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고기 반, 무 반’ 달큰한 소고기뭇국…식을수록 진한 국물 맛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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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2-02   |  발행일 2018-02-02 제34면   |  수정 2018-02-02
■ 푸드로드 전북 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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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안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소고깃국의 변형인 고춧가루가 없는 소고기뭇국. 요즘 군산의 대표 해장국으로 관광객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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째보선창을 마지막까지 지키고 있는 식당 4곳이 이구동성으로 대표 메뉴로 내밀고 있는 ‘반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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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당’의 대표 메뉴 중 하나인 야채빵.

◆군산의 국이 된 소고기뭇국

군산에 와서 나를 놀라게 한 음식이 있다. 바로 군산의 대표적 국이 된 ‘소고기뭇국’이다. 서해안에선 매운탕, 무침회, 속풀이 생선국 등이 선호된다. 소고깃국은 상대적으로 인기가 적다. 그런데 군산에 가면 꼭 그 국을 맛보라는 게 군산·익산의 대표 식객인 김병대씨의 조언이었다. 그 국을 찾아 ‘한일옥’으로 갔다. 바로 앞에 한석규·심은하 주연의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세트장으로 유명한 ‘초원사진관’이 보인다. 한일옥 건물 외관이 아주 독특했다. 대구 첫 양옥인 시내 진골목 안 정소아과와 비슷한 양옥풍이다. 1937년 지어진 이 양옥은 훗날 김내과로 사용되다가 지금은 ‘소고기뭇국 1번지’로 각광을 받는다. 역시 대기표를 받아야 먹을 수 있다.

고춧가루 전혀 안 넣은 말간 소고기뭇국
얼큰한 대구식 소고깃국과 확연히 달라
별도 육수 없이 맹물로 끓이는 게 특징

군산에서는 ‘반지’로 더 통하는 밴댕이
째보선창 골목 ‘반지회’는 명물 먹거리
‘韓 최초의 빵집’ 이성당의 야채·단팥빵
영국빵집 흰찰쌀보리롤 케이크도 별미



일본풍의 친절함이 몸에 스며든 김혜주 사장. 경주에서 시집을 온 그녀가 한일옥의 소고기뭇국에 얽힌 얘기를 소상하게 알려준다. 8천원짜리 뭇국은 한일옥뿐만 아니라 근처 ‘한미옥’에서도 팔고 있다. 군산근대역사박물관에서 큰길을 건너면 만나게 되는 심야식당 같은 구조의 ‘밥하지마’의 대표메뉴도 이 국이다.

‘한일옥’은 반세기 전에 태어났다. 5년전 현재 장소로 옮겨오기 전에는 꽤 인지도 있는 기사식당이었다. 뭇국은 1978년부터 팔리기 시작한다. 초대 사장인 시이모는 너나없이 배고프던 시절 소고기라도 배불리 먹을 수 있게 할 요량으로 이 뭇국을 출시했다. 그런 한일옥을 김 사장의 시어머니(조정례)가 인수한다. 뭇국은 그동안 군산 안에서만 통용됐다. 그런데 SBS 인기 푸드프로그램인 ‘생활의 달인’에 노출되면서 전국구가 된다. 이제 ‘군산탕’으로 발전했다.

뭇국은 고춧가루와 마늘까지 들어간 얼큰한 대구식 소고깃국과는 확연히 다르다. 전라도 곰탕의 대표주자인 나주 ‘하얀집’처럼 고춧가루가 전혀 들어가지 않은 말간 국 스타일. 일견 전주의 명물 콩나물국밥과 짝을 이뤄도 좋을 것 같다. 그걸 눈치챘는지 지척의 전주콩나물국밥이 군산으로 틈입해 세를 형성하고 있다.

