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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봄] 노인이 꾸는 꿈
온 식구 둘러앉아 커다란 수박 먹다 말고 입 안 가득 감추고 나와서 가만히 수박 씨앗 파묻어 둔 곳, 싸리 울타리 팔 뻗어 감아 오르던 나팔꽃 옆자리, 나만 아는 그곳. 소나기 지나간 후 무지개 뜨면, 무지개 끝 사라진 곳이 분명 친구 집 지붕 너머 어디쯤일 거라고 실눈 뜨고 눈짐작으로 찜해둔 나만 찾을 수 있는 그곳. 하늘로 연 날리다가 바람에 연 떨어진 자리를 담쟁이 잎 같은 손바닥으로 이마 햇볕 가리고 단단히 봐 둔 곳, 꼭 찾아야 하는 나의 방패연.내가 텀벙대다가 흐려진 물 때문에 물풀 사이로 사라진 버들피리, 흙탕물이 주저앉기까지 가만히 기다리다 말갛게 비친 친구 얼굴 쳐다보고 웃느라 결국 놓쳐버린 버들피리 숨어있는 곳. 어디든 축축한 땅을 파면 어김없이 나오던 땅강아지, 움켜잡다 그 힘센 앞발에 깜짝 놀라 후다닥 던져 버린 후, 눈여겨봐 뒀던 땅강아지 사라진 구멍. 술래잡기하다 친구는 가버리고 나만 심심해져 뒷마당 깊은 우물에 몸 반쯤 걸친 채 괜히 소리 한번 질러 보면 내가 우물을 내려다보는지 우물이 날 쳐다보는지, 무서워 침 뱉은 우물 자리. 아직도 맑은 물이 고여 있는지…. 겨울바람에 손을 호호 불어가며 구슬을 치다 수챗구멍으로 빠져 버린 아끼던 구슬, 세상에 하나뿐인 나의 보배 구슬 먹어 버린 그 검은 구멍. 아직 그곳에 그대로 있는지….눈 오는 날 그 언덕길. 비료 포대 넓게 펴 동무들과 두 발 뻗치고 노루 새끼처럼 쏜살같이 내려오던, 바람은 불어도 토끼털 귀마개로 춥지 않던 겨울. 올라가는 길은 연탄재 낮게 깔려 있던 기억의 언덕길. 갈래머리 땋은 애와 소꿉 살림 살다 셈난 친구 훼방에 아무렇게나 던져두고 온 기와 빻은 흙과 사금파리 조각 그릇들. 말간 행주로 장독 닦고 있는 엄마 앞치마 붙들고 엿 사달라고 보챌 때 그때 장독 뚜껑을 타고 내려오던 쨍한 가을 햇볕 한줄기. 땅따먹기 놀이하면서 고사리손 한 뼘 길이로 그은 금. 그 금 둘러친 면적만큼 큼직하던 내 땅. 아직도 그 금 그어져 있는지…. 나른한 일요일이면 늘 들리던 손목 하얀 이층집 계집아이가 치던 피아노 소리. 배고픈 저녁 답이면 길게 나를 부르던 엄마 목소리, 그 소리들 아직 그곳에 있는지….잊히지 않고 새겨진 이 기억들은 은빛 비늘을 두르고 등지느러미 힘차게 저으며 아직도 내 마음속에 남아 헤엄치고 있는데, 내 마음의 그물에 아직도 걸려 있는 그 귀한 것들을 언제 날 잡아 찾으러 간다고 벼르다 우물쭈물하다, 이젠 다 커버렸습니다. 이젠 늙어버렸습니다. 곽호순 〈곽호순병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곽호순 (곽호순병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준형의 외교광장] 북·러 정상회담에 대한 오해와 진실
김정은 위원장의 5박 6일 러시아 방문을 두고 다양한 해석과 의견들이 쏟아져 나왔다. 대부분 양국의 무기 거래에만 초점이 놓여있다. 뉴욕타임스가 가장 빨리 정상회담 개최 사실을 알렸었는데, 미국 정부가 의도적으로 정보를 흘려 김을 빼는 동시에 향후 협력 가능성을 방해하려 했다는 것이 외교가의 대체적인 해석이다. 미국 정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앞두고도 유사한 방식을 사용했었다. 미국 언론을 그대로 옮겨 적는데 익숙한 한국 언론은 러시아가 북한으로부터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모자란 포탄을 받고, 북한은 러시아로부터 ICBM을 포함한 전략무기 기술을 받는 것을 정상회담의 목적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정작 북·러 정상회담에서 공동선언문은 물론이고, 어떤 합의 사항도 나오지 않았다. 합의는 있었지만, 공개하지 않기로 한 것인지, 아니면 구체적인 합의가 없었던 건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애초에 무기 거래와 군사협력에 초점을 맞춘 언론은 아예 전자인 비밀 협약으로 단정하고 있다. 정부는 한 발 더 나갔다. 장호진 외교부 1차관은 안드레이 쿨릭 주한러시아대사를 초치해 북한과의 군사협력을 즉각 중단하고 안보리 결의를 준수해야 한다고 따졌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유엔 참석차 출국을 앞둔 17일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북·러 군사협력을 기정사실화하고 유엔 안보리 결의와 각종 국제 제재에 반하는 불법적이고 정의롭지 못한 협력이라고 비판했다. 그 기조를 유엔 기조연설에서도 반복했으며, 대한민국과 동맹국, 우방국들이 이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하게 경고했다. 입증된 사실이 아닌 추측과 일어나지 않은 미래 상황을 전제하고 상대국 대사를 초치한 것도 그렇지만, 대통령이 유엔연설에서 세계를 향해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경고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당연히 러시아 측은 "도발적이고 대결적인 추측성 발언"이라고 반발했다. 미국과 한국 언론의 과장 및 왜곡 보도에도 강한 유감을 표했고, 한반도 위기는 한미 양국의 대북 무력 압박에 원인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러시아 정부는 루덴코 차관이 한국을 방문해 북·러 정상회담 결과를 한국 측에 설명하겠다면서 한국과는 동북아시아와 한반도 안정을 위한 공통의 이해관계를 갖고 있으므로 계속 접촉할 것임을 시사했다. 그러나 현재 정부의 편향된 시각은 러시아 차관의 방문을 북·러 무기 거래의 진실 호도를 위한 것이라고 이미 평가절하하는 분위기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북·러 정상 간에 무슨 약속과 거래가 있었는지 명확하게 알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북·러가 무기 거래했다는 증거도 없다. 향후 가능성까지 부정할 수는 없지만, 현시점에서 이런 식으로 한·러 관계를 악화시키는 것은 오히려 북·러가 협력을 강화할 빌미를 줄 수 있다. 윤석열 정부의 대러 외교는 바람직하지 않고 위험하기까지 하다. 러시아가 북한의 포탄을 절박하게 필요하다는 전제 역시 확인이 필요한 사항이다. 러시아는 작년 말부터 무기 생산 속도가 빨라져서 포탄은 전쟁 전의 2배, 탄약도 서방보다 7배, 탱크도 2배나 많다는 정보도 있다. 특히 러시아는 현재 공세보다 동우크라이나에서 3중 진지를 구축하고 방어전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무기 공급을 갑자기 늘려야 하는 상황이 아니다. 러시아가 세계의 주목과 의심 속에서 북한과의 무기 거래를 실행하기는 쉽지 않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섣불리 무기 거래나 대북 제재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행동은 하기 힘들다. 더욱이 전쟁 중에 ICBM 기술이나 핵잠수함을 북한에 제공함으로써 미국과의 전략 균형을 흔들 수 있는 무리한 행보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러시아는 지금까지 핵보유국으로서 핵확산에 대해서는 매우 신중한 자세를 견지해왔으며, 그것이 유엔 대북 제재에 동의했던 이유다. 한·미·일의 동맹화로 러시아도 북한과 중국과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인식은 있으나 빌미를 제공하고 싶지는 않다. 