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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석의 발견과 되새김] 야생을 지키는 일들
-일각고래수심 1천800m 빛 없는 곳에서 유영한다. 소리만으로 상황과 사물을 판단한다. 박쥐같이 초음파를 쓴다. 인간들이 접근 않는 숨겨진 곳에서 생존하는 신비한 동물. 일각고래. 수컷에 나선 모양의 엄니(상아)가 앞으로 돌출해 그런 이름이 붙었다. 바다의 유니콘(일각수)이라 불린다. 북극해에 7만~8만마리가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일각고래가 위험에 처해지고 있다는 보도가 최근 떴다. 그래, 역시 인간들 때문이다. 덴마크의 코펜하겐대와 그린란드천연자원연구소 연구팀은 "일각고래가 20~30㎞ 떨어져도 선박과 물리 탐사용 탄성파 발신기(에어건)의 소음에 영향을 받고 있으며, 이로 인해 활동에 방해를 받고, 스트레스를 느낀다"고 했다. 이를 밝힌 논문은 영국 왕립학회가 발간하는 '바이올로지 레터스' 최근호에 실렸다.그동안 두꺼운 얼음으로 덮여 숨겨졌던 북극해가 기후변화로 얼음이 녹으면서 문제가 생겼다. 인간들이 기웃거리며 활동이 잦아져 그 소음이 북극해의 잠을 깨운 것이다. 지질조사니, 탐사니, 해저 광물 채취를 위한 발파, 거기다 항구를 개발하면서 배들이 들락거리는 것이다. 그 영향은 즉각 고래들을 비롯한 북극해 생물들에게 끼친다. 고래들의 귀는 밝다. 인간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다. 멀리서 나는 미세한 선박 소음도 반응하며, 다른 소리와 구별한다. 그러므로 인간들의 접근이 늘면 고래들의 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생리적인 변화는 물론, 건강에 악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얼음으로 덮인 북극의 바다. 그 기후적 악조건으로 인해 그동안 인간은 접근에 어려움을 느꼈다. 그래서 지금까지 신비의 영역으로 보존되어왔다. 그러다가 인간에 의한 기후 변화가 이런 구도를 망가뜨린 것이다. 신비의 영역이 호기심 많은 인간들에 들키면서 그 속 생물들의 터전이 간섭받기 시작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일각고래들이 가졌던 신비한 바다가 사라져버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새삼 일본 NHK위성방송이 1995년부터 방송하기 시작한 '20세기 생명의 묵시록'이 떠오른다. 이 다큐멘터리는 20세기에 멸종된 동물들에 대한 애달픈 사연과 끓는 분노의 표현으로 가득차 있다. 이 시기에 절멸한 동물은 200여 종이나 된다고 한다. 이를 멸종에 이르게 한 근본 원인은 바로 인간의 욕망이다. 특히 탐사와 개발로 인한 무차별 남획으로 멸종에 이른 동물들이 많았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발간해오고 있는 '세계 가축 다양성 감시 목록'은, 전 세계에서 길러지고 있는 가축 수천 종이 멸종하고 있다고 끊임없이 경고한다. 가축의 종들이 매주 2종씩 절종하고 있으며, 전 세계 6천500여 종의 포유류와 조류 가운데 3분의 1이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고도 했다. 우리는 지금 멸종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지구에서 한 식구로 살아왔던 생물들이 이렇듯 멸종하여 자취를 감추면 남은 식구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일각고래. 이 신비한 동물마저 멸종의 시대를 힘겹게 버티는구나 라고 안타까워 한다. 가까운 타이름의 소리조차 듣지 못하는 우리들의 귀와 비교해, 멀리서도 잘 들리는 일각고래에게 점점 더 가깝게 다가가는 '우리들의 소리'가 그들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는 아이러니를 반성해야 할 것이다. -종자보존종자 보존 관련 보도가 는다. 그런 가운데 봉화의 '시드볼트'가 관심을 모은다. '시드볼트'는 씨앗인 시드(Seed)와 금고인 볼트(Vault)의 합성어다. 종자 금고다. 씨앗 은행(Seed bank) 또는 종자 은행이라고도 한다. 산불이나 태풍 같은 자연재해를 비롯해 전쟁과 기후 변화 등으로 자칫 식물 생태계가 교란되고, 결국 멸종에 이르게 되는 것에 대비하고 생물의 다양성을 보존하기 위한 유전자 보존 및 저장 시설이다. 현대판 '노아의 방주'인 셈이다.세계에는 씨앗 은행들이 더러 있다. 영국 런던의 밀레니엄 종자 은행 파트너십, 노르웨이령 스발바르 국제 종자 저장고,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바빌로프 전 러시아 식물 유전자원연구소 등과 더불어 한국 인천의 국립생물자원관 국가야생식물종자은행과 경북 봉화군의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종자영구보존시설 등이 그것이다. 특히 봉화의 '백두대간 글로벌 시드볼트'는 노르웨이령 스발바르 글로벌 시드볼트와 함께 전 세계에서 단 두 곳뿐인 종자 영구 보존 시설로 꼽힌다. 백두대간 시드볼트에는 국내 종자 관련 기관과 개인 등으로부터 수탁받은 수만 점의 종자들을 비롯, 국내외 야생 식물 종자 13만8천여 점을 저장하고 있다. 농작물 종자뿐만 아니라 모든 야생식물 종자를 밀봉한 블랙박스에 보관 저장하고 있다. "시드볼트가 제 본분을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유지되는 것, 그래서 그 안에 있는 종자들이 영원히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일입니다. 어쩌면 이 역설적인 역할 때문에 시드볼트의 미래는 불확실하고, 불투명합니다. 그저 여기, 이곳에,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덕분에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상의 온갖 야생식물 종자가 불안전한 세상을 피해 안전한 세계로 들어가고 있습니다.""지금 시드볼트에 저장되는 종자는 어쩌면 우리 세대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100년간 우리는 다 함께 '힘을 합쳐' 이 지구를 아프고 병들게 만들었습니다. 시드볼트는 이런 현실을 만들어 낸 우리 세대의 책임인 동시에 우리가 물려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유산일지도 모릅니다."'시드볼트: 지구의 재앙을 대비하는 공간과 사람들'(저자 이상용, 이하얀 외, 출판 시월)이 밝힌 봉화 시드볼트 참여자들의 말이다. 그래, 멸종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가슴도 이런 귀중한 '씨앗'들을 같이 저장하고 지키는 창고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이하석(시인)이하석(시인)
