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세상] ‘빨간 줄’은 누가 긋는가
"변호사님, 저 이제 '빨간 줄' 남는 건가요?" 형사 피고인으로 법정에 서는 이들의 국선변호인으로 일하면서 자주 받는 질문이다. '빨간 줄'이라는 말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독립운동가나 '불령선인'(문제 인물로 분류한 조선인)을 따로 관리·감시하기 위해 호적부에 붉은 줄을 긋거나 붉은 도장을 찍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일본 입장에서 조선인의 독립운동은 형사 범죄로 취급됐기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면 호적에 빨간 줄이 간다"는 식의 속설이 생겼다는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걸 알면서도 '빨간 줄'이라는 말을 여전히 쓰는 것은 그 용어에서 연상되는 이미지가 '전과 기록'보다 훨씬 세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름 위에 그어진 빨간 줄은 법적으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사회적·심리적으로 실재하는 낙인의 효과를 강렬하게 드러낸다. 그러니 저 질문은 지금의 처벌과 비난은 감수해야 하겠지만, 전과자라는 꼬리표가 평생 따라다니는 것은 아닌지 묻는 두려움의 표현이다. 최근 한 배우의 소년범 전력이 폭로된 후 배우가 비난여론 속에 은퇴를 선언한 일이 있었다. 언론보도의 진위나 배우의 도덕성에 대해 왈가왈부하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지금 소년원에 있는 소년범들, 그리고 한때 소년범이었으나 마음 고쳐먹고 열심히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고자 노력하고 있는 젊은이들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 싶다. 그들이 이번 사태를 보면서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소용없구나', '언젠가 들키면 다 끝이구나' 하며 절망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을까. 이런 두려움은 법적으로는 현실과 다르다. 법은 범죄자가 처벌을 받은 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일정 수준 이상의 범죄를 다시 범하지 않으면, 전과 기록이 남지 않도록 배려해 준다. 물론 국가정보망에는 범죄전력이 영구적으로 남지만(이 경우에도 범죄 수사나 재판 등 법률로 엄격히 제한된 목적으로만 조회할 수 있다), 일정 조건이 갖춰지면 이미 받은 형을 실효시켜 일상생활에서 과거를 신경 쓰지 않고 살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다. 과거를 이유로 끝없이 낙인을 찍는 사회에서는 더 나은 선택을 할 동기를 얻기 어렵기 때문에 다시 기회를 주는 차원이다. 형사 전과도 그러할진데 소년범 전력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소년 처분은 형사 처벌이 아니다. 법은 소년을 아직 미숙한 존재로 보고 처벌보다 교정과 회복의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한때의 잘못이 평생을 규정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 소년법의 취지다. '호통판사'라는 별명으로 소년범 전문가로 널리 알려진 천종호 판사는 과거 소년범 전력이 알려지면서 야구장을 떠나야 했던 어느 야구 유망주가 사회에서 거부당한 후 다시 범죄를 저지르고 구속되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들으며 다음과 같이 썼다. "죄를 저질렀으면 처벌을 받는 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영원히 벌만 받게 할 수는 없습니다. 다시 함께 살아야 합니다. 죄는 엄벌하되, 죗값을 치르고 나면 사회 구성원으로 되돌아가 어엿한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게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요?"('내가 만난 소년에 대하여' 179쪽) 법이 지우려는 '빨간 줄'을 사회가 다시 긋는다면, 지금 소년재판에서 비행 청소년들에게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공허한 위로에 그친다. 교화와 재사회화는 법으로 완성할 수 없다. 천종호 판사의 말처럼 사회가 함께 손을 내밀 때 비로소 가능하다. 정혜진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