작년 말부터 푸틴을 비롯해 러시아의 고위층에서 윤석열 정부의 우크라이나 무기(폴란드 우회) 지원 등의 행태를 경고해왔다. 애초에 한국 정부의 행위가 문제지만, 그렇다고 러시아가 당장 보복으로 무기 거래를 결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최소한 이번 만남에서는 아니다. 푸틴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대북 경제협력과 인도적 지원을 언급했던 것을 보면 제재 대상이 아닌 인도적 지원을 시작으로 에너지와 식량 지원으로 한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위험한 거래가 없었다면 과연 다행일까? 그렇지 않다. 준비하지 않으면 훨씬 더 위험한 상황이 도래할 수 있다. 북한과 러시아는 새로운 판을 짜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지난 3년간의 고립에서 벗어나 강대국 외교에 나선 북한과 전쟁 중에서도 정상적인 외교활동을 하고, 향후 튼튼한 협력관계를 통해 영향력을 높이려는 러시아의 만남이었다. 한·미·일 진영화에 대한 직접적 맞대응은 아니지만, 본격적인 관계 정상화의 시작이다. 향후 상황에 따라 양국은 더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로 갈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보스토치니 우주기지는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 외에 어떤 외국 정상에게도 공개하지 않던 러시아 첨단 우주기술이 집합된 곳이다. 극동 함대, 전투기 기지, 그리고 농업 시설도 봤다. 문제는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우리가 상승시켜 주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진영편향 외교는 국제 외교 무대에서 고립을 자초하고, 남북관계는 단절하며, 중·러와의 관계는 악화 중이다. 윤석열 정부가 진영편향으로 돌진할수록 북한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새로운 구도를 만들고, 향후 미·중과의 관계에서도 공간 확보의 계기로 삼을 수 있다. 그럼에도 러시아는 미국과 전략무기 균형을 깰 수 있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이고, 유엔 제재를 명백하게 위반하는 행위는 주저할 것이다. 그리고 적어도 현재까지는 한국과 관계 파탄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아직 기회는 있다. 윤석열 정부가 대러 외교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이유다. 최소시간에 얼마나 많은 정상회담을 하느냐로 기네스북에 등재하겠다는 국격과 국위를 떨어뜨리는 이상한 외교를 할 때가 아니다. 윤 정부의 진영편중 외교가 북·러 및 북·중 결속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음을 제대로 인식하고 신중한 접근법 모색이 절실하지만, 그간 윤 정부의 행보를 미뤄보면 변화 가능성이 난망하다는 점에서 국가의 미래가 너무도 염려스럽다. 한동대 교수·전 국립외교원장김준형 (한동대 교수·전 국립외교원장)
[전채남의 AI Story] 휴머노이드 로봇
작년 말 2023년에 주목할 인공지능(AI)의 하나로 휴머노이드 로봇이 꼽혔다. 휴머노이드 로봇(Humanoid Robot)은 사람과 비슷한 모습과 행동을 할 수 있는 로봇이다. 생김새뿐만 아니라 사람처럼 인식하고 행동을 하는 고난도의 지능형 로봇이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아이, 로봇(I, Robot)이나 엑스 마키나(Ex Machina)와 같은 과학소설(SF) 영화의 좀 과도하게 각색된 AI로 잘 묘사되고 있다.휴머노이드 로봇의 기본적인 움직임과 작동은 로보틱스 공학에서 비롯되어 AI로 완성된다. 카메라, 접촉 센서, 액추에이터, 모터 등 다양한 하드웨어 구성 요소로 몸체가 만들어지고 AI로 로봇 뇌가 만들어진다. 로봇 뇌는 빅데이터 분석 및 AI 알고리즘을 통해 상호작용 관계 파악과 패턴 인식을 바탕으로 적절한 인지와 판단을 하고 반응 동작을 생성한다. 휴머노이드 로봇이 인간처럼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게 한다. 인간을 닮은 로봇을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이 로봇을 거부감과 거리낌 없이 사용하고 상호작용할 수 있으며 또 물리적 세상이 인간 위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집, 쇼핑몰, 사무실, 공장, 학교 등에서 인간을 도와줄 수 있도록 복잡한 활동을 지능화한 로봇을 사용한다면 인간과 비슷한 유형의 상호작용과 동작 방식이 가장 효과적이다. 주변 환경을 조정할 필요 없이 로봇을 다양한 설정에 바로 배치할 수 있다. 실제로 세상은 '인간 맞춤형'으로 설계되어 있다. 문을 여는 것,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 도구를 사용하는 것 등의 일상적인 행동은 모두 인간의 형태와 기능에 맞춰 설계된 환경에서 이루어진다. 일론 머스크(Elon Musk)도 차이나 사이버스페이스의 칼럼에 기고한 글에서 "로봇이 환경에 적응하고 인간이 하는 일을 할 수 있으려면 인간과 크기, 모양, 기능이 거의 같아야 한다"고 하였다. 2016년경의 자율주행자동차와 유사하게 현재 기업들이 시장의 기회와 규모를 인지하면서 다양한 휴머노이드 로봇이 개발되고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테슬라(Tesla)는 2022년 9월 회사의 AI 데이(Day)에서 옵티머스(Optimus)와 그의 프로토타입 모델인 범블(Bumble)-C를 시연하였다. 옵티머스는 테슬라에서 주력으로 선보이는 휴머노이드 로봇이다. 일론 머스크는 옵티머스 로봇이 결국 전체 자동차 비즈니스보다 테슬라에 더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시연 당시의 옵티머스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였지만 지난 5월 공개된 영상에서는 걷고 물건을 집어 상자에 넣는 등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틀라스(Atlas)는 현대차가 인수한 보스턴 다이내믹스(Boston Dynamics)에서 개발한 휴머노이드 로봇이다. 아틀라스는 높이 1.5m, 무게 75㎏으로 점프나 텀블링, 백플립 등 고난도 동작도 한다. 스피어 엔터테인먼트(Sphere Entertainment)에서 공개한 아우라(Aura)는 다음 달부터 라스베이거스의 새로운 랜드마크인 더 스피어(The Sphere)에서 걸어 다니며 손님들과 상호작용할 예정이다. 지난 3월에는 챗GPT의 개발사인 오픈 AI가 노르웨이 로봇 스타트업인 원엑스(1X)에 1천350만달러(약 311억원)를 투자하여 챗GPT와 결합된 휴머노이드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휴머노이드 로봇 기술이 인간의 복잡한 움직임과 감정을 완벽하게 모사하는 것은 아직 도전과제이다. 지속적인 연구와 개발로 도전과제들을 극복한다면, 휴머노이드 로봇은 일상의 다양한 위험과 힘겨운 노동을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되어 우리의 삶의 질을 높이고 풍요로운 세상이 만들어질 것이다. 휴머노이드 로봇이 4차 산업혁명을 현실화할 것이다.〈주〉더아이엠씨 대표전채남 (주) 더아이엠씨 대표