[3040칼럼] '달의 뒷면'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쯤, 우연한 기회에 일본의 나오시마라는 섬을 방문하였다. 그곳은 유명하고 감각적인 작품과 건축물이 많기에 사진을 즐겨 찍을 수 있는 곳이지만, 그곳에서 필자를 가장 전율하게 했던 작품은 아무것도 찍을 수 없는 것이었다. 빛의 예술가인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1943~)의 일련의 전시 중에 우리는 어떤 나무로 된 집의 입구로 갔다. 그리고 줄지어 있던 관람객들은 서서히 암흑의 방으로 이끌려 갔다. 아무것도 인지하기 어려운 그곳에서 흘러나온 낮은 목소리는 우리를 앞으로 걸어가도록 하였다. 누구도 잡을 수 없었고, 소리를 낼 수도 없었다. 급격한 상황 전환으로 인해 순간적으로 상실된 인지 감각과 더불어 우리 뇌 속에서는 두려움이라는 신호를 양산하여 한 걸음조차 내딛는 것이 조심스러웠다. 발밑에 무엇이 있을지조차도 확신할 수 없는 어둠의 공간이었기에 모두가 미지의 어둠 속에서 일종의 공포를 각자의 마음속에서 극대화하고 있을 때쯤, 어렴풋이 나타난 미세한 불빛은 관객들에게 광활한 우주 속에 있는 놀라움과 환희 비슷한 감정을 전달하였다. 불이 완전히 켜졌을 때, 그 공간의 단순함에 허탈한 웃음을 낼 수밖에 없었다. 이는 결코 글과 사진으로 담을 수 없는 작가의 '달의 뒷면'이었다.아마도 어느 정도 인지가 된 공간에서 불이 꺼진 경우라면, 그 정도의 공포는 느낄 수 없을 것이다. 그 공간이 어떠한 구조이며 어떠한 물체가 있는지 짐작은 할 수 있고, 최소한 발밑을 내디뎌도 문제가 없으리라는 경험에서 오는 신뢰가 있다면 불이 꺼진다 하더라도 문제해결 능력이 발휘될 것이다. 이러한 가정을 해보자. 당신 아이의 눈을 감기고, 어두운 공간에 데려가서 이렇게 말해보자. "지금 네가 서 있는 위치에서 왼쪽으로 1m 그리고 앞으로 2m 가면 출구에 도착해. 왼쪽으로 30초 정도 계속 힘을 가하면 열리는 문이 있어." 경험이 많은 어른의 짐작으로는 해결이 쉽겠지만, 아이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책 속의 수학 문제로는 풀리겠지만, 아이가 처한 상황에서는 해결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이처럼 아이의 뇌와 어른의 뇌는 다르다. 그러므로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다양한 감각과 사고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제임스 터렐의 '달의 뒷면'처럼 눈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어슴푸레한 빛을 통해 느껴지는 무한한 상상력은 아이들을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우리는 교육 현장에서 이러한 사실을 세심하게 고려하지 않고 경직된 학습과 행동을 강요할 때가 있다. 교과 과정 속 많은 내용이 실체를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학생들에게 이해와 해결 능력만을 요구하고 있다. 지적이고 정서적인 성장에 필요한 길잡이가 되는 무한한 가능성의 빛 대신 요구하는 답만을 맞히도록 유도하는 학습만을 반복하다 보니 아이들의 사고는 정형화되면서 생각을 멈추게 된다. 이런 어둠은 인간을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게 한다. 지구에서 '달의 뒷면'을 쉬이 볼 수 없는 것처럼 어른의 시각만으로는 아이들을 이해하기 어렵다. 단지 믿음과 포용이라는 따스한 빛으로 아이들이 공동체적 안도감을 느끼고 무한한 가능성을 찾아가게 하는 건 어떨까?박치영(DGIST 에너지공학과 교수)박치영(DGIST 에너지공학과 교수)
[CEO 칼럼] 대구 대전환을 위한 ABB 산업 육성 과제
지난 1일은 민선 8기 지방정부가 출범한 날이다. 기나긴 팬데믹의 영향에서 벗어나 엔데믹 전환기를 맞아 경기 회복세를 기대하였지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및 코로나 시대 양적완화 등에 기인한 고물가, 전 세계적인 금리 인상에 따른 경기 후퇴 우려로 인하여 민생은 하루가 다르게 팍팍해지고 있다.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출범한 지방정부에 지역주민들이 바라는 것은 첫째도, 둘째도 "경제"일 것이고 이를 통해 자신들의 삶이 하루빨리 개선되기를 기대할 것이다.지역주민들이 살기 좋은 지방정부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혁신을 통한 성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홍준표 대구시장의 미래 첨단 산업의 육성, 특히 A(AI)-B(Big data)-B(Block chain) 산업 분야의 집중 투자를 통해 연구개발, 소프트웨어 등 지식 서비스 기업을 최우선적으로 유치하고 지역 산업단지에 대규모 투자유치로 연결시키고자 하는 대구 대전환 계획이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첨단산업 육성 및 관련 기업 유치 시도는 과거 민선 지방정부에서도 있었지만, 홍 시장은 대구 50년 먹거리 산업 기반을 다진다는 측면에서 ABB 산업 육성을 구상하고 있는데 이러한 ABB 산업 체제로의 전환 시도는 산업에 대한 선명한 방향성 제시와 지역 내 예상되는 기대효과 측면에서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ABB 산업체제로의 전환을 통한 지역의 혁신 성장을 위해서는 기반 환경 개선을 통한 유망기업의 유치가 선행되어야 한다. 현재 대구에는 동대구벤처밸리, 수성알파시티, 대구테크노폴리스 정도가 ABB 관련 기업 R&D 시설 집적공간으로 언급되어 왔는데, KTX와 SRT가 정차하는 서대구역세권 개발사업부지와 같은 지역 내 교통요지 인접부지를 포함하여 기업 운영이 용이한 환경을 조성한다면 관련 산업 내 유망기업의 유치가 용이할 것이다. 물론 기반 환경 개선이 과거 지식산업센터처럼 교통의 요지에 빌딩숲을 만드는 형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즉 지방정부의 적절한 예산 배분을 통해 청년주택, 편의시설, 광장 등을 포함하여 청년들의 정주 여건이 개선되는 방향으로 기반 환경이 조성되어야 하고 그렇게 된다면 이 일대가 청년 개발자와 기업인들이 일하고 싶은 곳으로 거듭날 것이다.ABB 산업에 기반한 지역의 혁신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체계적 인재 양성 시스템이 동반되어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지역 내 연구개발 및 인재 양성이 가능한 인재 양성센터 조성 또는 유치가 필요하다. 2018년부터 진행 중인 삼성SW아카데미처럼 대기업이 중심이 되어 직접 역량을 갖춘 개발자를 전국 여러 지역에서 양성하는 프로그램이나 글로벌 기업인 독일 바이엘처럼 자사 기술교육센터를 운영해 회사에 필요한 인력의 5배수를 선발해 집중 교육시킨 뒤 남은 인력은 중소기업에 공급하는 프로그램은 지역 인재 양성을 위한 프로그램으로서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 ABB 산업 육성을 통한 대구 지역의 혁신 성장을 위해서는 예산 지원 및 규제 완화 등 관련 산업에 대한 시 차원의 집중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최근 대구시장직 인수위원회가 공공기관 구조개혁의 일환으로 발표한 DIP(대구디지털산업진흥원)를 대구테크노파크(대구TP)로 흡수통합하는 계획은 대구 지역 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소관의 SW·ICT산업 전담 지원 조직이 다른 정부 부처 기관으로 통폐합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정부 사업 및 예산 지원 측면에서 ABB 산업과 이에 기반이 되는 SW·ICT산업에 대한 집중적인 육성에 걸림돌이 될까 우려된다.박윤하 우경정보기술 대표박윤하 우경정보기술 대표
