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회 영남일보 책읽기賞] 중·고등부 최우수상 (경북도 교육감상) 이지안<경북 경산 삼성현중 3년> ‘양과 강철의 숲’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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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0-12   |  발행일 2017-10-12 제23면   |  수정 2017-10-12
“우리는 재능이 아니라 꿈을 위해 살아간다”

피아노 소리가 울린다. 도롱도롱 번져가는 소리에 공연히 눈을 감아본다. 도무라는 그 울림을 통해 흔들리는 나뭇잎을 보고, 나무를 보고, 마침내 나무로 이루어진 숲을 본다. 산에서 태어나 숲에서 자랐기 때문인지 그는 나와는 다르게 피아노에서 숲의 경치를 바라본다. 도시에서 태어나 네모난 틀에서 자란 나에게 피아노는 예쁜 소리가 나는 악기일 뿐이었다. 그 예쁜 소리는 나에게 숲의 뛰어난 경치를 가져다주지 못했다. 책을 읽으며 도무라가 피아노에서 아름다움과 선함, 세상의 전부를 바라보는 건 숲에서 태어난 탓이 아닐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피아노가 어딘가에 녹아든 아름다움을 꺼내어 귀에 들리게 해주는 기적이라면 기쁘게 피아노의 종이 되리라던 도무라, 그의 피아노에 대한 사랑이 그에게 양과 강철로 만들어진 숲을 주지 않았을까?

양과 강철의 숲이란 제목을 보면 내용이 쉬이 예상되지 않는다. 그도 그럴게 양과 강철은 흔히 같이 쓰이는 조합이 아니기 때문이다. 양과 강철의 숲은 그 자체로 도무라의 삶을 의미한다. 양의 털로 이루어진 펠트, 그 펠트로 이루어진 해머가 강철로 이루어진 현을 두드리면 피아노의 음이 맞추어진다. 도무라의 삶은 피아노로 이루어진 세계다.

피아노에 대한 그의 애정과는 상반되게 그는 조율에 뛰어난 재능이 없다. 그를 조율사의 길로 뛰어들게 한 이타도리씨처럼 엄청난 조율을 하지도 못하고, 사근사근한 말로 고객을 모으지도 못한다. 그저 차근차근, 자신의 길을 걸어갈 뿐이다. 그러나 재능이 없다는 사실은 우리의 생각보다 치명적이어서 그는 초조함에 떨기도 한다. 자신이 선택한 길에 재능이 없다는 사실은 많은 불안감을 준다. 자신의 재능은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읽으며 도무라에게 많은 공감을 했다. 동시에 도무라가 부러웠다. 나도 무용을 통해 커다란 숲의 풍경을 봤고, 도무라처럼 내 재능의 한계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겁을 내다가 숲 전체를 불태워버렸지만, 도무라는 포기하지 않고 천천히 나아갔다. 그게 너무 부럽고 신기했다. 자신의 노력이 헛된 것이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은 채 살아가기란 어렵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분명히 한 채 조율의 길을 걸어간다. 먼 곳에 있는 숲만을 바라보며, 묵묵히 걸어간다.

고객에게 실력이 없다는 소리를 들은 날, 그는 선배 야나기 씨에게 “조율에도 재능이 필요하지 않을까요?”라고 묻는다. 재능도 당연히 필요할 거라는 야나기 씨의 대답을 듣고 그는 오히려 안심한다.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재능이라는 단어를 포기할 구실로 삼지 않기를 다짐하는 그가 인상 깊었다. ‘어쩌면 언젠가, 도저히 대신할 수 없는 무언가의 존재를 깨닫는다면 그때 포기해도 되지 않을까? 두렵지만. 자신에게 재능이 없음을 인정하는 것은 분명 몹시 두려운 일이다.’ 포기하지 않기를 다짐하며 내뱉는 그의 말이 와 닿았다. 재능이 없음을 받아들이는 건 누구에게나 두렵고 무서운 일이구나 싶었다.

충분한 재능을 넘어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주인공들이 가득한 영화, 소설과는 다르게 이 책에는 충분한 재능을 지니지 못해 두려워하고 포기해야만 했던 사람들이 등장해서 좋았다. 지금은 똑같은 목적지를 가는 방법에도 여러 갈래의 길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나에게도 숲으로 가는 길은 한 가지 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기에 그들의 이야기가 위로가 되었다.

책의 끝에 이르러서도 도무라의 조율 실력은 완벽하지 않았다. 뛰어넘을 수 없는 재능은 있고 때로 우리는 그 앞에 굴복하기도 하지만 그런 것은 상관없다. 우리는 재능이 있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의 양과 강철의 숲을 위해 살아간다. 거창하고 장대한 성과가 없어도 괜찮다. 묵묵하게 노력하다보면 빛나는 때가 올 수도 있고 묵묵하게 노력하더라도 빛나지 못할 수도 있지만 내가 그 꿈을 통해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되뇌며 살아갈 수 있다면, 그 꿈이 내가 놓지 않고 계속 사랑할 수 있는 일이라면 커다란 홀의 피아노를 조율하는 인생이 아니더라도 괜찮을 것 같다. 한걸음, 한걸음 양과 강철의 숲을 계속 걸어가는 것, 그것이 삶에 있어서 중요한 게 아닐까? 오늘 밤은 괜스레 도무라를 따라 밤의 소리를 들어 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모든 책의 목표는 단순한 울림 넘어 사색할 기회를 주는 것”

■ 수상소감

어떠한 대상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흘러넘쳐, 내뱉는 문장 하나하나에 그 대상에 대한 경외와 벅참이 물씬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그 사람이 재능이 있든 없든 무언가를 사랑하는 사람은 빛난다. 언젠가 꿈을 꾸는 사람은 반짝반짝 빛난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이뤄질 가망과는 상관없이, 현실과 얼마나 가까운가는 상관없이 자신의 꿈을 꾸는 사람은 어둠 속에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빛난다.

이번 기회를 통해 ‘양과 강철의 숲’이라는 좋은 책을 읽게 됐고, 이 좋은 책은 나에게 많은 사색 거리를 던져 주었다. 모든 책의 목적은 이것에 있다는 생각도 든다. 단순히 울림을 주기도 하지만, 그 울림과 전이되는 감정을 통해 사색하는 기회를 가지도록 하는 것.

정말로 재능이 무언가를 계속 좋아할 수 있는 마음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재능이 의미하는 게 무엇이든 분명히 재능은 있다. 우리는 그 재능을 완벽히 외면할 수는 없지만, 타인의 재능을 빌미로 꿈을 마구 짓밟을 수도 없다. 간절한 꿈은 너무나도 소중하고, 우리에게는 감히 그것을 짓밟고 평가할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꿈을 키울 선택도 꿈을 버릴 선택도 모두 스스로에게 달려있다. 자신만이 꿈을 버릴 수 있다.

나에게도 커다란 숲이 있을 것이다, 이미 한 번 불타버린 흔적이 있다 하더라도. 언젠가 다시 이 책을 집을 때, 나만의 양과 나무들로 가득 찬 숲이 존재하기를 바란다. 이 책을 읽을 기회를 준 영남일보와 신미자 선생님 그리고 사랑하는 엄마, 나의 가족, 나의 친구 모두에게 감사의 인사를 보낸다. 우리 모두 각자의 양과 강철의 숲을 위해 살아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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