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포항제철소 1분기 600억 적자…전쟁·고환율 이중고
포스코 포항제철소가 전쟁과 고환율 여파로 경영 상태가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한 것으로 보인다. 포항지역에서는 포항제철소가 따로 적자를 냈다는 얘기도 돌고 있는데, 단순 계산을 해보면 근거 없는 소문은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동안 어렵다는 얘기는 꾸준히 나왔지만, 규모를 구체적인 수치로 가늠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된 포스코(철강 자회사·별도 기준) 1분기 실적보고서를 보면 매출은 8조9천350억원으로 전 분기보다 7.6%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2천130억원으로 전 분기 대비 36.6% 줄었다. 매출이 늘었는데 영업이익이 줄었다는 건 그만큼 원가 부담이 커졌다는 뜻이다. 더 눈에 띄는 건 1년 전과의 비교다. 지난해 1분기 포스코 별도 영업이익은 4천500억원이었다. 올해 1분기(2천130억원)는 여기서 52.7% 줄어든 수치로, 전 분기 대비 감소율(36.6%)보다 훨씬 가파르다. 포스코홀딩스 관계자는 지난 4월 30일 컨퍼런스콜에서 전쟁 여파로 원료비 부담이 크게 늘었다며 회사가 효율화와 원가 절감 노력을 하고 있음에도 2분기까지 비용 압박이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 포항·광양 합산 공시... "600억 적자"는 추정치지만 여기서 짚어볼 점이 있다. 포스코는 별도 재무제표를 공시할 때 포항제철소와 광양제철소 실적을 따로 나누지 않고 합산해서만 발표한다. 즉 어느 제철소가 얼마를 벌고 잃었는지는 회사가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는 구조다. 포항지역 철강업계에서 도는 "포항제철소가 1분기에 600억원 적자를 냈다"는 얘기도, 엄밀히 말하면 회사가 확인해준 수치는 아니다. 다만 단순 계산을 해보면 이 추정이 터무니없는 숫자는 아니라는 정황이 있다. 포스코의 지난해 전체(별도 기준) 영업이익은 1조7천800억원으로 공시돼 있다. 다만 이를 광양제철소와 포항제철소로 나눈 수치는 공시 항목이 아니다. 포스코 사정에 밝은 철강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을 종합하면 광양제철소가 1조6천억 원, 포항제철소가 1천300억원 수준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추정치를 12개월로 나누면 광양은 한 달에 약 1천300억원, 포항은 한 달에 약 100억 원씩 번 셈이 된다. 두 곳을 합쳐 1분기(3개월)로 환산하면 4천200억~4천300억원이 나와야 정상인데, 실제 지난해 1분기 포스코 별도 영업이익(4천500억원)도 이와 비슷해, 업계 추정치가 실제와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올해 1분기다. 같은 방식대로면 4천억 원대가 나와야 하지만, 실제로는 2천130억원에 그쳤다. 격차는 2천억 원 안팎이다. 이 격차를 광양과 포항 중 어느 쪽이 만들어냈는지는 공시만으로는 알 수 없다. 다만 광양제철소가 자동차강판 등 고부가가치 제품 비중이 높아 상대적으로 충격을 덜 받았을 거란 게 업계의 대체적인 시각이고, 이를 감안하면 줄어든 영업이익 상당 부분이 포항제철소에서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이 결론은 '업계 추정치(사업장별 실적 배분)'에 한 번 더 가정을 더한 계산이라는 한계가 있다. 즉 두 단계의 추정이 겹쳐 있는 셈이어서, 600억 원이라는 숫자 자체보다는 '포항제철소가 적자로 돌아섰을 가능성이 크다'는 방향성에 더 무게를 두고 볼 필요가 있다. ◇ 코로나 때 첫 적자... 힌남노는 예외적 사례 포스코의 적자는 역사적으로도 흔한 일이 아니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포스코(별도 기준)는 흑자를 지켰다. 처음으로 분기 적자를 낸 건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덮친 2020년 2분기로, 지난 2000년 분기별 실적 공시가 시행된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개별 기준 영업손실 1천85억원). 철강 수요가 거의 멈춰선 전례 없는 충격이었던 셈이다. 