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재래종 흑돼지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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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1-10   |  발행일 2017-11-10 제34면   |  수정 2017-11-10
지방-살코기 경계 분명한 재래종 흑돼지
갈색 껍질과 구웠을 때 탱탱한 질감 특징
건두부·순대와 내는 혼례 음식 ‘고기반’
초간장 곁들인‘돔베 추렴’‘작빼국’ 일품
제주도 재래종 흑돼지
몸국과 함께 나오던 잔치음식의 하나인 ‘돼지반’. 수애·두부·돼지고기가 얹혀진다.

일반 흑돼지와 확연히 다른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재래종 흑돼지 사육장을 볼 수 있었다. 제주시 한경면에 있는 ‘연리지가든’ 전용 축사다. 주인 김응도씨는 제주돼지의 산증인 중 한 명이다. 수십년째 엄선된 재래종 돼지만 키우고 있다. 여느 관광식당에 비해 아주 허름한 축사 옆 식당으로 가면 가장 단순하게 구워진 흑돼지를 먹을 수 있다. 개체수를 조절하고 있기 때문에 예약을 해야 한다.

제주의 흑돼지는 육지로 나가도 육지 돼지는 제주도로 들어갈 수 없다. 그래서 제주 흑돼지 몸값이 높다. 재래종 흑돼지는 마치 소고기처럼 지방과 살코기의 경계가 분명하다. 구웠을 때도 탱탱함을 유지하고 검은털이 박힌 것은 물론이고 껍질도 약간 갈색을 띤다. 재래종에 가까울수록 몸집이 작고 귀가 쫑긋 서있다.

보통 서양 비육돈이 180일 정도의 사육기간에 120㎏ 정도로 성장한다. 이에 반해 재래종 흑돼지는 다 자란 성돈이 고작 80㎏ 정도에 불과하다. 이나마도 300일에서 길면 400일 정도는 길러야 한다. 심지어는 성돈이 60㎏ 정도가 될까말까 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경제성의 논리로 본다면 경쟁력이 없다. 그래서 한동안 제주에서는 재래종 흑돼지가 사라졌다. 다행히 2015년 천연기념물 550호로 지정된다. 현재 제주축산진흥원에서 260두 정도를 한정 사육 중이다.

제주의 돼지고기는 인간의 통과의례 가운데 결혼을 상징하는 행사용 음식으로서 축제의 의미를 갖는다. 혼례를 진행하면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이 돼지를 추렴하는 일이다. 마을마다 ‘도감’이라는 원로가 고기 배분까지 관장한다. 도감은 혼주보다도 더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하객에겐 돼지고기 석 점과 마른 두부, 전통 수애(제주순대) 한 점씩을 한 접시에 올려 나눠준다. 이때 나눠주는 돼지고기를 ‘고기반’이라 한다. 써는 방법이 특이하다. 수직으로 썰지 않고 비스듬히 포를 뜨듯이 썰어 각 부위가 넓적하게 보여 얇지만 훨씬 풍성하게 보이도록 했다.

돼지를 이용한 음식 중 전국적으로 인기를 얻은 것이 ‘돔베 추렴’. 이걸 보쌈 수육과 비교하는데 그것과 다르다. 보쌈은 자극적인 양념 때문에 돼지고기가 주가 되는 요리라고 보기는 힘들다. 돔베 추렴은 초간장을 곁들이는데 청장에 물을 약간 섞고 깨소금, 식초 등을 넣어 새콤한 맛이 고기를 더 당기게 한다.

또한 고기국수만큼이나 유명한 돼지고기음식이 바로 ‘고사리육개장’이다. 돼지고기를 손으로 으깨질 만큼 삶아서 으깬 후 고사리도 푹 삶아서 으깨고 고기와 함께 다진 마늘, 후추, 다진 생강과 메밀가루를 넣고 잘 섞어 육수에 넣고 푹 끓여내 청장으로 간한다. 메밀가루의 전분기가 국물을 걸쭉하게 만들고 돼지국물의 느끼함도 잡아준다.

그밖에 돼지를 이용한 음식 가운데 독특한 것은 ‘작빼국’과 ‘아강발국’ 정도가 있다. 작빼국은 특유의 돼지갈비국. 돼지갈비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핏물을 빼고 물을 넉넉히 부어 오래 끓이는데 갈비맛이 우러나오면 미역과 다진 마늘을 넣고 청장으로 간해서 담아내면 된다. 아강발국은 민간요법으로 산모들의 젖을 잘 나오게 하기 위해 돼지족을 끓여 먹은 것과 흡사하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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