뭇국은 좋은 무와 한우만 있으면 충분히 맛을 낼 수 있다. 별도 육수를 사용하지 않는다. 맹물로만 끓이는 게 특징. 고기는 한우 양지머리·안심·뒷다리·목살이 팀을 이룬다. 여느 집에선 찬물에서 핏물을 빼는데 여긴 좀 다르다. 펄펄 끓는 물에서 뺀다. 그 다음 일정한 크기로 썬 무를 넣고 25분 정도 끓여 별도의 통에 담아둔다. 주문과 동시에 그걸 뚝배기에 덜어내 재탕해 낸다. 무의 맛도 하절·동절기마다 달라진다. 하절기엔 무가 억세지고 딱딱한 심까지 형성된다. 그래서 얇게 썰어내야 하지만 동절기엔 무즙이 잘 발달돼 대구십미 중 하나인 뭉티기 크기 정도로 깍둑하게 썰어낸다. 평균 1시간10분 내로 요리를 끝내야 된다. 3년간 간수 뺀 천일염으로 간을 조절한다.

주방 앞에 고온의 화구가 진열장처럼 놓여 있다. 거기에 놓인 10여개의 뚝배기가 펄펄 끓고 있다. 담당 조리사는 연신 국물의 양을 조절해 가면서 최상의 맛을 빚고 있다. 뭇국은 뜨거울 때와 식었을 때 맛이 각기 다르다. 식을수록 시원하고 구수한 맛이 한층 강화된다.

뭇국은 이제 원도심에 몰려있는 ‘일흥옥’ ‘일해옥’ ‘일출옥’ 등이 주력상품으로 띄우는 콩나물국밥과 함께 군산의 양대 해장국이 됐다. ‘일신옥’의 아욱국도 그 대열에 가세했다. 군산시는 이와관련 근대역사박물관∼월명동주민센터∼동국사 구간의 특화음식점 등을 묶어 ‘시간여행마을 맛의 거리’로 지정했다.

◆밴댕이로 만든 ‘반지회’

어렵사리 째보선창의 마지막 토박이 할매를 만날 수 있었다. 60년 전에 문을 연 ‘봉래식당’의 이씨 할매. 여기도 오래전 손님이 사라졌다. 떨어진 간판 자국이 처연해 보인다. 여든 할매는 종일 이불 속에 몸을 파묻고 추억 속 단골만 낚고 있다.

다행히 아직 이 바닥을 지키는 4인방 실비식당이 있었다. 해성·중앙·유락·돌풍식당. 여기가 마지막 남은 토박이 전용 실비집이다. 가장 군산스러운 밥상을 만날 수 있다.

이 골목에서 군산 명물 ‘반지회’가 등장했다. 20년 전쯤이다. 다른 식당이 준치회를 낼 때 해성식당이 목포에서 올라온 밴댕이를 갖고 반지회를 개발해 자릴 잡았다. 준치가 귀해지자 다른 식당들도 모두 반지회로 돌아섰다. 39년 전 식당을 시작한 전남 고흥 출신의 이선자씨가 반지회를 개발했다. 그녀는 근처 안강망 수협직매장에서 일하다가 해성식당의 2대 사장이 된다. 몇년 전 백종원의 3대 천왕 때문에 중앙식당에 손님이 쏠렸다. 이젠 평온을 되찾았다.

유락식당에 들어가봤다. 반지회덮밥을 시켰다. 경남 남해에서 맛본 멸치회덮밥과 비슷했다. 군산에선 밴댕이를 ‘반지’라 한다. 반지회를 시키면 반지·조기튀김도 덤으로 나온다. 무엇보다 황새기, 갈치, 조기 등을 함께 넣고 삭힌 ‘잡젓’이 인상적이었다. 토박이는 풋고추도 된장 대신 잡젓에 찍어 먹는다. 잡젓으로 담근 갓김치도 밥도둑이다. 매운탕같이 칼칼하고 걸쭉한 아나고탕 역시 별미.

수소문 끝에 이 선창의 양대 산증인을 알게 됐다. 한 사람은 이 선창의 ‘주당 통반장’으로 불렸던 박한철 할배, 또 한 사람은 이 선창에서 백반집을 리드한 해성식당 초대 여사장 박영희 할매다. 둘은 이 선창을 지킨 ‘장승’이었다. 특히 박 할배를 모르면 간첩이었다. 맘씨 좋고 애주가였던 할배는 불과 열흘 전 고단하기만 했던 여든의 삶을 마감했다. 째보선창의 어질어질한 혼령. 군산 출신의 두 문인이 물려받는다. 1937년 조선일보에 소설 ‘탁류’를 연재해 1930년대 식민지 한국의 생활상을 가장 리얼하게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은 소설가 채만식, 또 한 명은 한국 첫 노벨문학상 신드롬의 주인공 고은 시인이다.

