 주무관)
[기고] 특명! 대형산불로부터 '송전선로'를 지켜라!
따뜻하고 건조한 계절인 봄이 다가왔다. 산에는 하나둘씩 아름다운 꽃들이 저마다 자태를 뽐내며 새로운 계절이 왔음을 알린다. 하지만 봄철은 산림이 울창해지는 만큼 건조한 날씨와 함께 등산객 증가, 국지적 강풍 등으로 대형산불이 발생할 위험이 매우 높다. 대표적인 대형산불은 2022년 3월 경북 울진군에서 발생한 산불로 약 630만평의 면적이 소실됐다. 주불 진화에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린 최악의 산불(10일, 213시간)로 기록됐다. 특히 울진군은 동해안 지역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력을 수도권으로 송전하기 위한 초고압 76만5천V 송전선로가 통과하는 곳이다. 블랙아웃(대정전)을 막기 위해 당시 한국전력공사의 많은 직원들이 밤낮으로 사투를 벌였다.국가 에너지 기반 시설인 송전선로의 약 77.4%는 산악지역에 설치돼 있다. 송전선로는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의 1차 수송 통로 역할을 한다. 만약 송전선로에 고장이 발생할 경우 대규모 광역 정전을 초래할 수 있다. 고품질 전기의 안정적 공급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는 한국전력공사가 산불에 대해서 민감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따라서 대구시를 비롯해 포항, 경주 등 6개 시·7개 군에 전력을 공급하는 '한국전력공사 대구본부'에선 산불로 인한 설비 피해를 예방하고자 다양한 대책을 수립해 시행하고 있다.우선 한국전력공사 대구본부는 산불에 대한 대응력을 높이기 위해 3∼5월 9주간 '산불 피해 예방 비상대책 특별기간'을 운영하고 있다. 이 기간에 송전선로 인근 산불 발생 우려 지역의 현장 순시를 강화한다. 산불 대응에 취약한 휴일 및 야간시간에 약 150명의 인원이 비상근무를 서서 신속 대응 체계를 상시 구축하고 있다. 또한 비슬산, 운재산 등 송전선로가 많이 분포된 주요 등산로에선 산불 예방 캠페인을 시행할 예정이다. 산림청 산림항공본부 등 관련기관과의 협력체계도 구축했다.이 외에도 한국전력공사는 산불로부터 송전선로를 보호하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수립·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 우리 모두는 전력설비 보호 이유뿐만이 아니라 소중한 문화유산·자연환경을 지키기 위해서 산불예방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실제 2005년 강원도 양양군에서 발생한 대형산불로 문화유산인 낙산사 대부분이 소실됐다. 산불로 피해를 본 자연환경을 복구하는 데에는 짧게는 30년 길게는 10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산불은 예방이 최우선이다. 대부분 산불이 잠깐의 설마 하는 방심과 부주의로 인해 발생하고 있다. 허용된 지역 외에선 캠핑 활동을 자제하고, 산불 발생위험이 높은 시기엔 입산통제구역 출입 금지, 산행 시 라이터·성냥 등 인화성 물질 소지 금지, 산림과 가까운 곳에서 소각 금지 등 작은 관심만 있다면 누구나 예방할 수 있다. '산불예방'은 이제 전 국민이 실천해야 한다. 윤태형 (한국전력 대구본부 송전운영부 차장)윤태형 (한국전력 대구본부 송전운영부 차장)
[기고] 건강보험공단의 특사경 도입으로 국민 건강권을 지켜야 한다
우리나라 사회보장제도 중 세계적으로 관심과 칭찬을 받는 제도는 건강보험이다. 건강보험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보았듯 국민 건강과 생명을 책임지는 든든한 사회안전망으로서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건강보험 재정은 국민이 낸 보험료로 운영한다. 근데 건강보험료를 아무리 많이 내더라도 지출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그 지속성을 보장할 수 없다.건강 보험의 지출관리를 위협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사무장병원이라 불리는 불법개설기관이다. 현행 의료법에서는 의사, 약사 또는 법에서 정한 법인이 아니면 병·의원이나 약국을 개설할 수 없다. 불법개설기관은 비의료인이 의료기관 등에 본인 돈을 투자해 개설 자격이 있는 의사와 약사 명의를 빌리거나 비영리법인으로 가장해 의료기관 또는 약국을 개설·운영하면서 그 수익을 취하는 형태다. 하지만 아무리 사무장병원이라고 해도 제대로 된 의료서비스를 국민에게 제공한다면 문제가 없지 않나 생각할 수 있지만, 사무장병원은 의료기관 개설 자체가 불법이다. 사무장병원 관련 통계를 보면, 항생제와 수면제를 과다 처방하거나 불필요한 검사·진료 등 과잉진료를 통해 건강보험 급여를 부당 청구하는 경우가 많다. 또 특정 의약품 사용을 유도하는 등 개인 돈벌이에 급급해 환자들을 대상으로 불법을 자행하면서 그 수익을 편취하고 있다. 한마디로 사무장병원은 국민건강권을 위협할 뿐 아니라 의료생태계를 파괴하고 건강보험 재정을 악화시키는 주범이다.