[시시각각(時時刻刻)] 비행기 타는 추석, 문화의 의미를 생각하며
추석, 한가위는 우리나라의 으뜸 전통명절 중의 하나이다. 한가위의 어원을 보면 한 해의 한가운데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신라 유리왕 때 '가배(嘉俳)'라는 말에서 '가위'로 변했는데, 지금도 영남 지방에서는 '가분데'라는 말로 전해지고 있다. 추석 무렵 산소에 벌초하고 차례를 지내던 풍습이 이후 가족들이 모여 송편을 만들어 차례를 지냄으로써 조상의 음덕을 기리고 송편을 함께 먹으며 풍요로움을 누리는 전통문화로 발전하였다. 이를 통해 조상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되새겼으며, 친인척 간의 유대를 다지는 계기를 마련하였다.이제는 명절 풍속이 여행 가는 모습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특히 이번 추석은 길게는 12일까지 길어진 연휴에 여행계획을 세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얼마 전부터 명절 휴가 기간이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로 공항이 북적이고 비행기 표를 미리 예매해 놓아야 하는 여행 성수기가 되었다. 명절의 전통문화 양식이 서서히 바뀌고 있는 것이다.문화는 속성상 항상 변하고 학습되고 축적된다. 전통문화도 시대에 따라 그 모습이 변화하는 것이 아주 당연하다. 하지만 전통문화 속에는 정신적 가치가 존재하며, 이것은 인류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어떤 원숭이가 처음에는 고구마를 보고 털에 문질러 흙을 털어내고 먹다가, 우연히 바닷가에서 고구마를 떨어뜨려 흙은 씻겨나가고 소금이 묻어서 간이 된 고구마를 먹게 되었다. 이때부터 주변 원숭이들이 고구마를 바닷물에 씻어서 먹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인류의 '문화'와는 다른 것이다. 인간의 지식은 축적될 뿐만 아니라, 인류학자 굿이너프(Ward H. Goodenough, 1961)가 주장하는 관념체계라는 것이 그 속에 존재한다. 굿이너프는 한 사회 구성원의 생활양식을 토대로 하는 관념체계 또는 개념체계를 문화로 보고 있다.프랑스 유학 시절 프랑스문화원에 근무하던 한 스페인 직원과 나눴던 대화가 문득 떠오른다. 나는 한국인들은 조상이 누구이며 자신이 몇 대손인지 안다고 했고, 스페인 직원은 어떻게 아냐며 놀라워했다. 내가 한국의 족보에 대해 설명해 주니 자신들은 먼 조상에 대해 알 수 없으며, 왕족만이 그런 기록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스페인 왕가의 계보가 적힌 작은 책을 선물로 주었고, 나는 왠지 모르게 우쭐한 마음이 들었었다. 우리가 가난하던 시절 서구의 선진 문명은 모든 것이 옳아 보였고 선망의 대상이었다. 우리는 서구를 따라 해야만 선진적이라 믿었고 서구의 문화를 흡수하기에 바빴다. 그러나 전통문화에 있어서 우리나라는 서구사회보다 더 선진적이며 수준 높은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고 싶다. 한 번 잃어버린 전통문화에 대한 관념체계는 다시 복구하기도 쉽지 않다.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가 수립된 후 사회주의 문화와 배치되는 전통문화를 부정하기도 했다. 신중국 이후 심지어 중추절은 오랫동안 법정 공휴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경제가 성장하고 전통문화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중국은 2008년부터 중추절, 청명절, 단오절 등을 법정 공휴일로 지정하고 자신들이 오랜 전통문화를 지닌 우수한 민족임을 알리고자 했다.추석을 보내는 방식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고, 비행기 타는 추석도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다. 가을 달빛 좋은 추석을 앞두고, 조상을 기리고 자연의 풍요로움을 함께 누리는 전통관념 역시 우리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K-컬처가 아닐까.권세훈 <주>비즈데이터 이사· 파리1대학 법학박사권세훈 비즈데이터 이사· 파리1대학 법학박사
[단상지대] 윤석열 대통령의 외교 성과와 과제
윤석열 대통령의 외교가 본궤도에 올라섰다. 안보와 경제 이익이 직결된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복원·격상시켰다. 가깝지만 먼 나라였던 일본과 관계 개선의 주춧돌도 놓았다. 신흥 경제국들(인도, 베트남, UAE, 사우디 등)과의 경제 협력도 증진시키고 있다.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등 유럽 국가들과의 관계도 방산, 원전, 전후복구를 위한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성공적인 양자외교(bilateral diplomacy)뿐 아니라 다자외교(multilateral diplomacy)에서도 국격을 높이고 있다. 유엔 기조연설을 비롯한 G-20, 아세안(ASEAN),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등 국제 레짐을 통한 안보, 기후, 디지털, 경제격차, 인권 등 글로벌 이슈 해결에 적극 나서고 있다. 검찰총장 출신인 윤석열 대통령이 애초 기대와 달리 외교 성과를 내는 근저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는 듯하다. 첫째 확고한 자유민주주의 철학이 '가치외교'로 연결되어 동맹 및 관계 정립에 기여하고 있다. 둘째 강한 애국심이 영업사원1호로서 '실용외교'에서 발휘되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대범하고 솔직 담백한 개인적 스타일이 정상들 간의 '신뢰 외교'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국민들도 체감하고 있다. 지난주 한국갤럽의 대통령 직무 긍정 평가자들이 가장 잘하는 것(31%)으로 '외교'를 손꼽았다. 또한 전국지표조사에서도 주요 정책 과제 평가 중 대북정책(42%), 외교정책(41%)을 가장 잘하고 있다고 평가했다.(중앙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고) 지난 1년 반 동안 '글로벌중추국가'라는 외교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숨 가쁘게 달려왔다. 이제는 차분하게 대전략과 실행 전술을 재정비할 시점이다. 첫째, 실질적인 결실로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 뿌린 씨앗을 잘 관리해서 열매를 맺어야 한다. 예를 들어 지난 1월 UAE와 체결한 48개 양해각서(MOU), 지난해 11월 사우디와 맺은 경제협력 약속도 실행되어야 한다. 아쉬움을 남긴 미국과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반도체법에서 우리 기업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세심한 심사숙고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민관협력 체계도 더 강화해야 한다.