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노멀이 된 ‘짠물 사회’” 고물가·고환율이 바꾼 대구의 풍경

  • 최시웅·구경모(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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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4-15 22:15  |  발행일 2026-04-15
“팔수록 손해” 한숨짓는 식당 점주부터 예산 걱정하는 예비 유학생까지
“적응이 곧 생존력”…전문가들, 고정비 줄이고 소비 패턴 재설계 조언
지난 14일 오후 방문한 대구 중구의 한 중국음식점 업주 신상철(64)씨가 매장 내 쌓인 배달용 포장재를 보여주고 있다. 신씨는 포장재 비용 부담이 커져 다회용기 배달을 고민 중이다. 구경모기자

지난 14일 오후 방문한 대구 중구의 한 중국음식점 업주 신상철(64)씨가 매장 내 쌓인 배달용 포장재를 보여주고 있다. 신씨는 포장재 비용 부담이 커져 다회용기 배달을 고민 중이다. 구경모기자

미국-이란 전쟁 여파로 자고 나면 유가와 환율이 치솟고, 덩달아 물가도 널뛰면서 서민과 자영업자들의 생활이 갈수록 각박해지고 있다. 어느 새 '뉴노멀(새로운 기준)'이 된 고환율·고물가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한 대구시민들의 처절한 몸부림도 어렵지 않게 목도할 수 있다.


◆ 자영업자 옥죄는 '3고(高)'의 습격


14일 오후 대구 달서구의 한 테이크아웃 전문 카페. 매장 한쪽 선반에는 테이크아웃 컵과 뚜껑, 빨대, 컵홀더, 종이 캐리어, 디저트 포장 상자 등이 종류별로 빼곡히 쌓여 있었다. 구경모기자

14일 오후 대구 달서구의 한 테이크아웃 전문 카페. 매장 한쪽 선반에는 테이크아웃 컵과 뚜껑, 빨대, 컵홀더, 종이 캐리어, 디저트 포장 상자 등이 종류별로 빼곡히 쌓여 있었다. 구경모기자

지난 14일 오후 영남일보 취재진이 찾아간 대구 중구 동인동 한 중국음식점. 점주 신상철(64)씨는 요즘 '배달용 포장재'가 두렵다고 했다. 미국-이란 전쟁 여파로 온갖 재료값이 오르고, 건당 700원이던 포장재 비용은 이제 1천원을 훌쩍 넘긴지 오래다. 요즘 식당을 찾는 손님보다 배달 손님 비중이 갈수록 높아지면서 비용 부담은 배가 되고 있다.


신씨는 "자영업자 입장에선 주문 1건이 나갈 때마다 붙는 용기값까지 하나하나 따지게 된다. 특히, 우리처럼 국물과 튀김, 소스를 따로따로 담아야 하는 중국 음식점은 포장지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다. 예전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돈을 이젠 일일이 쓰임새를 따져보고 줄이는 방향을 찾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고 선뜻 음식값을 올리지도 못한다. 짜장면 등 중국요리가 서민음식의 대표주자인 탓에 단돈 100원만 올라도 매출에 직격탄을 맞아서다. 결국, 끝을 모르고 지속되는 고물가·고환율 시대를 버텨내기 위해 신씨는 '남는 돈'을 줄일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


신씨는 "주문이 들어와도 '이게 맞나' 싶은 순간이 잦다"면서 "고민 끝에 최근 다회용기 배달을 다시 고민 중이다. 배달대행 서비스가 일상화되면서 회수 체계가 복잡해지고, 위생 문제로 손님들도 꺼리지만 내가 살려면 어쩔 수 없다. 이렇게라도 고정비용을 줄여야 버틸 수 있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신씨는 그나마 플라스틱 일회용품을 다회용기로 전환할 수 있는 반면, 이런 대응조차 시도하기 힘든 업종에선 신음소리가 나올 지경이었다. 14일 오후 대구 달서구 감삼동 한 테이크아웃 전문 카페. 매장 한쪽 선반에는 테이크아웃 컵과 뚜껑, 빨대, 컵홀더, 종이 캐리어, 디저트 포장 상자 등이 종류별로 빼곡히 쌓여 있었다.


