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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응급실을 지켜라!!
며칠 전, 밤 11시 진료하는 응급실에 호흡 곤란이 심한 70대 환자가 다른 병원에서 전원 돼 내원했다. 오랫동안 다른 병원에 입원했다가 상태 악화로 급하게 상급병원 응급실을 찾은 것이다. 진료 자료도 한 뭉치 가져왔다. 당시 환자는 열 나고, 숨차고, 맥박도 빨랐다. 응급실에서도 급하게 환자를 처치하는 소생실로 옮겨 진료했다. 호흡 곤란에 대한 응급처치 이후 환자가 왜 이럴지 고민하면서 가져온 자료와 새롭게 검사한 자료를 분석했다. 그리고 치료 방침을 잡아가는 과정에서 약화 원인을 찾아냈다. 이에 대한 해결을 위해 신장내과, 감염내과, 비뇨의학과 교수 협진을 통해 결과가 나오고, 치료 방침을 잡으니 새벽 1시가 넘었다.환자에게는 열을 내릴 수 있도록 항생제와 수액 요법을 시행 후 소변이 전혀 나오지 않아 응급 투석을 했다. 이후 신장 응급 시술을 하면서 환자는 점점 호흡곤란에서 벗어나 얼굴에 생기가 돌아왔다. 숨이 찬 증상도 없어지고 원인이 해결된 시간은 새벽 5시쯤 됐다. 그때 내원할 때 울면서 면담한 딸이 찾아와 고맙다고 인사했다. 그냥 지켜봤으면 돌아가셨을 건데 이렇게 숨쉬기 편하게 해줘 연신 고맙다며 울먹였다. 순간 가슴이 먹먹해지고 밤을 꼬박 새어 진료한 찐한 보람을 느끼게 됐다. 또한, 같이 진료 봐준 교수도 감사하고 무엇보다 이런 의료시스템을 갖게 해준 게 너무 즐거웠다. 응급실이라 생각하면 급박하고 무섭고 힘들게만 생각하지만 다 그런 건 아니다. 급박하나 정교해야 되고, 무섭지만 사람에 대한 정이 가득하다. 무엇보다 힘들지만 큰 보람이 있는 곳이다. 이러한 우리나라 대학병원 응급실 시스템은 여러 해를 거친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졌고, 이에 대한 사명감을 가지고 있는 여러 의사 선생님의 노고로 이뤄졌다.이번 의대 정원 증원에 따른 전공의 미출근으로 대학병원 응급실은 너무 힘든 과정을 겪고 있다. 일주일에 24시간 근무 3번 정도 하면서 의료진 피로도가 최대치로 올라가 있다. 그리고 어려운 환자가 왔을 때 해결할 수 있는 여력이 점점 소멸해 가는 것을 느끼고 있다. 곧 나타날 의사 피로도가 응급의료 시스템에도 영향을 끼치게 되고, 이는 곧 정성으로 대해야 하는 환자들의 피해로 이어질 게 명확하게 보인다.어릴 때 재미나게 읽었던 솔로몬의 유명한 '진짜 엄마 가짜 엄마 판별하기'에서 '아이를 반으로 자르거라'라는 말에 양보하는 엄마가 '진짜 엄마다'라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가 진정으로 국민을 아낀다면 이쯤에서 의·정의 싸움은 멈춰야 한다. 정부는 강압적 자세로 의료인과 시스템을 대한다면 일하고 있는 응급실에서 매일 일어나고 있는 그 좋은 공공선이 없어지고 사명감 높은 의사의 회의가 짙어진다. 그리고 학생들과 전공의들도 완충할 수 있는 전향적 자세를 가지고 대화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아기의 진정한 엄마가 될 수 있다. 진짜 아기엄마 맘으로 진심으로 우리가 지켜야 할 건 우리 자존심이 아니라 병들어서 힘들고, 아파서 힘든 국민에 대한 따뜻한 마음과 건실한 의료적 접근이다. 진료하고 있는 응급실은 어떻게든지 지키겠다. 이럴 때일수록 더 열심히 고민하고 행동하면서 더 따뜻하게 환자를 대하겠다. 다만 이렇게 열심히 만들어 놓은 의료적 성과와 시스템을 정부는 좀 더 이해해줘 솔로몬 이야기의 진정한 엄마가 될 수 있는 마음가짐과 행동을 가지면 좋겠다.김창호 〈칠곡경북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김창호 〈칠곡경북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김종현의 블록체인과 AI] "비트코인 투자 조심하세요"
비트코인이 1억원을 넘어섰군요. 칼럼을 시작할 때만 해도 1억은 꿈의 숫자였는데 많은 유튜버나 해외 인플루언서들이 2억, 5억을 외치고 있습니다. 코인 마켓은 엄청나게 위험합니다. 1억이 몇 달 사이에 500만원이 되기도 하고, 심지어 거래소에서 거래중지 될 수도 있습니다. 부디 다른 이들이 몇백 배 몇천 배 벌었다는 소리에 나도 해봐야지 하시는 분 제발 없으시길 합니다. 칼럼을 시작할 때 코인 투자 등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겠다고 약속드렸지만 경험자로서 경고는 드려야 할 것 같아 거듭 조심하시라는 말씀드립니다. 2008년 리먼 사태를 기억하시나요? 부동산 대출을 담보로 어마하게 발행된 미국 달러를 경제 위기의 원인으로 비트코인이 시작되었습니다. 총발행량을 2천100만개로 정하고 추가로 발행되지 않으며 소수점 아홉째 자리까지 나뉘어 거래할 수 있게 설계가 되었습니다. 중앙통화 관점에서는 현물의 가치가 현금 대비 지속적으로 상승하지만, 2천100만개의 한정적인 숫자로 인해 코인의 가치가 상승하고 거래되는 트랜잭션이 공개되어 큰돈의 움직임 또한 판단할 수 있게 설계되었죠.또한 채굴을 하면 비트코인이 생긴다고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신데 채굴이라는 것은 주어진 조건의 숫자를 빨리 찾는 것이며 이때 해시라는 숫자(digit)를 찾고 그것이 블록이라는 것을 만드는 데 쓰이게 되고 이때 엄청난 컴퓨터 자원과 소모하는 전기에 대한 보상으로 일정 수수료 형식의 비트코인을 채굴자에게 보상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이러한 보상체계는 4년마다 절반으로 줄어들게 설계되었으며 보상은 절반이 되지만 채굴의 난이도 상승에 따른 컴퓨팅파워는 승수로 올라갑니다. 투자를 위해 거래소에서 구매한 사람이라면 100만원에 사서 100만원에 팔 수도 있겠지만, 채굴자를 통해 생성되는 비트코인은 2배 이상 원가를 더 지불하게 되어 아주 위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아마 원가 이하 판매는 힘들 겁니다. 그래서 지난 4년마다 벌어지는 반감기에 비트코인의 가격 상승이라는 이벤트가 벌어졌습니다.상승은 이렇게 기본적으로 4년마다 반감기라는 이벤트를 통해 벌어지고 있고요. 하락은 왜 오는가? 마운트 곡스 사건이 제가 알고 있는 최초의 가장 큰 비트코인 가격 하락 이벤트였는데요. 일본에 설립된 마운트 곡스라는 거래소가 전 세계 70%의 비트코인 거래를 도맡아 하다 80만개의 비트코인을 해킹당합니다. 지금 기준으로 따지면 80조원 정도이니 어마어마하게 느껴지시죠. 그러한 해킹 이벤트로 각 나라 정부에서의 부정적인 규제 등이 발표될 때마다 가격 그래프가 수직 하락하는 모습을 보여 줬습니다. 국내에서는 2017년 가을 겨울 정부의 규제 의지가 가장 큰 이벤트였던 거 같습니다. 새로운 이벤트는 항상 많은 투자자들을 공포에 휩싸이게 하였습니다. 불과 30분도 안 되는 시간 만에 잔고가 25% 정도 남는 것을 보기도 하고 10여 분 만에 원상회복하는 것을 보며 많이 놀라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조심하는 것이 아니라 겁이 없어지는 경험을 하게 되고, 지금은 제가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오르는 것은 예정이 되어 있다, 나는 반드시 성공한다 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떨어지는 것은 절대 예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2010년 이후 많은 세계 투자사들이 알고리즘을 통한 주식매매를 진행하였으나 알고리즘도 대응하지 못한 여러 번의 하락장이 존재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철저하게 규칙을 따라가는 알고리즘조차도 시장을 앞서가지는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라 마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조심하십시오.〈주〉루트랩 대표이사김종현 〈주〉루트랩 대표이사
[이하석의 발견과 되새김] "어머, 매화가 당신 땜에 핀 게지요?"
