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다 자맥질하는 해녀들…테왁 ‘둥, 둥’ 주황 꽃망울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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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3-11   |  발행일 2016-03-11 제35면   |  수정 2016-03-11
■ 1부 봄 이야기-제주도 四色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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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앞바다에 주황색 꽃이 연꽃처럼 피어있다. 바로 해녀를 물에 떠있도록 해주는 ‘테왁’이다. 사진은 이 무렵이 제철인 보라성게, 말똥성게 등을 잡기 위해 분주하게 자맥질을 하고 있는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의 한 해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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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게 까는 모습.

전체 100여개 어촌계 6천여 해녀
여름 하루 6∼7시간 겨울 4∼5시간
공동체 영역서 한 달 중 절반 물질

썰물 때면 밭일 하다가도 바다로
모자반·톳 등 해초류 예전만 못해
성게 알 ㎏당 6만원 넘어 재미 쏠쏠

최고참 70∼80대 상군해녀 수두룩
구좌 세화리 ‘해녀박물관’ 볼거리

◆주황색꽃…제주 해녀

이번 제주도행에서 새롭게 안 사실이 하나 있다. 잠녀(제주 해녀)도 봄꽃이란 점. 해녀가 물에 떠있게 하는 부표의 일종인 ‘테왁’. 그게 7년 전부터 주황색으로 통일된다. 안전사고 때문이다. 이 봄바다에 그 테왁이 붉은꽃처럼 떠다닌다.

10m 이상 잠수해 1분 이상 물질을 하고 참았던 숨을 휘파람처럼 내뱉는다. 그 소리가 동절기보다 더 부드럽다. 이 숨소리를 제주에서는 ‘숨비소리’라 한다. 그 숨비소리가 동백꽃 같은 테왁에 수술처럼 내려앉는다.

해녀들이 잘 하는 속담이 있다. ‘저승에서 벌어 이승에서 쓰고 간다’. 그만큼 물질이 힘들다는 뜻. 겨울엔 몸이 얼어버린다. 남정네들은 와들와들 떠는 아내를 위해 갯바위 근처에 모닥불을 피워놓는다. 해녀는 농사까지 지었다. ‘물때(제주도 해녀의 조업일수는 365일 중 잘해야 100일, 음력 8~14일과 23~29일 물살이 약할 때 일한다)’가 오면 호미를 내팽개치고 테왁을 들고 수중으로 갔다.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를 할 겨를도 없이 자맥질을 했다.

약하게 보이는 걸 죽는 것보다 싫어했다. 제주 해녀가 노는 바다는 다른 곳보다 염도가 더 높다. 물 밖에서 울지 못한 걸 물 속에서 울기 때문이다. 해안가 제주 동백은 해녀의 눈물을 닮았다. 부산 자갈치시장 아지매도 제주 해녀의 억척스러움 앞에서는 명함을 못 내밀 것 같다.

일본 해녀인 ‘아마’는 제주 해녀에 비하면 등 따뜻한 조건에서 물질을 한다. 직접잠수도 아니고 간접잠수를 하고 바람이 센 가을~겨울엔 조업을 안 한다. 잠수 능력도 제주 해녀보다 턱없이 부족하다. 제주 해녀는 울릉도, 부산 등 국내 주요 섬은 물론 일본, 필리핀, 베트남 등지로 수출되기도 했다.

◆전복소라성게…달래냉이씀바귀

제주 해녀는 전복·소라·성게에 목숨을 건다. 육지의 달래·냉이·씀바귀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몸(모자반), 톳, 미역, 다시마, 감태, 우뭇가사리 등 해초류는 예전만 못하다. 바다가 산성화되는 바람에 채취할 양이 턱없이 부족한 모양이다. 도로포장이 너무 과도해 비가 많이 오면 화학비료 가득한 밭흙이 바다로 직행한다.

전복·소라·성게는 자맥질할 때마다 채취할 수 있는 해산물이 아니다. 이러한 이유로 이놈들을 따기 위한 물질은 ‘헛될 수 있는 물질’이란 뜻에서 ‘헛물질’이라 한다. 헛물질을 할 때 해산물 채취가 아닌 바다 밭의 지형을 확인하기 위해 하는 자맥질은 ‘헛숨’이다.

바람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고 간헐적으로 비도 뿌린다. 해안에서 1㎞ 너머에도 ‘테왁꽃’이 드문드문 피어있다. 이런 날씨에도 작업이 될까 싶은데 의외로 많은 해녀가 보인다.

구좌읍 평대리 고석진 이장, 그의 아내 송미연씨, 김영철 평대어촌계장을 오후 2시 해녀 작업장 근처에서 만나기로 했다. 평대리 쪽으로 차를 몰았다.

평대리에는 모두 3군데 작업장이 있다. 3개 어촌계에 180여명의 해녀가 있다. 제주도 전체에서는 100여개 어촌계에 6천여명의 해녀가 소속돼 있다. 전통이 비교적 잘 간직되고 있어, 내셔널지오그래픽과 매그넘 소속 세계적인 사진작가인 데이비드 하비도 평대리 해녀 사진을 집중 촬영하고 갔다. 다른 해녀 어촌계에서는 연락선을 타고 먼 바다로 나가지만 평대리는 직접 헤엄쳐 나간다. 노동강도가 더 센 해녀계다.

