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팍한 일상의 쉼표…‘匠人급 주전부리’ 튀긴 호떡과 비빔당면·어묵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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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5-13   |  발행일 2016-05-13 제35면   |  수정 2016-05-13
20160513
부산의 국제·부평깡통시장 등을 누비면 재밌는 음식을 만날 수 있다. ① 남포동 할매회국수 ② 양장구밥 ③ 유부전골 ④ 비빔당면 ⑤ 돌멍게술잔 ⑥ 오징어무침납작만두 ⑦ 곰피시락국 정식



부평깡통·국제·자갈치시장 ‘대표 맛’
오징어무침납작만두·이가네떡볶이 등
부평시장 내 1천여곳 전국 군것질 메카
代 이은 유부전골·60여년 완당도 인기


◆국제시장 & 부평깡통시장

시장은 한 도시의 심장. 그게 시들면 시민의 삶도 시든다.

부산의 시장은 한국 근대생활사의 나침반이었다. 그래서 시장 없는 부산은 생각할 수도 없다.

부산과 동고동락해 온 ‘3인방 시장’이 있다. 중구 부평동 ‘부평시장’, 길 건너 신창동 ‘국제시장’, 그 옆 ‘자갈치시장’이 부산발 ‘맛의 삼각편대’로 불린다. 시장통 아낙네의 손맛과 행인의 입맛이 만나 별별 군것질거리를 ‘튀밥’처럼 만들어냈다.

국제·부평시장은 ‘도떼기시장’이라는 무질서한 노점 형태로 시작된다. 원래 그 일대는 용두산과 용미산(롯데백화점 자리)을 축으로 한 초량왜관 자리였다. 일제가 철수하면서 이른바 전시물자가 쏟아져 나왔다. 일본인에게 압수한 짐 보따리가 경매를 통해 무더기로 거래됐다. 6·25전쟁 때는 미군의 군수물자, 휴전 이후에는 온갖 밀수품이 떼로 흘러다녔다. 유독 전투식량(C-ration)과 통조림 제품 등이 많이 나돌아 부평시장은 ‘깡통시장’이란 별명을 얻게 된다.

하지만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일반 가게에서도 수입품 구하기가 수월해졌고 게다가 해운대·송정·기장 신상권이 형성되면서 부평시장은 쇠퇴기를 맞는다. 절치부심, 2013년 10월 전국 최초의 먹거리 중심 야시장을 개장했다. 부평시장은 전국 최고의 ‘군것질시장’으로 일어선다.

국제시장 A동 옆으로는 옷·안경·가방·침구·속옷 등을 많이 파는 ‘만물의 거리’, 이 거리 동쪽 한 블록 옆으로 있는 관광기념품·안경·의류점 등의 ‘아리랑 거리’, 아리랑 거리를 따라 남포동쪽으로 200~300m쯤 내려오면 비빔당면·국수·순대·떡볶이 등을 파는 ‘먹자골목’등이 이어진다.

먹자골목이 끝나는 곳에 광복로 쇼핑 거리가 있다. 부산 최고 전통을 자랑하는 냉면집인 ‘원산면옥’, 광어뼈살을 다져 갖은 양념으로 버무린 다다끼와 스지오뎅 등으로 유명한 ‘수복집’, 할매회국수집, 선술집인 백광상회 등이 이 거리 중간쯤인 ‘시티스팟’에서 남포동쪽 골목길에 자리하고 있다. 이 쇼핑거리 남측 남포동쪽으로는 씨앗호떡 노점 등이 포진해 있다. 서문시장 호떡은 굽고, 부산은 튀긴다.

◆유부전골~비빔당면~완당집

가장 유명세를 누리는 가게는 깡통시장 내 ‘깡통할매유부전골’.

부산역과 백화점까지 진출했다. 여든의 정선애 할매는 이 바닥에서 ‘유부 할매’로 불린다. 할매는 남편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98년에 처음으로 노점에서 장사를 시작했다. 다른 곳에서 팔지 않는 메뉴라 조금만 만들어 개당 500원에 팔았다. 난리가 났다. 2000년 특허 ‘유부 보따리’가 완성된다. 오뎅탕에 들어가던 유부를 단품으로 새롭게 리모델링했다. 찐빵 같은 중국식 만두를 이탈리아 만두 라비올리 같은 납작만두로 재탄생시킨 대구 분식집 사장의 안목과 비슷하다. 할매는 이제 CEO다. 서울대를 졸업한 외아들 백종진씨가 2002년부터 어머니를 도와 2대째 가업을 잇는다. 국물맛은 다시마와 가쓰오부시에서 시작. 유부 보따리 속에는 당면, 각종 채소, 버섯, 고기를 양념과 함께 채우고 미나리로 묶는다. 한입 물었을 때 스며나온 즙이 꼭 중국 상하이의 명물 ‘샤오롱바오(小籠包)’를 닮았다.