# 화신(花信)의 그늘봄꽃 소식과 함께 말들이 퍼진다. 올봄은 말의 성찬으로 풍성해질까? 총선을 두고 하는 말이다. 꽃들이 만개하면서 그 향기가 짙듯, 하마 온갖 말들이 우리 사회를 풍미한다. 꽃 소식은 이미 와락, 밀려오는 느낌이다. 청도 읍성 주변에 있는 한 식물원에서 수선화가 가득 핀 걸 본다. 그 곁에는 복수초 꽃이 노랗게 군락을 이루고 있다. 매화도 벌써 피었다. 동백의 만개는 아직 조금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지난주 거제 바람의 언덕 주변에서 동백숲 길을 걸었는데, 꽃들이 듬성듬성 붉은 기를 내보이는 상태였다. 아마도 이번 주말이나 내주에는 만개한 꽃들은 물론 산책길에 떨어져 있는 처연한 낙화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삼월은 그런 꽃소식으로 설레야 한다. 자연의 순환이 가져오는 경이로운 광경을 두고 그려보는 것이겠지만, 올봄의 설렘은 거기에다 내가 좋아하는 이들의 눈을 통해 꽃들을 보면서 말들을 꽃 피우는 것이 당연히 더 의미 있어 보인다. 그래, 좀은 유치하더라도 "어머, 매화가 당신 땜에 핀 게지요?"라는 말이 나오는 광경을 그린다. 나는 그렇게 올봄을 '보고, 듣고' 싶다. 그러나 올봄은 온갖 말들로 피어서 시끄럽고 분답한 철이 될 듯하다. 선거 바람이 꽃향기처럼 퍼졌으면 하지만, 역시 아닐 듯하다. 새 사람을 뽑고 그리하여 새로운 봄 사회가 열리기를 꿈꾸지만, 현실은 그러한 바람과 달리 여전히 꿈의 그늘을 보여줄 뿐이다. 무엇보다 말들이 봄의 화신처럼 그리움을 담은 말이 되지 못해 안타깝다. 말은 추상적이고, 기호적이며, 상징성이 강하기 때문에 말이 많을수록 의미는 복잡해지고 탁해진다. 그래서 예부터 침묵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말이라 한 것이리라. 선거가 치열해질수록 그 말들 때문에 어지럼과 살벌함이 느껴지니까 하는 말이다. 선거판의 말들이 대개, 살리는 말들이 아니고 죽이는 말들이기 때문이다. #우울한 정치'극단의 정치, 분노의 언어'라는 말을 듣는다. 어느 신문 사설의 제목이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공천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본격적으로 총선 운동에 돌입하는 듯하다. 무엇보다 아쉬운 건 공천 과정이 국민의 뜻대로 이루어지긴 어렵다는 걸 보여주었다는 데 있다. 여전히 '친윤 불패'니 '친명 불사'라는 말이 대세를 이루는 듯해서 씁쓸하다. 이런 쏠림이 불식되지 않는 한 선거가 국민의 축제가 되긴 불가능하다. 오히려 국민으로부터 외면당하거나 무관심을 불러올 수 있을 뿐이다. 충성 경쟁이나 강성 후보의 득세가 판을 치면 결국 자기들만의 혈투로 난장판이 되기 마련이다. 막말 같은 '분노의 언어'는 거기서 나온다. 정당들마다 진영논리에 갇혀 허우적대는 모습이다. '패륜 공천' '목발 경품'이란 말이 살벌하다. 상대 당을 '범죄자 집단'으로 매도하기도 한다. 때로는 조선 시대에 죄인을 두고 쓴 말들로 상대 후보를 질타하기도 한다. 상대를 겁주고, 자신을 우월적인 존재로 부각하지만, 결국은 그 화가 자기에게 돌아올 뿐이다. 비극적인 희극이 아닐 수 없다.우리의 선거 문화 수준을 보여주는 듯해서 여전히 우울하다. 선거가 축제가 되기 위해서는 말을 정화하고, 말의 품위를 지키는 가운데 확실한 대안을 제시하면서 상대와 토론하면서 경쟁해야 한다. 그런데 왜 그러한 풍토가 되지 않을까? 막말을 타이르고 정쟁을 중재할 '어른'이 없어서 또는 큰 정치가 갖는 균형감을 마련하지 못해서 그러할까? 양대 정당의 구조가 화해는 뒷전에 두고 대립으로만 치달으면서 말들이 각박해질 수밖에 없다. 왜 우리의 선거판은 아이들 학급 반장 선거보다 못하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 지경이 되는 것일까?#말의 꿈탈무드의 명언이 있다. "물고기는 항상 입으로 낚인다. 인간 역시 입으로 걸린다." 말은 힘이 있지만, 화를 자초하는 것일 수 있음을 경계한 말이다. 말이란, 말하는 자와 듣는 자라는 구조를 갖기 때문에 항상 상대에 대한 배려가 따른다. 언어 구사에 대한 책임이 있는 것이다. 자기가 하는 말이 상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지, 늘 헤아리며 신중해야 한다. "칼로 벤 상처는 쉽게 아물지만, 말로 벤 상처는 치유되지 않는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총선은 말의 성찬을 이루지만, 그 말들이 '분노의 언어'인 한 유권자의 귀에 수용되지 못함은 물론이다. 구체적인 대안이 없이 수사만 번지르르한 말 역시 신뢰를 얻지 못한다. 막말은 더욱 조심해야 한다. 누구의 말마따나 그건 거의 '매운맛' 중독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우리 정치의 한복판은 막말의 범람이라 할 만큼 자극이 강하다. 상대 후보를 자극하고 분노를 부추기기에 각박한 상황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진정성 있는 말이 그립다. 좋은 말은 수사의 힘으로 나오는 게 아니다. 삶과 생각의 진정성이 받침이 되어야 설득력을 갖는다. 우리 정치의 한복판에서 부대끼며 국민을 위한 개진의 몸부림을 친 삶에서 나온 말은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밖에 없다. 가령 고(故) 노회찬이 17대 총선을 앞두고 방송사 토론에서 한, 양당 체제 비판의 말처럼 말이다. "50년 동안 똑같은 판에다 삼겹살 구워 먹으면 고기가 시커메집니다. 판을 갈 때가 됐습니다." 이 말은 삼겹살 좋아하는 우리 국민의 식성에 딱 맞아떨어지는 말로 회자됐다. 상대를 공격하는 말이 아닌, 너와 내가 함께 반성하여 살리자는 말을 친숙한 우리의 식습관을 들어 말한 것이다. 그야말로 국민을 의식하고 국민이 바로 선거의 주인임을 내세우는 말이기도 했다. 안개처럼 앞이 보이지 않는 말의 성찬 속을 헤매면서 문득문득 꿈꾸어 보는, 봄꽃 같은, 화사하면서도 향기 넘치는 말. 우리는 막말이 아닌, 그런 말을 듣고 싶은 것이다.시인이하석 시인
[시시각각(時時刻刻)] 잘사는 초중고, 가난한 대학
지난해 1인당 GDP 3만3천745달러를 기록했다. 우리나라가 가난한 후진국에서 세계가 부러워하는 선진국이 될 수 있었던 요인들 중 누구나 인정하는 대한민국의 교육열이 바로 그 중심에 있다.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우리나라는 내국세수의 일정 비율을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지급하는 내국세 연동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내국세 20.79%를 재원으로 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은 인구 팽창기인 1972년1월1일에 시행되어 50년 세월 동안 유지되면서 우리나라 초중등교육의 밑거름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내국세와 연동된 세수는 경제성장에 비례하여 그 재원이 증가한다. 덕분에 초중고는 잘살게 되어 등록금도 사라지고 무상급식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2023년 출산율 0.72명을 기록했고, 학령인구는 계속 줄어들고 있다. 학령인구는 2020년 546만명에서 2060년 302만명으로, 앞으로 30년간 44.7%나 감소할 전망이다. 급기야 2022년 못 쓰고 남긴 초중고 교육예산이 7조5천억원이라고 한다. 