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정세 불안으로 종량제봉투 수급에 비상이 걸린 22일, 대구 달서구 이마트 월배점에서 한 시민이 판매 제한 규정에 따라 구매한 봉투를 들어 보이고 있다. 강승규 기자
"미국과 이란이 싸운다더니, 왜 우리 동네 마트 쓰레기봉투가 동이 나는 건가요?"
22일 대구 달성군 한 마트 계산대 앞. 주부 이수현씨(53·화원읍 구라리)는 종량제봉투 서너 묶음을 카트에 담으려다 점원의 제지를 받았다. 매장 곳곳에는 '수급 불안으로 인해 1인당 1묶음만 제한 판매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이씨는 "기름값 오르는 건 뉴스 보고 알았지만, 매일 쓰는 봉투까지 귀한 몸이 될 줄은 몰랐다"며 "나중에 아예 못 구하게 될까 봐 미리 사두러 왔는데 당혹스럽다"고 했다.
◆"편의점 뺑뺑이 돌아요"…맘카페선 실시간 '재고 지도' 공유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가 '쓰레기봉투 수급 불안'이라는 생경한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대구지역 유통가는 봉투를 미리 확보하려는 시민들과 물량을 조절하려는 매장 간의 눈치싸움이 치열하다.
지역 온라인 커뮤니티와 맘카페는 그야말로 '봉투 정보 센터'가 됐다. "어느 동네 편의점엔 아직 20리터 재고가 남아 있다", "어느 마트는 아직 수량 제한이 없다"는 식의 게시글이 실시간으로 올라온다. 직장인 박지수씨(39·달서구 이곡동)는 "퇴근길에 편의점 세 곳을 돌았는데 전부 품절이었다"며 "당장 집안에 쓰레기는 쌓이는데 봉투를 못 구할까 봐 조바심이 난다"고 토로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부른 '나프타' 쇼크…제작 단가 '직격탄'
평범한 일상의 소모품이 이토록 귀한 몸이 된 배경에는 복잡한 국제 경제의 흐름이 얽혀 있다. 종량제봉투의 주원료는 석유화학 제품인 폴리에틸렌(PE)이다. 원유를 섭씨 75~150도로 가열해 분리한 나프타(석유를 정제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기초 원료)를 다시 열분해하여 에틸렌(플라스틱과 합성섬유 등을 만드는 기본 원료을 만들고, 이를 중합해 생산하는 방식이다.
최근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등으로 나프타 도입에 차질이 생기자 공급망 전체에 비상등이 켜졌다. 한국프라스틱공업협동조합연합회에 따르면, 이달 폴리에틸렌 공급가는 t당 약 20만원가량 급등했다. 지난달 t당 150만원 안팎이던 가격이 요동치기 시작한 것이다.
현장의 위기감은 더 심각하다. 연합회 사무국 한 직원은 "일부 업체는 다음 달부터 공급가를 t당 40만원, 심지어 80만원까지 추가 인상하겠다는 통보를 받은 상태"라고 전했다. 원료값 상승이 고스란히 제작 단가 압박으로 이어지자, 유통가에서는 "봉투 가격이 오르거나 공급이 끊길 수 있다"는 공포 섞인 소문이 퍼졌고 이것이 시민들의 '가수요'를 자극했다는 분석이다.
22일 대구의 한 대형마트 계산대 앞. 장바구니를 든 주부들이 줄을 지어 차례를 기다리는 가운데, 계산원들이 종량제 봉투를 한 묶음씩 고객들에게 판매하고 있다. <그래프=생성형 AI>
◆1년에 18억장 쓰는데…"불안 심리 차단이 관건"
한 해 제작되는 종량제봉투는 재사용 봉투를 포함해 18억장에 육박한다. 이 중 대다수가 고밀도 폴리에틸렌(HDPE) 등으로 만들어지는 만큼, 원료 수급 불안은 시민들의 삶을 즉각적으로 파고들었다.
정부는 부랴부랴 전국 지자체 재고 조사에 착수하며 진화에 나섰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현재 제조업체들이 보유한 원료 재고가 약 한 달 치 분량이며, 지자체 비축 물량까지 고려하면 당장 '쓰레기 대란'이 일어날 가능성은 낮다고 밝혔다.
하지만 시민들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다. 자영업자 최민수씨(55·남구 대명동)는 "먼 나라 전쟁 이야기가 내 집 앞 쓰레기통 문제로 직결되는 현실이 무섭다"며 "사재기를 탓하기 전에 정부가 정확한 수급 전망을 내놓고 시민들을 안심시켜야 한다"고 꼬집었다.
강승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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