건강보험공단은 사무장병원을 근절하고자 2009년부터 불법개설조사를 수행했다. 최근까지 1천447건의 불법개설기관을 적발하는 등 확인된 재정 누수 금액이 무려 3조3천762억원에 달한다.하지만 건강보험공단이 사무장병원을 대상으로 징수한 실제 징수율은 적발금액 대비 6.92%로 매우 낮은 것이 현실이다. 그 이유는 사무장병원 및 면허대여 약국으로 의심되는 곳을 조사해 경찰에 수사 의뢰하면 그 결과 통보까지 평균 11.5개월이 소요된다. 그사이 사무장병원 개설자들은 폐업으로 현장 증거물을 없애고 잠적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 재산을 은닉하는 경우가 많아 실제 채권을 확보하기 어렵다. 그래서 실제 조사하는 건강보험공단에서는 빠른 수사와 기소를 위해 특사경 권한 부여를 요구하고 있다.건강보험공단에 특사경이 도입되면 공단이 운영하는 '불법개설 의심 기관 감지 시스템(BMS)'을 활용해 불법 개연성이 높은 의료기관의 발굴·분석부터 단속에 이르기까지 이른 시간 내 실시할 수 있다. 그리고 불법개설 의료기관에 모든 수사 역량을 집중해 신속한 수사를 펼치는 등 사건 인지부터 종결까지 기존 수사 평균 기간 11.5개월 대비 3개월 이내 수사 종결이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일부 의료계에서는 공단이 특사경 권한을 가지면 수사권 오남용으로 사무장병원 수사만이 아닌 일반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조사권의 남용을 우려하고 있다. 그렇지만 수사권 범위뿐 아니라 외부로부터의 권한 제한 등 법제화를 추진하면, 의료계에서 걱정하는 일은 향후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현재 4개 의원실에서 공단 임직원에게 사무장병원과 면대 약국에 대한 특별사법경찰 권한을 부여하는 '사법경찰직무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으며 활발히 논의 중이다. 하루빨리 관련 법안이 신속히 처리돼 국민 건강 보호와 함께 건강보험의 재정 안정화를 기반으로 건전한 건강보험을 만들어 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김기형 <국민건강보험공단 대구경북지역본부장>김기형
[기고] 사무장병원 불법 척결 위해 건보공단 '특사경' 도입해야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950만명을 넘어섰다. 곧 초고령사회 진입이 예상되는 가운데 저출산, 고령화 등 인구구조 변화로 생산인구는 줄어드는 반면, 노인의료비는 급증하고 있어 건강보험 재정에 경고등이 켜졌다는 기사를 자주 접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인진료비는 2022년 약 45조원으로 이는 국민 전체 진료비의 절반에 가까운 금액이다. 노인진료비가 매년 급증하고 있어 은퇴 후 소득은 줄고 병원 가는 횟수는 늘고 있는 노인 중 한 명으로서 마음이 편치가 않다.다행히 건보공단에서 건강보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 특별사법경찰(이하 '특사경')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특사경'이란 전문성을 요하는 특수 분야의 범죄에 한해 행정공무원 등에게 수사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사무장병원과 면허대약국(이하 '사무장병원')으로 불리는 불법개설기관을 적발·수사하기 위해서다. 사무장병원은 자격이 없는 일반인이 면허를 빌려 불법으로 개설·운영하는 병원, 약국 등을 말한다. 환자의 권익과 치료보다는 주머니 채우는 것이 최우선이기에 항생제 과잉 처방, 일회용품 재사용, 요양병원 내 환자(노인) 방치 등 불법행위를 자행해 질병을 악화시키는 등 노인들의 생명과 안전에 위협이 되고 있다. 건보 재정 손실은 말할 것도 없다. 2018년 밀양 요양병원의 화재로 47명의 사망자와 145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사건이 대표적인 사무장병원의 사례다.건보공단에 따르면 사무장병원의 불법행위는 날로 교묘해지고 있으며 이로 인한 피해 금액이 최근 14년 동안 약 3조4천억원에 달한다. 안타깝게도 이 중 공단에 회수된 금액은 6.7%인 2천282억원에 불과하다. 우리가 낸 보험료가 줄줄 새는 것도 모자라 결국 최종 피해가 국민들에게 되돌아온다니 분노를 금할 수가 없다.문제는 건보공단이 사무장병원을 적발해도 수사권이 없어 경찰 수사에만 의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찰은 강력사건, 민생범죄를 우선할 수밖에 없어 그사이 국민들은 위험천만한 의료 환경에 지속적으로 노출되고 불법 개설자들은 잠적, 재산을 은닉해 환수 자체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건보공단은 '특사경'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 '특사경'이 도입되면 건보공단은 계좌 추적이나 관련자 조사 등을 신속, 정확하게 할 수 있어 수사기간을 11개월에서 3개월까지 단축할 수 있다고 한다. 