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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현 생각] 민주주의 포기해'선' 안되는'거'
한 국가의 주권이 권력을 가진 특정 개인이나 특정 집단이 아닌 국민에게 있는 체제를 민주주의라고 할 때 민주주의의 꽃은 국민의 대표자를 뽑는 선거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선거를 통해 자유롭게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이러한 민주주의가 우리 사회에 완전히 뿌리내리기까지 많은 분들의 헌신과 희생이 뒤따랐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때로는 선거를 통해 선출된 정치인들의 행태에 실망을 하며 투표 무용론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투표권은 자동차의 조향장치인 핸들과 같다. 모두가 적극적으로 자신의 투표권을 행사할 때 권력자들은 국민의 뜻을 존중하고 국가의 정책방향을 국민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갈 것이다. 민주주의 선거는 포기해선 안 되는 거다. 도성현〈blog.naver.com/superdos〉
[경제와 세상] 의사집단의 '경제학'과 정부의 '정치학', 피해는 국민 몫
먼저 필수의료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의사선생님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하지만 이번 의사들의 의대 증원 반대 집단행동을 보면 염치없다는 말 외에는 할 말이 없다. 보건복지부는 우리나라 의사의 연평균 임금 2억6천만원과 지난 10년간 79% 인상은 모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 임상의사 수는 인구 1천명당 2.6명으로 OECD(평균 3.7명) 최저라는 통계를 의사 공급부족의 근거로 내세운다. 이에 반해 의사들은 적은 수로 장시간 노동하기 때문에 실제 수입은 OECD 평균의 1.5배밖에 안 된다고 주장하며, 심지어 이번 파업의 핵심인 전공의들은 "의사들이 국제 평균의 3배나 일을 하고 있다며 공급이 부족하지는 않다"고 반박한다. 의사를 3배 늘려야 한다는 근거가 될 수도 있는 통계를 의사 스스로 제시하면서도 의대 증원은 집요하게 반대한다. 이상하다. 일이 많아 인력을 늘려준다는데, 왜 반대할까? 의사들은 증원 반대의 주요 이유로 의료재정 붕괴가능성, 의료교육 부실화, 정부 일방통행 추진 반감, 심지어 공대 진학생들의 자질 저하로 우리나라 산업경쟁력 하락 등을 들지만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의사들이 솔직해져야 한다. 핵심은 지난 19년 동안 '의대 정원동결'이라는 의사 수 공급독점으로 확보한 초과이익 유지의 '경제학'이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보다는 시장 왜곡을 통한 고소득을 유지하기 위한 탐욕이 주된 이유다. 물론 의사들이 집단행동을 반복하는 것은 그간 집단행동 때마다 정부가 양보하여 국민보다는 의사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제도를 용인했기 때문이다. 정부의 무원칙 '정치학'에 기인한 정책실패가 의사집단을 강성 노조 뺨치는 특수 집단화한 주범이다. 현행 의료 체계하에서는 의사들이 진료가 어렵고 수입이 적은 외과·산부인과·소아과 등 필수의료는 기피하고 수입이 월등히 높은 피부과·안과·성형외과(피안성)를 선호하는 것은 당연하다. 심지어 일부 필수의료 전문의들조차 미용·성형에 종사하는 것은 정부가 실손 보험과 비보험 진료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고, 필수의료 분야의 수가를 과감하게 올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의사집단은 의사 공급통제를 통한 의료시장 왜곡으로 독점적 이익을 누리면서 정작 의사집단 내 일부는 시장원리에 충실, 즉 더 나은 수익을 좇아 피안성에 종사하다 보니 필수의료 분야는 의사가 부족하게 되어 의료서비스 공급마저 왜곡되는 것이다. 또한 등록의사 가운데 전문의가 차지하는 비율이 1980년 37%에서 현재 86%에 이르러 전문의가 과잉공급되고 있다. 실제로 동네 의원급 일차진료는 6년 과정의 의과대학만 졸업한 일반의(GP)나 가정의학과 전문의면 충분한데 대부분이 대학교육 포함 10년이 넘는 단과전문의 중심의 개업의가 주류이다. 이들 개업전문의 입장에서는 10년 이상 교육에 투자한 금액을 회수하기 위해서는 일종의 공급독점으로부터 보호받을 필요성을 느끼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의사들은 고귀한 생명을 다룬다는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정부도 법적 조항이나 규제 일변도로 옥죄기만 하면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도 있으니 신중을 기해야 한다. 하지만 필수의료 수가 인상과 필수의료와 지역의료에 적절한 보상체계 확립 등 추가 대책이 필요한 난제가 많지만 현재로서는 의대 정원 확대가 해결책이다. 그간 의사집단의 탐욕 기반 '경제학'과 정부의 무원칙 기반 '정치학'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 몫이었다. 정부는 이번이 의사집단의 '경제학'에 기인한 시장실패와 그간 정부의 '정치학'에 기인한 정책실패를 바로잡고 의료정상화를 위한 마지막 기회라는 비상한 각오로 국민만 보고 가야 한다.이재훈 에코프로 파트너스 대표이재훈 에코프로 파트너스 대표
[더 나은 세상] 탄소배출 없는 에너지는 모두가 육성해야 할 산업이다
기후변화의 주범이 화석연료라는 것이 밝혀지고 유엔을 중심으로 기후변화의 재앙을 막기 위해 1992년부터 기후변화 협약을 맺었고 2015년 파리에서는 기후변화 당사국 회의를 열어서 지구온난화 저지의 마지노선을 설정하는 노력을 하였다. 이는 산업화 이전의 지구의 평균온도보다 2℃ 이상은 절대로 넘기지 말아야 하고 가능하면 1.5℃ 이하로 유지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을 주요국 대통령, 수상들이 모여 선언한 것을 말한다. 각국의 온실가스 감축목표인 탄소중립 개발 이행 목표를 5년 단위로 제출하고, 급기야 2023년부터는 이러한 각국의 탄소배출 감축 선언의 이행을 점검하기 시작했으며 우리나라도 어떤 노력으로 얼마만큼 지구온난화 가스의 배출을 감소하였는지에 대한 보고서도 제출하였다. 그러나 그 결과는 매우 부족하여 2023년 말에 이미 산업화 이전 지구 평균온도보다 1.5℃ 이하로 지구 평균온도 상승을 막겠다던 선언이 무색하게도 1.6℃가량 상승을 돌파하였다. 이러다가는 2.0℃ 상승은 조만간 일어날 것이라는 충격적인 현실과 그 재앙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리라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 견해이다.