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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근의 시대공감] 결국 터지고 만 '사이버 렉카' 문제
최근 먹방 유튜버 쯔양이 전 남자친구에게 폭행과 협박 등 교제폭력을 당해왔고, 그 후엔 이른바 '사이버 렉카'라고 불리는 이슈폭로 유튜버들에게 협박당했다는 주장이 나와 큰 충격을 안겼다. 쯔양은 구독자 수가 1천만 명이 넘고 한국 갤럽 조사에서 '한국인이 좋아하는 유튜버' 1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런 정도의 스타마저 사이버 렉카로부터 고통 받아왔다는 것이다.교통사고가 터지면 견인차(레커)가 신속히 출동한다. 그처럼 어떤 사건이 터졌을 때 신속히 영상을 만들어 인터넷에 공개한다는 의미에서 누리꾼들이 '사이버 렉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이번에 '렉카연합'의 일부 유튜버들이 쯔양을 협박했다고 한다. 그들은 억울함을 호소하는데 수사를 통해 진상이 가려질 것이다.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그것과 별개로, 이번 일을 계기로 폭로 유튜버 문제의 심각성을 우리 사회가 돌아볼 필요가 있다.인터넷엔 수많은 소문이 넘쳐난다. '지라시'라며 휴대폰으로 유포되는 소문도 있고, 누군가가 일방적인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정상적인 언론은 그런 정보들을 섣불리 알리지 않는다. 개연성이나 사실관계를 따져보고 신중하게 보도할 것이다. 반면에 일부 폭로 유튜버들은 무조건 빨리 영상으로 알린다. 나중에 잘못된 것으로 드러나도 '아님 말고'다. 보통 시간이 흐른 후에야 사실관계가 밝혀지기 때문에 대중의 관심이 식어버렸을 때가 많다. 일부 폭로 유튜버들은 기존 사건의 문제는 도외시한 채 또 다른 폭로로 대중의 말초신경을 자극한다.제보를 받았다면서 방송할 때가 많은데, 사실무근으로 드러나도 '나는 제보를 전했을 뿐이다'라며 당당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런 폭로들이 설사 사실이라도 '사적 제재' 등 중대한 문제가 있는데, 심지어 허위 사실이라면 더 심각한 문제다. 거기에 더해 폭로 대상자를 협박해 뒷거래까지 시도했다면 정말 엄중한 사안이다.이게 특히 엄중한 이유는 폭로 유튜버들이 권력이 됐기 때문이다. 언론 윤리는 우리 사회에서 아주 중요한 이슈다. 언론은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사회적 감시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합의가 진즉에 이루어졌다. 요즘은 유튜버들이 기존 언론 못지않은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러므로 그런 유튜버의 윤리 문제는 엄중한 사안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기성언론이 받는 만큼의 감시와 견제는 받지 않는다. 인터넷에서 책임지지 않는 권력이 자라나고 있는 것이다.폭로 유튜버들을 권력으로 만들어준 건 대중이다. 수많은 대중이 폭로 유튜버의 영상을 클릭해서 보고 거기에 영향 받기 때문에 유튜버의 영향력이 커졌다. 폭로 유튜버들은 대중이 원하는 자극적인 폭로를 제공하면서 큰 환호를 받아왔다. 심지어 정의의 구현자로까지 추앙 받기도 했다. 쯔양 협박 의혹이 드러나자 대중은 이름이 거론된 유튜버들을 질타하고 있지만, 다른 폭로 유튜버들은 건재하다. 대중은 여전히 그런 영상을 클릭해주고 있다.대중의 미디어 소비 행태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다. 언뜻 봐도 신뢰성이 떨어져 보이는 유튜브 영상을 클릭하고 심지어 맹신하기까지 한다. 결국 기성 시스템을 불신하게 되는데 이건 우리 사회 신뢰 약화로 이어진다. 학교에서부터 인터넷과 미디어 소비에 대한 교육을 제대로 진행해서 정상적인 '인터넷 시민'을 길러내야 한다. 그리고 영향력이 점점 커지는 유튜버들을 어떻게 감시하고 견제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국가 차원에서의 논의가 필요하다. 지금처럼 개인방송 유명인들이 사회적 감시의 사각지대에서 영향력만 키워간다면 장차 우리 사회 민주주의의 토대까지 위협하게 될 수 있다.하재근 문화평론가하재근 문화평론가
[더 나은 세상] 재능은 없지만 좋아합니다
"요즘도 피아노 쳐?"몇 년 만에 만난 친구가 안부 인사로 물었다. 그렇다고 하자 친구는 예상한 질문을 또 한다. "한 10년 되지 않았어? 이젠 꽤 잘 치겠네?" 어렸을 때 배우고 싶었지만 배우지 못한 피아노를 나이 마흔이 넘어서야 시작했다. 중고 피아노를 사고 매달 레슨비를 낼 경제적 여유가 생겼고, 시간도 낼 수 있었다. 10년 전 동네 피아노 학원에 등록한 이후로 지금까지 주 1회 1시간 레슨을 쉬어본 적은 거의 없다. 지난해 손가락 관절에 염증이 생겨 생수 병뚜껑을 열지도 못할 만큼 손가락에 힘을 줄 수 없었을 때 의사의 조언에 따라 한 달 정도 쉰 적을 제외하면 말이다. 바빠서 연습을 거의 못한 경우에도 레슨은 빠지지 않았다. 여행을 갈 때는 요일을 조정해서라도 학원에 갔다. 그러니 내가 피아노 배우는 사실을 아는 지인들은 대부분 저 친구처럼 묻는다. 그런데 피아노를 배우면서 명확하게 알았다. 난 정말 피아노에, 나아가 음악에 재능이 전혀 없다는 걸. 악보는 잘 읽지만(이건 배움과 노력의 영역이다), 악보가 없으면 한 소절도 못 친다. 피아노를 어느 정도 배우면 누구나 어떤 노래라도 대충 반주를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그런 사람들을 주변에서 많이 보았다), 나는 음계를 알고 조성을 알고 코드 진행을 이론적으로 이해하는데도 코드 적힌 악보가 없으면 피아노 건반을 누르질 못한다. 그뿐이랴? 당최 외워서 연주할 수 있는 곡이 단 한 곡도 없다. 물론 반복해서 연습하면 저절로 외워지긴 하고, 그동안 많은 곡을 외워봤다. 그런데 새로운 곡을 연습하기 시작하면서 그전에 친 곡을 하루 이틀 안치면 손가락에서 모래가 술술 빠지듯 머릿속에서 그 곡이 빠져나간다. 어찌나 쉽게 사라지는지, 그 곡이 무슨 조인지, 몇 분의 몇 박자인지 그런 기본적인 것마저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러니 '지금' 외우고 있는 곡은 있어도 '언제나' 외우고 있는 곡은 없다. 흔히들 몸으로 배운 건 잘 안 잊어버린다고 하지 않던가. 자전거를 한번 배워두면 몸이 기억해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자전거 타는 법을 잊어버리지 않듯 피아노도 일단 건반 앞에 앉아서 첫 음을 떠올리면 그 다음은 자연스럽게 기억이 난다고 하던데, 안타깝게도 내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그래도 자전거 타는 건 안 잊어버렸긴 하다). 재미있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피아노를 좋아하며 배우고 있다는 사실이다. 열정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잔잔하게 꾸준하게. 내가 음악에 재능이 없다는 사실이 좀 실망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요즘은 아예 당당하게 말한다. "있잖아, 피아노 치는 내게 세 가지 놀라운 점이 있어. 첫째, 정말 재능이 없다." 이 대목에서 친구들은 대개 '풋'하고 웃음을 터트리며 말한다. "두 번째는 알겠다. 그래도 꾸준히 한다." "맞아! 그럼 세 번째는 뭔지 알아? 재능이 없어도 즐거울 수 있다." 어릴 때 선망하던 걸 늦게라도 배울 수 있는 환경이 되어서 좋고, 피아니스트들의 연주를 더 감탄하며 감상할 수 있어서 좋다. 피아노 학원에서 아이들이 띵까띵까 쳐대는 시끄러운 피아노 소리마저도 음악을 알아가는 아이들의 활기찬 소리로 느껴져 좋다. 내 말을 들은 친구가 총평을 했다. "성실함도 재능이래." 그런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재능은 없지만 좋아하니까. 정혜진 변호사정혜진 변호사
