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미스트 조성진, 버스커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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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6-19   |  발행일 2015-06-19 제35면   |  수정 2015-06-19
“버스커는 남과 잘 소통하는 엔터테이너…시선 사로잡는 의상·멘트·퍼포먼스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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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서 광대들이 교회 때문에 쫓겨나 유랑하게 된다. 이들의 호구지책이 버스킹이었다. 예술가와 버스커는 구별할 필요가 있다. 예술가는 자신을 표현하는 걸 지상목표로 삼지만 버스킹은 생계가 목적이다.

버스커가 노점상으로 취급받으면 끝이다. 그럼 행인에게 카타르시스를 충족시켜주지 못한다. 버스킹으로 자기의 예술혼을 인정받으려 하지 말라. 독창성만 너무 고집하면 행인은 달아난다. 행인이 지불하는 팁은 공연에 대한 가치보다 공감에 대한 표현이다.

다양한 관객이 있다. 첫째는 ‘매스(Mass)’다. 이들은 화려한 것과 자극적인 것에 주로 반응하는 사람들이다. 뮤지컬, 오페라, 대형 콘서트 등에 몰리는 사람도 매스로 분류할 수 있다. 둘째는 ‘피플(People)’이다. 이념적 지향이나 이해관계에 따라서 반응하는 자다. 마지막은 ‘퍼블릭(Public)’이다. 이념과 이해를 떠나 살아온 삶의 경험을 토대로 한 자기만의 심미안을 갖고 있다. 버스커는 퍼블릭에 주목해야 한다. 자기에게 오는 행인은 퍼블릭의 성향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프로 흉내를 내려 하거나 ‘한푼’을 유도하거나 소수를 위한 버스킹은 자제해야 한다. 자작곡만 죽어라 부르면 오히려 실패할 수 있다. 행인에게 자기가 당신의 친구라는 걸 보여주는 형식을 가져야 한다. 버스커는 남과 잘 소통하는 ‘엔터테이너’다. 시선을 사로잡는 의상과 멘트, 몸짓을 동반해야 한다. 퍼포먼스는 필수.

무조건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 좋다. 사람이 없는 곳의 장시간 공연은 고역이다. 둘째는 주변에 소음이 없어야 하고 시선이 집중되는 환경을 확보해야 한다. 버스커는 ‘지금’, 그리고 ‘여기’에 몰입할 줄 알아야 한다. 버스킹으로 뭔가를 도모한다면 버스커는 거리에서도 쫓겨날 수밖에 없다. 측은해 보이고 궁상스러워 보인다면 죽은 버스커다.

스피커 사운드 조절이 무척 중요하다. 예상 관객의 수에 준해야 한다. 과도한 음향을 난사하면 그 피해가 자신에게 돌아온다.

팁박스는 버스커의 자존감이고 존재 의의다. 너무 티나게 만들지 말고 그냥 기타 케이스를 열어두면 된다. 처음에는 지폐 몇 장과 동전 몇 개를 던져두면 그게 ‘팁을 달라는 사인’으로 작용한다. 마중돈이 없으면 행인은 먼저 팁 내기가 부담스럽다. 팁을 유도하는 발언도 좀 공부해야 한다. 예를 들어 국내 첫 버스커로 불리는‘좋아서 하는 밴드’가 잘 사용하는 멘트에 주목해 보자. ‘여러분이 내신 돈을 제가 다 가질 겁니다. 왜냐하면 음악만 하고 살고 싶어서요.’ 나도 모르게 한 푼 던져주고 싶은 멘트다. 세상이 달라졌다. 너무 ‘불우이웃돕기’ 운운하지는 말라.

거리공연의 주인공은 행인이 아니라 바로 버스커다. 모두가 나에게 주목하고 나의 룰에 따라줄 용의가 있는 사람이 모이기 때문에 항상 당당해야 한다. 단속반, 취객 등 방해꾼이 나타나는 것도 당연하다. 그걸 ‘장애’라고 여기지 말라. 하나의 공연 요소일 뿐이다. 단속반에 주눅 들 거면 버스킹은 하지 말아야 한다. 버스킹 포인트를 정서적으로 장악한 사람은 버스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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