학생 수는 줄고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계속 늘어나 초중고생 1인당 교육교부금 액수가 2023년 1천207만원에서 2032년 3천39만원, 2060년에는 5천448만원 수준에 이른다고 한다. 초중고는 넘쳐나는 예산을 소비하고자 학생과 교사에게 무상으로 디지털기기를 제공하고, 입학준비금이나 교원 주택임차비까지 지원한다. 내국세 연동 총량 산정방식의 현행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은 지나치게 비효율적인 구조가 되어 초중등 교육투자만 세계 1위 수준이라는 기형적인 재원배분 결과를 가져왔다.반면 대학의 경우는 대학등록금 동결 정책이 대학의 재정자립도를 악화시키고 있다. OECD 38개국 중 고등교육 1인당 교육비가 초중등교육 1인당 교육비보다 낮은 나라는 그리스를 제외하고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사립대학의 경우 등록금수입이 대학 총수입의 50% 내외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이로 인해 등록금동결정책 이후 사립대학의 재정은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대부분 국가는 전체 경쟁력과 고등교육의 경쟁력이 유사한 수준이나, 우리나라 고등교육은 4~50위권 수준으로 정체되고 있다.결국 초중고는 국민소득 대비 투자가 세계 최고 수준이나 대학은 세계 최하위 수준으로 비효율적 교육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으로 볼 때 교육 분야에서의 재원조절이 필요한 시점에 이르렀다고 보인다.과거에는 대학진학률이 낮았지만, 이제는 89%의 학생이 대학에 진학한다. 대학교육도 무상교육으로 전환할 때가 되었다. 무상교육은 교육의 기회를 넓혀주고 실질적인 평등을 추구하는 수단이 된다. 그리고 대학의 국제경쟁력이 미래 한국의 국제경쟁력이 된다는 점에서 고등교육에 대한 투자 확대가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향후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총량 산정방식을 초중등 학령인구 변화에 맞추고, 대학교육과 평생교육 및 직업교육의 재정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 2025년을 기준으로 추산한 사립 일반대학과 국공립 일반대학의 무상교육에 필요한 예산이 10조~11조원이라고 한다. OECD 평균인 GDP 1% 수준으로 확보할 경우 교육의 무상화가 가능할 것으로 추산된다. 프랑스, 독일 등 서구선진국은 지금의 우리나라보다 GDP가 훨씬 낮은 시절부터 모든 교육의 무상화가 이루어졌다. 교육재정의 분배조절로서 이룰 수 있는 상황이라면 서둘러 시행 가능한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학부모의 교육비 절감은 출산율 상승에도 크게 영향을 주어 국가 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낼 것으로 기대해 본다. 권세훈 <주>비즈데이터 이사·파리1대학 법학박사권세훈 (주) 비즈데이터 이사·파리1대학 법학박사
[단체장의 생각:長考] 안동 사계절축제로 'K-PLAY 도시 안동'을 꿈꾸다
축제를 의미하는 'festival'은 성일(聖日)을 뜻하는 'festivalis'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다. 그러나 축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사회적 통합을 위해 기능하는 종교적 형태, 해방을 향한 문화, 인간의 유희적 본성이 문화적으로 표현된 것 등 시대와 문화에 따라 다르게 인식된다.그렇다면 최근 도시마다 문화관광축제를 경쟁적으로 개최하는 이유는 뭘까? 공동체의 결속과 놀이를 통한 비(非)일상의 즐거움 때문일 것이다. 흔히 인간의 고유한 속성을 '사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는 인간을 '호모루덴스(Homo Ludens)'로 정의하며, '놀이 자체가 곧 문화'라 했다. '놀 수 있다는 것'은 '정신이 있다'는 것이며, 놀이할 때, 비로소 인간 삶의 특별한 의미가 생긴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의 문화는 놀이로부터 나왔으며, 또한 '놀아지는' 것이다. 바야흐로 꽃 피는 봄이다. 저출산, 청년실업, 경기 부진 등 직면한 문제로 봄이 봄답지 않다. 그러나 고민 속에도 또 다른 희망을 꽃 피우기 위해 안동사계절축제로 세계인을 매료시키고자 한다.경북 안동은 정신문화에 기반한 놀이문화가 발달한 곳이다. 이에 안동의 지역적 특성을 반영하여 봄과 가을에는 차전장군노국공주축제와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을, 계절적 특성을 반영하여 여름과 겨울에는 수(水)페스타와 얼음축제를 개최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축제의 궁극적인 목적인 지역브랜드 제고와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며, 관광객 1천만 시대를 열고자 한다. 안동벚꽃축제가 3월27일부터 5일간 낙동강변 벚꽃길과 탈춤공원 일원에서 'Spring 팡! 팡!'을 주제로 신호탄을 쏜다. 5월에는 3일부터 7일까지 5일간 안동 시내 일원에서 '2024 차전장군노국공주축제'를 연다. 색동놀이를 주제로 한 테마파크형 축제로 낮에는 기존의 민속놀이를 새롭게 재해석해 콘텐츠화한 안동만의 색동놀이를, 밤에는 스펙터클한 차전대동놀이와 유명 연예인 공연이 펼쳐진다.물의 도시 안동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여름엔 '수(水)페스타'가 열린다. 무더위를 식혀주는 시원한 소나기 같은 이 축제는 어린이 물놀이장, 물 관련 액티비티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여 시민과 관광객에게 비일상의 유희를 제공하고자 한다.'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은 가을에 열리는 대한민국 명예대표 축제로 세계인이 주목하는 축제이다. 유희자와 관객이 탈과 탈춤으로 만나 모두가 신명 나는 축제로 이름이 높다. 국내는 물론 세계 탈춤을 한 자리서 만나볼 수 있는 유일한 축제이다.겨울에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바탕으로 '암산얼음축제'를 개최한다. 영남권 최대 겨울 축제로 어른에게는 추억을, 어린이에게는 새로움을 선사하며 관광객의 안동 방문을 유도한다.전통과 지역 정체성을 재미와 감동이 있는 콘텐츠로 재해석하여 세계인이 안동의 정과 흥과 멋에 취해 안동에서 한판 신명 나게 놀 수 있기를 바라며, 'K-PLAY 대표 도시 안동'이 되고자 한다. 가장 지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성공신화, 안동의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 권기창 안동시장권기창 안동시장
[단상지대] 진상은 자기가 진상인지 모른다