[성현 생각] 살며시 많이 또 주는 사랑
학창 시절 친구들끼리 종종 '마니또' 게임을 즐긴 적이 있었다. 이탈리아어로 '비밀친구'라는 뜻을 가진 '마니또' 게임은 제비뽑기 등을 통해 뽑힌 상대방에게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그에게 몰래 선물을 하거나 도움을 주는 수호천사 같은 게임이다. 누군가로부터 받은 선물로 인해 행복감을 느끼기도 하고 그가 누구인지 상상해보는 것이 이 게임의 묘미다. 인생을 살다보면 이처럼 수호천사 같은 누군가로부터 살며시 사랑을 받기도 하고 도움을 받을 때도 있다. 많이 또 주는 누군가들로 인해 우리는 많이 또 살아갈 맛이 난다. 도성현〈blog.naver.com/superdos〉
[단상지대] 도시의 개성
지난주에 사단법인 '대구경북학연구센터 대구읽기(이하 대구읽기)' 회원들과 1박2일 일정으로 목포에 워크숍을 다녀왔다. '대구읽기'는 대구의 근대사를 연구하는 소장학자들의 모임이다. 2010년경 소규모 연구모임으로 시작해 어느덧 햇수로 12년째 접어들었는데, 작년에 정식으로 비영리 법인단체 등록을 했다. '대구읽기'는 평균 한 달에 두 번 정도 정기적인 연구모임을 갖는데 코로나사태 이후로는 줄곧 온라인모임을 해 왔기 때문에 이번 워크숍 여행은 거의 2년 만에 하는 나들이였다. '대구읽기'는 근대사를 연구주제로 다루다 보니 아무래도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많이 거주한 인천이나 부산, 군산, 목포 등과 같은 개항지의 역사에 관심이 많다. 그러다 보니 인천이나 부산, 군산 등지의 연구자들과 교류하거나 그 지역을 탐방하러 가는 기회가 종종 있는 편이다. 그런데 이들 지역 중 유일하게 목포는 아직 한 번도 방문을 한 적이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지인을 통해 마치 한국의 나폴리로 불릴 만한 도시라는 소리를 들어온 터라 이번 워크숍을 통해 목포라는 도시를 꼼꼼히 둘러보고 싶었다.출발 당일 새벽까지 내린 폭우로 조바심이 났지만, 다행히 아침나절에 비가 그쳐 목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모처럼의 전라도 방문이라 식도락 또한 빼놓을 수 없는지라 지인의 추천을 받아 홍어삼합으로 유명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곧바로 목포의 상징인 유달산 해상케이블카를 타러갔다. 목포 시내 북항 스테이션에서 출발해 유달산을 거쳐 고하도까지 가는 해상케이블카는 국내 최장거리(3.23㎞)라고 하는데 최근 목포를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찾는 핫플이라고 한다. 어릴 때부터 TV를 통해 '목포는 항구다'라는 유행가 가사를 듣고 자랐기 때문인지 개인적으로 목포의 이미지는 애잔한 항구도시의 이미지가 강했다. 그러나 이번에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다 본 목포는 유행가 가락 속에 묻어나는 애잔한 항구도시도 아니고 나폴리 같은 느낌도 들지 않는, 여기저기 개발의 손길이 닿아있는 잘 정비된 관광도시로 탈바꿈해 가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케이블카를 내려 유달산 아래를 드라이브하다 뜻하지 않게 대구와 똑같은 이름의 공원과 명소가 목포에도 있다는 사실에 잠시 놀랐다. 길가의 안내표지판에서 본 달성공원이라는 공원명이 한자까지 똑같다는 사실과 생긴 모양은 다르지만 갓바위라 불리는 명소가 존재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대구와 닮은 듯 다른 모습의 목포는 원도심을 걸을 때는 대구의 북성로를 걷는 듯한 기시감마저 들었다. 목포근대역사관을 중심으로 한 원도심지역은 소위 '지붕 없는 박물관'을 표방하여 근대건축물을 보존하고 그것을 도시재생사업으로 활용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북성로나 인천 등지에서 보는 풍경과 별반 다르게 느껴지지 않았다. 비단 근대역사지구뿐만이 아니다.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해진 달동네 벽화마을을 다닐 때도 비슷한 감정이 들었다. 이것은 목포의 도시재생방식만을 문제 삼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후발주자로 참여한 각 지자체의 도시재생사업이 선진지 사례를 모방하는 방식으로 이어지다 보니 각 도시가 마치 강남의 성형 미인들처럼 개성 없는 모습이 되어가는 것은 아닌가 한다. 사람도 도시도 그들만의 개성이 있어야만 매력이 있다. 매력 있는 도시를 발견하는 즐거움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박승주 대구경북학연구센터 대구읽기대표박승주 대구경북학연구센터 대구읽기대표
[박재열의 외신 톺아보기] 우크라이나의 김 시장
우크라이나의 남부 도시 미콜라이우는 이번 전쟁의 격전지 중 한 곳이다. 이 시의 시장은 비탈리 김(41)이라는 고려인 4세다. 그는 미사일 포격으로 찢길 대로 찢긴 이 도시를 사수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밝혀 시민들이 크게 감동했다. 이 도시는 넉 달 전부터 미사일 공격을 받아 시민들이 불안에 떨자 그는 매일 인스타그램으로 시민들을 다독였다. 자신감 넘치는 그의 담화는 러군에 대한 조롱과 위트가 섞여 있어 국민에게 용기와 위안을 주었다. '세계 최강의 핵보유국이 우크라 국민을 말살하려고 할 때 꼭 필요한 것은 강철 같은 의지입니다. 무기만으로는 전세를 뒤집을 수 없습니다. 의지가 필요합니다.' 지금 그는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주목받는 항전의 대명사이며 차세대 우크라이나 지도자 물망에도 오른다. 지난 3월 말에는 시청사가 크루즈미사일 공격을 받아 38명이나 죽었으나 그는 간발의 차로 살아남았다.김 시장이 태어나서 자란 이 도시는 크리미아 반도에서 멀지 않고, 서쪽으로 조금만 나가면 오데사가 있다. 러시아는 흑해 연안을 차지하려고 끊임없이 이 도시를 두들겼다. 시장이 이끄는 군과 민도 죽을 각오로 러군의 오데사 진격을 막아 우크라이나 남해안 점령을 저지하고 있다. 희생도 컸다. 시민 반 이상이 피란을 갔다. 수도가 끊기고 남은 23만도 직장 없이 의식 문제를 대부분 구호단체에 의존한다. 그의 용기와 침착성은 "민주적으로 엄격한"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다고 한다. 농구 코치였던 아버지는 그가 태권도수련으로 강인한 정신을 기르도록 가르쳤다. 아버지는 크리미아의 심페로폴 대학에서 아내를 만났지만 이 도시에 와 김 시장을 낳았다. 경북대 명예교수·시인경북대 명예교수·시인
