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시대 상주·양주로 불려…고려 충숙왕때 영남·영동서 경상도로

  • 이은경
  • |
  • 입력 2016-02-11   |  발행일 2016-02-11 제3면   |  수정 2016-02-11
■ 경상도 명칭의 유래

경북도는 기원전부터 삼한의 하나인 진한이 자리 잡은 곳이며 삼국을 통일하여 천년 왕조와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신라의 본토였다. 기록에 의하면 경북도는 옛날 한의 땅이었으나 그 뒤 분리되어 남부는 변한 또는 변진이 되고, 북부 대부분은 현 경상북도 낙동강 동부의 지방과 함께 진한으로 되었다.

삼국 및 통일신라시대에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면서 현 경북도 지방에 상·양·강의 3주를 두게 되었으며, 경북지방은 상주·양주(지금의 양산)의 통치에 놓였다. 고려시대 3주 즉 양도의 지방을 병합하여 동남도 부석사라 하고 그 후 차차 변경하여 영남, 영동 혹은 경상 진주, 경상 진능의 도로 부르다가 1314년(충숙왕 1) 경상도란 명칭이 확정됐다.

조선시대 들어서는 1407년(태종 7) 군사상 이유로 낙동강을 경계로 경상좌우도로 나누었다. 임진왜란 때 다시 양도로 갈라 상주에 우도감영을, 경주에 좌도감영을 설치했다가 1594년(선조 26년)에 다시 합쳐 성주 팔거현(지금의 칠곡)에 감영을 두었다. 1596년에는 달성(지금의 대구)으로 옮겼다. 1599년에는 다시 안동으로 옮겼다가, 1601년에 오늘날의 대구로 이전하였다.

갑오개혁 이후 1895년 지방관제를 고쳐 전국을 23부로 구분할 때 경상도에는 대구·안동·진주·동래의 네 관찰부를 두어 모든 군을 각 부에 속하게 했다. 지금의 경북도는 대구부와 안동부에 속한 39군과 동래부의 일부 지역(경주·연일·장기·흥해)을 포함했다. 1896년 전국을 13도로 개편함에 따라 경상좌우도를 경상남북도로 개칭하고, 경북도는 대구에 관찰사를 두었다.

이은경기자 lek@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기획/특집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