[돌직구 핵직구] 패스트트랙 재판 無用論(무용론)
한동훈 국민의 힘 당 대표에게 고맙다고 해야 하나? 한 대표가 당내경선에서 패스트트랙 사건 재판을 거론하면서 이 문제가 다시 큰 관심을 끌고 있다.패스트트랙 사건은 2019년 4월 민주당 등 4개 여당이 공수처법과 선거법 개정안 등을 강행처리하려 하자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이 이를 저지하려는 과정에서 일어난 충돌 사건이다. 그해 연말 공수처법 등이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결국 국회를 통과하자 2020년 1월 2일 새해 벽두 검찰은 나경원 원내대표 등 자유한국당 의원 23명과 당직자들을 특수공무집행방해 및 국회법 위반 등 혐의로 전격 기소했다. (민주당에서도 박범계 등 의원 5명과 당직자들이 공동폭행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하지만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이 재판은 장장 4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1심조차 끝나지 않은 채 지지부진한 상태다.지난 17일 당시 방송토론회에서 "나 후보가 패스트트랙 사건 공소를 취소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폭로한 한 후보의 이번 발언 파문은 적어도 국힘 내부에선 한 후보에게 매우 불리한 양상이다. "당원들이 공분(公憤)하고 있다(홍석준 전 의원).""정치적 신뢰에 문제가 생겼다(전원책 변호사)." 등 질타가 이어졌다. 당시 한 후보도 일단 사과했지만 한때 '어대한(어차피 대표는 한동훈)' 구도가 무너지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등장했을 정도였다.하지만 당 대표 선거에서의 유불리를 떠나 보수진영에서 한 후보를 거세게 비판한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은밀한 대화를 일방적으로 공개했다는 폭로보다 패스트트랙 사건의 기소와 재판 자체가 잘못 됐다는 무용론(無用論)이 기저에 깔려있기 때문이다.사건이 벌어진 2019년 4월로 다시 돌아가 보자. 평화적인 반대를 해오던 자유한국당 의원들을 격분케 한 사건은 바로 바른미래당이 사개특위(사법개혁특위)의 오신환 의원을 강제로 사임시킨 일이다. 당시 사개특위에서 공수처법안 등을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하기 위해선 18명의 위원 중 5분의 3인 11명의 찬성표가 필요했다. 자유한국당 의원은 7명이었으니 통과를 위해선 오신환 등 바른미래당 소속 특위 2명 모두가 찬성해야 됐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오신환 의원이 반대 의사를 표명하자 김관영 원내대표는 오 의원을 채이배 의원으로 강제 교체했고, 다른 한 명의 특위위원이었던 권은희 의원마저 당지도부와 충돌 끝에 임재훈 의원으로 교체됐다. 이에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위원교체를 결재한 문희상 국회의장, 의안과, 채이배 의원실 등을 찾아가 항의하거나 농성을 벌인 것이 패스트트랙 사건의 전모였다. 당시 문재인 정권, 국회의장, 여당(민주당)이 입법을 불법·탈법적으로 농단했고, 이에 헌법상 저항권적 차원에서 합법적으로 투쟁했다는 것이 자유한국당의 시각이다. 패스트트랙 재판의 무용론은 또 있다. 패스트트랙에 올라간 선거법 개정안과 공수처법은 이미 통과돼 현실적으로 작동하고 있으나 시행과정에서 존폐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다. 한마디로 '나쁜' 입법이었다는 것이다. 재판이 장기화되면서 충돌과정에서 기소된 여야의원들의 총선 재출마를 막는 것도 실패했다. 이처럼 실효성이 전혀 없는 재판을 국민 세금 축내면서 지속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4년째 매달 한 번씩 재판받는 피고인들뿐 아니라 판사와 검사도 민망하다. 제일 불쌍한 건 이런 3류정치·재판을 지켜봐야 하는 우리 국민들일 것이다. 강효상 (법무법인 대륙아주 고문)강효상 (법무법인 대륙아주 고문)
[길형식의 길] 강정 간다
"알고 보면 사람들은 모두 강정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나같이 환한 얼굴 빛내며 꼭 내가 물어보면/ 금방 대답이라도 해줄 듯 자신 있는 표정으로/ 토요일 지녁과 일요일 아침, 내가 아는 사람들은/ 총총히 떠나간다. 울적한 직할시 변두리와 숨막힌/ 슬레이트 지붕 아래 찌그러진 생활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제비처럼 잘 우는 어린 딸 손 잡고 늙은 가장은 3번 버스를 탄다" 시인 장정일의 '강정 간다'란 시의 첫 구절이다. 20세기 문제적 시인 장정일은 1984년 무크지 '언어의 세계'에 '강정 간다'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혹자는 '강정'을 한때 해군기지 문제로 몸살을 앓았던 제주도 서귀포의 '강정'으로 오해하기도 하지만, 달성군 출신의 시인이 태어나고 자란 대구의 '강정 유원지'를 뜻한다. 참고로 대구를 배경으로 하는 장정일의 소설 '아담이 눈뜰 때'에도 '강정'이 등장한다. 강정(江亭)은 성주군 다사읍 죽곡리 일대의 옛 지명이다. 1914년 죽곡동과 강정동이 통폐합되며 오늘날 죽곡리가 되었다. 강정은 강가에 있는 정자란 의미로, 인근에는 조선시대 정자인 부강정(浮江亭)이 있었다. 그 당시 지역 선비들은 이곳에서 뱃놀이로 풍류를 즐기며, 강안문학(江岸文學)의 전성기를 꽃피웠다.낙동강과 금호강이 만나는 지점인 강정은 예로부터 강정 나루터가 존재했는데 조선시대 대표 내륙도시이자 포구 도시였던 대구에서 강정 나루는 사람과 물건이 오고 가는 물류 중심지였다. 하지만 강창교가 설치되며 그 설 자리를 잃고 강정 나루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상수원 취수지, 유원지로서 그 명맥을 이어가던 강정은 2010년대에 들어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강정보와 디아크가 건설되며 새로운 물결을 열었다. 하천의 수량을 조절하는 보의 기능은 물론 시민들의 휴식 공간이자, 대구 12경에 선정되어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관광지의 역할까지 수행하며 이제는 달성군을 넘어 대구를 대표하는, 낙동강 사업 강문화 중심지의 핵심이자 신(新)랜드마크로 굳건히 자리 잡았다. 장정일의 시가 발표된 지가 올해로 꼭 40년째다. 시가 쓰였을 당시와 비교해서, 광역시 외곽의 유원지는 천지개벽 수준은 아니지만 많은 것이 변했다. 강정유원지가 있던 곳은 명실공히 대구 최고의 관광지로 탈바꿈했고, 아름다운 풍광 덕분에 주일, 주말 할 것 없이, 남녀노소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수많은 사람으로 들끓는다. 시인은 과연 지금 강정의 모습을 예상했을까? 문득 그의 소회가 궁금해진다. 어쨌거나 40년이 지난 지금도 행복한 얼굴로 사람들은 모두 강정 간다.길형식 거리활동가길형식 거리활동가
[3040칼럼] 해병대와 대한축구협회