65년 전통을 자랑하는 ‘18번 완당집’도 빠질 수 없다. BIFF광장 쪽에 있는 이 집은 속이 비칠 정도로 얇은 만두피를 직접 손으로 빚고 작은 사탕만 한 고기 소를 넣어 만든 완당을 남해에서 가져온 멸치와 완도 다시마 등을 12시간 이상 우려낸 국물에 집어넣어 낸다. 만두와 전병, 그리고 수제비의 합작품 같다. 완당 아래에는 숙주나물이 자리를 잡고, 계란 지단 등의 고명도 올린다.

‘부산 3대 통닭’으로 꼽히는 ‘거인통닭’도 대박이다. 얼마나 장사가 잘 되는지 포장해서 가져가는 데도 평일 1~2시간, 주말에는 3~4시간은 걸린다. 1980년 이순조씨(별세)가 시작해 87년부터 딸 박희재씨 내외가 맡아 30년 넘게 이어오고 있다. 맛의 비결은 가마솥에서 고열을 사용해 옛날 통닭 방식대로 튀기고 염지(鹽漬·소금과 후추를 뿌려 조미)한 생닭을 받지 않고 직접 양념하는 것.

비빔당면도 부산이 원조다. 인천발 쫄면과 다르고 대구식 잡채와도 거리가 있다. 삶아낸 당면을 매콤한 양념장, 채소, 어묵 등 고명을 올려 한 그릇 푸짐하게 담아낸다. 비빔당면, 부산에선 줄여서 ‘비당’이란다. ‘원조비빔당면’ 정재기 대표의 어머니(성양이)가 처음에는 당면으로 잡채를 만들어 팔았다. 기름에 볶는 조리법 탓에 느끼했다. 다른 방법을 고민하다가 63년 참기름·간장으로 양념한 비빔당면을 만들었다. 기름기 없는 당면의 탄생이다. 초창기에는 35원부터 시작했다.

‘이가네떡볶이’는 아예 붉은 ‘다라이’에 담아놓고 판다. 위생을 운운할지 모르겠으나 이 바닥에선 그것도 ‘재밌음’으로 흘러넘긴다. 광복동에 있다가 10여년 전 여기로 온, 이름없는 포장마차에서 탁자 2개 놓고 파는 ‘김치국수’도 소리소문 없이 팬이 늘었다.

대구식 납작만두도 깡통시장에선 새롭게 변형된다. 납작만두 옆에 오징어무침을 짝지어 놓고 ‘오징어무침납작만두’로 팔린다.

깡통시장은 모두 6개 구역으로 나뉘어 있고 오후 7시30분부터 자정까지는 야시장이 열린다. 어묵·단팥·팥빙수·떡볶이길은 1천여개의 상가로 출출함을 달래는 오아시스존이다.

◆부산 어묵이야기

대구어묵. 잘 팔릴 리가 없다. ‘부산어묵’ 그래야 불티나게 잘 팔린다. 그래서 어묵 파는 사람들은 모두 부산어묵을 판다고 말한다. 부산은 한국 어묵의 발상지. 가장 오래된 회사는 53년 영도구 봉래시장에서 태어난 ‘삼진어묵’. 본점이 있는 봉래동 ‘삼진어묵 전시체험관’은 단체관광객으로 늘 붐빈다. 1층은 각종 어묵을 파는 어묵베이커리, 2층은 어묵체험·역사관이다.

오랫동안 우린 어묵을 ‘오뎅’이라고 말했다. 실은 ‘어묵’이란 표현이 맞다. 낱개 어묵을 갖고 곤약, 무, 유바(湯葉·두유에 콩가루를 섞어 끓여서 그 표면에 엉긴 얇은 껍질을 걷어 말린 식품), 삶은 계란 등을 넣고 끓인 탕 같은 게 오뎅이다. 오뎅은 어묵 요리의 한 종류다.

어묵의 정식 일본 이름은 ‘가마보코’다. 가마보코는 생선살에 소금을 넣고 간 후 설탕, 미림 등의 조미료를 넣어 모양을 잡아 찌거나, 굽거나, 튀겨 만든 음식이다. 가마보코는 헤이안 시대(平安時代, 794~1185) 말 처음 등장한 음식이다. 대나무 막대기에 원통형으로 어육을 바른 후 구운 모양이 부들 꽃의 이삭과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초기의 가마보코는 오늘날의 지쿠와(竹輪·구운 어묵)와 유사한 모양이었다. 16~17세기 가늘고 긴 널빤지에 으깬 어육을 바르고 익힌 반달 모양을 한 가마보코가 등장한다.

반면 한국의 어묵은 생선 살코기만을 도려내 소량의 식염을 넣고 갈아서 얻은 연육을 기름에 익혀 만든 연제품. 부산어묵의 경우 초창기는 여러가지 생선이 섞인 잡어가 주재료였다. 고기갈이 때 살코기뿐 아니라 뼈도 상당 부분 섞였다. 오리지널 부산 어묵은 어육 함량이 70%에 달한다. 현재의 부산어묵에는 뼈는 완전히 배제하고 살코기만 사용한다. 부산어묵이 전국화된 건 86년 부산 아시안게임 직후부터다.

59년 문을 연 서면의 ‘마라톤’은 닭육수로 맛을 낸다. 서울 영동시장으로 올라간 ‘미나미’는 해운대에 본점이 있는데, 둘 다 부산발 어묵명가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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