'요즘 장사 어떻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업주 정현희(여·59)씨는 "팔수록 비용 부담이 커지는 구조"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카페는 작은 부자재가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컵 하나, 뚜껑 하나, 빨대 하나는 별것 아닌 것 같아도 결국 다 돈이다. 특히, 테이크아웃 비중이 높은 가게는 포장재 가격 인상이 곧바로 수익성 악화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더군다나 정씨가 운영하는 카페처럼, 테이크아웃 전문을 표방하는 곳 대부분은 '저가형'이다. 박리다매로 수익을 남겨야 하는 상황에 한 푼이 아쉬울 수밖에 없다. 그는 "물가 상승으로 컵홀더나 냅킨 제공 방식을 바꾸거나, 매장 이용과 포장 주문의 운영 방식을 세분화하는 식으로 비용 절감에 나서고 있다. 무료로 제공하던 부자재를 주문량에 맞춰 최소화하거나, 불필요한 소모품 사용을 줄이며 버티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상황에 대해 다른 관점을 내놓았다. 아이러니하게도 '탈(脫)플라스틱'을 앞당길 전환점이 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경북대 노진철 명예교수(대구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는 "외부 압박이 존재하는 지금이 정부 정책상 탈플라스틱 로드맵을 가속화할 적기"라며 "중동발 위기가 이번으로 끝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일반적인 상황에선 소비 패턴을 바꾸는 것이 강한 저항에 부딪히겠으나, 현재 외부 위기 상황은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의식 전환을 끌어내기 유리한 기회"라고 말했다.


◆ '1달러'가 무서운 시대…크고 작은 일상 변화들


지난달 중동 전쟁 여파로 환율이 하루 평균 11원 넘게 널뛰면서 외환 시장 거래량이 역대 최대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서울 중구 한 은행 건물에 게시된 원/달러 환율. 연합뉴스

지난달 중동 전쟁 여파로 환율이 하루 평균 11원 넘게 널뛰면서 외환 시장 거래량이 역대 최대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서울 중구 한 은행 건물에 게시된 원/달러 환율. 연합뉴스

한국은행이 15일 발표한 수출입물가지수 통계에 따르면 3월 기준 수입물가지수(원화 기준 잠정치·2020년 수준 100)는 169.38로, 2월(145.88)보다 16.1% 올랐다. 연합뉴스

한국은행이 15일 발표한 수출입물가지수 통계에 따르면 3월 기준 수입물가지수(원화 기준 잠정치·2020년 수준 100)는 169.38로, 2월(145.88)보다 16.1% 올랐다. 연합뉴스

'고물가'와 별개로 '고환율'에 직접적인 타격을 받은 이들도 적잖았다. 환율 문제로 일생일대 계획을 수정하는 경우가 허다한 것. 오는 9월부터 미국 유학을 준비 중인 박사과정생 박수희(32·경북 경산시)씨는 "예전에는 원·달러 환율을 1천300원 안팎으로 잡고 1년 예산을 계산했다. 지금은 1천480원대로 올라 같은 달러 금액이라도 실제로 준비해야 하는 원화는 수백만원 더 커진다"고 울상을 지었다.


그러면서 박씨는 "학비와 생활비를 합친 1년 필요 자금을 4만달러로 잡았을 때, 1천300원 기준으로는 5천200만원이다. 그런데 이 돈이 지금은 5천900만원까지 올랐다. 단순히 계산해도 700만원이나 차이가 나는 셈이다. 학업 계획보다 먼저 환율부터 다시 계산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했다.