며칠 전 채수근 상병 순직 1주기가 되는 날이다. 최근 그가 안타까운 사고를 당했던 예천군을 업무차 몇 차례 방문한 적이 있다. 내성천 주변에 펼쳐진 넓은 백사장을 보며 아름다운 풍광에 감탄을 하고 있음과 동시에 젊디젊은 한 해병 후배의 죽음이 더욱더 안타깝게 다가왔다. 필자 역시 해병대 출신으로서 20여 년 전 그때의 장면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내가 한때 사랑했던 해병대라는 조직에 대한 실망감 또한 커지기도 했다. 빨간명찰, 돌격머리, 세무워커로 상징되는 해병대는 젊은 날의 아련한 추억과 지금의 나를 성장하게 해준 고마운 자양분이 되었다. 그러나 언제나 후임을 위해 앞장서서 책임을 다하고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해병의 긍지는 서로 자신의 책임을 미루고, 자신의 안위를 먼저 걱정하는 모습에서 내가 사랑하는 해병대에 대한 자부심이 깎여져 나가고 있는 것만 같아 가슴이 아프다. 채상병 사건이 지금도 정치권에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지만, 반드시 모든 사실을 밝히고 젊은 해병의 억울함이 없도록 사건을 잘 마무리해야 함은 분명하다. 채상병 사건이 커지게 된 이유를 다시 한번 살펴보면, 해병대 사건 담당자는 시스템과 절차에 따라 자신이 생각하는 최선의 방법으로 사건을 조사하고 그 절차를 지키려고 했으나 이러한 것이 어떠한 외압에 의해 그 시스템이 무너져 내렸다는 점을 국민들이 의심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이 문제가 커지기 시작했다고 판단된다. 최근 축구계에서 발생된 국가대표 신임감독 선출과정의 공정한 시스템의 부재에 대한 문제점 지적은 어쩌면 이와 유사한 특징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신임 축구대표팀 감독 선발에 따른 공정하지 못하다고 판단되는 일련의 과정들은 국민들의 많은 질타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전력강화위원회에 속해 있던 박주호 위원이 주장하듯 특정 한국인 감독이 선임 된 것이 문제라기보다 축구협회의 시스템 속에서 그러한 결과를 도출하지 않았다는 것에 가장 큰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의견에 박지성, 이영표, 이천수 등 많은 축구 스타들도 대한축구협회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즉, 채상병 사건과 축구협회 문제에서 가장 유사한 점은 공정한 시스템 속에서 문제의 해결이 되지 않았다는 것에 가장 국민들이 따가운 시선을 보내는 것에 있다고 본다. 그동안 대한민국 사회는 최선의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과정에 대한 문제의식은 조금은 등한시되어 왔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의 대한민국 사회는 결과가 물론 중요하지만 그러한 과정의 정의로움이 없을 경우 그러한 성취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우리 국민의 의식변화가 있다고 판단된다. 특히 군과 체육계는 상명하복, 선후배 관계의 위계가 남아 있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집단이며, 지금 대한민국의 다양한 분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사회적 변화와 의견의 충돌에 가장 늦게 반응하는 집합체 중 하나일 수 밖에 없다.그러나 이러한 집합체에서 역시 이제는 결과보다는 과정의 중요성이 강조되며 변화되는 모습이 나타난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사회가 건강해져가고 있는 과정 속에서 나오는 진통이 아닌가 조심스럽게 기대를 가져본다.이재무 경북스포츠과학센터장이재무 경북스포츠과학센터장
[민병욱의 민초통신] 참 어려웠던 시절의 올림픽
# '조선'의 선수로 참가'KOREA'가 태극기를 앞세워 하계올림픽에 처음 참가한 건 1948년 영국 런던대회다. 당시 우리 이름은 '조선'. 대한민국 정부를 공식 수립해 명실상부 독립국이 되기 보름 전으로 미군정(美軍政) 치하였다. 웸블리 스타디움 개막식에 태극기를 든 기수 손기정을 앞세워 선수단이 입장하자 라디오 중계를 하던 서울중앙방송 민재호 아나운서는 감동을 못 이겨 흐느꼈다. "런던 하늘에 태극기, 선수들 앞에도 태극기, 이 넓은 스타디움에 눈물을 머금고 저 태극기를 바라보는 사람이 몇이나 될 것인가… 태극기도 입이 있어 말을 한다면 우쭐거리고 춤을 추면서 파란 많은 지난날을 눈물로 독백하리라"(김광희 '여명:조선체육회, 그 세월과의 싸움' 2001)조선이 런던대회에 참가하기까지 여정은 말 그대로 파란만장이었다. 1948년 6월21일 기차로 서울역을 떠난 선수단은 근 20일 지구 반쪽을 누비고 7월11일 런던에 도착했다. 먼저 부산에서 배를 타고 일본 후쿠오카로 갔고 다시 기차로 요코하마에 갔다. 이틀을 보낸 후 또 배를 타고 상하이(중국)를 거쳐 홍콩에 닿았다. 여기서는 비행기를 탔지만 여러 도시를 돌며 갈아타느라 공로(空路)에도 닷새가 걸렸다. 방콕(태국), 콜카타, 뭄바이(인도), 카이로(이집트), 로마(이탈리아), 암스테르담(네덜란드) 등 5개국 6개 도시를 지났고 서울부터 런던까지 치면 10개국 13개 도시를 거쳤다. 여비가 부족해 벌어진 일이었다.67명 선수단이 런던에 가는데 계상한 1인당 여비는 2천달러. 양복비와 유니폼값 15만원은 그와 별도로 들었다. 당시 조선의 1인당 국민소득은 50달러가 채 안 될 때다. 군정청에서 배편을 주선하고 특별 경비도 댄다고 했으나 예상 총경비를 맞추는 건 어림없는 일이었다. 체육회는 궁리 끝에 한국 최초의 복권이 될 '올림픽 후원권'을 발매하기로 했다.앞면에는 1947년 IOC(국제올림픽위원회) 가입을 위해 스웨덴 스톡홀름으로 가다 숨진 전경무 조선체육회 부회장의 사진을 넣었다. 여비 부족으로 미군 수송기에 편승했다 추락사고로 숨진 그의 이야기는 국민에게 이미 영웅담으로 새겨져 있었다. 후원권의 액면가는 1백 원. 최고급 '공작' 담배 한 갑이 30원이었으니 싸지 않은데도 발행한 14만 장이 거의 다 팔렸다. 여기에 국극단 공연과 우표 발행 수입금, 국민 성금 등을 보태 선수단이 일단 출발할 수 있게 되었다. 국회는 성대히 환송식을 열어주었으나 의원들은 바로 이튿날 부족한 경비 4만달러를 영국으로 부쳐주자는 긴급 발의를 냈다.# 전쟁 포화 속 올림픽1952년 7월 핀란드 헬싱키 올림픽은 한국전쟁 한가운데에 열렸다. 5월에 거제도 포로수용소 사건이 일어났고 10월엔 백마고지 전투가 있었다. "이 참혹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올림픽에 참가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라는 여론도 있었으나 대한체육회는 육상 권투 역도 등 개인경기에 최소한의 선수, 최소한의 경비로 참가한다는 원칙을 정했다. "전쟁으로 심신이 짓눌린 국민에게 국제스포츠 승리가 큰 위로가 될 것"이란 점도 작용했다. 국무회의는 35명 선수단 총비용을 11만5천달러로 잡고 그중 4만달러를 보조금으로 내기로 했다. 여기에 미 8군 및 유엔군 사령관 밴 플리트 장군이 두 차례에 걸쳐 1만4천달러를 기부하는 등 내외국 참전 군인들의 후원금도 도움이 됐다.선수단은 6월12일 전쟁 중 임시수도 부산의 수영 비행장을 출발했다. 4년 전처럼 이번에도 지구 절반을 도는 여정이었다. 도쿄~홍콩~방콕~콜카타~카라치(파키스탄)~아바단(이란)~카이로~아테네(그리스)~로마~제네바(스위스)~헤이그(네덜란드)~오슬로(노르웨이)를 거쳐 헬싱키에 6월30일 도착했다. 런던 때건 헬싱키 때건 국민은 물론 해외 교민들의 성원은 눈물겨웠다. 특히 일본 재외 국민들은 선수 운동복에 양말 수건, 심지어는 영한사전까지 전하며 필승 또 필승을 기원했다. 런던대회 당시 선수단복이 겨울 옷감으로 만들어져 선수들이 고생했고 언어 문제로도 경기 운영에 애로를 겪었다는 보도를 본 교민들이 앞다퉈 선물을 준비한 것이었다.1932년 36년 일제 강점기 올림픽 때도 재일본 교민들은 조선 선수를 돕는데 성심이었다. 32년 미국 LA 대회에는 권태하 등 조선 선수 3명이 참가했다. 