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윤 논설위원
페르시안 메신저 신드롬=고대 페르시아의 어떤 황제는 패전 소식을 전했다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전령을 처형했다. 반면 승전보를 전한 전령은 영웅 대접을 받았다. 나쁜 소식이 듣기 싫어 나쁜 소식을 전하는 메신저마저 싫어한 결과는 처참했다. 왕궁 앞까지 적이 쳐들어왔건만 아무도 이를 전하지 않았다. 국민의힘이 딱 그 짝이다. 수많은 경고를 무시한 것도 모자라 그 메신저들을 컷오프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선거 D-50이 지났는데 변화의 미동조차 없다. 수십 년 탈 없이 지켜온 안방 TK까지 내주기 일보 직전이다. 문 앞에 닥친 적을 무방비로 맞이한 페르시아의 처지와 다를 바 없다. 수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전쟁은 무기의 힘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교훈을 되새김질하는 페르시아의 후예 이란의 대물림 불행이 안쓰럽다. 국민의힘을 향한 우리의 시선도 그러하다.
'김부겸 신드롬'이란 말까지 등장했다. 김부겸의 대구 도전기(挑戰記)는 '진영정치를 심판하는 대구발(發) 정치혁명'이란 서사적 스토리텔링으로 포장돼 회자한다. '김부겸이 당선된다면…'이란 설익은 가정이 넘치고, "살아생전 민주당 대구시장을 보게 되다니…"라며 희망에 벅찬 지지자들을 어렵지 않게 만난다. 김부겸을 지지하는 지인에게 "대구는 찍던 대로 찍는 관성이 있다"라며 낙관론을 경계했더니 곧바로 핀잔으로 돌아왔다. 과연 그럴까. 김부겸 진영에도 페르시안 메신저 증후가 싹트는지 모른다. 이 길 끝에 과연 김부겸이 원하는 게 있을까.
30 : 0=3, 4월에 걸친 대구시장 여론조사는 총 6회다. 이 중 5회는 1대1 가상대결, 가장 최근 1회는 이진숙, 주호영을 포함한 다자대결 조사였다. 양자대결 조사는 총 30건. 30 : 0, 모두 김부겸 우위였다. 경고의 첫 메신저는 영남일보였다. 3월 24일자 1면 헤드라인은 큰 충격을 줬다. '김부겸, 야 대구시장 후보 8명과 가상대결에서 모두 우위'(리얼미터 조사). 그건 시작이었다. 그 후 네 차례(여론조사꽃 3월 25일·리얼미터 30일·여론조사꽃 4월 8일·한국갤럽 12일)의 조사 결과도 같았다. 아니, 격차는 더 벌어졌다. 단 한 번 이진숙과의 양자대결만 오차 범위였을 뿐 나머지 29건 모두 오차 범위 밖이었다. 그저께 한국리서치의 다자 구도 조사에서도 김부겸은 2위 후보와 20~30%p의 큰 격차를 냈다. (중앙선관위 여론조사심의위 참조) 김부겸 현상이 김부겸 독주 양상으로 굳어진 듯하다. 김부겸 현상은 여기까지일까 여기서부터일까.
'연민'의 힘=이러한 여론조사는 TK의 '분노'만을 읽은 결과다. 작금 대구시민의 감정을 '분노'로만 이해하는 건 단견이다. 한국갤럽의 3월 27일 조사에서 대구의 무당층은 42%(민주당 27%·국민의힘 27%), 4월 3일에는 36%(경북 포함, 민주당 26%·국민의힘 35%)로 집계됐다. 50~70%까지 나오던 국힘 지지율이 쪼그라들고 그 태반이 무당층으로 이동한 것이다. 대구의 제1당은 무당층? 이 속에 복잡한 대구 민심의 비밀이 숨어 있다. 그 감춰진 TK 민심의 정체를 '연민(憐愍)'이라 읽자. 연민은 움직이는 감정이다. 스윙보터 구간이 커졌다는 의미다.
다 이긴 듯한 민주당, 포기한 듯한 국민의힘, 둘 다 틀렸다. 안심도, 단념도 섣부르다. 50일은 짧지 않다. 지금부터다. 김부겸은 스스로 대구의 대안임을 더 열심히 입증해야 할 것이다. 분노와 연민 사이 방황하는 민심, 대구는 더 이상 떠먹여주는 삶에 중독돼서는 안 된다.
이재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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