[여의도 메일] 고물가·고금리·고환율 시대의 지혜
모든 국민경제는 물가안정, 고용안정, 국제수지안정을 달성하길 원한다. 장기적으로는 경제성장을 통해 국민의 삶의 질이 향상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 경제는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에 시달리고 있어 자칫 '3고 불황'에 빠지는 것은 아닌지 국민적 우려가 크다.5월 소비자물가가 전년 동월 대비 5.4% 상승했다. 13년9개월 만에 최고치다. 앞으로 6%대를 예측하기도 한다. 이번 물가는 공급 측과 수요 측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문제가 더 복잡하다. 공급 면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석유와 원자재가격이 급등하고, 주요 곡물 생산국들이 수출을 제한함으로써 곡물 가격이 상승했다. 1970년대의 석유파동과 유사하다. 수요 측을 보면, 계속된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운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지난 2년간 각국은 금리를 낮추고 통화량을 늘리는 확장적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추진했다. 미국의 연방준비제도(Fed)는 세 차례의 양적완화를 통해 자산규모가 9조달러까지 늘었다. 그만큼 달러가 많이 풀렸다. 이처럼 공급과 수요 요인이 뒤섞여 지금 세계를 인플레이션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기 시작했다. 인상 폭은 예상보다 컸다. 미국 연준(Fed)은 지난 6월16일 한꺼번에 0.75%포인트를 인상하는 자이언트 스텝(giant step)을 내디뎠다. 단기간에 1.75%까지 올랐다. 미 연준 의장은 물가를 잡기 위해 경기침체를 감수하고 계속적 금리 인상을 예고했다. 지금은 물가 잡는 것이 더 시급하고 중요하니 맞는 말이다. 한국은행도 큰걸음(big step)을 떼야 할 분위기이다. 미국 기준금리 인상은 달러화 강세로 이어지고, 원·달러 환율은 최근 1천300원을 넘긴 적도 있다. 과거 '3저 호황'이 좋은 시절이었다면, 이번의 '3고 시대'는 우리 경제와 국민에게 큰 고통을 주는 어렵고 힘든 시기이다. 경제주체의 고통 수준을 소비자물가 상승률과 실업률을 합한 숫자로 나타내는 5월의 경제고통지수가 8.4로 최근 10년간 가장 높다.이러한 국민의 고통을 덜기 위한 가시적인 조치들이 연속 발표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다만 공급 측 요인에 의한 물가 상승은 외부 원인이 해소되지 않는 한 해결방법이 사실상 없어 경제주체 간에 그 고통을 분담하는 수밖에 없다. 예컨대 정부는 유류세를 낮추어서 세입감소의 부담을 지고, 정유사·주유소는 경영 혁신 등을 통해 일부 부담을 자체 흡수할 수도 있고 그 나머지는 최종적으로 소비자가 부담한다. 그런데 세금 인하분이 유류가격에 다 반영되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어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유류세 인하가 오히려 공급자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결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관계 기관이 상황을 철저히 점검해야 할 것이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할 때도 유사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 금융 당국의 역할이 요구된다. 기준금리가 인상되어 금융기관들이 여·수신 금리 조정 때에 예·대금리차를 축소하여 고통을 분담하기보다 오히려 더 확대하는 상황을 감독기관은 예의 주시해야 한다.일반 국민을 상대로, 정보가 비대칭적인 상황에 편승한 도덕적 해이 행태는 철저히 배격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정책효과의 누수 현상은 반드시 제거되어야 하겠다. 더 나아가 지금은 어려움과 고통을 함께 나누는 지혜가 요구되는 시기이다.류성걸 국회의원 (국민의힘)류성걸 국회의원 (국민의힘)
[아침을 열며] 윤석열 정부 대북 정책 '당근'도 필요하다
지난주 윤석열 대통령은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취임 후 첫 해외 순방에 올랐다. '포괄적 안보' 차원에서의 나토 회원국들과 네트워크 확대는 물론 한미일 정상회담을 복원하고 북한의 군사 위협 등에 대응한 '3각 안보협력' 강화가 목적이었다.윤 대통령은 나토 정상회의 연설에서 "북한의 무모한 핵·미사일 개발 의지보다 국제사회의 북한 비핵화 의지가 더 강하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줘야 한다"고 했고, 한미일 정상회담에서는 "북한 핵·미사일이 고도화되고 국제정세의 불안정성이 커진 상황에서 한미일 협력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며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를 요청했다. 이처럼 이번 해외 순방은 다시 한번 '자유는 오직 힘으로'라는 윤석열 정부의 대북 정책 기조를 한층 더 뚜렷하게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이처럼 윤 대통령의 취임 후 두 달 동안의 대북 메시지는 '힘을 통한 평화'다. 이러한 정부의 대북 기조에 대응하여 북한도 빠르게 '대남·대미 강경 기조'로 전환하고 있다. 지난달 8일부터 열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확대회의'에서 김정은 총비서는 "자위권은 곧 국권 수호문제"라며, "우리의 국권을 수호하는 데서는 한 치도 양보하지 않을 우리 당의 '강대강, 정면승부의 투쟁원칙'"을 재천명했다. 또한 북한을 둘러싼 정세를 "매우 심각하며 극단하게 격화될 수 있는 위험성을 띠고 있다"고 평가하면서, "이 같은 정세는 우리로 하여금 국방력 강화를 위한 목표 점령을 더욱 앞당길 것을 재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지난달 21일부터 열린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에서는 "군(사)력 강화의 명확한 실천행동 지침들이 책정됐다"며 "인민군의 절대적 힘과 군사기술적 강세를 확고히 유지하고 부단히 향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노동신문은 이번 회의에서 "당 중앙의 전략적 기도에 맞게 나라의 전쟁억제력을 가일층 확대강화하기 위한 군사적 담보를 세우는 데서 오는 중대문제를 심의하고 승인했다"며 "인민군 전선(전방)부대들의 작전 임무에 중요 군사행동 계획을 추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는 '대남 전술핵무기 최전방 배치'와 우리 정부의 '3축 체계에 대응한 선제타격 전략전술' 등 '중요 군사행동계획'을 전방부대 임무로 부여한 것으로 보인다.