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회 영남일보 책읽기賞] 대학·일반부 최우수상 박영희 ‘언어의 온도’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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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0-12   |  발행일 2017-10-12 제22면   |  수정 2017-10-30
“살뜰하게 어머니 챙기는 결 고운 아들을 보면서 난 어떤 딸이었나 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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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서 특히 마음에 오래 남았던 부분은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였다. 내리사랑에만 익숙했던 터라 자식이 부모를 그렇게 제 살처럼 아낄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그것도 자기만족이나 과시를 위함도 아니고,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딱 자신을 아끼듯 할 수 있다는 게 말이다.

어머니 당신은 평생 자식에게 주기만 했을 뿐인데도 늘그막에 꼬박꼬박 용돈을 받으려니, 젊을 때 더 많이 못 줘 죄스럽다고 하신단다. 그럴 때마다 아들 또한 ‘전혀 객관적이지 않은’ 이런 사과가 엄마이기에 가능하다고 말씀드린다. 노년에 이르면 감사할 것도 많아지지만, 동시에 되돌릴 수 없는 과거로 인한 후회도 늘어난다. 그런 자책을 헤아리고 위로하는 마음 씀씀이가 딸이라도 놀랄 정도인데 심지어 아들이라니! 게다가 아무리 소중하고 애틋한 사람도 항상 곁에 있으면 무신경해지지 않던가. 그런데 한집에 사는 아들은 오히려 순간 순간 어머니께 필요한 것들을 더 살뜰하게 챙길 줄 안다. 환절기면 어머니 화장대에 보습크림이나 색깔 고운 양산을 넌지시 올려놓는다는 대목은 감탄스럽기까지 하다. 이렇게 결 고운 심성을 가진 아들이 있다면 열 딸이 뭐가 부럽겠는가! 늙어서 꼭 필요한 첫째가 딸이라고들 하지만 간혹 이런 예외도 있나보다.

심지어 글쓴이의 노모는 수시로 병원 입·퇴원을 반복하고 때로는 가출까지 하는 등 건강도 많이 좋지 않은 상태다. 그런데도 아들은 한결같다. 어머니가 길을 잃고 헤맬 때는 무작정 차를 몰고 나가 수소문하고, 병실에서 링거액이 한 방울씩 더디게 떨어질 때는 ‘바싹 마른 장작깨비’ 같은 노구에 어서 빨리 스며들어 금방이라도 벌떡 일어나길 기도한다.

누군가에게는 구질구질한 삶의 상흔처럼 보일 무언가를 연민 어린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래서 오히려 더 안쓰럽고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 저자의 태도가 절정을 이루는 장이 바로 ‘당신의 추억을 찾아드린 날’이다. 힘들고 고단했던 과정을 작가 특유의 잔잔하고 맑은 문체로 승화해 한 편의 수채화를 본 듯 청량감까지 느낄 수 있었던 이야기였다.

어머니의 동창생을 찾겠다고 월차를 신청하는 작가를 상사가 외계인 보듯 하며 시작되는 하루 일정은 어지간한 인내심과 정성으로는 감당키 어려운 작업이었다. 건초 속에서 바늘 하나 찾기와 다름없는 막막한 일을 아들은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수행한다. 장시간의 서류 수색과 관공서 출입, 전국의 아파트 관리소를 전전한 끝에 드디어 두 여인이 포옹하고 울며 불며 회포를 푸는 장면에서는 간만에 속이 탁 트이는 대리만족까지 느껴졌다. 마치 입안에서 톡톡 터지는 아이스캔디처럼 단어 하나 하나가 저들끼리 사방팔방으로 날아가 싸아한 박하향을 내뿜는 듯 상큼했다.

지은이의 고백에 따르면 어머니에 대한 이런 애틋한 사랑도 그냥 뚝 떨어진 건 아닌가보다. 한때 자신이 힘들고 괴로울 때, 엄청난 책임감에 두 어깨가 짓눌리고 무력감으로 폐인이 되어가고 있을 때 바로 어머니가 그 수렁에서 건져내주셨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은 글을 쓰면서도 저절로 행간에 어머니께서 꼭꼭 숨어있다가 언뜻 언뜻 비쳐 보인다는 것이다. 이런 걸 보면 남자 여자를 떠나서, 사랑받은 사람이 사랑을 베풀 줄 안다는 게 새삼 실감난다. 어머님이 예전에 더 주지 못했던 사랑을 후회하는 것처럼, 지은이도 하루 하루 더 드리지 못한 사랑을 후회하며 안타까워하는 것이 느껴져 뭉클했다. 이런 셈법 또한 ‘전혀 객관적이지 않’지만 마찬가지로 자식이기에 가능한 것일 테다.

책을 읽는 내내 절로 엄마 생각이 났다. 난 엄마께 어떤 딸이었을까. 엄마 자신의 방식으로 내게 최선을 다해 주신 그 사랑을 나는 어느 정도라도 돌려드렸다고 할 수 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그런 생각에 슬퍼진다. 어머니에 대한 기억 중 두 가지는 두고 두고 후회스럽고 떠올릴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하나는 어머니와 시어머니를 대놓고 차별대우했던 것이다. 결혼하고 얼마 안돼 고가의 보약을 한 제 시모께 지어 드렸는데 그걸 자랑이랍시고 친정엄마한테 떠벌렸었다. “엄마는 맨날 내가 뭐 해드린다고 하면 관두라고 해서 아예 시어머니 것만 지었어요”라고 하니까 말 없이 웃고만 계시던 엄마…. 한번도 직접 나무라거나 정면에서 지적한 적이 없었던 분이지만 그렇다고 그때도 기분이 아무렇지 않으셨을까? 아마도 경제력이 월등히 뛰어난 시어머니한테서 뭐라도 더 얻으려고 얄팍한 계산을 했던 게 틀림없다 싶어 더 부끄럽다.