조기에 사무장병원을 적발, 퇴출시켜 국민 건강을 지키고 연간 약 2천억원 정도의 건보 재정 누수 차단과 함께 우리가 내고 있는 소중한 건강보험료가 엉뚱한 곳에 쓰이는 것을 막을 수 있다.현재 국회에는 건보공단에 '특사경' 권한을 부여하는 법안이 발의되어 논의 중에 있다. 일각에서는 수사권 오남용 등 공단에 과도한 권한을 주는 것이 아닌지 우려의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현재 계류 중인 법안은 '특사경'의 수사범위가 제한적이어서 보완 장치를 마련하면 이러한 문제는 얼마든지 해소할 수 있다고 본다.더구나 건보공단은 10년 넘게 사무장병원 적발과 환수업무를 수행해 얻은 풍부한 경험이 있다. 의사, 수사전문가 등 2천500여 명의 전문인력 및 빅데이터를 활용한 '불법개설감지시스템' 운영 등 전문성과 인프라를 갖춘 공공기관이다.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건보공단의 '특사경' 도입을 적극 지지하고 얼마 남지 않은 21대 국회 임기 내 반드시 통과되길 염원한다. 이태득 (대한노인회 대구수성구 지회 부회장)이태득 (대한노인회 대구수성구 지회 부회장)
[기고] 6·25전쟁기 한국예술의 축소판 '한국전선문화관'
1950년 6·25전쟁 발발 후 대구는 전선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전선문화(戰線文化)는 '6·25전쟁기에 피어난 문화와 예술'을 의미한다. 전쟁의 암흑기에서도 시인 구상·조지훈·박목월, 화가 이중섭 등 전국의 저명 예술인들과 지역 예술인들이 함께 전선문화의 꽃을 피웠다. 전쟁의 북새통 속에서 대구의 향촌동 일원은 피란 온 예술인들에게 창작과 생활의 공간을 제공한 스토리와 흔적이 오롯이 남아있는 전선문화의 중심지였다. 당시 문학·음악·연극·미술 등의 다양한 예술인들이 쌓아 올린 지층은 대한민국 예술 지형도의 축소판이었다.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낸 이어령은 "6·25전쟁 때 소리 없이 사라진 예술인들의 흔적은 오늘도 대구 향촌동 거리를 걸으면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라고 하였다. 대구가 전선문화의 중심이었음을 강조한 것으로 짐작된다.최근 대구시는 전쟁 당시 전국의 피란예술인들의 스토리와 흔적을 기억하고 그 가치를 재조명하는 거점 공간으로 삼고자 '한국전선문화관'을 개관했다. 한국전선문화관은 대구의 역사와 정체성이 살아 숨 쉬는 원도심에 입지하고 있다. 동쪽으로는 동성로, 서쪽으로는 경상감영공원, 남쪽으로는 대구문학관, 북쪽으로는 대구콘서트하우스 등이 도보권 내에 위치하고 있다.한국전선문화관은 소실 위기에 놓인 원도심 근대건축물 보존을 위해 대구시가 매입한 옛 '대지 바'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탄생했다. 노후화된 과거 유산을 전선문화를 테마로 한 창의적 문화공간으로 재창조한 것이다. 대구시 중구 향촌동의 대구문학관 뒷골목에 소재한 음식점이었던 '대지 바'는 노벨문학상 본심 후보에 두 차례 오른 시인 구상을 비롯한 다양한 예술가들의 스토리가 담긴 사랑방 같은 공간이었다. 당시 향촌동의 귀공자로 불린 구상은 이중섭 등 피란 예술인들의 후원자 역할을 하면서 피란문단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한국전선문화관은 문자 그대로 '전선문화를 테마로 한 전시관'이다. 6·25전쟁기의 대구를 재발견하고 공간화한 것이다. 한국 전선문화의 발신지이자 공감과 소통의 공간으로서 무엇보다 대구근대역사관, 향촌문화관, 대구문학관 등 기존 시설과의 차별화가 중요하다. 전쟁 당시 한국문화예술의 중심지 역할을 한 대구의 상징성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피란문화수도'의 상징공간으로 도심의 다른 문화유산을 연결하는 허브 기능이 필요하다. 대구문학관의 문학로드, 근대골목 투어, 인근 복합문화공간인 대화의장 등과 유기적으로 연계함으로써 공간적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 전선문화는 한국전쟁 당시 한국 문화예술의 중심이었던 대구에서 꽃피운 독특한 장르이다. 이러한 문화유산은 흔적과 기억들이 사라지기 전에 새로운 문화 발전 DNA의 핵심 키인 '미래유산'으로 진화되어야 한다. 미래유산이란 미래세대에게 전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유·무형의 문화유산을 의미한다. 이러한 미래유산은 단순히 옛 기억을 재현하는 의미를 넘어서 과거의 의미를 되찾고 궁극적으로 도시 전반에 활력을 부여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6·25전쟁기 대한민국 문화예술 지형도의 축소판이었던 대구의 전선문화(戰線文化)는 '대한민국의 시대성'과 '대구의 지역성'을 아우를 수 있는 대구만의 고유하고 독창적인 콘텐츠이기 때문이다.오동욱(대구정책연구원 사회 문화연구실장)오동욱(대구정책연구원 사회 문화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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