둘째,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를 정상화할 필요가 있다. 굳건한 미국과 일본 관계를 레버리지로 활용해야 한다. 한·일·중 3국 회담의 의장국으로서 코로나로 중단되었던 정상회담을 성사시켜,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 중국은 제1의 무역국이자 북한 문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다. 최근 우려하고 있는 남방3각관계(한미일)와 북방3각관계(북중러)의 냉전적 대결 프레임은 바람직하지 않다. 외교는 늘 협상의 여지를 가져야 하며, 중견국에 걸맞은 외교적 자율성(diplomatic autonomy)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대북 외교·통일 전략의 심모원려가 필요하다. 핵무기를 가진 북한은 한반도와 동북아 안보의 근원적인 문제이다. 북한이 첨단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까지 개발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될 수 있다. 압박·제재·봉쇄만으로 북핵을 해결하기에는 한계에 이르렀다. 북한 핵무기의 목적은 체제 유지를 위한 방어가 아니라 한반도 공산화에 있다는 점을 간파한다면, 현상유지(status quo)를 넘어 새로운 전략적 대안이 필요하다.21세기 복합위기에 직면한 대한민국의 흥망성쇠는 결국 외교에 달려있다. 북한과 군사적 대치 상황에서의 군사안보, 국민 행복을 위한 경제안보, 국격 증진을 위한 소프트 파워 등 국운융성을 위한 윤석열 대통령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 보이는 이유이다. 서성교 (건국대 특임교수·전 청와대 행정관)서성교 (건국대 특임교수·전 청와대 행정관)
[여의도 메일] 21대 마지막 정기국회, 민생 국회 실천할 마지막 기회
지난해 말 전국 교수들이 뽑은 올해 사자성어로 '과이불개(過而不改)'를 선택했다. 과이불개란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를 추천한 교수는 '현재 여야 정치권의 행태는 민생이 없고 당리당략에 빠져서 나라의 미래 발전보다 정쟁만 앞세운다'라고 밝혔다. 지금 국회의 모습을 보더라도 '과이불개'는 여전해 보인다. 며칠 전 국회는 하루 만에 '헌정사 최초'라는 타이틀이 세 가지나 나왔다. 헌정사 최초의 '제1야당 대표의 체포동의안 가결'과 '검사 탄핵 소추안 가결' '총리 해임건의안 가결'이 이뤄졌다. 해당 안건들에 대해 저마다 찬반이 있을 수 있지만, 당리당략에 따른 결과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야당에서는 총리 해임 건의안이 잘못된 국정운영을 바로 잡기 위해 올린 것이라 밝혔다. 하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당 대표의 체포동의안 처리에 따른 맞불 대응으로 보고 있다. '헌정사 최초'를 떠나 뼈아픈 점은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서 민생 논의가 실종됐다는 점이다. 지난 대선에서 정권이 바뀐 이후 국회는 거대 야당의 입법 독주가 자행돼왔다. 지난 1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국회를 연 것도 '방탄 국회'를 만들기 위한 꼼수라는 비판이 이어져 왔다.거대 야당은 '방탄 국회' 비난을 비켜 가고자 '입법 폭주 기관차'를 자임했다. 양곡법, 간호법, 노란봉투법, 방송법 등 자신들이 집권할 때도 추진하지 않았던 법들을 과반이 넘는 의석으로 밀어붙였다. 지금 야당이 당론으로 추진하는 특검만 3개, 국정조사가 4개에 달한다. 다 민생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다. 후쿠시마 오염 처리수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에도 제1야당은 '핵 폐수' 괴담을 퍼뜨리며 장외집회를 연일 열고 '대통령 탄핵'을 외쳤다. 무책임한 괴담 선동정치에 '다 죽는다'는 어민들의 피 끓는 호소에도 들은 체 만 체였다. '세슘 우럭' '세슘 멍게'라 외치던 당 대표는 오염수 규탄 집회를 앞두고 횟집에서 단체 회식을 하고 "참 맛있게 잘 먹었다"는 글과 서명까지 해주고 나왔다. 민생은 안중에도 없는 정치권의 이중적 행태가 반복되면서 국민들의 정치 불신은 더욱 깊어만 가고 있다. 그런 와중에 우리나라는 갈수록 멍들어 가고 있다. 고금리, 고물가에 서민과 중소기업의 허리는 휘다 못해 꺾일 지경이다. 곳곳에서 벌어지는 흉기 난동에 국민들은 공포에 떨고 있고, 교사들은 민원 폭탄과 갑질에 목숨을 끊고 있다. 풀어야 할 숙제는 산적한데 이를 해결해야 할 정치는 실종됐다. 대화와 타협은 온데간데없고 서로를 물고 뜯는 데만 혈안이다.한 달 전 정기국회 개회를 앞두고 당 대책 회의에 참석했다. 그 자리에서 총선을 목전에 두고 야당의 거센 정략적 공격이 예상되지만 우리 당은 책임여당의 자세로 '경제정당' '민생정당'의 역할에 집중해야 된다고 강조했다. 여기저기서 먹고살기 힘들다고 아우성치는데 국회가 이를 외면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 당이 경제를 최우선으로 내세운 것은 시의적절하다. 저물어가는 21대 국회의 민낯을 되돌아보면 국민들께 송구함과 아쉬움을 크게 느낀다. 중소기업인 출신 국회의원으로 민생 경제를 되살리는 데 온몸을 바치겠다는 일념으로 시작했지만 나 또한 당리당략에 치우친 삶을 살아온 것은 아닌지 깊이 반성해본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을 되새기며 남은 임기 민생을 위한 의정활동에 집중할 것을 다짐한다. 며칠 전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윤재옥 원내대표께서 "사회갈등 해소와 국민 통합이라는 정치 본연의 임무를 국회가 제대로 하고 있느냐"며 "이번 21대 마지막 정기국회에는 단 한 건의 민생법안이라도 더 통과시키자"는 호소가 여전히 뇌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한무경 국회의원 (국민의힘)한무경 국회의원 (국민의힘)
[성현 생각] 성급하게 앞에 지르기로 발생하는 소통사고
도로를 달리다 보면 느닷없이 옆 차선에서 끼어 들어온 차로 인해 놀랄 때가 있다. 보다 빨리 가고 싶은 욕심에 옆 차의 진행 상황은 고려하지 않은 채 무리하게 앞지르기를 시도하다가 큰 사고를 일으키기도 한다. 누군가와 소통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상대의 입장이나 상황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앞에 있는 사람에게 고함지르거나 윽박지르는 사람들이 있다. 성급한 마음으로 상대 앞에서 지르기는 결국 소통사고를 일으키며 큰 상처를 남기기 마련이다. 앞지르기는 위험이 뒤따르기에 늘 신중해야 한다. 도성현〈blog.naver.com/superdos〉
[박재열의 외신 톺아보기] 여성 공학박사들의 대선
