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짬뽕·푸짐짬뽕·물짜장에 ‘벌벌이묵’까지…쉴새없는 젓가락질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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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2-02   |  발행일 2018-02-02 제35면   |  수정 2018-02-02
■ 푸드로드 전북 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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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장을 사용하지 않고 물전분을 이용해 유산슬처럼 생긴 군산의 명물 중식메뉴인 물짜장. ‘빈해원’ ‘국제반점’ ‘홍영장’ 등이 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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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고기가 올라간 ‘복성루’의 푸짐짬뽕.

◆별별 짬뽕 그리고 물짜장까지

여기 와서 다시 실감한 사실 하나. 군산만큼 다양한 중식당이 포진한 고장도 별로 없을 거라는 점이다. 6·25전쟁 때 대거 군산으로 피란온 화교들이 군산 중화요리의 밑그림을 그린다. ‘짜장면 1번지’로 불리는 인천을 능가하고 있다.

현재 군산에서 가장 오래된 중식당은 ‘빈해원(濱海園)’. 그런데 백종원의 3대천왕에서 ‘고추짬뽕·짜장면’으로 유명해진 ‘지린성’, ‘푸짐짬뽕’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복성루’는 족히 1시간 정도 줄을 서야 먹을 수 있다. 작고 허름한 분식점 같은 복성루가 다른 짬뽕과 차이점이 있다면 돼지고기를 수북하게 올려준다는 것. 동백대교 근처에 있는 쌍용반점은 ‘전복짬뽕’으로 유명하다.

2010년 ‘빈해원’은 군산에서 가장 오래된 중식집으로 군산기네스에 등재된다. 이 장방형의 중식당은 건물 자체가 ‘문화재급’이다. 홀에서 고개를 들면 장방형 2층 회랑을 사방으로 훑어볼 수 있다. 천장에 드리워진 중국풍의 종이등, 유려한 서예작품이 서각된 현판…. 중국영화에 등장하는 ‘객잔(客棧)’, 딱 그 스타일이다. 영화 ‘타짜’ 촬영 때 직접 카지노 세트를 만들었는데 현재 그걸 그대로 식탁으로 사용한다. 녹색의 카지노 패드가 웃음을 자아낸다.


피란온 화교에 의해 발달한 중화요리
짬뽕으로 ‘짜장면 1번지’ 인천과 쌍벽
돼지고기 수북이 올린 복성루 푸짐짬뽕
객잔 구조의 군산 最古 중식당 빈해원
야키우동 닮은 마른짬뽕과 물짜장 눈길

박대껍질 삶아 만든 ‘벌벌이묵’도 별미
썰 때 벌벌, 추울 때 떨며 먹는데서 유래
은은한 호박색에 야들야들 쫀득한 식감



주인 소란정씨. 2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다. 인천에서 살던 아버지가 6·25전쟁을 피해 군산으로 피란 온 뒤 52년 호구지책으로 장사를 시작했다.

빈해원에서 만난 물짜장이 더 인상적이다. 여긴 춘장을 사용하지 않는다. 물전분이 걸쭉하게 들어간 ‘유산슬’ 같았다. 강원도 춘천시 낙원동 ‘회영루(會英樓)’에 가면 다른 중화요리점에서는 팔지 않는 짜장면을 판매한다. ‘백년짜장’이다. 이 짜장면의 춘장은 황색에 가깝다. 중국 본토 춘장 색깔은 검은색이 아닌 황색이다. 한국의 짜장면과 달리 춘장의 양이 적고 맛도 짜다. 채소와 춘장이 따로 나와 이것을 면에 넣어 비벼서 먹는다. 간짜장 스타일이다. 빈해원의 물짜장도 해물이 가미된 ‘퓨전 간짜장’, 혹은 ‘삼선물짜장’같다. 또한 대구십미 중 하나인 야키우동과 비슷한 ‘마른 짬뽕’도 눈길을 끈다.

군산은 짬뽕보다 물짜장으로 더 유명해지고 있다. ‘국제반점’ ‘영화원’ ‘홍영장’도 빈해원과 함께 ‘물짜장 3인방’으로 불린다. 세 곳의 공통점은 모두 개업한 지 40년이 넘었으며 화교 출신이 운영하고 있다는 것. 드라마 ‘고맙습니다’와 영화 ‘타짜’를 촬영했던 국제반점. 한때 미군과 양공주는 물론 시청직원에게도 인기가 좋았다. 여기 물짜장은 춘장 대신 굴 소스로 만든다. 호떡집으로 출발한 홍영장의 물짜장은 ‘짬짜면’을 연상시킨다.