이들은 미국행 우편선 갑판에서 달리기 등 훈련을 했고, 운동복과 수건 양말을 동포 선물로 충당했다. 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 나가 한국인 최초로 금메달을 딴 손기정의 회고도 흥미롭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로 2주간을 달려 베를린에 갔는데 기차가 역에 설 때마다 플랫폼과 레일 위에서 걷기와 몸 펴기 운동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소련 측에서 "왜 뛰는 척 역과 철로의 길이를 재느냐, 스파이 짓 아니냐?"라고 항의하는 바람에 그마저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게다가 열차 내 온도가 35℃ 안팎으로 무더워 베를린에 도착했을 때는 완전히 탈진해버렸다는 것이다.# 위로받고 싶다제33회 파리올림픽이 26일 오후(한국시간 27일 새벽) 막을 올린다. 한국선수단 본진은 지난주 파리에 도착, 퐁텐블로에 마련한 사전 훈련캠프에서 막바지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캠프엔 급식 지원 센터도 설치됐다. 진천 선수촌의 조리사·영양사들이 대거 동원돼 선수들 입맛을 보장한다는 것이다.태극기를 단 우리 비행기에 처음으로 올림픽 선수단을 보낸 것이 56년 호주 멜버른대회다. 그리고 한국선수단만을 위한 급식 센터를 처음 운영한 것이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이었다. 원조 기부에 기대어 겨우겨우 참가하고 그런데도 돈이 없어 온갖 교통수단의 2등 3등 칸에 실려 잠과 끼니를 거르고, 몸도 제대로 못 편 채 올림픽 경기장에 도착하던 옛 선수들에겐 참 꿈과 같은 얘기요, 상전벽해가 아닐 수 없다.정부 수립기, 한국 전쟁기 등 어렵고 가난했던 시절에 비하면 요즘 한국의 형상은 무엇이든 보기가 좋다. 부유하고 자유로우며 또 공정하고 바른 세계 수준의 국가가 되었다고 내세우는 이도 많다. 자랑거리라곤 없던, 그래 올림픽 등 국제경기에 전 국민이 함께 마음을 바치고 위로받던 그 시절이 지금 하나도 그리울 건 없다. 다만 밥맛 떨어지는 대통령과 부인의 온갖 스캔들에 여야 정당의 졸렬한 다툼을 너무 자주 접해선가. 올림픽을 통해서라도… 위로받고 싶다.민병욱 한국언론진흥재단 전 이사장민병욱 한국언론진흥재단 전 이사장
[시시각각(時時刻刻)] 마지막 수업
지난 6월 말로 대학의 봄 학기가 끝났다. 학기는 언제나 그렇듯 기대로 시작해 아쉬움으로 끝나는 것 같다. 기대는 새로운 만남에 대한 기대이고, 아쉬움은 다 전하지 못한 이야기에 대한 아쉬움이다.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던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이 생각난다. 독일로 합병되면서 내일부터 프랑스어 사용이 금지되면서, 마을의 모든 사람이 참여 했던 마지막 프랑스어 수업에 대한 기억이 주 내용이었다. 소설의 메시지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상의 소중함에 대한 내용이다.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이 사라질 일상에 대한 이야기라면, 나는 학생들에게 앞으로 다가올 일상에, 그 새로운 세상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 전하지 못한 이야기를 여기에 하려고 한다. 첫번째는 목적을 세우라고 말하고 싶다. 그 목적은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그런 What에 기반한 목적이 아니라, 나는 왜 존재 하는가 Why에 기반한 목적을 만들라는 것이다.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이라는 책을 보면 지도 대신 나침반을 만들라는 얘기를 한다. 사막에서 지도는 소용없다 사막은 자주 물길이 바뀌고 모래 바람에 의해 풍경이 바뀌면서 지속될 것 같던 물길, 높은 언덕 등 풍경에 기반한 지도는 곧 무용지물이 된다. 방향을 나타내는 나침반만이 유용하다. 앞으로의 세상은 AI가 일상화되면서, 시장과 경쟁의 경계가 무너지고 융합되는 일상이, 풍경이 바뀌는 일들이 빈번할 것이다. 이 일상에서 필요한 것이 바로 북극성처럼 높이 떠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할 내 존재 이유에 대한 목적이다. 두번째는 질문하라이다. AI가 일상화된 시대, 정답이 어디에나 있는 시대, 가장 중요한 것이 창조성이라는 걸 모두가 공감한다. 그런데 어떻게 이 창조성을 키울 것인가? 특히 고속도로 분기점유도선에 단순히 색칠 하나 함으로 교통사고 발생율을 절반 이상 낮춘 것과 같은 일상에서의 창조성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 일상의 창조성은 익숙함의 맥락을 바꾸어 낯섦을 창조하는 일종의 재배열된 편집이다. 일상의 창조성을 기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질문의 능력이다. 특히 왜(Why) 안되지? 라는 질문은 우리를 익숙한 관성에서, 흘러가는 타성에서 멈추게 한다. 멈춤의 시간으로부터 낯섦이 시작되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만약(What If) 이렇게 해본다면? 이라는 아이디어의 발산으로 이어진다. 나의 기억 창고 속의 여러 생각들을 가져와 그 낯섦의 시간에 집어넣어 본다. 재배열된 편집을 만들어 보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떻게(How) 작동하는가? 라는 질문하기의 과정을 통해 그 재배열된 편집을 현실에 적용해 본다. 창조성은 이 3단계의 질문을 통해 학습되고 강화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첫번째 멈춤 "왜" 이다세번째는 다정하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정하라이다. AI가 일상이 된 시대는 기하급수적 변화가 일상인 취약한 시대(Era of Fragile)이다. 이 취약한 시대, 기존에 우리가 의존하던 모든 조직과 관계는 잠시 머무르는 정거장이나 환승장일 수밖에 없다. 송길영 박사는 책 "시대 예보"에서 "다정하지 않으면 연결되지 않을 거고, 연결되지 않은 핵 개인들은 생존확률이 떨어질 거예요"라고 말한다.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강한 유대보다 약한 유대가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음을, 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를 넓혀야 함을 의미한다. 다정함을 통해 우리는 약한 연결을 만들고, 그 넓어진 세상이 새로운 기회를 가져다 줄 것이다. AI와 함께 살아가는 시대에는 그 어느 때보다 사람 간의 따뜻한 연결이 중요하다. 결국 기댈 수 있는 것은 인간의 다정함과 관계이다. 전창록 (대구대 초빙교수)전창록 (대구대 초빙교수)
