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 현장도 52시간 해법 ‘골머리’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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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7-16   |  발행일 2018-07-16 제23면   |  수정 2018-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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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부터 차례대로 영화 ‘강철비’ ‘독전’ ‘레슬러’ 촬영현장.

방송·영화계가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으로 비상이 걸렸다. 개정된 근로기준법에 따라 영화·드라마·방송 등에 해당하는 ‘영상·오디오 기록물 제작 및 배급업’과 ‘방송업’이 특례 업종에서 제외됨으로써 이들 산업의 사업장도 1주일에 68시간을 초과해 근무할 수 없게 됐다. 영화·방송 관계자들은 “68시간도 모자라는 판국에 52시간은 어떻게 맞추느냐”며 볼멘소리다. 야근과 연장 근로가 많고 업무 주기가 일정치 않은 업종의 특수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반응이다.

◆지상파 3사, 드라마 회당 방송시간 60분 합의

방송사는 그나마 1년간의 유예기간을 확보한 것에 안도하며 대책 마련에 나섰다. 그 일환으로 지난 1일부터 평일 밤 10시 드라마의 방송시간을 60분(광고 제외)에 맞춰 편성하고 있다. 새 근로기준법 시행에 발맞춘 행보지만 광고 시장 위축에 따른 지상파 간 출혈 경쟁을 막아보자는 의도도 깔려 있다. 지상파 3사는 앞서 2013년 회당 방송시간을 광고 포함 67분으로 줄이는 데 합의한 바 있다.


제작비 상승 불가피…저예산 작품 비상
영화·방송 관계자 “현장 특수성 고려 無”
공중파 드라마 60분 편성 등 자구책 마련
스태프의 근로자성 인정 기준도 불명확


여하튼 드라마 제작 시스템의 체질변화는 불가피해졌다. 장기적으로 ‘사전제작’ 혹은 ‘반(半)사전제작’ 시스템이 정착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정성효 KBS 드라마센터장은 “주 68시간 도입을 대비한 시뮬레이션을 해보면 이제 ‘쪽대본’은 절대 안 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며 “조속한 대본 집필과 기존의 현장 위주 접근이 아닌 프로듀싱과 시스템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원석 MBC 드라마본부장은 “우선 하반기 들어가는 드라마들의 촬영 일정을 앞당기고 대본을 가능한 한 빨리 뽑아내 촬영을 무사히 마치는 게 급선무”라며 “그 과정에서 밤샘 촬영을 줄이고 스태프에게 휴식 시간을 보장하는 등 세부 안을 노조와 협의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예능 프로그램 역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SBS 한 관계자는 “근무시간이 줄어든 만큼 인력을 늘리는 수밖에 없다”며 “드라마뿐만 아니라 예능까지 B팀이나 대체인력이 동원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시사교양 프로그램의 경우에도 68시간 근무를 맞추기가 사실 빠듯하다. 하지만 새 정책에 보폭을 맞춰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영화계

정작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영화계다. 그간 영화산업이 특례업종에 포함되어 있을 때는 근로자 대표와 합의되면 현장에서 연장근무가 가능했다. 그만큼 휴게시간이 주어지고 연장근무 수당 또한 근로자에게 지급됐다. 하지만 근로시간이 엄격하게 지켜져야 하는 지금은 근로자 대표와 연장근무를 합의해도, 연장근무 수당을 지급해도 노동시간은 하루 8시간, 주 52시간을 넘어선 안 된다. 그럴 경우 촬영 준비 시간이 오래 걸리는 사극이나 블록버스터 장르는 현장 스태프가 두 파트로 나뉘어 촬영이 진행될 수도 있다. 사실 촬영 현장의 ‘주 52시간 근무제’는 한국에만 있는 법이다. 할리우드는 추가수당과 휴게시간을 조건으로 한 연장근무가 가능해 촬영 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용하고 있다.

정해진 시간 안에 목표 분량을 찍어야 하는 만큼 선택과 집중을 요하게 된다. 즉 시간의 누수를 없애는 게 관건이다. 영화감독 C씨는 “장단점이 있다. 치밀하게 준비하고 계산해야 하는 만큼 집중력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는 시간과 비용의 절감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업종 특성상 무엇이 필요하고, 필요하지 않은지를 정확히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현장에서 새로운 시도는 앞으로 불가능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영화계는 주 52시간을 지키려면 촬영 회차도, 제작비도 덩달아 늘어나게 된다는 점을 우려한다. 이는 영화의 다양성을 저해하는 요인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 제작사의 한 관계자는 “이제 예산이 낮은 작품들은 만들어지기 어려울 것 같다. 앞으로 제작비 10~20% 상승은 당연할 텐데 부담을 크게 느끼지 않는 대작과 달리, 중·저예산의 영화들은 직접적으로 피부에 와닿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가이드라인 시급

영화·방송 제작 현장의 기술 스태프들은 ‘주 52시간 근무제’를 적용받는 근로자일까. 현재로서는 근로자로 볼 것인지, 아니면 프리랜서로 볼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 절대 다수가 도급이나 업무 위탁 계약을 맺고 일하는 스태프이기 때문에 형식적으로는 개인사업자로 구분되어 있다. 이들이 실질적으로 제작사나 방송사의 통제 아래 있는지의 근로자성 인정 여부가 핵심이다. 한 영화 관계자는 “영화 프로덕션의 특성상 용역부터 지분계약까지 다양한 계약관계가 병존하는데 이를 무시하고 모든 스태프를 상시 근로자로 인정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 역시 개정된 근로기준법 시행으로 영화계의 고민이 많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고용노동부 측은 “콘텐츠 산업의 경우, 올 하반기까지 제작 노동환경의 실태를 조사해 노동시간 단축 등 제도 개선을 적용할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윤용섭기자 hhhhama21@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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