이는 김 총비서가 작년 10월 국방발전전람회에서 "우리 주적은 전쟁 그 자체이지 남조선이나 미국, 특정한 그 어느 국가나 세력이 아니다"라고 밝혔던 것과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다. 윤석열 정부의 '힘에 의한 평화'에 김정은 총비서는 '강 대 강, 정면승부의 투쟁원칙'으로 전환한 것이다.취임 후 지난 두 달 동안 윤 대통령은 '대북 강경정책' 의지를 지속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제는 '당근'이 필요할 때이다. 외교는 '강온양면 전략'이 필요하다. 힘으로만 밀어붙여서는 결코 지속 가능한 평화를 이룰 수 없다."상반년 기간 우리가 건국 이래 일찍이 없었던 시련과 난관을 겪었다고 하지만 하반년에 들어선 지금 형편은 더 어렵다고 할 수 있다"는 노동신문 7월1일자 기사와 같이, 북한은 지금 오랜 국제사회의 제재로 인한 경제난은 물론 최근 코로나19와 전염병 확산 등 보건 위기와 집중호우로 인한 자연재해까지 총체적 위기 상황에 몰려 있다. 여기에 안보 위협까지 가중된다면 자칫 '잘못된 선택'의 길로 들어설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박문우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수석연구원, 북한학 박사박문우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수석연구원, 북한학 박사
[경제와 세상] 폭풍 속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전쟁이란 폭풍 속에서 살고자 했고, 살아남기 위해서 몸부림쳤던 젊은이들의 사랑과 배신, 그리고 폭풍으로 찢긴 조국이 처절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뮤지컬 '폭풍 속에서'의 시놉시스다. 폭풍은 그 모습이 전쟁이든 경제위기든 사람들에겐 언제나 가혹하고 두려움의 대상이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은 출근길 도어스테핑에서 기자들에게 "창문이 흔들리고 마당의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것을 못 느끼느냐"고 지금의 경제상황을 폭풍전야로 표현했다. 우리 경제를 몰아칠 '퍼펙트 스톰'이 다가오고 있음을 상기시킨 것이었다. 전 세계가 코로나19를 수습하기 위해 풀어 놓은 막대한 팬데믹 머니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두 개의 폭풍의 핵이 맞물려 이루어진 세계 경제를 뒤흔들 위기가 퍼펙트 스톰이다. 고물가, 고금리, 저성장의 한국경제 복합위기는 이제 시작되었고 앞으로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2019년 말 자영업자 대출 잔액 684조9천억원이 2022년 3월 현재 960조7천억원으로 40.3% 급증한 상황에서 통화긴축과 고금리로 원리금 상환이 본격화하는 내년을 생각하면 자영업자와 취약가계, 한계기업들은 대책 없이 한숨만 내쉴 뿐이다. 코로나 사태 속에서 은행 빚으로 버텨온 이들에게 내일은 그야말로 '폭풍 속에서'다.폭풍우가 치는 바다를 건널 때, 기상예보를 바탕으로 처음에 결정한 항로로만 무작정 직진하면 파도에 휩쓸려 난파할 가능성이 크다.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하려면 바람과 파도의 변화를 읽으며 수시로 방향을 바꾸어야 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경영석학 이브 도즈 교수의 말이다. 위기는 대개 예측을 바탕으로 한 계획과 다른 사건이 일어났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여기서 예측이란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난 과거에 나타난 통계적 추이와 지속적인 경향 또는 재현성을 바탕으로 미래를 내다보는 것이다. 예측의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시계열 분석 등 통계적인 추정과 최근에는 빅데이터까지 활용하고 있으나, 과거가 아닌 지금 상황에 맞는 시의적절한 통계자료는 부족할 수밖에 없어 기업들이 미래를 예측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따라서 대다수의 기업, 특히 정보 인프라가 취약한 중소기업들은 과거 유사사례를 벤치마킹하거나 경영자의 직관에 의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정보의 디지털화와 다양한 미래 전망과 분석정보를 생산하는 조사기관의 활동에 의해 사업 환경 변화에 대한 엄청난 정보가 쏟아지고 있지만 이러한 정보로부터 국가경제나 산업이 아닌 바로 자신의 사업 활동에 중요한 미래통찰(insight)을 뽑아내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미래통찰은 외부 정보에, 정확하게 파악한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전략적으로 결합해야 비로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위기 속에서 많은 사람이 어려워져도 성과를 얻는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이 미래통찰이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미래통찰 역량은 외부정보의 양이 아니라 개인의 냉철한 판단력과 다양한 사업경험에서 체득되는 암묵지로부터 나온다. 어느 기업보다 미래예측을 중시하여 정보수집과 트렌드 분석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노키아도 과거 성공방식에 대한 집착과 자기 능력에 대한 과신 때문에 몰락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하지만 미래통찰을 얻는 것만이 닥쳐올 위기에 대한 대비 활동의 전부는 아니다. 얻어진 미래통찰이 마땅한 대응 전략의 수립과 실행으로 이어질 때 미래 예측 활동은 비로소 제힘을 발휘한다. 여기서 아무리 여러 대비책을 주절주절 늘어놓아도 폭풍은 견디기 힘들다. 폭풍이 두렵다.권 업 객원논설위원권 업 객원논설위원
[하용준의 閑談漫筆] '1'자의 의미