멕시코 이야기다. 내년 6월에 치러질 대통령선거의 유력 여야 후보가 다 여성 공학박사다. 여당의 클라우디아 셰인바움(61) 전 멕시코시티 시장은 에너지공학 박사고, 야당의 소치틀 갈베스(60) 상원의원은 컴퓨터공학 박사다. 여론 조사에선 여당 후보가 훨씬 앞선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멕시코는 최초의 여성 공학박사 대통령을 맞게 된다.셰인바움은 유대인 생물학자 어머니와 화공학자 아버지 사이에 태어났다. 멕시코국립자율대학에서 에너지공학 및 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고 그 대학의 공학연구소 교수로 재직하면서 100편 이상의 논문과 두 권의 책을 저술했다. 에너지, 환경, 환경을 지키는 개발 등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 대학의 공학기술혁신 분야 최우수 청년연구자상을 수상하였고, 또 유엔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에 '기후변화의 완화'라는 공동연구 논문을 기고했는데 이 단체는 2007년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다.셰인바움의 정치적 스승은 현 대통령 로페스 오브라도르이다. 그가 멕시코시티 시장이었을 때 수석 환경담당관으로 발탁되어 그와 첫 인연을 맺었다. 그 뒤 틀랄판구의 구청장을 거쳐 2018년엔 자신이 멕시코시티의 시장이 되었다. 시정의 축을 대중교통, 대기오염, 식목, 쓰레기재활용, 도시철도 문제 해결에 두었다. 2021년에는 코로나를 과학적으로 잘 대처하여 시장재단이 수여하는 '세계시장상'을 수상하였다. 그러나 오브라도르 대통령에게는 약했다. 코로나 문제에 미련한 대통령과 그 관리들에게 그녀는 질타의 소리를 내지 않았다. 멕시코 대선후보 지명에는 아직 으슥한 데가 있는 만큼 큰손 뒷배의 심기를 어지럽힐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경북대 명예교수·시인박재열 (경북대 명예교수·시인)
[아침을 열며] 윤 대통령의 글로벌 격차 해소 비전, 그 가치와 실현의 길
윤 대통령은 지난 20일 제78차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했다. 기조연설은 북러 군사협력에 대한 경고, 글로벌 격차 해소를 위한 한국의 지원 의지, 2030 세계박람회 부산 유치 지지 호소 등을 핵심 내용으로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여기서 선진국과 후진국 사이에 심화되고 있는 개발격차, 기후 격차, 디지털 격차 등 3대 글로벌 격차 문제를 지적하고, 격차 해소를 위한 한국의 적극적 의지와 방향을 표명하였다. 글로벌 격차 해소는 인류공영을 위한 시대적 소명이고, 한국은 이 시대적 소명에 선도적으로 나서겠다는 것이다.윤 대통령의 3대 글로벌 격차 해소 비전은 다음 세 가지 측면에서 반드시 성공적으로 추진되어야 하고, 성공할 수 있다고 본다. 첫째 한국은 현재 갖고 있는 역량과 경험을 최대한 활용하면, 세계 어느 나라보다 3대 글로벌 격차 해소를 가장 실효성 있게 지원할 수 있는 선도국가가 될 수 있다. 둘째 글로벌 격차 해소를 위한 한국의 지원전략은 한국의 성장 동력과 경제영토 확장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셋째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글로벌 격차 해소를 위한 선도 국가로 자리매김하면서 인류공영에 기여하는 품격 높은 선진 국가로서 국제사회에서 그 위상이 크게 높아질 것이다. 먼저 개발격차 문제를 보자, 세계은행에 의하면, 2021년 현재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절대빈곤 인구가 7억1천100만명이고, 특히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빈곤 문제는 심각하다. 한국은 70년의 짧은 역사로 세계 최빈국에서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유일한 국가이다. 우리는 성공적인 산업화 전략과 새마을 운동 등으로 빈곤의 늪에서 탈피하여 '자립경제의 길'을 개척해 왔다. 빈곤의 늪에 빠져 있는 국가는 원조자금만으로는 그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을 많은 역사적 사례가 보여주고 있다. 고기를 잡아주는 것보다, 고기를 잡는 방법을 익히게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현금과 물자 중심의 원조 시스템인 '공적개발원조(ODA)' 방식으로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개도국 스스로 자립기반을 구축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자기개발원조(SDA)'가 필요하다. 나는 2011년에 '자기개발원조(SDA)'라는 새로운 개도국 지원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이에 기초하여 한국의 성공적인 산업화 경험과 새마을 운동을 체계적으로 학습하여 현지화할 수 있는 개도국 지도자 양성을 목적으로 영남대학교에 '박정희 스쿨'을 설립한 바 있다. '자립경제의 길'을 열 수 있는 지도자들을 양성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실효성 있는 개도국 지원 방식이고, 이것은 세계에서 한국이 가장 잘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많은 개도국에서 친한파가 양성될 것이다. 이것은 장기적으로 한국에 대한 외교적 지지, 시장 개척, 풍부한 천연자원 확보로 이어지면서 국익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최근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상이변으로 매년 세계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불안해하고 있다. 탄소 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재생에너지 개발은 물론 원전, 수소와 같은 고효율 무탄소 에너지(CFE)를 폭넓게 활용해야 하는데, 이 또한 한국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다. 국제 간 디지털 격차 해소를 위한 인프라 구축에서도 한국은 경쟁우위를 갖고 있다. 우리나라는 정보통신기술 최강국으로 개도국의 정보통신 인프라 구축과 교육, 금융, 보건 의료, 시장 등 폭넓은 분야에서의 디지털 전환을 성공적으로 지원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 기술의 세계적 확산을 의미하고, 우리는 이를 통하여 인류공영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자연스럽게 우리의 경제영토를 확장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이효수 전 영남대 총장이효수 전 영남대 총장
[광장에서] ESG, 규제가 아닌 맞춤형 지원해야
