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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성] 영수(領袖)
우리글의 많은 단어가 그렇듯 산림(山林)도 복수의 뜻을 지닌다. 국어사전엔 ①산과 숲 ②학식과 덕이 높으나 벼슬하지 않고 숨어 지내는 선비 ③절에서 불법을 공부하는 모임으로 적시돼 있다. 산림을 은둔하는 선비로 풀이했지만 실제 조선시대의 산림은 정치에 참여한 학파의 우두머리, 즉 영수였다. 산림은 학문적 권위와 사림(士林) 세력을 바탕으로 학계와 정계를 넘나들며 국정의 기본방향을 설계했다. 왕의 신임을 얻은 산림은 정치판의 얼개를 짜고 사림의 여론인 청의(淸議)를 공론화해 붕당정치를 이끌었다.영수의 어원을 산림이 득세한 조선 중기에서 찾기도 한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당파의 우두머리를 영수로 묘사한 대목이 여러 군데 나온다. 송시열을 노론의 영수로, 윤증을 소론의 영수로 지칭했다. 영수(領袖)를 글자 그대로 옮기면 옷깃과 소매다. 때 잘 묻고 잘 닳고 남의 눈에 잘 띄는 부위란 의미로 우두머리란 뜻이다. 대통령(大統領)은 큰 줄기의 옷깃이니 우두머리 중 우두머리란 함의가 내재돼 있다. 하지만 영수는 권위주의 냄새를 풍기는 시대회귀적 언어이긴 하다.협치의 시금석으로 여겨졌던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영수회담은 기대에 미치진 못했다. 의료 개혁을 제외하곤 평행선을 달렸다. 채 상병 특검법 등 여러 현안에 대한 양측의 간극이 크다는 방증이다. 그렇더라도 소통의 물꼬를 틔웠다는 의미는 있다. 정치 복원과 협치 구현은 이루어질까. 영수의 역할이 더 막중해졌다. 박규완 논설위원
[돌직구 핵직구] 윤석열에게 약포 정탁이 없었다
지난달 29일 대선 2년 만에 처음 열린 영수 회담은 윤석열 대통령에겐 굴욕적이었다. 환담 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퇴장할 것은 아니고…"라며 취재진을 다시 불러 모았다. 이어 장장 15분간 A4용지 10장 분량의 원고를 읽으며 무려 13가지 사항을 요구했다. 윤 대통령은 굳은 표정으로 이 대표의 발언을 묵묵히 들어야 했다. 4·10 총선 결과, 윤 대통령은 스스로 언급했듯이 '식물대통령'의 위기에 처했다. 이제 대한민국 권력서열 1위는 윤석열이 아니라 이재명으로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적어도 국내 정치 측면에서 보면 이재명은 192석의 야권을 거느리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게 됐다.임박한 국회의장, 국무총리 인선도 이재명의 마음먹기에 달렸다. 대통령을 제외한 국무위원, 헌재 재판관, 법관, 감사원장 등 법률이 정한 모든 공무원은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150석)의 찬성으로 탄핵 의결할 수 있다. 당장 김홍일 방통위원장부터 탄핵하겠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야권은 아예 방송법을 고쳐 언론장악에 나서겠다는 움직임이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심지어 개혁신당까지 손을 잡고 22대 국회 개원 즉시 방송법을 개정하겠다고 예고했다.사실 이번 야권 승리의 '일등공신'은 MBC였다. 김건희 여사의 문제를 시종일관 부각시켰고, 이종섭 대사의 출국금지 사실을 특종 보도해 총선의 판을 뒤집었다. 해프닝에 불과한 대통령의 '대파 논란'을 이슈화시킨 곳도 바로 MBC였다. 이 MBC가 오는 8월 경영진 임기 만료를 앞두고 총선승리의 대가를 요구하며 경영진 유임이라는 청구서를 내밀고 있는 것이다. 순직 해병 채 상병 사건 특검법은 자칫 윤 대통령의 탄핵에까지 이어질 수 있는 폭발력 있는 사안이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여권에서 의원 8명만 이탈해도 특검법이 가결될 수 있다. 향후 3년간 대한민국 정계는 이재명이란 '여의도 대통령'이 좌지우지하는, 한 치 앞도 모르는 '시계제로'의 상황이 연출될 것이다.지난주 1박 2일 동안 경북 예천의 역사문화유적지를 탐방할 기회가 있었다. 예천의 도정서원(道正書院)은 임진왜란 당시 좌의정을 지낸 약포 정탁선생을 기리기 위해 유림과 후손들이 세운 곳이었다. 약포 정탁은 '약초를 심은 밭'이란 그의 호처럼 영웅 이순신 장군을 구한 인물이다. 정유재란 직전 선조의 명을 따르지 않은 이순신은 서인들의 공격으로 투옥돼 처형될 위기에 처한다. 이때 정탁은 72세 노구의 병석에서 '논구이순신차(論救李舜臣箚)'라는 상소문을 올려 이순신을 옥에서 구하게 된다. 가히 지부상소(持斧上疏), 즉 상소한 내용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자신의 머리를 도끼로 내려치라는, 목숨을 건 상소를 실천한 충신이다.이순신 장군은 그의 난중일기에서 자신을 천거한 사람은 서애 류성룡이요, 자신을 구한 사람은 약포 정탁이라고 적었다. 약포 선생의 용기 있는 상소문이 아니었다면 이순신의 명량대첩도, 조선도 없었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준석을 내치고 나경원과 안철수를 배척했을 때 여권에는 '친윤'들만 즐비했다. 이종섭 대사를 임명할 때 외교부 장관이 결재 상신을 거부했다면, 보건복지부 장관이 의대 증원 2천명은 무리하다고 반대했다면, 대통령에게 대파를 들지 말라고 직언한 참모가 있었다면 총선 결과는 사뭇 달라졌을 것이다. 목숨을 건 도끼 상소로 정탁 선생이 이순신과 이 나라를 구한 것처럼. 강효상 (법무법인 대륙아주 고문)강효상 (법무법인 대륙아주 고문)
[길형식의 길] 그날의 아픈 기억, 상인동 가스폭발 사고
1995년 4월28일 오전 7시52분. 천지를 뒤흔들 정도의 굉음과 함께 커다란 불기둥이 대구 상인네거리를 집어삼켰다. 바로 상인동 가스폭발 사고다. 당시 문민정부 들어 유독 대형참사가 연달아 발생했는데, 불과 4개월 전에는 서울 마포구 아현동에서 도시 가스폭발 사고가 있었다. 철저한 인재였다. 주먹구구식 허술한 도시가스 관리체계와 경험 없는 건설사의 공사장 관리가 빚어낸 어처구니없는 참사였다.사고 현장은 처참했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이 폭발 사고로 사망 101명, 부상 202명 등 총 300여 명의 사상자를 냈고, 건물 80여 채와 차량 150대 이상이 파손되는 피해가 발생했다. 등교 중에 사망한 영남중 학생 42명과 교사 1명의 사연은 모두를 눈물바다로 만들기도 했다. 당시 뉴스 속보 대신 고교야구가 중계될 정도로 유독 미비했던 언론보도가 사실은 집권당의 의도적 은폐였다는 소문도 있었다. 특히 사건 책임자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은 많은 공분을 사기도 했다.사고 여파로 공사 발주처 대구백화점은 막대한 보상금을 지급하는 등의 큰 타격을 입는 바람에 부지를 토지공사에 매각해야 했다. 후에 부지를 낙찰받은 롯데쇼핑이 결국 주인이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롯데백화점의 대구 진출의 나비효과가 된 것이다. 