박씨처럼 공부를 마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생각인 경우, 모든 예산 계산이 환율에 영향을 받는다. 미국에서 직접 벌어서 생활비를 충당하지 않는 이상 결국엔 한국에서 모은 돈으로 지내거나 꾸준히 생활비를 조달해야 해서다. 그는 "예전에는 학교와 전공, 출국 시기를 중심으로 준비했다면 요즘은 환율 변동폭이 워낙 커 매일 환율부터 확인하게 된다"면서 "당장 7~8월에는 출국해야 한다. 그런데 중동 전쟁이 장기화하는 양상을 보이면서 환율이 쉽게 떨어질 것 같지 않아 걱정이다. 예산을 더 보수적으로 잡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에 대해 배동우 유학네트 대구센터 대표는 "최근 미국 비자를 준비하거나 실제 출국을 앞두고 상담을 받으러 오는 학생 수가 예전보다 눈에 띄게 줄었다. 체감상 70% 수준"이라며 "고환율과 현지 생활비 부담이 커지면서 학생, 학부모들이 예전보다 훨씬 신중하게 접근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고환율 위기에 따른 시민 체감도는 이뿐만이 아니다. 달러로 결제하는 플랫폼 사용에도 부담감이 커졌다. 대학생 장건영(24·대구 북구)씨는 "최근 달러로 결제하는 생성형 AI 서비스 구독을 포기했다. 대학생 여건상 이곳에 많은 돈을 쏟아붓기가 어려워서다"고 했다. 직장인 이민주(34·대구 수성구)씨는 "개인업무용으로 구독하던 디자인 도구 서비스를 최근 재결제를 했는데 깜짝 놀랐다. 최근 치솟는 환율을 체감했다"고 했다.



이두원 국가데이터처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이 지난 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2026년 3월 소비자물가동향을 발표하고 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중동 전쟁으로 인한 석유류 가격 상승과 고환율 지속으로 3개월 만에 가장 큰 폭인 2.2% 올랐다. 연합뉴스

이두원 국가데이터처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이 지난 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2026년 3월 소비자물가동향을 발표하고 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중동 전쟁으로 인한 석유류 가격 상승과 고환율 지속으로 3개월 만에 가장 큰 폭인 2.2% 올랐다. 연합뉴스

◆ "뉴노멀 된 위기, 적응이 생존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위기를 일시적 충격으로만 볼 게 아니라, 앞으로 닥칠 수 있는 다른 위기 상황에도 대응할 수 있도록 생존력과 적응력을 키우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우리 사회가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이른바 '뉴노멀'에 적응했던 것처럼, 고환율과 고물가 시대에도 새로운 소비 기준과 생활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구대 전승훈 교수(경제금융통상학부)는 "배달이나 테이크아웃 비중이 높은 업종은 지금 상황에 부담이 클 것"이라며 "자영업자들이 늘어난 비용을 곧바로 판매가에 반영하기 어렵다. 짜장면이나 커피처럼 가격에 민감한 업종은 몇백 원만 올려도 소비자 부담이 바로 체감된다. 업주들이 마진 축소를 감수하거나 서비스 항목을 줄이는 방식으로 버티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상황이 길어지면 소비자도 지출 방식을 바꾸게 된다. 배달 대신 직접 포장, 외식 대신 집밥, 프랜차이즈 대신 저가 매장을 찾는 식으로 소비가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 이것이 다시 자영업 매출 둔화와 내수 부진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체질 변화 시도가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성신여대 허경옥 교수(소비자학과)는 이번 위기를 기회로, 시민 각자가 소비 습관을 한 번쯤 점검해 볼 필요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허 교수는 "하지 않아도 되는 소비라면 줄이거나 끊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다. 각자 꼭 필요하지 않은데 상시적으로 빠져나가는 지출이 무엇인지 한 번쯤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석유로 만드는 수많은 제품은 적게 쓰는 것 자체로 에너지 절약이나 수입 의존을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 어떤 소비가 환경에 좋지 않고, 수입 제품 의존도가 높은지 점검해 보고, 자영업자나 산업 분야에서도 대안을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끝으로 "전쟁이 끝난다고 해서 위기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향후 또 다른 위기가 다시 올 수밖에 없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적응"이라며 "시민들끼리 절약하는 방법이나 요령을 공유하고, 생활양식을 조정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위기를 위기로만 볼 것이 아니라, 생활 속 소비를 다시 설계하는 계기로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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