이에 다급해진 국제사회는 각국의 자발적 탄소배출 저감 선언과 이행에 더는 기대할 것이 없어 실력행사에 들어가는 모양새이다. 탄소 중립을 위한 청정에너지 기술의 확산과 에너지 전환을 경제적으로 유도하기 위해 탄소 가격제(탄소세, 배출권거래제 등)를 도입하기 시작하였고 전 세계적으로 65개국에서 73개의 탄소 가격제가 시행되고 있다. 2026년부터 EU는 탄소국경조정세(CBAM)를 시행한다. 현재의 낮은 수준의 국제 탄소세 가격이 상승할 것으로 예견된다. 탄소국경조정세(CBAM, 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란 EU 이외의 국가로부터 수입되는 제품이 EU 내의 기준 제품의 생산에 사용되는 에너지로 인한 탄소 배출량을 초과할 때 징벌적 세금을 부과하는 것으로,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는 그 타격이 매우 심각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또한 이와 비슷한 인플레이션감축법(IRA, Inflation Reduction Act)을 의회에 통과시켜 시행하고 있어 사실상 우리나라는 보다 빨리 탄소 저감 에너지 개발에 박차를 가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우리나라는 난관에 봉착했지만 동시에 화석연료인 석유, 석탄을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탈탄소를 중심으로 하는 미래산업의 부각은 큰 기회이기도 하다. 수입액 전체의 3분의 1에 달하는 석유·석탄의 수입을 크게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선진국보다 더욱 탈탄소 시장의 새로운 제품 개발을 해야 한다는 절대적 조건이 수반되어야 한다.지난 정부와 현 정부 그리고 여당, 야당은 탈탄소 에너지 개발에 있어서 원자력에너지 개발과 신재생에너지 개발로 정책이 나누어져 있고 한번은 원자력을 줄여 그 산업생태계를 초토화하더니 이번에는 신재생에너지의 육성에 소극적이면서 원자력 살리기에만 열중하는 모습이다. 이러다가는 탈탄소 에너지의 양대 축인 두 산업 모두 타격을 입고 고사할 처지에 놓이게 된다. 두 산업 모두 우리나라는 강점이 분명히 있다. 두 산업을 모두 최선을 다해 키워도 석탄 화력 발전의 퇴출에 따른 에너지 빈자리 보충이 어려운 판에 정치가 앞장서서 민간이 열심히 키워나가는 중요한 산업의 생태계를 고사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정재학 영남대 교수정재학 영남대 교수
[시선과 창] 58년 개띠의 미안함, 투표로 덜자
김형, 우리는 '베이비부머'라고 늘 여론의 주목을 받았지. 농경사회, 산업사회, 지식·정보사회, 제4차 산업혁명 사회를 직접 경험한, 지구상 어디도 존재하지 않는 특별한 세대지. 1958년 출생아 수는 99만여 명, 1959년 100만명을 넘기니 합하면 200만명, 대단한 숫자야. 또래가 많으니 당연히 경쟁이 심할 수밖에 없었잖아. 콩나물 교실로도 모자라 3부제 수업을 한 초등학교. 중학교 무시험 진학, 대구서 고등학교를 입학한 우리는 경쟁 입시의 마지막 세대였고, 입시 부정 사고로 입학시험을 두 번이나 치른 세대잖아.우리는 모두 가난했지만, 절망하지는 않았지. 수돗물로 점심을 때우고 평행봉에서 차오르기를 했어. 학도호국단, 예비고사와 본고사 등이 고교 시절을 일컫는 말이지. 대학 77학번으로 학생 운동도 했고, 역사의 격변기도 여러 번 겪었어. 막걸리를 놓고 열변을 토하기도 했지. 최전방에서 군 생활도 했어. 입학하던 해 대학가요제가 처음 열렸지.다행히 우리나라가 경제 성장기여서 졸업 후 일자리는 찾았지. 대부분 30세 전에 결혼하고 자녀도 낳았지. 자기 영역에서 최선을 다했고 나름의 성취도 이루었어. 잘나갈 때 IMF 사태를 만나 조기 퇴직하는 1세대가 되었지. 고학력 실업 문제, 노인 일자리 등 새로운 사회 문제가 대두되었지. 배우기도 했고 약간의 경제력도 갖춘 노인들이 확 늘어나는 세상이 되었으니까.시골서 나고, 도시서 배운 나도 힘겨웠지만 이겨냈고, 직장 생활을 통해 국가와 사회 발전에 이바지했다고 생각했네. 그런데 어느 칼럼에서 자식 교육을 잘못한 세대라고 책임지라더군. 오로지 내 자식만 잘되면 그만이라는 천박한 생각을 지닌 세대라고. 곰곰 생각해 보니 그렇기도 해서 세상에 조금 미안하네. 우리 대부분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첫 아이를 낳았지. 우리 아이들이 바로 MZ세대야. 이 아이들의 좋은 점이야 당연히 많지만, 결혼·출산에 부정적이고 공동체보다 자신을 생각하여 자신을 희생하는 것에 부정적인 세대라고도 평가하네. 특히 돈과 공부 지상주의에 빠진 우리 세대, 그보다 더한 자식 세대라고 나무라더군. 김형, 그래도 우리가 누군가? 세계 어디에도 없는, '약간의 경제력을 갖춘 고학력 은퇴자' 아닌가. 자식 교육 문제는 일부 생각해 볼 점이 있지만, 그래도 경제 성장의 주역이고, 국가 발전을 이룩한 핵심 세대잖아. 그런데 우리도 제법 나이를 먹어 온전한 몸과 마음으로 사회에 헌신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마침 다시 중심에 서야 할 때가 왔네. 총선이 눈앞이지 않은가. 바르게 선택해야 나라가 발전하지 않겠나.누구를 선택하랄 수는 없지만, 이런 후보는 찍지 마세나. 양심과 도덕, 법과 규범을 무시하는 사람은 공동체를 해하는 사람이야. 신념이나 철학을 유불리에 따라 바꾸는 사람은 시민을 멍청이로 본다는 뜻이지. 말 바꾸기가 능한 사람도 같은 부류겠지. 일부 시민을 특정해서 모든 국민이라고 속이는 사람은 분열을 부추기는 사람이고 권력을 사유화할 사람이야. 상대의 약점만 강조하는 사람은 자기 장점이 없는 사람이지. 시민을 대표할 만한 역량을 갖추지 못한 채 욕심만 앞세우는 사람은 부여된 권한을 엉뚱하게 써서 세상을 해롭게 할 거야.김형, 200만명이 총선에서 바르게 선택하면 세상에 보탬이 되겠지. 우리 자녀 세대들이 더 나은 제도와 문화 속에서 살 수 있겠지. 더 성장하고 발전하는 대한민국이 되겠지. 꼭 투표장에 가서 제대로 된 사람을 뽑으세. 그래야 우리 미안한 마음도 덜 수 있을 테니까. 박정곤 (대구행복한미래재단 상임이사)박정곤 (대구행복한미래재단 상임이사)
[김요한의 도시를 바꾸는 시간] 인재가 지역을 바꾼다