여담이지만 한동안 부지는 잡초만 무성한 공터로 방치되기도 했는데 그곳에서 동춘서커스단의 공연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롯데백화점 완공 후에는 유령을 목격했다는 도시 괴담도 떠돌았다.며칠 전 29주기였다. 월성1동에 있는 학산공원에 관심 가지는 대구 시민은 드물다. 이곳에는 상인동 가스 사고 희생자 위령탑이 세워져 있다. 유족들이 부실 공사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세웠던 건설사에서 만든 처음이자 마지막인 건축물이기도 하다. 작년 이맘때에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 방영되어 잊힐 뻔한 해당 사건이 재조명되기도 했다.생존했다면 중년의 나이가 되어 사회의 일원으로 한 가정의 든든한 가장이 되었을 학생 희생자들. 한동네에 살던 또래였기에 더욱 안타깝다. SNS가 없던 시절 전 국민적인 추모로 이어지진 않았던 사건, 비록 30여 년 전의 옛일이지만 올해는 유독 관련 신문 기사도 거의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냉랭한 추모 열기가 아쉽다. 상인네거리를 지날 때마다 떠오르는 그날의 아픈 기억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될 뿐이다. 기억은 힘이 세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원인과 과정을 기억하고 철저한 반성이 필요하다.거리활동가거리활동가
[시시각각(時時刻刻)] 5월의 신부들에게…
5월이다! 어릴 때부터 5월에는 공기도 더 들뜨는 것 같고, 5월이라는 말은 괜히 가슴을 설레게 했다. 온통 주위가 푸른 신록으로 물드는 생명의 기운으로 약동하는 1년 중 가장 찬란한 달이기 때문이리라. 그래서인지 5월에 가장 행사가 많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 등등. 5월의 신부라는 말처럼 5월은 결혼을 많이 하는 달이기도 하다. 5월의 신부의 유래를 찾아보니 술과 다산, 풍요를 관장하는 디오니소스는 겨울에 죽고 다시 5월에 부활하는데, 그의 부활을 기리고 풍작을 기원하기 위해 축제를 진행했고, 이 축제 기간 중 마을을 대표하는 처녀와 총각을 뽑았고, 이것이 후에 '결혼'으로 이어져 5월의 신부라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올해 5월에도 많은 커플들이 결혼을 할 것이다. 그들의 행복을 위해 올 1월 내가 우리 아들 결혼식에서 했던 덕담을 말하고 싶다. 우리 아들 부부처럼, 그들도 행복하기를 바라고, 그들이 행복해야 대한민국이 행복할 것을 믿기 때문이다. 첫째는 다름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로서, 아니 하나의 인격체로 우리는 서로 너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틀림이 아니고 다름으로 인정한다면 상대방을 바꾸려고 하는 무용한 노력을 하지 않을 것이다. 결혼 초에 나와 우리 집사람이 많이 부딪쳤던 것 중의 하나는 다툰 후에 우리 집사람은 그 문제를 바로 계속 얘기하기를 원했고, 나는 좀 있다가 감정이 가라앉으면 얘기하기를 원하는 그 대응방법을 가지고 우리는 종종 2라운드를 가곤 했다. 나중에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을 읽고 그것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문제가 터지면 동굴로 들어가는 남자"라는 남녀의 차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후 많은 후배들에게 이 책을 선물하기도 했다. 명심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나를 바꾸는 것뿐이라는 것을 ….둘째는 자신들만의 리추얼을 만들라는 것이다. 우리는 몸과 마음의 관계에서 마음이 우선이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몇몇 심리학 실험들은 우리 마음이 육체의 동작, 행동에 의해 움직임을 보여준다. 행동이 일어나면 근육이 반응하고 근육이 움직이면 뇌가 반응해서 결국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이다. 매 주일 아침 브런치를 같이하고, 한 달에 한 번 심야 영화를 같이 보고, 종교 생활을 같이하고 등등 너희들만의 액티비티 루틴을, 의미를 부여하는 리추얼을 만들어라. 그러한 리추얼이 너희의 결혼 생활을 안정되게 하고 앞으로 가게 하는 동력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리추얼에 양가 부모님을 방문하는 활동도 넣었으면 하는 사심 들어간 작은 부탁도 한다. 셋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정하라는 것이다. 내가 많이 얘기하는 것 중의 하나가 사랑할 만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인지상정이지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는 말을 한다. 부탁하고 싶은 것은 다정해야 할 때만 다정하지 말고, 항상 서로에게 다정하라는 것이다. 먼저 애정 어린 말 한마디, 따뜻한 눈빛을 보내라. 인간은 모두가 외롭다. 같이 있어도 외롭다. 남편은 남의 편이라는 말처럼 부부라서 더 외로울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다정해라. 다름을 인정하고 너희만의 리추얼을 많이 만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정해라. 나는 그것이 결혼 생활의 행복 비결이라고 믿고 있고, 그래서 그렇게 얘기했고 그래서 너희는 그렇게 살 것이고 그래서 행복할 것으로 믿는다. 행복해라! 세상 누구보다 더! 이 찬란한 5월에. 전창록 대구대 초빙교수전창록 대구대 초빙교수
[민병욱의 민초통신] '바이든 -날리면'부터 풀자
아주 원론적인 질문부터 해보자. 정치란 무엇인가. 누구든 머릿속에 어떤 '상(像)'이 가물거릴 것이다. 아마 금방이라도 쉽게 잡아낼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런데 그걸 말로 정의하고 명쾌하게 풀어내는 게 생각처럼 쉽지 않다. 정치학자들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정책을 수립하는 과정' '사회적 가치의 권위적 배분' '국가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 '나라를 바르게 하는 것' 등 단박에 이해하기 난감한 해석을 내놓는다. 더 부연해 설명해주면 그제야 아, 하고 고개를 주억거리지만 금방 또 '다른 상'이 머릿속에서 어른거리곤 한다. 그만큼 정치는 천의 표정을 지녔다.총선에서 참패한 윤석열 대통령이 "이제 '정치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라고 말해 화제다. 한사코 거부하던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의 회담을 제안한 직후 참모들에게 그 말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며칠 후, 비서실장 인선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정치하는 대통령'에 대한 기자 질문을 받았다. 