10대 학창 시절에 친구들끼리 서로의 기호와 취향 등에 관한 질문을 자주 주고받곤 하였다. 그중에서 아라비아 숫자 0부터 9까지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숫자가 뭐냐는 질문도 있었다. 그럴 때면 늘 1자를 꼽았다. 그러면 질문을 한 사람이나 주위의 다른 친구들은 내가 항상 1등을 추구하는 것으로 무턱대고 단정하여 빈정대는 말들을 뱉어내었다. 나는 그게 아닌데 하며 의아한 얼굴이 되었지만 구태여 변명은 하지 않았다.그때 친구들의 관념처럼 학교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일등 문화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시험을 치면 누가 수석을 차지했는가가 가장 큰 주목거리고, 국제적인 스포츠 경기가 열릴 때면 누가 금메달을 따는가에 온 중계방송이 흥분한다. 은메달이나 동메달은 '따는 데 그쳤다'는 식의 멘트가 주류를 이룬다. 2, 3등은 관심사에서 이내 멀어진다.1등을 무리하게 추구하고 1등만을 크게 대접하는 비이성적인 문화가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여지는 사회는 정상적인 사회라고 할 수 없다. 일등주의는 비교를 통하여 지나친 경쟁을 조장하기 마련이고 그것은 사회적으로 큰 폐해를 낳는다. 서열에 의하여 사회적 지위와 신분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기에 다분히 일류의식이 생겨나고 권력과 금력을 거머쥔 상류층이 형성된다. 그러므로 룰을 어기고서라도 이기기만 하면 된다는 의식이 조장된다. '모든 것은 결과가 말한다' '세상은 일등만 기억한다' '일등이 아니면 다 꼴찌나 다름없다'는 식의 언어 습관과 개념 인식이 팽배한다. 교묘한 편법·탈법·불법이 성행하고 온갖 부정한 방법이 동원된다. 공정과는 거리가 멀고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들이 허다하게 일어난다. 주지하다시피 그것은 대부분 모범을 보이고 귀감이 되어야 할 지식층에서의 일이다. 오죽하면 혼자 빨리 가기보다 함께 멀리 가야 한다는 말까지 강조되고 있는 현실이겠는가.학창시절 때부터 1자를 좋아해 온 이유는 단순히 '일등'에 집착해서라거나 '남보다 앞선' 개념 때문이 아니다. 우선 그 글자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시원한 느낌이 있어서다. 아라비아 숫자에 있어서도 그러하거니와 표의문자인 한자의 一(일)도 단순하면서 힘차다. 또 다른 이유는 1자의 의미가 '첫' 또는 '최초'의 개념을 가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첫눈' '첫돌' '첫인상' '첫사랑' '첫 만남' '첫 번째' 등 '첫'이 가지는 설렘보다 더 큰 설렘이 있을까. 또 1자는 '맨 먼저'라는 의미를 가진다. 그 누구보다도 먼저 무언가를 시도해 보는 것, 또는 무엇을 이루어 내는 것 등은 얼마나 근사한 느낌을 주는가. 더 나아가 1자는 '오직'이라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 '오로지' '유일'의 개념도 숙연한 감흥을 자아내게 한다. 이러한 여러 가지 뜻에서 1자를 좋아해 왔다. 1자의 의미에서 '일등' '남보다 앞선' '오직 나 한 사람만'이라는 등의 개념을 떠올리기보다 '첫' '최초' '맨 먼저' '오로지' 등의 개념을 상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여유롭고 낭만적인 인생이 될 것인가.오늘은 올해의 또 다른 절반이 시작되는 7월1일, 양력 칠월 초하루다. '초'의 개념 역시 '새로운 시작' '처음'의 의미와 상통한다. 그동안 이런저런 핑계와 게으름 탓에 망설이고 미루어왔던 것들을 마음 단디(?) 지어먹고 처음 시작하기에 좋은 날이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으니 올해의 남은 절반을 더하면 한 해를 다시 사는 셈이 된다. 그 무엇을 시작하든 일등을 목표로 하기보다 매번 처음처럼 꾸준히 하는 걸 목표로 삼는다면 아무런 부담감이 없다. 바로 오늘 시작하자. 소설가소설가
[금요광장] 부동산 거래의 미래
큰길 공터에 무슨 공사가 한창이더니 신축 아파트 견본주택 여러 채가 들어섰다. 갓길에 차들이 길게 늘어서 있고 주변 공터마다 주차된 차들로 가득한 것으로 보아 견본주택 관람도 시작된 모양이다.사실 견본주택 구경은 집 구하는 방법 중 제일 편리한 방법이다. 대개는 부동산 중개인을 대동하고 남의 집 살림살이가 그대로 어질러져 있는 집을, 미안해하며 둘러봐야 한다. 그러니 이삿날 전까지는 가구나 전자제품을 어떻게 배치할지 제대로 살펴보기도 힘들고, 처음 집 보러 갔을 때 놓친 불만스러운 부분을 뒤늦게 발견하고 후회하기도 한다. 사실 서로 바쁘다 보면 집 보여주는 일정을 조율하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이사할 집이 오래되어 실내를 개축해야 한다면 불편과 스트레스는 더 커진다. 예외 없이 작동하는 세상의 '디지털 전환' 흐름을 고려할 때, 미래에는 집을 사고파는 방식도 크게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 미래 특파원 김미래 기자로부터 미래의 주거 공간과 부동산 거래 방식의 변화에 대해 한번 들어보자."제가 오늘 소개 드릴 내용은 메타버스 기반의 부동산 중개가 이루어지고 있는 프롭테크(Prop-Tech) 서비스입니다. 스마트폰 앱에서 원하는 조건을 지정해 검색하면 중개인 아바타의 안내에 따라 집의 3D 모델, 동영상, 가상현실, 실시간 360도 비디오 등을 이용하여 실제 방문한 것처럼 현장감 있는 가상 체험이 가능한 것이 특징입니다. 마치 전자제품을 구매하듯이 여러 매물의 Spec. 비교가 가능하고, 주변 환경, 이웃, 가까운 학교나 식당, 범죄율 등에 관한 각종 데이터도 직관적인 인터페이스로 제공되어 구매자가 현명한 의사결정을 하실 수 있게 돕습니다. 관심 매물이나 조건을 등록해 두면 새로운 매물이 나올 때 알림을 주고, 시간 흐름에 따른 가격 변동과 향후의 시세 예측치도 확인 가능합니다. 계약은 물론 인증, 가치 평가, 거래 기록 등이 모두 안전한 블록체인 플랫폼 상에서 이루어져 해킹이나 위변조가 불가능하므로 서로 믿고 거래할 수 있습니다. 가상 매물 체험은 VR헤드셋은 물론 스마트폰, PC 등에서도 간편하게 접속이 가능하지만, 이곳 메타버스 프롭테크 센터를 직접 방문하실 경우 1층에 마련된 VR Cave 시설을 이용하여 가족과 함께 의논하며 미리 등록해 둔 관심 매물을 둘러보실 수도 있습니다. 실내 리모델링이 필요한 경우 디자이너 아바타의 가이드에 따라 원하는 스타일, 자재 등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실시간 360도 카메라를 통해 그 과정이 집주인에게 공유되므로, 갈등이나 분쟁의 우려가 적다는 점에서 특히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이사 예약, 가구 구매, 전기, 가스 등 유틸리티 신청 등도 계약한 입주 일정과 예산에 맞춘 지능형 추천 시스템의 도움으로 편리하게 이용 가능합니다. 부동산 시장의 판도를 바꾸고 있는 메타버스 프롭테크 센터에서 김미래기자였습니다."곽지영 <포스텍산업경영공학과 산학협력교수>곽지영 포스텍산업경영공학과 산학협력교수
[우리말과 한국문학] '헐렁한 수다'로 함께 걸어 본 안동