지방은 위기다. 위기의 본질은 새로운 기회를 잡을 준비를 못 한 것이다. 기회가 많을수록 그 기회를 잡으면 더 큰 도약을 하지만, 그 기회를 놓치면 더 큰 위기에 직면한다. 2019년 2월 구미시는 'SK하이닉스 반도체 특화클러스터' 유치에 실패했다. SK하이닉스는 용인을 선택했다. 인재가 문제였다. 고급 인력은 수도권을 벗어나려 하지 않고, 대구경북에서는 인재를 구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구미 시민들이 생각하는 구미의 취약점은 교통, 교육, 문화·예술 등 정주여건이었다. 과거에는 기업과 산업단지 관점에서 '생산성'이 중요했다면, 지금 4차산업혁명 시대에는 인재와 정주여건 관점에서 '매력도'가 더 중요하다.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지정된 지 5년이 지났지만, SK하이닉스 반도체공장은 첫 삽조차 뜨지 못했다. 2000년대 지식기반사회로 진입할 때부터 인재와 정주여건 관점에서 지방에 투자를 했다면 지금 우리는 더 큰 도약을 맞고 있을 것이다. 2023년 7월 경북 구미는 경기도 용인시·평택시와 함께 반도체특화단지로 지정되었다. 놓친 기회가 다시 왔다. 대한민국의 지난 압축성장은 인적 자원에 기반한 성장이었다. 섬유 등 노동집약적 산업에서부터 반도체 등 기술집약적 산업에까지 산업화단계별로 우수한 인재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부모세대의 희생적 교육열과 지방의 희생적 인재유출이 있었다. 지방은 악순환에 있다. 열악한 일자리는 인재가 안 오고, 괜찮은 일자리는 인재를 못 구한다.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일자리, 교육, 문화의 수도권 쏠림으로 인해서 지방은 인재유출로 소멸위기다. "경기도는 계란 흰자 같대. 서울(노른자)을 감싸고 있는 계란 흰자." 서울 출퇴근에 청춘을 바치고 있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 나오는 대사다. 공직 퇴임 이후, 지난 2년간 전국 곳곳에서 더 나은 내일을 고민하는 청년들과 지역공동체를 위해 애쓰는 분들을 많이 만났다. 청년들은 경기도가 계란 흰자라면, 비수도권 지방은 프라이팬이라고 했다. 모두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지방청년들의 상대적 박탈감이다. 청년들은 더 많고 더 다양한 기회를 찾아서 수도권으로 떠난다. 지금부터라도 인재와 정주여건 관점에서 과감한 전환과 투자를 해야 한다. 탐색과 실험, 훈련과 창업부터 재도전 기회까지 차별화된 기회를 제공하고, 골목과 거리, 창업공간부터 개방적인 문화까지 매력적인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이제 지방은 인재공급이 아니라 인재활용과 지역정착이 더 시급하다. 지역인재가 지역을 바꾸면, 떠나간 인재도 돌아온다. 지역과 인재 대표김요한 지역과 인재 대표
[특별기고] 응급실을 지켜라!!
며칠 전, 밤 11시 진료하는 응급실에 호흡 곤란이 심한 70대 환자가 다른 병원에서 전원 돼 내원했다. 오랫동안 다른 병원에 입원했다가 상태 악화로 급하게 상급병원 응급실을 찾은 것이다. 진료 자료도 한 뭉치 가져왔다. 당시 환자는 열 나고, 숨차고, 맥박도 빨랐다. 응급실에서도 급하게 환자를 처치하는 소생실로 옮겨 진료했다. 호흡 곤란에 대한 응급처치 이후 환자가 왜 이럴지 고민하면서 가져온 자료와 새롭게 검사한 자료를 분석했다. 그리고 치료 방침을 잡아가는 과정에서 약화 원인을 찾아냈다. 이에 대한 해결을 위해 신장내과, 감염내과, 비뇨의학과 교수 협진을 통해 결과가 나오고, 치료 방침을 잡으니 새벽 1시가 넘었다.환자에게는 열을 내릴 수 있도록 항생제와 수액 요법을 시행 후 소변이 전혀 나오지 않아 응급 투석을 했다. 이후 신장 응급 시술을 하면서 환자는 점점 호흡곤란에서 벗어나 얼굴에 생기가 돌아왔다. 숨이 찬 증상도 없어지고 원인이 해결된 시간은 새벽 5시쯤 됐다. 그때 내원할 때 울면서 면담한 딸이 찾아와 고맙다고 인사했다. 그냥 지켜봤으면 돌아가셨을 건데 이렇게 숨쉬기 편하게 해줘 연신 고맙다며 울먹였다. 순간 가슴이 먹먹해지고 밤을 꼬박 새어 진료한 찐한 보람을 느끼게 됐다. 또한, 같이 진료 봐준 교수도 감사하고 무엇보다 이런 의료시스템을 갖게 해준 게 너무 즐거웠다. 응급실이라 생각하면 급박하고 무섭고 힘들게만 생각하지만 다 그런 건 아니다. 급박하나 정교해야 되고, 무섭지만 사람에 대한 정이 가득하다. 무엇보다 힘들지만 큰 보람이 있는 곳이다. 이러한 우리나라 대학병원 응급실 시스템은 여러 해를 거친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졌고, 이에 대한 사명감을 가지고 있는 여러 의사 선생님의 노고로 이뤄졌다.이번 의대 정원 증원에 따른 전공의 미출근으로 대학병원 응급실은 너무 힘든 과정을 겪고 있다. 일주일에 24시간 근무 3번 정도 하면서 의료진 피로도가 최대치로 올라가 있다. 그리고 어려운 환자가 왔을 때 해결할 수 있는 여력이 점점 소멸해 가는 것을 느끼고 있다. 곧 나타날 의사 피로도가 응급의료 시스템에도 영향을 끼치게 되고, 이는 곧 정성으로 대해야 하는 환자들의 피해로 이어질 게 명확하게 보인다.어릴 때 재미나게 읽었던 솔로몬의 유명한 '진짜 엄마 가짜 엄마 판별하기'에서 '아이를 반으로 자르거라'라는 말에 양보하는 엄마가 '진짜 엄마다'라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가 진정으로 국민을 아낀다면 이쯤에서 의·정의 싸움은 멈춰야 한다. 정부는 강압적 자세로 의료인과 시스템을 대한다면 일하고 있는 응급실에서 매일 일어나고 있는 그 좋은 공공선이 없어지고 사명감 높은 의사의 회의가 짙어진다. 그리고 학생들과 전공의들도 완충할 수 있는 전향적 자세를 가지고 대화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아기의 진정한 엄마가 될 수 있다. 진짜 아기엄마 맘으로 진심으로 우리가 지켜야 할 건 우리 자존심이 아니라 병들어서 힘들고, 아파서 힘든 국민에 대한 따뜻한 마음과 건실한 의료적 접근이다. 진료하고 있는 응급실은 어떻게든지 지키겠다. 이럴 때일수록 더 열심히 고민하고 행동하면서 더 따뜻하게 환자를 대하겠다. 다만 이렇게 열심히 만들어 놓은 의료적 성과와 시스템을 정부는 좀 더 이해해줘 솔로몬 이야기의 진정한 엄마가 될 수 있는 마음가짐과 행동을 가지면 좋겠다.김창호 〈칠곡경북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김창호 〈칠곡경북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김종현의 블록체인과 AI] "비트코인 투자 조심하세요"
비트코인이 1억원을 넘어섰군요. 칼럼을 시작할 때만 해도 1억은 꿈의 숫자였는데 많은 유튜버나 해외 인플루언서들이 2억, 5억을 외치고 있습니다. 코인 마켓은 엄청나게 위험합니다. 1억이 몇 달 사이에 500만원이 되기도 하고, 심지어 거래소에서 거래중지 될 수도 있습니다. 부디 다른 이들이 몇백 배 몇천 배 벌었다는 소리에 나도 해봐야지 하시는 분 제발 없으시길 합니다. 칼럼을 시작할 때 코인 투자 등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겠다고 약속드렸지만 경험자로서 경고는 드려야 할 것 같아 거듭 조심하시라는 말씀드립니다. 2008년 리먼 사태를 기억하시나요? 부동산 대출을 담보로 어마하게 발행된 미국 달러를 경제 위기의 원인으로 비트코인이 시작되었습니다. 총발행량을 2천100만개로 정하고 추가로 발행되지 않으며 소수점 아홉째 자리까지 나뉘어 거래할 수 있게 설계가 되었습니다. 중앙통화 관점에서는 현물의 가치가 현금 대비 지속적으로 상승하지만, 2천100만개의 한정적인 숫자로 인해 코인의 가치가 상승하고 거래되는 트랜잭션이 공개되어 큰돈의 움직임 또한 판단할 수 있게 설계되었죠.또한 채굴을 하면 비트코인이 생긴다고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신데 채굴이라는 것은 주어진 조건의 숫자를 빨리 찾는 것이며 이때 해시라는 숫자(digit)를 찾고 그것이 블록이라는 것을 만드는 데 쓰이게 되고 이때 엄청난 컴퓨터 자원과 소모하는 전기에 대한 보상으로 일정 수수료 형식의 비트코인을 채굴자에게 보상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이러한 보상체계는 4년마다 절반으로 줄어들게 설계되었으며 보상은 절반이 되지만 채굴의 난이도 상승에 따른 컴퓨팅파워는 승수로 올라갑니다. 