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간 한 곳서 춤추는 비보이부터 노래하는 스님까지…수성못은 버스커 천국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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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6-19   |  발행일 2015-06-19 제35면   |  수정 2015-06-19
거리의 뮤지션…‘나는 버스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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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못 버스커는 실력은 물론 직업도 다양하다. 구미 문수사 성일 스님은 13년째 자선음악회 형식의 거리음악을 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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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밤 방천시장 장터 네거리 근처 주점 앞 거리에서 신승호씨와 함께 김광석 노래 잔치를 벌이고 있는 김진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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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 듀오 사필성·안희재씨는 최근 수성못 버스커로 등장, 커피 테이크아웃족을 즐겁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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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째 수성못 농구장 근처에서 브레이크 댄스의 진수를 선보이고 있는 이근호씨.



수성못 농구장 부근 이근호씨
거의 매일 브레이크댄스

힙합 듀오 피에스타즈는
수성못의 새로운 ‘메뉴’로 눈길

방천시장 서범기·김진덕·신승호
대덕식당 맞은편의 이경희씨
고산골 손방원씨 등도 활동 활발


◆ 강적 춤꾼과 힙합 듀오

수성못 농구장 근처 도무지 공연이 될 것 같지 않은 공터에 서른 살의 청년이 나타났다. 수성구 상동에 사는 이근호씨다. 여느 춤꾼에 비해 왜소한 체격이다. 타인의 시선을 끌 만한 포스는 아니지만 그의 집념과 의지는 타인을 압도한다. 이 장소에서 무려 18년간 세금을 납부하듯 브레이크댄스를 광적으로 추었다. 벽돌 한 장만 한 녹음기에서 흘러나오는 푸석한 반주에 의지한 채 쿠션이 전혀 없는 땅에 자기 몸을 날린다. 매일 오후 7시쯤 나와 3시간 춤을 춘다. 삼성라이온즈 야구시합에도 초청받았다.

이날 처음으로 힙합 듀오를 결성해 나타난 강적이 있었다.‘피에스타즈(Fiestaz)’의 사필성·안희재씨.

사씨는 중앙대 신문방송학과를 중퇴했고 안씨는 대구보건대 컴퓨터과를 졸업했다. 모두 자기 음반을 갖고 있는 싱어송라이터였다. 안씨는 한때 결혼축가 때문에 웨딩플래너의 길도 잠시 걸었고 사씨는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딴따라 소울’이란 팀으로 4년간 버스킹을 한 실력파. 둘이 5년 정도 떨어져 있다가 최근 재결합하고 달서구 두류동에 ‘재미 엔터테인먼트’를 차렸다. 댄서 등 10여명의 프리랜서가 동참하고 있다. 사씨가 혼자서 서너 번 수성못에서 버스킹을 하다가 이날 처음으로 둘이 판을 벌였다. 300여만원을 들여 음향장비도 마련했다.

자리 때문에 수성못 표석이 서있는 호반광장에 음향장비를 세팅했다. 단번에 20대 테이크아웃 커피족 등을 사로잡았다. 그동안 통기타 일색의 수성못 버스킹에 새로운 메뉴가 첨가된 셈이다. 중간중간에 김광석의 히트곡은 물론 진성의 ‘안동역에서’, 오승근의 ‘내 나이가 어때서’, 신유의 히트곡 등 트로트도 중년을 위해 틈틈이 날려준다. 메르스 파동이 잦아지면 주 3회 정도 나올 작정이란다.

이날 버스킹에 스님도 가세해 이채를 띠었다. 일부 스님이 염불 대신 대중가요를 부르는 것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지만 구미 문수사 성일 스님은 흔들림이 없다.

“대중에게 들려주는 노랫말이 법문이요, 노래하는 행위가 곧 포교다.”

13년째 동대구역전 등에서 불법 전도 수단으로 거리음악을 활용해 왔다. 그는 대학시절 통기타 그룹 활동을 했고 라이브 전원카페도 열었다. 한때 심한 화상을 입었고 40세에 태고종 승려가 됐다.

◆ 방천시장의 버스커

지난 금요일 밤 방천시장 장터 네거리. 통기타 소리가 김광석다시그리기길까지 들렸다. 오픈된 김광석 야외음악당은 주말 버스킹의 무대가 된다. 서범기씨가 제일 먼저 여기에 버스킹의 씨앗을 뿌렸다.

현재 밤에는 ‘대구의 김광석’이라 자부하는 김진덕씨와 유통업을 하는 신승호씨가 번갈아 가면서 김광석의 히트곡을 불러준다. 이들은 김광석 노래를 거의 외우고 있어 반주기가 필요 없었다. 무대 맞은편은 막걸리가 어울리는 주막이다. 몇년 전 어두침침한 시장 분위기가 통기타 버스킹 덕분에 훨씬 낭만스러워졌다.

김씨는 2011년초 거리공연에 필요한 장비를 구입하고 ‘천사노래예술단’을 창단하여 어려운이웃돕기 공연을 시작했다. 김광석 추억콘서트, 김광석기일추모공연 등 수백 회 공연을 했다. 최근에는 봉산문화회관에서 모집한 거리의 악사에 선정되기도 했다.

◆ 기억해야 될 전천후 버스커

지역 최초의 여성 색소포니스트로 주목받는 이경희씨. 그는 1994년 처음으로 색소폰에 입문했다. 98년 지역 첫 동호인 위주의 색소폰 동호회인 ‘아멜모’를 만든다. 이에 앞서 97년 대구예술문화회관 근처에서 매월 두 차례 참벗회를 지원하기 위한 버스킹을 했다. 2000년부터 달서구 월광수변공원에서 10여년 버스킹을 한다. 하지만 너무 많은 색소폰 주자가 몰려오는 바람에 월광수변공원 버스킹이 금지됐고 그녀도 그곳을 떠나야만 했다. 현재 남구 대덕식당 맞은편에서 매월 둘째, 넷째 금요일 아멜모 회원과 함께 색소폰 연주를 한다.

지역의 대표적 팬플루트 연주자인 손방원씨.그는 버스킹을 생업으로 하고 있다. 한때는 오카리나 연주자였던 그는 요즘 앞산 고산골 등지에서 자기 음반을 팔며 버스킹을 하고 있다. 그는 숱하게 단속반에 걸려 공연을 접어야만 했다. 차체에 금지된 여러 공원에서 자유롭게 버스킹을 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경산시 하양읍에서 축산업및 포도농사를 짓고 있는 황무지씨. 10년 구력의 버스커다. 웃음치료사 겸 대구경북 레크리에이션협회 사무처장인 그는 농한기엔 출근하듯 기타를 들고 거리로 나간다. 실력을 연마하기 위해 하양역 대합실, 가톨릭대 교정 내 팔각정 등을 찾았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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