다른 하나는 돌아가시기 몇 달 전 잠깐 우리집에 다니러 오셨을 때였다. 모처럼 공중목욕탕에 모시고 가 때를 밀어드리기로 했다. 문제는 어머니께 별 상의 없이 세신사에게 부탁하고 나오면서 발생했다. 목욕탕 안에 간이 침대가 있어서 간혹 세신사에게 맡기지 않고 보호자가 환자의 때를 직접 밀어주기도 했는데 어머니도 그렇게 아시고 침대에 누우셨던 모양이었다. 기다린 지 한참 후 온 얼굴과 몸이 빨갛게 익은 어머니께서 피로가 역력한 모습으로 비틀거리며 나오셨다. “내가 대강 씻었다. 남한테 어찌 맡기노” 하시더니 주저앉으시는 게 아닌가. 어머니는 당시 당뇨망막증으로 인해 두 눈의 시력을 거의 잃은 상태셨다. 옛날 분이신지라 그 불편한 몸으로도 당신 몸을 남에게 맡기는 게 익숙지 않아 손수 때를 미신 것이었다. 그저 몸을 편하게 해드릴 생각만 하고 그것이 효도의 다인 줄 알았던 나. 직접 내 손으로 밀어드릴 생각은 왜 못했던 걸까. 정작 어머니 본인은 누구보다도 효심이 깊으신 분이었는데 딸인 내가 어머니의 반도 못 따라간 듯하여 참 죄스러운 마음이다. 내 외할머니 되시는 본인 모친을 모시고 목욕탕에 다니실 때, 외할머니께서 실수로 틀어버린 뜨거운 물이 외할머니께 튈까봐 손으로 막다가 크게 화상을 입어 오래 고생하신 적도 있었다. 입장 바꿔 과연 나라면 그럴 수 있었을까.

생각하면 효도란 학습으로 어느 수준까지는 그럭저럭 모양새를 유지할 수 있겠지만 내면에서부터 우러나오는 효심의 깊은 향기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현악기의 줄처럼 한 끝에서 다른 끝까지 공명을 하는 그런 자연스러운 울림을 주지도 못할 것이다. 그래서 상대를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해주는 효심이 이 시대에 그토록 소중하고 귀한 덕목이 된 것이다.

글쓴이의 아름다운 마음씀을 보면서 뭉클하다가 절로 떠오르는 엄마 생각으로 가슴 아리고, 시간을 되돌린다고 내가 과연 이런 효심을 따라갈 수 있을까 생각이 참 많아지는 글이었다. 그래도 이 못난 딸의 진심의 한 조각만큼은, 빈약했던 말과 행동 속에서 얼마만이라도 그 온도가 부디 엄마께 전해졌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밤이다.

“무념무상으로 읽는 책이 즐거움 줄 때도 많아…이런 것이 활자만의 매력”

■ 수상 소감


사람이 자신감에 차있고 만사 순조롭게 풀릴 때는 사실 책이란 게 그렇게 필요 불가결한 존재는 아니다. 시간이 바쁘게 흘러가고 활자 아니라도 즐거운 일이 주위에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항상 장미꽃밭만 우리 앞에 펼쳐져 있는 건 아니잖은가. 나 또한 의지력이 바닥나고, 하는 일마다 어긋나 기가 죽어있을 때 책이란 게 그렇게 위안이 되고 의지처가 될 줄 미처 몰랐었다.

작가 최인훈은 자질이 의심스러운 일부 무당도 일단 시퍼런 작두날 위에 선 순간부터는 자신만의 신을 목청껏 부르며 접신을 시도한다고 하며 이때 평소의 아류집단군에서 진정한 매개자로 거듭난다고 했다. 이것이 일견 ‘글쟁이’의 자세와 유사하다고 했다. 작가 역시 펜을 쥐고 원고지를 마주하면 오로지 진실만을 찾아 나선다는 것이다. 때론 자신의 치부와 약점이 드러나도 개의치 않을 정도로 고행을 자처한다. 사람들은 아마도 이런 이유로 글이라는 것에 깊이 매혹되는가 보다.

안타까운 사실은 요즘 사람들이 너무나도 독서에 맘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신문도 잘 구독하지 않는다. 특정한 목적의 글 읽기도 좋지만 꼭 힐링, 자기계발, 재테크에 도움이 안 되더라도 무념무상으로 읽는 책이 더 즐거움을 줄 때도 많다. 하다못해 영어문법책이나 수학참고서 같은 책들도 머리가 지끈거릴 때 한참 들여다보고 있으면 맘이 평온해지며 잔잔한 희열을 주니, 이런 것이 활자만의 매력이 아닌가 생각한다. 현장에서 얻는 street-smart 역시 중요하지만 책벌레가 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변변찮은 작품이지만 어여삐 여겨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리며 독서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고 있는 영남일보사에도 무궁한 발전이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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