투자를 위해 거래소에서 구매한 사람이라면 100만원에 사서 100만원에 팔 수도 있겠지만, 채굴자를 통해 생성되는 비트코인은 2배 이상 원가를 더 지불하게 되어 아주 위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아마 원가 이하 판매는 힘들 겁니다. 그래서 지난 4년마다 벌어지는 반감기에 비트코인의 가격 상승이라는 이벤트가 벌어졌습니다.상승은 이렇게 기본적으로 4년마다 반감기라는 이벤트를 통해 벌어지고 있고요. 하락은 왜 오는가? 마운트 곡스 사건이 제가 알고 있는 최초의 가장 큰 비트코인 가격 하락 이벤트였는데요. 일본에 설립된 마운트 곡스라는 거래소가 전 세계 70%의 비트코인 거래를 도맡아 하다 80만개의 비트코인을 해킹당합니다. 지금 기준으로 따지면 80조원 정도이니 어마어마하게 느껴지시죠. 그러한 해킹 이벤트로 각 나라 정부에서의 부정적인 규제 등이 발표될 때마다 가격 그래프가 수직 하락하는 모습을 보여 줬습니다. 국내에서는 2017년 가을 겨울 정부의 규제 의지가 가장 큰 이벤트였던 거 같습니다. 새로운 이벤트는 항상 많은 투자자들을 공포에 휩싸이게 하였습니다. 불과 30분도 안 되는 시간 만에 잔고가 25% 정도 남는 것을 보기도 하고 10여 분 만에 원상회복하는 것을 보며 많이 놀라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조심하는 것이 아니라 겁이 없어지는 경험을 하게 되고, 지금은 제가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오르는 것은 예정이 되어 있다, 나는 반드시 성공한다 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떨어지는 것은 절대 예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2010년 이후 많은 세계 투자사들이 알고리즘을 통한 주식매매를 진행하였으나 알고리즘도 대응하지 못한 여러 번의 하락장이 존재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철저하게 규칙을 따라가는 알고리즘조차도 시장을 앞서가지는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라 마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조심하십시오.〈주〉루트랩 대표이사김종현 〈주〉루트랩 대표이사
[이하석의 발견과 되새김] "어머, 매화가 당신 땜에 핀 게지요?"
# 화신(花信)의 그늘봄꽃 소식과 함께 말들이 퍼진다. 올봄은 말의 성찬으로 풍성해질까? 총선을 두고 하는 말이다. 꽃들이 만개하면서 그 향기가 짙듯, 하마 온갖 말들이 우리 사회를 풍미한다. 꽃 소식은 이미 와락, 밀려오는 느낌이다. 청도 읍성 주변에 있는 한 식물원에서 수선화가 가득 핀 걸 본다. 그 곁에는 복수초 꽃이 노랗게 군락을 이루고 있다. 매화도 벌써 피었다. 동백의 만개는 아직 조금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지난주 거제 바람의 언덕 주변에서 동백숲 길을 걸었는데, 꽃들이 듬성듬성 붉은 기를 내보이는 상태였다. 아마도 이번 주말이나 내주에는 만개한 꽃들은 물론 산책길에 떨어져 있는 처연한 낙화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삼월은 그런 꽃소식으로 설레야 한다. 자연의 순환이 가져오는 경이로운 광경을 두고 그려보는 것이겠지만, 올봄의 설렘은 거기에다 내가 좋아하는 이들의 눈을 통해 꽃들을 보면서 말들을 꽃 피우는 것이 당연히 더 의미 있어 보인다. 그래, 좀은 유치하더라도 "어머, 매화가 당신 땜에 핀 게지요?"라는 말이 나오는 광경을 그린다. 나는 그렇게 올봄을 '보고, 듣고' 싶다. 그러나 올봄은 온갖 말들로 피어서 시끄럽고 분답한 철이 될 듯하다. 선거 바람이 꽃향기처럼 퍼졌으면 하지만, 역시 아닐 듯하다. 새 사람을 뽑고 그리하여 새로운 봄 사회가 열리기를 꿈꾸지만, 현실은 그러한 바람과 달리 여전히 꿈의 그늘을 보여줄 뿐이다. 무엇보다 말들이 봄의 화신처럼 그리움을 담은 말이 되지 못해 안타깝다. 말은 추상적이고, 기호적이며, 상징성이 강하기 때문에 말이 많을수록 의미는 복잡해지고 탁해진다. 그래서 예부터 침묵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말이라 한 것이리라. 선거가 치열해질수록 그 말들 때문에 어지럼과 살벌함이 느껴지니까 하는 말이다. 선거판의 말들이 대개, 살리는 말들이 아니고 죽이는 말들이기 때문이다. #우울한 정치'극단의 정치, 분노의 언어'라는 말을 듣는다. 어느 신문 사설의 제목이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공천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본격적으로 총선 운동에 돌입하는 듯하다. 무엇보다 아쉬운 건 공천 과정이 국민의 뜻대로 이루어지긴 어렵다는 걸 보여주었다는 데 있다. 여전히 '친윤 불패'니 '친명 불사'라는 말이 대세를 이루는 듯해서 씁쓸하다. 이런 쏠림이 불식되지 않는 한 선거가 국민의 축제가 되긴 불가능하다. 오히려 국민으로부터 외면당하거나 무관심을 불러올 수 있을 뿐이다. 충성 경쟁이나 강성 후보의 득세가 판을 치면 결국 자기들만의 혈투로 난장판이 되기 마련이다. 막말 같은 '분노의 언어'는 거기서 나온다. 정당들마다 진영논리에 갇혀 허우적대는 모습이다. '패륜 공천' '목발 경품'이란 말이 살벌하다. 상대 당을 '범죄자 집단'으로 매도하기도 한다. 때로는 조선 시대에 죄인을 두고 쓴 말들로 상대 후보를 질타하기도 한다. 상대를 겁주고, 자신을 우월적인 존재로 부각하지만, 결국은 그 화가 자기에게 돌아올 뿐이다. 비극적인 희극이 아닐 수 없다.우리의 선거 문화 수준을 보여주는 듯해서 여전히 우울하다. 선거가 축제가 되기 위해서는 말을 정화하고, 말의 품위를 지키는 가운데 확실한 대안을 제시하면서 상대와 토론하면서 경쟁해야 한다. 그런데 왜 그러한 풍토가 되지 않을까? 막말을 타이르고 정쟁을 중재할 '어른'이 없어서 또는 큰 정치가 갖는 균형감을 마련하지 못해서 그러할까? 양대 정당의 구조가 화해는 뒷전에 두고 대립으로만 치달으면서 말들이 각박해질 수밖에 없다. 왜 우리의 선거판은 아이들 학급 반장 선거보다 못하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 지경이 되는 것일까?#말의 꿈탈무드의 명언이 있다. "물고기는 항상 입으로 낚인다. 인간 역시 입으로 걸린다." 말은 힘이 있지만, 화를 자초하는 것일 수 있음을 경계한 말이다. 말이란, 말하는 자와 듣는 자라는 구조를 갖기 때문에 항상 상대에 대한 배려가 따른다. 언어 구사에 대한 책임이 있는 것이다. 자기가 하는 말이 상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지, 늘 헤아리며 신중해야 한다. "칼로 벤 상처는 쉽게 아물지만, 말로 벤 상처는 치유되지 않는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총선은 말의 성찬을 이루지만, 그 말들이 '분노의 언어'인 한 유권자의 귀에 수용되지 못함은 물론이다. 