◆이성당과 영국빵집

이 대목에서 군산의 대표빵집 하나를 불러본다. ‘이성당(李姓堂)’. 순천의 ‘화월당’과 함께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으로 불린다. ‘야채·단팥빵’으로 유명해졌다. 줄을 서지 않으면 먹을 수 없다. 이성당급 빵집이 전국에 몇개가 더 있다. 천안의 ‘학화 호두과자’도 그 반열에 든다. 페르시아가 원산지인 호두. 한나라 장건이 중국으로 이식했다. 그걸 고려말 역신 유청신이 1320년 천안 광덕산에 식재한다. 1934년 고(故) 조귀금 할머니와 심복순씨가 학화호두과자를 만들어낸다. 경주의 황남빵도 1939년에 태어난다. 대전의 명물 빵집인 성심당은 조금 늦은 56년 대전역 앞 찐빵집으로 출발, 70년대 현재 은행동 케익부띠끄 자리로 이전해 ‘튀김소보로’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성당은 일제 때 제과점 ‘이즈모야(出雲屋)’에서 출발한다. 일본 시마네현 이즈모시 출신의 초대 사업주 히로세 야스타로. 그는 ‘아라레’라는 찹쌀과자 기술자였다. 자식들을 군대에 보내지 않기 위해 엔조에서 히로세로 성을 바꾼 후 한국으로 이주해왔다. 이성당 빵도 아라레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아라레는 찹쌀을 잘게 썰어 약한 불에 살짝 데친 과자다.

광복후 자리 잡은 이성당의 초대 사업주 이석우씨. 이씨는 당시 군산 대동사이다 사장에게 설탕 살 돈을 빌려 과자장사를 시작했다. 어느 정도 돈이 모이자 당시 적산가옥으로 등록되었던 이즈모야의 건물을 불하받아 이성당을 차리게 된다. 점점 바빠지자 이씨의 고향인 전북 남원에서 살고 있던 친척들을 불러 들였다. 이씨는 다른 사업을 위해 상경하면서 제과점을 이종사촌인 조천형씨에게 넘긴다. 조씨는 현재 이성당 김현주 대표의 시아버지. 조씨는 다시 아내인 오남례씨(2010년 작고)에게 운영을 맡긴다. 2003년부터 오씨의 며느리인 김 대표가 4대 사장으로 나선다. 한때 야채·단팥빵이 하루 1만개 이상 판매됐다. 손님이 무려 3시간 이상 기다리기도 했다.

줄을 섰다가 받아든 이성당의 빵. 쌀가루로 만든 피가 특히 얇다. 특히 단팥빵에 들어가는 단팥소는 다른 업소의 2배 이상. 특유의 빵 형태의 유지를 위해 중간에 작은 구멍을 낸다. 다른 업소 단팥빵 형태와는 달리 가운데가 오목하게 들어간 단추 모양이다.

이성당보다는 상대적으로 덜 유명하지만 ‘흰찰쌀보리롤케이크’로 유명한 신풍동의 ‘영국빵집’(대표 정석균)도 마니아를 꽤 확보 중이다. 관광객은 이성당, 토박이는 영국빵집에 간다. 84년 오픈했는데 2011년부터 흰찰쌀보리로 빵을 만든다. ‘흰찰쌀보리만쥬’는 밀가루나 밀가루 추출성분이 전혀 들어가지 않고 오직 흰찰쌀보리가루로만 만든다. 흰찰쌀보리를 활용한 ‘보리진포’라는 브랜드로 뭉친 윈도베이커리 연합이 있다. 20~30곳이 있는데 ‘리베이커리’ 등이 핫플레이스.

이외에도 군산에는 유명 먹거리들이 있다. 미원동의 ‘복성루’나 중동의 ‘중동호떡’, 미원동의 ‘지린성’, 나운동의 ‘비행장정문부대찌개’, 영화동의 ‘안젤라분식’도 대기줄이 길기로 유명하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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