답은 이랬다. "지난 2년은 국정과제의 설계와 집행에 업무 중심이 있었는데 앞으로는 국민께 더 다가가 소통하겠다는 뜻이다. 야당과도 좀 더 설득하고 소통하는 데 주력하겠다." 지난 국정운영과 앞으로 해나갈 일을 설득, 소통을 빌려 설명했지만 뭔가 다른 상이 가물거리는 듯도 하다. 아니나 다를까. 야당은 대통령이 '정책 방향은 옳았고 소통 문제만 빼면 정치를 잘했다는 식'으로 총선 민의를 부정하며 결국 변하지 않겠다는 강변만 늘어놓았다고 비판했다. 마땅히 정치 중심이어야 할 대통령이 그동안은 뭘 하다 이제야 정치를 하겠다고 나서냐는 핀잔도 덧붙였다.물론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오만과 독선, 불통으로만 낙인찍힌 윤 대통령이 처음으로 설득과 소통을 내세운 그 자체가 어떤 변화의 시작이라고 볼 수는 없는 것일까. 유권자들도 그렇게 믿어보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건 아닐까. '국가의 주권을 위임받은 대표자가 그 영토와 국민을 위하여 실행하는 여러 가지 일'이 정치의 기본일진데 그 같은 기대를 꼭 성급하다고 내칠 이유는 없다. 다시 말해 정치의 순기능을 ①갈등을 해결하고 다툼을 종식하는 '갈등 해소' 측면과 ②미래의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공동체 형성'의 두 차원에서 보고 윤 대통령이 이제 ①을 바로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해석해보자는 것이다. 정치의 특성은 갈등이며, 갈등이 곧 정상궤도를 벗어난 비정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 늦게나마 조정용 설득과 소통을 말하게 됐다고 믿고 싶다는 얘기다. 소통에 전념하다 보면 자연히 ②까지 이뤄낼 수 있다는 희망 섞인 기대이기도 하다.그러나 사실 요즘은 대통령에 대한 냉소주의가 현명함을 판가름하는 척도가 돼 있는 분위기다. 세계 전쟁 위협과 경제 불안, 양극화와 끝없는 정치 대결, 인권의 추락과 언로 폐색, 재난 등 사건 사고 빈발에 정부와 국회 정당이 전혀 손을 못 쓰고 그 중심에 대통령이 있다는 인식이다. 어떤 문제는 대통령이 갈등을 조정하고 화해시키기보다 오히려 조장하고 이용한다는 시각도 없지 않다. 입으론 공정과 상식을 말하지만 제 식구는 무조건 감싸고 범죄로 의심되는 일마저 멋대로 '퉁치려는' 모습을 보여 냉소를 부채질한 측면도 있다. 누가 봐도 사과할만한 일을 되레 뭐가 잘못이냐고 윽박지른 경우 역시 적잖았다. 용산 집무실과 한남동 관저를 둘러싼 극소수의 사람과만 통하며 정치를 한다는 말까지 나오던 판에 선거에서 지고야 국민과 야당, 설득과 소통을 얘기하니 솔깃하지만 의심스러운 구석이 많은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더욱 문제는 '정치하는' 대통령, '국민에게 다가가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는 게 말처럼 쉽지 않은 데 있다. 진정한 소통이라면 그저 상대 얘기를 들어주기만 하는 게 아니라 지난 내 허물도 스스로 들춰내 고치고 바로잡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잘못을 지적해도 귀 막고 무시했던 '오기'에 대해 이제는 '무릎 꿇고 사죄'하겠다는 각오 또한 다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 대상은 당연히 국민 대다수가 대통령 당신의 잘못이라고 지적해온 사안일 것이며 그 후과(後果)가 국정에 큰 악영향을 끼친 일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바로 그 대표적인 사례가 2022년 가을 취임 넉 달 만에 터진 이른바 '바이든- 날리면 사건'이라고 보는 견해가 많다. 언론계에선 특히 이 사건의 왜곡을 바로잡아 정상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의견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경위야 어떻든 대통령 본인의 말실수 탓에 터진 그 일은 강변과 억지, 권력 남용성 제재와 법정 다툼으로 얼룩지며 정부와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단숨에 깎아 먹었다. 취임 당시 50% 선이던 윤 정부 국정 지지율은 사건 후 반 토막, 24%로 급전직하했다. 국내는 물론 세계의 조롱거리가 되었고 나중에 한국은 언론 자유가 침해받는, '독재화의 길로 들어선 나라'로 지목되는 단초가 되었다. '48초 한미 정상 환담'을 마치고 나오며 윤 대통령이 외교부 장관에게 한 말, "국회에서 이 OO들이 승인 안 해주면 ×××× 쪽팔려서 어떡하나?"를 둘러싸고 ××××가 '바이든'이냐 아니면 '날리면'이냐로 온 나라가 쩍 갈라졌던 소모적 듣기 평가 논쟁은 방송사를 둘러싼 심의 제재, 법정 소송이 아직 진행 중인 현재 시제다.다시 말하기도 부끄럽지만 이 사건은 윤 대통령이 욕설과 비속어를 사용한 부분만이라도 유감을 표시하고 나섰다면 크게 번지지 않을 수 있었다. 본인이 정말 무슨 표현을 했는지, 정 아니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상황 설명만 조금 했더라도 둑 터진 물줄기처럼 여기저기 내지르며 흘러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귀국 후 도어스테핑에서 "사실과 다른 보도로 동맹을 훼손한다는 건 국민을 굉장히 위험에 빠트리는 일"이라며 진상규명을 강조했고 상황은 더 걷잡을 수 없는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진짜 사실이 뭔데 사실과 다른 보도로 모느냐는 볼멘소리는 여전히 죽지 않았다. 욕설과 비속어가 여과 없이 구사되는 영상은 여전히 온라인을 떠돌며 사람들을 부끄럽고 찜찜한 상태로 내몰고 있다. 한국은 여전히 언론 자유가 빠르게 침식되는 나라로 꼽힌다.윤 대통령의 '정치하는 대통령론'이 이제는 정치냉소주의를 불식하고 나라를 바르게 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바이든- 날리면 논란'을 앞장서 푸는 것도 그 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한국언론진흥재단 전 이사장한국언론진흥재단 전 이사장
[3040칼럼] 입스와 초킹