[단상지대]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지난달, 대구학생문화센터 대공연장에서 사무엘 베케트의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가 이틀 동안 무대에 올랐다. 기승전결이나 클라이맥스 없이 다소 지루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부조리극임에도 불구하고, 좌석은 거의 만석이었다. 주인공 역을 맡은 원로배우 신구는 여든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동료 박근형과 함께 열연을 보였다. 막이 내려질 때까지도, 책을 몇 번이나 읽고 왔어도 고도가 누구인지, 무엇인지 여전히 알지 못한 채 나는 관람석 한 구석에 앉았다. 도대체 고도는 누구인가?앙상한 나무 한 그루와 작은 바위만이 덩그러니 놓인 황량한 길거리, 무대는 이러한 소도구로 인해 무미건조하고 지루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연극은 두 명의 부랑자인 주인공 블라디미르(박근형)와 에스트라곤(신구)의 대화로 시작된다. 에스트라곤은 "아무래도 안돼"라고 투덜거리며 발이 매-여-있-는 너덜너덜한 부츠를 벗어버리고, 아름다운 장소로 가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먼지투성이 중절모를 쓴 블라디미르는 단호하게 "우리는 고도를 기다리고 있네, 만일 그가 오지 않으면 내일 다시 와야지. 그가 올 때까지"라고 답한다. 두 주인공은 가끔 시간과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만, 대부분의 대화는 순서도 없고 이렇다 할 내용도 없다. 이 작품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를 배경으로 한다. 사람들은 전쟁의 상처와 혼란 속에서 내일이 없이 끝없는 기다림과 부조리한 현실 속에 내몰리게 되는데, 작품은 이러한 불확실성과 무의미를 담아내고 있다. '고도'라는 변하지 않는 좌표 설정으로 인해, 극은 시간에 따라 사건이 전개되거나 인물이 행동하기보다는 '고도' 그 자체에 모든 것이 매여 있는 듯하다. 극중 내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고도는 부재의 현존으로 드러난다. 고도는 누구일까? 일단은 고도(Godot)의 이름이 신(God)에서 유래했기에 극중 인물을 구원할 종교를 상징한다거나, 인간이 기대하는 미래의 희망 또는 어린아이로도 해석된다. 이에 대해 베케트 자신은 고도가 누구인지 알았다면 책에 썼을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한편, 에스트라곤의 발을 아프게 하는 신발이나 블라디미르의 낡아빠진 모자는 그들의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대변한다. 그러나 두 주인공은 고도를 기다리는 것 외에는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한 어떤 노력이나 실천을 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마저도 하지 못하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막연히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도를 기다리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막상 고도가 도래한다면 또 다른 무언가를 기다리게 될지도 모른다. 권태를 벗어나기 위해 실존 자체에 주목하면서도 현재를 살아가지 않고 끊임없이 내일과 고도를 기다리는 데만 집중하는 두 주인공의 삶은 결국 영원히 현재의 순간을 놓치게 됨을 보여준다. 또 다른 인물 포조가 장님이 되어 말한 것처럼 "눈 깜박할 사이에 빛이 비치고는 또다시 밤이 될 것이다." 이런 빛과 어둠 사이에 인간 실존이란 얼마나 고독한 것인가.공연이 끝나고도 나는 끝내 고도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어쩌면 베케트가 진정으로 의도했던 것은 "고도를 애써 기다리지만 말고 스스로 찾아 나서라"는 메시지일지 모른다. 우리 각자가 '엘랑 비탈'(elan vital, 생의 약동)을 발견해 자신의 삶과 가치를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며, 니체의 '사자'처럼 기존의 생각과 규칙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영혼이 되라는 것이다. "견고한 의지만이 인간을 인간답게 아름답게 끝내 고귀하게 승화시킨다."(오강남·성소은 '나를 찾아가는 십우도 여행') 그렇다면 나를 알고 찾아 나서는 것이 진정한 예술과 사랑이 아닐까. 내 안의 가능성과 한계를 넘나들며, 고도는 문제와 물음의 존재로서 기다림을 기다리는 것이다. 임진형 (음악인문학자·대구챔버페스트 대표)임진형 (음악인문학자·대구챔버페스트 대표)
[단체장의 생각:長考] 한국과 베트남의 새로운 핵심 사업 'K-베트남 밸리'
인구 약 3만 명이 사는 경북 봉화군이 최근 베트남 방문객들의 필수 방문지로 떠오르고 있다.베트남 최대 관광도시 다낭시의 당서기가 봉화를 방문하는 등 봉화군이 역점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K-베트남 밸리' 조성사업에 대해 베트남에서 큰 관심을 보인다.K-베트남 밸리 조성사업은 총사업비 2천억 원을 투입해 리 왕조 유적지 정비, 교류의 길, 한-베 역사문화 콘텐츠 체험관, 공연장, 연수·숙박시설, 다문화국제학교, 진로연계센터 등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봉화군 봉성면 창평리마을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베트남 선조의 흔적이 남아있는 한국 속의 베트남으로 통하는데 이러한 사실을 토대로 봉화군에서는 K-베트남 밸리 조성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봉화와 베트남의 인연은 8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베트남 역사상 최초의 장기 집권 왕조였던 리 왕조의 후손 이용상이 고려에 귀화해 한국 화산 이씨의 시조가 됐고, 그의 둘째 아들인 이일청이 안동부사로 부임하면서 후손들이 봉화 일원에서 세거지를 이루고 살았다. 이후 이용상의 14세손인 이장발이 임진왜란에 참전해 장렬하게 전사하자 후손들이 그를 기리기 위해 봉성면 창평리에 충효당과 유허비를 건립했다. 이 마을에는 아직도 그 직계 종손과 후손들이 살고 있다. 우리 봉화군은 고려 시대부터 이어져 온 유구한 역사의 발자취를 발전시켜 국내 유일의 리 왕조 유적지 개발을 통해 한국-베트남 간의 우호를 증진하고 베트남 이주 배경 인들의 교류장으로 활용하고자 한다.특히 우리 봉화군은 성공적인 사업 추진을 위해 경북도와 공동으로 국가 사업화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추진해왔다. 그 결과 작년 연말에는 문화체육관광부 신규사업으로 K-베트남 밸리 콘텐츠 육성 용역비 4억 원을 확보하는 성과를 거둬 본격적인 사업 추진의 발판을 마련했다. 또 지난해 9월 봉화송이한약우 축제 기간 중 베트남 리 왕조의 본류인 뜨선시와 국제자매결연을 맺고 사업 추진을 위해 상호협력하기로 약속했다.여기에 지난해 11월 경북도와 베트남 박닌성과의 우호협약 체결 당시 K-베트남 밸리 조성사업에 대한 성 차원의 지원을 요청하는 동시에 베트남 문화체육관광부 차관과의 면담을 통해 베트남 중앙정부 차원의 협조를 구해 긍정적인 반응을 얻기도 했다.지난 6월에는 유인촌 문체부 장관과 부호 주한베트남대사가 봉성면 창평리 K-베트남 밸리 조성사업 대상지에서 진행한 '베트남 리왕조 유적지 충효당 방문행사'에 참석해 정부 차원의 지원을 약속했다. 이러한 성과들을 바탕으로 봉화군은 드라마 등 관련 문화 콘텐츠 개발에도 나서고 학생, 문화, 예술 교류 등 다양한 방면에서 관계를 발전시킬 예정이다. 특히 사업의 구체화를 위해 베트남 중앙정부와의 소통을 꾸준히 해나갈 계획이다. 한국과 베트남 양국의 관심과 지원을 통해 K-베트남 밸리가 조성된다면 인구 소멸 위기에 직면한 경북 북부지역의 베트남 관련 관광 활성화와 생활 인구 확대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양 국가의 발전과 우의를 더 깊이 다지는 계기가 되는 것은 물론, 한국과 베트남의 새로운 30년을 위한 핵심사업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박현국 봉화군수박현국 봉화군수
[아침을 열며] 국민의힘, 도대체 왜 이러나?
