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달구벌 문예대전] 대상作 ‘3·1운동의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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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6-05   |  발행일 2019-06-05 제24면   |  수정 2019-06-05

엄마는 일을 나가시기 전, 항상 수제비 반죽을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두셨다. 들고 나는 시간이 제각각인 가족들이 반죽만 뜯어 우르르 끓여 먹도록 하신 것이다. 도저히 섞일 것 같지 않은 물과 가루는 딱딱한 부스러기를 만들어내며 겨루다 종내에는 말랑거리는 덩어리가 되곤 했다.

나는 그 과정을 숨도 쉬지 않고 바라보았다. 내 굽은 손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그 신기한 광경은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 마술쇼 같았다. 날 때부터 사지가 뒤틀린 지체장애인으로 태어난 나는 엄마처럼 밀가루 반죽을 만들 수 없었다. 그래서 밀가루 대신 책을 집어 들었다.

글이 내 마음에 부딪쳐와 하나가 될 수 없을 것처럼 엉기다가 마침내 내 영혼과 연결되어 덩어리지는 과정이 좋았다. 그 순간엔 나도 엄마처럼 의미 있는 반죽을 만들어내는 사람 같았다. 엄마의 반죽을 통해 계속 노력하다보면 의미 없는 덩어리도 숙성된 반죽으로 완성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몸이 불편한 것은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마음을 올곧게 가꾸어 완성시키는 것은 노력으로 가능하다. 그래서 책을 꼭꼭 씹어 삼키곤 했다. 어떤 책은 쉽게 한 덩어리가 되고, 어떤 책은 오래도록 치대야 내게 맞게 뭉그러졌다.

그렇게 인생을 빚기 위해 매일 여러 도서관을 돌며 책을 읽었다. 그러다가 자주 가는 집 근처 도서관에서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강의를 듣게 되었다. 강사님은 대구 곳곳에 있는 3·1운동 관련 문화유산과 3·1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알기 쉽게 설명해주셨다.

강의를 통해 교과서에서만 보았던 3·1운동은 내 인생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주었다. 3·1운동이라는 역사적 사실은 내 생각을 뛰어넘는 의미와 방향을 제시하고 있었다. 그날, 나는 집이 아니라 3·1운동 만세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일본순사들의 눈을 피해 3·1운동 장소로 몰래 이동하던 길에는 과거 대구의 모습이 사진으로 걸려있었다. 옛 대구와 현재의 대구가 한눈에 들어오는 90여개의 계단을 천천히 오르자 가슴이 뭉클했다.

3·1운동은 혹독한 식민통치하에서 독립운동의 어려움을 인정하고, 국민적 지도자나 동원조직체가 취약한 국내 여건과 지원세력 하나 없는 고립무원의 국제환경을 살펴 대한민국임시정부를 탄생시키고, 1948년 대한민국제헌헌법의 정신적 기초가 되었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그간의 어려움과 좌절을 떨치고 일어날 수 있었다. 3·1운동을 통해 민족의 함성과 엄청난 에너지를 체험하고, 대동단결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고 불의 앞에 용감히 맞설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만세길에서 내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다.

집에 돌아가 오랜만에 신발장에서 한축이 닳은 운동화를 꺼냈다. 다리를 끌면서 걷느라 신발마다 한쪽 면이 닳아있었다. 그렇게 걷는 나를 두세 번 돌아보던 사람들의 눈빛이 무서워 작은 방에 나 자신을 가둔 채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뒤틀리고 굽은 내 몸을 받아들이고 주어진 환경을 디딤돌 삼아 최선을 다해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그러자 다시 대문을 열 수 있을 만큼의 용기가 생겼다. 꾸준한 재활을 위해 병원도 다니고, 직장도 찾아보기로 했다.

태극기를 쥐고 대한독립만세를 부를 때 유관순의 마음도 이렇게 떨렸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문 밖에 펼쳐진 다시 만난 세상은 환하고 아름다웠다. 동전의 양면처럼 상처와 고통을 주기도 했지만, 아름다움과 감동을 주는 것도 역시 세상이었다.

방 안에 갇혀 그저 내면을 바르게 세우고자 했던 나는 조금씩 세상에 도전하고, 넘어지고, 자라기를 반복했다. 그러자 엄마가 만드신 토실토실한 반죽처럼 나도 세상과 어울려 나의 삶을 부풀려갈 수 있었다.