계절의 여왕 5월이 성큼 다가왔다. 특히 5월은 많은 골퍼들이 손꼽아 기다려온 계절이다. 필드 위의 잔디가 초록의 옷으로 완벽히 갈아입고 골퍼들에게 설렘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코로나 이후 많은 골퍼의 증가가 있어 왔고, 올해에도 많은 골퍼들이 골프장으로 달려갈 준비를 마치고 있다. 우리는 골프를 치면서 실수를 자주 반복하게 될 때 입스(Yips)가 온 것 같다는 말을 종종 한다. 특히 드라이버샷이 왼쪽 오른쪽으로 막 난사될 때, 짧은 퍼팅이 잘 안 들어갈 때 입스라는 말을 자주 쓰곤 한다.입스의 정확한 의미는 심리적, 신체적, 상황적 요인의 영향에 따라 신경계 이상으로 발생한 국소 근긴장 이상증(Focal Dystonia)을 의미한다. 입스의 특징은 특정상황을 맞이하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손가락 등이 움찔거리는 현상들이 나타나 경기력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특히 이러한 입스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전문 엘리트 선수와 같이 수많은 연습을 통해 특정 근육군의 많은 쓰임 이후에 나타나게 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하루에 4~5시간씩 수년 이상 퍼팅, 스윙 연습을 하는 프로골퍼 선수들에게서 자주 나타난다. 또한 최근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최강야구' 프로그램을 통해 야구선수들의 입스 경험에 대해 말하고 있다. 프로야구 선수 역시 투수가 투구하는 동작과 같이 동일한 동작을 무수히 반복하고 연습하게 된다. 이때 일부 선수의 경우 투구 시에만 손가락이 펴지지 않는 현상을 경험하게 되는데 이러한 것을 '블래스 증후근' 또는 입스라는 현상으로 설명하고 있다. 즉, 일반적인 우리 아마추어 골퍼들이 경험하는 동작수행의 반복되는 실수들은 선수들과 같이 오랜 시간 연습한 결과로 발생되는 현상이 아니기 때문에 입스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반면 초킹(Choking)이라는 심리적 현상은 아마추어 골퍼들의 실수를 보다 잘 설명할 수 있다. 초킹은 긴장과 압박 속에서 나타나는 우리의 인지시스템 자원 배분의 비효율성 때문에 나타난다. 즉, 연습 때 잘되던 스윙이 필드에 나가면 잘되지 않는 이유는 우리의 스윙동작에 너무 많은 신경 즉, 인지적 자원을 할당해서 쓰게 되는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우리가 하나의 동작을 배우게 되는 과정은 동작의 분절화, 동작의 연합, 동작의 자동화 순으로 운동 기술을 학습하게 된다. 그래서 동작의 자동화 단계에 이르게 되었을 때 일정하고 만족스러운 스윙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긴장되는 상황에서는 자신의 스윙 메커니즘에 대해 많은 체크를 하게 되고, 이러한 동작에 대한 과집중 현상은 자연스러운 동작의 자동화를 깨뜨리게 되고 이전 기술수준 단계인 동작의 연합, 분절화 수준으로 회기하여 불완전한 동작이 발현되게 할 공산이 커진다. 그러나 이러한 초킹의 경우 역시 어느 정도 스윙 기술이 완성된 상급 골퍼들에게서 나타날 경우가 많다. 사실 대부분의 아마추어 골퍼들이 골프기술의 자동화 단계에 이르렀다고 보기는 힘들다. 따라서 필드에서 실수는 대부분 연습부족의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입스나 초킹과 같은 심리현상을 핑계로 삼기보다 연습장에서의 땀방울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을 믿어보자.이재무 경북스포츠과학센터장이재무 경북스포츠과학센터장
[단체장의 생각:長考] 변화와 혁신은 작은 것에서부터
구미시장 취임 후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구미는 갈 곳, 놀 곳이 없다'는 것이다. 그저 돈 벌어서 타 지역에 가서 쓰는, 남 좋은 일만 시키는 곳이 구미라는 것이다. 왜 그럴까? 구미는 바다가 있는 곳도 아니요, 설악산이나 한라산 같은 대한민국 대표 산이 있는 곳도 아니다. 그렇다고 서울과 대구처럼 대규모 쇼핑센터와 놀이시설도 없다. 재주는 구미가 부리고 돈은 외부로 유출되는 악순환이 반복돼 온 것이다.이런 불리한 지역 특성과 여건 속에서 취임 후 '문화예술이 흐르는 낭만도시' '힐링하고 재미있는 도시'를 만들겠다고 나서니 처음에는 모두 의아해했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은 달랐다. 구미가 가지고 있는 어찌 보면 작은 것들, 방치되고 버려진 것들을 새롭게 보고, 구미만의 새로운 색깔을 입히는 것이 낭만도시를 조성하는 첫걸음이라 판단했다.구미에는 지산샛강이라는 저수지 같기도 하고 낙동강 지천이기도 한 도심 속 수변공원이 있다. 그동안은 고아, 지산들판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고니가 다녀가는 철새 도래지 정도로 알려졌을 뿐, 사실상 지산샛강은 방치되어 왔다. 겨울철에 잠시 머무르는 고니를 보기 위해 조류 학자와 사진작가들이 오는 것 말고는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공간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조류독감으로 출입이 통제되기 일쑤였고, 야간에는 불빛도 없어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그런 지산샛강에 작지만 의미 있는 구미만의 색깔을 입히기 시작했다. 우선 야간에 우범지역 같았던 이곳에 경관 조명을 설치하고, 맨발걷기로 인기를 끌고 있는 황톳길, 마사토길을 조성해 주민들의 힐링 공간을 만들었다. 또, 겨울 한 철만 볼 수 있는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고니 조형물을 세워 포토존도 마련했다.지산샛강생태공원의 화룡점정은 고니벅스다. 샛강주변은 휴게시설 허가가 불가능해 산책 후 물 한 잔 사 먹을 공간이 없다는 불평이 끊이지 않았다. 화장실이 있고, 전기와 수돗물이 공급되는 이상 자판기 설치는 가능하지 않을까? 시민들의 작은 불편함을 놓치지 않고 시도한 물 한 잔의 공간이 무인 카페로까지 발전했다. 내친김에 카페 이름도 그에 걸맞게 고니벅스로 명명했다. 흔하지 않은 카페 이름과 탈바꿈한 지산샛강은 시민들 사이에 회자되며 단숨에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단순한 산책로가 아닌 즐길 거리, 볼거리, 쉴 거리가 있는 여가 공간으로 재탄생한 것이다.이제 샛강의 뷰를 조망하며 무인카페에서 한 잔의 커피를 마시는 것이 구미시민들의 트렌드가 되다시피 할 정도로 인기다. 용도 변경이 불가능한 곳에 무인카페가 들어서는 것, 치열하게 고민하고 실행에 옮기는 일이 곧 혁신과 변화의 시작이다. 무미건조했던 구미의 색깔이 바뀌고 있다. 신라면 제조공장이 있는 점에 착안해 구미라면 축제를 시작했고, 치킨 브랜드가 태동한 구미에 아이디어를 얻어 교촌거리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일자리를 찾아 산업도시 구미로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온 점에 착안, 사람과 음식이 몰려오는 구미푸드페스티벌도 열었다. 구미의 특성을 살린 새로운 시도들이 호응을 얻고 있다. 구미시의 도시 색깔 입히기에 민간에서도 호응하여 금오산 금오랜드에는 전국 유일의 티니핑 대관람차가 들어서 재미를 더하고 있다.구미는 작은 것부터의 변화, 생각의 혁신을 통해 곳곳에 재미가 넘치는 꿀잼도시로 나아가고 있다. 작지만 새로운 변곡점을 그리며 매력적인 구미를 알리고 이를 통해 시민들에게 계속해서 희망을 심어주고자 한다. 볼 것 많고, 놀 것 많고, 할 것 많은 도시. 변화와 혁신 중인 구미다. 김장호 구미시장김장호 구미시장