'진상'은 본래 '진귀한 물품이나 지방의 특산물을 윗사람에게 바치는 행위'를 의미했으나, 진상이 지닌 폐단이 부각 되면서 '허름하고 나쁜 것을 속되게 이르는 말'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요즘 '진상'은 이 말의 부정적 의미를 차용하여 '못생기거나 못나고 꼴불견이라 할 수 있는 행위나 그런 행위를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는데, '진상 떨다'라는 말은 '유독 까탈스럽게 굴다'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세상 어디에나 진상은 있고, 진상은 자신이 진상인지 모르고, 진상이 아닌 사람은 괜히 자신을 돌아보며 내가 진상짓을 했나 하고 반성한다.유난히 타인을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국선전담변호사라서 국선사건만 한다. 나의 고객들 중에도 지나치게 예민하고 의심이 많아서 처음부터 따지듯 대하는 사람, 화가 많으신 분도 있고, 성실한 변론을 압박하시는 분도 있다. 특히 성실변론압박 유형 중 기억나는 사건이 있다. 개가 행인을 물어서 상해를 입게 했다는 이유로 기소된 피고인은 내게 자신의 개는 결코 사람을 물지 않았다면서, 개를 목숨처럼 사랑하지만 사람을 무는 개는 키울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재판에서 지면, 저는 바둑이(가명)를 살려두지 않을 겁니다. '내가 생명을 방생해서 덕을 쌓아도 모자랄 판국에 변론을 대강해서 실체적 진실이 묻히고 그것 때문에 바둑이가 죽는다면….' 나는 충격의 도가니에 빠져서 한동안 시름시름 했고 동네에서 산책하는 개만 봐도 마음이 무거웠었다.예전에 내 재판을 기다리면서 방청하는데, 어떤 사람이 위험한 물건을 들고 다른 사람을 때려서 '특수상해죄'라는 죄명으로 재판을 받고 있었다. 그 사람은 법정에서 '특수'를 죄명에서 빼달라고 조르고 있었다. 검사님은 공소장을 변경할 계획이 없다고 하시고 판사님은 공소장을 강제로 변경시킬 수가 없는데, 이 사람이 계속 판사님께 시비조로 말했다. 언성을 높이며 따지는 피고인에게 판사님은 판단해 보고 피고인 주장대로 위험한 물건을 들고 하지 않았으면 그 부분은 무죄가 되는 것이지, 판사가 검사에게 죄명을 바꾸라고 지시할 수는 없다고 차분히 설명하셨다.이 사람은 조르다 안 되니까 화를 내며 "아, 솔직히 사람 싸다구 때리는 게 죕니까? 네?"라고 소리 질렀다. 나는 가슴 속에서 삼선 슬리퍼를 꺼내어 파파팟 까치발로 바닥을 짚고 공중부양해서 피고인석으로 날아간다. 그리고 슬로 모션으로 슬리퍼를 든 손을 위로 치켜올렸다가 그 난동남의 오른쪽 뺨에 쫘악 날리고. "싸다구 때리는 게 죄가 아니라며"라고 말하며 착지한다. 나는 이런 상상을 하며 품위를 잃지 않고 서류를 보고 있었다.재판이 끝나고 선고기일을 정해서 그에게 알려주니 그는 욕설을 하면서 반말로 "안 나와"라고 했다. 방청석에 앉은 사람들이 일제히 코브라처럼 고개를 들었다. 그 사람은 욕설을 섞어 투덜거리다 나갔다. 재판장님은 피고인을 감치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그날 재판이 많아서 방청석에 다들 지연된 재판을 기다리고 있었다.충격적인 욕설에 방청석도 쇼크가 가시지 않았는데, 재판장님이 몇 초 정도 움직임 없이 가만히 있다가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음 재판을 차분하게 이어나가셨다. 살아있는 부처 수준의 대처와 그 이후에도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온화한 재판 진행에 놀랐다. 법정을 나오면서 나만 사바세계에 있는 것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산스크리트어로 '사바'란 견디다, 감내하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은미 변호사이은미 변호사
[송재학의 시와 함께] 이윤학 '너는 어디에도 없고 언제나 있다'
오른손 검지 손톱 밑 살점이 조금 뜯겼다.손톱깎이가 살점을 물어뜯은 자리분홍 피가 스며들었다. 처음엔 찔끔하고조금 있으니 뜨끔거렸다.한참 동안,욱신거렸다.누군가 뒤늦게 떠난 모양이었다.벌써 떠난 줄 알았던 누군가뜯긴 살점을 통해 빠져나간 모양이었다. 아주 작은 위성 안테나가 생긴 모양이었다. 너는 어디에도 없고 언제나 있었다. 이윤학 '너는 어디에도 없고 언제나 있다'자신의 몸이 세상 어딘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건 시인의 생각이다. 그때 몸은 예민하리라. 따라서 민감한 몸이 이별을 먼저 알게 된다. 감정의 메커니즘은 언제나 선연하다. 수용하기 힘든 감정은 분홍 피처럼 몸에 새겨진다. 마치 "벌써 떠난 줄 알았던 누군가 뜯긴 살점을 통해 빠져나간 모양새"이다. 그러기에 "너는 어디에도 없고 언제나 있었다"라는 언술은 너와의 이별을 차츰 받아들인 품새이다. 잘 받아들이거나 억지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시간을 몸에 새긴다. 어떤 이별은 몸이 잊지 못하게 만든다. '너 잘 견디고 있어'라고 위로를 건네지만 커다란 이별은 슬픔에서 위로까지 모두 삼킬 뿐이다.송재학 시인
[경제와 세상] 모방 욕망과 정치 과열
4·10 총선을 앞두고 온 나라가 시끄럽다. 욕설과 비난, 고발이 난무하는 진흙탕 싸움이다. 전국 254개 지역에서 경선에 참여한 사람이 무려 800여 명이 넘고, 46석의 비례대표 희망자까지 더하면 1천명이 넘는다. 뜨지도 못하고 가라앉은 정치예비군까지 포함하면 아마 수천 명을 넘어 다섯 자릿수가 거뜬할 것이다. 거짓말과 막말을 일삼는 정치꾼들이 부끄러운 줄 모르고 설쳐대는 이 난장판은 국민들에게 정치란 곧 분노 유발자다. 영국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산하 EIU가 최근 발표한 2023년 '민주주의 지수(Democracy Index)' 보고서에 따르면, '완전한 민주주의(full democracies)' 국가로 동아시아에서는 일본, 한국, 대만을 선정했다. 완전한 민주주의 체제에 사는 인구는 세계인구의 7.8%뿐이다. 반면 레가툼 연구소(Legatum Institute) 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정치인에 대한 신뢰도는 전 세계 167개국 가운데 114위다. 경제는 2류, 정치는 4류라 했던 삼성 이건희 회장의 말이 맞는가 싶다. 국민들은 세계로 열린 시장에서 먹고사느라 힘든데, 정치인들은 먹이 걱정 없는 가두리 양식장 안에서 서로 뜯어먹으려고 권력투쟁을 벌이는 모습이 그렇다. 지금 우리 정치를 난장판으로 만든 가장 큰 원인은 면책특권과 불체포 특권을 비롯해 국회의원들이 누리는 180여 개의 엄청난 특권이다. 정치적 이념이나 신념의 구현이란 정치하는 목적은 지금 우리의 정치판에는 이상일 뿐이다. 보통 사람은 누릴 수 없는 특권은 곧 권력이고 체통이고 위엄이다. 자기보다 나을 것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권력을 꿰차고 거들먹거리는 모습에 선망과 시기로 너도나도 정치에 입문한다. 국가발전에 기여하겠다는 명분은 왠지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그러면 국회의원을 비롯한 사회 권력층의 수를 늘리면 경쟁과 갈등이 덜해질 것인가? 수요가 많으니 공급을 늘리면 시장도 안정된다는 경제원리가 작동될 것인가?시장경제주의자는 경쟁과 갈등의 원인으로 재화의 희소성을 전제한다. 인간사회에는 모두의 행복을 충족시킬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재화가 없기 때문에 각 개인은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경쟁하고 이 과정에서 가격이 조정자 역할을 하여 적정한 공급을 이루어지게 한다. 개인의 이기적 욕망(수요)은 공급을 유도하고 수요가 늘면 공급도 증가하여 전체 사회의 복리를 늘린다는 것이 현대 경제학의 기본 명제다. 