지금 국민의힘은 집권여당의 위치에서 유례없는 총선 참패를 딛고 새롭게 면모를 일신하고자 새 당(黨) 대표를 뽑는 전당대회를 치르고 있다. 이번에 선출되는 당 대표는 변화와 쇄신의 리더십으로 최약체 소수 여당을 탈바꿈시켜 국민의 지지를 회복하고 윤석열 정권의 성공적인 국정운영을 뒷받침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그런데 그 과정을 지켜보고 있자니 걱정과 우려를 넘어 한탄과 탄식을 금할 길이 없다. 후보 상호간 비방전이 위험 수위를 넘어서더니 지금은 전당대회 이후 그 갈등이 온전히 봉합될 수 있을지가 의문스러울 정도이다.며칠 전 국민의힘 소속 모(某) 광역단체장이 '난파선의 선장이 되고자 하십니까'라는 메시지를 낸 적이 있다. 급기야 후보자 합동연설회에서 당원 지지자간 폭력사태까지 발생한 극한 대립 상황을 거론하면서 자칫 이번 전당대회로 말미암아 여당이 공멸의 길로 접어들 수도 있음을 지적하면서 승리자 또한 절반의 패배자가 될 수밖에 없다면서 강한 우려와 함께 현 상황을 비판하고 나섰다. 국민의힘이 지난 총선에서 참패한 후, 그 동안 수많은 정치전문가들이 집권여당의 무기력함, 전략 부재 및 미래비전 상실 등을 지적하면서 거대 야당에 일방적으로 휘둘리고 있는 여당의 현주소를 걱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봐 왔다. 그러나 지난 4월 총선으로부터 100여 일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국민의힘 내부는 혼란스러운 내부 상황을 수습해 나가기는커녕 집안싸움으로까지 번지는 볼썽사나운 지경에 이르렀다. 당의 미래와 비전, 정치적 목표를 두고 경쟁해야 할 전당대회가 김 여사 문자 파동, 채해병 특검 수용논란, 탄핵 논쟁 및 공소취소 불법청탁 해프닝 등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되어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이러다 정말 여당인 국민의힘이 내분으로 분당사태를 맞는 것이 아닌가 하는 설(說)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할 정도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가 난감할 따름이다.도대체 국민의힘은 무엇이 문제인가? 이대로 정말 괜찮은 걸까?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가? 이렇듯 의문부호들만이 머릿속에 자꾸 떠오르는 작금의 상황에서 과연 누가 책임을 질 것인지, 어디서부터 비롯된 잘못인지를 알아내야 하는 게 관건이다. 하지만 그 해법을 찾아내기가 어려운 상황임에는 틀림없다. 더군다나 누군가가 나서서 난관을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108석의 쪼그라진 최약체 집권여당 국민의힘을 바라보고 있는 대구·경북 지역민들의 상실감과 허탈한 심정은 어찌 보상받을 수 있을지 난감하기 그지없다. 이러려고 각종 선거 때마다 이제껏 보수정당에 조건 없는 전폭적인 지지와 성원을 보내준 것이 아니지 않느냐는 원성이 주변에 자자하다.그동안 기존 정치권에서 내세우던 새로운 정치와 변화의 정치라는 구호는 이제 그 효력을 다해가고 있다. 언제부턴가 이를 넘어선 '정치교체'를 내세우는 주장들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음을 이제 직시해야 할 시점이다. 혁신과 변화만으로는 그 한계에 봉착한 것 같은 보수정치의 민낯을 자주 접하고 있다. 사람과 제도의 전면적인 교체(交替)를 고려해 봐야 할 시점에 다다른 거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내일 치러질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과연 누가 당 대표로 선출될지 자못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대구·경북 지역민들의 자존심을 지켜 줄, 진정으로 보수정치의 정치교체를 이뤄낼 리더십을 가진 당 대표가 탄생하길 고대해 본다.이주엽 엘엔피파트너스<주> 대표이주엽 엘엔피파트너스 대표
[광장에서] 공부 상처
다년간 교육센터와 마음상담소의 컨설턴트, 상담사, 멘토로서 청(소)년들의 고민을 직접 듣고 접할 수 있었다. 현장에서 다양한 청(소)년들이 입시과정과 취업준비과정에서 생긴 공부 상처로 고통받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삶속에서 개인은 주어진 과업을 달성하고 작은 성취를 누적하며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감도 쌓아간다. 반면 성취가 좌절되고 과정이 절망스러울 때 상처를 겪기도 한다. 어떤 상처는 오래도록 트라우마로 남아 미래를 두렵게 만든다. 반면 금방 잊히고 오히려 나아가 자산이 되는 상처도 있다. 공부상처는 학습과정에서 느껴지는 두려움과 절망감을 포함한 학습불안, 시험불안을 모두 포함한다. 고3 그리고 대학 4학년의 공통점이 있다. 모두 대학진학과 취업준비를 위해 치열한 수험생활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치러진 2024년 대입을 위한 수능 응시생 수는 50만여 명이었다. 평택(51만여 명), 포항(50만여 명), 제주도(49만여 명) 각각의 전체 인구수와 맞먹는 숫자이다. 취업준비도 그만큼이나 치열하다. 경쟁의 속성 때문에 수험 과정을 '전쟁'이라 비유하는 이들도 많다. 성적비관과 학습불안으로 인한 심리적 좌절은 방치하면 걷잡을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이따금 들려오는 안타까운 소식은 입시가 전쟁이라는 비유를 공감하게 한다.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는 청(소)년도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청소년도 있다. 학창시절에 청(소)년들이 경험하는 학교생활과 수험생활은 좋은 성적이라는 결과론적인 측면에서뿐만이 아니라 성장이라는 과정의 측면에서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 이제 막 고1, 여름방학을 맞은 A는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옆에서 힘들게 진정시키려는 부모님의 토닥임도 효과가 없었다. 중학교 때까지 전교 최상위권에 들었다는 A는 고등학교 입학 후 첫 학기를 실망스러운 결과로 보내었다고 한다. 전교 등수가 떨어진 결과보다 더 절망스러운 것은 스스로 새벽 한 시까지 잠을 줄여가며 노력했음에도 성적이 오르지 못한 데 대한 절망감이었다. B는 힘들게 입시를 치렀고 바라던 서울 소재 대학에 입학했다. 하지만 졸업을 앞두고 마음이 복잡하다. 고3 때보다 더 빠듯하고 힘든 일정으로 취업을 위한 또다시 시작된 수험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 입학을 위한 수험 생활이 끝난 지가 바로 어제 같은데 다시 치열한 취업 수험 생활을 준비하며 몸과 마음이 지쳐 무기력감을 호소하고 있었다.A와 B는 모두 공부에 대한 감정과 생각 그리고 느낌이 부정적인 상황이다. 공부에 대한 희열, 공부를 생각하면 피어오르는 학습 의지, 공부를 통한 자신의 미래에 대한 확신, 다가오는 시험에 대한 대응감이 모두 낮아진 상태다. 공부에 대해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감정, 생각, 마음, 느낌 등과 공부를 하는 과정과 전후해 느끼는 다양한 감정과 정서를 조절하는 능력인 공부감성은 우리가 함께 고민해야 할 요소다. 공부는 시험공부만이 다가 아니다. 한 개인이 청소년, 청년, 중년, 장년을 거치며 재사회화가 필요할 때마다 필연적으로 동반되는 평생학습의 개념이다. 학습의 즐거움과 몰입감은 청(소)년이 꼭 경험해야 할 과정의 보상이다.한편, 입시결과로만 평가되는 사회에서 과정이 좋다면 결과가 좋아야 한다는 말에는 모순이 있다. 구조가 잘못 잡혀 있다면 과정에서 부족함이 없어도 결과가 나쁠 수 있다. 청(소)년들이 자신의 진로와 진학 나아가 삶의 방향을 고민하고 공부의 이유를 발견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히 주어질 수 있는 구조를 사회가 함께 만들어 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 추현호 〈주〉콰타드림랩 대표추현호 (주) 콰타드림랩 대표