[단상지대] 정체성 이야기 : 의사와 환자
요즘 들어 정치, 사회, 문화면에서 '정체성'이라는 말이 곧잘 등장한다. 필자가 음악의 정체성에 관한 박사논문을 쓰면서 확정한 나름의 정체성은 다음 네 가지 정도로 수렴된다. (1)정체성은 차이(점)에 관한 것으로,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 작용을 통해 형성된다. 다시 말해 정체성은 우리가 스스로를 어떻게 인식하는지, 그리고 타인들이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따라 만들어진다. (2)정체성은 수많은 종류의 사회적 관계를 통해 형성되고 협상된다. (3)정체성은 특정한 상황과 타인들과의 경험을 통해 끊임없이 변화한다. (4)정체성은 한 개인이나 그룹의 내러티브적 역할을 포함한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와서 관습, 관행, 유산 등을 포함한 과거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현재에 대한 인식을 통해 재구성된다는 학계의 발표가 이어지고 있다. 결국 정체성과 전통은 과거의 현재화 내지 현재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지평으로서 항상 변화하고 재구성된다는 사실! 여기에는 내 의지로 변화 가능하면서도, 의지와 무관하게 변화될 수 있는 두려움이 저변에 깔려 있다.박사과정 중 히스로 공항에서 우연히 집어 든 책 한 권, 폴 칼라니티(Paul Kalanithi)의 자서전 '숨결이 바람이 될 때(When Breath Becomes Air)'는 정체성의 이러한 가변성을 강력하게 대변한다. 문학과 과학에 열정을 가지며 예일대 의대를 졸업하고, 스탠퍼드 대학에서 레지던트를 거치면서 신경외과 교수로 가는 탄탄한 미래가 보장된 36세의 칼라니티는 어느 순간 폐암 말기 진단을 받는다. 스캔 데이터를 면밀히 조사하고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였던 그는 다음 날 불치병과 싸우고 있는 환자(불평 없이 고통을 견디는 자)가 되어 검사실에 누워 있다. 흰색 가운을 입은 의사로서의 정체성은 사라지고, 환자복을 입은 새로운 정체성이 그의 삶을 장악하면서 이전의 정체성을 대체한다. 그렇게 의사와 환자로서의 역할이 전도되면서 죽음이라는 가혹한 현실에 직면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의사로서의 내 정체성은 더는 중요하지 않았다." 칼라니티가 폐암 진단을 받은 후 마지막 22개월 동안 그의 전체 정체성은 위태로움의 연속이다. "나는 신체적으로 쇠약해졌고, 내가 상상했던 미래와 개인적인 정체성이 무너졌으며, 나는 내 환자들이 직면했던 것과 같은 실존적 어려움과 마주하게 되었다." 코비드19에 이어 응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유난히도 자주 들리는 요즘. 많은 환자들은 이 병원에서 저 병원으로 다니며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다. 운 좋게 담당의라도 만나게 되면 그나마 다행이다. 지난 2월에 유방암 진단을 받은 내 친구는 암덩어리가 커질까 퍼질까를 걱정하며 한참 뒤로 미뤄진 수술만을 기다린다. 14만 의사와 2만 의대생 그리고 이들 가족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대한민국의 국민이자 시민이며, 현재와 미래의 환자일 수 있다. 하여 역지사지(易地思之)로, 정부와 의협의 갈등과 반목을 지나 진정한 대화와 해결에 따른 새로운 통합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염원한다.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정체성을 새로이 유지하려고 노력했던 칼라니티는 사뮈엘 베케트의 구절을 읊조린다.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I can't go on. I'll go on)." 그리고 아내 루시는 이미 바람이 된 남편을 생각하며 또 이렇게 말한다. "나는 그의 아내이자 목격자였다." 극과 극은 통한다(Extremes meet)라는 서양 속담을 생각해본다. 부정의 부정, 절망이 희망으로 바뀔 그날을 기다리며, 우리 또한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는 목격자가 될 것이다. 임진형 (음악인문학자·대구챔버페스트 대표)임진형 (음악인문학자·대구챔버페스트 대표)
[박재열의 외신 톺아보기] 이탈리아의 가장 아름다운 마을
이탈리아 국영TV에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을 뽑는 프로그램이 있다. 이탈리아의 20개 주는 매년 그 주의 한 마을을 선정하면 그 마을은 그들의 자랑거리를 영상물로 만들어 방송국에 보낸다. 방송국에서는 각 주에서 올라온 20개 비디오를 한 주에 하나씩 방영한다. 가장 아름다운 마을은 시청자들의 투표와 환경·역사·관광산업 전문가 3명의 참여로 선정된다. 1위 마을엔 관광객이 넘치게 된다.올해 1위는 '페치올리'라는 토스카나의 한 소읍이 차지했다.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인구 5천의 이 소읍은 포도밭, 밀밭, 올리브나무로 둘러싸여 풍광이 빼어나다. 중세의 벽돌건물이 밀집해 있고 12세기 종탑 밑으로 좁은 골목이 지난다. 건축가는 중세의 한 건물에 현대공공미술을 접목시켰다. 원래 14세기의 아름다운 마당과 돌계단이 있었지만 리모델링하여 하늘에서 빛이 들어오도록 하고 1층은 바닥에서 천정까지 시원하게 유리창을 냈다. 또 밖에서도 경치를 감상하도록 데크를 부두처럼 공중으로 길게 빼냈다.이 읍민들은 선견지명이 있었다. 1990년대에 첨단 쓰레기처리 방법을 도입하여 타지방의 쓰레기까지 처리해줬다. 그 수익금으로 우수한 예술품을 구입하였다. 그 결과 이 소읍은 지금 곳곳에 훌륭한 미술전시장을 열고 있다. '페치올리의 거인'이라는 조각품은 거대한 남자와 여자가 상체만 대지 위에 내어놓은, 신선한 충격을 주는 작품이다. 유방을 다 드러낸 채 용을 쓰는 여성이 참 인상적이다. 작년에 개관한 노천현대미술관에는 전 세계에서 수집한 600점이 전시되고 있다. 원형극장, 성화박물관, 러시아 아이콘 박물관, 고고학박물관 등도 이 읍의 자랑거리이다. 경북대 명예교수·시인박재열 경북대 명예교수·시인
[송재학의 시와 함께] 박라연 '허풍선이'
사람이 제 어둠만으로 하늘을 덮을 수 있다는 듯매운 눈빛만으로 허공의 눈동자를 찌르려는 듯어둡고 매운 남매가 날아올라, 박라연 '허풍선이'평생 시를 쓰고 있다는 현재진행형은 어떤 의미일까. 짐작건대 일생 동안 자신을 들여다보고 고양시키며 가열시키는 행위이다. 또한 자신을 되돌아보고 후회하는 행사이다. 같은 말을 되풀이하지 않고 생을 반복하겠다는 열정의 다른 이름이다. 하루 중에서 일정한 시간이면 늘 세상과 시에 몰두하는 영혼이다. 박라연 시인의 '허풍선이'는 그 영혼에 대한 교우이자 탐구록이다. "말도 되지 않은 소리로 과장을 하고 모든 일을 부풀려서 이야기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허풍선이란 "불을 지필 때에 사용하는 풀무의 일종으로 바람을 일으켜서 불을 잘 타게 하는 것인데, 이때 바람주머니가 부풀어 오지만 바람이 나가면 형편없이 쪼그라드는데 이와 같이 허황된 말이나 거짓 정보를 한껏 부풀려서 떠벌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의 말을 믿을 수 없다라는 데서 허풍선이가 된 것"이다. "사람이 제 어둠만으로 하늘을 덮을 수 있다" 거나 "매운 눈빛만으로 허공의 눈동자를 찌르려는" 것은 모두 허풍선이다. 하지만 비유 이상의 실현 가능태를 만들어주는 것은 시인의 몫, 시인은 하늘을 덮는 어둠과 허공의 눈동자를 찌르는 남매의 능력을 익히 알고 있다. 남매는 둘이면서 하나인 일란성쌍생아이기도 하다. 이 거대 상상력은 짧은 시의 언술을 거치면서 섬세하면서도 호연지기를 아득하게 넓히는 중이다. 송재학 시인송재학 시인