ESG(환경·사회·지배구조)의 열기가 여전하다. ESG가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글로벌 투자사에 의해 투자 키워드로 언급되었던 2020년경부터이다. 기업의 투자에 있어서 ESG를 우선순위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제는 기업 경영에 있어서도 재무적 요소와 함께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지향해야 할 가치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일각에서는 안티 ESG, 그린래시(greenlash) 등 반대의 움직임도 있는 듯하다. ESG 관련 규제가 경제성장을 가로막고 있고, 기후 위기보다는 경제를 우선시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기후 위기에 대한 우려가 점차 커지고 있는 반면, ESG 관련 글로벌 규제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관련하여 유럽연합(EU),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 등 국제사회의 ESG 정보 공시 기준이 가시화되고 있고, 우리나라도 2025년부터 ESG 공시를 단계적으로 의무화할 예정이다. 또한 최근 ESG 공급망과 관련하여 국내·외적으로 입법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한편 2019년 12월 EU에서 그린딜(Green Deal)을 발표하고, 2021년 1월 미국이 '파리협정'에 재가입하면서 국제사회의 탄소중립 이행이 가속화되었다. 관련하여 EU를 중심으로 탄소국경조정제도, 에코디자인규정, 지속 가능한 배터리규정 등 환경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2050 탄소중립의 달성은 여전히 어려운 과제이다. 2022년 2월 독일 신기후연구소 발표에 의하면, 탄소중립을 선언한 애플, 구글 등 글로벌 기업조차도 그 이행을 위한 노력은 미흡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자동차, 철강, 반도체 등 제조업은 필연적으로 탄소배출과 에너지 사용이 많은데, 제조업 중심의 국내 기업들은 탄소중립의 달성에 현실적인 제약이 많을 수밖에 없다. 탄소중립을 위한 효과적인 방안으로 신재생에너지를 꼽을 수 있는데, 2022년 12월 기준 RE100을 선언한 기업 가운데 제조업의 비중은 약 20% 정도 수준으로 높지 않다. 국내의 경우 신재생에너지 관련 정책의 변동성, 인프라 부족 등으로 인해 기업의 RE100 달성 또한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지속 가능한 ESG의 실행을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 기업의 ESG경영 확산과 투자 활성화를 위해서 기업의 업종, 규모, 지역 등을 고려한 구체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예컨대, 대기업의 경우 탄소중립을 위한 신재생에너지 관련 인프라 구축 등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 실제적인 RE100의 달성을 위해서는 발전뿐만 아니라 송배전을 위한 인프라가 필수적인데, 이를 기업의 자체적인 예산으로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울러 중소·중견기업의 경우 세부적인 정책적 지원이 필요한데, 2021년 7월 '中企 ESG 경영 대응 동향조사 결과와 정책적 시사점'에 따르면 ESG 경영 도입 시 가장 큰 어려움으로 비용부담과 인력 부족이 언급되기도 했다. 따라서 중소·중견기업에 대하여는 ESG 진단 및 컨설팅 지원, 관련 역량강화 교육, 조달·금융상 혜택 등 직접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ESG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규제가 아닌 기업 맞춤형 지원을 통해 민간 중심의 생태계 조성과 기업의 자발적인 실천을 유도해야 한다. 김도형 (법무법인 화우 환경규제대응센터장)김도형 (법무법인 화우 환경규제대응센터장)
[경제와 세상] '메디시티 대구' 지금 필요한 것은 기업가정신
오랜 기간 한국 산업의 기술력 강화에 노력해온 많은 전문가들은 우수한 자연계 인재들이 의과대학 한군데로 몰려가는 요즘 세태를 매우 우려하고 있다. 이정동 서울대 교수 같은 기술 정책가들은 '말기적 증상'이라는 표현까지 쓰고 있다. 지난 4년간 전 세계를 몰아친 팬데믹과 미·중 기술패권 전쟁 속에서 제조업 기반이 강한 국가일수록 위기 이후 경제회복의 속도가 빨랐다. 한국도 비교적 선방했지만 현재 혁신역량의 정체와 투자 성향의 보수화, 이어지는 제조업 기반의 균열로 미래성장 잠재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지금 우리가 가진 제조업 경쟁력은 1970년대 우수한 인재들이 전자, 화공, 기계 공학을 배우고 산업 현장에서 분투노력을 한 결과임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라이선스 직업만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지금의 직업선택 구조는 한국 사회의 미래를 어둡게 만든다.'잃어버린 30년'이라는 장기 저성장의 시련을 겪은 일본을 닮아가는 'Japanification(일본화)'을 우려하는 기업인과 학자들이 지난 18일 '산업 대전환'을 선언하고, 디지털 헬스케어, 유전자 치료제 등 첨단 신산업 육성과 신산업 인력 부족 해소를 위해 '우수 인재 레드카펫' 등 정부의 선제적인 제도 개선과 규제 혁파를 주문했다. 아주 시의적절하고 곪은 환부를 정확히 찌르는 처방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축적된 우수한 의료 인력을 단순한 임상 의사에서 신산업 선도자로 탈바꿈시키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우리나라는 IT와 바이오, 의료 분야에서 이미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지만, 정작 의학과 공학의 연결 고리가 약해 반도체보다 3배 이상 큰 바이오 시장을 놓치고 있다는 반성이 나온다. 국내 바이오헬스 산업은 1조7천600억달러 규모의 세계 시장에서 몇 년째 점유율 2%의 덫에 갇혀 있다. 거기다 세계 의료기기 시장에서 우리 시장점유율이 단 2%(2003~2021)에 불과한 것은 제품 기획부터 인허가, 특히 임상시험 단계의 애로가 원인으로 꼽힌다. 우리나라가 남부럽지 않은 의료 인프라를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사가 개발에 참여하고 있는 의료기기 기업은 10% 수준에 그친다. 이에 대해 의사 출신 벤처기업인들은 우리 사회에는 의사-기업가 생태계가 형성돼 있지 않다는 점을 주원인으로 지적한다. 의사가 연구 성과를 내면 환자 진료를 하는 것보다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아직 부족하다는 것이다. 최근 바이오헬스 산업이 차세대 국가 주력 산업으로 성장엔진이 가동되면서 창업에 나서는 의사들이 늘어나는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고려대와 연세대 의료원은 의사들의 도전 DNA를 끌어내고 임상 의사들이 취약할 수밖에 없는 정보와 인적 네트워크를 보완하기 위해 '의사창업연구회'를 조직하여 지원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주>웰트는 복부 비만, 당뇨 등 만성질환자의 생활습관을 개선하는 '스마트벨트'를 개발하여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에게 선물하고 이후 명품 브랜드인 S.T.듀폰과 협업하면서 명성을 얻었다. 의사를 상대로 하는 진료 상담 앱을 개발한 <주>아이쿱은 GC녹십자와 손잡고 최근 총 133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대구는 종합병원 17개, 일반병원 90개, 의원 1천877개, 치과병·의원 919개라는 인구 대비 전국 최상위 의료 인프라를 갖춘 그야말로 '메디시티 대구'다. 지금 대구시가 역점을 두고 추진하고 있는 ABB산업(AI·빅데이터·블록체인)과 기가 막힌 조합을 이룰 수 있는 바이오헬스 분야는 이제 '전략의 창'이 열린 셈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도전정신, 나아가 기업가정신이다.권업 객원논설위원권업 객원논설위원
[윤성은의 천일영화] '인랑'은 잊읍시다. '거미집'으로