개인의 이기성과 탐욕, 과시적 욕망이 사회적 선이 되는 가치전도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탐욕과 이기심에 부정적인 도덕과 윤리 가치의 상실은 필연적일 것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르네 지라르는 우리의 욕망은 타인의 욕망을 모방하여 생겨난다는 명제를 바탕으로, 서로가 서로를 모방하는 이중 욕망 모방은 선망과 시기, 질투와 같은 갈등으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타인이 가진 권력을 향한 선망과 시기는 욕망을 낳고 이는 정치 과열이란 갈등으로 이어진다. 이 갈등들은 공동체의 붕괴로 연결될 수 있는 폭력을 낳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르네 지라르의 시각으로 보면, 시장경제 논리는 재화의 희소성 때문에 경쟁이 발생한다고 보지만, 오히려 모방적 욕망에서 비롯한 선망과 시기, 경쟁 때문에 재화의 희소성이 생기며, 이 경쟁 때문에 갈등이 발생한다고 본다. 경제성장은 결핍을 해소하지만, 그 해소는 얼마 안 가서 더욱 큰 결핍을 낳는다. 시장경제는 더 큰 성장을 통해 이 부정적 결과를 메우려 한다. 특권을 확산하거나 확대하면 지금의 정치 과열과 언어폭력 현상은 결코 해소될 수 없다고 굳게 믿는다. 그것은 오로지 특권의 제거와 삶의 다양성의 존중 그리고 사회적 선을 지키려는 도덕적 가치와 이를 선택하는 국민들의 몫이다.권 업 객원논설위원권 업 객원논설위원
[광장에서] ESG 기후공시, 선제적인 대응 체계 구축해야
기후위기가 가속화되면서 글로벌 '기후공시' 의무화의 시계도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비록 국내 도입 시기는 2026년 이후로 연기되었지만, 기업들은 글로벌 ESG 공시 대응 체계를 발 빠르게 구축하고 있다. 현재 글로벌 ESG 공시 기준의 표준화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는 있으나 기후공시와 관련하여 국가별, 추진 주체별로 그 기준이 달라 기업이 대응하는 데 어려움이 많은 실정인데, 기준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로, 국제회계기준재단(IFRS) 산하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의 공시 기준으로, 지난해 6월 ISSB는 IFRS S1 일반 요구사항과 S2 공시기준을 발표했다. 그중 S2는 기후변화로 인한 물리적 위험이나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 관련 위험 등 기업의 기후 관련 사항에 대한 정보를 공시하도록 요구한다. 2025년경 ISSB에 기반한 지속가능성 정보공개 표준이 의무화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영국, 호주 등은 지속가능성 정보공개 표준, 보고기준을 준비하고 있다.둘째로, 유럽연합(EU) 지속가능성 보고지침(CSRD)의 이행을 뒷받침하는 지속가능성 공시기준(ESRS)으로, 2023년 1월 CSRD 발효에 따라 ESRS first set(산업공통 적용)는 지난 1월부터 시행되었다. ESRS는 ESRS 1(일반 요구사항)과 ESRS 2(일반 공시)의 공통 기준 2개와 ESG 주제별 총 10개의 기준서로 구성되는데, 기준서 중 ESRS E1이 기후변화 관련 공시이다. 동 기준에 따라 EU 기업 및 관련 국내 기업들은 2024년부터 2026년까지 단계적으로 ESG 공시 의무 적용 대상이 된다.셋째로, 미국 증권관리위원회(SEC)의 기후 변화 관련 공시 규정으로, 지난 6일 SEC가 이를 채택하여 관보 게재 후 60일 후부터 단계적으로 발효될 예정이다. 동 규정에는 기후 관련 위험이 기업에 미치는 영향, 온실가스의 직·간접 배출량에 대한 공시를 포함하고 있고, 향후 공급망(Supply chain)을 포함하는 Scope3까지로 확대가 예상된다. 향후 미국의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기업들은 기후변화와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공시해야 하므로 KT, 포스코홀딩스, KB금융그룹 등 국내의 10개 기업도 공시의무를 이행해야 한다.그렇다면 국내 기업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무엇보다도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관련 온실가스 배출 등 데이터 품질 관리 강화 등에 우선순위를 두고 준비해야 한다. 둘째로, 가장 복잡하고 광범위한 ESRS를 중심으로 선제적으로 공시 대응 체계를 구축하는 한편, 지사, 협력사 등 공급망을 고려하여 상호 운용이 가능한 공시 기준도 마련해야 한다. 결국 기업의 입장에서 ISSB·ESRS·SEC 기준 중 무엇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다. 결론적으로 기업은 선제적인 대응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유비무환(有備無患), 모든 일을 완벽하게 대비할 수는 없지만 미리 준비가 되어 있으면 걱정할 것이 없다. ESG 기후공시가 국내 기업에 있어서 실제적인 온실가스 감축으로 이어지는 미래의 기회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김도형 (법무법인 화우 환경규제대응센터장)김도형 (법무법인 화우 환경규제대응센터장)
[윤성은의 천일영화] 묫자리를 파내는 행위에 관하여, '파묘'
*영화의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마니아층의 장르로 분류되어 왔던 오컬트 영화가 천만 관객을 바라보는 흥행작으로 등극했다. 이번 주말이면 9부 능선을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파묘'(감독 장재현)가 그 주인공이다. 코로나 이후 종잡을 수 없게 된 관객들의 성향이 '파묘'의 흥행에도 한몫을 하고 있는 것일까. 개봉 당시만 해도 할리우드 대작인 '듄: 파트2'(감독 드니 빌뇌브)와의 2파전이 예상되었지만, '듄: 파트2'가 예상외로 부진한 가운데 '파묘'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파묘'의 성공에는 먼저 장재현 감독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그의 장편 데뷔작인 '검은 사제들'(2015)은 한국형 엑소시즘 영화로 550만명의 관객을 불러모았고 두 번째 장편인 '사바하'(2018)는 다층적 서사의 난해함 때문인지 그 절반 정도의 관객 수에 그쳤지만 소수의 열혈팬들을 확보하게 만든 작품이었다. 철학적 깊이나 만듦새에 있어서는 호평이 압도적이었다. 그런 감독이 신작으로 무당과 지관에 관한 영화를 내놓자 언론에서는 그를 이 장르의 장인으로 부르기 시작했고, 관객들의 기대감도 사전예매량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파묘'는 3일 만에 100만, 7일 만에 300만 관객을 돌파하더니 입소문을 타고 파죽지세로 순항하는 중이다. '파묘'는 대중적 요소와 마니아적 요소가 혼합되어 있다는 점에서 장재현 감독 전작들의 장점을 두루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파묘' 자체만 보면 새로운 시도이자 도전이었다. '파묘'는 두 개의 이야기를 이어놓은 것처럼 전반부와 후반부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는 서사를 구축했다. 