지난 5월, 안동으로 특별한 여행을 다녀왔다. 지역 인문학 단체인 대구경북인문학협동조합(2014년 창립)에서는 매년 지역 인문학 총서 '인문학자들의 헐렁한 수다'를 출간해왔는데, 올봄에 간행된 '헐렁한 수다-안동편'의 출판을 기념하는 일종의 답사 여행이었다. 50여 명이 참가한 이번 여행은 저자들과 함께 이틀 동안 권정생 생가, 임청각, 백담 구봉령 종택, 264 와이너리, 도산서원, 봉정사와 하회마을 등 안동에 담긴 '인문'의 흔적을 따라 걸으며 저마다의 삶을 나누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여행은 안동시 일직면에 있는 권정생 생가에서 시작됐다. 우리 칼럼에서 여러 번 다뤘던 권정생은 평생 '강아지똥' 등 많은 문학작품을 통해 외로움과 슬픔을 지닌 이들과 공감하는 글쓰기를 해왔다. 타인의 슬픔을 오롯이 품어 안았던 권정생의 글에서 살아갈 힘을 얻은 이들은 자신만의 꽃을 피워냈으리라. 그런 점에서 권정생이 오랫동안 기거했던 일직면의 조탑마을은 '세상의 슬픔들이 꽃이 되는 곳'이라 불릴 만하다. 임청각으로 대표되는 고성 이씨 석주 가문은 3대째 9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항일명문가이다. 퇴계의 경(敬) 사상과 학풍을 삶으로 실천한 석주 가문은 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대표한다. 백담 구봉령 종택에서는 불천위 제사를 지내며 전통의 맥을 이어가는 안동의 종가 문화를 체험했다. 일행을 극진하게 환대하는 종손 내외를 보며 스스로는 엄격하지만 타인에게 베풀고 나누는 종가의 문화가 새로운 문화자산이 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유교 사상과 선비문화의 본원을 찾아 도산면으로 향하는 길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두 문인과 마주한다. 도산서원으로 가는 돌담길을 걸으며 안동을 '추로지향(鄒魯之鄕)'이라 일컬었던 퇴계를 만났고, 그 후손인 육사의 시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청포도 와인 '광야' '절정' '꽃'을 맛보며 그들이 꿈꿨던 세상을 상상해보았다. 이날 안동에서 만난 이들의 삶터는 자신이 배우고 지향했던 바를 '앎'으로 그치지 않고 '삶'으로 행한 자들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이튿날 오전에 찾은 봉정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산사로, 소박하고 고즈넉한 산사의 정취를 맘껏 누릴 수 있는 곳이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인 극락전을 보고 대웅전을 지나 요사채 한 곁으로 난 문을 나서면 녹음에 물든 돌계단을 마주하게 되는데, 그 계단을 오르면 봉정사의 숨은 보물 영산암이 있다. "전생이 용이었다는 석가모니/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법할 때 내렸다는 꽃비/ 그 이름을 딴 우화루 아래를 지나/ 영산암 응진전 앞에 서면 간밤 비가 내렸던가/ 만발한 나무 백일홍 아래 용을 닮은 솔가지에도/ 스님의 발자국에도 낙화 다시 붉게 피어 있다"(안상학의 시, '봉정사 영산암' 일부)권정생 선생과의 인연으로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 사무처장을 맡기도 했던 시인 안상학은 천등산자락의 봉정사를 좋아했다. 그의 또 다른 시 '봉정사'에는 겨울의 봉정사가 담겨있다. 세상에 움직이는 것이라곤 진눈깨비밖에 없던 겨울 봉정사에서 화자는 "다시 세상으로 나가는 길"을 발견하고 있다. 오월의 봉정사 마당을 함께 거닐던 일행들도 저마다 세상으로 나가는 길을 찾는다. 탈 놀이판에서 현실의 고단함을 신명나게 날려버렸던 하회의 탈꾼들처럼, 헐렁한 수다를 떨며 안동 곳곳을 함께 거닐었던 이들도 저마다의 목소리로 세상으로 나선다. 지역 소멸을 걱정하는 이 시대, 다양한 방식으로 지역을 이야기하는 목소리들이 필요하기에 우리들의 수다는 계속된다.배지연 대구대 인문과학연구소 교수배지연 대구대 인문과학연구소 교수
[수요칼럼] 총리가 잘 보이지 않는 이유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도 어느새 두 달이 되어 간다. 아직도 국무위원 두 자리를 채우지 못했고 내각 바깥의 각종 위원회 등을 둘러싼 신구 권력의 힘겨루기가 진행 중인 가운데, 각종 경제지표는 연일 심각한 위기의 도래를 예고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는 예상보다 훨씬 일찍, 매우 뚜렷하게 한 가지 특징을 드러내고 있다. 국정 전반에서 내각의 2인자인 국무총리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일차적으로 그 원인은 정부가 출범한 초기 단계임에도 국정 전반으로 보면 대통령을 둘러싼 주변적인 이슈들에 정치적 에너지를 소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실의 용산 이전이나 청와대의 개방 문제, 대통령 부인의 활동 방식과 범위 문제, 집권 여당 대표의 징계 논란 문제 등은 모두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국회를 장악한 거대 야당이 지방선거 패배 이후 심각한 내홍에 빠지지 않았다면, 윤석열 정부의 이러한 모습은 시민들에게 심각한 우왕좌왕으로 비쳤을 것이다.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바로 이때 국무총리가 나서서 국정의 방향과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고, 내각과 관료집단 안팎에서부터 조직을 다잡은 뒤 집권 여당에 대해서 긴장감을 가지도록 요구해야 한다. 사실 오랜 기간 고위 관료로 일했으며, 이미 10여 년 전에 노무현 정부의 국무총리를 역임했던 한덕수 국무총리가 이 점을 모를 리가 없다. 하지만 국정 전반에서 그의 모습은 솔직히 있는 듯 없는 듯한 정도이다. 무엇 때문일까.형식의 측면에서 보자면, 윤석열 대통령이 언론과의 소통 방식으로 선택한 이른바 '도어 스테핑'을 한 가지 이유로 꼽아도 될 것 같다. 최근 언론의 행태는 매일 오전 출근길에 대통령이 기자들의 질문에 내놓은 답변을 초점으로 논조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통령이 출근하지 않는 주말에는 대통령 부인을 중심으로 이벤트가 벌어지고 있으니, 일주일 내내 윤석열 대통령이 언론의 중심에 놓이는 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국무총리가 적극적으로 나선들, 언론의 조명을 받기는 어렵지 않겠는가.대통령이 언론과의 소통에 주력하는 것은 바람직하나 매사 그렇듯 과유불급이다. 특히 복합적이고 까다로운 사안일수록 최종결정권자인 대통령의 한마디는 정책의 결정이나 집행에서 운신의 폭을 크게 제약할 소지가 있다. 지금까지는 정권 초기라 모두가 낯설지만, 정치권이나 관료집단 안팎의 야심가들에게 윤석열 대통령의 정책 결정 패턴이 읽히고, 대통령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핵심 참모들이 파악되고 나면, 자신들의 뜻대로 '도어 스테핑'을 활용하려는 은밀한 시도들이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이러한 점들을 생각하여 역대 정부에서 실천했던 소통의 방식은 대체로 국정의 지표와 과제들을 정부 안팎에서 충분한 토의를 거쳐 확정한 뒤 이를 통해 정부 안팎에서 메시지의 일관성을 기하는 것이다. 형식이 아니라 내용의 측면에서 해당 정부에 기대할 것과 기대하지 말 것을 확실히 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굳이 모든 사안에 대통령이 나서지 않아도, 국무총리와 국무위원들이 이미 확정된 국정의 지표와 과제 범위 안에서 상당한 자율권을 가지고 언론과 국민 앞에 나설 수 있게 된다. 대통령은 자연스럽게 국정의 지표와 과제에 포함되지 못했거나 새롭게 발생한 현안들을 중심으로 더 폭넓은 소통을 시도하게 된다.윤석열 정부의 출범 초기 국무총리가 잘 보이지 않는 이유를 나는 형식의 측면보다는 내용의 측면에서 찾고 싶다. 국정의 지표와 과제들이 분명하지 않거나 설득력이 떨어지거나 시의적절하지 않다면 그것부터 손보아야 한다. 아침마다 벌어지는 대통령의 '도어 스테핑'에서 화끈한 속보들이 쏟아지는 현상은 정권 초기 몇 주의 기억으로 간직하는 것이 좋겠다.이국운 한동대 법학부 교수이국운 한동대 법학부 교수