[아침을 열며] 총선 민심, 미워도 다시 한번…
"국민의 회초리 겸허히 받겠습니다."지난 4월11일, 국민의힘이 이번 총선 결과 성적표를 받아 든 다음 날 일성(一聲)이다.제22대 총선이 끝났다.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은 말 그대로 사상 유례없는 참패라는 결과를 얻었다. 일견 예견된 결과라는 분석도 없지 않지만 그래도 이 정도까지일지는 몰랐다는 얘기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겨우 개헌저지선을 확보했다는 데 의미를 두어야 하는 집권 여당의 정치 현실이 참으로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과연 왜 이렇게까지 참담한 총선 성적표를 얻게 되었을까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제껏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중대한 사법리스크를 잔뜩 안고 있는 야당 대표와 그를 둘러싼 끊임없는 사천 논란의 틈바구니 속에서 공천된 야당 후보들을 상대로 일전(一戰)을 겨룬 결과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이기 때문이다.그럼에도 참담한 총선 결과가 나온 뒤 20여 일이 지난 지금까지 국민의힘은 과연 그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국민의 호된 회초리를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된 것인지 의문스럽다. 당선자들은 당선자대로, 낙선한 원외 조직위원장은 그들대로 나름의 총선 패인 분석과 향후 여소야대(與小野大) 정국 운영에 대한 견해와 의견들을 백가쟁명식으로 쏟아내고는 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번지수를 잘못 잡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현재 국민의힘 내부는 제22대 국회 첫해를 이끌 원내대표 선출과 한동훈 비대위 체제를 대신할 새로운 당 대표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 준비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어디선가 본 듯한 또 다른 연대론이 수면 위로 부상하는 등 혹여나 구태(舊態)를 반복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현실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하물며 이제는 총선 참패를 수습하기 위한 논의 과정에서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기에 영남당 이미지 탈피와 수도권 중심의 당(黨) 지도부 재편이라는 명제가 등장하게 된 것일까? 대구경북 지역구 25석 전석(全席) 석권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TK 지역 또는 영남권의 현역의원이 많아서 총선에서 졌다는 말인가?보수의 심장이라 일컬어지는 우리 대구·경북지역은 그간 보수정치를 지탱하는 근간으로 자리매김해 왔을 뿐 아니라 보수정치가 위기 때마다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준 고향 같은 곳이다. 대구·경북지역의 유권자들도 그 누구보다 대한민국의 미래와 정치 발전을 염원하는 국민의 한 사람들이다. 현(現) 정부의 국정 수행 능력과 국민과의 공감 지수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우려와 걱정을, 때로는 응원을 보내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드러난 대구·경북민들의 민의(民意)는 과연 무엇일까?중앙정치권에서의 무기력한 존재감과 기득권 정치에 안주하는 듯한 행보를 보여왔던 현역의원들과 아직은 그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정치신인 후보들을 신뢰해서 지역구 국회의원 25석 석권이라는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준 것은 아닐 것이다. 도덕적 흠결과 정치적 명분이 결여된 야당 대표가 이끄는 거대(巨大) 야당이 자행할 불을 보듯 뻔한 일방통행식 국회 운영을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음을 개탄한 선택임이 틀림없다."미워도 다시 한번"아직은 3년이나 남은 윤석열 정권의 성공과 정국 안정을 통한 미래 대한민국의 기틀을 마련해 나가 달라는 염원과 희망이 담겨 있음을 이번에 당선된 25분의 제22대 국회의원들은 명심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본다. 이주엽 (엘엔피파트너스<주> 대표)이주엽 (엘엔피파트너스 대표)
[광장에서] 돈의 계단
2010년 여름, 나는 동유럽 국가인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의 경영대학에서 교류 학생으로 수학했다. 학업을 전후로 유럽의 여러 지역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북유럽에선 노숙자를 찾아보기 힘들었고 노인분들의 삶에선 평온과 여유가 느껴졌다. 선진 복지사회에서는 청년기와 중년기를 보낸 이들이 노년기에는 생만을 위한 노동에서 해방될 수 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삶의 품격을 누리면서 생을 마감할 수 있는 배려가 주어진다. 반면 노인 빈곤율과 자살률이 세계 1위에 근접하며, 빈부 격차가 큰 사회일수록 노년의 삶은 경제력에 따라 천차만별의 모습을 보인다. 사회 안전망이 단단하지 못한 탓이다. 사회의 불안정성이 높아지는 만큼 경제적 안정에 대한 개인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청년들 사이에선 FIRE족이 화제다. FIRE족은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의 줄임말로 독립 경제를 구축해 일찍 은퇴하는 이를 일컫는다. 그런데 FIRE족의 의미를 몇몇은 오해하고 있다. 젊었을 때 바짝 그리고 크게 벌어 은퇴하고 이후에 편안하게 여행 다니고 맛있는 거 먹으며 살아가는 삶이 FIRE족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FIRE족의 진정한 의미는 더욱 적극적인 개념이다. 