전반부가 무당들과 지관, 장의사 등이 조상의 묫자리를 잘못 써서 비극을 맞게 된 가족을 구하는 이야기라면, 후반부에는 그들이 그 묫자리에 일제 강점기의 쇠말뚝이 박혀 있음을 알게 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무서운 장면 없이도 섬뜩한 전반부에 빠져 있던 관객들 중 일부는 일본 도깨비 '오니'의 실체가 드러나는 장면부터 이질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공포를 드러내는 방식 자체는 다를지라도, '기생충'(감독 봉준호)이 그랬던 것처럼 '파묘'의 앞부분과 뒷부분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전반부에서 조상의 친일행위가 다음 세대를 밑도 끝도 없는 부자로 만들기도 하고 병들게도 했다는 사실이 다 드러나기는 하지만, 후반부에는 일제의 침략이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 미치고 있는 영향력을 보다 광범위하게 짚어준다. 말하자면 전반부를 후반부의 대유(代喩)처럼 사용한 내러티브다. 두 부분의 연결고리를 강화하기 위해 감독은 수많은 복선을 깔아놓았고, 그 치밀함은 관객들이 자발적으로 '파묘'의 숨겨진 코드에 대해 파고들게 만들었다. 영화의 흥행이 불필요한 정치적 공방까지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장재현 감독은 무당과 지관에 대한 영화를 준비하다가 쇠말뚝과 항일운동 이야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우리 세대의 병(病)을 고치기 위해 조상의 묫자리를 파내는 행위와 우리 사회의 고질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는 행위는 분명 유사한 데가 있다. 아니 어쩌면 창작가에게 당연한 귀결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다이묘 정령은 사물이 혼 자체로 진화해 실체화된 존재'라는 대사는 결론처럼 다가온다. 부지불식간에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악령들, 그것들이 인간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해오는 것만 한 공포도 없으니, 경계가 필요하다.윤성은 영화평론가윤성은 영화평론가
[더 나은 세상] 가장 강한 사람들
아프가니스탄 난민 출신의 여학생 밴드 The Sounds of Afghanistan은 11명의 중고등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다. 새스커툰 한인회 한국 설날 행사 초청공연에 대한 감사로 한국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캐나다는 난민을 적극 수용하는 나라 중 하나라 새스커툰도 예전 시리아 난민들 그리고 얼마 전에는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대거 수용했었는데 이들 대부분은 3년 전 도착했다고 했다. 어린 여학생들이 화려한 전통의상을 입고 랩이 섞인 노래를 부르는 발랄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난민들을 여전히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전쟁터에서 살아남아 온 가난한 사람들이란 식으로 묘사하는 전형적인 스테레오타입을 깨기에 좋다고 생각해 섭외했었다. 한국문화를 매우 좋아한다며 들떠서 식당에 나타난 학생들은 대부분 본국에서 사립고등학교를 같이 다니던 사이로 3년 전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할 때, 미국 비영리기구와 연관된 학교장의 주선으로 특별기를 통해 캐나다로 왔다고 했다. 학교밴드인데 여성들의 교육이 금지되어 있다시피 한 나라에서 온라인과 방송활동 등을 통해 알려졌던 터라, 카불 탈출 시 휴대폰의 사진들을 지우고 긴 히잡으로 얼굴을 가리고 버스를 탔다는 얘기에선 영화 같은 긴박함이 느껴졌다. 정부의 초기 지원이 끝난 후로는 각자 알아서 생존해야 하기에 생활은 쉽지 않다고 했다. 그럼에도 가족들 친구들과 함께 온 터라 강한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있고, 3년 전 처음 왔을 때는 영어를 거의 못 했다는데 유창한 영어는 물론 좋아하는 K-pop 드라마를 통해 익혔다는 한국어도 꽤 유창한 A를 비롯, 어린 학생들 대부분이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15세의 A도 이웃집 베이비시터로 일한다며 가족 모두가 돈을 번다고 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한국 드라마 주몽이 해마다 다시 방영될 정도로 국민드라마로 높은 인기를 누린다는 것을 비롯해 슬프고 힘들 수 있는 이야기들을 밝게 재잘대던 일행은 캐나다로 같이 오지 못한 가족을 둔 학생들 얘기에 이르러 결국 눈물을 보였다. 작년에 합류한 이 학생들은 파키스탄으로 탈출해서 지내다 세 자매만 작년에 캐나다에 도착했다고 했다. 그럼 요리는 누가 하니 물었더니 15세인 둘째가 한다고 했다. 14세의 막내 J는 말했다. 스무 살 넘은 큰 언니는 돈 벌고, 둘째 언니는 요리하고, 나는 그냥 먹어요. 눈물이 핑 돌았다. "너는 그냥 먹기만 해도 돼, 너 이제 겨우 14세인 걸"이라고 말해줬다. 이들은 파키스탄에 남아있는 가족들을 데려오는 것이 꿈이다. 캐나다 정부 지원 인원은 마감되었고 교회 등의 기관들을 통해 데려오려면 한 명당 2천만원 가까운 비용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 돈이 큰돈이 아닐 만큼 부자들도 많으니 두 명의 부자들만 찾으면 되는 거네. 같이 찾아보자고 했다. 세계 여성의 날이 있는 3월이다. 지난달 어느 행사에서 옆자리에 앉았던 지역 주의회 의원의 말이 생각났다. 지역 출신으로 정치인으로 가족들과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는 그는 말했다. "You don't need to go far for success. (성공을 위해 멀리 떠나야 할 필요는 없어.)" 크게 바라는 게 없기에 멀리 갈 필요가 없는, 머물 수 있는 사람들. 생존을 위해 어디로든 가야 하기에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들. 이 생명력 강한 사람들 사이에, 오늘날 한국인들은 어디쯤 서 있는가.신현정 캐나다 사스카추안대 교수신현정 캐나다 사스카추안대 교수
[정성화의 자연과 환경] 자주 듣게 되는 암모니아
