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가 선물입니다”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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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5-01   |  발행일 2015-05-01 제34면   |  수정 2015-05-01
■ ‘가정의 달’ 어느 에이즈 감염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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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이 집에서 정성스레 자수를 놓고 있다. 대구경북에이즈예방협회 취미교실에서 배운 솜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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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땀 한 땀 놓은 자수. 아름다운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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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빅 핸즈의 테이블에 놓을 꽃을 분갈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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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에는 추리소설가 김성종의 소설이 가득 꽂혀 있었다. 그는 김성종씨 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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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저녁으로 매일 6개의 약을 먹는다. 에이즈치료약, 신경안정제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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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까지 거의 매일 일기를 썼다. 하지만 올해부터 건강지원금이 끊긴 이후 펜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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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작은 식물원이다. 문을 열면 화초가 그를 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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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이 홀로 카페 빅 핸즈의 통 유리 창가에 앉아 금호강안심습지를 바라보고 있다.


대한민국의 HIV/AIDS 감염인 중 50% 이상은 가족과 단절돼 생활하고 있다. OECD국가 중 자살률 1위인 대한민국에서 감염인의 자살률도 비감염인보다 10배 이상 높다. 그들은 김현승의 시처럼 ‘절대고독’과 싸우고 있다. 하지만 여운은 하루하루를 선물로 생각하고 사는 따뜻한 음유시인이다.

‘사람의 향내가 물씬 풍기는 하루였으면 좋겠다/ 오렌지같이 시큼하면서도 상큼한 하루였으면 좋겠다/ 향기를 뿜어낼 수 있는 하루였으면 좋겠다/ 맑은 물 같은 하루였으면 좋겠다.’ -‘이런 하루였으면 좋겠습니다’ 중-

여운은 또한 HIV/AIDS에 감염되면서 모든 것을 내려놓는 ‘하방(下放)의 삶’을 추구하고 있다. 들꽃을 보며 쓴 그의 시를 보자.

‘사랑스런 작은 들꽃아 너나나나 이 세상에서 소유한 건 하나도 없단다/ 소유한다는 건 구속이며 욕심의 시작일 뿐이다/ 넓은 하늘을 보라/ 그곳에 소유라는 게 어디 있느냐. 훌훌 지나가는 바람을 보라/ 그곳에 어디 애착이라는 게 있느냐/ 훨훨 떠나는 구름을 보라. 그곳에 어디 미련이라는 게 있느냐/ 다만 서로의 고마운 만남을 감사하며/ 다만 서로의 존재를 축복하며/ 다만 서로의 인연이 오래가길 기원하며 이 짧은 세상에서 이만하면 행복하잖니/ 사랑스런 작은 들꽃아. 너는 울며불며 고민스런, 고통스런, 소유를 갖지 마라/ 하늘이 늘 너와 같이 하고 있지 않니/ 대지가 늘 너와 함께 하고 있지 않니/ 구름이 늘 너와 함께 하고 있지 않니.’ -‘작은 들꽃’ 중-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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