이 즈음 애월읍 봉성리 새별오름에서 열리는 2016들불축제는 해녀들에겐 아주 중요한 의식이다. 상당수 해녀가 정성을 올리기 위해 행사장으로 갔다. 그래서 그런지 이날은 20여명의 해녀만 물질을 한다. 오전에 입수한 해녀가 하나둘 작업장으로 올라온다. 점심도 굶는다. 하지만 어지럼증을 예방하는 ‘뇌선’이란 약은 반드시 챙겨 먹고 들어간다. 오랜 물질에 상당수 고참 해녀들은 수압 때문에 청력을 거의 잃었다. 그러니 자연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런 사정을 알 리 없는 육지사람들은 해녀가 무뚝뚝하고 거센 여인이라 착각한다.

뭍으로 올라 온 해녀에게 인사를 하지만 모른 체한다. 무표정, 그게 정감어린 얼굴이란다.

패류를 담는 망사리는 그렇게 묵직해 보이지 않았다. 양도 그렇게 많지 않았다. 제철을 맞은 보라성게가 대부분이었다. 우리나라 근해에는 두 가지 종류의 성게가 있다. 침이 긴 검은색 보라성게와 밤송이처럼 침이 짧은 회색 말똥성게가 있다. 말똥성게를 경상도 사투리로 ‘앙장구’라 하고, 제주방언으로는 ‘솜’이라고도 한다. 제주 토종인 말똥성게는 상대적으로 적게 잡힌다. 스쿠버다이빙의 창시자이자 발명자인 자크 이브 쿠스토는 ‘바다에서 다이버에게 가장 위험한 해양생물은 성게’라고 말했지만 우리나라 근해의 성게는 가시에 독성이 없다. 살에 박히면 잘 부러져 피부 안에 남아 있는데 며칠 지나면 녹아서 없어지거나 밖으로 나온다. 해녀들 사이에서는 어린아이의 오줌이 성게 가시를 녹여 빨리 낫게 해준다는 민간처방이 전해내려온다.

성게를 잡으면 통째로 팔지 않는다. 자그마한 칼로 5등분된 성게의 몸통을 갈라 황토빛이 감도는 알을 빼낸다. 1㎏에 6만원 이상 받는단다.

제주 해녀의 능력과 실력은 세계적이다. 미군에서도 가공할 만한 그들의 심폐기능을 연구할 정도이고 2015년 국가중요어업유산 1호에 지정되기도 했다. 세화리에는 해녀박물관이 개관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신청을 해놓은 상태이다. 오는 11월 결정을 앞두고 있다.

제주의 사면 바다는 육지와 달리 사철 바다빛이 그다지 변하지 않는다. 대신 바람의 방향이 바뀐다. 북서풍이 불면 한겨울이고 남동풍이 불면 봄이 온 것으로 본다. 고 이장의 아내는 49세로 아직 앳된해녀다. 제주에서는 최고참 해녀를 ‘상군해녀’라 한다. 10년차 해녀지만 70~80대 해녀가 수두룩 하니 그녀는 항상 조신하다.

◆독특한 해녀 문화

해녀는 호흡 장비를 사용하지 않으며 해산물을 채취하는 시간을 제한한다. 잠수 시간을 줄여 수확을 조절하기 위해서다. 또 해녀는 스스로 다시 개체수가 늘어날 수 있는 생물 중 다 자란 생물만 채취하며, 해녀 공동체가 속한 영역에서만 작업한다. 다른 곳은 기웃거리지 않는다. 해녀들은 여름철에는 하루 6~7시간, 겨울철에는 하루 4~5시간 정도 물질을 한다. 한 달에 약 15일간 물질을 하는 데 물때가 좋은 일주일간 연이어 일한 후 약 8일간 쉬고 다시 일주일 정도 물질을 한다. 썰물이 가까워지면 밭일을 하다가도 물때에 맞춰 바다 밭으로 내달린다.

바다는 그녀에겐 밭이다. 바다의 씨앗은 영등할망이 바람을 타고 와서 뿌린다고 전해진다. 씨앗이 뿌려지고 나면 톳과 우뭇가사리, 미역을 채취하고 그 밭에서 자라는 전복과 소라, 성게, 해삼, 문어를 거둬들인다. 우뭇가사리의 경우 최상품을 채취하는 시기가 해마다 다르며 10~12월까지는 전복 산란기로 전복을 잡는 것을 금하며 6~9월까지 산란기인 소라는 여름 내내 잡을 수 없는 등 조개류를 캐는 시기도 산란기를 피해 작업하고 있다.

보통 8세부터 마을의 얕은 바다에서 헤엄과 잠수를 익혀 15세 무렵에 애기해녀가 된다.

해녀의 전통 작업복을 ‘물옷’이라 한다. 물옷은 하의에 해당하는 ‘물소중이’와 상의인 ‘물적삼’, 머리에 쓰는 ‘물수건’으로 이뤄졌다. 1970년대 초부터 속칭 ‘고무옷’이라고 하는 잠수복이 보급됐다. 테왁은 해녀들이 물질할 때 물에 띄워놓고 몸을 의지해서 숨을 고르고 채취한 해산물을 담는 도구다. 테왁 밑에는 어획물을 넣어 두는 망사리가 매달리며 망사리 안에는 테왁이 조류에 휩쓸리지 않도록 ‘돌추’를 넣어 놓는다. 해녀들이 물질할 때 쓰는 물안경은 ‘눈’이라 한다. 초기의 물안경은 ‘족쉐눈’이라고 불렸다. 현재 해녀들이 사용하는 물안경은 ‘왕눈’이라고 한다. 돌 틈에 있는 문어나 소라, 성게를 끄집어낼 때 사용하는 도구를 ‘까구리’라 한다.

글·사진=제주에서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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