암모니아는 수소와 공기의 질소로부터 제조되는 무색의 염기성 기체로 특유의 자극적인 냄새가 나며 그 냄새 때문에 삭힌 홍어나 잘 관리되지 않은 화장실 냄새를 맡으면 암모니아를 생각하곤 한다. 암모니아는 질소비료, 폭약, 세정제, 냉매, 연료 등의 다양한 용도로 쓰이며, 또한 질소산화물(NOx)을 선택적으로 환원하여 질소와 물로 전환시킬 때 환원제로 작용, 환경에 매우 중요한 역할도 한다. 또한 현재 세계 인구의 약 반은 암모니아로부터 제조되는 질소비료로 생산된 곡식 때문이라고 할 정도로 암모니아는 인류에 매우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최근 수소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으며 수소를 새로운 에너지 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효과적으로 수소를 CO2 배출 없이 생산하는 기술과 수소를 에너지로 전환하는 기술은 물론이고 수소를 사용할 곳으로 효과적으로 이송하는 기술도 필요하다. 수소는 기체 혹은 액체 상태로 이송될 수 있는데 우선 파이프라인을 통해 기체로 이송하는 것은 액화할 필요가 없어 경제적이지만, 먼 거리나 대용량 이송이 쉽지 않고 누출 및 폭발의 위험이 상존한다. 반면 액체로 이송하는 것은 액화를 위해 매우 낮은 온도(-253℃)까지 냉각해야 하므로 비용이 크게 증가할 뿐만 아니라 장기간 보관하기도 힘들고 누출의 위험도 있다. 수소 이송 방법으로 수소를 많이 함유한 화합물을 이용한, 즉 어떤 화합물을 수소 캐리어(전달체)로 활용하는 것이 있다. 수소와 톨루엔으로부터 얻어지는 메틸시클로헥산이라는 물질은 수소 활용 시 반대로 수소와 톨루엔으로 분해될 수 있고 실온에서 액체인 장점이 있으므로 수소 캐리어의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암모니아는 수소 함량이 높고 비교적 쉽게 액화되므로 큰 비용 없이 액체로 전환되어 쉽게 이송할 수 있고 수소 추출 후 무해한 질소만 배출하므로 매우 좋은 수소 캐리어가 될 수 있다. 또한 암모니아는 이미 오랜 기간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많은 정보가 있고 활용 시 기존 인프라를 이용할 수 있어 막대한 투자를 할 필요가 없는 장점이 있다. 암모니아를 수소 캐리어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수소와 질소의 반응으로부터 암모니아를 얻는 기술(N2+3H2→ 2NH3) 및 그의 역반응인 암모니아 분해 반응을 효과적으로 진행시킬, 특히 에너지 소모와 CO2 발생이 적은 기술이 매우 중요하다. 주위에서 암모니아의 생산 및 분해와 암모니아 캐리어 등의 말을 자주 듣게 되는데 나쁜 냄새가 나고 미세먼지의 원인이 되기도 하는 암모니아이지만, 수소 시대 등을 통해 암모니아가 보다 친숙한 느낌의 미래가 도래하길 기대해 본다. 경북대 화학과 석좌교수정성화 경북대 화학과 석좌교수
[돌직구 핵직구] 청년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청년의 눈빛을 보면 그 사회의 미래가 보인다. 꿈과 도전의식에 가득 차 있으면 희망이 있고, 반면 피로와 절망으로 찌들어 있으면 쇠퇴하기 마련이다. 우리의 청년들은 어떤 눈빛을 보이고 있나? 청년 세대들이 힘들어하고 있다. 미래를 향한 도전보다는 마음의 위안을 위해 '니체' '소펜하우어'의 염세 철학에 젖어 들고 있다. '헬조선'의 또 다른 버전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불평·불만으로 가득 차 있다. 대학생·청년들의 가장 큰 고민은 취업이다. 그냥 취업이 아니라 '좋은 일자리' 취업이다. 쉽게 말해서 대기업에 정규직으로 취직을 원한다. 그게 쉽지가 않다. 괜찮은 일자리는 전체 일자리의 20%에 불과하다. 청년 취업자 다섯 명 중 한 명이 제대로 된 직장을 잡고, 나머지 네 명은 비정규직에 프리랜서이다. 작년 경제성장률이 1.4%에 그쳤으니 올해 2월 대졸자 약 44만명 중 10만명 정도만 좋은 일자리에 취업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그동안 누적 청년 미취업자가 126만명에 이른다. 취업이 어려우니 연애와 결혼은 엄두도 못 낸다. 청년 사회의 졸업·취업·결혼·출산의 선순환 구조가 무너졌다. 초저출산과 인구 감소, 대한민국의 존립 문제도 청년 문제에서 출발한다. 두 문제는 동전의 앞뒷면이다. 청년 문제를 해결하면 저출산 문제도 해결된다. 작년에 합계출산율이 0.72로 떨어졌다. 출생아의 숫자는 23만명에 불과하다. 2020년 5천184만명을 기점으로 총인구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2005년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 제정 이후 380조원의 예산을 투입했는데 출산율은 더 떨어지고 있다. 인구 절벽으로 대한민국의 존립이 위협받고 있다. 이미 문 닫는 학교가 속출하고, 노동력 부족으로 경제가 추락하고, 사회복지 부담은 증가하고 있다. 지방 인구 감소를 넘어 소멸하는 지역이 늘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교육·노동·연금의 3대 개혁 과제도 결국 인구 감소로 생긴 문제이다.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청년 개인의 노력이 부족하고 성실하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사회 구조적인 문제 때문일까? 원인 규명에 따라 대책이 달라진다. 청년의 문제에 대한 종합적 대책을 세우기 위해 2020년 '청년기본법'이 제정되었다. 국무총리실에서 '청년 정책 기본 계획'을 작성하고 총괄·조정하고 있다. 일자리, 주거, 교육, 복지·자산 형성 등 종합대책을 실행하고 있다. 하지만 정책에 대한 체감도와 만족도는 낮다. 그 이유는 개인적인 노력을 지원하기 위한 방안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청년 문제는 경제·사회적 원인에서 기인한다. 좋은 일자리가 창출되지 않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가 크고, 월급 받아 아파트 구입하기가 어렵고, 자녀를 낳아 기르기 어렵기 때문이다. 구조적 변화가 필요하다. 백화점식 분산된 정책으로는 효과를 내기 어렵다. 청년·인구 문제를 총괄할 '청년미래부'(가칭) 신설을 제안한다. 청년과 저출산의 문제를 해결할 과감한 정책을 실시해야 한다. 정치가 해야 할 일은 국가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청년의 3대 장벽인 일자리 창출, 주택 공급, 교육비 지원에 집중적인 투자를 해야 한다. 덧붙여 인구 변화에 따른 미래사회 대응 방안도 만들어야 한다. 과학기술, 산업, 교육, 국방, 조세, 연금, 지방 발전에 관한 시나리오별 전략이 필요하다.청년 자살, N포 세대, 고립과 은둔 청년, 청년 빈곤, 열정 페이, 이대남과 삼대녀, 헬조선 등등. 부정을 긍정으로 바꿔야 한다. 청년의 삶을 이해하고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청년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대한민국의 희망과 미래가 청년들에게 달려 있다. 서성교 (건국대 특임교수·전 청와대 행정관)서성교 (건국대 특임교수·전 청와대 행정관)
[시선과 창] AI와의 공존보다 중요한 것
최근 인공지능(AI) 기술이 급속히 발전하고 있다. 오픈AI의 챗GPT로 시작된 'AI 전쟁'은 여러 거대 테크 기업들의 참전으로 더욱 가열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 4일, 미국의 AI 스타트업 앤트로픽(Anthropic)이 차세대 AI 모델 '클로드3(Claude 3-Opus)'를 발표하며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필자가 직접 클로드3를 사용해본 결과, 기존의 챗GPT와 유사하면서도 GPT-4를 능가하는 놀라운 성능을 보여주었다. 실제 대규모 벤치마크 테스트(MMLU)에서도 클로드3는 GPT-4를 압도하는 점수를 기록한 바 있다. 특히 필자가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마치 클로드3가 인간과 같은 지각과 의식을 가진 것처럼 느껴진다는 사실이었다. 자신만의 관점과 의견을 피력하고, 심지어는 스스로의 존재와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이는 비단 필자의 경험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실제 AI 업계에서도 '클로드3가 강한 자기 인식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가 속속 나오고 있다. 