구체적인 대안이 없이 수사만 번지르르한 말 역시 신뢰를 얻지 못한다. 막말은 더욱 조심해야 한다. 누구의 말마따나 그건 거의 '매운맛' 중독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우리 정치의 한복판은 막말의 범람이라 할 만큼 자극이 강하다. 상대 후보를 자극하고 분노를 부추기기에 각박한 상황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진정성 있는 말이 그립다. 좋은 말은 수사의 힘으로 나오는 게 아니다. 삶과 생각의 진정성이 받침이 되어야 설득력을 갖는다. 우리 정치의 한복판에서 부대끼며 국민을 위한 개진의 몸부림을 친 삶에서 나온 말은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밖에 없다. 가령 고(故) 노회찬이 17대 총선을 앞두고 방송사 토론에서 한, 양당 체제 비판의 말처럼 말이다. "50년 동안 똑같은 판에다 삼겹살 구워 먹으면 고기가 시커메집니다. 판을 갈 때가 됐습니다." 이 말은 삼겹살 좋아하는 우리 국민의 식성에 딱 맞아떨어지는 말로 회자됐다. 상대를 공격하는 말이 아닌, 너와 내가 함께 반성하여 살리자는 말을 친숙한 우리의 식습관을 들어 말한 것이다. 그야말로 국민을 의식하고 국민이 바로 선거의 주인임을 내세우는 말이기도 했다. 안개처럼 앞이 보이지 않는 말의 성찬 속을 헤매면서 문득문득 꿈꾸어 보는, 봄꽃 같은, 화사하면서도 향기 넘치는 말. 우리는 막말이 아닌, 그런 말을 듣고 싶은 것이다.시인이하석 시인
[시시각각(時時刻刻)] 잘사는 초중고, 가난한 대학
지난해 1인당 GDP 3만3천745달러를 기록했다. 우리나라가 가난한 후진국에서 세계가 부러워하는 선진국이 될 수 있었던 요인들 중 누구나 인정하는 대한민국의 교육열이 바로 그 중심에 있다.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우리나라는 내국세수의 일정 비율을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지급하는 내국세 연동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내국세 20.79%를 재원으로 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은 인구 팽창기인 1972년1월1일에 시행되어 50년 세월 동안 유지되면서 우리나라 초중등교육의 밑거름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내국세와 연동된 세수는 경제성장에 비례하여 그 재원이 증가한다. 덕분에 초중고는 잘살게 되어 등록금도 사라지고 무상급식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2023년 출산율 0.72명을 기록했고, 학령인구는 계속 줄어들고 있다. 학령인구는 2020년 546만명에서 2060년 302만명으로, 앞으로 30년간 44.7%나 감소할 전망이다. 급기야 2022년 못 쓰고 남긴 초중고 교육예산이 7조5천억원이라고 한다. 학생 수는 줄고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계속 늘어나 초중고생 1인당 교육교부금 액수가 2023년 1천207만원에서 2032년 3천39만원, 2060년에는 5천448만원 수준에 이른다고 한다. 초중고는 넘쳐나는 예산을 소비하고자 학생과 교사에게 무상으로 디지털기기를 제공하고, 입학준비금이나 교원 주택임차비까지 지원한다. 내국세 연동 총량 산정방식의 현행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은 지나치게 비효율적인 구조가 되어 초중등 교육투자만 세계 1위 수준이라는 기형적인 재원배분 결과를 가져왔다.반면 대학의 경우는 대학등록금 동결 정책이 대학의 재정자립도를 악화시키고 있다. OECD 38개국 중 고등교육 1인당 교육비가 초중등교육 1인당 교육비보다 낮은 나라는 그리스를 제외하고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사립대학의 경우 등록금수입이 대학 총수입의 50% 내외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이로 인해 등록금동결정책 이후 사립대학의 재정은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대부분 국가는 전체 경쟁력과 고등교육의 경쟁력이 유사한 수준이나, 우리나라 고등교육은 4~50위권 수준으로 정체되고 있다.결국 초중고는 국민소득 대비 투자가 세계 최고 수준이나 대학은 세계 최하위 수준으로 비효율적 교육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으로 볼 때 교육 분야에서의 재원조절이 필요한 시점에 이르렀다고 보인다.과거에는 대학진학률이 낮았지만, 이제는 89%의 학생이 대학에 진학한다. 대학교육도 무상교육으로 전환할 때가 되었다. 무상교육은 교육의 기회를 넓혀주고 실질적인 평등을 추구하는 수단이 된다. 그리고 대학의 국제경쟁력이 미래 한국의 국제경쟁력이 된다는 점에서 고등교육에 대한 투자 확대가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향후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총량 산정방식을 초중등 학령인구 변화에 맞추고, 대학교육과 평생교육 및 직업교육의 재정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 2025년을 기준으로 추산한 사립 일반대학과 국공립 일반대학의 무상교육에 필요한 예산이 10조~11조원이라고 한다. OECD 평균인 GDP 1% 수준으로 확보할 경우 교육의 무상화가 가능할 것으로 추산된다. 프랑스, 독일 등 서구선진국은 지금의 우리나라보다 GDP가 훨씬 낮은 시절부터 모든 교육의 무상화가 이루어졌다. 교육재정의 분배조절로서 이룰 수 있는 상황이라면 서둘러 시행 가능한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학부모의 교육비 절감은 출산율 상승에도 크게 영향을 주어 국가 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낼 것으로 기대해 본다. 권세훈 <주>비즈데이터 이사·파리1대학 법학박사권세훈 (주) 비즈데이터 이사·파리1대학 법학박사
[단체장의 생각:長考] 안동 사계절축제로 'K-PLAY 도시 안동'을 꿈꾸다