때는 1970년대. 데뷔작을 제외하고는 뻔한 치정극이나 찍는다고 평론가들 사이에서 무시당하던 김 감독(송강호)은 얼마 전 촬영을 끝낸 영화도 어쩐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는 결말만 바꾸면 걸작이 될 거라는 망상 속에 제작자 백 회장(장영남)을 찾아가지만, 백 회장은 제작사 후계자인 신미도(전여빈)를 설득하고, 시나리오가 사전심의에 통과해야만 추가 촬영을 허락하겠다고 한다. 의외로 신미도는 바뀐 시나리오를 전적으로 지지하며 김 감독을 도와주려 하는 반면, 시나리오는 심의를 통과하지 못한다. 그러나 백 회장이 출장을 떠난 이틀 동안 김 감독은 스튜디오를 걸어 잠그고 결말을 바꿀 촬영을 감행한다. 스케줄이 꼬인 배우의 짜증, 배우들 사이의 스캔들, 갖가지 불화 등 촬영장은 어수선하기만 한데, 백 회장이 돌아오고 문공부 사람들까지 들이닥치면서 바뀐 결말을 완성하기란 점점 더 어려워 보인다. 추석을 앞두고 한국영화들이 대거 출사표를 던졌다. '거미집'(감독 김지운)은 평자들에게 가장 만족스러운 작품이지만, 흥행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대중들에게 친숙한 하나의 장르로 규정하기 어렵다는 것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검열을 피해 예술혼을 불태우려는 감독의 욕망, 그로 인해 벌어지는 우스운 상황극이 '가벼운 블랙 코미디' 정도로 명명될 수는 있겠지만, 이 영화의 성격과 매력을 담기에는 한참 모자라다. 차라리 비장르영화라고 해버리는 것도 방법이다. 익숙한 서사 구조와 신들, 결말을 가진 장르 영화들과 달리 아수라장이 된 영화촬영장, 혹은 영화, 혹은 감독의 최후를 예측하기 어렵기에 더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는 작품이니까. 사실, 영화감독이 영화를 만들어나가는 소위 '자기반영적' 영화들은 대개 작가주의 영화의 계보에 있었다. 프랑수아 트뤼포의 '아메리카의 밤'이나 페데리코 펠리니의 '8과 1/2'과 같은 영화들이 대표적이다. 이런 영화를 찍을 때, 감독들은 실제로 자신이 영화를 만들면서 겪는 일들과 느끼는 감정들을 재료로 삼고, 자신만의 스타일로 담아낸다. '거미집'은 신연식 감독의 각본을 김지운 감독이 각색한 것으로, 60~70년대 실존했던 감독들과 영화도 떠올리게 하는 한편, 영화를 만든다는 지난한 작업과 명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그의 관점도 엿보게 해준다. 김지운 감독은 '조용한 가족'으로 데뷔한 후, '장화, 홍련' '달콤한 인생'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밀정' 등 대부분의 작품이 성공을 거두었지만 가장 최근에 선보인 '인랑'이 혹평을 받으면서 명성에 타격을 입었다. 이 경험은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을 객관화하는 데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김 감독을 카리스마 넘치는 거장이 아니라 지질함을 겸비한 인물로 희화화시킨 장면들에서 그의 심중을 잘 읽을 수 있다. 가령, '거미집'에는 평론가들이 등장하는데, 김 감독은 그들의 비아냥에 속으로 '평론은 감독이 못된 자들이 열등감을 표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신작도 그들에게 무시당할까 두려워하며 억지로 재촬영을 시도하고 있으니, 감독 자신을 모순적인 인물로 형상화한 것이다. '거미집'은 김지운 감독 영화의 제목이자 김 감독 영화의 제목이다. 어떤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거미와 거미집이 은유하는 원관념이 달라진다는 점이 흥미롭다. 한층 유연하고 성숙해진 김지운 감독의 신작이 다시 관객을 즐겁게 해주리라 믿는다.윤성은 영화평론가윤성은 영화평론가
[더 나은 세상] '함께' 글을 쓴다는 것(2)
지난 3월16일자 칼럼에 '함께 글을 쓴다는 것'이라는 제목의 글이 나온 바 있다. 그 칼럼에서 나는 옛 동료 변호사(편의상 'A'라고 한다)가 책을 낸 이야기를 전하면서 우리가 같은 사무실에서 일할 때 '글터디'라는 이름으로 함께 글을 썼던 시절을 추억했다. 같은 제목의 후속편인 이 글은 우리 사무실 글터디의 또 다른 멤버 변호사(편의상 'B'라고 한다)가 모두가 부러워하는 더 좋은 일자리를 잡아 우리 사무실을 곧 떠나게 된 일을 계기로 함께 글 쓰는 것의 좋은 점을 다시 한번 더 강조하려고 쓴다. 5년 전 나와 A가 처음 글터디를 시작했고, 그 이듬해 B가 합류했다. 우리 셋은 모두 같은 사무실에서 비슷한 일을 하는 변호사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각자 성장해 온 사회적·문화적·시대적 환경이 매우 달랐다. 지방에서 태어나 지방에서 대학교를 나오고 그 지방에서 15년 직장생활을 하다 로스쿨이 개원하던 해 운 좋게 로스쿨에 입학해 40대에 변호사가 된 나와는 대조적으로 서울내기인 B는 서울 강남의 어느 여고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국내 최고의 명문대 법대를 졸업한 후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전형적인 엘리트 법조인 코스를 밟아온 20대 젊은 변호사였다. B는 나와 변호사 기수로는 6년 차이지만 나이로는 열여섯 살 아래였다. 나이로는 나와 B 중간에 있는 A는 시골 산골에서 할머니 손에 자라며 공부와는 담을 쌓은 학창 시절을 보냈는데, 지방 사립대 법대에서 뒤늦게 공부에 소질이 있음을 깨닫고 사법시험을 통과했다. 함께 글을 쓰는 모임의 가장 좋았던 점 중의 하나는 이렇게 서로 자라온 환경이 다르고 변호사가 되기까지 경험한 세계가 매우 다름에도 불구하고, 더불어 이모-조카뻘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친구로 만들어 주었다는 것이다. '지인' 말고 친구, 그러니까 기쁜 일은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어려울 때 고민을 이야기하고 서로 위로해주고 조언해 줄 수 있는 그런 친구 말이다. 서로의 글을 읽고 그 글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글터디는 단순히 글만 같이 쓰는 모임이 아니었다. 동료가 쓴 글을 읽다가 내 속에 깊이 잠들어있던 어떤 상처가 깨워지기도 했고, 생각지도 못한 시각으로 지난 일을 다시 보게도 되었다. 글터디 중의 그런 수다가 일상의 삶에도 영향을 주었기에 우린 글을 통해 친구가 될 수 있었다. 뜬금없이 들리겠지만, 나는 가끔 우리 변호사 사무실을 배경으로 드라마 시나리오를 쓰는 상상을 해 본다. 주인공은 나와 A, B, 세 사람이다. 변호사가 된 과정도, 살아온 문화적 배경도, 경험한 시대적 배경도 다른 세 사람의 일과 글터디가 드라마의 소재다. 드라마에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겪는 온갖 종류의 '세상에 이런 일이'식의 형사사건이 에피소드별로 등장하지만, 드라마를 관통하는 큰 줄거리는 우정이다. 50대, 40대, 30대로 각자 나이가 다른 여성들이 일하면서, 글을 쓰면서 일과 글을 공유함으로써 쌓아가는 우정 말이다. 내 생각엔 정말 재밌는 드라마가 될 것 같은데, 내게 공감하는 드라마 제작자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B가 떠나면 우리 사무실 글터디 초창기 멤버 중에는 나만 남는다. 하지만 우리 사무실 글터디는 여전히 건재하고 있다. 누군가 떠나면 또 새로운 멤버가 글터디에 들어온다. 그건 아마도 지난 5년간 직장 동료를 넘어 서로 흉금을 터놓는 친구가 되는 글터디의 위력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정혜진 변호사정혜진 변호사