[정재형의 정변잡설] 대통령의 입
창원에 두산에너빌러티라는 회사가 있다. 생소하지만 '한국중공업'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분이 많으실 거다. 일전 대통령께서 이 회사를 찾아 관계자의 노고를 치하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때의 말이 문제였다. 보도된 것을 그대로 옮기면 "우리가 5년간 바보 같은 짓을 안 하고 원전 생태계를 더욱 탄탄히 구축했다면 지금은 아마 경쟁자가 없었을 것"인데, 자연히 '바보'라는 표현에 눈길이 간다. 전임자를 극복하고 치적을 통해 국민의 복리를 드높이겠다는 대통령의 야망은 바람직하다. 그런데 전직더러 '바보'라는 말을 내뱉은 입이 공개적 자리에 선 신임 대통령의 것이라면 그 광경이 과히 아름답진 않다. 바보와 천재가 있는 장면이 아니라 낮과 밤처럼 그냥 대립해서 존재하는 그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더 보편적이다. 낙태를 허용할 것인가, 창세기를 공립학교에서 가르칠 것인가의 문제 따위가 대표적이고, 핵발전소의 유용성과 위험성에 관한 것도 마찬가지인데 이 문제에 대하여 논객들은 절대 상대를 설복시킬 수 없다. 고압송전탑이 지나가는 동네, 청도 삼평리나 밀양 상동면에 사는 분들은 핵발전소를 원망하기 마련이다. 또 핵발전소를 옆에 두고 있는 부산, 양산 사람들도 후쿠시마 사태를 남의 나라 일로 보지 않는다. 반면 핵발전을 밥벌이로 삼는 사람은 물론이고 서울처럼 핵발전소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면서 콘센트에서 나오는 전기가 어디서 온 건지 알 필요가 없는 분들은 미세먼지의 주범인 석탄보다 원자력을 선호할 수도 있겠다. 핵발전소가 생산하는 전기의 단가가 핵발전소 폐로비용을 포함한 것인가의 논쟁이나, 핵발전소가 안전하면 서울 한강변에 짓지 송전탑과 선로를 남의 동네에 세우면서까지 외딴곳에 짓냐는 볼멘소리도 마찬가지로 양극단의 목소리이다. 우리나라는 미국이나 중국에 비하면 땅덩이가 좁고 게다가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다. 만약 방사능이 누출되는 사고가 터지면 나라가 망한다는 걱정 때문에 나는 비싼 전기요금을 물더라도 핵발전소가 없는 곳에 살고 싶다. 후쿠시마 같은 사고가 난다면 여기 사는 나는 피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핵발전을 지지하는 옆집 아저씨가 나더러 '바보'라고 한다면 힐끗 쳐다보고 자리를 피하든지 그 멱살을 잡든지 할 것이지만 그 사람이 대통령이라면 문제는 복잡해진다. 핵발전을 지양하고 대체에너지로 돌아선 독일이나 나 같은 겁쟁이는 졸지에 바보가 되어버렸지만 어떻게 대꾸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나는 그를 RE100도 모르는 바보라고 말하진 않겠다. 지적장애인을 비하하는 표현이기 때문이다.※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변호사
[영남시론] 남한사람, 북한사람 그리고 대한민국 사람
며칠 전 6·25전쟁 72주년이 지났다. 6·25전쟁의 기간은 약 3년이었지만 전쟁의 상흔은 깊고도 넓으며 오래도록 이어져 오고 있다. 인명과 재산의 손실만이 아니라 서로에게 치 떨리는 원한을 품게 됐다. 남한은 북한이 언제 또다시 침략해 올지 모르는 상대이며, 북한은 미국과 남한이 무차별 폭격에 대한 공포의 대상이 됐다. 남북은 6·25전쟁을 계기로 불신의 트라우마를 겪게 되었다. 트라우마는 시간이 지나고 세대가 바뀌어도 재생산되고 있다. 6·25전쟁을 계기로 한민족은 둘로 갈라섰다. 그냥 갈라선 게 아니라 자신이 속한 쪽은 '천사'인데 반대쪽은 '악마'로 낙인찍으며 70년 넘게 그렇게 살고 있다.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남북은 각각 '남한사람'과 '북한사람'의 전형을 끝없이 만들어내려는 분단체제를 구축해 왔다. 분단체제 속에서 남북은 서로에게 대립각을 날카롭게 세우고 창끝을 상대의 가슴에 겨누고 있다. 남한사람들 가운데 남쪽 사회는 선이고 북쪽 사회는 악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에 젖어 있는 이들이 많다. 정말 남쪽 사회는 선이기만 할까? 탈북민들은 북한에 있었을 때는 배고픔에 두려웠고 중국에서는 공안에 체포될까 두려웠으며 남한사회에서는 차별이 두려웠다고 전한다. 그 가운데 가장 견디기 힘든 게 남한에서의 차가운 시선이었다고 말한다. 남한사회의 배타성은 노인빈곤율, 청년자살, 사회적 갈등, 양극화 등에서도 드러난다. 남한사회의 구성원들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내적으로는 관용성을 키워나가야 하고, 외적으로는 남북한의 평화를 만들고 지켜나가야 한다. 남북 간의 충돌은 지금까지 쌓아 올린 경제 탑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무너뜨리기 때문이다.북한사람들도 선악의 이분법적인 인식은 남쪽사회와 마찬가지다. 오히려 더 심하다. 북한사회는 선이고 미국과 남한은 악으로 규정하고 있다. 북한은 6·25전쟁 당시 신천군 인구의 약 4분의 1에 해당되는 3만5천여 명이 희생된 사건을 기리기 위해 황해도 신천에 박물관을 지어 조직 및 단체별로 견학하게 함으로써 반미감정을 내면화시키고 있다. 반미를 통한 북한사회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정책이다. 북한이 유격대 국가건설과 반미제국주의 분쇄를 기치로 내걸면서 북한주민의 삶의 질은 희생되고 말았다. 북한은 생필품 부족, 에너지 부족, 식량 부족, 보건의료체계의 붕괴 등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더미 같다. 그럼에도 북한은 주민들의 삶은 제쳐두고 국방력 강화를 위해 핵과 미사일 개발에 몰두할 것임을 숨기지 않고 있다. 이처럼 남한사람, 북한사람으로 갈라져 살아서는 우리 겨레의 장래에 희망이 보이질 않는다. 희망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정체성을 가진 남북한 사람들의 결합이 필요하다. 남한사람들은 '포용적 마음'을, 북한사람들은 '유연적 시민성'을 지향해 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 남북한은 변해야 한다. 남한사람이 먼저 변화해 보자. 그 방향은 대한민국 헌법에 있다. 헌법3조에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남한사람'이 '대한민국 사람'으로 거듭나야 한다. 대한민국 사람은 구성원 모두를 따뜻하게 배려하는 '포용적 시민성'을 지녀야 한다. 대한민국 사람을 많이 육성하는 일은 남북한의 상생을 앞당기고 평화통일에 한 걸음 더 다가서는 길이다.김정수 대구대 교수김정수 대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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