축제를 의미하는 'festival'은 성일(聖日)을 뜻하는 'festivalis'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다. 그러나 축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사회적 통합을 위해 기능하는 종교적 형태, 해방을 향한 문화, 인간의 유희적 본성이 문화적으로 표현된 것 등 시대와 문화에 따라 다르게 인식된다.그렇다면 최근 도시마다 문화관광축제를 경쟁적으로 개최하는 이유는 뭘까? 공동체의 결속과 놀이를 통한 비(非)일상의 즐거움 때문일 것이다. 흔히 인간의 고유한 속성을 '사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는 인간을 '호모루덴스(Homo Ludens)'로 정의하며, '놀이 자체가 곧 문화'라 했다. '놀 수 있다는 것'은 '정신이 있다'는 것이며, 놀이할 때, 비로소 인간 삶의 특별한 의미가 생긴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의 문화는 놀이로부터 나왔으며, 또한 '놀아지는' 것이다. 바야흐로 꽃 피는 봄이다. 저출산, 청년실업, 경기 부진 등 직면한 문제로 봄이 봄답지 않다. 그러나 고민 속에도 또 다른 희망을 꽃 피우기 위해 안동사계절축제로 세계인을 매료시키고자 한다.경북 안동은 정신문화에 기반한 놀이문화가 발달한 곳이다. 이에 안동의 지역적 특성을 반영하여 봄과 가을에는 차전장군노국공주축제와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을, 계절적 특성을 반영하여 여름과 겨울에는 수(水)페스타와 얼음축제를 개최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축제의 궁극적인 목적인 지역브랜드 제고와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며, 관광객 1천만 시대를 열고자 한다. 안동벚꽃축제가 3월27일부터 5일간 낙동강변 벚꽃길과 탈춤공원 일원에서 'Spring 팡! 팡!'을 주제로 신호탄을 쏜다. 5월에는 3일부터 7일까지 5일간 안동 시내 일원에서 '2024 차전장군노국공주축제'를 연다. 색동놀이를 주제로 한 테마파크형 축제로 낮에는 기존의 민속놀이를 새롭게 재해석해 콘텐츠화한 안동만의 색동놀이를, 밤에는 스펙터클한 차전대동놀이와 유명 연예인 공연이 펼쳐진다.물의 도시 안동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여름엔 '수(水)페스타'가 열린다. 무더위를 식혀주는 시원한 소나기 같은 이 축제는 어린이 물놀이장, 물 관련 액티비티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여 시민과 관광객에게 비일상의 유희를 제공하고자 한다.'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은 가을에 열리는 대한민국 명예대표 축제로 세계인이 주목하는 축제이다. 유희자와 관객이 탈과 탈춤으로 만나 모두가 신명 나는 축제로 이름이 높다. 국내는 물론 세계 탈춤을 한 자리서 만나볼 수 있는 유일한 축제이다.겨울에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바탕으로 '암산얼음축제'를 개최한다. 영남권 최대 겨울 축제로 어른에게는 추억을, 어린이에게는 새로움을 선사하며 관광객의 안동 방문을 유도한다.전통과 지역 정체성을 재미와 감동이 있는 콘텐츠로 재해석하여 세계인이 안동의 정과 흥과 멋에 취해 안동에서 한판 신명 나게 놀 수 있기를 바라며, 'K-PLAY 대표 도시 안동'이 되고자 한다. 가장 지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성공신화, 안동의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 권기창 안동시장권기창 안동시장
[단상지대] 진상은 자기가 진상인지 모른다
'진상'은 본래 '진귀한 물품이나 지방의 특산물을 윗사람에게 바치는 행위'를 의미했으나, 진상이 지닌 폐단이 부각 되면서 '허름하고 나쁜 것을 속되게 이르는 말'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요즘 '진상'은 이 말의 부정적 의미를 차용하여 '못생기거나 못나고 꼴불견이라 할 수 있는 행위나 그런 행위를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는데, '진상 떨다'라는 말은 '유독 까탈스럽게 굴다'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세상 어디에나 진상은 있고, 진상은 자신이 진상인지 모르고, 진상이 아닌 사람은 괜히 자신을 돌아보며 내가 진상짓을 했나 하고 반성한다.유난히 타인을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국선전담변호사라서 국선사건만 한다. 나의 고객들 중에도 지나치게 예민하고 의심이 많아서 처음부터 따지듯 대하는 사람, 화가 많으신 분도 있고, 성실한 변론을 압박하시는 분도 있다. 특히 성실변론압박 유형 중 기억나는 사건이 있다. 개가 행인을 물어서 상해를 입게 했다는 이유로 기소된 피고인은 내게 자신의 개는 결코 사람을 물지 않았다면서, 개를 목숨처럼 사랑하지만 사람을 무는 개는 키울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재판에서 지면, 저는 바둑이(가명)를 살려두지 않을 겁니다. '내가 생명을 방생해서 덕을 쌓아도 모자랄 판국에 변론을 대강해서 실체적 진실이 묻히고 그것 때문에 바둑이가 죽는다면….' 나는 충격의 도가니에 빠져서 한동안 시름시름 했고 동네에서 산책하는 개만 봐도 마음이 무거웠었다.예전에 내 재판을 기다리면서 방청하는데, 어떤 사람이 위험한 물건을 들고 다른 사람을 때려서 '특수상해죄'라는 죄명으로 재판을 받고 있었다. 그 사람은 법정에서 '특수'를 죄명에서 빼달라고 조르고 있었다. 검사님은 공소장을 변경할 계획이 없다고 하시고 판사님은 공소장을 강제로 변경시킬 수가 없는데, 이 사람이 계속 판사님께 시비조로 말했다. 언성을 높이며 따지는 피고인에게 판사님은 판단해 보고 피고인 주장대로 위험한 물건을 들고 하지 않았으면 그 부분은 무죄가 되는 것이지, 판사가 검사에게 죄명을 바꾸라고 지시할 수는 없다고 차분히 설명하셨다.이 사람은 조르다 안 되니까 화를 내며 "아, 솔직히 사람 싸다구 때리는 게 죕니까? 네?"라고 소리 질렀다. 나는 가슴 속에서 삼선 슬리퍼를 꺼내어 파파팟 까치발로 바닥을 짚고 공중부양해서 피고인석으로 날아간다. 그리고 슬로 모션으로 슬리퍼를 든 손을 위로 치켜올렸다가 그 난동남의 오른쪽 뺨에 쫘악 날리고. "싸다구 때리는 게 죄가 아니라며"라고 말하며 착지한다. 나는 이런 상상을 하며 품위를 잃지 않고 서류를 보고 있었다.재판이 끝나고 선고기일을 정해서 그에게 알려주니 그는 욕설을 하면서 반말로 "안 나와"라고 했다. 방청석에 앉은 사람들이 일제히 코브라처럼 고개를 들었다. 그 사람은 욕설을 섞어 투덜거리다 나갔다. 재판장님은 피고인을 감치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그날 재판이 많아서 방청석에 다들 지연된 재판을 기다리고 있었다.충격적인 욕설에 방청석도 쇼크가 가시지 않았는데, 재판장님이 몇 초 정도 움직임 없이 가만히 있다가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음 재판을 차분하게 이어나가셨다. 살아있는 부처 수준의 대처와 그 이후에도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온화한 재판 진행에 놀랐다. 법정을 나오면서 나만 사바세계에 있는 것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산스크리트어로 '사바'란 견디다, 감내하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은미 변호사이은미 변호사
