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낮 최고기온이 36.4℃까지 오르며 국내 첫 폭염 중대경보가 내려진 경북 경산 하양읍 시가지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12일 오전 10시를 기해 경북 경산·포항에 '폭염중대경보'가 발령됐다. 폭염중대경보는 하루 최고 체감온도가 35℃ 이상인 상황이 이틀 이상 이어진 곳에서 체감온도 38℃ 이상 또는 최고기온 39℃ 이상이 하루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될 때 내려지는 최상위 폭염특보다. 지난달 1일 도입 이후 첫 발령으로 18년 만에 개편된 폭염특보 체계가 실제로 가동된 첫 사례다.
◆개미새끼 한 마리 안 보이는 경산 도심
이날 낮 12시10분 경산시 하양읍 시가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문을 여는 순간 뜨거운 공기가 얼굴을 덮쳤다. 숨이 턱 막힐 정도였다. 열기를 한껏 머금은 차도 위로는 아지랑이가 일렁였다. 거리는 평소보다 한산한 모습이다. 어쩌다 눈에 띄는 시민은 연신 손부채를 흔들며 횡단보도를 건너간다. 양산으로 뜨거운 햇볕을 가려도 열기는 피하지 못한 듯 찌푸린 얼굴이 발갛다. 피난 가듯 종종걸음으로 향한 곳은 건물 안이다.
국내 첫 폭염중대경보가 발령된 경산의 한낮 풍경이다. 휴일 점심시간 거리는 좀 과장하자면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 야외 활동을 자제하라는 안내 방송이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경산시에 따르면 이날 하양읍의 낮 최고기온은 36.4℃까지 치솟았다. 전날 하양의 낮 최고기온은 39.4℃, 최고 체감온도는 37.6℃를 기록했다.
하양 주민 윤모씨는 "60년 가까이 하양에서 살았지만 오늘 같은 폭염은 처음"이라며 "숨 쉬기조차 힘들 지경"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길에서 만난 90세 김모씨(여)는 "숨이 차서 말도 제대로 못 하겠다"고 짧게 답한 뒤 서둘러 그늘로 발걸음을 옮겼다. 방학을 맞은 대학생들은 폭염을 피해 도서관으로 몰려들었다. 대구가톨릭대 4학년 김모씨는 "미친 더위다. 그나마 학교 도서관이 시원해 이곳을 찾았지만 책을 보는 것조차 힘들다"고 했다.
시장 골목 입구에선 한 상인이 얼음물을 꺼내 마시며 손님을 맞고 있었다. 그는 "점심시간인 데도 사람들이 잘 안 보인다. 오늘은 밖에 오래 있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반면 시원한 음료 주문은 폭주했다. 30대 한 배달 라이더는 "음료 배달이 크게 늘었다"면서도 헬멧 사이 주르륵 흐르는 땀이 짜증나는지 짧게 말한 뒤 오토바이를 몰았다.
폭염경보가 내려진 12일 오후 포항시 남구 송도해수욕장에서 일부 시민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연일 이어지는 불볕더위에도 해수욕장 전반은 비교적 한산한 모습을 보였다.<김기태기자>
◆피서철 파리만 날린 포항 해수욕장
같은 날 오후 3시쯤 포항 북구 영일대 해수욕장. 지역 대표 피서지란 명성이 무색할 만큼 피서객이 드물었다. 뜨거운 햇빛을 가려줄 파라솔들은 주인을 찾지 못한 채 대부분 접혀 있었다. 몇몇 피서객만 드문드문 물놀이를 즐길 뿐이다. 해수욕을 하기에도 너무 뜨거운 날씨였던 것이다.
비슷한 시각 남구 송도해수욕장 분위기도 매한가지다. 넓은 백사장에 비해 피서객 수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가족과 함께 이곳을 찾은 박충헌씨(47·포항 남구)는 "휴일을 맞아 물놀이를 할 겸 해수욕장을 찾았는데, 너무 뜨거워 인근 카페에서 좀 쉬다가 돌아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포항시에 따르면 개장 첫날인 지난 11일 포항 전체 8개 해수욕장 방문객 수는 4천372명에 그쳤다. 평균 546명만 다녀간 셈이다.
12일 폭염경보가 발효된 가운데 포항시 북구 한 영화관을 찾은 시민들이 영화 상영을 기다리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냉방시설을 갖춘 영화관은 이날 예매율이 90%를 넘기는 등 무더위를 피하려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김기태기자>
반면 냉방시설을 갖춘 영화관 등 실내 시설에는 피서객이 몰려 대조적인 풍경을 보였다. 북구 한 영화관 매표소에는 표를 사려는 이들과 상영시간을 기다리는 이들로 북적였다. 12일 이 영화관 예매 현황을 보면 전체 좌석 1천846석 가운데 1천690석이 예매돼 종합 예매율이 91.55%에 달했다. 이날 포항지역 대부분 상영관이 만석에 가까운 상태였다.
전문가들은 극단적인 폭염이 '피서 패턴'의 변화를 초래한 것으로 분석했다. 이날 처음으로 발동된 폭염 중대경보가 야외활동에 대한 경각심을 높인 것도 한몫했다. 김대원 포항시 도시안전주택국 안전총괄과장은 "폭염 중대경보는 단순한 무더위가 아니라 생명을 위협하는 극한 기온을 경고하는 신호"라며 "이런 경보가 내려지면 시민들이 야외활동 자체를 자제하려는 경향이 강해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해수욕장이라 해도 뙤약볕 아래 장시간 노출되는 것에 부담을 느낀 피서객이 냉방이 완비된 실내 공간인 영화관 등을 대안으로 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김기태
박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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