[돌직구 핵직구] 문재인은 성역인가
문재인 청와대의 불법 비리 의혹이 속속 드러나고 있지만, 정작 문재인 전 대통령은 아직도 성역시되는 듯하다.엊그제 감사원이 발표한 통계조작의혹 사건만 해도 그렇다. 최소 94건의 통계조작으로 김상조 등 청와대 전직 정책실장 4명과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 등 22명이 검찰 수사에 넘겨졌지만, 문재인은 빠졌다.용산대통령실의 표현에 따르면, 이번 사건은 '주식회사 문재인 정권의 회계조작사건'이다. 대통령실은 "기업으로 치면 분식회계를 한 것과 다르지 않다"고 했다.실제로 기업 같았으면 당연히 대표가 지시한 것으로 밝혀지거나, 설사 대표가 몰랐더라도 민·형사 책임을 지는 것이 통례이다. 감사원 조사에서 문재인의 참모들은 당연히 문(文)은 몰랐다고 주장했겠지만, 결국 이런 사건은 검찰의 고강도 수사를 통해 진실이 드러나는 법이다. 그러나 감사원은 무능했는지 아니면 봐주기 조사를 했는지 문재인은 수사요청 대상에서 제외됐다경제를 망친 전직 대통령으로서 일말의 반성도 없는지 문재인은 오히려 반박자료를 내놓았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문재인 정부 고용노동정책평가'라는 자료였다. 그 내용은 문재인의 임기 동안 고용률이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는 등 '문찬양'으로 일관하고 있다.하지만 이 연구원은 주로 노동계의 주문을 받아 연구용역을 하는 곳이다. 노동계에서도 민주노총에 더 가깝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게다가 이 연구소의 이사장은 문재인이 2020년 대통령 자문기구인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임명했던 사람이다. 전혀 신뢰성을 갖추지 못한 청부 보고서의 냄새가 짙다. 재임 기간 내내 뻔뻔했던 문재인이 퇴임 후에도 철면피처럼 국민들 염장만 지르고 있다.문재인의 범죄적 의혹은 한두 개가 아니다. 문 정권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은 문(文)과 친분이 두터운 송철호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청와대가 조직적으로 개입한 혐의가 핵심이다. 검찰 스스로 '청와대의 광범위한 공모' 사건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정작 몸통으로 의심되는 문재인은 법정 어디에도 찾아볼 수가 없다.탈원전 정책을 주도하다 직권남용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수현 전 정책실장은 2017년 청와대 회의에서 "탈원전 정책 추진이 좌절될 시 대통령의 리더십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영화 보고 탈원전을 주창한 사람은 문재인인데, 정작 참모만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참 비겁한 전직 대통령이다.문재인은 서해공무원 피살사건, 동해 귀순어민 강제 송환사건에서도 면책되었다. 문재인 사위의 항공사 취업특혜 사건에도 문재인은 빠져 있다.곽상도 전 의원은 그동안 "이상직 전 의원의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이사장 임명과 문재인 사위의 항공사 취업간 대가 관계가 있는지 수사해야 한다"고 촉구해 왔다. 일종의 매관매직 의혹이라는 것이다.하지만 숱한 의혹의 중심에 서 있는 문재인은 마치 자신이 상왕(上王)이나 된 듯, 현 정부를 꾸짖기까지 한다. 새만금 잼버리 대회 이후 올린 페이스북이 대표적이다.전직 대통령들이 줄줄이 감옥에 가는 비극이 끝나길 바라지만, 의혹투성이의 오만한 문재인을 지켜봐야 하는 국민들의 인내심에도 한계는 있는 법이다.강효상 경인방송 대표강효상 경인방송 대표
[정재형의 정변잡설] 해방이 재앙인 사람들
해방 직후, 의열단 대장 약산 김원봉이 악질 형사 노덕술에게 뺨을 맞는 수모를 겪었다는 아이러니한 삽화를 오래전 일로만 치부할 수 없는 까닭은 요즘 낙양지가를 올리는 홍범도 때문이다. 육군사관학교에 있는 장군의 흉상을 철거한다는 정부의 행태 때문에 역사학계는 물론 여론이 들끓고 있다. 이런 일을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사람이 맥락 없이 내지르는 넋두리로만 볼 수 없는 것은 징용공에 대한 배상책임을 아무런 관련 없는 우리 기업의 돈으로 대신하고 핵오염수의 방류를 수수방관 또는 옹호하면서 간도특설대로서 독립군을 사살했음을 자인한 백선엽의 동상을 세우고 그 묘비명에서 친일경력을 지운다든지, 또 헌법에 명기된 '불의에 항거한 4·19'로 국민의 심판을 받은 이승만 기념관을 짓겠다는 등의 일련의 도발과 궤를 같이하기 때문이다. 수수방관하면, 복거일의 소설(비명을 찾아서)처럼 1910년 식민지가 된 조선이 아직도 일본의 통치를 받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도 나오겠다고 걱정해야 할 지경이다. 일전 강연회에서 대구대 나인호 교수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독립운동을 비하하면서 "우리가 독립을 쟁취한 것이 아니라 미국이 일본을 패전시켰기 때문에 해방된 것 아니냐?"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 종종 있는데, 그들에게 "독립운동가와 민중들의 독립의지가 없었더라면 우리나라는 패전국 일본의 일부로서 항복했을 뿐, 강대국들이 조선의 독립을 이행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대꾸하신단다. "그때 해방되지 않고 일본의 일부가 되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속내를 가진 사람들이 더 이상 속셈을 숨기지 않고 할 말 다 하는 세상이 되었으니 민주주의란 참 편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일제강점기 36년간 친일하고 매국한 부류들을 해방된 후에도 단죄하지 못하고 어물어물했던 과거가 몇십 년의 잠복기를 거쳐 나타난 대상포진처럼 우리 사회를 힘들게 하고 있다. 참회하기는커녕 두고 보자고 벼르던 놈들이 여전히 주류로서 가진 권력과 돈줄을 이용해 우리 할배가 뭘 잘못했냐고 으름장을 놓는 형국이 지금이다. 이놈들이 건국절 운운하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선열의 무장투쟁을 마치 비적들의 약탈행위인 것처럼 폄훼하려는 것은 자신들의 원죄를 벗기 위한 몸부림임을 듣지 않아도 알겠다. 돈과 권력은 쥐고 있지만 남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애비와 할애비의 매국행위에 대한 면죄부를 위해서 그놈들과 싸운 독립열사들을 하나씩 둘씩 지워가려는 것인데 참으로 가증스럽다. 지금 너희들이 가진 것이 친일의 대가가 아니라 조상이 애써 번 것이고 친일인명사전에 기재된 조상의 패악이 가치중립적인 것이라고 믿고 싶겠지만, 여름 끝에는 서리가 내린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정재형 변호사※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정재형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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