[송재학의 시와 함께] 이윤학 '너는 어디에도 없고 언제나 있다'
오른손 검지 손톱 밑 살점이 조금 뜯겼다.손톱깎이가 살점을 물어뜯은 자리분홍 피가 스며들었다. 처음엔 찔끔하고조금 있으니 뜨끔거렸다.한참 동안,욱신거렸다.누군가 뒤늦게 떠난 모양이었다.벌써 떠난 줄 알았던 누군가뜯긴 살점을 통해 빠져나간 모양이었다. 아주 작은 위성 안테나가 생긴 모양이었다. 너는 어디에도 없고 언제나 있었다. 이윤학 '너는 어디에도 없고 언제나 있다'자신의 몸이 세상 어딘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건 시인의 생각이다. 그때 몸은 예민하리라. 따라서 민감한 몸이 이별을 먼저 알게 된다. 감정의 메커니즘은 언제나 선연하다. 수용하기 힘든 감정은 분홍 피처럼 몸에 새겨진다. 마치 "벌써 떠난 줄 알았던 누군가 뜯긴 살점을 통해 빠져나간 모양새"이다. 그러기에 "너는 어디에도 없고 언제나 있었다"라는 언술은 너와의 이별을 차츰 받아들인 품새이다. 잘 받아들이거나 억지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시간을 몸에 새긴다. 어떤 이별은 몸이 잊지 못하게 만든다. '너 잘 견디고 있어'라고 위로를 건네지만 커다란 이별은 슬픔에서 위로까지 모두 삼킬 뿐이다.송재학 시인
[경제와 세상] 모방 욕망과 정치 과열
4·10 총선을 앞두고 온 나라가 시끄럽다. 욕설과 비난, 고발이 난무하는 진흙탕 싸움이다. 전국 254개 지역에서 경선에 참여한 사람이 무려 800여 명이 넘고, 46석의 비례대표 희망자까지 더하면 1천명이 넘는다. 뜨지도 못하고 가라앉은 정치예비군까지 포함하면 아마 수천 명을 넘어 다섯 자릿수가 거뜬할 것이다. 거짓말과 막말을 일삼는 정치꾼들이 부끄러운 줄 모르고 설쳐대는 이 난장판은 국민들에게 정치란 곧 분노 유발자다. 영국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산하 EIU가 최근 발표한 2023년 '민주주의 지수(Democracy Index)' 보고서에 따르면, '완전한 민주주의(full democracies)' 국가로 동아시아에서는 일본, 한국, 대만을 선정했다. 완전한 민주주의 체제에 사는 인구는 세계인구의 7.8%뿐이다. 반면 레가툼 연구소(Legatum Institute) 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정치인에 대한 신뢰도는 전 세계 167개국 가운데 114위다. 경제는 2류, 정치는 4류라 했던 삼성 이건희 회장의 말이 맞는가 싶다. 국민들은 세계로 열린 시장에서 먹고사느라 힘든데, 정치인들은 먹이 걱정 없는 가두리 양식장 안에서 서로 뜯어먹으려고 권력투쟁을 벌이는 모습이 그렇다. 지금 우리 정치를 난장판으로 만든 가장 큰 원인은 면책특권과 불체포 특권을 비롯해 국회의원들이 누리는 180여 개의 엄청난 특권이다. 정치적 이념이나 신념의 구현이란 정치하는 목적은 지금 우리의 정치판에는 이상일 뿐이다. 보통 사람은 누릴 수 없는 특권은 곧 권력이고 체통이고 위엄이다. 자기보다 나을 것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권력을 꿰차고 거들먹거리는 모습에 선망과 시기로 너도나도 정치에 입문한다. 국가발전에 기여하겠다는 명분은 왠지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그러면 국회의원을 비롯한 사회 권력층의 수를 늘리면 경쟁과 갈등이 덜해질 것인가? 수요가 많으니 공급을 늘리면 시장도 안정된다는 경제원리가 작동될 것인가?시장경제주의자는 경쟁과 갈등의 원인으로 재화의 희소성을 전제한다. 인간사회에는 모두의 행복을 충족시킬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재화가 없기 때문에 각 개인은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경쟁하고 이 과정에서 가격이 조정자 역할을 하여 적정한 공급을 이루어지게 한다. 개인의 이기적 욕망(수요)은 공급을 유도하고 수요가 늘면 공급도 증가하여 전체 사회의 복리를 늘린다는 것이 현대 경제학의 기본 명제다. 개인의 이기성과 탐욕, 과시적 욕망이 사회적 선이 되는 가치전도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탐욕과 이기심에 부정적인 도덕과 윤리 가치의 상실은 필연적일 것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르네 지라르는 우리의 욕망은 타인의 욕망을 모방하여 생겨난다는 명제를 바탕으로, 서로가 서로를 모방하는 이중 욕망 모방은 선망과 시기, 질투와 같은 갈등으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타인이 가진 권력을 향한 선망과 시기는 욕망을 낳고 이는 정치 과열이란 갈등으로 이어진다. 이 갈등들은 공동체의 붕괴로 연결될 수 있는 폭력을 낳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르네 지라르의 시각으로 보면, 시장경제 논리는 재화의 희소성 때문에 경쟁이 발생한다고 보지만, 오히려 모방적 욕망에서 비롯한 선망과 시기, 경쟁 때문에 재화의 희소성이 생기며, 이 경쟁 때문에 갈등이 발생한다고 본다. 경제성장은 결핍을 해소하지만, 그 해소는 얼마 안 가서 더욱 큰 결핍을 낳는다. 시장경제는 더 큰 성장을 통해 이 부정적 결과를 메우려 한다. 특권을 확산하거나 확대하면 지금의 정치 과열과 언어폭력 현상은 결코 해소될 수 없다고 굳게 믿는다. 그것은 오로지 특권의 제거와 삶의 다양성의 존중 그리고 사회적 선을 지키려는 도덕적 가치와 이를 선택하는 국민들의 몫이다.권 업 객원논설위원권 업 객원논설위원
[광장에서] ESG 기후공시, 선제적인 대응 체계 구축해야
기후위기가 가속화되면서 글로벌 '기후공시' 의무화의 시계도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비록 국내 도입 시기는 2026년 이후로 연기되었지만, 기업들은 글로벌 ESG 공시 대응 체계를 발 빠르게 구축하고 있다. 현재 글로벌 ESG 공시 기준의 표준화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는 있으나 기후공시와 관련하여 국가별, 추진 주체별로 그 기준이 달라 기업이 대응하는 데 어려움이 많은 실정인데, 기준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로, 국제회계기준재단(IFRS) 산하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의 공시 기준으로, 지난해 6월 ISSB는 IFRS S1 일반 요구사항과 S2 공시기준을 발표했다. 그중 S2는 기후변화로 인한 물리적 위험이나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 관련 위험 등 기업의 기후 관련 사항에 대한 정보를 공시하도록 요구한다. 2025년경 ISSB에 기반한 지속가능성 정보공개 표준이 의무화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영국, 호주 등은 지속가능성 정보공개 표준, 보고기준을 준비하고 있다.