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물쇠 있으나 마나…창고 안엔 종이뭉치·액자·병풍 나뒹굴어

  • 서정혁,양승진,황인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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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8-26 07:30  |  수정 2016-08-26 07:30  |  발행일 2016-08-26 제2면
■ 이상화 백부 이일우 고택
기웃거려도 제재하는 사람 없어
유족 “기념관에 유물 보낼 계획”
자물쇠 있으나 마나…창고 안엔 종이뭉치·액자·병풍 나뒹굴어
대구시 중구 서성로 철물골목에 위치한 소남 이일우 고택의 25일 모습. 고택은 본채와 아래채, 창고 등 5개동으로 구성돼있으며 창고 안에는 종이 뭉치들이 방치돼 있다. 황인무기자 him7942@yeongnam.com

25일 찾은 소남 이일우 선생의 고택. 이상화 시인의 백부인 그의 고택은 대구시 중구 서성로 철물골목에 있다. 이상화 선생의 고택은 대구의 대표적 관광상품인 근대골목 투어 코스에 포함될 정도로 유명하지만, 이일우 고택의 위치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문패를 보고 겨우 찾은 고택의 대문은 굳게 잠겨있었다. 담벼락 옆 쪽문을 열고 고택으로 들어서자 마당엔 잡초가 무성했고, 곳곳에 거미줄이 그물처럼 처져 있었다. 도무지 사람이 사는 집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상화 선생의 사촌형제들이 거주할 당시만 해도 이 근처에서 가장 큰 집이었다는 사실이 무색했다.

고택은 본채와 아래채, 창고 등 총 5동으로 구성돼 있었다. 이 중 이상화 선생과 관련된 유물을 보관하는 창고는 2개동으로 모두 6개의 문으로 구성됐다. 각각의 문은 모두 자물쇠가 끊어져있었고, 그 안에는 정리되지 않은 서류와 서신으로 추정되는 종이 뭉치들이 방치돼 있었다.

취재진이 고택 내부로 들어가 창고를 기웃거려도 누구 하나 제지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상화 선생의 유물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는 도모씨(여·87)는 사건 이후에도 고택 아래채에 거주하고 있었다. 사랑채에서 세탁을 하다 나온 도씨는 “자물쇠가 끊어진 지 이미 3~4년은 더 됐다”며 “도둑놈들이 와서 한 짓이지 이 일과 나는 상관도 없고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다.

도씨는 이어 “아래채에서 40년 거주했고, 원래 창고 문을 잠그지 않았는데 이일우 선생이 사망한 뒤 자물쇠를 채웠다”며 “집 안에 남아있는 서류들은 따로 관리한 적이 없다”고 했다.

창고 안에는 이번에 도난된 유물과 같은 책, 액자, 병풍 등이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또 자물쇠 등 기본적인 잠금장치 역시 녹이 슨 데다 훼손돼 있어 누구라도 쉽게 문을 열고 창고에 들어갈 수 있었다. 유족들은 조만간 도씨를 고택에서 내보낼 계획이다.

이일우 선생의 증손자 이재일씨는 “고택 안에 있는 유물들을 달서구에 건립 중인 기념관(이상화 산소 위치) 등으로 서둘러 보낼 계획”이라며 “앞으로 문중의 역사적 가치가 있는 유물들을 모아 대구·경북 시·도민들이 그 정신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서정혁기자 seo1900@yeongnam.com
양승진기자 promotion7@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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