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일보 복간 30년] 오늘은 4·19…복간정신을 되새기겠습니다

  • 백승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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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4-19 07:42  |  수정 2019-04-19 11:46  |  발행일 2019-04-19 제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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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군부의 언론통폐합 조치에 따라 1980년 11월25일 강제폐간된 영남일보는 민주주의 부활과 함께 89년 4월19일 복간했다. 당시 옛 서문로 사옥을 비롯해 대구경북 주요지역에 현수막과 광고탑 등을 설치해 독자들에게 복간 소식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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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는 1980년 신군부의 폭거에 의해 강제폐간된 바 있습니다. 이후 1989년 4월19일, 4·19혁명일에 사회 구석구석 가득했던 민주화 열망을 담아 다시 태어났습니다. 영남일보는 복간 30주년을 맞아 민주화와 정론직필의 복간정신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의미에서 4월19일 오늘 하루 복간 당시의 제호로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2019년 4월19일. 영남일보가 강제폐간의 아픔을 딛고 독자와 재회한 지 30주년을 맞았다. 영남일보 강제폐간은 단순히 한 신문사가 문을 닫은 의미가 아니다. 독재와 폭거의 시대를 생생하게 증언하는 역사다.

1979년 ‘12·12사태’로 실권을 장악한 신군부세력은 언론의 눈과 귀, 입을 틀어막았다. 비상계엄이 선포되면서 계엄군은 6일간 영남일보에 주둔하며 신문을 검열했다. ‘군검필’이란 글자가 연일 선명하게 찍혔다. 사설 없는 영남일보가 발행되기도 했다. 권력의 부당함을 비판한 정치사설을 문제 삼아 전문을 삭제한 것이다. 신군부의 억압에도 영남일보는 굴하지 않았다. 광주 민주화운동이 벌어진 80년 5월18일에는 새벽과 낮 두 차례에 걸쳐 호외를 발행해 급박하게 돌아가는 시국을 전했다. 당시 언론에서는 금기시되었던 ‘김대중’을 과감히 기사화하기도 했다. 영남일보는 신군부의 ‘눈엣가시’였다.

신군부의 탄압은 무지막지했다. 신군부는 80년 7월1일과 8월20일 두 차례에 걸쳐 이종명 편집국장을 포함해 19명의 영남일보 기자를 해직시켰다. 편집국장 해직은 전국에서 유일했다. 암울한 시대의 칼바람은 계속됐고, 결국 영남일보는 언론통폐합 조치에 따라 80년 11월25일자 지령 1만1천499호를 마지막으로 강제폐간됐다. 이때 전국 64개 신문·방송·통신사 중 44개 언론사가 문을 닫거나 경영권을 빼앗겼다.

절필의 순간에도 영남일보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직원들은 뿔뿔이 흩어졌지만 인고의 세월을 보내며 복간의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마침내 87년 민주화의 물결이 전국을 뒤덮었고, 언론에 족쇄를 채웠던 언론기본법이 폐지됐다. 민주주의가 부활하며 강제폐간된 영남일보가 다시 일어섰다. 89년 4월19일, 영남일보는 복간호를 내며 독자 곁으로 돌아왔다. 영남일보가 복간일을 ‘4월19일’로 정한 이유는 자유와 민주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삼겠다는 의지였다. 이는 ‘4·19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영남일보의 ‘복간 정신’이고, 권력에 대해서는 추상같은 회초리를 들겠다는 각오였다. 이는 복간사에도 그대로 드러나 있다. 영남일보 복간사는 ‘우리시대사의 민족적 민주적 자각과 부활의 한 출발점이었던 4·19를 기해 재탄생한다’고 천명하며 ‘민주화의 완전 실현’을 거듭 다짐했다.

복간 이후 영남일보는 정론직필을 지향하며 30년 동안 성역 없는 보도로 자유와 민주의 가치를 지켜 왔다. 무엇보다 지방자치 시대를 맞아 그에 부합하는 지역언론의 자세를 굳게 지켰다. 중앙집권적 사고에 맞서 지역균형발전의 대의와 지역민의 이익을 대변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올해 복간 30주년, 창간 74주년을 맞은 영남일보는 대구경북의 새로운 30년을 준비하며 다시 한 번 도약하려 한다. ‘89년 4월19일’ 그날 그 정신을 마중물 삼아….

독자 여러분의 변함없는 사랑에 감사드린다.

백승운기자 swbac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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