둘째로, 유럽연합(EU) 지속가능성 보고지침(CSRD)의 이행을 뒷받침하는 지속가능성 공시기준(ESRS)으로, 2023년 1월 CSRD 발효에 따라 ESRS first set(산업공통 적용)는 지난 1월부터 시행되었다. ESRS는 ESRS 1(일반 요구사항)과 ESRS 2(일반 공시)의 공통 기준 2개와 ESG 주제별 총 10개의 기준서로 구성되는데, 기준서 중 ESRS E1이 기후변화 관련 공시이다. 동 기준에 따라 EU 기업 및 관련 국내 기업들은 2024년부터 2026년까지 단계적으로 ESG 공시 의무 적용 대상이 된다.셋째로, 미국 증권관리위원회(SEC)의 기후 변화 관련 공시 규정으로, 지난 6일 SEC가 이를 채택하여 관보 게재 후 60일 후부터 단계적으로 발효될 예정이다. 동 규정에는 기후 관련 위험이 기업에 미치는 영향, 온실가스의 직·간접 배출량에 대한 공시를 포함하고 있고, 향후 공급망(Supply chain)을 포함하는 Scope3까지로 확대가 예상된다. 향후 미국의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기업들은 기후변화와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공시해야 하므로 KT, 포스코홀딩스, KB금융그룹 등 국내의 10개 기업도 공시의무를 이행해야 한다.그렇다면 국내 기업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무엇보다도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관련 온실가스 배출 등 데이터 품질 관리 강화 등에 우선순위를 두고 준비해야 한다. 둘째로, 가장 복잡하고 광범위한 ESRS를 중심으로 선제적으로 공시 대응 체계를 구축하는 한편, 지사, 협력사 등 공급망을 고려하여 상호 운용이 가능한 공시 기준도 마련해야 한다. 결국 기업의 입장에서 ISSB·ESRS·SEC 기준 중 무엇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다. 결론적으로 기업은 선제적인 대응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유비무환(有備無患), 모든 일을 완벽하게 대비할 수는 없지만 미리 준비가 되어 있으면 걱정할 것이 없다. ESG 기후공시가 국내 기업에 있어서 실제적인 온실가스 감축으로 이어지는 미래의 기회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김도형 (법무법인 화우 환경규제대응센터장)김도형 (법무법인 화우 환경규제대응센터장)
[윤성은의 천일영화] 묫자리를 파내는 행위에 관하여, '파묘'
*영화의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마니아층의 장르로 분류되어 왔던 오컬트 영화가 천만 관객을 바라보는 흥행작으로 등극했다. 이번 주말이면 9부 능선을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파묘'(감독 장재현)가 그 주인공이다. 코로나 이후 종잡을 수 없게 된 관객들의 성향이 '파묘'의 흥행에도 한몫을 하고 있는 것일까. 개봉 당시만 해도 할리우드 대작인 '듄: 파트2'(감독 드니 빌뇌브)와의 2파전이 예상되었지만, '듄: 파트2'가 예상외로 부진한 가운데 '파묘'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파묘'의 성공에는 먼저 장재현 감독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그의 장편 데뷔작인 '검은 사제들'(2015)은 한국형 엑소시즘 영화로 550만명의 관객을 불러모았고 두 번째 장편인 '사바하'(2018)는 다층적 서사의 난해함 때문인지 그 절반 정도의 관객 수에 그쳤지만 소수의 열혈팬들을 확보하게 만든 작품이었다. 철학적 깊이나 만듦새에 있어서는 호평이 압도적이었다. 그런 감독이 신작으로 무당과 지관에 관한 영화를 내놓자 언론에서는 그를 이 장르의 장인으로 부르기 시작했고, 관객들의 기대감도 사전예매량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파묘'는 3일 만에 100만, 7일 만에 300만 관객을 돌파하더니 입소문을 타고 파죽지세로 순항하는 중이다. '파묘'는 대중적 요소와 마니아적 요소가 혼합되어 있다는 점에서 장재현 감독 전작들의 장점을 두루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파묘' 자체만 보면 새로운 시도이자 도전이었다. '파묘'는 두 개의 이야기를 이어놓은 것처럼 전반부와 후반부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는 서사를 구축했다. 전반부가 무당들과 지관, 장의사 등이 조상의 묫자리를 잘못 써서 비극을 맞게 된 가족을 구하는 이야기라면, 후반부에는 그들이 그 묫자리에 일제 강점기의 쇠말뚝이 박혀 있음을 알게 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무서운 장면 없이도 섬뜩한 전반부에 빠져 있던 관객들 중 일부는 일본 도깨비 '오니'의 실체가 드러나는 장면부터 이질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공포를 드러내는 방식 자체는 다를지라도, '기생충'(감독 봉준호)이 그랬던 것처럼 '파묘'의 앞부분과 뒷부분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전반부에서 조상의 친일행위가 다음 세대를 밑도 끝도 없는 부자로 만들기도 하고 병들게도 했다는 사실이 다 드러나기는 하지만, 후반부에는 일제의 침략이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 미치고 있는 영향력을 보다 광범위하게 짚어준다. 말하자면 전반부를 후반부의 대유(代喩)처럼 사용한 내러티브다. 두 부분의 연결고리를 강화하기 위해 감독은 수많은 복선을 깔아놓았고, 그 치밀함은 관객들이 자발적으로 '파묘'의 숨겨진 코드에 대해 파고들게 만들었다. 영화의 흥행이 불필요한 정치적 공방까지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장재현 감독은 무당과 지관에 대한 영화를 준비하다가 쇠말뚝과 항일운동 이야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우리 세대의 병(病)을 고치기 위해 조상의 묫자리를 파내는 행위와 우리 사회의 고질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는 행위는 분명 유사한 데가 있다. 아니 어쩌면 창작가에게 당연한 귀결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다이묘 정령은 사물이 혼 자체로 진화해 실체화된 존재'라는 대사는 결론처럼 다가온다. 부지불식간에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악령들, 그것들이 인간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해오는 것만 한 공포도 없으니, 경계가 필요하다.윤성은 영화평론가윤성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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