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낼수록 깊어지는 달항아리의 고요함…양성훈 작가 개인전 ‘담’

  • 권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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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10-19 14:28  |  발행일 2026-10-19
20여 년간 명암·윤곽 덜어내며 백자 본연의 느낌 탐구
청화백자 등으로 소재 확장…은은한 색채와 세월의 흔적 담아
지난 13일 갤러리동원 앞산에서 만난 양성훈 작가는 달항아리는 잔잔한 호수 같은 매력이 있다고 말했다. 권혁준기자

지난 13일 갤러리동원 앞산에서 만난 양성훈 작가는 "달항아리는 잔잔한 호수 같은 매력이 있다"고 말했다. 권혁준기자

아무런 무늬도 없는 둥근 달항아리를 바라보고 있으면 잔잔한 호숫가에 앉은 듯 마음이 차분해진다. 보름달을 닮은 항아리는 비어 있는 듯하면서도 묘한 충만감을 전한다. 백자를 그린 작품에서는 은은한 붉은빛과 푸른빛이 감돌며 저마다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언뜻 하얗게만 보이던 항아리가 여러 색을 품고 있는 셈이다. 반면 청화백자를 그린 작품에서는 흰 도자기 위의 푸른 문양이 시선을 끈다. 달항아리의 고요한 화면에 작은 변화를 더한 듯하다.


양성훈 작가의 초대 개인전 '淡(담)'이 오는 24일까지 갤러리동원 앞산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는 달항아리를 비롯해 주병, 청화백자 등 다양한 조선백자를 소재로 한 작품을 선보인다.


양 작가가 달항아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20여 년 전이다. 이전까지 다른 작업을 해오던 그는 아무런 장식이 없는 커다란 백자의 모습에 매료됐다.


지난 13일 갤러리동원 앞산에서 만난 양 작가는 "그림을 그리다 보면 자꾸 무언가를 채워 넣고 싶고 더 그리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그런데 달항아리는 정말 욕심이 하나도 없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며 "잔잔한 호수처럼 아무것도 없는데, 비어 있으면서도 채워져 있는 듯한 느낌에 빠졌다"고 말했다.


양성훈 작. 갤러리동원 앞산 제공

양성훈 작. 갤러리동원 앞산 제공

초기에는 항아리의 형태와 명암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하지만 대상을 사실적으로 재현할수록 처음 달항아리에서 느꼈던 감정은 오히려 사라졌다. 이후 명암 대비를 줄이고 윤곽을 흐리게 하면서 불필요한 묘사를 하나씩 덜어내기 시작했다. 양 작가는 "너무 많이 빼면 항아리 같지 않고, 다시 채워도 안 된다. 그 과정을 아직도 계속 반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달항아리뿐 아니라 청화백자를 소재로 한 작품도 선보인다. 작가는 청화백자의 푸른 문양을 잔잔한 호수에 작은 돌 하나를 던진 모습에 비유했다. 그는 "달항아리를 잔잔한 호수 같다고 했는데, 청화를 보니까 그 호수에 정말 작은 돌 하나를 탁 던진 느낌이었다"며 "하나씩 그리기 시작했는데 마음에 들어 이번에는 청화 작업을 많이 선보이게 됐다"고 말했다.


백자의 미묘한 색채는 여러 색을 얇게 겹쳐 칠하는 방식으로 표현한다. 양 작가는 "같은 항아리라도 볼 때마다 색깔이 조금씩 다르게 느껴진다"며 "처음부터 어떤 색을 내겠다고 정하지 않는다. 여러 색을 얇게 겹쳐 칠하다가 어느 순간 마음에 드는 색이 나오면 거기서 작업을 끝낸다"고 말했다.


양 작가의 회화에는 오래된 백자의 균열과 얼룩, 가마에서 굽는 과정에 생긴 흔적도 남아 있다. 도자기에 스민 시간과 기억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양 작가는 "최근에 만들어진 항아리보다 오래된 조선백자를 그린다"며 "균열 같은 것도 최소한으로 그리지만 오래된 항아리라는 것을 느낄 수 있을 만큼은 남겨둔다"고 설명했다.


양 작가는 전통 도자기를 현대 회화로 옮기는 작업에 특별한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전통을 계승하거나 알리겠다는 목적보다 자신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대상을 오랫동안 탐구하는 데 가깝다.


그는 "전통을 고집하려는 것도 아니고 전통적인 것을 세계적으로 알리고 싶다는 생각도 없다"며 "그냥 내가 받았던 느낌이 있고, 전통 도자기가 나에게 많은 영감을 줬기 때문에 그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양성훈 작. 갤러리동원 앞산 제공

양성훈 작. 갤러리동원 앞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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