[메디컬 窓] 의대 증원발표로 촉발된 의료대란에 대한 단상
지난 2월 정부의 의과대학 증원 발표로 촉발된 의료대란이 5개월째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총선을 위한 표몰이용으로 급하게 발표된 이 정책으로 인해 OECD 어느 나라보다 빠르고 편하게 이용하던 우리 의료체계를 괴멸에 가깝게 몰아가고 있다. 전공의들은 정부 정책에 반하여 사직서를 내었고 의대생들은 휴학계를 내며 정부의 정책에 저항하고 있다. 정부는 부당한 행정명령으로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을 겁박하며 제자리로 돌아오라 하지만 여전히 소원한 상태이다. Covid-19 이후 정치적으로 의료 공공 정책이 강화되고 있다. 여러 나라들이 보건 의료 시스템을 강화하고 비상사태 대응 능력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 사태 등도 필수 의료의 공공 정책 수립의 필요성을 촉발하였다. 의료 공공 정책의 필요성과 목적을 의심하는 건 아니다.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나서서 정책을 마련하는 건 어쩌면 당연히 해야 될 일이다. 대통령은 국민들을 제때 치료받게 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현재의 정책들은 오히려 치료를 못 받게 하고 있다. 왜 이런 상황이 발생하였을까? 공공 정책의 수립과 시행은 문제에 대한 정확한 정의와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여러 데이터와 정보를 수집하여야 한다. 수집된 정보를 바탕으로 정책 목표를 설정하고 여러 가능한 정책 대안을 비교 분석하여 올바른 정책을 채택하여야 한다. 이러한 과정 중에서 치열한 검증이 필요하다. 하지만 정부는 이런 과정을 무시하고 전문가 집단인 의료계와 상의도 없이 일방적인 의대 증원을 발표하였다. 정부는 의료계와 많은 토의를 하였고 의대 증원에 관련된 과학적 근거가 있다 하였지만 지난 6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열린 '의료계 비상상황 관련 청문회'에서 거짓임이 드러났다. 의대 증원의 근거가 된 자료들에 대한 제출 요구에 응하지도 않고 정책 결정 과정에서 의료계와 토의도 없는 정부의 독단적인 결정이었다. 의사 부족에 대한 근거가 되는 3개의 연구자료도 자세히 살펴보면 정부의 주장에 유리한 부분만 발췌한 수준이지 의대 증원 2천명이라는 숫자는 어디에도 없다. 현재 정부와 의사 간의 가장 큰 이견은 미래에 의사가 부족하냐이다. 현재 우리 사회의 인구 구조 변화와 함께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환자 1명당 의료 서비스의 수요는 급증하고 있다. 하지만 인구감소도 같이 진행되고 있어 의료 서비스 이용자의 감소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의료 기술의 발전 또한 의사의 실수요를 줄어들게 한다. 이미 여러 자료에서도 미래 의사 인력의 감소를 예측하는 자료들이 많다. 의료 인력의 증원에 대한 소모적인 논란보단 의료 인력의 재배치, 의료 인프라의 개발, 진료 환경의 안정성에 대한 정책적인 지원이 더 필요하다.정부는 문제에 대한 편협된 자료와 독단적 판단으로 적절하지 않은 진단과 처방을 내리고 의료계에 진료를 보라고 한다. 길을 잘못 들었으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야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다시 이전으로 돌려놓고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길 바란다. 정부와 의료계는 목적은 같다. 국민의 건강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치열한 토론과 연구로 자기의 주장을 관철하고 긴밀한 협력으로 국민들의 불안을 잠재워야 할 것이다. 정부는 올바른 의료 정책을 제시해야 의료계는 이를 수용하고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의료 정책 수립과 실행 사이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박종완 대구시의사회 홍보이사 대구파티마병원 신경과 과장박종완 대구시의사회 홍보이사 대구파티마병원 신경과 과장
[더 나은 세상] 문학이란 무엇인가
요즘 나의 일기장은 소소한 일상에 대한 기록보다는 삶에 관한 근원적인 질문들로 가득하다. 인생은 무엇인가?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왠지 막연하고 공허하다고요? 솔직히 인생이란 막연하고 공허한 연극 같은 것 아닌가요?)고교 시절, 공학도를 꿈꿨던 난 문학에 관해선 완전 문외한이었다. 내가 아는 시인과 소설가라곤 국정교과서에 등장하는 클래식한 작가들뿐이었고, 대학교에 진학한 뒤에도 나의 일상은 문학과는 꽤 거리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난 '문학과 지성'이란 계간지를 옆구리에 끼고 사는 세 명의 문청들을 알게 되었고, 하루는 취기를 빌려 고백했다. 나도 너희들처럼 시(詩)를 통해 반성하는 인간이 되겠노라고. 그게 아마 대학교 2학년 가을 학기가 막 시작하려 할 때쯤이었을 것이다.그렇게 시작한 문학은 '신세계' 그 자체였다. 자신의 은밀한 내면세계를 정제된 문장을 통해 유려하게 토해내는 이 독특한 형식의 예술에 난 그만 압도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후 내 하루일과는 독서로부터 시작해 독서로 끝이 났다. 학과 수업이 끝나면, 난 곧장 동성로에 위치한 '제일서적'으로 달려가 그곳 한쪽 귀퉁이에 껌딱지처럼 눌어붙어 다양한 문학작품들을 독파해나갔다. 연말이면 나만의 세계문학선 리스트를 만들었고, 올해의 작가상과 최고의 작품상을 선정하였다.책과 책 속에서 문득 작가(作家)가 되고 싶은 욕망이 움터났다. 난 학교 도서관에 틀어박혀 고시공부를 하듯 문장을 만들어나갔다. 무수한 작가들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고, 진짜와 가짜를 구별해 나갔으며, 가짜의 유혹을 경계했고 진짜의 깊이를 숭배했다. 물론 문장은 여전히 거칠었고, 작가의 길은 요원해 보였다. 하지만 난 진짜 작가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그 당시 일기장에 기록된 나의 초발심은 다음과 같다.첫째, 문학을 매개로 한 사교나 정치를 멀리할 것. 둘째, 문학이 내 구원의 열쇠가 아니라는 확신이 드는 순간 더 이상 미련을 갖지 말 것. 셋째, 어쭙잖은 기득권을 위해 중언부언하지 말 것.하지만 세월이 흘러 몸과 마음 군데군데가 고장 나고 그렇게 열정이 예전만 못하자 나의 초발심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펜촉처럼 날카로웠던 경계선은 파스텔처럼 뿌옇게 흐려져 진짜와 가짜의 구분이 점점 모호해졌고, 내가 쓰는 글조차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하지 못할 지경에 다다랐다. 더군다나 '소설이 나를 구원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은 아직도 요원하기만 하다.나의 인생 역시 마찬가지다. 수많은 현자들이 들려주었던 삶에 대한 교훈이나 감동 같은 것들은 어디론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난 아직도 인생이 무엇인지,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지 모르겠다. 아니, 감조차 오지 않는다. 희망, 신념, 사랑 이런 단어들은 너무나 막연하고, 허약하며, 추상적이기까지 하다. 단지, 지금 내가 확신하는 것이라곤 '아름답게 늙는다는 것만으로도 위대하다'라는 단상 하나뿐이다.(물론 여기서 아름답다는 것은 추하다는 것의 반대말이 아니다. 난 인간의 말로가 결국은 추하다는 것을, 그 추함을 덤덤히 견뎌 나가는 과정이 인생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는 중이니까.) 보통의 것들이 위대해 보일 때 비로소 어른이 되는 것처럼, 그렇게 버티고 견뎌 나가다 보면 나도 아름답게 늙어 결국 위대해질 수 있을까? 아니, 그렇게 읽고 써나가다 보면 나의 조악한 언어들도 조금씩 나아져 하나의 완전한 문장으로 빛날 수 있을까?우광훈 소설가우광훈 소설가
