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그인
  • 회원가입
검색하기

커버스토리 전체기사보기

[이춘호기자의 봄여름가을겨울] 4부 겨울이야기<상>-‘초보 농부’ 배찬호씨와 동장군 이기는 법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구글플러스
  • 기사내보내기
  • 이춘호기자
  • 2016-12-09
  • 기자가 쓴 기사 더보기


산촌의 매운 겨우살이

산촌의 추위가 설령 도심보다 더 앙칼지고 매서워도 군불 머금은 아궁이가 있어 견딜만하다. 너울거리는 저 불자락 앞에 서면 도시의 온갖 시름도 눈이 녹듯 사라져버린다.
설한풍이 봉창문을 핥고 지나간다. 사르락대는 소리를 문틈으로 엿듣는다. 솜이불 안은 봄이지만 이불 밖은 영하권. 콧등은 자주 얼어버렸다. 메주 냄새가 배어 있는 방 안 공기와 차갑기 이를 데 없는 바깥 공기가 충돌한다. 바지랑대에서 갓 걷어 온 황태처럼 빳빳하게 언 빨래들. 아랫목에 내려놓으면 방 안은 비릿한 겨울 냄새로 진동한다. 어머니가 장롱 깊숙한 곳에서 동면 중이던 내복을 깨울 때면 새치 같은 자작나무의 회백빛 껍질은 더더욱 광채를 더해만 갔다. 군불 때는 시골 아궁이가 그리운 계절이 돌아온 것이다.

지난 10월28일 오전 6시5분쯤.

설악산 대청봉, 중청, 소청봉 등 해발 1천500m 이상 고지대에서 올해 첫눈이 관측됐다. 당시 기온은 3.2℃. 강풍 때문에 빗방울이 눈발로 변해버렸다. 지난해는 10월10일 첫눈이 내렸다. 삼천리 방방곡곡 오지마다 장작 패는 소리가 쩌렁쩌렁 울리기 시작한다.

겨울 채비에 여념이 없을 한 사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때 지역 일간지 기자였다가 지금은 도시와 농촌을 오가며 농부적 삶을 살아가는 배찬호씨(53)다. 그는 3년 전 도시 생활을 정리했다. 노모를 모시기 위해 달성군 하빈면 대평리 고향집으로 들어왔다. 노모는 지난 10월 세상을 떠났다. 화가 지망생이었던 아내를 설득해 고향집을 지키기로 맘먹었다. 그가 살고 있는 마을은 20여 가구가 살고 있는 고만고만한 근교 농촌. 주민 평균 연령은 여든을 훌쩍 넘겼다. 이들 부부는 이 동네에선 손주급이다.

100년이 다 돼가는 기와집은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다. 하지만 돈 때문에 고칠 엄두를 못 낸다. 아무튼 그는 다른 사람보다 한 철 앞서 부지런히 살아가야 된다. 5분 거리에 있는 비닐하우스에 자식처럼 자라고 있는 20여 종의 먹거리를 챙기다 보면 어느새 연말이다.

볼펜의 힘으로만 살아왔던 올챙이 농부인 그에게서 겨울맞이의 의미에 대해 듣고 싶어 그의 집으로 향했다. 그의 집은 야산 언저리에 얹혀 있었다. 이웃의 몇 가구는 폐가로 변해 있었다. 겨울이라 고샅 곳곳이 휑뎅그렁하고 을씨년스러웠다. 그의 집 툇마루에 앉으니 앞산 전경이 훤하게 보인다. 잎을 모두 다 떨궈버린 은사시나무 30여 그루가 드문드문 백골처럼 서 있다.

오후 5시 조금 넘어 도착했는데 해는 이미 넘어가고 없다. 사위가 으스스하다. 여긴 유달리 일찍 해가 진다. 동절기엔 햇살이 노루 꽁지보다 짧다. 그래서 한기가 가득하다.

인기척을 내자 두툼한 방한 작업복에 모자까지 눌러쓰고 군불을 때고 있던 그가 부지깽이를 휘돌리면서 반갑게 인사를 한다. 아내는 김장 품앗이 때문에 집을 비웠단다.

퇴락한 기와집이었다. 안채 정도만 번듯하고 디딜방아와 닭장이 붙어 있던 마구간과 맞은편 사랑채는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허물어져버렸다. 곳곳을 둘러봤다. 남자와 여자로 엄격하게 분리됐던 정낭(화장실), 보리와 나락을 넣는 뒤주, 타작을 하던 타작마당, 우마차가 왕래했던 삽작문과 사랑채 할배만 사용하던 쪽문, 손님들이 사용했던 정식 대문도 볼 수 있었다. 삽작문 바로 옆에 심긴 단감나무는 개암나무와 감나무를 접붙여서 태어난 수종이라는 것도 그가 가르쳐주었다. 텃밭에는 10월 말에 파종해 파릇한 잎사귀를 내민 유채, 상추, 배추, 딸기, 대파 등이 겨울이라서 더 탱글탱글한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이 공간은 어쩜 이 시대의 마지막 겨울농가가 갖고 있는 온갖 오브제를 유물처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와 나는 말없이 아궁이 밖으로 삐져나오는 장작불을 실컷 감상했다. 우리의 일상은 나날이 변화하겠지만 이 겨울의 추위와 그걸 견디게 해주는 장작불만은 영원불변할 것 같다. ☞ W2면에 계속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Copyrights ⓒ 영남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12운성으로 보는 오늘의 운세

2015_suseong(40).gif


2017_dalseo(40).gif


2016_dong(40).gif


2017_ma(250).jpg


2017_228.jpg


2017_dae.jpg


2016_hwa.jpg


2015_dhc.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