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낼게” 대신 “내껀 내가 낼게”… 이젠 진짜 더치페이 시대

  • 박광일
  • |
  • 입력 2016-09-28 07:11  |  수정 2016-09-28 07:13  |  발행일 2016-09-28 제2면
우리사회 어떻게 달라지나
20160928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 시행을 하루 앞둔 27일 ‘란파라치(김영란법+파파라치)’ 강의를 하고 있는 서울 서초구 공익신고총괄본부에서 수강생들이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28일부터 시행되는 이른바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은 복잡한 것 같지만 핵심은 의외로 간단하다. 청탁을 하지도 말고, 공짜 밥과 술을 얻어먹지도 말라는 것이다. 원활한 직무 수행과 사교·의례 등을 위해 식사는 3만원, 선물은 5만원, 경조사비는 10만원까지 허용하지만, 직무와 관련된 사람에게 대가성이나 부정청탁의 소지가 있다면 이마저도 불가능하다. 결국 애매할 경우 ‘더치페이’(각자 내기)를 하는 게 최선이다. 그래서 김영란법은 ‘더치페이법’으로 통한다.

외국선 업무상 식사자리 잘 없어
아무리 친해도 ‘n분의 1’일반적
종업원 팁도 정확하게 나눠 지불

우리도 젊은층은 각자내기 흔해
情·체면중시문화 점차 사라질듯


김영란법 보상금 및 포상금 지급 기준


구분지급기준
보상금국고 환수금액의 4∼30% (최대 30억원)
포상금권익위 보상심의위원회가 정한 기준에
따라 최대 2억원까지 지급
 <자료: 국민권익위원회>



◆‘정(情) 문화’가 더치페이 장벽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더치페이’는 생소한 용어가 아니다. 이미 젊은층에서는 더치페이 문화가 정착된 지 오래다. 대학가 등에선 청년들이 식사나 술자리를 가진 뒤 각자 먹은 만큼 돈을 거둬 계산하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학생 신모씨(여·23)는 “학교에서 친구들끼리 모여서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실 경우, 계산서에 적힌 금액을 ‘n분의 1’로 나눠서 각자 돈을 낸다”며 “누군가 한 명이 돈을 다 내는 것보다 더치페이를 하는 게 서로에게 부담도 적고, 합리적인 방법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김영란법 시행 이전에도 우리나라에 ‘더치페이’ 열풍이 일었던 때가 있었다. 바로 IMF(국제통화기금) 외환 위기가 불어닥친 1990년대 후반이었다. 당시 경기침체의 여파로 지갑이 얇아지자 ‘한턱 문화’가 사라졌다. 각자 먹은 만큼 돈을 내는 더치페이 문화가 직장인들에게까지 확산됐던 것.

하지만 딱 여기까지였다. 더치페이 문화는 우리사회에 더 깊숙이 파고들지 못했다. 아직도 40대 이상 중장년층 중에선 더치페이가 익숙지 않은 사람이 많다. 전문가들은 정(情)과 체면을 중시하는 우리나라의 문화가 더치페이의 확산을 가로막는 장벽이라고 지적했다.

허창덕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개인주의보다는 집단주의가 강하고, 위계질서를 중시한다”며 “여기에 베풂의 문화와 정(情) 문화가 깊이 자리 잡고 있다 보니 40~60대의 경우 아직도 더치페이보단 한 명이 모든 비용을 부담하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외국은 더치페이가 일상

외국의 경우, 더치페이는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진다. 오히려 더치페이를 하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길 정도다. 미국 뉴저지주에 살고 있는 유은정씨(여·28)는 “미국은 한국과 달리 더치페이 문화가 일상적으로 정착돼 있다”고 말했다.

가령, 5명이서 식사를 해서 음식값이 5만원이 나왔다고 가정할 때 한국에선 1명이 계산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미국에선 식당 점원이 계산서를 가져다주면서 5명 모두에게서 카드를 받아간다. 그러면 점원은 1인당 식비 1만원에 팁(식비의 10% 정도)을 포함해서 계산하고 다시 손님에게 가져다준다. 현금으로 계산하는 경우에도 손님들이 팁을 얼마나 줄 것인지를 결정한 뒤 팁을 포함한 금액을 나눠서 점원에게 준다.

호주에 사는 공모씨(여·25)도 “술을 마실 때 자기가 마신 술값은 자기가 낸다. 한국과 달리 술을 잔에 따라서 나눠먹지 않는다. 1인 1병의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며 “아무리 친밀한 사이라도 n분의 1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업무적인 관계에서는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특이한 점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업무상 식사를 하는 경우가 흔치 않다는 점이다. 해외출장이 잦은 장모씨(41)는 “우리나라는 친해지기 위해 밥을 먹는데, 외국은 어느 정도 친해져야 식사를 한다”며 “업무적인 관계에도 더치페이가 기본이지만, 가끔 초청을 받을 경우 초청한 쪽에서 비용을 부담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청렴 위해 더치페이 확산돼야

전문가들과 시민사회단체는 이번 김영란법 시행을 통해 우리사회에 더치페이 문화가 좀 더 확산되고 정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고 있다. 다만 법 시행 이후에도 더치페이가 완전히 자리 잡는 데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조광현 대구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우리사회가 바람직하게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해주는 법이 김영란법”이라며 “당장은 익숙하지 않겠지만 의식하고 조심하면서 실천하다 보면 단기간에 더치페이 문화도 정착할 수 있을 것이다. 청탁하지 않고 청렴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고, 우리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창덕 교수는 “김영란법이 시행된다고 해서 큰 변화가 생긴다는 것은 큰 착각”이라며 “지금의 20~30대가 훗날 기성세대가 될 때쯤 더치페이가 확실히 자리 잡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광일기자 park85@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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