이후 2022년 9월 태풍 힌남노로 포항제철소가 49년 만에 전면 가동을 멈췄을 때는 철강부문 영업이익이 냉천 범람 여파로 약 1조3천억 원 줄어든 것으로 추산됐다. 다만 광양제철소가 버텨준 덕에 회사 전체로는 적자를 면했다. 넉 달 넘게 생산을 전혀 못 한 포항제철소만 따로 떼어 놓고 보면, 그 기간 적자를 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즉 태풍처럼 공장 자체가 멈춰선 자연재해성 사건을 빼면, 포스코가 시장·경기 요인만으로 적자를 낸 경우는 코로나19 때 단 한 번뿐이었던 셈이다. 전쟁과 환율이라는 시장 요인으로 포항제철소가 또 한 번 적자를 냈을 가능성이 거론된다는 것은, 자연재해가 아닌 시장 충격으로는 코로나19 이후 처음이라는 의미여서 그만큼 지금의 위기가 가볍지 않다는 해석으로 이어진다. ◇ 환율 10원 오르면 500억원 더 든다 가장 큰 원인은 환율이다. 지난해 1월 1400원대였던 원·달러 환율은 5월 1300원대까지 내려갔다가 연말 1440원대로 마감했다. 올해는 1446원으로 출발해 등락을 거듭하다 지난 5일 1559원대까지 치솟았다. 1년 전보다 100원 넘게 오른 셈이다. 포스코처럼 원료를 거의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기업은 환율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포스코에 능통한 전문가들은 환율이 10원 오를 때마다 철광석·석탄 등 원재료비가 약 500억원 늘어나는 것으로 추산한다. 단순 계산으로도 환율이 100원 오르면 5천억 원, 이번처럼 100원 넘게 뛰면 5천억 원 이상의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구조다. 실제로 포스코의 1분기 원재료 매입액 5조5천788억원 가운데 철광석·원료탄이 포함된 제선원료 비중이 70.2%(3조9천134억원)로 가장 크고, 니켈 등을 쓰는 STS원료가 13.3%(7천438억원), 나머지 부원료가 16.5%(9천216억원)를 차지한다. 가격을 봐도 원료탄은 올해 1분기 톤당 34만3천 원으로 지난해 26만8천 원보다 28%가량 올랐고, 니켈도 톤당 2천537만8천 원으로 1년 전보다 18%가량 상승했다. 원자재 값과 환율이 동시에 오르는 이중고가 고스란히 원가에 반영된 셈이다. ◇ "테이블 절반도 안 차요"… 음식점 문 닫는 골목 이런 분위기는 포항 시내 곳곳에서도 감지된다. 포항 남구 이동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최모씨(62)는 "예전에는 평일에도 회식 손님이 줄을 섰는데, 요즘은 저녁 시간에도 테이블이 절반도 안 찬다"며 "작년보다 매출이 30%는 줄어든 것 같다"고 말했다. 남구 오천읍에서 치킨집을 하는 이모(54)씨는 "포스코 다니는 손님들이 점심 한 끼는 먹어도 저녁 술자리는 확 줄었다"며 "임대료는 그대로인데 매출이 안 따라가니 막막하다"고 했다. 효자동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박모(45)씨는 "주변에 비슷한 가게 두 곳이 최근 문을 닫았다"며 "다들 '버티자'고는 하는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아직 대규모 구조조정처럼 눈에 보이는 위기는 아니다. 월급은 그대로 나오고 있어 당장 체감이 크지 않다는 반응도 있다. 하지만 예전만큼 소비가 활발하지 않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는 게 지역 상공인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 철강 업황, 회복은 안갯속 이런 상황이 언제 풀릴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게 문제다. 전쟁이 장기화하면 환율과 유가 부담이 더 길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내년에 환율이 1600원대까지 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포항지역 철강업계 관계자들은 "업황은 사이클을 타는 만큼 언젠가는 돌아오겠지만, 그 시점을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포항지역 경제의 한 축인 포항제철소가 흔들리면 그 영향은 결국 지역 전체로 퍼질 수밖에 없다. 전쟁이라는 외부 변수에서 시작된 위기가 포항 시민들의 일상까지 파고들고 있다. 김기태기자 ktk@yeongn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