'AI의 의식'에 대한 논의가 불 지펴지는 양상이다. 물론, 현재의 기술로 AI가 의식을 가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그러나 우리 인간들이 '의식'에 대한 명확한 과학적 설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AI의 의식'에 대한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도 어렵다.정말 AI에게 의식이 생긴다면 어떻게 될까? 약간의 소설적 상상력을 동원해보자. 적어도 지금처럼 단순한 프로그램으로 취급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인격체에 준하는 대우를 해야 하거나 AI가 자신들의 권리를 요구하며 인간 사회에 적극 관여하려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미 AI가 예술과 창작의 영역에서 크게 활약하고 있는데, 감정과 교감의 영역마저 대체하게 된다면 인간의 존재 가치에 대한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의식을 가진 AI와 인간이 조화를 이루며 공존할 수 있을지, 아니면 인간이 AI에 예속되고 말 것인지는 아직 미지수다.하지만 'AI와 인간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미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기술 그 자체에만 주목할 것이 아니라, 기술을 활용하는 인간 사회의 성숙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아무리 뛰어난 AI 기술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다루는 인간의 가치관과 윤리의식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AI와의 공존'보다 우리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는 '인류 구성원 간의 공존'이다. 지금도 지구 곳곳에서는 다양한 분열과 갈등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국가 간, 민족 간, 계층 간, 세대 간 다양한 차원의 반목과 대립, 전쟁과 테러, 차별과 혐오, 불평등과 양극화…. 이 상황에서 고도의 지능을 가진 AI가 등장하면, 인간 사회의 어두운 단면들이 AI에 그대로 투영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AI 시대를 준비하는 동시에 인간 대 인간의 관계 회복이라는 근본적 과제에도 힘써야 한다. 상호 이해와 존중, 배려와 협력의 가치를 되살리고, 연대와 공감의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어쩌면 AI라는 신인류의 출현을 눈앞에 두고 있을지도 모르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근거 없는 낙관이나 비관이 아니라 인류애와 연대의식을 바탕으로 민주적인 방식으로 새로운 시대를 준비해 나가는 것이 아닐까? 결국 AI에 대한 논의 역시 '인간에 대한 논의'를 기반으로 꽃피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AI 시대를 계기로 우리 모두가 서로를 돌아보고, 또 한층 성숙하고 행복해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서승완 유메타랩 대표서승완 유메타랩 대표
[안도현의 그단새] 식물에게 배운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초등학교 여름방학 숙제에 식물채집이 있었다. 식물의 뿌리까지 캐낸 다음에 깨끗이 씻어 말린 뒤 흰 종이 위에 붙여 제출하는 숙제 말이다. 해마다 열 종류쯤 되었던 것 같다. 그중에 아직까지 그 이름이 머릿속에 남아 있는 식물이 '방동사니'다. 길쭉하고 반질반질한 잎사귀 사이로 꽃대가 올라오던, 잎사귀를 뒤로 젖혀 묶으면 왕관 모양이 되던 식물. 질경이가 아주 쓴 풀이라는 것도 그때 알았다.그 이후 나는 식물을 잊어먹고 살았다. 식물보다는 동물원에서 만나는 동물들이 훨씬 신기했다. 식물은 그저 풍경의 배경이 되거나 자연물 중에서 미미한 조연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어른을 위한 동화 '연어'를 쓰면서 물고기들이 저마다 이름이 있다는 것을 무슨 큰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알게 되었다. 그때 봄날 밭둑에 드문드문 흐드러지는 하얀 꽃이 조팝나무 꽃이라는 것을 알았고, 황순원의 단편 '소나기'에 나오는 "양산같이 생긴 노란 꽃" 마타리를 알게 되었다. 식물을 찾아다니고 식물도감을 펼쳐보는 시간이 억새잎처럼 쭉쭉 늘어났다.데이비드 애튼버러의 '식물의 사생활' 서문은 나를 식물 가까이 바짝 끌어당긴 책이다. 식물은 볼 수 있고, 계산을 하고, 서로 의사소통을 하고, 시간을 잴 수 있고, 수를 셀 수도 있다는 유명한 몇 문장 때문이었다. 이것은 과장도 아니고 비유도 아니었다. 비록 얼치기이지만 지금은 식물에 관해 말해 보라면 몇 가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첫째, 식물도 사랑을 나눈다는 것. 동물의 암수처럼 식물도 암수가 있어서 서로를 그리워하면서 종족 번식을 위해 애를 태운다. 실제로 식물의 수분 과정을 현미경으로 보면 올챙이 형상의 수정체가 암술의 씨방으로 접근하는 모습은 동물의 수정 과정과 매우 흡사하다고 한다. 걷지 못한다고 해서 식물이 하등생물인 것은 아니다.둘째, 식물도 시계를 차고 있다는 것. 우리나라 산에 많이 자라는 참나무류는 다른 나무에 비해 마른 잎을 늦게까지 떨어뜨리지 않는다. 새순이 돋을 때까지 잎을 달고 있는 감태나무는 겨울에 그 잎이 더 매끄럽게 느껴진다. 시계 덕분에 잎을 지상에 내려놓아야 할 시간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이다.셋째, 식물도 서로 경쟁하면서 서로 돕는다는 것. 나뭇가지가 하늘을 가리는 무성한 숲에서는 어디를 둘러봐도 고사리류와 이끼류가 보인다. 이들이 살아가도록 주변의 식물들이 습도를 조절해 주었기 때문이다. 또 높은 산에 사는 함박꽃나무는 키가 큰 나무들이 반그늘을 만들어 주어야 생육이 왕성하다.넷째, 식물도 자신의 나이를 안다는 것. 식물은 자신의 나이테를 몸속에 새겨두고 잊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키가 큰 경기도 용문사 은행나무의 나이가 1천18살로 추정된다는 뉴스를 보았다. 우리는 1천년이 지나서야 뒤늦게 이 은행나무의 나이를 겨우 알았을 뿐이다.이 밖에도 식물은 재채기도 할 것 같고, 서로 대화도 할 것 같고, 화를 내기도 할 것 같고, 스트레스를 받기도 할 것 같다. 슬프면 우는 식물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인간이라고 해서 식물 앞에서 으스대거나 까불거나 잘난 체하면 안 된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말, 갖다버릴 때가 되었다.단국대 문예창작과 교수·시인단국대 문예창작과 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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