내 삶이 그렇게 의미 있는 반죽으로 바뀌는 모습을 보면서 지금의 한국이 떠올랐다. 유행하는 신조어 중에 3포 세대라는 말이 있다. 3포 세대는 불안한 일자리와 높은 집 값 등의 사회적 압박 때문에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젊은이들을 이르는 말이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몹시 충격을 받았다. 사는 것이 어려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 서글프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또 다른 단어가 생겨났다. 바로 헬조선이었다.

헬조선은 한국 사회의 부조리한 모습을 지옥에 비유한 신조어다. 한국의 옛 명칭인 조선에 지옥이라는 영어단어를 붙인 말로 ‘지옥 같은 한국 사회’라는 뜻이다. 이 단어들을 깊이 생각하면 암담하기 그지없다. 지금, 조선의 청년들은 지옥에서 삶의 중요한 것들을 포기하며 산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불편한 몸을 이끌고 살아간다는 것 자체에 매일 절망하고 좌절하던 차에 그런 신조어들을 처음 들었을 땐 눈앞이 깜깜해지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과 다름없이 나만의 삶을 꾸려가려고 아등바등하지 말고 다 포기하는 것이 오히려 현명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런 절망의 시대가 오래전에도 있었다. 바로 일제강점기였다. 일제의 식민지배 아래 민족문화는 말살되고, 국운이 기우는 만큼 새로운 희망이 간절하던 시대였다.

우리 선조들은 그 암흑의 시절을 3·1운동으로 이겨냈다. 어린 소녀의 손에 들린 태극기는 두려움 없이 하늘 위로 나부꼈다. 그 손짓이 모여 광복이라는 새로운 시대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나 역시 3·1 운동의 정신을 이어받기 위해 노력하면서 내 삶을 다시 세울 수 있었다. 위기는 기회라는 말은 진실이었다. 만해 한용운은 조선청년에게 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행복의 과는 곤란의 인에서 난다. 현재의 향복(享福)은 과거인의 피와 땀의 대가다. 그렇다면 후대 아손에게 향복의 유산을 끼쳐주기 위하여 피와 땀을 흘리게 되는 현대의 조선청년은 행운아다’

이는 일제강점기를 살고 있는 조선 청년들이 불운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오히려 난세에 태어나 역경을 이겨낼 기회가 생긴 것이니 행운아라는 격려의 의미를 담고 있다.

헬조선을 살아가는 삼포세대에게 선조들은 일제강점기 속 3·1운동이라는 본을 보였다. 포기하거나 좌절하는 것이 당연한 시대를 3·1운동으로 극복해나갔다.

우리가 지금 현재의 어려움을 단숨에 피해갈 수는 없다. 그러나 현실을 인지하고 이겨내기 위하여 노력할 때 그 마음이 모여 3·1 운동과 같은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낼 수는 있다. 힘든 시기를 잘 이겨내면 보기 좋게 완성된 반죽처럼 시대의 사명을 완성할 수 있는 것이다.

제국주의 아래에서도 지속적으로 광복을 꿈꿨던 3·1운동의 세대처럼 우리도 어려운 형편과 조건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꾸리는 일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일생을 함께 할 친구를 사귀고, 이루고 싶은 꿈을 위해 노력하는 것조차 사치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

사람의 인생에서 돈이란 무척 중요한 것이지만 그것이 우리의 전부가 될 수는 없고, 되어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포기가 아니라 용기다. 어려운 시기를 슬기롭게 넘기려 노력할 때 그 노력들이 강이 되어 흐르고, 바다로 합쳐질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헬조선의 땅이 아니라 3·1운동을 이어받아 완성해가는 땅이다. 대구는 어린 학생들조차 독립을 위해 불길 속으로 뛰어들던 민족의 지혜롭고 뜨거운 피가 흐르는 땅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3포세대가 아니라 포기를 모르는 세대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지금 이 시기를 잘 다스려 더 큰 물줄기를 만든다면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다. 우리에게 그럴만한 기회가 주어졌다. 사방을 둘러싼 위협에도 포기하지 않고 이루어낸 3·1 운동이 바로 그 증거다.

우리는 이제 3·1 운동이 책 속의 글자가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유산이 되도록 완성해야 한다. 그러한 본을 다음 세대에게 유산으로 물려줄 세대가 바로 우리라는 것을 기억했으면 한다. 선조들이 우리에게 남긴 정신적 유산인 3·1운동을 현대에도 완성해갈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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