경제적 자유를 일찍 달성하고 자기 삶에서 추구하는 가치와 철학을 경제적 제약 없이 추구하는 삶이다. 보다 진취적이고 능동적인 라이프 스타일에 가깝다.파이어(FIRE)족은 3단계로 구분되는 돈의 계단에서 자동화된 2단계 혹은 3단계에 안정적으로 진입한 경우를 일컫는다. 돈의 계단은 1단계 근로소득, 2단계 사업 소득, 3단계 투자 소득(자본소득)으로 나누어진다. 1단계 근로소득의 단계에서는 노동의 시간과 급여가 비례하는 단계다. 일한 시간만큼 시급과 월급 그리고 연봉의 개념으로 소득이 만들어지는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는 소비에 대한 절제와 일에 대한 성실을 바탕으로 다음 단계인 사업소득을 위한 씨앗 자금을 확보해야 한다. 2단계 사업소득의 단계는 사업 시스템을 통해 돈을 버는 단계이다. 규모의 크고 작음을 떠나 누군가로부터 정해진 급여를 받지 않고 스스로 사업 시스템을 통해 급여와 이익 잉여금을 만들어 내는 단계이다. 3단계는 자본(투자)소득의 단계이다. 근로소득, 사업 소득 단계에서 자본을 누적해 온 그룹과 출발선에서 상속과 증여를 통해 자본소득의 밑천이 되는 현금성, 비현금성 자산을 이미 확보한 경우이다. 자본소득은 지식과 정보 그리고 자본금이 상호 작용해 배로 불어나는 승수 효과를 낸다. 자본소득의 단계에서는 경영, 회계, 세무, 노무, 법무, 주식, 부동산 등의 지식이 요구된다. 돈을 많이 벌어 뭐하고 싶어요라고 물어보면 다수는 개인적, 사회적 관계를 이야기한다. 부모, 자녀, 친척, 친구 등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의 행복을 위해 돈을 사용하고 싶다고 한다. 돈을 버는 과정에서 사회적 가치를 생산하고 돈을 쓰는 순간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그야말로 잘 벌고 잘 쓰는 삶이다. 경제력이란 가장에게는 아이들이 먹고 싶다는 것을 당당하게 사줄 수 있는 엄마 아빠의 사랑이다. 부모님의 여생이 조금 더 행복한 추억과 기억으로 마무리될 수 있는 여백을 마련해주는 아들과 딸의 효이기도 하다. 한 개인의 삶에서 돈이 사람 위에 존재하지 않게 하려고 개인에게 있어 경제력은 중요하다. 성실히 삶을 살아낸 국민과 시민들의 삶이 생을 위한 노동으로 생의 마감까지 이어지지 않길 바란다. 사회적 안전망이 더 탄탄해지길 바라는 이유다.추현호 〈주〉콰타드림랩 대표추현호〈주〉콰타드림랩 대표
[메디컬 窓] 무너진 의료 체계,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지난 22대 총선은 여당의 참패로 막을 내렸다. 결국 이번 선거는 윤석열 정부에 대한 심판 성격이 강하게 작용하였다.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논란,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호주 대사 임명 등 여러 가지 악재가 있었으나 가장 큰 요인은 독선, 불통으로 상징되는 국정 운영 기조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정부의 고집스러운 의대 정원 확대로 촉발된 의료 공백 사태 또한 총선에 큰 악재로 작용했다. 총선은 끝이 났지만 안타까운 것은 아직도 의정 갈등은 장기화 국면에 들어서고 있고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윤석열 대통령은 의대 정원 확충 규모인 2천명을 과학적 추계로 산출을 했다고 하였다. 하지만 연구서를 작성한 저자들도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해서는 주장을 하였으나 한 번에 2천명을 증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발표하였다. 또한 의대 학장과 의대 교수들도 강의실과 의대 교수, 그리고 해부용 시신 등 현재의 교육 여건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인원이라고 2천명의 급격한 의대 정원 확충을 반대하였다. 전문가들도 의문을 품고 있는 의대 정원 2천명 확충은 왜 이렇게도 정부가 밀고 있는 것일까?총선을 앞두고 윤석열 정권은 여권의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와 바닥을 치는 대통령 지지율을 만회할 카드가 필요했다. 현 정권은 과거 사교육과 민노총을 이권 카르텔로 지목하고 카르텔 타파를 국정운영 방향으로 잡으면서 지지율의 상승을 경험하였다. 총선을 앞둔 시점에 다른 카르텔 대상이 필요했다. 대통령의 칼끝은 의사들을 향했다. 대통령의 무모한 정책은 초기에는 지지율의 급격한 상승을 보였지만 점차 정부의 거짓 의료개혁이 민낯을 보이면서 다시 지지율은 급락하기 시작하였고 이는 부메랑이 되어 여권의 총선 참패라는 결과를 가져왔다.'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 문재인 정권이 내세웠던 구호이다. 이와 함께 적폐 청산이라는 키워드로 문재인 정권은 여론의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문 정권은 '조국 사태'로 기회의 불평등과 과정의 불공정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면서 정권 교체라는 반대의 결말을 맞이하게 되었다. 현재 윤석열 정부가 내세웠던 전략은 이권 카르텔 타파이다. 카르텔 타파는 적폐 청산이라는 단어 선택의 차이이고 결국에는 이전 정부와 마찬가지로 여론몰이용 도구에 불과했다.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가 실패했던 길을 가고 있다. 문제는 잘못된 정부의 정책이 의료 붕괴와 함께 국민의 건강권에 중대한 위험을 유발시키고 있다는 것이다오늘날 우리나라 의료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지역 간 의료 불균형과 필수의료인력의 부족이라 할 것이다. 의대 정원 확충을 하더라도 전문의가 배출되는 데 10년 이상의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작금의 상황에서는 해답이 될 수 없다. 의료 시스템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필수 의료 수가조정과 건강보험 재정 확보 등 40년이 넘게 지속된 현실에 맞지 않는 건강보험체계의 개혁이 가장 우선이 되어야 한다. 현재의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정책은 교주고슬(膠柱鼓瑟)과 같다. 터무니도 없는 방법으로 일을 꾸려나가려는 우둔함을 계속 보인다면 전 세계가 부러워하던 K-의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정부는 막가파식 의료 정책 추진을 멈추고 신뢰가 무너진 의정관계의 회복을 우선시해야 한다. 그리고 의사협회를 포함한 의료현안 협의체에서 충분한 토론과 다양한 의견 수렴을 통해 해법을 찾아내야 한다. 정부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곽재혁 (대구시의사회 홍보이사·곽재혁 신경과 원장)곽재혁 (대구시의사회 홍보이사·곽재혁 신경과 원장)
[더 나은 세상] 캡틴의 운명
