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부터 산격동시대…국가경영 인재 나는 배산임수의 명당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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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2-11   |  발행일 2016-02-11 제3면   |  수정 2016-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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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 북구 연암로 40 일대 경북도청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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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도청에서 공무원들이 민원인과 상담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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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도청사는 경상감영에서 1966년 4월1일 산격동으로 옮겨갔다. 경북도청사 당시 공사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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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격동 도청사 이전 이후 1969년 열린 도청교 개통식. <영남일보 DB·경북도 제공>

◆ 근대화의 상징으로 우뚝서다, 산격동 시대

1966년 4월1일 경북도청사는 대구시 북구 연암로 40 일대로 옮겨간다. 이로써 1601년(선조 34)부터 대구 도심에 소재한 경상감영을 터전으로 삼아온 포정동 시절도 막을 내렸다. 경북도청사는 일제에 의한 강제합병이 이뤄진 1910년부터 56년간 포정동 청사에 머물렀다. 당시 산격동에 마련된 경북도청사로의 이전은 왕조체제하에서 수백년째 자리 잡았던 지방관청 자리에서 옮겨갔다는 상징성과 함께 청사건물의 최첨단 설계기법 등으로 근대화의 표상으로 주목받았다.

경북도청사는 1970년 지어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보다 3년 먼저 건립된 근대건축물로 최첨단 설계기법이 동원됐다. 경북도청사는 규모나 형식 면에 있어서 당시 관공서 건축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대구은행 본점, 제일모직 공장 등을 설계한 대구 현대건축 1세대인 정경운 영남대(당시 청구대) 교수가 설계를 맡았다. 경북도청사는 당시 대부분의 공공건축물이 목조 슬레이트 구조였던것과 달리 철근콘크리트 공법을 이용한 파격적 건축기법을 적용했다. 1991년 증축되기까지 지상 4층이던 도청사 건물은 주위 환경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대칭구조로 세워졌고, 중앙현관·계단·현관 캐노피 등 시설에 다양한 근대 건축기법이 도입됐다. 길을 따라 도청에 들어서면 건물의 상부부터 조금씩 다른 각도로 보이다가 전면 광장 입구에 도착하면 건물 전체가 시야에 들어온다. 이른바 ‘시퀀스’ 기법이다. 시퀀스 기법은 국가 주요시설 등에 많이 사용되고 있다.


잡풀·수목 우거진 공동묘지 터
철근콘크리트구조 신청사 건립
당시 관공서 건축 대표작 꼽혀

교육청·경찰청 등 건물 빼곡히
총 근무자 2000명 훌쩍 넘어서
전시 대비한 지하 벙커 시설도

동산 위에 자리한 도지사 공관
전두환 대구 방문때 숙소 사용
1980년대 ‘지방 청와대’ 별칭도


이정호 경북대 교수는 “도청 본청은 균형감과 근사대칭, 배치개념, 건축개념이 유기적으로 조화된 당시 최고의 첨단 디자인"이라고 해석했다.

경북도청이 자리 잡은 부지도 남다르다. 경북도청사는 대구의 남북 중심축인 중앙통을 타고 북쪽 끝 가장 높은 지점에 자리하고 있다. 앞으로는 신천이 흐르고 뒤로는 산이 있다. 대구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형적 배산임수 형태다.

청사가 들어서기 전까지 이곳은 잡풀과 수목으로 우거진 공동묘지 터였다. 내팽개쳐진 땅에 도청사가 자리 잡게 된 것은 육관도사로 잘 알려진 고(故) 손석우 선생 덕분이라고 전해진다. 육관도사는 그의 자전적 소설 ‘터’에서 예전 경북도청 이전 문제가 제기됐을 때 자신이 산격동 부지에 터를 잡아야 한다고 강력히 추천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곳은 경상감사가 배출될 명당이기에 도청이 들어서면 많은 인재가 배출돼 국가 경영에 참여할 것이라며 지사를 설득했다고 적고 있다.

경북도청사의 부지 면적은 38필지 약 13만9천㎡(4만2천49평)이다. 29필지 약 12만7천540㎡(3만8천581평)는 도청 소유이고 나머지는 도교육청과 건강협회 및 국가 명의로 돼 있다. 도청 안에는 대구시가 소유한 1필지 약 2천542㎡(769평, 도로)도 있다. 도청 부지 안에는 40동의 건물이 빼곡하다. 경북도와 도의회, 경북보건환경연구원, 도교육청, 도경찰청, 새마을운동본부 경북지부, 건강관리협회 경북지부, 통계청 경북통계사무소, 경북선관위 등 관공서만 10여개. 이곳에서 근무하는 인원만 해도 2천명을 넘는다. 절반가량이 도청 직원이다.

도청 부지에는 전시 비상 공간인 충무시설도 있다. 1970년에 지어진 충무시설은 개토식 지하 아치형 벙커로 약 2천205㎡(667평)에 약 1천455㎡(440평)의 사무실과 약 750㎡(227평)의 복도가 있다. 300명이 동시에 근무할 수 있다. 뒤편 동산 위에는 도지사 공관이 도청을 내려다보고 자리 잡고 있다. 5천253㎡(1천592평)의 대지에 연면적 782㎡(237평)의 지하 1층~지상 2층 양옥건물로 1980년에 지어졌다. 방이 6개 있는데 1980년대 전두환 전 대통령이 대구에 내려올 때면 숙소로 사용돼 ‘지방 청와대’라 불렸다고 한다.

이은경기자 le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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