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만 길 신광(神光) 영호루

  • 입력   |  수정 2011-02-21 07:51  |  발행일 2011-02-21 제면
[문화산책] 만 길 신광(神光) 영호루
김필숙(안동문화원 강사)

'동남으로 여러 군과 현 두루 보았더니/영가(永嘉)의 경치가 더욱 나음을 알겠더라/읍은 산천의 기세를 가장 잘 얻고/인물은 장수와 재상의 집이 수두룩하구나.' 포은 정몽주 선생께서 영호루에 들러 남긴 시문의 앞부분이다. 안동 시내를 한 눈에 살펴 볼 수 있는 자리에서 만 길 신광(神光)을 비추는 영호루(映湖樓)에 오르면, 세월을 거슬러 안동의 역사와 인물, 풍광을 생각해볼 것이다.

'영가(永嘉)'는 안동의 옛 이름으로, 17세기에 편찬·간행된 지방지인 영가지에 의하면 이수(二水)의 합자인 영(永)과 아름다울 가(嘉)자를 써 낙동강 본류와 반변천이 합류하는 지점에 자리 잡은 안동의 지세를 표현한 것이라 한다. 이 누각이 건립된 때는 정확히 전하지 않으나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복주(福州)에 이르러 어가를 멈추고 쉬었고, 적을 토벌케 하였단다. 마침내 서울을 회복하고 안동대도호부로 승격시켰으며, 친히 금빛 글씨로 영호루 현판을 써 하사하니 오늘에 전한다. 시내 남쪽 강둑에 있던 것이 물난리로 여러 차례 유실과 중건을 거듭하다 1970년 강 건너편 언덕 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그 큰 물난리 때마다 금빛 편액은 수습이 되었다니 신통한 일이다.

흔히 안동 팔경으로 선어모범(仙魚暮帆)·귀래조운(歸來朝雲)·서악만종(西嶽晩鐘)·임청고탑(臨淸古塔)·학가귀운(鶴駕歸雲)·연미세우(燕尾細雨)·도산명월(陶山明月)·하회청풍(河回淸風)을 감상해 볼 일이라 하나, 달빛 머금은 낙동강 물을 어찌 마다할 수 있을까. 지난날, 여름이면 낮 동안 씻어 삶아 널어놓은 하얀 광목 호청과 함께 강 가득 은빛 달그림자가 출렁거렸고, 겨울에는 굳게 언 강물에 반사되는 달빛으로 등불 없이도 강둑을 거닐 수 있었다. 상류의 댐 건설로 아쉽게도 누 아래 맑은 모래사장은 사라졌지만, 휘영청 밝은 달 솔가지에 걸리면 한 번쯤 누에 올라 안쪽에 게시된 선조의 시문을 음미하고 서기(瑞氣)를 받을 만하다.

'나르는 용 하늘에서 밝은 구슬 희롱하다/멀리 영가의 호수 위 누대에 떨어뜨렸네/밤에 구경함에도 부지런히 촛불을 잡지 않으니/신령스러운 빛 일만 길 밖에서 정주(汀州)로 쏘아줌이라.' 삼봉 정도전 선생의 시다. 복주(福州)·정주(汀州)는 안동의 옛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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