4월 초, 대학을 갓 졸업한 큰딸과 함께 일본을 다녀왔다. 교토와 나라, 오사카를 거쳐 다시 대구로 돌아오는 일주일간의 여행이었다. 15년 전에 경험했던 첫 일본 가족여행을 그대로 재현해 보고픈 마음과 벚꽃의 나라에서 따스한 봄을 만끽하고픈 욕심이 혼재되어 있었다.예전, 모든 가족여행의 '캡틴'은 나였다. 여행 일정이 확정되면 곧바로 호텔과 항공권을 예약하고, 구글 지도를 참고해 교통편과 여행 동선을 정했으며, 다양한 여행서적들을 참고해 나만의 여행가이드북을 만들었다. 그렇게 몇 달을 신경쓰다 보니 여행 당일이 되면 난 항상 녹초가 되기 일쑤였고, 결국 여행지에서 몸살이 나 여행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곤 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난 단지 후원자에 불과했고, 내 딸이 '캡틴'이었다. 어리고 경험 없는 캡틴이어서 그런지 때론 불안했지만 예전과 같은 지난한 준비과정이 생략되어 난 참으로 편하고 여유로웠다. 난 딸의 계획에 무조건 오케이 사인을 보냈고, 필요한 돈을 송금해주었으며, 그렇게 단체여행을 떠나는 관광객처럼 느긋한 마음으로 출발날짜만을 기다렸다. 그것은 지혜로운 아내의 권유이기도 했고, 딸의 성장을 지켜보고픈 나의 소박한 바람이기도 했다.여행 내내 큰딸을 졸졸 따라다녔다. 호텔 체크인을 할 때에도, 교통패스를 끊을 때에도, 트래블 카드로 현금을 인출할 때에도 난 항상 딸 뒤에 있었다. 허리가 좋지 않은 관계로 지하철과 기차로 이동할 때에는 매번 서 있어야 했지만 너무나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여행이었다. 본토초를 비롯한 예스러운 골목길은 지극히 아름다웠고, 나라코엔 사슴들의 전병에 대한 욕심은 여전했으며, 도톤보리의 상징 글리코상은 한결같은 동작과 에너지로 우리를 반겨주었다. 15년 전, 그 느낌 그대로라고 해도 될 만큼 여행지는 크게 변한 것이 없었다. 굳이 달라진 것을 찾는다면 지금 내 옆에 아내가 없다는 것, 직장관계로 함께하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쉽고 미안했다.여행의 마지막 일정은 오사카 남바였는데 도톤보리 강가에 앉아 유람선이 오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딸과 함께 모둠꼬치를 안주 삼아 맥주를 마셨다. 솔직히 큰딸과 난 예전부터 많은 트러블이 있었다. 진로에 대한 사소한 견해 차이가 거친 언쟁으로 발전하기도 했고, 때론 돌이킬 수 없는 감정싸움으로 확전되어 가출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우린 술의 힘을 빌려 그 당시 서로의 과오에 대해 사과했고, 그렇게 이해와 격려의 말로 미처 아물지 못한 상처를 치유했다. 아직은 이른 저녁이었지만 딸과 함께 마시는 술은 그 무엇보다도 달콤 쌉싸름했다.딸에게 막잔을 따르려는데, 망가(Manga)의 나라답게 일본 애니메이션 '원피스'의 주제가가 맞은편 대형 상가에서 흘러나왔다. 순간, 그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인 루피와 해적 샹크스의 얼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루피를 구하려다 바다괴물에게 한쪽 팔을 잃게 된 샹크스가 이스트 블루 풍차마을을 떠나기 전 자신의 보물인 밀짚모자를 루피에게 건네주는 장면 말이다. 샹크스에 대한 미안함을 감춘 채 '언젠가는 꼭 해적왕이 될 거야'라고 외치는 루피를 향해 그는 더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한다."그럼, 이 모자를 너에게 맡기마. 내 소중한 모자니 꼭 돌려주어야만 해. 물론 의젓한 해적이 되어서 말이다!"그래, 이 말은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물든 그 강가에서 내가 '날 닮은 딸에게' 꼭 건네고 싶었던 말이었고, 마지막 술잔이 오갔던 그 찰나와도 같은 시간은 올드한 캡틴의 퇴장과 새로운 캡틴의 등장을 알리는 진정 경이로운 삶의 한순간이었다.우광훈 소설가우광훈 소설가
[노윤구의 관광산업] 지역산업 촉매제 '컨벤션 산업' 육성을
컨벤션(convention) 산업은 국제기관이나 기업, 사업체 등이 정보교류와 소통을 목적으로 개최하는 회의나 각종 전시·박람회, 스포츠 및 문화예술 행사, 인센티브 관광과 함께 다양한 형태로 개최되는 성장 잠재력이 높은 고부가가치 산업을 말한다.21세기 네트워크 사회가 전개되면서 인터넷을 이용한 화상회의와 뉴미디어를 활용한 간접적인 정보교류가 활발하게 진행되어 왔지만, 직접 교류와 현장을 방문하고자 하는 욕구가 증대되고 있다. 컨벤션 산업의 경제적 파급효과는 순수관광객보다 외화소비액이 3배 이상이며, 항공·여행·호텔업 등 고용증대 및 인력과 재원을 필요로 하는 사업으로 지역경제 활성화 기여와 세수입 증대 및 사회간접자본 확충 등 국가 및 지역경제를 국제화할 수 있는 효과가 있다. 뿐만 아니라 관광산업적 측면에서는 관광 비수기 문제 해결과 대량관광객 유치 및 관련 업계 활성화 등 전 세계적 관광홍보 이미지를 극대화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컨벤션 산업은 국가별 또는 광역시도별로 국제행사 유치를 위한 경쟁 심화로 대형화 및 전문성을 갖추기 시작했다. 대구컨벤션뷰로는 2003년 4월 설립한 국내 최초 컨벤션뷰로로 2013 세계에너지총회, 2015 세계물포럼, 2021 세계가스총회 등 국제회의 유치 및 도시마케팅을 위한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해 도시 이미지 개선 및 국내외 인지도를 증대할 수 있게 되었다. 미국, 유럽, 싱가포르, 일본, 홍콩은 관련법을 정비하고 경비 보조, 세금 감면, 컨벤션 도시 지정 등 각종 지원책을 국가적 차원에서 마련해 성공적으로 컨벤션을 유치하기 위한 전략을 세우고 있으며, 국가 차원에서 유치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컨벤션을 유치하기 위한 세계 각국 개최지들의 경쟁과열과 더불어 컨벤션뷰로의 역할과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는 점이다.지자체별 컨벤션뷰로가 전문화 및 특화된 기획력과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지역경제 활성화와 글로벌 도시 이미지 개선 및 지역산업 발전 촉매제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행·재정적 지원과 관심이 필요하다. 지역 컨벤션뷰로 경쟁력 강화와 자립화를 위해서는 지역산업 관련 글로벌 비즈니스 회의와 네트워킹 기획 및 발굴, 박람회 및 로드쇼 기획 및 개최, 컨벤션 전문 인력양성 프로그램 등 지원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도록 제도화해야 할 것이다.노윤구 경북대 RIS 전담교수
의료대란으로 번진 의대 증원
경북대 '내년도 의대 모집정원' 학칙개정안, 법제심의위·학장회의 통과
"더 미루기 힘들어"…계명대·영남대 의대, 13일부터 임상실습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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