◆ 모델표 츄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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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기지 않고 오븐에서 구워내는 ‘중동호떡’.

군산으로 무작정 내려온 한 남자모델이 히로스가옥 맞은편에 차렸다는 ‘여흥상회’로 갔다.

90년대가 되자 군산 원도심 상권이 점차 슬럼화된다. 그런데 2014년 8월, ‘1박2일’ 군산편 덕분에 관광객이 폭발적으로 는다. 여흥상회의 명물 츄러스(Churros, 밀가루·소금·물로 반죽을 하여 기름에 튀긴 스페인의 전통요리)도 이 특수로 한몫 본다. 주인 민우기씨. 그는 2006년, 케이블 TV 엠넷(Mnet)에서 방영한 패션 비즈니스 리얼리티 프로그램 ‘아이 엠 어 모델-맨’의 유망주였다. 하지만 모델이 천직이 아닌 것 같아 포기했다. 그리고 아무런 연고도 없는 군산에서 츄러스를 팔며 산다. 그의 아버지가 이 동네 구경하러 왔다가 오래된 이 건물을 계약한 모양이다. 아들에게 월세 내고 살라고 했다. 상호의 출전이 재밌다. 주인의 본관은 여흥민씨. 옛날에 그의 할아버지가 운영한 가게 이름도 여흥상회. 촌스럽다 싶어 간판은 정중하게 사양했다. 상호를 대충 프린트해 붙였다. 합판 천장, 무심한 테이블…. 오버하지 않는 주인의 무채색 포스. 들뜬 관광객에게 나름 한 힐링을 준다. 인스타그램에 자주 등장하는 서울 경리단 뒷길의 카페처럼 펀하고 키치한 곳. 주문하면 바로 츄러스를 직접 튀겨 봉지에 싸준다.

내친김에 군산의 대표호떡이 된 3대 75년 역사의 ‘중동호떡’을 먹으러 갔다. 대기 번호표를 뽑고 20분 이상 기다렸다. 한 개 800원. 다른 호떡은 기름에 튀기는데 여긴 중국 오방떡, 공갈빵처럼 오븐에서 구워낸다. 한 점 베어물면 꿀물 같은 시럽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박대와 벌벌이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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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절기 군산에서 볼 수 있는 건조대 위의 박대. 작은 사진은 박대껍질을 잘 삶아 만든 황포묵처럼 생긴 벌벌이묵.

군산푸드투어의 대미는 ‘벌벌이묵’이 장식한다. 탄력이 높아 ‘묵을 썰 때 벌벌 떨린다’고 해서, ‘추운 겨울 벌벌 떨면서 먹는다’고 해서 벌벌이묵이 됐다. 주재료는 박대껍질. 해변에서 말려지고 있을 박대를 보기 위해 군산수산물종합센터 건어물가게로 갔다. 요즘 군산은 박대천국. 조그마한 공터만 있어도 박대를 말린다. 한 마리에 3천원 남짓. 인접한 서천도 국내 최고의 박대 산지다. 여수 등 남해안에선 서대가 흔한데 박대는 꼭 군산권에 와야 볼 수 있다.

박대는 참서대과 생선 중에 큰 편에 속한다. 꼭 혓바닥처럼 생겨 ‘설어(舌魚)’란 별명도 있다. 큰 건 40~60㎝. 참서대는 다 자라야 20㎝. 작은 박대일 경우 서대와 구별하기 쉽지 않다.

벌벌이묵을 수소문했다. 그런데 다들 어디서 파는지 모른다. 어렵사리 조촌동 ‘삼미식품’에서 그놈을 만날 수 있었다. 그 가게에 ‘벌벌이묵’ 기술자 김명순씨가 산다. 박대는 껍질이 두껍고 거칠어 반드시 쌀뜨물을 이용해 껍질을 벗겨 요리한다. 벗겨낸 껍질을 잘 말려놓았다가 생선묵으로 만든다. 껍질에 함유된 콜라겐 때문에 야들야들하고 쫀득하다. 양갱·곤약·황포묵·상어피편·우무 같은 질감이다. 잘 못 쑤면 거무튀튀해지고 잘 만들면 은은한 호박색을 유지한다. 서해안 명물이었지만 지금은 군산과 서천에서만 유통된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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