[노윤구의 관광산업] ESG 관광으로 로컬관광 발전 및 기여
관광산업에서도 ESG와 관련한 여행에 관심이 고조되고 있으며, 전 세계의 정부와 관광 관련 기업에서는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를 관광과 연계 및 융합하여 지속 가능하고 의미 있는 관광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지속 가능한 관광인 ESG 관광은 관광객의 즐거움, 관광기업의 수익성, 현지 주민의 삶의 질 향상이 조화를 이루는 균형 잡힌 발전 모델이다. 이전까지 양적 성장에 치중하던 관광산업 중 여행사가 ESG를 도입하면서 근본적 체질 변화와 기업 가치 및 이미지를 제고시키고 있다.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8%가 관광산업에서 발생되고 있으며, 여행을 가기 위해 이용하는 교통편, 현지에서 소비하는 물품 등 다량의 탄소를 발생시켜 지역사회의 자연이나 환경을 오염시키고 있는 것이 현실태이다. 관광산업의 ESG 목표는 여행에서 발생하는 부정적인 요소를 최소화하여 여행이 지속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가는 데 있다. 관광업계의 ESG 경영은 자연생태계 보전, 항공기 탄소배출 저감, 친환경 관광, 관광객 개인정보 보호, 관광업 종사자 처우 개선, 안전 및 리스트 관리, 열린 관광, 소멸지역 관광 활성화 등이 중점 과제로 꼽힌다.미래 관광산업의 4대 핵심 ESG 이슈는 첫째, 생태계 방지와 생물 다양성 및 자연경관 유지, 둘째, 여행지의 상품성 및 지속가능성에 대한 기후변화 영향 관리, 셋째, 여행 안전 및 고객 보안, 마지막 넷째는 공중 보건 위기로 인한 여행 감소 영향 관리이다. 이에 전 세계적으로 ESG에 관심도와 참여 의지는 강하지만, 실제적으로 활동하기에는 기업의 상황에 따라 미약한 부분이 많다. 국내 관광기업들도 ESG 팀을 구성하여 글로벌 관광산업의 ESG 경영방식을 벤치마킹하고, 가이드라인 구축 및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마련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말레이시아 캄퐁 쿠안탄의 반딧불이 투어는 지역주민의 아이디어로 지역의 환경적 특장점과 적절한 사업 아이디어를 결합하여, 대규모 자본투자 및 환경파괴를 유발하는 개발 사업 없이도 경제·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관광사업을 발굴 및 운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베트남 하노이 사파는 소수민족의 안내로 트레킹 및 홈스테이를 하면서 녹색관광을 실현하고, 지역 자연자원을 그대로 보전하면서 지역민의 생활 수준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대구시와 경북도는 ESG 관광을 위해서 K-pop 연예인과 함께 걷는 '한티가는길' 또는 '팔공산 둘레길' 등 플로깅 상품 기획 및 추진을 통하여 국내외 관광객 유치 활성화와 로컬관광 인지도가 상승될 수 있도록 기획 및 추진이 필요하다.<주>덱스코 이사·관광경영학 박사노윤구〈주〉덱스코 이사·관광경영학 박사
[시선과 창] 지역 웹툰캠퍼스를 살려야 하는 이유
현재 문화콘텐츠 시장의 대세는 웹툰이다. 넷플릭스 등 주요 영상콘텐츠 제작자들이 최근 2∼3년간 웹툰 IP(Intellectual Property, 지식 재산)를 영상콘텐츠로 제작하는 경우가 크게 늘어났다. '킹덤' '이태원 클라쓰' '지옥' '지금 우리 학교는' 등이 그 사례다. 올해 방영돼 국내외에서 인기를 끈 '내 남편과 결혼해줘'도 웹툰이 기반이다. 한국 웹툰의 인기는 국내를 넘어 만화 강국 일본을 비롯해 대만, 홍콩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문화체육관광부도 이를 반영, 지난 1월 '만화·웹툰산업 발전 방향'을 발표했다. 골자는 △혁신적 미래 기반 확보 △케이 만화·웹툰의 세계시장 선도 △공정·상생 생태계 구축 등이다. 이를 위해 지원 조직과 예산도 강화한다고 덧붙였다. 만화·웹툰산업이 콘텐츠산업의 목표인 IP를 확장하는 핵심이고 한국이 종주국으로서 플랫폼을 보유하고 있는 유일한 분야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한국 웹툰의 가치는 상승곡선을 이어가고 있다. 필자는 주프랑스 한국문화원장으로 근무할 때 한국 웹툰의 성공 가능성을 실감했다. 2012년 퐁피두센터와 '아시아 만화 특별전'을 기획했는데 '한국 주간'에 초대할 작가에 대해 프랑스 전시감독이 "한국은 웹툰 강국이니 웹툰 작가를 소개하는 게 낫다"고 제안했다. 그 의견을 반영한 전시회의 반응은 뜨거웠다. 한국 웹툰 열기에 터 잡아 차세대 K-콘텐츠로 만화·웹툰산업을 키우려는 의지는 적극 반길 만하다. 그러나 지역의 만화·웹툰산업으로 눈을 돌리면 현실은 초라하다. 단적인 사례가 경북도 등 10개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웹툰캠퍼스가 고사 직전에 있다는 것.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지원하던 이 사업은 올해부터 일몰사업으로 결정, 국비 예산이 없어졌다. 경북문화재단 콘텐츠진흥원이 운영하는 경북웹툰캠퍼스도 마찬가지다. 응급 조치로 지방비(도비, 시비)만 확보해 축소 운영하고 있다. 필자는 지난 3월 지역콘텐츠산업 거점기관장 회의에서 이런 상황을 설명한 뒤 내년 예산 확보를 당부했다. 논거는 이런 것이었다. 중앙 정부에서 공모사업으로 인프라 구축을 권유한 뒤 일몰 결정을 내린 것은 무책임한 측면이 있다. 더구나 지방재정 여건상 국비 배정이 되지 않으면 지방비 매칭이 매우 힘든 현실이라 운영이 불투명하다. 그래서 내년에는 국비예산 배정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그러나 최근 확인 결과 국비 예산은 반영되지 않았다. 두 가지 불길한 시나리오가 예상된다. 먼저 내년에도 어렵게 지방비를 확보해 축소 운영하는 방안이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더 우울하다. 국비 확보가 안 됐다는 논리로 지방비마저 편성이 안 될 경우다. 이는 사업 종료를 뜻한다. 겨우 기초체력을 다져온 웹툰캠퍼스가 영양실조로 고사하는 셈이다. 2022년 경주 황남초등학교 자리에 개소한 경북웹툰캠퍼스는 상징성이 크다. 만화산업에 이정표를 세우고 영화로 제작되기까지 한 '공포의 외인구단'의 실제 무대이다. 그 역사적 의미를 담은 공간에서 경북 웹툰작가들을 지원하고 작가 지망생의 창작 열기를 돋워주려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거대 규모의 웹툰산업을 육성하겠다는 문체부의 청사진이 대동맥이라면 지역 웹툰캠퍼스는 모세혈관에 비유할 수 있다. 대동맥이 잘 흘러도 모세혈관이 막히면 쓰러진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웹툰작가나 작가지망생들의 희망을 꺾지 않으려면 10개 지역 웹툰캠퍼스에 대한 국비 지원은 절실하다. 지역소멸 해법은 큰 차원만 있는게 아니라 이런 미시적 영역에서도 필요하다. 지역 웹툰캠퍼스를 살려야 하는 이유다.이종수 경북문화재단 콘텐츠진흥원장 파리대학 사회학 박사이종수 경북문화재단 콘텐츠진흥원장 파리대학 사회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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