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기자의 푸드로드] 경남 남해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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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2-10   |  발행일 2017-02-10 제33면   |  수정 2017-02-10
봄바다, 옥빛 꽃 채비
20170210
한국 죽방멸치의 고향인 남해군 창선면 창선교 아래 물살 빠른 지족해협권에는 무려 23군데의 죽방렴이 설치돼 있다. 지금은 금어기라서 멸치를 잡지 못하지만 오는 4월1일부터 멸치잡이를 위한 어번기가 본격화된다.

해변 언덕에 벤치처럼 앉아 있다. 주홍색 기와와 흰색 벽이 인상적인 이국적 집 한 채. 그림 같은 그 집을 아지랑이처럼 감싸주는 코발트 블루 바다. 그런 집도 늘 피어있는 하나의 ‘꽃’이다. ‘상록화(常綠花)’ 같은. 건축법상 화이트와 블루밖에 허락되지 않는 그리스의 세계적인 섬 산토리니 못지않은 집들이 남해군에도 군락 지어 피어 있다.

남해군 지도를 펼쳤다. 꼭 나비·호두 같다. 섬의 중심부를 남북으로 파고든 앵강·강진만 때문인지 바람 없는 날엔 바다가 너무 착해진다. 여기 파도는 꼭 ‘반려견’처럼 데리고 놀고 싶은 맘이 들 정도로 차분하고 고분고분하다. 동네 실개천 같다 할까.

이 섬엔 모두 26군데의 이런저런 관광지가 포진해 있다. 곱씹어보니 요즘 대세로 불리는 통영·여수군보다 남해군이 더 아기자기한 절경을 숨겨놓은 것 같다. 발전 잠재력 때문인지 상당한 수의 펜션, 리조트, 농가형 민박집 등이 산재한다. 민박 394개를 포함해 모두 800개에 육박했다. 상대적으로 그림이 좋은 상주·남·삼동면에 쏠려 있다. 관광객은 묻지마 남해 금산이겠지만 불시에 찾는 사찰투어객 때문에 고즈넉함을 즐기려는 젊은 여행가들은 삼동면 동천리 독일마을과 가천 다랭이마을 쪽으로 많이 간다.

◆남해에서 만난 윤슬

남해고속도로 사천 나들목을 나와 남해군으로 가려면 늑도, 초양도, 모개도 등 섬 3개를 징검돌처럼 건너야 된다. 삼천포와 남해군 창선면을 강원도 정선 섶다리처럼 연결하는 3.4㎞ 길이의 창선·삼천포대교. 무려 교량 5개(삼천포·초양·늑도·창선·단항교)가 전동차처럼 붙어 있다. 국내에서 단위 면적당 가장 많은 수의 다리가 몰려있다.

한라산·지리산·설악산 고봉은 아직 한겨울이지만 남해의 양지녘은 봄기운이 완연하다. 양광(陽光) 좋은 언덕에 앉아 막막한 시선으로 바다를 바라본다. 겨울에서 봄으로 변속 중인 남해의 훈풍. 이것도 봄의 전령사다. 그놈한테 갇히다 보면 다들 ‘잠시 시인’이 된다. 그 시흥을 따라가면 남해의 시편을 만나게 된다. 김춘수 시인의 연작시 ‘처용단장’의 첫 수, 유치환 시인의 ‘깃발’, 그리고 박재삼 시인의 ‘아득하면 되리라’와 ‘천년의 바람’ 등이다.

창선면으로 넘어가기 전 사천시 늑도동 초양마을회관 앞에 차를 잠시 세웠다. 거기서 ‘찬란하다’는 표현으로는 뭔가 부족한 남해 버전의 ‘윤슬’을 보았다. 강물에 돋아나는 물비늘과는 차원이 다르다. 윤슬은 ‘햇살에 비친 바다의 수광(水光)’을 이르는 순우리말. 윤슬은 남해의 바다가 우리 인간에게 주는 봄소식 1탄이다. 사철 다 좋다지만 그래도 봄날의 윤슬이 압권이다.

평생을 바다에서 보낸 한 어르신이 부스스한 표정으로 담장 너머로 내다보며 이방인 같은 나에게 아는 척을 한다. “검푸른 바다색이 옥빛으로 변하는 걸 보니 봄이 오긴 왔나 보지.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우린 바람과 물색만 봐도 계절을 단번에 알아.”

담장 곁 동백 꽃망울이 터지기 직전의 아기 오줌보 같다. 언덕배기의 상록수 잎도 잔뜩 수액을 품고 있어 기름칠해 놓은 듯 반들반들하다.

창선면에서 남해군 깊숙한 해변으로 가려면 다리를 하나 더 건너야 된다. 창선교다. 일명 ‘죽방멸치대교’. 여수 돌산대교 아래 수로만큼이나 물살이 빠른 ‘지족해협’이 다리 아래에 누워 있다. 여기가 바로 대한민국 죽방멸치의 메카다. ‘죽방렴(竹防廉)’이란 원시적 어구를 갖고 물목에서 멸치를 잡는데, 그물로 잡은 여느 멸치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비싸다. 곳곳이 멸치 관련 식당과 가게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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